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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의 정수를 따라가는 발걸음 _ 리베카 솔닛 에세이 『멀고도 가까운』 (반비, 2016, 김현우 옮김)을 읽고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이다. “예술 평론과 문화비평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로 주목받는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1980년대부터 환경 · 반핵 · 인권운동에 열렬히 동참한 활동가”로 소개된다. 방대한 내용을 축약하기 어려워 옮긴이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본다.
“평생 딸을 못마땅해하고, 시기하고, 불평하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후, 어머니의 집에 있던 살구나무의 살구를 모두 따서 자신의 집 안에 들여놓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가는 숙제처럼 떨어진 살구 앞에서 어머니의 삶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들을 수 없다면 스스로 찾아보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많은 이야기들을 거친다. 눈의 여왕이 등장하고 프랑켄슈타인이 등장하고, 체 게바라의 혁명이 등장하고, 아이슬란드의 늑대 이야기가 등장하고, 남편과 아이의 사체를 뜯어먹을 수밖에 없었던 에스키모 여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이야기들을 거치며 작가는 어머니와 화해한다. 그건 어머니와의 화해이면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는 자신과의 화해이기도 했다.”
차례는 살구, 거울, 얼음, 비행, 숨, 감다, 매듭, 풀다, 숨, 비행, 얼음, 거울, 살구. 살구에서 시작해 다시 살구로 돌아온다. 집에서 아이슬란드까지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오는 삶의 여정과 닮았다. 제목인 “멀고도 가까운”도 마치 어머니와의 관계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가까이 있다는 뜻으로 생각되었다. 그 말은 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뉴욕에서 몇 년을 지낸 후 뉴멕시코의 시골로 이사했을 때,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에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라고 적었다고 소개하면서 그건 물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를 함께 가늠하는 방법이었다고 말한다.
글쓰기를 공부하는 사람이면 명문장과 함께 가끔, 반드시, 듣게 되는 리베카 솔닛. 그의 에세이집을 설레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와 맏딸인 리베카 솔닛. 살아오면서 사랑받지 못했고, 단호한 훈육만 기억나는 관계. 아들이 우선이었고, 권위적인 부모님. 딸의 성별과 외모까지 질투의 대상으로 삼았던 어머니였다. 병이 심해졌을 때, “그 나약함의 날 것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에” 어머니와 가까워 진 것 같다고 고백한다. 거의 모든 장에서 잠언처럼 외워두면 좋을 문장들이 등장하고 있어 할 수만 있다면 책을 통째로 외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1장 「살구」에서 “나는 어머니가 뜯어지는 책 같다고 생각했다. 책장이 날아가고, 문단이 뭉개지고, 단어가 흘러내려 흩어지고, 종이는 순수한 흰색으로 되돌아간다. 가까운 기억이 먼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은 더해지지는 않는, 뒤에서부터 지워지는 책. 어머니의 말에서 단어가 사라지기 시작하며, 텅 빈 자리만 남았다.”고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책에 비유해 표현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는 물론, 어머니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안타까워하는지를 알 수 있는 문장이었다.
2장 「거울」에서 “나의 어머니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시기에 그 모든 일을 했음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나를 먹여 주었고, 씻겨 주었고, 입혀 주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말하는 법을 배우고, 그 밖에 수천 가지 도움을 받았다. 매시간, 매일, 매년 그런 일이 반복됐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내게 주었던 것이다. 내가 어머니를 돌본 이유는 그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시간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적었고, 끝까지 병든 어머니를 존중하고 보호했으며 의무를 다하고 끝내는 화해를 했기 때문에 안심하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내가 느끼는 부모님에 대한 서운한 감정들을 감사의 마음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3장 「얼음」에서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소개하면서 “어떤 사람이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내적 평안과 가정에 대한 애정을 방해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으며, 비슷한 주장이 책의 다른 곳에서도 자주 발견된다.”고 했다. 가정의 소중함을 밝히고 있는 이 문장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너무나 공감이 많이 갔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셜리는 이 소설을 열여덟 살에서 스무 살에 완결했다고 한다. 부모들이 작가였으며 불행했던(이혼, 유산 등) 결혼 생활과 자신의 불행한 삶(자신을 낳다가 어머니 사망, 자신의 아이들 사망 등)이 바탕이 소설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도 가련하면서도 이해가 되었다.
