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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태어나고 자라며 죽는다. 태어나서 한 곳에서 살기도 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고 그곳에서 죽기도 한다. 하지만 태어난 곳을 떠나 살다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죽음을 맞이하는 물고기가 있다. 연어다.
우리나라의 양양의 남대천, 고성군 현내면 명파천은 연어의 고향이기도 하며 연어가 돌아오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연어의 종류는 얼마나 될까?
지구상에 서식하는 30여 종의 연어 가운데 우리나라에는 10여 종의 연어가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 연어는 주로 3년 만에 돌아온다. 그들의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곳. 왜 그들은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
하천 상류에서 연어를 체포하여 콧구멍을 막은 채 모천 앞바다에다 풀어놓았다. 그런데 이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하천, 자신이 올라갔던 그 하천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코를 막지 않은 연어들은 그 상류지점으로 다시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처럼 연어의 코는 고향의 냄새를 맡는 특수한 능력이 잠재되어있는 것인가보다.
그렇다고 자신이 태어난 하천이 오염이 되었다면 그곳으로 가지는 않는다. 그 대신에 주변에 깨끗한 다른 하천을 선택하여 소상을 감행한다. 연어의 코는 어떤 생명의 후각보다 발달되었다고 한다. 모천수를 800배 희석해놓아도 식별할 수 있는 코를 가졌기에 고향을 떠나 머나먼 북태평양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연어는 돌아오면서 몰랐을 것이다. 탯줄 끝에 어머니가 있고 아머지가 존재하는 곳이며 미래가를 꿈을 꿀 수 없는 마지막 장소인것을. 연어에게는 모천이 생의 근원일까?
바다로 부터 먼 곳에서 내려온 치어들은 북태평양에서 만난다. 첨연어와 홍연어는 섭씨 3∼4도의 등온선을 따라 동경165∼168도에 수역에 분포한다. 은연어는 캄차카 반도 아래쪽인 수온 섭씨 8∼10도 수역의 동경 158∼163도 사이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소형의 미성숙어인 첨연어와 배니연어는 은연어와 같이 수온 섭씨 8∼10도 수역에 나타난다. 이때 캄차카 동남해구에서는 남서에 걸치는 긴 한류가 북서진하는 쿠로시오의 지류와 만나면서 연어들의 어장이 형성된다. 이 두 해류의 만남으로 섭씨 4도의 수온대를 경계로 높은 곳에 베니연어가, 낮은 곳에 첨연어가 밀집한다. 그들은 북태평양 일대를 거의 꽉 채운 듯 서식하지만 그 종류에 따라서 서식 범위가 이처럼 다르다.
여러곳의 연어가 만나 떼를 지어다니다가 성어가 되고 고향으로 돌아올 시기가 되면 자신이 태어난 모천으로 회귀를 한다. 자신이 태어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지금도 남대천에는 연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개들이 다시 왔으면 좋겠소.” 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하천에 연어가 친구이며 먹을거리였던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는 고 옹의 말이다. 어울려서 정신없고 살고 싶어하는 고 옹의 소박한 꿈. 이것이 꿈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물이 흐르고 그 곳에는 엣 추억과 현실이 공존하듯 연어는 소리없이 가을과 함께 나타날 것이다. 봄에 바다로 간 연어가 성어가 되어 돌아오듯, 우리도 나이가 들면서 고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같이 이치일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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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눈이 내렸는지 아침운동을 나섰을 때 아파트 주변은 온통 흰 눈에 덮여 있었다. 다행히 눈은 그쳤고 아침운동을 하기에 적당한 기온이었다. 바람도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겨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콧속이 건조하여 이따금 재채기를 하곤 했었는데 잘된 일이었다. 따뜻한 기온 탓에 바닥에 내린 눈은 이미 다 녹았지만 화단과 주차된 차 위에 쌓인 눈만큼은 그대로였다. 습기를 머금은 함박눈이었다.
등산로 초입의 계단에도 눈은 소복했다.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는 눈길을 길고양이가 먼저 밟아보았는지 등산로를 따라 옴폭옴폭 패인 자국이 보였다. 달빛도 없는 등산로가 눈雪빛에 의해 환했다. 뽀드득뽀드득 밟히는 눈의 감촉이 싫지 않았다. 사위가 적막하고 평화로웠다. 멀리서 꿩이 울었다. '괜찮겠지' 생각하고 아이젠도 챙겨오지 않아서 내딛는 발걸음 한 발 한 발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처음 보는 설경인 양 약간의 설렘과 끓어오르는 흥분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또 자부름이 온다. 내면은 흰 눈으로 뒤덮인 저 어둠 속의 산야일지 모른다. 이 근방의 어느 산속에 잠들었다가 새벽 한기에 몸을 돌리는 산짐승이 생각나면서 스스로 적막감을 외면하려고 몸을 외로 틀어 돌린다. 동이 밝아온다. 눈을 감은 얼굴과 유리창에 새벽 기운이 스며든다. 저쯤에 바다가 있을 것이다. 먼 곳의 기억은 아침 햇살에 몸서리를 친다." (p.17)
그토록 조심했는데도 산을 오를 때 한 번, 내려올 때 두 번 눈 위로 미끄러져 우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기분이 동해서 일부러 그랬는지도 모른다. 부딪히는 감촉이 싫지 않았던 것이다. 바지에 묻은 눈을 툭툭 털고 나면 말짱했다. 산의 능선에는 부지런한 등산객의 발길이 정상을 향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여전히 어두웠고 솔가지 위에 쌓였던 눈이 장난을 걸듯 후두둑 떨어지곤 했다.
