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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겐 실례일 수도 있겠지만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가 기억에서 소환되었다. 커다란 중심 사건이 있는 게 아니고 때론 잘나고 때론 잘 나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냥 사람의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다. 1970년대 같은 반이던 초등학교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거치고 대학에 진학해 직장을 구해서 누군가는 결혼까지 하며 사는 40살이 되는 시점까지의 이야기이다. MZ 세대 바로 직전 세대가 처했던 현실이지만 배경을 1990년~2022년으로 옮겨놓는다 해도 그다지 틀리지 않을 내용들이다. 출생에 의해 인생의 상당량이 결정되고 가난을 극복하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며 이 시련을 극복하지 못해 삶을 포기한 사람에게 묘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일은 몇십 년이 흐른 지금도 징그러울 정도로 똑같은 모습이다. 여러 인물이 나오지만 주인공이라 말할 수 있는 두 사람은 지표와 기주. 지표는 과외하던 여학생과 결혼을 하고 기주는 간헐적인 짧은 연애만을 경험했을 뿐 아직 미혼여성이다. 이 두 사람은 아직도 편지를 주고받고 전화통화도 하고 가끔 만나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신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이성 친구의 관계가 중년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이들이 대학생이었던 어느 저녁 친구의 선을 넘었을 수도 있었던 장면을 생각하면 사람 관계의 유지와 단절을 결정짓는 건 내적인 엄격한 원칙 외에 우연적인 상황과 선택인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합리적인 사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운명적인 요소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술을 마시다 라면을 먹으러 들어온 둘만의 공간. 잠시 엎드려 잠든 지표를 깨우지 않고 그 공간을 나온 기주는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많은 겹으로 둘러싸인 걸까. 자칫 방심하면 스프링처럼 툭 튀어나오는 또 다른 모습들. 제 안에 있는 제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평생이 다 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기주는 깊이 한숨을 내쉰다. p180 연륜 있는 작가의 문장은 심도가 깊다. 조리개를 활짝 열어 도드라진 존재 외의 것들을 아웃포커싱으로 죽여버리는 대신 최소한의 빛만 머금을 만큼 개구부를 한껏 조여 모든 피사체에게 선명함을 허락한다. 작가가 담아준 피사체 안에 나의 모습도 있어서 다시 견뎌낼 용기를 얻는다. 산책할 때면, 살고 싶었던 삶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채 그와 동떨어진 곳에서 일상을 견디는 사람들 생각에 걸음이 절로 느려졌다. - 작가의 말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