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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신간이 나오면 제목도 보지 않고 책을 구입합니다. 그중 한분이 이 책의 저자이신 고미숙 작가입니다. 작년 1월엔가 접한 고미숙 작가의《동의보감, 몸과 우주 삶의 비전을 찾아서》(http://blog.yes24.com/document/5999775)를 읽고 난 이후로 전 고미숙 작가의 열렬한 팬이 되었습니다. 동의보감이란 어렵고 난해한 의학서를 흥미가 돋게 하는 그분의 탁월한 글 솜씨와 넘치는 해학, 그리고 그 부드러운 필력에 푹 빠진 것이죠. 그 뒤로 그분의 저서를 몇 권 더 보았습니다. 인문학에 근거한 탁월한 글쓰기와 넘치는 해학과 깊은 지식은 다른 책에서도 여전히 과시(?)되고 있더라구요. 그런데 고미숙 작가는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답니다. 그 이유가 색다르네요. 사주명리학을 배운 후 깨달은 바로는 저자의 용신(用神:운을 트는데 좋은 오행)이 오행가운데 목木이랍니다. 이걸 숫자로 따져보면 3이라고 하네요. 3은 목 가운데서도 양목陽木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 작가는 그동안 책을 집필을 해도 3종 세트로 해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열하일기 세트도 3권, 달인 시리즈도 3권을 집필했네요. 그래서 이 책 『몸과 인문학』도 동의보감 시리즈 3권중 마지막 권입니다. 《동의보감, 몸과 우주 삶의 비전을 찾아서》와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에 이은 막내 격이 되는 셈입니다. 『몸과 인문학』은 동의보감의 관점에서 정치, 경제, 교육 등 우리 사회의 제반현상등을 반영해 짚어보는 책입니다. 동의보감은 우리네 몸을 돌아보는 책입니다. 우리몸은 우주 운행원리의 축소판이고 우리몸이 곧 우주이므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도 우주의 축소판임과 동시에 우리몸의 축소판입니다. 그래서 사회의 제반 문제도 곧 우리몸에 병이 드는 것처럼 우주 운행의 원리에서 벗어나는 부분들이 우리네 몸처럼 응혈이 쌓이고 기의 순환이 원활치 않아 생기는 응혈증이 바로 우리사회가 가지는 제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올바로 직시하기 위해서는 우리몸을 돌아보는 동의보감과 우주의 운행원리를 나타내는 사주역리학의 시선으로 이 사회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하네요. 즉 동의보감과 사주역리학의 시선으로 제반 사회 현상을 바라보고 에세이를 기록한 책이라는 얘기입니다. 작가는 동의보감의 저술 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마침 동아일보에서 유사한 제안이 왔답니다. 역시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이지요. 그래서 동아일보에 그동안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이 바로 이 책 『몸과 인문학』입니다. 이 책의 키워드는 ‘몸과 우주’입니다. 요즘 우리네 생활을 보면 몸은 그저 병원에 맡기고, 우주는 ‘천문학적 쇼’에 맡기고 하늘한번 쳐다볼 여유 없이 바쁘게 살아갑니다.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지도 모릅니다. 옆 사람이 뛰니 나도 뜁니다. 그저 정해진 일상에 치여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자동차마냥 주위한번 둘러보지 않고 앞만 보고 냅다 달려갑니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숱한 질병과 번뇌들이라고 작가는 얘기합니다. 몸이야말로 삶의 구체적인 현장이자 유일한 리얼리티이며 가장 체계적이고 가장 야생적인 존재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몸과 우주가 만나는 곳에 정치와 양생이 마주치고, 여성성과 지혜가 결합하며, 교육의 원리와 음양의 이치가 교차하는 원리가 존재한다고 하네요. 그런 교차의 원리와 몸과 우주의 합일을 등한시 하고 살아가는 우리네의 일상이 동의보감과 사주 역리학을 합친 의역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새로운 시선의 이야기들이 이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몸과 인문학』은 몸과 몸을 둘러싼 우주를 표현하는 8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몸, 여성, 사랑, 가족, 교육, 정치·사회, 경제, 운명 등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들이죠. 그런데 이렇게 8개 항목으로 나눈 이유 또한 독특합니다. 저자의 용신이 오행가운데 木입니다. 목이 양으로 화하는 陽木은 숫자 3을 陰木은 숫자 8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8개 항목으로 구성했다고 하네요. 거기에 8과 8이 만나면 64가 되니 그건 주역의 64괘와 일맥상통 합니다. 거기에 책 말미에 고전도 8권을 추천했답니다. 음~~ 이걸 보니 작가가 사주명리학을 공부한 것도 다 사주소관이란 생각이 듭니다. 너무 운명적 인가요! ^^ 작가는 동의보감의 〈잡병편〉을 공부하다 사주 명리학과 만났다고 합니다. 〈잡병편〉은 ‘오운육기’로 시작하고 그걸 따라가다 보면 육십갑자를 배워야 한답니다. 그러다 역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네요. 사주하면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혹자는 미신으로 치부하곤 합니다만 저자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보면 이는 잘못된 편견이라고 얘기합니다. 