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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이런 제목을 쓸까 라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책은> 서평 당첨 도서
<저자는>
<책읽은 소감> 오래전 '애도하는 사람' 신간이 나오면서 서평이벤트, 미션이 애도하고 싶은 대상을 적으라. 왠지 애도라는 제목에서 섬뜩한 느낌이 들매 보고싶단 생각은 안들었다. 그냥 고 최진실을 애도하고 싶었다. 덜컥 당첨이 되어 억지춘향으로 읽었다. 그렇게 나오키 상을 알게 되었고 나오키 상 수상작이거나 수상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절대검증이란 생각이 굳었다. 그런 호기심 발동으로 응모해 첫 인연이 되는 예문사이자 첫 만남이 되는 저자. 평소 장편소설을 선호하는데 잘 만나진 단편이 맘에 든다. 내밀세밀한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더구나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으로 선정되었다는데 15년 만에 다시 나옴이라.
플라나리아 제목이기도 한 플라나리아가 맨 처음을 장식한다. 글은 좋은데 주인공 캐릭터가 아주 밥맛없다. 뭘 해보려는 의지도 없고 어쩌다 마음을 먹어도 그 순간뿐. 등살을 떼어다 절제한 유방을 메웠다. 여러 번의 수술을 통해 외형은 복원시켰다지만 아직 유두도 만들지 못했다. 호르몬 주사는 한 달에 한 번, 넘치던 성욕이 그래서 사라진 거라 생각된다. 잘라내도 다시 복원된다는 플라나리아. 다시 태어난다면 플라나리아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에 퍽 애잔한 마음이 들었지만 읽는 내내 재수없어 그런 생각이 든다. 주인공의 마음이 제멋대로다. 성격도 제멋대로니 행동도 제멋대로다.
자식은 모름지기 안으로 이뻐하고 겉으론 엄하라고 했던가. 외동딸인 룬 짱은 부모의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외동딸이라고 다 그렇게 키울까마는 자신이 하고싶은대로 했음이라. 먹고 싶은 걸 맘껏 먹어서 뚱보가 되고 그 일로 왕따도 당했다. 살을 빼면서 왕따도 면했고 풋풋한 여인이 되었다. 직장을 다니다 유두에서 피고름이 나오는 걸 알았지만 통증도 없고 바뻤고 무엇보다 귀챠니즘이 검진을 해얀단 마음이 안들었다. 피치 못할 일로 병원에 갔다가 증상을 얘기하면서 유방 절제 사태를 맞았다.
수술 후 정식 애인은 이별 인사 없이 떠났는데 오히려 연하인 현재 애인은 그럴 수 없이 살갑다. 어떤 누가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이렇듯 아껴주고 사랑해 주나 싶은 마음은 일순간뿐 매사 심드렁하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애인과 만나고. 우연히 들른 마트에서 병원에 입원했을때 도움을 준 미모의 여인을 대면한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아주머니나 할머니들과 어울려야하는 상황을 못견뎌하는데, 입원시처럼 곤혹스런 상황에서 또 도움을 받는다. 아울러 빈 자리에 직원으로 채용까지 해준다. 그녀의 호의라서 조금 출근하다가 그녀의 호의가 거슬려 결근을 하고 어찌보면 타인의 호의를 처음 받았는데 잘라낸다.
자신을 끔찍이도 위하는 연하의 애인.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이라는 고마운 마음이 없진 않으나 어느새 당연한 걸로 느끼고 무감한 상태가 된다. 어떤 자리에서건 분위기 깨는 그 말 '다음 생에선 플라나리아로 태어나고 싶어요', 왜 그렇지요. '유방암 환자라서 그래요'. 이 말을 지극히 혐오하는 애인이 다시는 그 말 하지 말라고 못박으니 알았다고. 애인의 모임에서 또 그 말을 뱉었고 애인의 험악한 표정을 보면서 아차 하지만 이게 파국이겠구나 짐작하는 룬 짱. 제멋대로가 진수인 이 여인을 어찌할까나. 뿌린대로 거둘뿐.
감정은 전이됨을 안다. 내 가까운 사람 기분이 엿 같으면 나도 늘어진다. 모른 체가 되지 않아 모른 체 하려면 마음이 괴롭다. 마음이 괴로운 경지를 덜고자 몸이 피곤한 경지를 만든다. 이젠 모른 체 하는 연습을 어쩌다 해보려니 뻔뻔해지는 느낌이지 말입니다. 룬 짱 캐릭터는 우울+귀챠니즘+권태로움+제멋대로= 될대로되라 식이니 이런 사람을 보고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비슷한 성격일거야. 무지 짜증나는 캐릭터였다. 변덕스런 성격을 맞춰줄 이 별로 없거든. 플라나리아가 되고 싶으면 조용히 되던지. 플라나리아가 말라서 죽는다던가.