"태어날 생명들은 과거처럼 느껴지는 미래로 끝없이 이어진 한정 없이 많은 물과 같다. 저 둥근 하늘을 한 바퀴 돌아온다. 역시 연어들도 우주 속의 거대한 그리고 세세한 법의 즐거운 또 고통스러운 수레를 타고 바다로 돌아간다. 끝없이 끝없이 업을 이루고 완성해간다." (p.72)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주말을 향한 그들의 기대가 종아리 근육을 단단히 지탱하는 듯했다. 보도를 향해 가로수 위에 쌓였던 눈이 반쯤 녹은 채 떨어지거나 눈석임물이 비처럼 내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세세한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어쩌면 그들은 주말 휴일에 만날 그리웠던 연인이나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약속된 여행을 미리 그려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미리 맛보는 즐거운 장면에 취해 눈석임물을 비처럼 맞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고형렬 시인이 쓴 <은빛 물고기>를 읽었다. 시인은 장장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반도로 회귀하는 연어의 삶을 추적하고 연어의 일생을 가능케 하는 자연과 그 자연에 보시하며 죽음을 맞는 연어의 일대기가 시인의 아름다운 언어에 의해 아름답게 재해석된다. 생각해 보면 어떤 책은 전체의 내용이나 문맥의 흐름보다 하나하나의 문장에 주목하며 읽어야 되는 경우가 있다. 고형렬 시인의 <은빛 물고기>도 그런 책이다.
"그들은 헤아릴 수 없이 죽어왔다. 지금은 조금도 낯설지 않고 불편하지 않은 몸을 입고 있다. 생의 회귀는 지구를 비추고 있는 태양의 빛과 그에게 묶여 공전하는 지구의 인력과 같다. 그들은 그곳의 생을 살고 떠났으며 또 다른 생을 찾아오고 있다. 그들 자신도 모르는 성품을, 모래 속의 추억을, 먼 바다의 생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p.415)
아름다움은 결국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되살아나게 마련이다. 어미 연어가 제 몸을 보시하여 새로운 생명의 아름다움을 끊이지 않고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고형렬 시인의 이 책이 한때 절판되었다가 다시 복간된 것도 연어의 회귀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은 영원히 반복될 뿐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시인을 통해 배운다. 뒷걸음질 치는 2월의 잔상 위로 봄빛이 완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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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책을 읽고 보니 잔잔한 해수면 시험장이 연상된다. 개인적인 생각은 더 새파란 강렬한 표지였으면, 그 안에 에폭시 기법을 써서 은빛 물고기가 만져지는 촉감이 있었다면 더 세련되고 눈에 띄는 표지요 제목일텐데...
<이책은> 최측의농간 에서 서평 의뢰를 받았는데 많이 늦었다.
<저자는>
<책읽은 소감> 연어 라는 단어를 접하면 자동적으로 회귀 본능이 떠오른다. 아마도 시험에 나온다고 외워야함을 강조했던 어린 날의 기억의 한 조각이런가. 그 다음은 강산애 씨의 긁는 듯한 힘찬 음성이자 음색의 노래가 떠오른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그렇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그 행동이자 본능이 바로 회귀 본능인 것을. 이런 과정을 저자는 장장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대기록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이 감격을 맛보게 된 독자는 조금 어렵게 읽었음을 고백한다.
첫째는 420페이지라지만 글씨가 작아서 훨씬 더 긴 글이라 보면 된다. 작은 글씨가 빽빽한 이러한 책은 아마도 처음 본 듯하다. 둘째는 불교와 관련한 주석이 많고 주석은 글씨가 더 작다. 불교와 관련하여 언급되는 이야기들이 불교 신자가 아니다 보니 처음엔 호기심으로 다가갔다가 나중에는 눈으로만 읽게 되더라. 셋째는 강조하고 싶은 경이로움이겠지만 반복되는 게 많다. 특히나, 자궁이란 말이 많이도 나온다. 모성을 말하고 싶은 마음을 누가 모르랴만 불편했다. 넷째는 알기 어려운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우리네가 흔히 보는 단어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빠져 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글을 주무르는 솜씨가 대단했다. 장황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생생하다. 현장에서 눈으로 보는 듯하다. 세밀 묘사가 대단하다. 펄떡펄떡 솟구치는 연어를 대한 듯하고 연어가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명멸하는 빛처럼 스러질 때는 가슴이 싸아해진다. 허무한 충만감을 안겨준다. 할 일을 다하고 돌아가는 자의 뒷모습은 쓸쓸한 게 아니고 만족함이라는 듯. 아낌없이 주고 가는 자는 아쉬울 게 없다는 듯. 그러다가도 저자는 자신의 감정에 빠져 끝없이 이야기를 토해낸다. 마르고 닳지 않는 감정 같이. 그렇게 느낌이 끊임없이 솟아날까 싶게. 하긴, 그런 마음을 피력하려면 보통의 지식으론 안되는 그 깊이는 얼마나 대단할까...