4장 「비행」에서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고 적었다. 이 문장은 글쓰기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잠언처럼 따라다니는 문장이다.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이야기글 글이라는 형식을 통해 모두에게 알리는 행위이다.
6장 「감다」에서 “감정이입은 다른 이의 고통을 감지하고 그것을 본인이 겪었던 고통과 비교해 해석함으로써 조금이나마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당신 스스로에게 해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적었다. 6장에서는 체 게바라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의사였던 그가 동료와 함께 오토바이 여행을 하면서 오지의 나병 환자들을 스스럼없이 대하고 치료하는 과정의 감정이입에 대한 설명이다. 또한, 고통에 대한 사유들도 많이 등장한다. 오토바이 여행을 통해 특별한 종류의 고통에 눈을 뜨게 되었고 확고한 목표 의식이 생겨서 혁명가가 되었다는 체 게바라, 나는 젊은 시절에 그의 평전을 읽으며 혁명에 대해 생각했고 그에 매료되었었다.
7장 「매듭」에서 “이야기꾼은 또한 실을 잣는 이, 혹은 천을 만드는 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굽이굽이 흐르며 우리들 각각을 서로에게 이어 주고, 목적과 의미,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어떤 길처럼 보이는 그곳으로 이어 준다.” 글을 쓰는 사람이거나 글쓰기를 배우는 이들에게 이정표 같은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이어 주고, 가야만 하는 길로 이어 준다는 말이 그런 생각을 끌어 왔다. 7장은 그가 암수술 받는 이야기와 암으로 죽어가는 지인의 이야기도 적혀 있어 아프게 읽었던 장이었다. “크게 아프거나 다치고 나면 어떤 단절이 생기고, 덕분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고, 다시 시작하고 다시 살피는 계기가 된다. 그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제한적이며 그것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사건이다.”고 수술 후의 소회와 사유를 적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몸이 아픈 상태에는 왠지 모를 평온함도 있어서, 무언가를 해보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적고 있다. 일 중독이라는 핀잔을 늘 듣는 내게도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좋을 시간이란 매혹적이었다. 8장 「풀다」에서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도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것들과 만나는 일도 괴로움이다. 좋아하는 것과 떨어져 있는 일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다섯 가지 집착이 모두 괴로움이다.”고 인용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자신의 괴로움을 다스리기 위해 불교에 입문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불교의 가르침은 고통의 외적 원인을 근절하기보다 타인을 돌보고 만물에 공감할 것을 강조한다.”고 정리해주고 있다.
10장 「비행」에서는 새들이 땅에 거의 내려오지 않고 하늘에서만 사는 새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검은등제비갈매기 역시, 땅에 한 번도 내려오지 않은 채 적도 부근의 바다 위를 몇 년 동안이나 날아다니기도 한다고 해서 너무나 놀랍고 신기했다. 대부분 밝은 부분에서만 살아간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아이슬란드에서 생활할 때, 국립미술관의 전시실에 설치된 예술가 엘린의 작품 ‘진로(Path)’는 관람객이 체험할 수 있는 미로였는데 리베카 솔닛은 일곱 차례나 찾아가 어둠의 미로 속에서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아이슬란드는 6월 중순쯤에 하루 세 시간만 밤이라서 어둠이 그리웠다고 한다. 미로 안은 어두웠으며 희미하고 낮은 베이스 소리가 심장 박동처럼 계속 울려서 편안함을 준다고 한다.