귀하게만 자란 외둥이 룬 짱을 보는 맘은 불편하다. 넉넉치 않은 집의 외둥이라도 왕자나 공주이기 쉬운데 여유로운 가정의 외둥이라니. 룬 짱은 자신이 스스로 이뤄야할 성취동기가 없었지 싶다. 왕따 당하다 다이어트 성공한 건 참 잘한 일이나 수술 후에 경제적 궁핍이 없기에 절박함과 절실함이 없다. 부모가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삶이다 보니 책임감이나 배려심도 없다. 이런 사람이 인간 관계가 좋을 가능성은 낮다. 자신이 양보한다거나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여럿에 맞춘다는게 힘들다. 더구나 유방암 환자라는 사실을 터트려 분위기 얼음 만드는 걸 서슴지 않는다. 어쩌라고.
네이키드 능력 있던 여자가 부잣집 아들과 동료로 만났다가 결혼하고 아이는 없는 상태서 이혼한 후를 그렸다. 신분이 달라 끌렸던만치 헤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성공을 위한 진취적 기상이 넘치는 그녀가 유복하게 자란 남편 입장에서는 위축되기도, 아둥바둥되는 아내가 천박스럽기도 하다. 삶의 균열을 감지할수록 이즈미는 더욱 일에 매달렸고 그런 빈 시간에 남편은 다른 여자를 사랑했으며 울며 불며 애원하던 남편은 이혼 통보를 했다. 이혼했다고 마음이 파김치가 된 건 아닌 이즈미. 남편을 그만큼 사랑했었던가 긴가민가하다.
위자료 받은 돈으로 산 습한 집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무료한 삶이지만 편안하기도 하고, 뭐든 시작은 하지만 며칠이면 시들해진다. 만화방에서 새벽녘에 술취한 옛 직장 동료를 만나게 되고, 그 새벽을 지낸다. 남편과 헤어진 뒤로 성욕도 없었건만 벗은 몸이 맘에 드는 후배다. 고장난 에어컨과 부엌 전등, 역시 고장난 텔레비전을 고쳐주겠노라 그는 연락처를 남겼다. 심드렁한 그녀는 다른 일에 빠져서-딱히 고치지 않은 채로 지내는데 익숙한 탓-연락도 안하는새 그가 찾아온다. 반기는 그녀를 보며 안심한 그는 모든 걸 고쳐주고 둘은 친해진다.
이즈미가 영양실조로 아펐던 상태에서 남자가 발견해 남자네 집에서 한동안 지낸다. 남자가 해주는 온기있는 음식들은 그녀에게 행복감을 준다. 여자의 능력을 알던 사람이 스카웃 제의를 하고 남자는 여자가 예전 상태로 돌아가는 상황이 조금은 싫지만 내색할 수 없다. 여자는 그 일이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안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잔고가 줄어드니 일은 해야지 그런 마음이다. 남자는 여자네 집에 바래다주다 자신만큼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게 되면서 떠난다. 여자는 울고 싶다. 내 맘이 그렇지 않는데 왜 가는거야 라는 마음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면 표현함에 있어서도 용기를 내얄 때가 있다. 자라 온 환경 따라서 일상이 유지되는게 어느 정도는 맞다. 팍팍하게 자란 사람은 아무래도 넉넉함이 덜할 것이요, 나누는 일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여유로움으로 자란 사람은 아무래도 절약이라든지 진취적이기가 쉽지는 않을거다. 그래야할 이유가 없기에. 절약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 있으니까. 서로 달라서 끌리고 좋아하고 매력으로 보이고 그래서 좋아지지만 그게 또 헤어지려면 이유가 될 수 있음을. 자신감 없는 표현 방식은 왔던 사랑도 보낼 수 있음이라. 좋다면 좋아한다면 과감한 표현을 아끼지 말아야하리.
어딘가가 아닌 여기 구조 조정 당한 남편 때문에 어영부영 동네 할인 마트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엄마. 남편의 수입으로 알콩달콩살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 상황에서 아둥바둥 힘을 보태는 삶이 버겁다. 안온한 삶에서 사회 생활이 주는 위태함과 아들딸이 입지 않는 옷을 입어야하는 비루함. 친정아버지를 잃은 친정엄마를 문안차 찾아보는 일이 의무적이 되려는 마음, 버스비를 아끼려 자전거를 타는데 그걸 분실하고, 시아버지 요양원에도 찾아가야지...삶은 계속되고 야속한 일은 많아지고 마찬가지로 고까운 일들도 많아진다. 딸은 고교 졸업도 전에 외박이 잦고...철없는 아들을 난생 처음 쥐어박으니 속이 다 시원하다. 여태 이걸 몰랐을까...
죄인의 딜레마 부유한 부모님을 답답하게 여기면서도 자립하지 못하는 대학원생 커플 얘기. 7년 가까이 사귄 남자는 결혼 얘기를 꺼낸다. 직장 있는 그녀는 대학원생인 남친과는 섹스 리스 상태. 유부남인 직장 상사와 일로 얽혔다가 몇 번 모텔을 갔다. 소개팅을 나갔다 만난 남자랑도 함께 했다. 결혼을 바라고 진나온 시간들이건만 결혼이 대두되자 자신이 없다. 남친은 드디어 예비 시어머니까지 등장시키는데...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을 다른 상사는 죄인의 딜레마에 비유해 성공 딜레마 얘기를 한다. 이미 문란한 여인으로 동료들은 보고 있다.