사주 운명론에 대해 “삶의 모든 것이 ‘우연!’일 뿐이라면 개입의 여지가 없다. 또 모든 것이 ‘필연!’일 뿐이라면 역시 개입이 불가능하다. 지도를 가지고 산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명을 따라 가되 매 순간 다른 걸음을 연출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운명론은 비전탐구가 된다 ”(226쪽) 고 말하는 작가의 생각이 한때 어깨너머로 사주명리학을 기웃거렸던 저의 생각과도 일치하여 동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동양우주론은 음양오행에 기인합니다. 음양은 해와 달을, 오행은 목화토금수, 곧 다섯 개의 별을 뜻합니다. 이것은 우주적 동력이자 생명을 주관하는 토대입니다. 따라서 오장육부 또한 음양오행의 산물입니다. 간/담은 목木, 심/소장은 화火, 비/위는 토土, 폐/대장은 금金, 신/방광은 수水입니다. 나아가 “둥근 머리는 하늘을 닮았고 네모난 팔은 땅을 닮았다. 하늘에 사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가 있고, 하늘에 오행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중략)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두 눈이 있고, 하늘에 밤과 낮이 있듯이 사람은 잠이 들고 깨어난다.”(손진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몸이 우주이고, 이 사회라는 이야기지요. 이는 우리몸에 대한 이해가 곧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고, 우주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몸이 곧 우주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몸이자 우주입니다. 자연의 순화처럼 몸의 기가 원활하게 흐르지 않으면 병이 듭니다. 이렇듯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병이 들게 되겠지요. 우리는 그걸 사회문제라고 얘기합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우리 몸의 기운을 칭하는 정精, 기氣, 신神과 몸을 이루는 형形, 음양오행으로 요약될 수 있는 음양의 조화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로 구성되는 오행의 원리로 기본으로 삼고, 과유불급(過猶不及)사자성어로 표현될 수 있는 太過,不及 이 세가지의 논리로 인체의 구성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 병이 드는 것은 이 세가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더불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태과하는니 불급하는게 낫다" 는 저자의 주장은 각 장마다 귀에 못이 박힐만큼 반복됩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네 인간의 풍요로움과 과함이 우리 몸과 정신세계에 얼마나 잘못된 영향을 주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또한 그렇게 구성된 현대사회가 지속되면서 우리 몸이 병들고, 우리사회가 병들어 가고 있음을 독자 스스로 깨닫게 합니다. 그럼 그냥 그 병든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나요? 아닙니다. 작가는 한사람이라도 그 잘못된 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서 올바른 길을 가야함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몇몇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요즘 너나할 것 없이 필수적인 요소가 된 성형입니다.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효경의 개종명의)라 하여 부모에게 물려받은 몸을 훼손치 않음이 효의 시작이라 했습니다. 이런 유교적 가르침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개성을 중시하는 요즘시대에 너나 할 것 없이 획일화를 위해 성형을 합니다. 그 귀한 몸에 칼을 댑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입니다. 혹자는 성형중독에 걸려 정기적으로 성형을 해댑니다. 이는 우리사회가 몸을 상품화 한 거에 대한 후유증입니다. 그래서 서울의 번화한 거리에 나가면 똑같습니다. 키도 다르고, 얼굴도 다른데 신체 부위를 들여다보면 다 똑같습니다. 심지어 저 코는 어느 병원 제품이고, 저 눈은 어느 병원 제품이라는 등의 우스갯소리가 난무합니다. 이 또한 과유입니다. 차고 넘치는 것이죠. 그러데 성형을 하면 행복할까요? 마네킹 같은 몸매와 얼굴을 가지면 행복할까요? 마네킹이 하는 일은 뭘까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구걸하는 일입니다. 예쁘게 차려입고서 말입니다. 이에 대해 작가는 결국 성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우월감이다. 타인과의 교감이 아니라 인정욕망이다. 전자는 충만감을 생산하지만, 후자는 결핍을 생산한다. 그리고 그 공간에선 상처와 번뇌만이 숙성된다. 성형천국, 마음지옥!(21쪽) 과정은 중시하지 않고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 마냥 성공이라는 허상을 향해 그저 매진하는 이 땅의 청춘들에게는 나무의 목표는 열매가 아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잘 살다보니 열매가 달렸을 뿐이다. 