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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이다. 이 길을 걸어갈 때 우리의 삶의 자세를 돌아볼 수 있다. 왜 공부해야 하는 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 가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조언이 들어있다. 20대에도 읽었고...40대 중반에 다시금 읽어보니 또 새롭다. 다만, 일본의 패전에 대한 한 줄 언급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이에 대한 반성적 사고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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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기질>을 읽고난 직후라 창조적인 대가가 어떤 유년 시절을 보내왔는지 가드너 교수의 이론을 의식하며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대단히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예컨대 독서를 하던 중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항상 가까운 곳에서 존경할 만한 인물을 찾았고,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배우려고 해 왔다."(P. 40)의 문장을 보았을 때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성장시키고 위로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찾아헤매는 모습은 <열정과 기질>에서 지적되었던 창조적인 대가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또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배우기 위해서라도 자기 자신의 loneness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P. 82)에서는 이것이 일종의 '파우스트적 계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밖의 수많은 내용들도 <열정과 기질>과 일치했다. 저자에게 배웠던 가장 큰 덕목은 바로 배움에 대한 집착과 끈기(노력)에 대한 마인드 세팅이었다. 「그때부터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와 끈기를 의식적으로 키워 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은 끈기에 관해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 남보다 시간이 더 걸리지만 끝까지 관철하는 끈기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시간이 얼마 걸리는가 하는 것보다는 끝까지 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나의 신조이다. 이러한 신조가 몸에 배어서인지 나는 한 가지 문제를 택하면 처음부터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들일 각오로 시작한다.」 (P. 57) 「솔직히 나 자신이 볼 때 내가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노력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자신이 있다. 바꾸어 말해서 끝까지 해내는 끈기에 있어서는 결코 남에게 지지 않는다. (...) 나는 남보다 두 배의 시간을 들이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다. 그리고 끝까지 해내는 끈기를 의식적으로 키워 왔다. (...) 노력이란 말은 나에게는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P. 186) 끈기가 '자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었음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야 깨달았다. 나는 쉽게 불안해하는 성격이어서 항상 무언가를 시작하다가도 이것저것 걱정하며 결국 중도 하차한 것들이 많았다. 어쩌면 중도 하차에 대한 이런 결벽증이, 나 스스로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지나치게 무겁게 만들어 역으로 불안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의 내게 끈기는 무조건 필요한 덕목이다. 그리고 마인드 세팅은 가급적 구체적이면서도 단순한 게 좋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된다. "노력이란 말은 나에게는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런 경우에 부딪칠 때마다 (...) 소리내어 말해본다. (...) 어차피 나는 바보니까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 자기 자신을 바로잡음으로써 경직된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 "상대가 안 돼서 포기했어요." 하고 포기하고, "난 바보니까요." 하고 바로 주저앉아 버리는 자세는 학문을 떠난 일상생활 속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체념의 기술이나 바로 주저앉아 버리는 지혜는 큰 실수를 범한 충격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P. 103) 「나는 사람들이 사인을 원할 때 '소심심고(素心深考)'라고 쓴다. 이렇게 쓰는 까닭은 "소박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깊이 생각하라"라고 나 자신에게 항상 타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P. 108) 지속 가능한 노력을 위해, 다시 말해 끈기를 가지기 위해서 저자는 역설적으로 '체념하는 방법'을 습득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맥락상 그것은 겸손과 동의어이다. 