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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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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님의 선종 7주기인 올해, 전기작가이자 김수환 추기경님의 동성중고등학교 후배인 이충렬 실베스텔 씨가 김수환 추기경님의 87년의 삶을 복원한 전기를 지난 3년 동안 준비한 노력의 흔적이 역력합니다. 저조차 생각하지 못한 사진자료 또한 풍부해서 놀랐습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두 눈을 이웃에게 내어주는 나눔을 몸소 실천하며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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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님의 선종 7주기인 올해, 전기작가이자 김수환 추기경님의 동성중고등학교 후배인 이충렬 실베스텔 씨가 김수환 추기경님의 87년의 삶을 복원한 전기를 지난 3년 동안 준비한 노력의 흔적이 역력합니다. 저조차 생각하지 못한 사진자료 또한 풍부해서 놀랐습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두 눈을 이웃에게 내어주는 나눔을 몸소 실천하며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참 행복의 길임을 알려주셨습니다. - 추기경 염수정 안드레아

 

 

미움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1980년 1월 1일 아침, 새벽잠에서 깨어난 김수환 추기경은 제의를 입고 3층 소성당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지난 10년 동안 희망으로만 품고 있던 민주화와 정치 발전이 질서 속에서 평온하게 이루어지고, 가난한 사람들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 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집무실로 온 김수환 추기경은 시계를 봤다.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과 몇 몇 군인 신자들이 새해인사를 오겠다는 시간이 가까워왔다. 전 소장은 2년 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 1978년 강원도 1사단 사단장으로 부인해 사단의 성당 준공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그는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였다. 또 강원도를 관할하건 지학순 주교, 1사단 군종신부인 정인준 신부 등과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잠시 후, 전 소장 일행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모두 위풍당당했지만 추기경 앞에선 겸손했다. 새해 덕담이 오고간 후 12.12 사태 이야기로 넘어가며 전 소장은 "추기경님, 그때 정승화 총장이 10.26 박정의 시해 사건과 관련된 혐의가 나타났기 때문에 연행 조사가 불가피했습니다"라면서 당시 상황을 길게 설명했다.

 

한참 이야기를 듣던 김수환 추기경은 "전 소장 말을 들으니까 어떤 점은 좀 이해되는데,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전체를 위한 정권이 서부활극 모양으로 돼서는 안 됩니다. 어느 쪽이 총을 먼저 빼들었느냐에 따라 군의 전권이 왔다갔다 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전 소장 쪽이 총을 뽑았기 때문에 군대의 실권을 잡은 것 아니오"라고 말했고, 전두환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 우리 국민은 정말 군이 나라를 위해 국방에 전년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나라가 지금처럼 힘의 공백 상태에 있을 때 군인들이 다른 마음을 갖는 일이 생겨서는 절대 안 됩니다. 모두 중요한 위치에 계신 분들이니, 새로운 정부가 성공적으로 출범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김수환

 

 

 

6.10 민주항쟁

 

1987년 6월 10일 오전 10시, 민정당은 잠실체육관에서 '제4차 전당대회 및 대통령후보 지명대회'를 개최했다. 같은 시간, 무교동 민추협 사무실에서는 옥외방송을 통해 오후 6시 국민대회 참여를 호소했다. 점심때가 되자 무교동 식당으로 가던 지장인들도 민추협 회원과 민주당원들과 어울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다. 이에 시민들도 동조했다. 시위대는 순식간에 2천여 명으로 불어났다. 경찰은 오후2시부터 최루탄을 발사하며 해산직전을 펼쳤다.

 

이날 명동성당에서는 오후 6시 30분에 '민주화를 위한 특별미사'가 진행되었다. 이 미사에는 고 박종철의 어머니가 참석해 400여 명의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렸다. 2천여 명의 시위대는 민정당 대통령후보 지명 축하 리셉션이 열리는 남산 힐튼호텔로 향했고, 호텔 부근에서 경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날 서울에서 시위는 밤 11시경까지 도심 60여 곳에서 계속됐다. 퇴계로와 신세계백화점 앞의 시위대 중 1천여 명이 경찰에 쫓기며 9시경부터 명동성당으로 들어왔다. 학생과 시민들이 섞인 시위대는 문화관에서 철야농성을 했다. 이후 김수환 추기경은 경찰로부터 학생들의 안전귀가를 보장받고 시위대를 설득해 자진해산시켰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 김수환 추기경

 

 

 

나도 출마합니다. 지역구는 천국입니다

 

2002년 1월 14일, 김수환 추기경은 동아일보 이광표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지난 연말부터 몇 번이나 혜화동 주교관 비서수녀를 통해 간곡한 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자는 간단하게 근황을 묻고는 "추기경님의 숙소를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이제까지 언론에 공개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숨길 것도 없어 침실까지 보여줬다.

 

다시 집무실로 내려온 후 그는 이 기자에게 "부탁을 들어줬으니 나도 부탁할 게 있다"면서, 자신의 얼굴 사진이 담긴 열쇠고리를 건넸다. "저도 올해 출마합니다. 기호는 1번입니다" 기자가 깜짝 놀라며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지역구는……", '지역구'라는 말에 기자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때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천국입니다" 그 특유의 유머였다. 그러나 기자는 올해 80세 노老 추기경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말에 웃을 수가 없었다.