“창조는 언제나 어둠 속에서 일어난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을 때만 일어난다. 창조는 그렇게 어둠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빛 속에만 머물지 않음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 빛이 비치면 생각의 구체적인 생김새나 그림자가 드러나고 다른 이들도 알아보겠지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곳은 그 빛 속이 아니다.”
“그것은 분리된 시간, 상징적인 시간이었고, 미지의 것, 알아낼 길 없는 것의 한가운데로 가는 여정이었다. 의미심장한 여정이자 위험과 의심, 어둠에 나를 던져 넣는 여정이었다.” 그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독립된 주체로서의 자신이고자 했으며, 어떤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간 진면목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되었다. 시위 현장에 과감히 뛰어들어 변화를 촉구하는 연대를 강조하고 실천하는 활동가의 모습과 겹쳐졌다.
리베카 솔닛은 책이나 역사, 지식이나 확장된 사유를 말할 때는 단호하고 분명한 어조였다가 자기의 일상으로 돌아올 때는 시처럼 아름답고 서정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나는, 한 문장, 한 단어의 뜻이라도 놓칠 수 없어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집중하여 읽어야 했다. 하지만, 그 집중의 시간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불소행찬」속의 부처님 이야기, 수없이 많이 등장하는 책과 작가와 작품 이야기, 동화, 영화, 북극곰, 극지방, 아이슬란드 이야기 등을 통해 펼쳐지고 펼쳐지는 사유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들, 작가 자신의 암 수술,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책을 손에서 놓아야 하는 순간들이 싫었다.
책 한 권을 통해 여러 편의 책을 알게 되었고 이미 읽은 책을 되새김하기도 했다. 중요하고 기억해야 할 내용들이 너무 많아 인용부분이 많았다. 꼭 다시 읽기를 해야 할 책이다. 열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 380쪽의 책을 다 읽었지만, 책이 끝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나는 책을 덮자마자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은 유혹을 견뎌야 했다. 또 다른 책들이 줄지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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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이 작가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그렇지만 이 작가의 책을 읽어본 것도 아니다.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블러그 이웃님들 방을 오며가며 읽었던 리뷰에서 봤나보다. 그렇다고 기억에 오래 남는 이름은 아닌데...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끌림 같은거다. 제목과 책 표지의 분위기가 구매를 부추길 때 있다. 베셀보다 좀 낯선 책을 고르는 편이다. 책 목차와 약간의 줄거리도 참고한다. 인문이나 미술쪽에 자꾸 시선이 간다. 낯선 것이나 추억할 수 있는 이야기들에 관심이 간다. 골목길이나 걷는 것에 관한 책들을 좋아한다. 책 속에 소개된 책들에 호기심이 간다. 액자 소설처럼. 참고도서에서‘리베카 솔닛’의 책들이 종종 보였나보다. 걷기에 관한 깊은 사유가 담긴 책과 찾다보니 또 발견된 리베카 솔닛의 책 <멀고도 가까운>이다. 마음먹지도 않았는데 리베카 솔닛의 책 2권을 맛보게 된다. 아직 읽기 진도가 빠르지 않지만 급할 것 없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기로 했다. 많이 읽었지만 그 읽은 책들은 가물가물하다. 마음 속 뜨겁게 달구는 인두같은 한 문장이라도 기억 속에 남아있어야 하는데, 허투루 읽었나보다. 그렇다고 내 읽기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한 권의 책에 집중하지 못한 서툰 마음을 탓한다.
