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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한 명언이 이 책 주제의 상당 부분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다른 사람처럼 되고자 하기 때문에 자기 잠재력의 3/4을 상실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의미 없이 타인을 모방하는 것으로 잘못 설정한 인생의 좌표가 끼치는 해악이 그에 그치지 않음을 지적합니다. 자신의 삶을 살지 않고 남의 가치관을 추종하는 삶의 방식이, 그렇게 사는 내면에 근원적 불안을 야기한다는 거죠. 실제로 "공황 장애"같은 증상은 일분 일초를 쪼개어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 오히려 자주 찾아 옵니다. 저 역시 업무 중에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같은 당혹스러움을 문득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일을 진행하지 말고, 심호흡이라도 한 번 한 후 루틴에 복귀해야 합니다. 짧은 순간이라도 이런 체험을 한 후 느끼는 불안감과 충격은 상당하고 기억도 오래가는 편입니다.
한국 사회는 단기에 고도 성장을 겪은 과정에서 "나 자신을 차분히 응시하고 내면에 몰입하는 과정"을 한가로운 사치로 여기는 경향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물질적 풍요를 얻게 되자 비로소 당연한 궤도로 복귀하게 된 겁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얻게 되는 가장 큰 축복은, 낳아주신 부모님의 형질과도 반드시 일대일로 대응되지 않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의 조합 중 한 세트의 선택으로 자기만의 개성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얻은 축복을, 먹고 사느라 바빠서 혹은 주위의 요구에 부응하느라 포기하고 다른 어떤 전형에 억지로 적응하는 삶이, 결국은 부작용과 불만, 그리고 불안과 만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성장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치는 "사회화"와는 또 다른 개념적 영역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개별화한 존재라도, 자아실현과 성취를 자신이 속한 사회가 허용하는 방식으로 이뤄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진로를 걷는 방식은 사회가 정한 바를 따르되, 어느 지향성을 내면에 새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바를 골라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모두 타인이 정한 바에 따라 삶을 사니, 숨을 쉬고 수족을 놀려도 마치 내가 아닌 타인의 조종에 따르는 꼭두각시 같은 위화감을 정신에서 거둘 길이 없는 거죠.
저자들은 이런 관점에서, 아무리 많은 노력을 투입해도 근본적 목표가 잘못 설정되어 있는 인생은 만족을 느낄 수 없거나, 잘못된 길에서 방황하는 불행을 면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설사 노력이 덜 기울여져도,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고 어떤 과제에 가장 능숙한지만 올바르게 파악한다면, 남들에 비해 소위 "가성비가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있습니다. 사실 성인이 되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기란 부자연스럽거나 힘들 수 있고, "생각의 봄"을 맞이하는 사춘기 때에 이 과업이 충실히 이뤄지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도 가르칩니다.
저자들은 물욕, 성욕, 명예욕 따위보다 인생의 가장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게 "오리지널리티"라고 합니다. 내가 다른 누구 아닌 나임을 가장 강렬하게 확인하는 순간, 다른 정당화나 동기 유인을 마련하지 않아도 그 사람은 누구보다 큰 열정을 지니고 효율적인 선택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오리지널리티의 구조는 무엇으로 짜여져 있는가. 저자들은 정체성, 개인성, 창조성 등의 요소가 이를 구성하며, 그 외에 잘 발견되고 조화롭게 짜여진 오리지널리티가 지속될 수 있는 필수 조건으로 "성과"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성을 분석하는 대목에서, 저자들은 바르게 인식된 (자신의)개인성이 오히려 타인의 "다름"을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초가 되고, 억지스럽게 형성하려 드는 수고 없이 타인과의 관계를 재미있게 이루는 동인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참으로 올바른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성"의 파악은 미시 단계에 머물지 않고, "우리"라는 거시로까지 확장되는 데에 궁극의 목적이 있습니다. "나-너-우리"로 이어지는 삼원적 관점이, 기계적, 획일적으로 형성되는 게 아니라 나와 타인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유기적으로 구축되는 과정에서, 관계와 개성과 협동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바르게 지어진 개인성의 토대 위에 창조성, 즉 혁신의 씨앗이 움틀 수 있고, 이는 건실한 오리지널리티의 본질을 가꿉니다. 여기서 저자들이 잊지 않고 강조하는 바는, 성과 없이 오리지널리티만 허울 좋게 서 있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길은 결국 자기만족적인 독창성이 아니라, 구체적인 성과가 사회적인 양태로 지속적 재생산이 가능한 삶입니다. 평소에 생각하던 바를 정연하게 확인시켜 준 고마운 책을 읽은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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