 

 

열린우리당을 향한 쓴소리

 

2004년 4월 28일, 김수환 추기경은 동국대 불교경영자 최고위 과정 초청 특강을 했다. 그는 '21세기 지도상'이란 주제를 놓고 새로운 정치의 지도자들은 독선과 배척이 아니라 사랑과 진리에 기반을 두고 국민들에게 봉사해야 하며, 자기와 생각이 다를지라도 그들의 소리에 귈를 기울일 줄 아는 것이야말로 새 시대의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말했다.

 

특강이 끝난 후 한 수상생이 질문을 했다.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가 칼럼에서 김 추기경을 비판한데 이어 후배되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함세웅 신부도 김 추기경을 시대에 뒤쳐진 분이라고 비판했음을 거론하면서 이에 대한 김 추기경의 심정과 입장을 정리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김 추기경은 이렇게 답변했다. 이 말은 오랫동안 언론과 사람들 입에 회자되었다.

 

"그런 비판을 한 분들께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분들의 지적은 저에게도 큰 교훈을 줍니다. 지금까지 너무 칭찬 말씀만 듣고 살아서 '나를 우상으로 만들려는가' 하고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죽어서 하느님 앞에 갔을 때 '너는 그동안 칭찬을 다 들었기 때문에 나에게 칭찬 들을 말은 없다'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습니다. 비판과 욕을 먹는 것이 제 삶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강연에서 남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된다고 한 것은 저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은 전날부터 시작된 폐렴 증세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문병 온 정진석 추기경과 염수정 주교, 조규만 주교 등 서울대교구 주교단과 명동성당 주임 박신언 몬시뇰에게 "나는 너무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여러분들도 사랑하세요"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명동성당 종탑에서는 뎅그렁뎅그렁 열 번의 조종이 울렸다. 그가 늘 바라보던 십자가 아래에서는 추기경 휘장과 검은 리본이 바람을 따라 펄럭였다. 그의 나이 87세였다. 다음 날, 두 명의 시각장애인이 각막이식수술을 받고 눈에서 붕대를 풀었다.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빛이 보였다.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사랑이었다.
이달의 사락 5****0 2016.03.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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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밥이 되어 주십시오《아, 김수환 추기경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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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선종 7주년이 되는 한국 종교계에 큰 별이 된 '김수환 추기경'의 책이 나와 화제입니다.  다소 두꺼운 분량, 종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더라도 한국의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는 의미 있는 책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미 《간송 전형필》로 '이충렬'작가를 만나보신 독자에게는 즐거운 독서가 될 것입니다. 특히, 방대한 사진 자료를 수집하고 미공개 사진까지.. 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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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선종 7주년이 되는 한국 종교계에 큰 별이 된 '김수환 추기경'의 책이 나와 화제입니다.  다소 두꺼운 분량, 종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더라도 한국의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는 의미 있는 책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미 《간송 전형필》로 '이충렬'작가를 만나보신 독자에게는 즐거운 독서가 될 것입니다. 특히, 방대한 사진 자료를 수집하고 미공개 사진까지.. 그 역사의 증인 찾아 인터뷰하며  퍼즐 조각을 맞추듯 추기경의 삶을 다시 그린다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써 내려간 전기 소설이란 형식이 다소 당황하셨다면 전작인 《간송 전형필》을 만나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실제에 가장 근접하여 인물의 궤적과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기록 장르인 전기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독특한 장르가 되기도 하였는데, 이번엔 김수환 추기경의 굴곡진 삶을 3년간의 작업 기간을 걸쳐 한국 역사와 함께 써 내려갔습니다.  

 

 

 

책은 총 2권으로 1권 : 신의 향하여와 2권 : 인간을 향하여로 나뉘어 있습니다. 1권에서는 옹기장이 집안 대대로 내려온 천주인의 잔뼈 굵은 신앙심으로 두 형제가 가난을 이겨내고 신부가 되기 위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항렬에 맞춘  순한이란 이름이 열두 살에야 '수환'으로 바뀌었음을 알게 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서운하다거나 의구심 없이 받아들이는 어린 수환의 일화는 훗날 종교인의 욕심 없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1922년 생인 김수환 추기경은 말 그대로 한국사의 중심에 삶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과 광주 민주화 운동을 시작으로 경제 발전과 인권 사이에서 화약고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국민들과 일화가 투영되어 있습니다. 항상 낮은 곳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진정한 한국사의 어른의 깊은 뜻을 사진과 문헌을 통해 알아볼 수 있어 좋습니다.



 


국가는 인간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있고 국가가 있습니다. 인간이 국가 사회의 토대요, 중심이요, 목적입니다. 국민이 곧 국가이지, 정부가 국가이고 국민이 구가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먼저 국가가 있고 국민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국민 각자는 국가의 종속물에 불과한 양 간주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권력의 절대화가 생겨났고, 국민의 기본 인권이 크게 침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누구나 아시다시피 그간 권력에 의한 지나친 강압정치, 정보정치로 말미암아 공포 분위기 속에서 용납할 수 없는 심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어왔습니다.