삶 또한 그렇다. 무엇이 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살다 보니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뿐이다.(130쪽) 글쓰기에 관해서 작가는 이전저서인 《동의보감, 몸과 우주 삶의 비전을 찾아서》에서 글쓰기야 말로 정기신을 회복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고 얘기합니다. " 글쓰기가 바로 그에 관한 최고의 기술에 해당한다. 글쓰기는 본디 지성의 정점이다. 삶과 세계를 언어로 구조화 할 수 없다면 아직 지성의 주체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지성인이 된 이 시대에 가장 결락된 기술이기도 하다. 대학이 몰락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고, 이런 차원에서 보더라도 최고의 전략이 될 수 있다. 자신의 몸과 삶의 언어로 조직할 수 있으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집중력이 곧 정기신의 확보다."(동의보감, 몸과 우주 삶의 비전을 찾아서 435쪽) 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불어 꾸준한 고전공부와 더불어 글쓰기를 병행해야 하는 이유를 고전의 문구를 빌어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네요. 첫째, “고전을 통해 진리를 배운다.” 둘째, “탐구를 통해 문제를 밝힌다.” 셋째, “호방하고 힘찬 문장 솜씨로 지혜롭고 빼어난 글을 써”낸다. 이것이야말로 우주 사이의 세가지 통쾌한 일이다. (안대희 『정조치세어록』푸르메, 2011. 21~22쪽) 추억에 연연해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고 그저 과거의 추억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는다. 하여, 인간은 어차피 ‘현재’를 살 수 밖에 없다.(88쪽) 요즘 사랑에 대한 드라마가 많습니다. 첫사랑의 애틋함을 전해주는 얘기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드라마고 현실이고 간에 첫사랑은 이루어지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청춘들이 깨어진 첫사랑의 아픔이나 떠나간 연인에 대한 애달음으로 괴로워합니다. 첫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 누군가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이 깨어짐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청춘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작가는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니체는 말했다. 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 두었다고. 그러니 기억하라! 첫사랑의 판타지는 생이 마련한 수많은 행운 가운데 가장 ‘소박하고 유치한’ 항목에 불과하다는 것을.(78쪽) 어때요? 명쾌하지요. ^^ 이렇듯 사회 각 분야에 걸쳐 부문별로 분류하고 각각의 항목에 대해 얘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글쓰기는 시원합니다. 에두름도 없습니다. 이렇듯 시원하고 유쾌한 글쓰기와 동의보감과 주역의 오행에 겹쳐 풀어내는 작가의 글은 매 장(챕터)마다 색다른 흥미를 돋워 줍니다. 전혀 의외일 것 같은 동의보감에 주역을 더한 의역학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생겼습니다. 이러니 고미숙 작가의 글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읽고 싶어서 구입한 후 바쁜 일정에 제 손길이 미치지 못한 책들이 수 십 권 쌓여있습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들이 보내는 애증의 눈길을 받을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는데, 작가는 또 절세미인 8권을 추천하네요. 말이 8권이지 실상은 전집도 있어서 20권에 육박합니다. 한데 말미에 작가가 추천한 고전의 미모가 장난이 아닙니다. 영웅호걸은 호색한이라는데 어찌 자타가 공인하는 영웅호걸(?)이 저런 미인들을 가만히 두겠습니까. 아무래도 집에 데려다 놓아야 할 듯 하네요. 휴~~ 볼 책은 많고 시간은 없고, 인생은 짧습니다. ㅠ.ㅠ 너를 구원하는 건 오직 너 자신뿐이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것을 향한 구체적 활동지침이 바로 ‘지혜와 열정’이다.(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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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몸의 일치!, 책은 우주 원자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 따라서 우주적 변화의 리듬을 품은 존재로서 자신의 몸을 아는 것이 삶의 능동적 주체가 되는 지혜요 열정임을 알려주는 양생술이요, 자기 구원과 자기 수련의 길에 대한 실천적 사유를 담은 비판적 안내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성, 사랑, 가족, 교육, 정치, 경제, 운명에 이르는 삶의 제반 현상들을 인간의 몸이라는 자연의 질서에 기초하여 70여 꼭지의 정치(精緻)한 비평 에세이로 구성하고있다.