책 앞표지의 빨간 실타래가 눈길을 끈다. 엉켜있는 듯 보이지만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 빨간 실타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연히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 이 빨간 실타래는 삶의 의미가 된다. 리베카 솔닛의 솔직한 자전적 에세이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 엄마와 딸이라면 친구 같아서 친밀함이라면 둘째가라도 서러울 정도로 애틋한 관계인데, 리베카 솔닛과 엄마는 대척점에 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엄마가 딸의 모든 것에 대해 질투를 하고, 다른 형제들과 차별하는 가부장적인 말들도 서슴치않는다. 딸이 커서 어른이 되고, 엄마의 기력이 점점 약해져가는데도 낫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지의 극이 같으면 서로 밀어내듯이 자존심 강한 엄마와 딸은 또한 너무 닮았다. 그러나 세월에는 장사가 없는 법인지라 그 위풍당당했던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약해지는게 아니라 기억이 소멸되어져가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 하루에 몇 번이나 길을 잃고, 대화를 나누지만 딴 말만 하게 되고, 시큰둥한 반응에 쉽게 관심은 사그라들고. 회복하고 싶은 엄마와의 관계는 쉽게 틈을 내주지 않는다. 딸은 그래서 더 허망하다. 이해하지도, 이해받지도 못했는데....
엎지른 물은 담을 수 없듯이 엄마와 딸의 깨어질대로 깨어진 관계는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걸까 매일 하루하루가 답답함에 리베카 솔닛은 이야기를 한다. 읽은 책들(고대설화, 동화..)속에서, 우연히 가게 된 여행(아이슬란드)을 통해서 엄마와 꼬인 매듭을 풀려는데....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고, 어렸을 적 살던 집을 정리하고, 늘 눈으로만 봤지 먹어보지 않았던 집 앞 살구나무의 살구가 3바구니 들어왔다. 살구향 가득하니 집안에서 점점 익어가고, 물러진다. 펼쳐진 살구 더미는 못마땅하다. 불안한 상태의 그 살구 더미는 내게 떨어진 임무인 동시에, 어린 시절부터 내게는 거의 아무것도 주지 않았던 어머니가 남긴 나의 상속권, 동화 속의 유산처럼 보였다. 그건 가족 나무에서 따낸 과일 더미이자 마지막 수확이었고, 동화에 등장하는 마법의 씨앗, 알 수 없는 방의 문을 여는 열쇠, 귀신을 불러내는 주문처럼 수수께끼 같은 선물이었다. 살구를 병이나 깡통에 담거나, 퇴비로 만들거나, 얼리거나, 그냥 먹어 버리거나, 술을 담그는 일은 동화에서 요구하는 임무와 거리가 멀긴 했다. 살구는 내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 거의 모든 일이 잘못 풀려나가던 이후의 열두 달 동안 내가 그 의미를 찾아야 할 이야기였다.
엄마와의 나아지지 않는 관계는 삶을 힘들게 만든다. 정신적 피폐함은 다른 곳에 눈을 돌리게 만든다. 계획에 없는 일이나 여행은 일상의 피로감으로부터 잠시 달아날 수 있게 된다. 특히 작가는 글쓰기와 독서를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다. 함께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끈끈한 연대는 말이 필요없다. 리베카 솔닛이 경험한 많은 독서는 충분히 사려깊다. 그 깊음이 마음을 울린다. 금방 이해되지 않았지만 읽을수록 좋다. 따뜻함이 충분히 전해진다. 엄마와의 관계가 힘들수록 더 글쓰기와 읽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된다. 그 속에서 답을 찾고 싶을지도 모른다.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에 대해서......
‘가까이 있는거야’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감정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뜻을 전한다.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그건 물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를 함께 가늠하는 방법이었다. 감정은 그 자체의 거리를 가진다. 애정은 근처에 가까이 있는 것, 자아의 경계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침대 옆에 함께 누운 사람과 수천 마일 떨어져 있을 수도 있고, 세상 반대편에 있는 낯선 이들의 삶에 깊이 마음을 둘 수도 있다. 매일 보는 사람이라도 서로 소통하지 않으면 의미없는 먼 관계가 된다. 일주일에 한 번 보는 사람이라도 애정을 가지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면 더 가까이 느껴진다. 빈도가 아닌 결국은 깊이와 소통의 문제다.