《아, 김수환 추기경 1》P426

이 연설문은 김수환 추기경이 유신정권을 개탄하는 인권 연설문의 일부입니다. 1970년대의 일이지만 지금도 비슷한 일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네요. 역사는 왜 이리 반복되는 것인지 참 아이러니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비폭력 시위인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늘 '화해와 일치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 같지만, 이것이 아니고는 살길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경제발전으로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이기주의와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풀어보는데 앞장섰습니다. 가톨릭 '고백의 기도'에 나오는 '내 탓이오'라는 구절을 통해 최근 사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문제점과 외로움을 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탓으로 인정하며 서로 아끼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87년간의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김수환 추기경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아픈 자와 건강한 자를 나누지 않고 모두 사랑하였습니다. 종교를 떠나 한국사의 아픈 순간을 함께하고 어루만져 주었던 추기경의 손길이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세상은 놰 날이 갈수록 흉흉한 사건사고를 경쟁적으로 토해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마다 곁에 두고 추기경의 따뜻한 행보를 곱씹으며 자신만의 위안을 얻고 싶습니다. 윤달의 마지막 날, 4년마다 한번 씩 온다는 29일이 아련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환한 모습이 그립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사랑하십시오! 서로 밥이 되어 주십시오! 그뜻 잊지 않겠습니다.

 

 

 

d*****9 2016.02.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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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김수환 추기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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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 다니는 캐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김수환 추기경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한번쯤은 들어 봤을거라고 생각한다이 책을 통해서 그 분의 삶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그 분처럼 늘 감사하며 서로 사랑할수 있기를 바란다한국 현대사를 파노라마처럼 생생히 보여주는 360여 장의 사진,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의문에 대한 답까지!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한 김수환 추기경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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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 다니는 캐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김수환 추기경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한번쯤은 들어 봤을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서 그 분의 삶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 분처럼 늘 감사하며 서로 사랑할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 현대사를 파노라마처럼 생생히 보여주는 360여 장의 사진,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의문에 대한 답까지!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한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영성을 총체적으로 그려낸 공인 전기의 탄생. 김수환 추기경 개인 일기에서부터 미사 강론, 묵상, 서간, 저술 등 각종 기록을 비롯해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자료, 추기경과 함께했던 선후배 신부들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찾아가 사실을 확인하고 육성을 담았다. 왜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 무엇을 위해 사느냐에 대한 질문과 답으로 깊은 울림을 전하는 책. 위대한 순례자의 여정에 당신을 초대한다. 위대한 존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i 2017.01.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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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김수환 추기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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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당에 다니는 캐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신자가 아니어도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알고 싶었다 이 책은 종교여부를 떠나서 그분의 발자취를 뒤 찾아보기에 부족함이 어뵤은 책이다좋은 삶, 행복한 삶, 가치있는 삶을 찾아 위대한 순례자의 길에 동행한 《간송 전형필》 작가 이충렬의 감동대작! 정치와 사회가 균형을 잃고 정의가 위협받을 때 참된 정신의 상징으로, 갈등과 이기가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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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당에 다니는 캐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신자가 아니어도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알고 싶었다
이 책은 종교여부를 떠나서 그분의 발자취를 뒤 찾아보기에 부족함이 어뵤은 책이다

좋은 삶, 행복한 삶, 가치있는 삶을 찾아 위대한 순례자의 길에 동행한 《간송 전형필》 작가 이충렬의 감동대작! 정치와 사회가 균형을 잃고 정의가 위협받을 때 참된 정신의 상징으로, 갈등과 이기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시대의 스승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서 소리 없는 자의 소리가 되어준 큰 어른.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메시지부터 고비마다의 고뇌와 결단, 불면의 밤과 인간적 외로움, 내면세계와 영성의 완성까지. 한 아름다운 인간의 모든 것을 철저한 사실에 바탕하여 온전히 되살려낸 최초이자 유일 전기 정본.
YES마니아 : 플래티넘 s********i 2017.01.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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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추기경님을 곁에서 바라보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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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님에 대한 막연한 느낌은 "소박하시고 서민적이며 친근하다"는 것이었다...바보처럼 살아가며 서로 사랑하란 마지막 말씀이 오랜 동안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게 되는 것 또한 스스로 그 길을 묵묵히 걸어오셨기에 더욱더 진실되게 다가갈 수 있었음일 것이다..김 추기경님의 탄생에서부터 어머님의 헌신적인 지원과 강직함 속에서 수많은 갈등을 겪어내고 신부님이 되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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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님에 대한 막연한 느낌은 "소박하시고 서민적이며 친근하다"는 것이었다...바보처럼 살아가며 서로 사랑하란 마지막 말씀이 오랜 동안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게 되는 것 또한 스스로 그 길을 묵묵히 걸어오셨기에 더욱더 진실되게 다가갈 수 있었음일 것이다..김 추기경님의 탄생에서부터 어머님의 헌신적인 지원과 강직함 속에서 수많은 갈등을 겪어내고 신부님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수도자로서의 고민과 성찰, 주변 지인들과의 만남, 사회적 어려움과 역사의 격랑속에서의 소신있는 모습을 고스란히 살펴봄으로써 추기경님과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 들게하는 책이다. 무엇보다 막연히 좋은 분에서 많은 고민과 역경을 이겨내고 삶을 완성해 나가는 수도자로서의 모습을 알게됨으로써 진정 인간이 살아가야할 삶의 지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성찰하게하는 시간이 되었다...1,2 권 책의 두께가 무색할 정도로 가슴속 깊이 다가와 시간의 감각을 무디게 하는 그런 글이자 삶이었다...