만약 '몸은 어디에 쓰는 거냐'는 물음을 한다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모르겠다. 스마트폰 터치하는데, 마우스 클릭하는 데나 쓰는 것 아닐까요? 아마 이것마저도 조만간 사라질지 모를 일이지만, 주구장창 액정 화면만 쳐다본다. 아플때는 자신의 몸을 생각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그저 병원으로 달려가 정교하게 파편화된 데이터를 기초로 진단하는 마주보지 않는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받을 뿐이지 자신의 몸을 스스로 탐구하지 않는다. 환자는 병에 대해 사실 아는 바가 없으며, 앎의 의지를 박탈당한 채 의학의 주술에 내 맡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디지털 세상으로의 맹목적 돌진은 "정보와 욕망의 혼연일체!(14쪽)"를 부르짖으며 인간의 반(反)생명성을 가속화시키며, "몸의 소외와 생명력 박탈이라는 가혹한 대가(15쪽)"를 요구한다. 한편 과학과 자본이 견고하게 유착된 의학은 무지해진 인간 위에 더 한층 군림하며 앎의 주권 박탈을 강화한다. 우리가 자신의 몸을 탐구하지 않게 되면서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 건강이지만 아울러 앎이라는 삶의 지혜를 더불어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날카롭고 신랄한 비판적 시선이 머물지 않는 곳이 없는 이 에세이는 오늘의 사람들이 앓고 있는 환부를 전방위적으로 짚어내어 자기 몸의 탐구자로, 아는 만큼 자유롭고 아는 만큼 살아낼 수 있는 앎과 자유, 건강과 지혜가 분리 할 수 없는 하나의 실존 조건임을 역설한다.
공감과 자기 성찰의 감응을 야기한 비평적 시선의 몇 꼭지에 대한 인상은 다음과 같다. 운명의 구체적 활동 지침으로서 지혜와 열정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몸의 원리라고 말한다. 수승화강(水昇火降), 즉 생명과 정력의 근원인 신장의 물(水)은 척추를 타고 올라가서 뇌를 흠뻑 적셔줄 수 있어야 하며, 화(火)인 심장은 물을 펌프질하여 전신에 공급해 줌으로써 열(熱)을 정미(精微)하게 조정해줘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양생(養生)술의 핵심은 지혜와 열정의 활발한 순환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이와 다르게 살아가며 아프고 괴롭다고 아우성 댄다. '내가 제일 불행해'를 입에 달고 사는데, 이건 '내가 제일 잘나가고 싶어'라는 욕망의 거꾸로 된 투사일 뿐이라는것이다. 그래서 모든 일이 남들이 부러워해야 하는 것이어야 하기에 프로포즈도 스킨십도 남들 앞에서 과시하며 한다. 선상 이벤트, 서프라이즈,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이 행복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신장 정기(精氣)인 옹달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어 말라버리고, 금새 말라버린 인정 욕망은 그야말로 막장드라마가 되기 일쑤다.
한편 이렇게 신장의 정기를 고갈시키는, 즉 지혜가 움틀 싹을 막아버리는 인정 욕망은 점입가경의 쇼윈도 마네킹이란 기준을 향한 성형의 광기가 되어 단일 척도 하에 모든 것을 포획하는 '폭력적 동일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마는 심(心)이요, 왼 쪽 뺨은 간(肝)이며, 오른 쪽 뺨은 폐(肺)이다. 코는 비장(脾臟)이며, 턱은 신(腎)이다. (『동의보감』 「외형편」)" "얼굴은 오장육부의 발로이자 몸이 우주와 만나는 창(20쪽)"이라고 한다. 표정과 생기를 담은 다양함과 이질성이 제거된 이것은 타인과의 교감이라는 소통의 신장을 막고 인정 욕망을 추구하는, 고작 결핍의 무한 생산일 뿐이며,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들의 시선을 구걸하는 스튜피드(stupid)함 아니냐고 지혜와 열정이 증발하는 오늘의 현상을 이같이 사회비평적 시선으로 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인간의 몸, 그 생명력이란 다름아닌 수승화강의 신체 기관들간의 교류요 연동, 즉 순환이라고 한다. 조직이든 제도든, 사회 시스템이든 일종의 집합적 신체 역시 서열과 위계와 같이 수승화강의 순환 리듬이 정체되거나 단절되면 마치 겉은 멀쩡한데 실제는 무기력한 신체처럼 사회 동력이 사그러든다. 따라서 특권과 위계가 없는 매끄러운 순환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자기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며, 늘 밖으로만 시선을 향한 정치가들의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지 못함, 자기배려에 대한 무지가 인간 삶의 미래적 비전을 지닐 수 없는 한계가 되고있음을 설파하기도 한다.
