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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충돌/새뮤열 헌팅턴/이희재/ 김영사/2016 많이 들어는 봤지만 읽어보진 않는 고전에 속하는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은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했던 책 문명의 충돌입니다. 책은 당연히 두껍습니다만, 이희재 씨 번역이라 마음이 조금 놓이네요.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를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구 인류의 문명을 몇 개로 나누고, 각 문명의 성장과 쇠퇴 그리고 소멸을 다루었던 토인비는 서구 문명의 역시 쇠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책을 끝맺었죠. 이 책에도 토인비의 문명을 다루는 관점을 언급하면서 수용하고, 서구 문명 아니, 미래 인류의 문명은 이렇게 될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토인비의 걱정이 기우인 것 만은 아닌 것이, 헌팅턴 역시 서구 문명이 지금 같지는 못할 것이다 라고 하네요. 토인비는 오랜 과거에서 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긴 시간을 거시적인 안목으로 다루고 있지만, 새뮤얼 헌팅턴은 그 오래된 과거가 지금 이 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하면서 지금 현재 나타나고 있는 세계의 판도를 통해 가까운 미래를 추이해 보고 있습니다. 정치학을 전공했고 직접 현실 정치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써 훨씬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를 하고 있구요. 긴 글이지만 논지는 어찌보면 간단합니다. 냉전 시대 이데올로기가 무너지고 나자 서구 사회는 특히 미국은 자유 민주주의라는 원칙이 이 세상의 유일한 가치, 적어도 최고의 가치를 가진 이데올로기로로 작용할 것이고 세계는 이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이데올로기가 무너지자 사람들은 자신의 또다른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고, 그것을 자신의 역사 속 문명에서 찾았던 거죠. 원인은 다양하겠습니다만 사실 서구 자유주의라고 하는 것이 좋게만 작용하지 않은 것도 하나의 큰 이유일 것입니다. 이름은 자유주의인데, 식민지인들의 자유를 엄청나게 억압했고, 나중에 독립하고 나서도 서구의 구미에 맞는 정권의 편을 들어서 정작 그 나라 국민들의 자유는 백안시 한 것이죠. 그리고 아예 근본적으로 안 맞는 것도 있습니다. 다신교 나라와 일신교 나라가 맞을 리가 없죠. 인도가 아무리 영국의 식민지 였다고 해도 인도는 인도죠. 또, 같은 일신교라고 해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맞을 리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교 문명이기는 하지만 지금 그 문명에 뿌리는 둔 서구는 사실 무신교도가 엄청나게 많고 정치와 종교와 문화가 모두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가지가 모두 결합되어 있는 생활이 이슬람인 문명이 맞을리가 없습니다. 저자가 보는 세계 지도는 이제 이 문명에 따라 갈라져 있으며, 이 문명이 만나는 부위에서 끊임없이 전쟁과 테러 소요가 그치지 않습니다. 유고연방의 해체와 지금 아랍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 역시 이것 때문이죠. 특히 유고 연방 해체 과정에서 일어난 기나긴 내전(인지 아니면 다국적 전쟁인지)은 아주 단적인 예로서 길고 상세하고 그러면서도 깔끔하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달리 언급은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지금 그 내전은 어느 정도 일단락 되었지만, 아직도 시리아에서 촉발된 내전(이 역시 내전인지 다국적 전쟁인지)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죠. 그리고 이 전쟁은 놀랍게도 새무얼 헌팅턴의 예언되로 되어가고 있는 양상입니다. 미국은 별로 건질 것이 없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유력해 지고 있거든요. 유독 이슬람은 왜 이렇게 격렬하게 맞서는가. 저 역시 가지고 있던 의문입니다. 이슬람이 정치 종교 문화가 융합된 그야말로 형제애로 똘똘 뭉친 집단인 것도 큰 이유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하게 언급된 것은 청년층이 많다는 것입니다. 실업율이 높은 곳의 젊은이들은 불만이 많고 원리주의에 빠지기 쉽죠. 이건 어떻게 보면 이슬람 문화권이 워낙 형제를(만) 강조하는 부족사회이다 보니 여성 인권이 떨어져 있고 출산율도 현재 다른 곳에 비해 높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이곳도 조금씩 달라질 것 같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도 이제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까 말이죠. 서구의 모든 학자들이 그러하듯이 저자도 동아시아를 특히 중국을 견제하는 논조입니다. 냉전 시대에는 소련을 견재하기 위해 미국과 수교를 맺었고 이후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중국은 서구의 모습을 따라가기 보다는 자신의 위대했던 과거, 유교적 이상향을 다시금 강조하기 시작합니다. 중국 문명에 빨려 가지 않았던 주변국이 거의 없었고(국경을 맞대고도 영향을 받았건만 빨려들어가지는 않은 우리나라와 베트남이 독하긴 독한가 봅니다) 그 사실은 서구도 잘 아는 이상 어느 나라 보다 중국을 더욱 신경쓰고 있는 것이 서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중국은 필요에 따라 이란과도 동맹을 하고, 이제는 러시아와도 손을 잡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이 책에서 보는 일본의 미래는 그리 밝진 않습니다. 