사랑 있는 내일 이혼 뒤 삶의 방향과 의미를 잃어버려 잘 다니던 대기업에 사표를 낸 중년 남성. 선술집을 인수한 조건은 있는 그대로를 살려야한다는 것. 바라마지 않던 조건이라 선뜻 승락한다. 이래저래 삶에 지친 사람들이 편히 와 한 잔 하고 갈 수 있는 장소면 되지 싶은거다. 메뉴도 늘 다르다. 어떠한 사연으로 어려보이는 여자를 집에서 재워주게 되면서 동거에 들어간다. 그녀가 딱히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닌데 왠지 불안하다. 둘의 동거는 비밀인데 그녀가 하는 일은 손님들 손금을 봐주고 술과 안주를 얻어 먹는 일. 사람들은 울기도 하고, 반박하기도 하고, 때론 따지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잠시 자리를 비워달라는 부탁을 받기에 이르고...남자에게 손님이 찾아오는데 12살 난 딸이다. 남자는 딸의 머리를 잘라주는데...남자는 어떤 사람일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개의 사람들은 우울을 이고 산다. 불안해서, 외로워서, 허허로워서.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 인생사라서. 소시민의 삶은 거기서거기고 아둥바둥 아옹다옹 살아가지만 늘 힘겹다. 힘들어도 위로가 되는 삶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인간 관계의 애로사항은 결코 작지 않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부대끼는 동료라면 잘 지내야하는 이유가 된다. 형제자매라도 다름을 보는데 타인들이 만나 함께 지내는 공동체적 삶이 어디 쉬우랴. 공통의 목적이 있으니 서로가 배려하고 이해하며 협동해야지. 작든 크든 성취감을 가지고 임해야지. 다양한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이 책은 20대 유방암 환자, 이혼한 30대 일중독자, 마지 못해 일터로 내몰린 40대 주부, 결혼을 앞둔 20대 커플, 50대 남자가 제2의 인생과 사랑을 찾는 이야기 등 다양한 소재를 제공한다.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라 비호감이고 이질적이기도 하다. 어떠해얀다는 고정관념을 깨지만 이런 삶도 있구나 싶다. 섬세한 감정선이 잘 표현된 이런 단편은 정말 좋다. 시선이 심드렁해서 무미건조하지만 냉소적이진 않아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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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치 않은 제목인데, 많이 익숙한 느낌의 제목.. 알고 보니 15년 만에 재번역되었다고 한다. 나는 5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용의자 X의 헌신』덕분에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면 덜컥 사고 보는 시절에 만난 책이었다. 당시 썼던 리뷰를 보니 그때도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주인공도 전혀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각 다섯 편의 단편은 마치 한 편의 장편 같은 느낌을 준다. 다르면서도 왠지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이었다. 인물에 대한 감정 묘사가 뛰어나기도 했지만, 전혀 재미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웃음을 주는 작가만의 독특한 상태 설정과 문체 때문인 것
같다. 2011-03-17 내가 썼던 리뷰 중 일부
그러나 5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그녀의 다른 작품이 아니라 같은 작품을 읽게 됐다. 게다가 당시 받았던 느낌과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작가를 안다기보다는 작가가 사람을 잘 알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 대 젊은 나이에 유방암 수술을 하게 된 주인공(「플라나리아」)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첫 수술 때도, 그다음 해의 복원 수술 때도, 가족이며 남자 친구며 친구들이 모두 다 정말 잘해 주었다. 마취제가 몸에 맞지 않아 사방에 토하고 몸 여기저기에 달린 관이 너무 아파 소리 죽여 흐느끼는 나에게 다들 최선을 다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지나고 나자 나는 당혹스러웠다. 그 선량함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건 한바탕 축제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 건강해졌으니 자신이 암 환자라고 떠벌리지 말라고 남자 친구도 가족도 입을 모아 말한다.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이라면 어째서 나는 날이면 날마다 어지럼증과 울렁거림과 불면에 시달리고 있는가. 내 안에서 그건 아직 전혀 끝난 일이 아니었다. -p. 34~ 35
주인공의 안에서는 아직 전혀 끝난 일이 아닌데, 모두들 끝났다고 하니까 주인공이 '사회 부적응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주인공들은 어떠한가.「네이키드」와「사랑 있는 내일」의 주인공들은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이혼을 당한다.「어딘가가 아닌 여기」의 주인공은 그저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왔을 뿐인데 딸의 인생에서 구조 조정을 당한다.「죄수의 딜레마」의 주인공은 자신의 욕심과 이해득실을 따져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다들 정답이 없는 인생에서 나름의 정답을 찾고자 애쓰고 또 애쓰지만, 여의치 않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재밌는 것은 작가는 패배자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스미에를 통해 대안을 제시한다.「사랑 있는 내일」의 스미에는 집이 싫어 집을 나오고 돈 벌기가 싫어 돈을 벌지 않는다. 그래서 여린 여자의 몸으로 노숙도 불사한다.