이 책을 이해하자면 일단 목차 먼저 훑어보아야 한다.
차례 서序장 4장 북태평양으로부터의 산란회유 5장 모천 소상, 연어들은 왜 산으로 가는가
아이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거쳐 청소년기를 맞고, 성년을 지나 한 가정을 꾸린다. 자녀를 낳고 기르며 자신도 부모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면서 어느새 자신의 부모님 대열에 끼게 되는 인생사. 위의 목차를 보자면 한 생명이 자라나 소멸되어 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연어알을 인공부화로 시작해 머나먼 곳으로 본능이 시키는대로 떠났다가, 본능이 요구하는대로 돌아오는 여정. 그걸 대단한 관심과 애정으로 기록해낸 연어의 일대기는 장관이다. 대단한 시간들을 한 권의 책으로 운좋게 만났다. 컨닝하여 답만 알게 된 것 같은 미안함도 자리하면서 정독으로 잘 읽어내려 애썼다. 소중한 시간였음을 감사히 여긴다. 묻힌 책 혹은 회자 되지 않는 책을 발굴해 독자의 관심권으로 가져오는 노력을 한다는 출판사, 최측의농간이 많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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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가 아닌 연어
<은빛 물고기>라는 제목에서 처음 연상되었던 것은 은어(銀魚)였다. 하지만 <은빛 물고기>의 저자 고형렬 시인은 은어가 아닌 연어의 삶을 추적하여 <은빛 물고기>라는 글을 남겼다.
왜 연어였을까?
일단 처음 제목이 <은빛 물고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연어의 등쪽은 흑청색(黑淸色)이지만 배쪽은 은백색(銀白色)이니까 연어도 은빛 물고기라 부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제목인 <은빛 물고기>를 최종 제목으로 선택할 수 있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연어’하면 연상되는 모천회귀성(母川回歸性)이 더 시인의 마음을 자극했을 것 같다. 연어는 하천에서 부화되어 6㎝ 정도로 자라면 바다로 나갔다가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되돌아와 산란(産卵)한다. 그러나 산란, 방정(放精) 후에는 암수가 모두 죽는다. 마치 전설 속의 불사조처럼 자신을 태워 새 생명을 낳는 모습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아니었을까
“태어날 생명들은 과거처럼 느껴지는 미래로 끝없이 이어진 한정 없이 많은 물과 같다. 저 둥근 하늘을 한 바퀴 돌아온다. 역시 연어들도 우주 속의 거대한 그리고 세세한 법의 즐거운 또 고통스러운 수레를 타고 바다로 돌아간다. 끝없이 끝없이 업을 이루고 완성해간다.1)”
여기에 산에서 연어를 잡았다던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신기리의 고인봉(高仁鳳) 옹(翁)의 이야기와 보(洑)의 설치와 하천 오염으로 돌아오지 않는 연어를 안타까워 “개들이 다시 왔으면 좋겠소2)”하는 그의 한숨도 감안되었을 것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신기 사람들은 개울에 엎드려 입을 대고 물을 먹었다. 개울은 아래로 흘러내려가고 입에 닿은 물은 꿀꺽꿀꺽 목구멍을 넘어서 뱃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처럼 하천과 사람의 내장에 같은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물을 먹을 수가 없다. 상류 쪽의 오랜 채광과 개발, 그리고 공장과 양어장이 들어서면서 인가 주변의 하천은 오염되었고 청수(淸水)는 그야말로 심산유곡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3)”
이런 상황에서 연어가 신기 마을로 되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모천회귀(母川回歸)하는 연어도 개발로 보(洑)가 생기거나 환경이 오염된 곳에는 다시 가지 않기 때문이다.
시가 아닌 수필
저자가 시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당연히 그의 작품이 시(詩)일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은빛 물고기>는 시도, 소설도 아닌 연어의 회귀에 대한 에세이다. 그것도 1990년 가을에 이 글을 위한 조사를 시작해 해서 1998년 겨울 퇴고하기까지 거의 10년의 세월이 걸린.
그래서 <은빛 물고기>에는 시인 특유의 감성과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정밀함으로 연어의 삶이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이 글이 시(詩)가 아니라 연어의 회귀에 대한 일종의 기행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불교 용어야 어쩔 수 없다지만 툭툭 던지는 한자어들이 거슬린다.
예를 들면 아래의 글에서 소상(溯上), 육도(六道), 원적(圓寂)이라는 단어를 굳이 써야 했을까 “연어에게는 한 가지 불가해한 일이 있다. 연어는 모천(母川)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어떠한 생명도 일체 건드리지 않는다. 이 연어의 금식(禁食)은 산으로 입산하는 연어들의 계율과 같다. 산에서 몸을 풀고 나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명을 놓기 위해서는 금식해야 하기 때문일까?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하여튼 연어는 고향 하천에 돌아오면 어떤 생명도 취하지 않고 음식을 거절한다. 모천으로 소상(溯上)한 연어들이 보여주는 이 불가사의하고 성스러운 본능과 의지는 무엇 때문인지 아직 뚜렷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연어들은 상류의 고기들이다. 그들은 아마도 고산(高山)의 계곡수에서 살았던 족속들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들은 바다 세상과 고별을 하고 산속으로 향한다. 모든 자유와
모험과 영화를 바다에 두고 민물의 고향을 찾아간다. 그들은 과거와 미래로부터 현재라는 시간의 틈바구니로 용솟음친다. 세상 육도(六道)에서 벗어나 영원한 원적(圓寂) 속으로 돌아간다. 다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존의 시간은 비극적인 간극이며 억압이다. 그러나 연어들은 그 비극의 시간과 조건을 극복한다.4)”
뿐만 아니다. <은빛 물고기>의 다른 문장에서도 반상(斑狀) 대신 얼룩, 인륜(鱗淪) 대신 잔물결처럼 아름다운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까지 굳이 흔히 쓰지 않는 한자를 사용하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았다. 압축된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는 시(詩)와 달리 일상적인 말로 풀어 쓸 수 있는 에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화려한 포장을 한 선물 같았다.