YES마니아 : 로얄 k****m 2016.03.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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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밥이 되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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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시대를 살았던 추기경 김수환의 생애는 개인사에 그치지 않고 깊은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전기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전기임과 동시에 당대를 살았던 교회 안팎의 많은 사람들에 관한 집단 전기이기도 하다. - '감수의 글' 중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발자취를 따라   1951년 9월 15일, 한국전쟁을 발발한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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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시대를 살았던 추기경 김수환의 생애는 개인사에 그치지 않고 깊은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전기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전기임과 동시에 당대를 살았던 교회 안팎의 많은 사람들에 관한 집단 전기이기도 하다. - '감수의 글' 중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발자취를 따라

 

1951년 9월 15일, 한국전쟁을 발발한 북한이 연합군에 밀려 항복 직전까지 이르게 되자 뒤늦게 전쟁에 참여해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중국 인민군은 낙동강을 넘지 못하고 후퇴했다. 당시 대구에선 전투가 없었고 평민들은 일상으로 복귀했다. 대덕산 자락의 빼곡한 초가집 굴뚝에서는 저녁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직 가을이라기엔 이른 시기였다. 대덕산 골짜기를 따라 내려온 물은 계산동으로 흘러들었다. 개천을 따라 시내로 가는 길목에는 붉은 벽돌의 대구대성당(현, 계산성당)이 있다. 조선시대 끝자락에 대구에서 사목활동을 하던 프랑스 신부들이 고딕 양식으로 건축한 성당이다. 두 개의 뾰족한 첨탑, 그 위에 십자가가 있다. 이곳은 대구 천주교의 중심 성당이라 일요일엔 신자들로 붐볐다.

 

오늘은 토요일임에도 개천을 따라 이곳을 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두 명의 새로운 신부가 탄생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대국가 고향인 김수환 부제副祭와 왜관 출신의 정하권 부제였다. 서울에서 대신학교(사제가 되기 위한 대학교와 대학원 과정)를 다니다 대구에 피난와서 나머지 과정을 마치고 오늘 사제 서품을 받는 것이다.

 

당시 신학교의 과정은 길었다.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 2년, 서울 동성상업학교(현, 동성중고둥학교) 을조에서 소신학교 과정 5년, 대신학교 6년, 총 13년이었다. 이렇게 긴 과정을 마치고 신부가 되는 사람은 입학 때의 5분의 1 정도였다. 그런데, 김수환 부제는 동창들에 비해 4년이 늦은 17년 만에 신학교 과정을 마쳤다. 일본 유학 중 학병으로 강제징집을 당했고, 해방 후엔 일본군 전범재판의 증인으로 괌에 다녀오느라 2년 후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김수환 부제의 친가와 외가는 조선 말 천주교 박해시대부터 신앙을 지켜온 오래된 교우집안이다. 할아버지는 대원군의 병인박해 때 희생된 순교자이고, 어머니와 두 누나는 대구 성요셉성당(현, 남산성당)의 오랜 신자였다. 셋째형은 사제 서품을 받은 김동한 신부다. 외가도 외할아버지, 큰외삼촌, 이모들 모두 신앙심이 깊다고 소문난 신자들이었다. 이처럼 친가나 외가를 아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 대구대성당으로 김수환의 서품식을 축하하러 왔다.

 

 

    

 

김수환의 부모는 경상북도 칠곡 장자골 옹기촌에서 결혼했다. 당시 아버지는 서른한 살, 어머니는 열입곱 살이었다. 천주교인끼리의 중매결혼이었다. 결혼 후에도 '옹기장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조선 말 천주교 박해 때 순교자의 자손이나 피신자들은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 옹기 만드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국 천주교에서 '옹기장이'라는 단어는 모진 박해 속에서도 옹기를 구우며 자신들의 신앙을 지킨 조선시대의 신자와 가난한 옹기촌에 살면서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포기하지 않은 근대의 신자들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래서 훗날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의 아호雅號를 '옹기'라고 했다. 서품식이 끝나고 가족사진 촬영 후 두 모자는 이렇게 대화를 나누었다. 곧 칠순이 될 어머니는 막내아들에게 경어를 사용했다. 이는 천주교 집안의 전통이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이제 신부님은 내 아들이 아니라 천주님의 아들이니, 신자들을 잘 잘 보살피이소"

 

 

식민지 소년의 분노

 

당시 제6대 대구교구장을 역임했던 최덕홍 신부(1902~1954년)가 김수환에게 사제 서품을 수여했다. 두 사람에는 이런 일화가 있다. 1939년 6월 25일, 최 신부가 소신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당시 4학년이던 수환의 가슴속에 있던 불덩이가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신 과목이 끝나자 장면 교장은 그를 교장실로 따라오라고 했다. 얼마 후 그가 시무룩한 모습으로 교실로 돌아왔다.

