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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인듯 사회풍자극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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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인 마을.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었는데 현실공간에서 벌어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대와 100살이 넘은 노인과의 결혼. 그것도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는 것이 아니고 시효를 두고 결별을 하고 새로운 결혼을 한다. 이점만 현실세계와 다르다.   공통점은 넘친다. 지도자로 보이는 인물의 정보독점. 불소통. 권력과 권위를 위해서 엄한 사람을 처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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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인 마을.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었는데 현실공간에서 벌어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대와 100살이 넘은 노인과의 결혼. 그것도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는 것이 아니고 시효를 두고 결별을 하고 새로운 결혼을 한다. 이점만 현실세계와 다르다.

 

공통점은 넘친다. 지도자로 보이는 인물의 정보독점. 불소통. 권력과 권위를 위해서 엄한 사람을 처형하고.

 

폐쇄된 사회가 현재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새로운 정보에의 접근을 철저하게 막고. 지금 이대로 영원히만을 외치는 지도자.

 

정보의 공유가 폐쇄된 사회를 무너뜨린다고 여기는 생각은 북쪽사회와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그만큼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다.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한 명명, 자신의 특기만 가지고 살수 있는 상황 등은 깨알같은 재미를 준다. 사고에 대한 추리과정도 끈끈해 읽는 재미가 있다.

l*****0 2015.06.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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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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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 <빌리지>는 자신과 마을의 근원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그들만의 문화, 그들만의 전설, 그들만의 금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마을에 전해오는 설화적 상상력에 의해 통제된다. 심상대의 <나쁜봄>은 영화 속 마을을 연상시키는 '우리고을' 이야기다.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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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 <빌리지>는 자신과 마을의 근원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그들만의 문화, 그들만의 전설, 그들만의 금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마을에 전해오는 설화적 상상력에 의해 통제된다. 심상대의 <나쁜봄>은 영화 속 마을을 연상시키는 '우리고을' 이야기다. 다른 고을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곳은 그냥 '우리고을'이다. 그 곳에는 소유도 다툼도 번민도 없고, 그들만의 문화와 전설, 금기만이 사람들 사이에 말로 전해진다.


작가는 '우리고을'을 통해 인류가 수없이 반복해 왔을 질문을 던진다. 완전한 유토피아란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 모든 인간을 만족시키는 이상적 사회에 대한 꿈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가 하는 문제를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려낸다.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현실 사회의 병폐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병폐를 정의하는 관점이 유토피아의 성격을 규정짓는다.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이상향 '우리고을'은 모든 사람이 미남미녀로 태어나고 200세에 가까운 수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해마다 '정씻기술'을 마셔 기억과 감정을 지워버리고 '새낭군맞이'를 통해 새로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는가하면 하는 일과 사는 일도 해마다 바꿀 수 있다. 우리를 위협하고 우울하게 하는 경쟁도 없고, 속박하는 가족도, 미추의 개념도 사라진 곳이 <나쁜봄>이 그리는 유토피아다. 모든 증오와 번민이 사라진 곳에 일년에 단 한번 봄마다 '광증'을 띠는 젊은이들이 출몰한다는 위협요소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해마다 큰보름날과 한식(寒食)에 치러지는 화형식을 통해 광인을 처형하고나면 일년 동안 마을의 안녕은 유지된다.


이러한 섬뜩한 집단살인 행위가 정당화되고 미화되는 지점에 이 유토피아가 지닌 허구성이 드러난다. 화형에까지 이르게 하는 이른바 '광증'의 징조란 대개 이런 것이다. 아름다움을 예찬한다거나 자신이 낳은 자식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는 것, 신을 믿거나 사랑에 빠지는 일 등. 말하자면 모든 인간다운 가치가 '광증'이라는 용서받지 못할 죄목으로 분류된다. 어떤 것은 봄이라는 계절이 가져다주는 일시적인 혼란으로 치부되지만 어떤 것은 치명적인 위험요소로 여겨진다. 그 중 '우리고을'이 가장 경계하는 광증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모든 행위다. 이야기를 만들어서 들려주는 일과 무언가를 알고 싶다는 욕망은 살인보다도 더 위험한 행위다. 그것은 이 고을의 평화가 인간의 모든 호기심과 상상력을 통제함으로써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상력의 통로인 '말'이 통제되어야함은 당연하다. '우리마을'이 이름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도 '신,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말들이 알려져서는 안되는 것도 근원에 대한 단서가 공동체의 조화를 위협하는 상상의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라는 말이 없는 세상에는 '바다'가 없다. 그래서 '우리고을'은 아버지의 존재를 기억하지 않기 위해 그 말을 없앤다.


그간의 많은 유토피아가 첨단 과학 기술을 토대로 형성되었던 것과는 달리 <나쁜봄>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대부분 일차산업에 종사하며 전통 문화와 관습을 고수하며 살아간다. 묘사되는 고을의 풍경과 삶의 방식은 마치 시대물을 보는 것처럼 예스럽지만 소설에 설명되는 배경을 되짚어 따라가보면 이들이 살고 있는 시대는 오늘날과 일치한다. 이 고을만이 인류 역사의 흐름에서 홀로 정체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유토피아가 지닌 고립성을 더 뚜렷하게 드러낸다. 말의 통제와 시공간의 고립으로 인해 유지되는 이곳에는 어떠한 개인적 판단도 개입할 수 없다.