몸을 쓰지 않는 정신 노동이 날로 증가하는 시대이다. 육체가 한가로워지는데 반하여 정신은 우울해지기만 한다. "몸을 쓰면 마음이 쉬고, 몸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바빠진다(199쪽)" 고 한다. 때문에 망상과 잡념이 그치지 않고, 불면, 편집, 강박, 우울증에 발목이 잡혀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옹달샘인 신장과 통하는 용혈자리가 있는 발바닥의 경락이 자극되지 않으니 물이 뇌의 뉴런들을 적시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상체로 치솟는 심장의 화기를 잡지 못해 마음의 병이 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돈 많이 드는 헬스클럽, 휘트니스 센터처럼 돈과 서비스가 개입된 몸의 움직임은 자율성에 기반하는 생명성을 위축시키기에 걸음, 산책처럼 훌륭한 치유책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 모처럼 마음이 쉬고, 보이지 않던 풍경이 들어오고, 진중한 성찰이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몸과 마음의 일치, 지식과 삶의 소통이다!
공부란 지식을 단지 쌓는, 스펙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 섹스와 번식을 위해 평생을 노예의 삶으로 살아가기 위한 허열(虛熱) 쌓기는 더더욱 아니다. 이러한 결핍과 공허뿐인 팔자를 벗어나 운명의 주인으로서 온전히 자기 힘만으로 생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를 수 있는 지혜와 열정을 조정할 수 있도록 자신을 탐구하는 것이다. 열정의 투사요, 격정의 파토스를 연출할 수 있는 삶의 지혜, 그 생리적 루트인 우리의 몸을 활성화할 수 있는, 지금은 잃어버린 몸에 대한 앎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다음의 문장으로 몸에 새겨진 운명의 지도 탐색과 사회비평으로 우리의 삶과 사회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한 뼘만큼 넓혀주는 이 책의 비범한 지성을 대신하며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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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최근 의역학이라는 분야에 대해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저자의 <동의보감> 시리즈 중 한 권이라고 한다.
이 책의 기획을 저자는 ‘<동의보감>의 시각으로 사회비평적 에세이’라 밝히고 있는데, 그래서 부제 역시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이다.
곳곳에서 <동의보감>과 관련된 언급이 있지만, 실상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21세기 한국사회에서 행복하게 사는 삶의 태도에 대해서 주로 논하고 있다고 하겠다.
전체가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 몸 vs 몸’에서부터 ‘8장 몸과 운명’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몸 상태를 직시하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예속되어 몸을 움직이지 않고 사는 현실과 돈을 통해 건강을 얻겠다는 현대인의 욕망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몸으로 활동하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 책의 원고들은 한동안 신문에 연재되었던 것을 모아 엮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지나치게 짧은 원고량으로 인해, 다른 저서들의 글들에 비해 대부분 피상적인 논의를 펼치는 것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신문에 기고하기 위해 제한된 양의 원고로 작성하다보니 전반적으로 글의 내용이나 호흡이 다소 짧아진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다.
일정 기간 동안 기다렸다 신문의 칼럼으로 읽었다면 글의 내용이 흥미롭게 여겨졌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짧은 호흡의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을 엮어 내면서, 반복되는 내용들이 발견되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단지 문제 제기로만 끝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확인할 수 있었고, 몸을 움직이며 활동적인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다.
또한 우리가 흔히 비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주팔자’에 대해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사주란 한 사람의 일생을 규정하는 일종의 굴레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고전들’이라는 제목으로 8권의 책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 글들을 부록으로 덧붙이고 있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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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운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내 몸이 알아차리는 소소한 변화들이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변화들을 머리로도(머리 역시 몸이긴 하지만;) 알아가기 위해 산 책인데요. 종종 그렇듯이, 책을 통해 기대보다 훨씬 많은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저자는 몸을 매개로 현재 우리를 둘러싼 주요 조건들을 해석해냅니다. 예를 들어, <몸과 여성>, <몸과 사랑>, <몸과 가족>, <몸과 정치사회> 처럼요. 그 해석의 관점이 우주적?이고 통합적이어서 읽는 내내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 "아, 정말 그러네."라는 말이 무시로 튀어나왔습니다. 동시에 내 사고 방식이라는 것이 참 우리 사회가 주입한 것들 위주로 강고하게 배치돼 있구나...하는 자각에 이르게 됐고요.