그렇기에 옥색(玉色)바탕에 책제목, 저자이름, 부제, 그리고 출판사명만 단출하게 쓰여진 책표지가 더 돋보였다. 어쩌면 출판사 재정의 한계가 낳은 결과물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표지의 화려함이 아닌 알찬 내용으로 독자의 선택을 받겠다는 출판사의 의지가 담겨 있는 듯해서 더 마음이 갔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1) 고형렬, <은빛 물고기>, (최측의 농간, 2016), p. 72 2) 고형렬, 앞의 책, p. 29 3) 고형렬, 앞의 책, p. 27 4) 고형렬, 앞의 책, pp. 337~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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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같은 책이네요. 1999년 출간되었다가 절판 후 2016년에 복간한 책 <은빛 물고기>. 스르륵 넘겨보다가 시인이 제대로 된 자연에세이를 쓴다면 딱 이런 분위기겠다 싶었는데 역시 고형렬 저자는 시인이더라고요. 문체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조금 낯설게 읽혔지만 금세 빠져들었습니다. 소설처럼 기승전결도 확실하고 클라이맥스 부분은 오싹할 정도로 강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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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소설가가 추천한 책이기도 하네요. 그가 말하는 '비통한 아름다움'이 어떤 감각인지 <은빛 물고기>를 읽으면서 느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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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물고기>는 우리나라 첨연어의 한살이에 동행한 고형렬 시인의 사색이 담긴 자연에세이입니다. 1990년부터 10년 가까이 연어의 생사의 터전을 찾아다니며 조사, 집필했다니 엄청난 노력과 애정이 스며든 책이죠. 어머니의 고향 삼척의 오십천, 저자의 유년의 고향 양양의 남대천은 연어가 돌아오는 모천이라고 해요.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가 살다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 연어. 한때는 강 상류인 깊은 산 속에까지 올라왔었다지만, 이제는 산간마을에서는 연어의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예전에는 경남의 강 곳곳에도 볼 수 있었다는데 연어의 회귀 남방한계선은 점점 북상한 상태라고 해요. 이유는 오염과 개발이죠. 저자의 고향 양양에서도 연어 인공부화장이 모천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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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생태를 삼자의 눈으로 관찰해 풀어낸 밋밋한 글이 아니라 <은빛 물고기>에서 고형렬 시인이 사색하는 부분이 인상 깊어요. 회귀의 약속을 지키는 연어들의 일생이 신기해서 접근한 주제치고는 그 깊이가 장난 아니었어요. 고형렬 시인이 연어와의 동행에서 배우고 느낀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인간의 삶에 닿습니다.
"은빛 물고기는 머무르지 않는 바다의 나그네들이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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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가까이 연어를 쫓아다녔기에 <은빛 물고기>를 읽다 보면 연어의 생태지식도 든든하게 챙길 수 있습니다. 연어는 성냥개비만한 치어 상태에서 어른 팔뚝만한 크기의 성숙한 상태까지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더라고요. 앨러번, 프라이로 불리는 치어, 어린 연어는 파르, 젊은 연어는 스몰트,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릴스,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하는 켈트. 이 한살이가 우리나라 연어는 대략 3년 정도라고 해요. 그 과정을 하나하나 따라가고 있는데, 연어들이 겪는 고난의 행로 속에 자연의 법칙이 아닌 인간 때문에 생기는 일들은 허무함을 넘어 분노가 치솟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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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바다로 나가고 강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때를 기다리고 재는 습성이라든지, 아무도 길을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돌아갈 때를 알고 정확하게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연어 회유의 비밀은 정말 신비롭습니다.
"현대성을 가진 거의 모든 지혜들이 지름길을 찾고 생략하려 하지만 연어들에게는 지름길과 생략이 없다. 연어는 그 자체가 진리다." - p222
오호츠크 해, 베링 해로 식이회유를 하고 다시 산란회유를 하는 연어의 일생에 동행하며 여러 계절의 단상을 읊는 고형렬 시인의 묘사도 예술입니다. 따스하면서도 무료한 봄날의 기운을, 살이 에이는 듯한 북빙양을 함께 느끼며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듯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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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정해준 대법칙을 따르는 연어. 하지만 해양과 하천 오염, 낚시 등 연어의 적은 이제 너무 많아졌습니다. 살아서 돌아오는 회귀율이 대략 1.3%. 동해까지 2%였지만 정치망에 걸려 회귀율은 또 낮아집니다. 게다가 이제는 격식 있는 죽음도 없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연어 대부분은 연어다운 일생을 마감하지 못하고 채포장에서 건져 올려져 인공으로 수정되거든요.