 

그러자 짝인 김정진이 물었다. "스테파노, 요왕 선생님(장면의 세례명이 요한이었다)이 왜 부르신 거니?" 수환은 잠시 숨을 고른 후 대답했다. "며칠 전에 수신시험 답안지에 나는 황국 신민이 아니라서 천황의 칙유勅諭(친히 내린 말)에 대해 소감이 없다고 썼다고 따귀를 맞았어. 너는 위험해서 신부가 되면 안 되겠다는 말씀도 하셨고. 아무래도 학교에서 쫓겨날 것 같아"

 

그때 동성학교 교사들 중에는 민족의식이 투철한 분들이 많았다. 경성제국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유홍렬 선생은 역사를 가르쳤는데, 일본 역사를 가르치는 척하면서 한국사를 얘기해주었고 한문강사였던 조윤제 선생은 <적벽부>를 가르치면서 신라의 화랑도 이야기 등을 해주었다. 또 장면 선생이 교장 업무 때문에 수업을 많이 못하자 새로 부임한 이훈 영어 교사는 창밖을 힐끗거리면서 상해 임시정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밖에 많은 한국인 교사들은 수업 시간에 일제의 만행들을 이야기했기에 수환의 마음속엔 분노의 불덩이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 유학과 박사학위 포기

 

1962년 10월 11일, 가톨릭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위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렸다. 세계 각지에서 참석한 주교만 2,540명이었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준비중이던 수환은 독일인 친구 신부들과 함께 바티칸 방송에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놓고 발표 내용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가톨릭교회가 문을 활짝 열어 새바람을 맞아들이고, 쇄신을 통해 시대 변화에 적응하려는 희망의 대역사대역사였다. 가톨릭교회에 변화와 쇄신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감지했다" -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중에서

 

그 발표를 듣는 순간 김수환 학생신부는 강한 전율을 느끼며 온몸이 굳는 듯했다. 이미 회프너 교수신부와 폴크 교수신부의 강의를 통해 들었던 내용들이라 얼른 이해가 됐다. 바로 이거다! 이제 가톨릭이 세상을 향해 엎드리는구나! 성신(성령)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교황 요한 23세와 함께하고 계시는구나! 그 순간, 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의 문이 열리는 모습이 보였다.

 

지도교수는 결국 오지 않았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석차 로마에 와 있던 서정길 대주교에게 학위를 포기하고 귀국하겠다고 편지를 보냈다. 독일에서 보낸 7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비록 박사학위는 받지 못햇지만, 새로운 공부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신학적 시야와 사고의 폭이 넓어진 시기였다.

 

 

초대 마산교구장 주교로 임명되다

 

1966년, 마흔네 살의 중년 사제가 된 김수환은 교황청 서울 공사 안토니오 델 주디체 대주교로부터 전화를 받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대주교의 말씀으로는 부산교구에서 마산 지방을 따로 떼어 새로운 교구를 설립하고 초대교구장 주교로 그를 임명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마산으로 떠나기 전 그동안 다녔던 교도소와 희망원을 방문, 봉사하는 수녀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주교 서품식 일정을 5월 31일로 정한 그는 주교직 사목 표어를 무엇으로 정할지 많은 생각을 했다. 사목 표어는 주교로서의 사목 방향을 짧은 성경 구절이나 기도문 등에서 찾은 성구聖句로, 일종의 각오 같은 것이다.

 

그는 사제 서품 당시에는 성경 구절에서 성구를 정했지만 이번에는 제2차 바타칸공의회 실천 정신을 나타낼 수 있는 성구로 하고 싶었다. 그는 진정한 주교의 자세는 예수님처럼 세상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놓아야 한다고,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온갖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과 고통을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에 걸맞은 성구를 생각하느라 머리를 싸맸다.

 

얼마 후, 예수님께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시고 몸을 나누어주시며 우리들의 '밥'이 되어주셨듯, 자신도 모든 이에게 먹히는 존재, 많은 이의 '밥'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여러분과 또한 많은 이들을 위하여'라는 경구를 사목 표어로 정했다. 주교 서품식은 마산 성지여중고 운동장에서 거행됐다.

 

 

노동자의 인권보호에 앞장서다

 

1968년 1월, 김수환 주교는 JOC 총무로부터 '심도직물 JOC 회원 관련 보고서'를 전달받았다. 그는 이 사건의 성격을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 탄압이자 명백한 종교 탄압이라고 판단하고, 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JOC 전국 회원들이 해고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한 '하루 한 끼 절미節米 운동'도 전개해나갔다.

 

"교회는 그리스도교적 사회정의를 가르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노동력 착취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범하기 쉬운 자본의 횡포이다. 따라서 주교단은 강화성당 신부와 노동자들의 정당한 활동을 지지한다" - 가톨릭시보(1968년 2월 15일) 중에서

 
한국 최초의 천주교주교단 성명인 '사회정의와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한 주교단 공동성명서'는 곧바로 로마교황청을 통해 교황 바오로 6세에게 전달되었으며, 이후 교황청으로부터 격려서한을 받았다. 이는 한국 가톨릭교회가 세상에 대한 거의 최초의 발언으로, 이후 가톨릭교회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생존권보장 요구에 적극 앞장섰다.