"그런 것도 있지만, 이를테면 마지마 씨나 다른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런 불행한 과거 같은 건 전혀 없어. 굳이 말하자면 뇌구조가 남들과는 조금 다른가 봐." "내가?" "아니, 내가. 손금 보러 오는 사람들은 다들 불안하고 외롭고 뭔가에 굶주려 있거든. 하지만 나는 왠지 그런 감정을 잘 모르겠어. 전에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고민도 했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그리 불편한 것도 없더라고. 그래서 그냥 좋은 성격을 타고 났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p. 319
물론 누구나 이런 '좋은 성격'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작가는 잠깐이라도 불안과 외로움을 떨치고 편한 마음을 가지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남의 시선 따위는 상관하지 말고 말이다. 사회 부적응자면 어떠하리, 나만 괜찮으면 되지. 이 책 한 권으로 큰 힘을 얻을 수 없겠지만, 모두 힘을 내어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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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나리아
지금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으로 인해 경제 불황으로 내리막길이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들이 사회 뿐 아니라 문화까지 점령하여 인간실종을 맛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너무나 잘못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성장만 추구한다면 진정 사람다운 가치들은 점점 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경쟁으로 사람은 더욱 피폐화되고 인간성은 실종될 것이다.
바로 이 소설을 읽으면 더욱 피부에 와 닿을 것이다. 2001년 작품임에도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슬프기도 하다. 놀랍다고 말한 것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비꼬아 말한 것이다. 그 만큼 우리나라도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속에서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목적으로 오히려 이것을 이용, 가진자와 없는자와 철저히 나누고 가진자들이 독식하는 구조로 만들어버린 책임이 현 정부에게 있다. 문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있는 구조임에도 재벌감세는 계속되고 임금차이는 수정할 생각도 안하며, 별것도 없는 복지기준도 엄격하여 갖은 수치와 모욕을 주는 일이 허다하다.
세모녀 자살 사건을 계기로 세모녀법도 만들어졌지만 역시 우리나라답게 형식적인 면만 갖추고 다시 자본주의 중심으로 돌아간 사회구조적인 면에서 서민들의 고통이 이루말할 수가 없다.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세상을 살아갈 힘도 자신감도 그리고 이유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연과 특히 정신적인 피곤함들이 누적돼 그냥 인간으로 살아가고픈 이야기들이 읽는 이의 깊은 폐부를 찌를 것이다.
“열심히 일해! 놀지 말고 돈이나 벌어! 왜 그렇게 살아! 나라에 기대지 말고 니 힘으로 살아!” 이렇게 말하는 꼰대들과 자본주의 노예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충고 따위는 이 책을 읽을 자격도 없거니와 만약 읽는다면 그 꼰대 근성을 잠시 내려놓고 읽으라고 내가 충고해 주고 싶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런 정신으로 살아가는 노예들이 많아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게 참으로 힘든 나라이다. 플라나리아는 편형동물인데 재생능력이 뛰어나기도 하다. 그래서 플라나리아의 여주인공도 다시 태어난다면 플라나리아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며, 다른 네편의 주인공들도 그냥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매우 단순한 말이지만 이런 세상에서 산다는 게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들며 얼마나 자신이 불행한지 한탄하는 모습들이 우리네 모습을 그대로 투영되어 보여주기에 속에서 울분이 치밀어 오를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처럼 주인공들의 속마음과 함께 그지같은 자본주의 세상이 얼마나 경멸스러운지 분노가 나지 않는다면 그대는 그냥 이런 사회에 순응하며 긍정하는 자본주의 노예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세상에서 성공한들 그것이 진정한 성공인가는 소설을 읽고 주인공의 이야기들을 주의깊게 들은 후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함께 대안을 찾고 연대를 하는 희망도 책을 읽고 깨달았으면 좋겠다. 현대를 바라보는 우리네 다양한 모습들속에서 건져올린 그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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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을 뺀 나머지 책들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수상작들을 많이 믿고 의지하게 된다. 주로 믿고 보는 건 서점 대상과 나오키상 수상작. 특히 예문에서 지금 연속으로 나오고 있는 나오키상 수상작 시리즈는 전에 보지 못했던 작품이나나 놓치고 지나간 작품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더욱 좋다. 이번 플라나리아도 알지 못하고 지나갔었던 작품중에 하나였다. 나오키상 수상작 치고는 두껍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가 죽 이어지는 것이라 아니라? 저마다의 느낌도, 재미도, 그리고 또한 이야기와 주인공도 다른 단편들이 들어있다. 하나의 에피가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첫번째 이야기가 끝난 이후에 약간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여기서 이렇게 끝이 나는 거야? 하면서 말이다. 두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다른 책에서처럼 연결성을 찾고 있었다. 첫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 두번째 이야기의 주인공과 만나지 않을까. 아니면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가 같지나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연결점을 찾거나 동일성을 찾거나 하는 건 아무래도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형태의 장르소설을 너무 많이 보아서 그런 형태에 고정되어 버린 관념 때문일수도 있겠다. 기대해서 찾았던 것과는 달리 그 연결점은 어디에서도 없었다. 전혀 다른 별개의 이야기. 