동시에 내 몸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무지했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을 너무 홀대하고 있었다는 사실도요. 오늘도 일을 무탈하게 해 나가기 위한 수단, 멋진 옷을 잘 받쳐주는 옷걸이 정도로 여겼던 건 아닐까...다이어트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혹독하게 몰아부친 건 아닐까...이렇게 말하니 몸에 미안해지네요. ㅠ
내 몸과 마음, 지성과 실천, 나와 사회, 나와 자연 그리고 우주는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내 토대가 되는 이 몸이 내는 목소리에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생각을 하게 됐으니 이제 실천하는 일만 남았네요. 당장 내일 이 책을 갖고 동네 뒷산으로 가볼까 합니다. 가방에는 휴대전화가 있겠지만 좀 덜 만지작거리길 바라면서...
동의보감이라는 고전을 현대적 맥락에서 해석한다면? 내가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우주적? 근거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흥미를 갖고 읽으실 만한 책입니다. 웬만한 시사평론 서적보다 지적인 자극이 크고 뼈 때리니 어렵지 않게 읽을 인문/시사 책 찾으시는 분들도 읽으면 좋을 것 같네요. 행동하는 지성! 인문학 이모! 고미숙 선생님의 다음 책도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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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의 시선으로 쓴 고미숙작가의 사회비평 메세지 이다. 몸과우주다 몸과우주는 우리는 이 단어들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몸은 병원에 맡기고 우주는 "천문학적 쇼"의 배경으로나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숱한 질병과 번뇌들이다. 그런점에서 21세시 인문학의 화두는 몸이라고 확신한다고 작자는 주장한다. 몸이야말로 삶의 체계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야생적이다. 이책에서는 음양의 이치가 교차하는 이를테면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이라고 표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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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몸과 인문학은 인문학이 복잡하고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선입견이 틀렸다고 말하는 듯한 책이다. 인문학이 중요 주제로 등장하는데, 내용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으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으로 가득하다. 언뜻 스쳐지나갈 때에는 이해하기 힘들거나 간과하기 십상인 부분도 인문학적 시선에서는 많은 다양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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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3종세트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삼의 비전을 찾아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사주영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에 이어 마지막으로 몸과 인문학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를 읽었다 동양고전 동의보감에 내용을 몸과 여성, 사랑, 가족, 교육 그리고 정치/사회 ,경제, 운명까지 인간세상에 접목해서 표현한 깊은 통찰을 느낄수 있었다 본문의 내용 중 아기를 업어야 하는 세가지 이유-p116 첫번째 이유, 아기는 양기 덩어리-음양을 조화를 이뤄야 한다 두번째 등은 서늘하다 세번째 아기를 업으면 엄마는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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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지은이 : 고미숙 - 옮긴이 : - 출판사 : 북드라망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라는 부제? 와 함께 표지에 '몸과 인문학'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몸과 xx(몸, 여성, 사랑, 가족, 교육, 정치-사회, 경제,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몸과 운명에서 청소와 약속에 대해서 한 이야기가 가슴에 가장 와 닿는다. 공동체적 공부를 할 때 반드시 지켜야하는 기본기가 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청소와 약속이다. 청소는 공간에 대한 배려이고 약속은 시간을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능력이다. 즉 청소와 약속은 '시공간과의 교감'이라는 것이다. 청소를 하지 않는 것은 공간에 상흔을 남기는 행위이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시간에 잉여를 남기를 행위이다. 한국 연극계의 거장 이해랑 선생님 왈, "연극계가 왜 망했는지 아냐? 약속을 안 지켜서야." 위대한 일의 시작은 바로 약속을 지키는 작은 일에서 부터 시작된다. 청소와 약속을 지키는 것 즉 시공간에 올바른 힌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행하게 학교에서 이러한 원리를 배우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오직 입시위주의 교육을 하다보니 학생에게 입시를 위해서 모든 일에서 배제가 된다. 즉 일종의 특권이 주워지는 것이다. 그러니 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은 스스로 어떠한 일을 못하는 사람이 된다. 불행한 일이다. 어찌되었던 청소와 약속만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해서 시공간에 올바른 흔적을 남기를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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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책에서 추천해준걸 보고 읽게 되었어요. 고미숙선생은 열하일기 연구가로 알고있었는데 두루두루 쓰시는 모양입니다.우선 우리몸과 관련된 여러 사회적 현상을 동의보감과 접목시켜 이야기하는게 신선했습니다.몇몇 저자의 주장만 있을뿐 근거는 부족한게 보이긴 했지만 저자의 재미난 글솜씨로 술술 읽히는 책입니다. 무심코 지나처왔던 사회적현상들을 이렇게도 말 할수가 있구나..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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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사개월 사이에 잠의 리듬이 조금 바뀌었다. 새벽 세 시나 네 시쯤, 잠에서 깨어나는 날이 많아졌다. 그 시간에 잠이 깨면 더 이상 눈을 감고 있기가 어려워 누운 채로 머리맡에 있는 책을 잡는데.