 

 

서울대교구장이 되다

 

1968년 5월 29일, 김수환 대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착좌식이 거행되었다. 당시 서울시 인구는 약 430만 명이었고, 대교구 산하에 48곳의 성당과 63곳의 공소가 있었다. 신자 수는 약 14만 명이었다. 임시교구장 체제로 운영되던 지난 1년 동안 극심한 재정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한마디로 과도기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천은 한국뿐 아니라 오랫동안 가톨릭이 뿌리를 내려온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모두 겪는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변화와 쇄신은 시대의 흐름이었고,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것이었다.

 

그는 붉은 벽돌의 명동성당을 바라보앗다. 한국 천주교를 상징하는 건물답게 웅장하고 위엄이 있었다. '서울과 비교도 안 되게 작은 마산교구의 주교가 된 지 2년밖에 안 되는 신출내기인 내가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대교구를 변화시키고 쇄신할 능력이 있을까?',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추기경에 임명되다

 

1969년 3월, 로마 교황청과 미국으로의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당시에는 미국에서 한국까지 직행 비행기가 없어 일본에서 하루를 잔 후 다음 날 아침 서울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때 게페르트 신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추기경에 서임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한동안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그토록 무거운 소명이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는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자신의 비서직을 수행중인 장익 신부에게 말했다. "장 신부, 만약 이 소식이 오보가 아니라면 이건 내가 아니라 한국 교회에게 내린 영예야. 선교사 없이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 선열들의 믿음을 세계 교회에서 인정한 거야. 이건 절대로 내 개인의 영예가 아닌 거지...." 

 

 

이달의 사락 5****0 2016.03.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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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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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님이 2009년 2월에 돌아가셨으니 벌써 7년전 일이되었어요. 추운 겨울날 명동성당으로 영면하신 추기경님을 뵈러 갔었는데 제가 어려서 부터 줄 곧 함께 하던 분이어서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도 보고 싶고 그 음성이 그립습니다. 추기경님의 생전 모습을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 요새 들어서 왜그렇게 나는 것인지 아무래도 힘이든 요즘이가 그런지 더 굴뚝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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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님이 2009년 2월에 돌아가셨으니 벌써 7년전 일이되었어요. 추운 겨울날 명동성당으로 영면하신 추기경님을 뵈러 갔었는데 제가 어려서 부터 줄 곧 함께 하던 분이어서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도 보고 싶고 그 음성이 그립습니다. 추기경님의 생전 모습을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 요새 들어서 왜그렇게 나는 것인지 아무래도 힘이든 요즘이가 그런지 더 굴뚝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님 그가 종교인의 정상이라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는 겸손하고, 그는 알고싶어하고,예수님과 동행하길 즐기고, 또한 그는 평등과 박애에 정통하니 위대했던 것이고 그와같이 높지 않아도 우리가 가야할 길 이기에 그를 다시 보고싶은 마음에 이 도서의 제목 <아, 김수환>을 보자마자 꼭 읽고 싶고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버립니다.

 

 

"​김수환 학생 신부는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두번씩 회프너 교수신부를 찾아가서, 공부하면서 궁금했던 부분과 논문의 방향을 지도 받았다.​"


이렇게 공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여정인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었으셨던 신부님이 그져 성품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든 수행과정과 열정이 있어야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함께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야하는 사정들은 누구보다 잘 아는데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끝가지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굿굿히 나가는 것이 자신의 신념이 얼마나 강했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간 김수환 추기경님을 지금까지고 보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두번째 까지 쉽게 읽어 나갔답니다. 그분의 영적인 측면이 아니라, 그분이 얼마나 인간적이었는가를 그분이 얼마나 인간적이었고 얼마나 사람냄새가 나는 어찌보면 얼마나 평범함 사람이었는가를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그것이 가장 위대한 모습인지를 이 도서 <아, 김수환>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엇습니다. 그분의 삶을, 그리고 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 계속 되었답니다.

 

 

그분은 힘들게 공부를 계속 해왔기에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학생들의 심정을 함께 공유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장학금을 꾸준히 기부하면서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그분의 실천과 그의 신념은 향동적으로 옮겨지는 모습에 있어서 얼마나 용기가 가득했고, 그의 삶이 이러한 모든 것을 지탱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때 나도 아직 늦지 않았고, 그분을 따라야 겠다는 생각에 다짐을 해봅니다.

 

 

 

"​내가 사실은 바보야..... 하느님은 위대하시고 사랑과 진실 그 자체인 걸 알면서도 마음 깊이 깨닫지 못하고 사니까.....​"


언제나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어 가면서 자신의 주위를 항상 돌보고 자신을 먼저 보지 않았던 추기경 님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바보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변인 으로써 자신보다 주위를 먼저 챙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천사이고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임을 직접 보여주시는 행동 하나하나와 말씀들에 자 마음의 심금을 울렸고, 지금까지 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게 살아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도서 <아, 김수환>을 읽는 내내 추기경 김수환으로서 대외적으로 알려진 모습이 아닌, 그 분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삶의 교훈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체적인 느낌들이 색다르고 마음이 뭉클했엇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보고싶고 그리운 추기경님, 글 속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 도서를 통해서 추기경님에 대한 또 다른 얘기들을 듣게 되어서 너무나 더 그리워지게 되었답니다. 그리운 추기경님! 평상시에 자주 말씀하시던 글귀들이 생각났습니다. 비파 교황님 방문으로 더욱 생각이 났었는데 이렇게 택을 통해 뵙게되서 감사했습니다!추기경님에 많은 삶을 함께 느껴보았던 소중한 시간 너무나 고맙습니다!