그런 결과를 이해한 이후 세번째 이야기부터는 오롯이 그 이야기 하나에만 몰두해서 읽을수가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은 '플라나리아'이지만 작가는 마지막 이야기를 더 강조해서 쓴듯이 돋보인다. 심사위원들이 한 말도 그러하다. '사랑있는 내일'이라는 제목이 붙은 마지막 이야기는 심사위원 뿐 아니라 독자들의 찬사도 많이 받은 작품이라고 역자후기에도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약간은 그 작품에 더 많이 신경을 쓰면서 읽었는데 아무래도 약간 길이가 있는 만큼 더욱 탄탄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짧게 끝이 나거나, 오픈된 형식의 결말로 끝이 나버리거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야기가 끝이 나버릴때 약간은 당황하게 된다. 내가 기대한 것은 이게 아닌데 하면서 말이다. 첫 이야기 플라나리아를 읽었을 때 그랬다. 자신이 암에 걸린것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나는 암환자니까'를 내세우는 그녀. 물론 암환자이기도 하고 수술도 하고 그로 인해서 지금은 일을 하지 않는 그녀이기는 하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바는 아니고 자신이 환자인 것을 숨겨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슨 방패마냥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또는 적절치 못한 장소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어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가령 남자친구의 친구들의 모임 같은 곳 말이다. 그렇게 남자친구가 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외쳐대는 그녀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플라나리아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그녀. 아픔에 지쳤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윈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총 다섯편의 이야기들이 공통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암환자여서, 사회부적응자여서, 남편과의 이혼으로 일을 잃어서, 저마다 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결국은 하나같이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을 한다. 특히 공감을 한 것은 세번째 이야기였다. 박사과정의 남자친구가 있는 그녀. 회사에서 일을 하는 그녀는 어느날 남자친구로부터 그녀가 하고 싶다는 나이가 되었으니 결혼을 하자는 이야기를 듣는다. 참 맥빠지는 프로포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프로포즈보다도 그녀는 다른 부분에서 망설이게 된다. 분명 남차자친구를 만나면 편안하고 좋은데 결혼까지는 생각지 않았던 그녀다.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돈 때문인 것일가. 그녀가 외쳤던 말이 너무나도 공감이 된다. "어떻게 결혼을 하겠다는 거야. 넌 땡전 한 푼 못 벌면서!"(235p) 연애는 땡전 한 푼 못 벌어도 할 수 있지만 결혼은 어려운 법이다. 물론 그의 부모가 부자집이고 돈이 많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도 어려운 법이다. 연애는 환상이지만 결혼은 현실이다. 그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나 또한 시행착오는 겪지 않았을텐데 소설 속에서의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 내고는 공감을 한다. 연결이 되지 않은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의 군상들로 인해서 더욱 읽는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한 사람이 이끌고 가는 이야기보다도 더 많은 주인공들이 등장을 한다. 그리고 각각의 위치도 저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인해서 읽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모습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 자신의 모습을, 또는 친구의 모습을 찾게 되고 그 이야기에 공감을 하게 된다. 자신이 처한 처지에 맞춰서 다시 보게끔 되어지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재미를 확실하게 주는 나오키 수상작. 이번에도 역시?기대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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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으로 돌아가는 것에 큰 감명을 느끼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대학에 다녀서 무엇을 손에 넣을 수 있는지 의문이었고,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에 돌아간 대학은 내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장소를 옮긴 곳에 지어진 새 건물은 화려했고, 캠퍼스에는 재잘재잘거리는 학생들로 넘쳤다. 하지만 나는 그곳의 소리에 섞일 수가 없었다. 그저 그곳에 속한 대학생이면서도 혼자 떨어져 있는 한 명의 외부인이었다. 나는 시끌벅적한 소음 한가운데에 있는 공백 같은 존재였다. 나에게는 재잘거리는 학생들의 소리는 소음에 불과했으며,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하는 소리였다. 오가며 듣는 소음은 '지금 그렇게 떠들 정도로 뭔가 막 신이 나? 재밌어? 도대체 뭐가 그런데?'이라며 팔을 붙잡고 따져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기도 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를 사귀고, 함께 밥을 먹고, 연애를 하고, 진로를 고민하고… 그런 과정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 허무와 고독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사람과 어울리게 되면, 항상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내 처지가 빌어먹을 정도로 좋지 않다는 것,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대한다는 것, 어쩌면 서로가 필요 때문에 적절히 상대를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생각이 삐딱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대학으로 돌아간 내가 느낀 감정은 이게 전부다. 소설 <플라나리아>의 주인공들은 모두 내면에서 자신과 마주하며 타인을 바라보는 이야기다. 