채포장을 운 좋게 벗어난 연어의 마지막 삶을 그리는 장면은 감동의 다큐멘터리였어요. 채포장에서든 자연의 강 상류에서든 똑같이 죽음을 앞둔 상태지만, 사람의 손이 닿는 장면에서보다 자연의 법칙대로 맞이하는 죽음이 더 경외로울 수밖에요.
알을 밴 암컷 연어의 뒤를 쫓는 수컷 연어의 행동, 산란 과정에서는 그 어떤 먹이도 먹지 않고 금식하며 살생하지 않는 연어의 습성, 눈부신 은빛의 물고기가 모천으로 회귀하면서부터 흉측하게 변하는 몸... 이 모든 것들이 놀라웠어요. 아릿한 동정의 마음과 더불어 생명의 반짝임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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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약속을 지키는 연어들의 삶에서 고형렬 시인은 생명의 흐름과 활기를 담은 몸의 즐거움이라는 육락肉樂을 이야기합니다. 자신들의 근원으로 가는 탯줄의 입구인 모천으로 향하는 연어를 보며 하천의 모성에 투항하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생명은 생명에게 공양된다."(p341)며 아등바등하는 인간의 삶을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약속, 사랑, 인연이라는 회귀의 삶을 사는 은빛 물고기 연어의 한살이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 싶은 바를 슬며시 발견하게 됩니다.
작년에 읽은 책 중 개인적으로 최고의 책으로 꼽을만한 자연에세이 <메이블 이야기 / 판미동>에 이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책 <은빛 물고기 / 최측의농간>. 국내 작가 책에서 이런 문체와 감성이 담긴 자연에세이가 나올 거라고는 사실 기대 안 했던 터라 더 반가웠던 것 같아요. 최측의농간 출판사에서 복간하지 않았다면 이런 책이 있었다는 걸 까마득히 몰랐을 테죠. 복간 유행 시점이긴 한데 <은빛 물고기>처럼 덜 알려졌지만 놓치기 정말 아까운 책을 복간하는 것처럼 복간 열풍이 이렇게 쓰이면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불교 용어가 언급되는 편인데 주석이 잘 달려있어 읽는 데 무리없었고, 다만 한자어를 대신할 우리말을 충분히 더 사용했더라면 고형렬 시인 특유의 담백하고 청량한 문체가 한결 빛날 것 같단 생각은 해봅니다.
※ 오타 발견한 부분은 출판사 문의해서 확인했는데 읽는 분들 참고하시라고 덧붙여 둡니다. 16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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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니,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움직이는 연어의 모습이 머리 속에서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분명 길이가 긴 글이었는데, 그것도 연어를 오랫동안 과학적으로 탐구한 내용이 있음에도 이상하리만큼 내용보다는 연어의 이미지가 잔상으로 각인된 것이다. 아무래도 작가 고형렬은 내게 시인으로 강하게 기억되고 있었다. 에세이를 읽는데도 중간중간 시를 읽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시인의 남다른 묘사와 언어 덕분이기도 했지만 고형렬이라는 이름 석자가 주는 인상 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내수면에서부터 오오츠크해, 베링해까지 시인의 시선은 거침이 없었다. 10년이란 긴 시간을 연어를 좇아 그 생태를 탐구했던 시인은 연어를 존재하게 했던 자연과 생명의 섭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시인은 죽음을 불사하고 산란을 위해 돌아오는 연어의 생태를 줄기차게 탐구했다. 시인은 과학을 넘어 생명과 죽음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과 허무, 환희, 멸(滅)등에서까지 사유하고 있었다.
읽는동안 감정에 꽤 기복이 일었다. 혼란스럽기도 했다. 쓸쓸해졌다 허무해졌다 안도했다 그랬다. 너무나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가슴에서 머리에서 부딪쳤다. 시인이 건드리는 감정에 따라 내 감정도 춤을 추었다. 지금은 스잔하다고 할까 가슴 속에 작은 구멍이 뚫린 것 같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속이 정리가 되질 않았다. 분명 이해하고 공감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돌아보면 그게 아니었다. 분명 읽으면서 내 마음이 투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는데, 뭘 이해하고 공감했는지 알 듯 모를 듯 했다. 제대로 읽은건가? 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시인의 말대로 모든 생명은 그저 나그네라고 생각하면, 이모든 잡념들이 씻어질까. 만감이 교차하고, 의문도 들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여러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얽히코 설혔다. 아무래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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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알게 된 출판사 '최측의농간', 아주 작은 출판사이다. '최측의농간'에서는 이제까지 2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2015년 가을에 <무를 향해 기어가는 달팽이/ 박재현 ㅣ최측의농간 ㅣ 2015>, 그리고 이번에 <은빛 물고기> ![]() 요즘은 각 인터넷 서점에서 중고책을 판매하기 때문에 읽고 싶은 책들을 중고서점에서 사서 읽을 수도 있지만 출간된 지 오래된 책들, 절판된 책들은 중고서점에서도 쉽게 찾을 수는 없다. '최측의농간'에서는 읽고 싶은데, 여러 이유로 인하여 구할 수 없는 책들이지만 꼭 읽고 싶은 책들을 출판하는 출판사이다. 이 출판사에서는 이제 2 번째 책을 출간하지만 출간하고 싶은 책들의 리스트를 100 권이상 가지고 있고, 이미 저자들이 흔쾌히 복간을 동의해 준 책도 있다고 한다. 