아시아면서 탈아시아를 외쳤던 일본이 다시금 아시아를 외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씌어진 시대의 기조였지만, 지금 일본은 다시금 미국의 편에 붙어 중국을 견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도저도 아닌 일본은 고립되어 갈 가능성이 높다고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대만 등과 더불어 중화권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상황이 일본이나 중국과 또 다른 것이 서구 종교의 입김이 강하다는 겁니다. 그것은 500년 조선 시대 동안 유교가 득세하면서 불교를 억눌러온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구한말 백성들이 힘들 때 유교세력은 나라를 말아 먹었고 불교는 백성들을 일으켜세울 힘이 없었던 상황이라 서양 종교가 그 틈을 타고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와 대기업화된 기독교의 면면을 보면 꼭히 그런 순수한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만. 어쨌거나 그렇다보니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사실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일부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바, 결국 우리나라는 중화권이라고 해도 한민족주의 같은 정체성을 내세우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 책에서는 이런 문명 중심으로 세계가 재편되는 양상을 보아하건데, 우리 나라는 아마도 통일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지금 무드를 보면 적어도 교류는 할 것 같으니 세삼 저자의 통찰력에 무릎을 치게 됩니다. 아무도 미래 사회를 완벽하게 점칠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구가 지금과는 같이 않을 것이라는, 보편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서구의 착각이거나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지금 들어도 과연 그러하구나 하고 감탄을 자아냅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저러는 것도 확고한 자기 카테고리를 짓는 거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에이미 추아가 제국이라면 제국 답게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제국은 없습니다. 미국에 산다면 일단 미국의 가치를 먼저 수용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가치관은 2번으로 두어야 하는 거죠. 그렇지 않다면 그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어느 나라라고 할 지라도 사분오열 되어버릴 것이라는 것이 헌팅턴의 매우 현실적인 조언입니다. 냉전은 사라졌는데, 어쩌면 미국 혼자 냉전의 시스템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는 걱정을 하면서 이러다가 서구 문명이 쇠락할까 걱정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결국 가재는 게 편이겠지만요.
역사의 연구처럼 힘들까봐 걱정했는데 훨씬 쉬운 문체로 적당히 재밌고 흥미 진진하기도 합니다.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거시적 안목을 키우는데 도움도 되구요. 저로서는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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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충돌의 해결, 즉 문명들의 미래를 문명의 화해와 공존으로 보았다. 문명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서로를 인정하며 사는 것, 그것이 해법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소련의 해체 이후에 써진 책이다. 그 시기에는 냉전의 종식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형태의 국제질서가 필요해졌을 때이다. 그래서 헌팅턴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토인비의 문명사관을 바탕으로 한 도전과 응전, 즉 문명들의 충돌로 보았다. 이런 문명의 충돌은 서구와 이슬람, 동아시아의 큰 문명충돌로 나뉘는데, 이슬람과 동아시아는 그렇게 큰 문명충돌이 없다고 본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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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헌팅턴의 약력을 확인하던 중 그가 카터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1977~1978)을 지냈다는 정보를 보고는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카터 행정부에서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안보담당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입니다.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읽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의 감상은 한마디로 ‘기분이 더럽다’였습니다. 세계를 하나의 큰 체스판으로 보고 국제적 역학관계와 미국의 전략을 소개하는 책으로 기억합니다. 미국의 행정부에서 근무했던 사람의 책이니 미국이 세계를 보는 시선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해서 읽었는데 일방적인 그들의 생각에 체스판의 졸이 된 우리나라를 보는 현실이 싫었습니다.