주인공들은 모두 여성이었고, 그녀들의 허무와 고독으로 가득 찬 심리를 그린 이야기는 금세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여성이었다면, 이 책을 좀 다르게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성이었어도 나는 묘하게 이야기가 끌렸고,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지금 내가 앉아있는 공백 속에서 처절하게 몸 부치리는 듯한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류라고 말할 수 있는 통념에 대해 저항하는. 나는 친구가 애초에 별로 없었다. 휴대폰에 등록된 30개 미만의 전화번호 중에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다섯 사람이다. 그 이외에는 가족, 은행, 일로 알게 된 사람, 병원, 음식점 전화번호가 전부다. 괜히 필요 없이 사람들 사이에 껴서 소음공해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 나는 소외자다. 어디에 가더라도 항상 혼자서 고립되고, 항상 혼자서 모든 것을 하려고 한다. 대학은 그래서 싫다. 싫든, 좋든 사람 사이에 앉아서 때때로 그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시선에는 비웃음과 호기심과 허무가 섞여 있다.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냐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이동 시간이 긴 학교라서 하루라도 덜 가기 위해서, 그리고 공백이 생겨 그곳에서 괴로워하지 않을 정도로 일부러 시간표를 빈틈없이 채웠다. 공부하는 것에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공부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니라 단지 그 장소에서 최대한 노출되는 일이 없고 싶었다. 우연한 인연이 만남이 되고, 배움이 커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특별함을 추구하는 장소에서 나는 비켜 나가고 싶다. 애초에 나는 반 히키키모리로 살았고, 굳이 그렇게 소음의 하나가 되어 떠들고 싶지 않다. <플라나리아> 주인공들은 딱 내가 걸어오는, 하지만 찾지 못한 삶을 사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삶, 사회생활에서 약간 벗어난 주인공들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최선을 다해 내가 서 있는 장소의 소음에 섞이려고 하는 우리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마음에는 허무만이 가득한데, 겉으로 웃으며 떠들어봤자 공허해질 뿐이다. 삶은 그렇게 허무와 고독, 그리고 어쩌면 답을 찾고자 하면서도 찾지 않는 애절함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글을 쓰고, 다시 쓰는 이유에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한창 재잘재잘 떠드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막 신이 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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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회 나오키상 수상작이자 야마모토 후미오의 대표작인 <플라나리아>가 15년 만에 재번역 되어 출간되었다. 총 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책인데, 각 단편이 다 재미있다. 현대사회의 ‘무직’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각 등장인물들의 불안한 심리와 현실적인 모습을 잘 묘사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주제 자체가 재미있다고 할 수 없고, 읽다보면 현실에 화도 나고 그렇지만, 문장 자체가 매끄럽고 현실성 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15년 만에 재번역된 것인데도 요즘에도 있을 법한 아니, 딱 요즘 모습인 것 같다. 신기하다.
다섯 편의 단편 중 먼저 첫 번째, 하루카의 이야기. 아무 생각 않고 살 수 있으니까 다음 생에는 플라나리아로 태어나고 싶다는 그녀. 가끔 나도 무기력해지면서 저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서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해졌고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스물다섯 살의 하루카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아직 사회에 복귀하진 않았고, 한 달에 한번 큰 종합병원에 가는 게 정해진 일과이다. 그 외의 시간은 남자친구 효스케를 만나는 정도. 아직 자신은 괜찮지 않은데, 그때 당시 위로하고 도와주던 주변 사람들은 수술도 잘 됐고, 다 끝난 일이라며 이제는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라고 압박한다. 누구에게든 나는 유방암 환자다, 라고 거리낌 없이 말해 상황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주변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하루카는 점점 사회부적응자가 되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을 스스로 받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알고 지내던 한 여자(나가세)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지만 역시 삐걱거리고 뭔가가 잘 되지 않는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이즈미는 남편과 함께 사업을 운영하는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이었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려 했고 그 문제로 남편과 의견 충돌이 있었다. 결국,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면서 위자료를 받고 이혼했다. 일할 의욕이 없어 하루하루를 뜨개질 인형을 만들거나 만화책을 읽거나 하면서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만화카페에서 결혼 전 다니던 회사의 부하 직원이었던 치비켄을 만난다.
하루카와 이즈미 등등 책 속의 등장인물 모두 다 주변에 있을 법한 사실적인 느낌이 들어서 더 감정이입이 됐다. 그 상황을 생각해보며 작가가 심리 묘사한 부분을 읽으니 나라도 그런 생각이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수로 사는 게 뭐가 어떠냐는 그 외침이 나도 너무 공감이 된다고 해야 하나.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건데, 무작정 직업이 없으면 한심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있으니까. 이들의 숨 막히고 무기력한 일상이 나는 이해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플라나리아>와 <사랑 있는 내일>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네이키드>도 괜찮았고. <네이키드>의 경우는 그냥 뭔가 마무리 짓지 않은, 일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은 마무리가 나쁘지 않았다. 뒷이야기도 물론 궁금하지만, 왠지 이렇게 끝내도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라 끝부분을 읽고 책장을 한참 쓰다듬었던 기억이 난다.