앞으로 우리들은 그동안 읽고 싶었지만 읽을 수 없었던 책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은빛 물고기>는 그동안 2번 출간이 된 책이다. 1999년 11월에 '한울'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되었고, 2003년 10월에는 '바다출판사'에서 개정판이 나왔다. 그러나 두 번의 출간에도 불구하고 모두 품절이 되거나 절판이 된 책이다. ![]() 이 책의 저자인 '고형렬'은 1979년에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인데, 장자의 시인이라고 불린다. 아직까지 시인의 시를 접한 적이 없기에 시의 경향을 알지 못했으나 <은빛 물고기>를 읽으면서 시인이 약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연어를 추적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생태를 묘사한 글에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이미 연어에 관한 이야기로는 '안도현'의 <연어>와 <연어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2권의 책이 동화이기는 하지만 연어의 모천본능의 여정을 통해서 비록 물고기임에도 인간이 본받아야 할 점들이 너무도 많음을 느꼈다. ![]() <연어>는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삶의 본질과 존재의 아픔을 느끼게 해주었고, <연어 이야기>는 돌아온 연어가 알을 깨고 나와서 힘겹게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끈,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너무도 감동적인 동화였다. 그런데 <은빛 물고기>는 400페이지 넘는 분량을 연어 이야기로 꽉 채우고 있었다. 잠깐 여기에서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살펴보면, 시인은 국내 오지 곳곳을 방황하던 중에 태백산 열차 안에서 연어가 남대천으로 돌아온다는 찢겨진 신문 한 귀퉁이의 기사를 읽은 후에 이를 계기로 오십천과 남대천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것이 약 10년이 넘는 세월을 연어의 여정을 쫒아다니면서 관찰하고, 이와 관련된 조사를 하게 되는 계기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 속초의 사진리라는 어촌 마을이었으니, 이 책의 배경인 태백산맥 줄기의 강원도, 동해바다와 일치한다. 과연 연어에 대한 추적이 얼마나 사실적이고 구체적일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면 이 책을 읽는 순간 그런 의문은 싹 가시게 된다. 마치 연어의 회귀본능을 연구한 논문과도 같은 학술적 의미까지 담고 있는 책이다. 연어가 그들이 알에서 깨어난 곳에서 어떻게 태평양까지 가는지, 어디 어디를 거쳐서 가는지, 연어에게 적합한 수온은 몇 도인지, 언제 돌아오는지, 어떻게 알을 배고 낳는지, 그리고 그 알들은 또 어떻게 자라는지..... 참으로 경이로운 기록이다. 아니 기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답고 정성스러운 문장들이 빚어져서 영롱하게 책 속에 담겨져 있다. 그가 만난 사람중에 고인봉옹은 시인이 그를 찾았을 때에 10년 전까지만 해도 신기까지 연어가 올라왔은데, 개발로 인해 하천이 오염되면서 연어을 볼 수 없다는 말을 하는데, 보로 막혀서 올라가지 못하는 연어들이 그끝에서 자신의 고향인 상류쪽을 쳐다보고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애처러운 광경이었을까. 연어는 개발로 보가 생기거나 환경오염된 곳에는 다시 가지를 않는다고 한다. 물론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가기 마련이니 그곳에서 알을 까지 않았으니, 그곳은 이제 연어의 고향은 아닌 것이다. 남대천은 은빛 물고기인 연어의 고향, 연어들의 모태가 시작된 곳, 모성이 돌아와 죽는 곳, 강돌 밑 수정란들이 잠을 자고 있었던 곳, 그들은 치어가 되어서 이곳을 떠나면 양양앞 바다, 동해, 오호츠크해, 쿠릴열도, 베링해를 건너서 북태평양으로 간다. 그리고는 열 계절이 바뀐 3년 뒤에 그들은 자신의 고향으로 다시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왜 연어는 그곳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올까?' 연어들이 회유하는 비밀을 알 수는 없지만 연어는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물론 남대천을 떠난 200마리의 연어 중에 돌아오는 연어는 3마리 정도 밖에 안 될 정도로 거센 파도와 큰 물고기들의 밥이 되는 힘겨운 여정을 견뎌냈을 경우이다. 그 보다 더 애처로운 것은 연어는 알을 한 번 낳으면 다시 알을 갖지 않는다. 안전한 곳에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은 그 위에 하얀 액을 뿌려서 수정을 해 놓고는 힘겨운 일생을 마친다. 산란 후에 연어는 암컷은 암컷대로, 수컷은 수컷대로 처참한 몰골로 변하여 물살에 떠다닌다. 너덜너덜해진 모습으로.... 그렇게 곱던 은빛은 온데 간데 없고, 은빛은 퇴색하고 꼬리는 잘려나가고... 연어 부부는 죽을 때도 동시에 같은 시간에 생명이 끊어진다. 연어알은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추위와 물살을 견디고 큰 물고기의 위협을 피해서 한 마리의 연어가 된다. 요즘은 다큐멘터리로 회귀하는 연어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그런 프로그램도 있기는 하지만, 이미 1999년에 10년의 긴 시간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이런 이야기를 완성했다고 하니 시인의 기록이 장엄하게 느껴진다. 물론, 시인의 문장은 충분히 아름답다. 그런데, 이렇게 긴 연어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는 이야기는 연어의 생태계를 이야기하면서 인생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탄생을, 추억을, 삶을, 관계를... 책 속에는 불교의 섭리도 담겨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경이로움과 함께 경건한 마음 자세가 생기기도 한다. 특히 책표지는 단초롭다. 연한 푸른빛에 책제목, 저자이름 부제, 그리고 출판사명만이 덩그마니 씌여져 있다. 그 흔한 연어 그림도 찾아 볼 수 없다. 절판된 책을 세상의 독자에게 읽히겠다는 그 마음만이 담겨 있기에 그런 책표지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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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는 머무르지 않는다 [은빛 물고기]