s****s 2016.0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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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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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김수환 추기경의 전기이다. 그리고 2016년은 김수환 추기경 선종 7주년이다. 옹기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김수환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의 집안은 조선말 천주교 박해시대부터 신앙을 지켜온 구교우 집안이라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총 1,000페이지에 걸쳐 다룬 이 책은 2권으로 분할된 책만 봐도 질릴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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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김수환 추기경의 전기이다. 그리고 2016년은 김수환 추기경 선종 7주년이다. 옹기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김수환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의 집안은 조선말 천주교 박해시대부터 신앙을 지켜온 구교우 집안이라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총 1,000페이지에 걸쳐 다룬 이 책은 2권으로 분할된 책만 봐도 질릴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워낙 탄탄한 자료조사, 인터뷰,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진 등을 통해 마치 한국의 현대사를 보는 듯 했다. 이 말은 곧 김수환 추기경의 삶이 한국 현대사에서 그 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저는 이 책을 쓰면서 왜 꼭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전기냐를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현대사에서 몇 안 되는 정신적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라고 한다.

 

책에서도 김수환 추기경은 빈부격차, 행복지수 후퇴 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가치 중에 으뜸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부족한 게 사회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주된 원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나도 못 살고 상대방도 못 삽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새신부로 발령이 났던 안동성당, 루뱅대학에서의 공부, 카톨릭시보에서의 사장신부, 마산교구장 주교, 서울대교구장에 착좌 등을 보면서 한국교회의 역사와 한국 현대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저자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바로 이 같은 쇄신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의 이웃과 사회와 겨레를 위해 책임을 다했는가를 반성해야 합니다. 이 반성을 토대로 우리 교회를 쇄신합시다. 또한 참된 신앙으로 살고 있는지, 언제나 그리스도처럼 자기를 바칠 수 있는지를 깊이 반성하며 그렇게 되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지금까지 너무 칭찬 말씀만 듣고 살아서 나를 우상으로 만들려는가하고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꼭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든다. 삶의 방황을 겪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 책은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가치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아, 김수환 추기경 1

작가
이충렬
출판
김영사
발매
2016.02.20. 
YES마니아 : 플래티넘 c*****t 2016.02.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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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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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김수환 추기경 1작가이충렬출판김영사발매2016.02.20.리뷰보기  아, 김수환 추기경 2작가이충렬출판김영사발매2016.02.20.리뷰보기  오랜만에 종교 관련(?) 서적을 읽었다.사실 종교 서적이라기 보다는, 그냥 담백한 평전, 이라고 감시 말해도 될 법한 책 ' 아, 김수환 추기경'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이자, 한국 근현대사에 분명한 발자취를 남기신 김수환 추기경 님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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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김수환 추기경 1

작가
이충렬
출판
김영사
발매
201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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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김수환 추기경 2

작가
이충렬
출판
김영사
발매
201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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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종교 관련(?) 서적을 읽었다.

사실 종교 서적이라기 보다는, 그냥 담백한 평전, 이라고 감시 말해도 될 법한 책 ' 아, 김수환 추기경'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이자, 한국 근현대사에 분명한 발자취를 남기신 김수환 추기경 님에 대한 글이다. 





저자 분이 상당히 전기문학의 '달인'이라고 생각되는 이충렬 선생님이다. 아무래도 간송, 전형필 을 인상깊게 봤던 인상이 남아서인 건지 이번 책에서도 탄탄한 사료 조사와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이 결합되었기에 가능한 힘있는 흐름이 느껴졌다.

 이 책에 대한 후일담으로 들은 바로는, 여기 있는 사료 (특히 사진들) 들 중에는 오픈되어있지 않던 것도 많은데, 이런 것들을 다 모아서 사료조사하고 하는데에만 3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전기문학, 하면 사실 이미 있던 사실을 그대로 쓰는, fact 중심의 글쓰기이다 보니 얼핏 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한 사람의 인생을 다룬다는게 curation이 아주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총 2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김수환 추기경 님의 삶의 큰 궤적을 시간 순으로 전개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6 25 시기, 민주화 항쟁 시기, 그리고 천주교 추기경이 되어 가던 시기 등 잘 아는 부분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등도 생생히 살려놓았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물론 이 책 내용들을 포스팅에서 말하는 것은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이번엔 좀 많은 사진을 들여서 몇몇 설명 및 느낀점을 적어두려고 한다.