<멀고도 가까운> 이런 관계들이 삶에서 얼마나 많을까? 관계에서 오는 힘겨움은 비단 작가 리베카 솔닛의 문제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엉킨 실타래가 길이 되는 것은 결국은 서로의 이야기 속에 답이 있다. 리베카 솔닛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엄마의 어두운 이야기를 묘하게 끌어안는 듯 느낌이 든다. 그녀만의 삶을 다루는 방식이란 생각이 든다. 암울한 이야기일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부모와 자식, 특히 딸 입장에서의 부모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못마땅한 살구 더미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될리는 만무한것처럼. 지금은 오렌지빛으로 물든 저녁이다. 다른 과일의 이름을 딴 '오렌지색'이 살구의 그 부드러운 색감을 묘사한다고는 할 수 없다. 살구의 빛깔은 복숭아보다 더 풍성하고, 저녁 하늘의 붉은빛, 혹은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는 아이들 빰의 빛깔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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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리베카 솔닛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인데 정말 많은걸 느꼈어요 글이 너무 좋네요. 사실 제가 하는 어떤 평가가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정말 좋은글을 추천받아서 너무 좋았어요. 우리는 모두 이미지와 이야기의 세계에 살고 잇고,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야기에 상처를 입으며 살아간다. 운이 좋으면, 우리를 받아주고 축복해 주는 다른 이야기를 찾거나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사실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하나한 꼽기엔 너무 많아요. 이 작가님의 다른글도 도전하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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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인문학>을 읽고 저자가 궁금해져서 그녀의 다른 책을 펼쳤다. 읽는 동안에도 해박함과 풍성한 이야기를 끌어와 풀어내는 그 능력에 놀라고, 번역되었음에도 탄탄하게 느껴지는 문장력에 감탄했지만, 마지막까지 힘을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구조가 들어오면서 존경스러웠다. 내가 무슨 평가를 내릴 자격은 없지만, 깃털과 얼음 결정이 함께 떠있는 것 같은 원서의 표지보다 한국어 번역본의 표지가 이 책의 느낌을 더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하얀 캔버스같기도 한 직물 위에 빨간 실이 보이고 단추인 듯 까만 동그라미. 노화로 아프신 어머니와 돌봄 노동을 하던 나의 이야기가 살구, 거울, 얼음, 비행, 숨, 감다, 매듭으로 이어지고, 풀다, 숨, 비행, 얼음, 거울, 살구로 마무리되기까지 점점 더 많은 이야기들이 얽혀든다. 각 장마다 끼어든, 인터미션같은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시는 나방'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면서 프시케에서 북구판 미녀와 야수 같은 이야기로, 그리고는 신기하게도, 남동생이 종이 박스 세 개에 담아온 살구 더미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질문을 받는다. 누가 당신의 눈물을 마시는 걸까. 누가 당신의 날개를 가지고, 누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걸까.