'주최측의 농간'에서 한 글자 빠진 '최측의 농간'이라는 출판사에서 [은빛 물고기]의 원본을 다시 되살려냈다. 1999년 한울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던 고형렬 시인의 [은빛 물고기]는 2003년 바다출판사를 거치는 동안 절판되었던 것을 2016년 2월 최측의 농간 두 번째 책으로 발간하는 것이다. '최측의 농간'이라는 출판사 이름은 약간 삐딱하게 보일 수 있지만 확고한 독립출판의 의지를 가진다. "이 책 좀 예전에 나오긴 했는데 꼭 읽어볼 만한 좋은 글들이 실려 있어요, 내가 정말 읽고 싶었고 마침내는 설레며 읽었고 결국에는 읽을 수가 없기도 했던 그런 글들이 실려 있는데, 당신들도 읽어봤으면 좋겠어요."라는...
절판되었지만 알음알음으로 소문난 좋은 책들은 고서점에서 고가를 형성하며 팔려나가기도 하고 끝내 구할 수 없어 독자의 마음을 애태우기도 한다. 눈밝은 이들 중 [은빛 물고기]를 찾아 헤매던 사람들은 이제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의 출간을 맞이하게 되리라.
[은빛 물고기]는 저자 고형렬 시인이 10년 넘는 시간 동안 연어의 일생을 추적하며 쓴 장편산문이다. 국내 오지 곳곳을 방황하던 작가가 태백선 열차 안에서 연어가 남대천에 돌아온다는 찢어진 신문 한 귀퉁이의 기사를 읽은 것을 계기로 오랜 시간의 추적을 써내려간 詩적 보고서라 할 만하다.
말이 산문이지, 글의 곳곳에 시적 향기가 짙게 배어 있고, 더 나아가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 질문하는 선문답이 주를 이루면서 경전을 읽는 선승이 된 듯 마음이 허허로워지기도 한다. 베링해라든지 오호츠크 연안 같은 넓디넓은 대양을 누비던 연어는 자신의 삶이 잉태된 곳으로 돌아가 산란한다. 그리하여 누가 보아도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강을 거슬러 오르는 '행위를 치러낸다. 저자는 어머니의 고향인 삼척의 오십천과 자신의 유년의 고향인 남대천이 연어가 돌아오는 대표적인 모천이라며, 이 두 하천을 마음에 두고 글을 써내려간다. 연어의 가계와 일생에서 한 성품을 느끼며 그들을 따라가는 긴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연어가 찾아오지 않는 산 속 마을을 찾아 한 노인의 회고를 듣는다. 물살과 싸워는 것만 같던 팔뚝만한 연어들을 작살로 찍어올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더이상 물속에 아무 것도 없어 심심한 세상이 되었다나...가을이 되어 어느 날 길을 나서다 보면 벌써 물밑에 와 있던 연어들은 그러나 알을 낳으면 죽고 만다며 노인은 연어의 생과 사를 서글퍼했다.
연어에 대한 이 시적 보고서는 연어의 생과 사를 두루 둘러보며 사이사이에 우리네 삶의 질서를 오롯이 투영해 낸다. 치어는 탄생해서 부화하고 봄이 되면 살랑거리며 대해로 나아간다. 그들의 유장한 한 삶은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새파랗다가 하얗다가 연어의 등짝 빛으로 변하는 남대천에는 처음 이 세상을 흘러내려오는 찬 산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의 작은 등엔 날개가 붙어 있는 것 같고, 그들의 턱에는 울음보가 달려 있는 것 같다. 앙칼지고 무서운 것들은 새로 태어나는 생명들에게 있다. 그들에게 정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81
치어들이 저 컴컴한 하천의 뭍을 떠나 어떻게 무리를 지어 의지하며 이 광대무변한 바다를 건너갈까? 저들은 과연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 또한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동해안의 모든 밤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봄을 치장하였다. -106
읽어내려가는 내내 문득 문득 필사하고 싶은 충동이 이는 문장들을 만나곤 멈춰서게 된다. 연어의 비늘, 코, 힘차게 퍼덕이는 꼬리는 생명력을 가득 품고 저마다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데 하늘과 바람과 물이 섞여든 그 굽이굽이의 도처에서 어쩌자고 팔다리를 갖춘 인간들의 살내음이 맡아지는 것인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에 무서움이 아닌 즐거움의 열반이 숨어 있다. 그러나 생명 자체는 그 열반을 알 리가 없다. 열반이 추억이 될 때, 사람들은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수평선 너머에서 나의 그리움은 보이지 않게 되고 나는 치마 같은 바람이 불어주는 바닷가에 앉아 인연을 회상한다. '은빛 물고기는 머무르지 않는 바다의 나그네들이다.'-117
은빛 물고기들이 마침내 어른이 되어 모천으로 돌아온다. 사랑을 찾아 부부의 연을 맺고 새생명을 잉태하려 한다.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보아왔던 여느 물고기들의 산란을 전후한 장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작가의 붓끝에서 탄생한다. 새삼 숨을 참게 만드는 숭고한 아름다움이 거기 스며 있다. '영원 속의 찰나적인 몸짓의 수정'으로 수정란들은 생명을 얻고 마침내 대를 잇는다. 치어에서 '파르'를 거쳐 '켈트'에 이르기까지 연어의 한살이는 정성스럽게 빚어낸 작가의 문장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작가는 아이들에게 [은빛 물고기]를 주고 싶다고 했다. 생명의 고귀함과 자연의 위대함을 숨구멍 하나하나마다 가득 들이마시게 될 명문들이 넘쳐나는 만큼,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이 책을 꼭 남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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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고형렬 시인이 10년
넘는 시간 동안 연어의 일생을 추적하며 쓴 장편산문이다.