40여 년간 지속된 냉전 체제가 1990년을 전후해 갑자기 해소되자 냉전 이후 세계질서의 구조가 사회과학계에서도 논쟁의 초점이 되었고 기선을 제압한 것은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이란 도발적 표현으로 제시한 자본주의 일원론이었습니다.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인류의 사회문화적 진화가 종착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승리에 도취한 주장으로 보입니다. 반대편에 있던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이때 심한 좌절감에 빠졌다는 얘기를 듣고는 의아했습니다. 이념이 갈려 같은 민족끼리 잔인한 전쟁을 겪었으면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을 할 법도 한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가 봅니다. 요즘은 시선이 많이 달라졌지요?
엊그제 ‘하이재킹’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비행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가려는 납치범과 그에 대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북한으로 가는 민항기의 엔진을 쏘라는 명령을 무시한 공군 조종사인 주인공은 그들이 비록 북한으로 갔지만 죽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의 상관은 비행기를 쏘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으므로 해서 피납되어 북송된 승객의 가족 수천 명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합니다. 피납된 원인이 어디에 있든 북쪽에 갔다 온 사람들은 사상 검증을 받아야 했습니다. 연좌제가 판을 치고 빨갱이라고 하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세상이었습니다. 2024년 7월, 과거 하이재킹 사건을 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함이 있습니다. 이념이 지배하는 인간 세상이 아니라 사람 먼저 생각하는 세상에 다가갔다고 믿습니다. 이야기가 옆길로 빠졌습니다.
저자는 냉전 체제가 비록 붕괴되었다 하더라도 세상은 자본주의로 통일되어 평화가 오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다른 문명 속에 사는 국가와 민족은 충돌을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세계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는 주장을 펼칩니다. 이슬람문명, 기독교문명, 아시아의 유교문명, 인도의 힌두문명 등이 지금 어떻게 갈등을 하면서 충돌하는지를 증거를 들이대며 주장합니다. 서구 기독교 문명을 기반으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성숙한 민주주의 선진국이 된 핵심 국가들 간의 분쟁보다는 서로 다른 문명을 가진 단층선이 분명한 국가들 간의 단층선 전쟁이 어디서나 언제나 일어날 수 있으며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발칸반도에서의 분쟁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분쟁이 어떻게 체첸과 러시아 간의 분쟁과 연결되어 있는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지금의 전쟁은 과거 어떤 사건 사고들에 의해 예비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했습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의 분쟁은 어떤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 정치의 활력을 우리 정보회사들은 매일 보도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지만 동아시아의 변방의식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국제정보에 대해서는 주체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주체적이지 못하니 국제정보에 대한 중요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듯도 합니다. 그들을 통하여서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국제무대에서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세계를 폭넓게 보고 이해하는 학자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공격한 것에 대하여 보복공격을 하고 이에 대하여 전 세계가 보복의 정도가 심하다고 비난을 하지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헤즈블라가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한 공격을 합니다. 이스라엘은 헤즈블라와의 일전도 불사하겠다고 합니다. 미국의 지원은 받으면서도 미국의 간섭은 싫다는 이스라엘이 많이 나가면 이란과의 전쟁도 예상된다는 뉴스도 나옵니다. 이 분쟁은 유대문명과 이슬람문명 간의 갈등이 원인일 것입니다.