'그녀'의 이야기는 내게 타자의 이야기였지만, <프랑케슈타인>의 북극, <나니아 연대기>의 도서관과 마법의 문,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 한센병의 고통, 그리고 공감에 관한 이야기가 되면 어느새 경계가 희미해지고 스며들어 그녀와 함께 있게 된다.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에서 페넬로페로 이어지더니 마취과 전문의에 의해 끊어졌다가 새롭게 매듭지어진 그녀의 수술 경험, '인간보다 더 넓은 공동체에 감정이입을 했던' 예술가 이야기로, 그리고 우연한 인연으로 이어져 아이슬란드로 날아가 '아타구타룩'의 여러 버전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전하는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
(p.307)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언제나 원재료를 특정한 형태로 옯기는 일이며, 무한히 흩어져 있는 잠재적 사실에서 눈에 띄는 것을 골라내는 일이다. (... )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p.328) 마침내 전쟁은 끝났다. 어머니는 자신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던 이야기를 잊어버렸고, 그 이야기가 사라지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내가 30대일 때 어머니와의 관계는 최악이었고, (... ) 그때 관계를 끝냈다면 우리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굳어져 버렸을 것이다. 관계의 후반기에 접어든 지금,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새로운 길을 한참 달려온 지금, 어머니는 나를 보면 눈을 반짝인다. (...) 사람들이 영적인 훈련을 통해 얻으려고 애쓰는 어떤 상태, 즉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온통 현재에만 집중하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p.349) 내 앞에 놓인 두 개의 유리병은 받아 적은 이야기 같다. 두 유리병에는 그렇게 보관하지 않았다면 사라졌을 것이 담겨 있다. (...) 무언가를 적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그 이야기를 그 모습 그대로, 설탕물에 담근 살구처럼 고정시키는 일이다. (...) "무엇이든 말로 바꾸어 놓았을 때 그것은 온전한 것이 되었다"라고 버지니아 울프는 적었다. 그녀는 이어서 이렇게 적고 있다. "여기서 온전함이란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 힘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 우리는,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그 패턴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 세계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며 우리는 그 예술 작품의 일부라는 생각 말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님이 부럽다. 늘 가지고 다니면서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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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기회가 닿아 드디어 읽게 되었다. 시작에서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자신의 불행을 일기처럼 적어나가는 글인가 싶어서 조금 피곤해지려고 했는데... 그건 내가 너무 빨리 글을 판단해 버린 것이란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나가는 작가의 글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작품들에 대해 여러 생각을 정리한 글도 그 작품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프랑켄슈타인과 메리 셸리,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 체 게바라. 익숙한 콘텐츠를 다르게 더 깊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이 이 책을 읽고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 챕터 끌마다 연결되는 눈물을 먹고 사는 나방 이야기도 인상적이고. 슬픔이 누군가의 삶을 만들어 낸다고 읽어야 하는 걸까? 한 번 읽고 나니, 다시 한 번 더 읽어야겠다 싶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기대가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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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행위가 어린이 책에서는 필수 요소다. 이런 책에서는 현실의 여러 차원, 아니면 아예 다른 종류의 현실로 건너가는 마법 같은 모헙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런 횡단은 권력이나 책임감이 있는 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모험은 무엇보다도 책 읽기, 즉 상상의 세게로 들어가는 행위에 대한 비유이다. 그리고 그 다음엔 우리가 실제로 지내고 있는 세상이 이야기와 이미지로 이루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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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삶의 해석학은 내게 살구의 해석학이었고, 엄마와 딸, 가족과 친구 전반에 걸친 관계의 해석학이었다.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듯 삶과 사랑과 관계를 비롯한 모든 문제들을 이야기로 풀고 엮으며 손때묻은 한 벌의 아름다운 ‘인생옷’을 짓는 듯한 책이다. 💬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시초로 리베카 솔닛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혜학교 정경일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그가 말하는 재난 상황에서 반짝이는 인간의 이타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솔닛은 재난 속에서 그저 한 개인이 아닌 시민으로서 발견되는 희망의 단서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기묘한 기쁨‘이라 표현했다. 