<플라나리아>도 그렇다. 어떻게 보면 너무 제멋대로이고 매사 삐딱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스물다섯 살이란 어린 나이에 유방암에 걸려 절제 수술을 하고 무기력한 상황에서 나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힘든데, 주변에서는 다 끝난 일이라고 하니 얼마나 열 받겠는가, 생각하면 하루카의 입장도 이해가 가고, 어느 자리에서나 플라나리아로 태어나고 싶다, 왜냐, 내가 유방암 환자니까, 라고 이야기하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하루카가 맘에 안 드는 주변인들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결국, 그렇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약속하고 참석했던 모임에서 그 말을 내던지고 나가는 하루카. 근데 또 그게 나는 이해가 간다고 해야 하나. 그 자리에서 그 말을 꼭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상황이 이해가 됐다. 나가세의 친절과 배려가 아니꼽게 느껴지고, 결근을 했다가 하필 한창 그 모임에 참가하고 있을 때 나가세의 전화를 받고 더 기분이 상했다. 거기다 겨우겨우 돌아간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하루카에게 묻는다. 하루카 씨는 왜 백수로 지내요? 취직 안 해요? 그래서 하루카는 결국 내뱉는다. 응, 내가 유방암 환자라서. 내가 하루카였어도 저런 말 내뱉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꼬인 걸까ㅋㅋ 작가의 심리묘사 덕분일까. 어쨌든 진짜 재밌게 읽은 책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다. 검색 들어갑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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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나리아 야마모토 후미오 작가가 쓴 플라나리아의 첫번째 단편 플라나리아는 기의 부품처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직장인의 이야기다. 한 사회에서 일해야 할 세대가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처우를 받을까? 청년 실업이니 청년백수니 하는 말은 새삼스러운 말이 아니다. 이러한 용어가 보여주듯 청년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남들처럼 출근하고 저녁 늦게 까지 혹은 때때로 야근과 회식으로 새벽까지 일하며 삶의 모든것의 초점이 직장에 맞춰져 있다. 만일 직장을 다니지 않는 친구가 있다면 안부인사는 언제쯤 취업을 할지 물어보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이를 하지 않는 것은 죄악시 되고 있는 것이다. 백수가 된 친구는 친구를 만나는 것을 피하고 스스로도 사회에서 점점 고립되어 간다. 교제하고 있는 사람도, 개인적인 관리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되는데로 살게 된다. 플라나리아는 유방암이 걸렸던 여자가 유방암을 치료하며 유기적으로 돌아가던 사회의 시스템에서 튕겨져 나오게 된다.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고 교제하던 사람과의 갈등도 생긴다. 암을 알았던 여자는 후유증인지 알 수 없는 이유에 고통을 받지만 그 이유가 암때문인지 아니면 이제는 적응하기 힘들어진 사회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두번째 단편 네이키드는 첫번째 주인공과 흡사하다. 직장생활을 했지만 혼을 하며 백수가 되었다. 일신의 능력은 있지만 취업을 할까말까 고민중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자식도 없고 어느순간 직장생활에서 튕겨져 나오며 모든것에 대한 의욕이 없어저 버린것이다. 시간때우기용 취미를 만들어보지만 금세 실증내곤 한다. 첫번째 플라나리아 주인공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실증내고 친구들에게 본인은 유방암환자였음을 이야기하며 백수임을 합리화 했다면 두번째 소설의 주인공은 남편에 의해 백수가 되었지만 누구에 대한 원망도 없이 흘러가는데로 살고 있다. 각 단편마다 던저주는 작은 결과가 있다. 플라나리아에서는 암 뒤에 숨는 주인공의 약함이, 두번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친구의 소중함이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현재 사회에 살아가고있는 흔히 말하는 일하는 세대의 고충을 그린것이다. 직업을 갖지 못하거나 백수인 사람에게 우리는 어떠한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가. 그들도 그들만의 살의 치열함이 있고 언제든 우리는 백수의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백수가 된 사람들이 특출나게 남과 다르기에 백수가 된것이 아닌것이다. 그냥 시계추속의 부품처럼 왜 빽빽하게 돌아가는것만을 인생으로 생각하는가에 대한 생각할거리가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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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무직'을 경쾌하게 그려냈다는 콘텐츠를 보고 읽고 싶었던 작품이다. 장편소설인 줄 알고 집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단편소설집이었다. 작가의 필력이 뛰어나서 그런가 기대했던대로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네이키드"와 "사랑 있는 내일"은 단편소설이라는 게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어서 주인공의 일상을 좀 더 엿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현대 젊은이들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니트족 이야기 등 무직이 주제라 당연히 최근에 쓰여진 책인 줄 알았는데 2001년에 이 책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쓰여진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 플라나리아 학생 시절 과학시간 이후로 처음 들어보는 단어이다. 스물다섯 살에 유방암 수술을 받고 무기력증에 빠져 플라나리아로 환생하고 싶어하는 하루카. 자신을 사회부적응자라 칭하고 모든 일에 무기력하고 직설적이고 솔직한 그녀의 성격이 조금은 나를 닮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은 단편. - 네이키드 능력있는 커리어우먼이었던 이즈미는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고 의욕 제로의 의미없는 하루하루르 보낸다. 