사실 필즈상을 받기 전의 저자의 이력을 검토해도, 저자는 무척이나 머리가 좋은 축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치 저자를 '보통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문투가 평범한 것도 있지만 저자 자신이 무척이나 겸손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끈기를 갖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체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끈기를 배우는 것은 역설적으로 체념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사실 내 생각에 이러한 겸손은 그의 어머니의 얘기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훌륭하진 않더라도 남을 해치거나 괴롭히지만 않으면 된다는 "최악의 사태만 피하면 좋다는 사고방식"(P. 37)은 아래를 보는 사고방식이라는 점에서 겸손과 아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지만 이는 겸손을 익히기 유리한 사고방식이지 않을까 싶다. 아마 어머니의 이러한 방침은 의도하진 않았을지라도 자연스럽게 저자를 겸손한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168쪽을 읽고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명망 있고 존경하는 대大수학자 두 명에게 연달아 자신의 연구를 조롱당하는 것은 솔직히 '지독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다고 포기하지 않았다. 남의 의견보다도 본인이 연구하는 분야에 대한 욕망과 열정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뚝심 있고 고집스러운 성격 또한 <열정과 기질>에 지적된 바와 상통하는 내용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후에 이 수학자 중 한 명은 그의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의 말을 듣느냐 마느냐는, 그 사람이 그 말을 들은 나의 인생을 책임져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남들은, 사람들은 결국 책임 따위 져주지 않는다. 또, 책임을 져줄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들어도 의미가 없다. 무책임한 남들의 말에 일희일비하거나 본인의 신념을 꺾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미국의 슈퍼마켓을 시찰한 일본 사람이 "여러 회사를 돌아보았지만 미국 회사는 어수룩하다. 아무것도 배울 게 없다."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 전후 30여 년이 지나서 "경제에서는 미국을 따라잡았다. 지금부터는 추월할 시대이며 미국에서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따위의 말을 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P. 220, 223) 이 문장을 보고 나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가 생각났다. 일본이 서양의학을 흡수해 최초의 근대식 병원을 설립한 시기, 이를 시찰한 조선인 관료가 병원을 둘러보고는 "끔찍하다, 이건 인술이 아니다!"라며 쯧쯧 혀를 찬 얘기가 있었다. 사실 나는 이 사람이 아주 한심하고 또 부끄러웠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이런 틀에 박힌 사고는 결코 국민성 따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더 본질적인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몰락의 증후인 것이다. 넓은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 그러면 결코 좋은 것을 알아보지 못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고 만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몰락이 시작된다. 실제로 더 이상 미국에선 배울 것이 없다는 저 오만한 말은 일본이 한참 경제 호황에 들어갔던 시기에 나왔던 말이었다(사실 당시의 일본으로서는 저 정도의 자신감을 내보일 정도로 대단하긴 했었지만서도). 알다시피 수 년 뒤 일본의 경제는 크게 붕괴되고 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개방적인 마음과 넓은 시야를 가지는 일이다. 그리고 끝없이 배우는 일이다. 지금은 그렇게 해서 끝없이 성장해나가고 싶다. 마치 "살아 있다는 것은 부단히 무엇인가를 배우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P. 70)처럼. 전반적으로 쉽게 술술 넘어가는 책이어서 좋았다. 그리고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대가들의 머릿속을 엿보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3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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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이 주는 유쾌함과 즐거움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창조하는 행위의 유쾌함과 즐거움은 무엇인가. 수학 발전에 현저한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는 '필즈상'을 받은 세계적인 수학자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자신의 학문론에 대해 담담하게 서술하는 책입니다. 자신의 가족과 친구, 수학에 몰두했었던 학생시절, 그리고 계속해서 실패하고 좌절하면서도 세기의 난문 '특이점해소' 정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완성시킨 이야기 등등. 책 제목이 주는 인상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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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꼭 수학자가 아니더라도 제게 큰 감동을 줬던 책이었습니다. 그 울림이 컸던 만큼 다 읽고 반납하고 나서도 다시 읽고 싶더라구요. 저자의 환경적, 정신적 상황이 그리 여유치 않았는데 그 상황에서도 결실을 맺는 내용이라 제 환경에 비추어 좀 고되다 싶을 때는 위로 삼아 책 내용을 음미하고 싶어지더라구요. |