이번에 잡힌 책은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이다. 스탠드 불빛을 향해 모로 누워서 읽다가 벌떡 일어나 앉게 된 구절이 있었다. 요즘의 내 고민에 명쾌한 답을 준 구절은, 죽음이 생의 선물이라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질병과 삶, 질병과 건강을 날카롭게 분리한다. 건강은 정상적인 것이고, 아프다는 건 비정상적인 상태라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상화해야 한다고 믿는다.현대의학은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헌데,이렇게 정상/비정상의 관점으로 다루게 되면, 질병은 곧바로 열등한 것, 불행한 것이 되어 버린다. 아프니까 열등하다, 아프니까 불행하다고?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건 어디까지나 현대의학과 자본의 기준일 뿐이다. 생명과 우주의 차원에선 아픈 것도 삶의 또 다른 과정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원초적 장애란 없다! 또 질병과 불행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질병은 생명의 능동적 전략이기도 하다. 아픔을 통해서만이 삶의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삶과 질병, 삶과 죽음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병과 죽음이야말로 살아있음의 표징이자 생이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이다.(26쪽)"
난. 내가 읽는 책들이, 나의 정신체계를 성숙시키는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서도 책들을, 눈에 띄는 자리, 손이 가는 자리에 여러 권씩 놓아둔다. 여행을 가더라도 책이 없으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다. 가끔은 활자중독, 활자들의 스모그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책을 사들이는 데 기여하는 책값이며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의 시간은 모두 낭비였을까.(책을 읽지 않는다면 그 시간에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책읽기가 결코 쓸데없는 행위가 아니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책 속에 길은 있었다. 쭉쭉 뻗은 대로를 발견해 내는 혜안을 갖지는 못했지만 군데군데에서 좌표 정도는 가끔씩 찾아지니 말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나의 책읽기는 계속 될 것이다. 좌표와 좌표를 잇다보면 길이 될 터이니.
고미숙씨의 글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시공간>이라는 책으로 처음 만났었는데. 열하일기를 하나의 텍스트로 삼아 연암 박지원이 갖고 있는 유머의 천재성에 촛점을 두고 아주 자유롭게 써나갔던 그녀의 글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몸과 인문학> 인문학과 몸이라는 단어. 연결고리가 전혀 없어보이는 두 단어의 조합을, 그녀는 어떻게 이끌어내는지 글솜씨가 궁금해서 구입한 책인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시공간>이 열하일기를 텍스트로 했다면, 이 책은 <동의보감>을 텍스트로 삼아 쓴 글이다.
자신의 몸에 저지르는 비하되고 굴곡된 행동들(저자는 대표적인 예를 성형으로 꼽았다), 점점 가족주의에 몰입되어가는-그러면서도 가족의 끈끈한 정은 예전보다 훨씬 희박해져가는 양상등 지금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그 생각을 담고 사는 몸을, 동의보감이란 텍스트로 해석해 낸 글들이 아주 자유분방하다. 그녀는 과연 유목적 글쓰기의 달인임에 틀림없다.