그러던 중 과거 회사의 부하 직원이었던 겐타(치비켄)를 만난다. 이즈미가 잠시 잠깐 관심을 가지는 테디베어와 손뜨개 인형 그리고 홈페이지 제작까지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라 흠칫 놀랐다. 그보다 이즈미와 치비켄의 캐미가 너무 좋아서 읽는 내내 흐믓했는데 그런 끝맺음이라니... 열린 결말로 끝을 내서 나 좋은대로 이즈미가 고민하던 모든 일들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길 바라는 마음뿐이지만...계속 신경이 쓰이는 단편. 내가 딛고 서 있던 그야말로 단단하다고 굳게 믿어 온 대지가 그토록 간단히 무너질 살엄음판이었다는 건 알지 못했다. 얼음이 깨지면서 빠져든 물 밑바닥에서 이제 나는 꼼짝없이 얼어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거기에는 '한가한 시간'이라는 ㅇ이름의 뜨뜻미지근한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속에 누워 있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편안했다. 게다가 나는 그곳을 박차로 위로 떠오를 만한 어떤 동기나 목적을 찾을 수 없었다. _p83 네이키드 중에서 - 어딘가가 아닌 여기 구조조정 당한 남편으로 인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전업주부 마호. 엄마들의 고뇌를 보여주는 작품인 듯하다. 아들, 딸이 엄마를 무시하는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나도 가끔은 부모님께 저렇게 철없이 대들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 죄수의 딜레마 부모님으로부터 자립하지 못하는 성공 공포증 직장여성과 대학원생 커플 이야기. 이건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공감과 함께 뜨끔하는 마음이 드는 반면, 미토의 성생활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작품이었다. 양자가 상대의 전략을 지나치게 염려한 나머지 함께 손해를 보는 경우를 '죄수의 딜레마'라고 부른다. _p212 죄수의 딜레마 중에서 전혀 관계가 없지만 '죄수의 딜레마'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떠올라서 혼자 즐거워했다; - 사랑 있는 내일 주인공은 대기업을 그만두고 선술집을 운영하는 마지마와 기생충 같은 여성 스미에의 사랑 이야기. 다섯 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아, 심사 위원과 많은 독자로부터 찬사를 받은 작품이란다. 그래서 그런가 나도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아무 생각없는 것 같이 쾌활한 성격의 스미에를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보다는 나까지 밝아지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내 인생이 이럴 리 없다고 머릿속 깊은 곳에 씁쓸한 감각이 엷게 들러붙었지만, 거기엔 충족감과 체념 비슷한 감각이 두툼하고 달콤하게 얹혀 있다. _p258 사랑하는 내일 중에서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 작품의 재미와 시사성이 젼혀 시들지 않고 바로 지금 우리가 떠안은 문제들을 정확히 짚어 주고 있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일하지 않아도, 직어비 없어도, 대열에서 떨어져 나와도 거기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큰 위안이 되는 메시지가 아닐까. _p335 옮긴이의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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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처음 일본소설을 접했을 때 성적으로나 개인적 취향등에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접했던 작품들과는 다른 관점들을 접해서 새롭고 낯선 느낌도 있었고 동시에 호기심이 많이 생겼었다. 단지 표면적으로 드러난 그런 느낌뿐만 아니라 단편집들을 읽고 난 후 묘하게 주인공들의 심리에 빠지게 되거나 관련한 생각등이 더 많아져서 내가 몰랐던 감정들을 느끼게 되고 더 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한동안 그러한 일본소설들을 많이 봤던 시기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처음 느꼈던 그러한 느낌을 갖게 하는 소설을 한편 접할 수 있었다. 15년만에 재번역 되어 나온 책이라는 점에 그리고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했다는 점에 더 기대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플라나리아.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딘가 들어본듯한 느낌이 드는 생명체를 왜 제목으로 두었을까? 궁금했다. 책속에는 총 5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5명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들을 모두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주제는 '무직'이었다. 당연히 일을 해야하고 돈을 벌어야 생활이 된다는 현실을 알고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주인공들의 각각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감되기도 하고 서글퍼지는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각 인물들이 처한 상황등이 다르고 그들의 캐릭터가 달라서 생기는 선택과 결과등을 바라보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이들의 삶을 보는 듯한 새로움과 동시에 다름에서 오는 또 다른 이해를 불러일으켰다.
25나이에 유방암으로 절제 수술을 한 하루카, 36세 뜨개질을 하며 무직으로 살아가는 이혼경험이 있는 이즈미, 구조조정으로 이직을 한 남편과 아이들을 키우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40대주부 마호등..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내면적인 고민과 갈등 뿐 아니라 그들 주위의 가족이나 친구, 남자들과의 관계까지도 다루고 있어 흥미롭게 읽으며 더 몰입할 수 있었다. 현실인듯 현실아닌 듯 공감될만한 내용들이 많았고 개연성이 높아서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무직상태의 경험과 그들이 겪었던 갈등과 비슷한 것들도 겪었기에 과거를 떠올리기도 하고 현재 나의 상태, 앞으로에 대한 생각등을 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