| 인터넷에서 우연히 알게되어 구입해서 가질수 있었습니다. 우선 배송도 빠르고 이벤트 쿠폰도 받아 사용할수 있으니 기분이 좋아요. 책이 번역도 나에게는 잘 맞아 그리 어렵지 않게 읽어지고 내용도 군더더기 없으니 읽어가는데 부담이 없습니다. 끝까지 읽고 싶은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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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포기 않고 지치지 말고 도전해나가는 과정의 중요함 저자의 유년기부터 책을 쓰는 날까지 생애의 모든것을 기록하며 왜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수학을 연구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을 미친 일련의 일들을 저술한 책인데 도움됩니다 |
| 노력이 천재를 이긴다는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어쩌면 천재란 선천적 후전적을 불문하고 끈기있게 노력할 수 있다는 능력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이 없으면 수학이 탄생하지 않는다 글이 와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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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계의 노벨상 "필즈상"을 수상하는 교수님의 스승님이 쓰신 책이라고 해서 읽어보았습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꼽는 추천책이더라구요 작가님의 겸허한 자세와 태도를 배울수 있는 귀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난 공부는 어렵고 좌절의 순간들을 경험하게 하는데 그 경험이 나만의 것이 아니고 누구나 겪는 관문같은거라는걸 다시한번 느끼면서 나도 할 수 있다 라는 용기를 갖게 해줍니다. 지금 어려움을 겪는 수험생들이나 학생들이 읽는다면 무척이나 도움이 될것 같아요. 공부하는 모든이들 화이팅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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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즐거움의 즐거움을 우연히 책방에서 봤다. 그래서 구매를 해봤다. 누군가의 추천이 아닌 오랫만에 우연히 보게 된 책을 통해서 나 자신의 욕심이 생기는 부분이 생겼다. 작가님 처럼 늦었지만 다른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나이가 , 경력 등 그런것보다는 나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나의 의지가 아닌 자는 어쩔수 없이 아무것도 할수 없는 사람인것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이책을 추천해주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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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서 ‘0.1%를 만나다’란 코너를 통해 우리나라의 석학 중 세계적으로 0.1%에 속하는 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안춘기 교수님(지능제어 분야에서 세계 연구 톱이십니다)이 연구자가 된 계기로 일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님이 쓰신 이 책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책을 찾아보니 이미 필즈상을 수상하신 허준이 교수님을 수학자로 이끈 책으로 유명합니다. 책을 열어보니 이미 1982년에 히로나카 교수님이 쓰신 책이었고, 우리나라에는 김영사를 통해 2001년 번역 출간된 책입니다 히로나카 교수님이 1931년 생이시니, 50즈음에 쓰신 책이십니다. 대수학자님이 현역 교수님일 때 쓰신 책은, 학문의 즐거움을 이야기하시면서도 일반인에게는 다소 어려울 듯 하지만, 따뜻합니다. 마치 성공하신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당신의 따뜻하고 겸손하기 그지없는, 그러면서도 한편 젊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해주는 그런 책 같습니다. 어느 시대의 학생들(배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읽어도 변함없는 진리를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이런 책에 감상을 적는 것은 무례한 일이니 머리말의 한 구간을 옮겨 봅니다.
나는 이 책에서 학문하는 즐거움과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원래 학문이나 공부에는 ‘시험 공부’라는 말이 대표하듯이, 고통을 수반하는 지루한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더군다나 나의 전공인 수학이라는 학문은 즐거움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기가 쉽다. 그러나 나는 학문을 즐거운 것, 기쁨을 맛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학문에는 배우는 일, 생각하는 일, 창조하는 일의 즐거움과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배우는 일, 그것은 즐겁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혜’를 얻는다는 면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생각하는 일은 더 즐겁다. 인생이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 깊이 고민할 때는 생각하는 것이 때로 고통스럽게 느껴지지만 대체적으로는 즐거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것 또한 즐겁다. 나는 늘 ‘창조하는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창조’란 무엇인가? 이 물음 또한 어렵다. 그러나 창조는 결코 학자나 예술가의 전매 특허는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부단히 쌓아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저 리스펙입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늦지 않았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