이 책의 키워드는 "몸과 우주"이다. 몸의 순환, 우주의 순환을 거스르지 말것을 누누히 강조한다. 특히, 심장과 신장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와 그 둘의 관계를 걷기와 연결하여 이어나간 글은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일들이라 공감되는 부분이 컸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자면. 심장은 火다. 다른 표현으로는 열정이다. 신장은 水다. 다른 표현으로는 지혜다. 심장은 신장의 水를 전신에 공급하는 펌프역할을 하는데 심장의 火기운이 너무 상승하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런 심장의 火기운을 다스릴 수 있는 게 신장의 水기운이기도 하다. 발다닥의 용천혈이 신장과 통하는 혈자리인데 이 혈자리의 기운이 원활해야 신장의 기능이 활발해진다. 이 혈자리를 자극해주는 것이 바로, 걷기라는 것이다. 화가 나거나 마음이 우울할 때 밖으로 나가 이삼십분 정도만 걸어도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고 가벼워지는 걸 느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걷다보면 신장의 기운이 상승하게 되고 상승한 신장의 水 기운이 심장의 火기운을 다스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게 있어 유일한 운동이었던 걷기는, 마음을 다스리는 통로이기도 했던 것이다. 내 몸으로 체득하는 우주적 순환,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밑줄 긋다. 6 몸이야말로 삶의 구체적인 현장이자 유일한 리얼리티다.가장 깊으면서 동시에 가장 투명하고 가장 체계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야생적이다. 14 생명이 원하는 건 오직 순환과 운동뿐이다.동의보감식으로 말하면 수승화강이 생명의 기초대사다 19 자신의 몸을 이렇게 학대할 수 있다니, 대체 이런 용기(혹은 광기)는 어디로부터 유래한 것일까? 21 결국 성형을 통해 얻고자하는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우월감이다. 타인과의 교감이 아니라 인정욕망이다. 전자는 충만감을 생산하지만, 후자는 결핍을 생산한다. 35 동의보감은 말한다. 자연과 생명은 오직 '순환과 운동'이 있을 뿐이라고. 통즉불통(通則不痛'통하면 아프지 않다'/痛則不通'아프면 통하지 않는다')! 37 성숙이란 삶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밀고가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와 세계를 통찰하는 힘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현대문명은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숙은 곧 지혜고, 지혜는 화폐의 법칙으로부터 탈주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88 사라지고 흩어져야 또 새로운 것이 생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무하다고?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를 오롯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130 나무의 목표는 열매가 아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잘 살다 보니 열매가 달렸을 뿐이다. 삶또한 그렇다. 무엇이 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잘 살다보니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뿐이다. (강상중의 책 <살아야하는 이유> 내용과 상통하는 부분) 147 배우는 것은 강렬한 쾌락이다. ...... 몇 살을 먹었든 간에 배우는 자의 육체는 그때 일종의 확장을 체험한다. 149 내 몸이 곧 별이다. 오장육부는 음양오행이 펼치는 상생상극의 파노라마다. 자기에 대한 탐구가 우주적 비전으로 '통하는' 것, 그것이 곧 지혜다. 154 동의보감이 말하는 메세지는 아주 간단하다. 대기(大器)는 만성(晩成)이라는 것, 그것이 생명과 자연의 이치라는 것. 168 그런데 참, 이상하다. 사람들은 자꾸만 어디론가 떠난다. 인도로 다람살라로 혹은 부탄으로. 하나같이 가난하고 척박한 곳들이다. 이 화려한 도시의 불꽃을 두고 왜 그토록 삭막한 곳으로 떠나는 것일까? 그건 지극히 당연하다. 빛이 화려하면 내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78 생리적으나 심리적으로나, 그리고 의식주의 윤택함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거의 다 잉여가 된다. 즉, 더 이상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건 '관계'다. 주고받는 말, 함께하는 행동, 어제와 다른 사고방식, 이 삼박자의 리듬이 있어야 '정.기.신'이 살아 움직인다. 183 암과 우울증-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두 가지 질병(혹은 키워드)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뭉치고 막힌다는 것. 190 우주는 상생과 상극의 매트릭스다. 즉, 상생은 상극으로 상극은 또 상생으로 끊임없이 변전한다. 우리 몸의 오장육부 역시 '생극'의 경연장이다.(...)따지고 보면, 가장 안정적인 상태는 죽음이다. 199 근대 이전, 귀족들은 주로 칠정상(七情傷)을, 평민들은 노곤상(勞困傷)을 많이 앓았다. "귀한 사람은 겉모습이 즐거워 보여도 마음은 힘이 들고, 천한 사람은 마음이 한가해도 겉모습은 힘들어 보인다."(<동의보감>) 요컨대, 몸을 쓰면 마음이 쉬고, 몸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바쁘다. 이에 비춘다면, 우리 시대는 그야말로 '칠정상의 시대'다. 213 우주의 이치는 기본적으로 태과는 불급만 못하다. 220~222 시간은 공간의 '휘어짐'이고 공간은 시간의 '주름'이다.시공간의 리듬, 그것이 곧 '차서'다. 우주의 모든 운행에는 차서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계절의 차서다. 우주는 매년 어김없이 이 차서를 밟는다. 하지만 동일한 반복은 아니다. 돌아오되 늘 다르게 돌아온다. (...) 예컨대, 무슨 일이든 시작할 때는 봄의 기운을 타야한다. 봄은 살리는 기운이다.(...) 그러니까 처음 시작할 때는 열정이든 분노든 안으로 충분히 응축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227~228 모두가 태과/불급의 처지로 세상에 온다는 것. 한마디로 다 일그러져 있다. 모든 오행을 두루 갖춘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 그런 설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괴롭고 아프다. 하지만 그 괴로움과 아픔이 곧 삶의 동력이기도 하다.(...) 뭔가가 심각하게 결핍되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242 글쓰기만큼 원초적인 욕망도 없다.(공감하는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