개인의 생각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는 이 고을에 미와 추의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뱀의 출몰이 상징하는 바는 크다. 유토피아에 대한 무한 낙관주의는 무너져 내리고 사람들은 유폐된 감정을 불러들인다. 그해의 '봄'은 다른 때보다 더 '나쁜' 모습이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예찬하기 시작하고 사랑의 감정에 겨워 춤을 추는가 하면 질투라는 욕망에 자신을 오롯이 내어준다. 이 '나쁜봄'은 인간의 정념이라는 불꽃이 마음껏 활개치는 계절이다. 혼란과 무질서가 극대화되는 이 시기는 개인의 욕망과 개성이 가장 뚜렷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유토피아가 평화와 안녕의 방법으로 억압한 것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지는 순간이 이 고을에 해마다 찾아드는 '나쁜봄'이다.


모든 유토피아의 출발 지점이 결국 유토피아의 종언을 야기한다. 감정이 통제되는 곳에서는 결국 감정의 과잉이 평화와 안녕을 위협하게 되어있다. 완전한 유토피아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유토피아를 유지시키는 기제가 '억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개인적 차원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닌데, 인간의 행복은 개성의 발현에서 출발한다. 아무리 이상적으로 계획된 사회라도 반드시 개인의 욕망과 충동하게 되어있다. 통제되고 억압된 정념이 불타오르는 매년 봄은 '우리고을'의 허구성을 해마다 드러낼 것이다. 

 


z****0 2015.05.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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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는 자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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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나 풍족한 곳, '우리고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결핍이라면 오직 결핍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뿐인 곳,그래서 풍요가 가능한 곳이다.'우리고을'은 대명사다. 어떤 특정한 마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이 곳에서는 모든 자연물과 마찬가지로 집, 음식, 아이와 행복도 모두 공동소유이며,어떤 직업이든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고,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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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나 풍족한 곳, '우리고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결핍이라면 오직 결핍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뿐인 곳,

그래서 풍요가 가능한 곳이다.


'우리고을'은 대명사다. 어떤 특정한 마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 곳에서는 모든 자연물과 마찬가지로 집, 음식, 아이와 행복도 모두 공동소유이며,

어떤 직업이든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고,

직업을 바꾸면 그 직업에 유용한 집과 도구도 교환한다.


그런데 이 곳에서 절대적으로 금기시되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는 것.

미추를 분별하게 되면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추함도 드러나게 되는데,

죄는 바로 그곳에서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고을 모두가 아름답고, 더럽고 악한 존재는 없으며,

순식간에 일어나고 스러지는 '아름답다'는 생각은 항상 변하기에

그러한 생각과 정신을 거부한다. (p.127, 142)

따라서 그런 생각과 발언을 하는 것은 광기로 간주하여 화형에 처한다.

(이게 더 이상한 풍습인지도 모르고 안정과 평화를 위해 이렇게 한다)


"자네는 아름답다는 말이 우리 고을에 존재하는 만물과 만사의 조화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사실을 잊었나?"

"제 마음은 그런 조화와 화해하고 싶지 않았어요."

"왜?"

"설중매나무는 더 아름다웠으니까요."

"어허...... 아주 위험한 감정이로구만. ......알았네." (p.124)


​

또한 과거를 기억하는 것도 금기시된다.

그것은 개인적인 의견과 집착을 낳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각력이 없는 화쑥 노인은 편히 살아가기 위해 기억할 일을 피해 은둔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이에 더해, 핏줄과 가문, 자기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도록

새해마다 정씻기술을 마시고 새로 배우자를 선택해 살 수 있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다시는 그 배우자와 함께 살 수 없다.

동시에 책임과 구속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봄, 유난히 여기저기서 광기가 출몰한다.

소설의 첫 대목은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야기는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면서 전개되는데,

사실 범인이 누구인지 독자들이 쉽게 유추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단서들을 남겨 놓았다.

중요한 것은 누가 범인이냐가 아니라,

왜 그런 짓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왜 평화와 안정만을 추구하는 것이 문제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개인의 자유와 감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억누르려는 사람들의 입으로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한 점이다.


​"암, 죄가 되지. 문제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관통하는 상상력일세.

상상은 그 자체로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저마다의 세계를 구축하게 하거든.

상징과 달리 상상은 개인적일뿐더러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 확장되고 성장한다네.

대장장이 남편이나 도기장이 노파처럼 단순한 사람은 그러다가 금방 현실로 돌아오지만

웬만큼 생각과 정신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아. ..." (p.251)


"상상력은 아상(我相)의 세계로 들어서는 통로라네. 위험한 정신 영역이지.

우리 고을에서는 개인이란 존재는 전체를 위한 하나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아!

누구든 독립된 세계를 가져서는 안 돼!

더군다나 그 상상의 세계를 다른 사람 앞에서 떠벌리는 행위는 위험 천만한 일이야." (p.252)


"아무런 뜻도 없는 연극이지.

하지만 아무런 뜻도 없다는 점이 그 연극의 뜻이야.

뒤집어 말하면 현상이 있으면 생각이 있고 생각이 없으면 현상도 없다는 뜻이 아닌가." (p.150)




비판의식을 허구적 이야기에 실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나,

자세히 읽지 않으면 잘 구분되지 않게 장면의 전환이 일어나면서 시점이 달라지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래도 배경이 마치 조선시대인 것처럼 그려진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마지막 부분에 그동안 사장되었던 단어, '아버지'를 나지막이 내뱉는 것도 의미심장했다.


YES마니아 : 로얄 s******2 2015.05.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