시와
삶의 무게로 국내 오지 곳곳을 방황하던 시인이 태백선 열차 안에서 연어가 남대천에 돌아온다는 찢어진 신문 한 귀퉁이의 기사를 읽은 계기로 그
오랜 추적의 시적(詩的)
보고서는
시작된다.
“우리의
방향은 닫힘이 아니라 열림(側)에
닿아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갈라서거나 맞서는 ‘쪽’이
아닌 상대적인 다름으로서의 집합인 ‘측’에
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외부의 냉소가 아닌 내부의 한 의지로서 미세하지만 단단한 입자가 될 수 있도록 힘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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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인 '최측의 농간'으로부터 책을 받아 읽게 되었다. 처음에 조금 고심한 까닭은 나의 독서가 다방면에 걸쳐져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나는 산문을 좋아한다. 그리고 시대는 20세기 중반까지를 좋아한다. 20세기 중반, 세계 제 2차 대전이 끝난 이후의 소설들은 사고의 궤가 다르다. 마치 무언가에 의해 파괴된 것처럼. 그래서 2차 대전이라는 사건이 서구열강 사회에 미친 영향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내 독서는 이 충격의 시기 전을 언제나 헤매이고 운문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유럽의 시를 읽을 때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시는 한시와 국어로 된 시 이외에는 감흥을 받지 못한다. 이렇게 완벽하게 하나의 틀을 이루고 있는 내 앞에 놓여진 책은 정말 많이 나를 멈추게 했다.
이 책은 한 단락에서 사고를 달리하고 다른 단락에서는 또 다른 면모를 보인다. 단락과 단락이 완벽히 절단된 듯 보이다가도 연계성을 보인다. 덕분에 나는 책을 쉬엄쉬엄 읽어내려가야 했다. 숨쉴 사이없이 속도를 내게 하는 책과 달리 이 책은 끊임없이 나는 멈추었다. 자연스럽게 책장을 덮고 내게 익숙하지 않은 문체의 글을 읽어내려가는 시간은 길었다. 호흡을 가다듬어도 책은 수이 진도 나가는 것을 허하지 않았다.
그저 글들을 따라감으로 인해 저자가 여행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따름이다. 이동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은 서두에 국한되었을 뿐이다. 얼음이 갈라지는 굉음을 묘사할 때도, 고래를 묘사할 때도 이런 저런 경로로 그곳에 다다랐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글만으로 추측할 수 있을 따름이다.
더불어 나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잘 쓰지 않는 한자와 불교의 사상들, 그리고 색에 관한 독특한 느낌이다. 불교의 사상들을 쉽사리 이해할 수는 없으나 대략적인 느낌을 따라갈 수 있다면, 색에 관한 것은 여전히 내게 생소한 것들이다. 미혼인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저자가 남자라는 것을 느끼게 할 따름이다. 생명의 원천을 두고 하는 이야기들이 난잡하지는 않으나 비유를 받아들이기에 내가 완고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연어의 귀향에 관한, 그리고 연어의 생태에 관한, 그리고 연어의 식이회유에 관한 부분들에서 낯선 감정을 느꼈다. 오로지 사고만이 연어처럼 처음으로 돌아오고 돌아올 따름이었다. 다만 연어는 일생일란이지만 나의 사고는 도돌이표처럼 맴돌았을 뿐이다.
워낙 내게 낯선 책이어서 다 읽고 난 후에도 생각을 정리하기는 어려웠다. 연어의 삶을 이토록 집요하게 따라감으로 인해 연어의 삶에서 얻어낼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자연의 섭리를 파헤친다고 완벽히 인간이 이해할 수 없음은 자명한데. 하지만 이렇게 마음이 끌리는 대로 돌아다닐 수 있음 또한 행복이라는 것을 느낀다. 연어와 함께 한 여행의 끝자락에서 인간의 삶 또한 되짚어 볼 수 있으니. 그리하여 내게 매우 낯선 책을 읽었으나 그 낯설음이 여운을 남기고 싫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