낯선 이와 자기 삶에 맞닿은 공동체에 대한 애착, 한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며 재난이 아니었다면 발견되지도 않았을 보람과 열정을 희망하는 메시지를 그 책을 통해 배우고 절감했다. 이번 2025 경북 북동부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대한민국의 산불 현장도 그가 목격한 허리케인 현장과 다를 것이 없었다. 💬 사회적 희망을 노래하던 그녀가, 이번에는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나 그 고백조차도 우리에겐 하나의 등대가 되어 마음 깊은 곳에 메아리친다. 그녀의 삶을 돌아보는 여정은 [살구]로 시작해 다시 [살구]로 되돌아온다. [거울]을 지나 [얼음], [비행], [숨], [감다], [매듭]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마치 반원을 그리는 전반전 같고, 이윽고 [풀다], [숨], [비행], [얼음], [거울], [살구]로 되돌아오는 여운 깊은 회귀로 마무리된다. 그 순환은 한 사람의 삶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 처음 마주하는 구성임에도 낯설다기 보다는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살구 이야기로 시작해 다시 살구로 마무리되는 순환과 회귀의 여정은 원처럼 단단하고 아름다웠다. 이해하고 화해하기 위해 중심이 되는 매듭을 향해 조심스레 이야기를 감고 또 풀어내는 리본 같은 하나 하나의 이야기들은 더욱 깊은 여운과 깨달음을 주었다. 🛖 ❝당신을 계속 지탱해 줄 장소는 어디인가?❞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곳,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장소는 어디일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삶의 한가운데 커다란 이정표를 세운다. 단 20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무모한 래프팅 일정에,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기로 결심한 그날, 그녀는 마침내 자신 속 깊은 어딘가에서 껍질을 깨고 나왔다. “네, 갈게요.” 그렇게 말한 스스로도, 듣는 이도 놀랄 만큼 뜻밖이었지만, 그 한마디는 그녀의 삶에 모험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불러왔다. 엄마의 그림자 속에 머물던 지난날을 거쳐서,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에 응답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 얼음은 차갑고 단단하게 다가와 모든 것을 깨뜨릴 듯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는 무언가를 지켜내는 고요한 힘이 담겨 있다. 내 인생을 파괴시켜버릴 것만 같은 차갑고 냉기가 흐르는 그 어떤 것일지라도 이야기하라고 그녀가 부추기는 듯했다. 자신에게 계속해서 이야기하라고, 살아가기 위해 그렇게 할 때 내 삶은 보존되고 지켜질 거라고. 🧶 책과 캘리와 글쓰기로 계속 나의 이야기를 꺼내고 말해야겠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이미지와 이야기의 세계에 살고 있고,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야기에 상처를 입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우리를 받아 주고 축복해 주는 다른 이야기를 찾거나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도 있으리라. 📖92p 📖351p 📖379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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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어서 하루 만에 다 읽었어요 추천 드려요 감사합니당 한 번 더 읽어 보고 싶은 느낌?? 리베카 솔닛 작가님 다른 작품들도 빨리 읽어 보고 싶어요 무엇보다 예스24는 배송이 너무 빠르고 포장도 친환경으로 와서 받으면서도 선물 받는 느낌 최고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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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까지 읽어보고 책 구매하기를 추천합니다. 모녀관계가 중심인 줄 알고 샀는데 서사 줄기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야기란 무엇인가'와 같이 엉켜있고 꼬이기 쉬운 거대한 질문들을 작가가 술술 풀어갑니다. 작가가 독자와 발걸음을 맞춰가며 슬슬 같이 산책하는 느낌입니다. 어렵고 추상적인 문제를 쉽게 더 쉽게 설명하려는 서술 방식이 좋았습니다. 추신: 읽다가 바로 이어서 독서하기 위해 마음의 발걸음(아이슬란드 여행기)도 샀습니다. 그만큼 신뢰가 가는 작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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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구매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의 이야기를 읽어 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의 감정과 생각을 더듬어 가는 일은 버겁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특히 엄마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그랬다. 정제된 것처럼 보이나 정제되지 않은 묵직한 슬픔이 밀어닥칠 것만 같아서, 그 습격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자꾸 거리를 두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독서 모임을 위해 급하게 읽어야 해서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 문장 하나하나가 굉장히 밀도가 높은데, 이것을 어떻게 급하게 허겁지겁 먹어서 제대로 소화한단 말인가. 체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다시, 시간이 생기면 다시 읽고 말리라. 누군가 이 책으로 필사하는 것을 훔쳐보곤 했다. 훔쳐본 것인가. 그때부터 이 책을 무척 읽고 싶었다. 그리고 읽은 후에야, 왜 그 사람이 이 책을 필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필사하면서 읽기에 제격인 책 아닌가. 문장 하나하나를 뜯고 음미하고, 그 과정이 무척 아름다울 것 같다. 나 역시 경험해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