저자는 남중국해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동아시아 세력과 미국의 세력이 충돌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책의 끝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미일이 ‘동맹’이라는 주장을 하는 국민의 힘 의원들에게 ‘정신 나갔다’는 비판을 한 의원이 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 영토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고 평화헌법을 부정하며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겠다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는 일본이 생각났습니다. 미국에 바짝 붙어 중국과도 일전을 불사할 듯 설치는 일본이 보입니다. 그런데 미국인의 시각에서는 일본이 결국 중국 편에 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 같은 초보가 어찌 알 수 있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국제 정세를 잘 읽어주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저렴한 방법을 찾는 게지요. 책이 좋겠지요. 아~ 사뮤엘 헌팅턴에게도 한국은 여전히 졸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은 단어로만 존재합니다. 문장은 없습니다. 참고하시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독도를 지키는 독도경비대원들은 무시무시한 바다 모기에 시달릴 것입니다. 그들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
|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입니다. 헌팅턴은 세계를 우리가 알고 있는 개별 국가가 아닌 서방과 라틴아메리카ㆍ이슬람ㆍ힌두교ㆍ유교ㆍ일본 등 7개 내지 8개의 문명들로 나누고 국가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이념의 차이가 아니라 전통, 문화, 종교적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문명이 세계를 구분짓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며 가장 위험한 분쟁은 문명과 문명이 만나는 단층선에서 발생한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는 논조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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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헌팅턴 작가님의 '문명의 충돌'의 리뷰입니다. 새뮤얼 헌팅턴에 대해서 들어는 보았지만, 그가 쓴 저서는 이번에 처음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정말 세계 정세가 다사다난하고 복잡합니다. 위기감이 샘솟고 있다고 느껴지는데, 이런 세계 정세를 알기 위해서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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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부터 읽으려고 하면서 읽지 못하던 책을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를 읽고 나서 강한 독서욕구로 읽기 시작했다.
역사를 나라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문명의 관점에서 써 나가는 서술은 스케일 면에서 웅장함을 느끼게 해줬다. 고대 문명과 그로 이어진 현대의 문명들, 종교와 관련된 문명들에 대한 이야기들과 그들의 필연적인 충돌에 대한 것들을 읽으면서 필연적으로 벌어질 사건들이었다고 생각이 된다. 저자의 예언같은 그런 일들이 앞으로도 일어날 것을 생각하니 이러한 관점으로 폭 넓게 보는 시야를 키워야 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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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새뮤얼 헌팅턴은 한국에서도 베스트 셀러가 된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등의 멘토일 만큼 유구한 세월동안 확고하게 자리잡은 학자로서 명성이 높다.
과거, 새로운 문명이 충돌한 이야기가 현재 그 어느때보다도 복잡하게 돌아가는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데 정말 중요한 키가 되어줄 것이다.
특히 오랜 세월동안 국제 세계와 고립되어 자기들만의 조그마한 세계를 구축한 북한이 이제 세계와의 조우를 목전에 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주축이 되어 세계를 이끌 기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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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던 민주주의 대 공산주의의 냉전시대가 소련의 해체로 그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은 소련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키르키즈스탄 등의 러시아 연방으로 갈라져서 미국의 독주를 막을 수가 없게 된 것이죠. 냉전시대의 종식 대신에 새로운 대립 구도가 국제질서를 바꾸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문명간의 충돌입니다. 크게는 서구 대 비서구, 좀 더 세분화 해 들어가면 그리스도교 문명, 러시아 정교, 불교 문명, 이슬람 문명, 힌두 문명 등의 종교에 따른 문명권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은 바로 문화의 차이에 따른 문명의 구분이 됩니다. 미국/독일/프랑스, 중국, 인도, 이란/이라크 등으로 대표되는 문명들간의 충돌은 최악의 경우 지구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방대한 실제 데이타들과 각 나라의 정치 이해관계, 군사력 비교 등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서로 다른 문명들 간의 갈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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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한 이슬람테러주의자들에 의해 야기된 세계무역센터 빌등 참화 사건의 발발로 인해 새뮤얼 헌팅텅교수의 문명의 충돌은 더욱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 이사건에 대한 새뮤얼헌팅턴의 언급은' 이것은 문명의 충돌이 아닌 다소 지엽적인 사건 일뿐이다'로 요약된다. 실제로 자신이 내놓은 세계패러다임이 맞아가는 데서 두려움을 느껴서 인가 아니면 자신의 발언의 더욱더 이슬람과 서구의 격전에 부채질을 역할을 할 것 같아서 발뺌하는 거였나. 마지막 장에서 헌텅턴은 서구의 미래에 대해서 한장을 할애해서 기술하고 있다 서구에 대한 나침반을 제시하고 있다. 말로는 문명 화해와 공존의 메시지이지만 마지막장에서 나타난 거와 같이 헌팅턴은 또다른 형태의 서구의 우월적인 지위를 보장, 유지하기 위한 지침을 내려 놓는다. 이것은 서구인의 서적이라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이후의 문명을 중심으로 배치되는 세계정세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