 이 부분은 처음으루 김수환 추기경 님이 '신부'가 되던 부분의 이야기 이다. 내가 이 부분을 남긴 이유는, 사실 우리 나라에 많은 종교인, 목회자 분들이 계시는데 아주 슬프게도 몇몇 경우에는 '신의 대리인'이 되어 마치 자신이 신처럼 행하려 하는 경우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김수환 추기경 님을 존경하는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이 기도문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실천하며 사신, 하나님의 권능을 보이며 세상을 산게 아닌 그리도의 말씀을 받들어 이를 직접 실천하며 산, 진정한 실천적 종교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기도문이 마치 추기경 님의 인생을 짧게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어 찍어 두었다.



전쟁 떠나기 전의 가족사진이라니.. 짠한 느낌. 이렇게 책 중간중간에 사진이 있고, 또 각 권 말미에도 사진 모음이 묶음으로 주어져서 생생한 사료를 볼 수 있다.





70년대 우리나라 격동의 시기의 이야기를 다루던 부분 중 일부이다. 여기 부분들에서 슬픈 점은, 전체적으로 느낀게 '노동 문제'가 여전히 커다란 한국의 이슈라는 점...그러나 주변에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이 더 많아졌나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단 생각에 약간 서글펐던... 그래서 남겨 놓았다. 



여기서는 앞 제목이 강렬히 가슴을 울려서 남겨 두었다. '천국에 출마합니다...' 



 이 부분이 또 김수환 추기경님 다우시면서 너무나 와닿았는데, '우상화'작업 그 자체가 얼마나 위험하고 중간에 생략되는 수많은 희생과 많은 사항들을 무시한 채로 맹목적 추종자를 만들게 만드는지, 그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떠올리고 반성하게 한 부분이다. 

무려 마이클 잭슨님과의 사진! 참고로, 선글라스를 벗고 싶었지만 눈이 너무 충혈되어 있는 상태여서 부득이하게 선글라스를 꼈다고 한다. 


이 책은 전기 문학이 가질 수 있는 명료함을 상당한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끌고간 느낌이다. 저자 분이 왜 많은 시간을 들일 수 밖에 없었는지가 느껴진, 묵직한 책이었다.


h******2 2016.02.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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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아, 김수환 추기경 1,2
"[서평]아, 김수환 추기경 1,2" 내용보기
1권 ‘신을 향하여’와 2권 ‘인간을 향하여’, 전 2권으로 구성된 책은 <간송 전형필>의 저자이며, 추기경님의 동성중고 후배인 이충렬 저자가 3년간의 작업과정을 거쳐, 추기경님의 87년의 삶을 그린 전기로 선종 7주기를 맞아 펴낸 책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광주 민주화 운동을 시작으로 군부체제에서 민주화 운동 등 격변의 한국사와 평생을 함께하신 추
"[서평]아, 김수환 추기경 1,2" 내용보기

 

 

1신을 향하여 2인간을 향하여, 2권으로 구성된 책은간송 전형필의 저자이며, 추기경님의 동성중고 후배인 이충렬 저자가 3년간의 작업과정을 거쳐, 추기경님의 87년의 삶을 그린 전기로 선종 7주기를 맞아 펴낸 책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광주 민주화 운동을 시작으로 군부체제에서 민주화 운동 등 격변의 한국사와 평생을 함께하신 추기경의 인생사가 담겨있다. 한 종교의 지도자가 아니라, 굴곡진 현대사와 함께 하시면서 가난과 소외로 고통 받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약자들의 편에서 항상 낮은 곳을 바라보시면서 이들과 함께하신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셨다.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참모습이 책 속에 잘 담겨있다. 聖人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기보다는 聖人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을 통하여 세상속의 교회를 위하여 평생을 기도하시고, 행동하시는 삶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세상속의 교회는 추기경님이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하실 때의 사목목표였다.

 

 

참된 말이 없는 곳에는 빛이 없다. 빛이 없는 곳에는 생명이 없다. 옳은 말인 줄 알면서 말하지 않을 때, 인간은 의를 떠난다.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권력에 의한 탄압을 두려워하는가? 옥고를 두려워하는가? 두려워하지 말자. 오히려 양심을 두려워하고, 의를 두려워하고, 이를 거스르는 것을 두려워하자. , 김수환 추기경 1, P. 387

 

 

사제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이 입고 있는 수단의 검은색은 이미 세상에서는 죽고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산다는 뜻이었다.

 

신부들이 증언자로 나섰다. 무고한 광주 시민들이 공수부대의 총칼에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사제들의 증언은 인간의 존엄과 정의를 지키려는 봉화였다. 신부는 봉수군, 성당은 봉화대가 되었다. , 김수환 추기경 2, P. 36

 

 

우리의 현실은 밤과 같은 어두운 세상 ······ 진리도, 정의도 없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세상 속에서 참으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때 성당은 그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된다. , 김수환 추기경 2, P. 132

 

1986 12 24일 상계동 철거민들을 위해 천막도 없는 맨땅 위에서 성탄 전야 미사를 마치고 일기장에 남기신 글이다. 도시 재개발로 보금자리를 빼앗겨 갈 곳이 없어진 철거민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시면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한 건 자기만을 생각하지 않고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 남을 향해 열린 마음, 남과 고통을 나눌 줄 아는 마음, 그런 사랑의 마음이 오늘의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김수환 추기경 2, P. 269

 

1991년 주교 서품 25주년, 우리 나이로 70, 즉 고희를 맞이한 해에 가치관 부재에 온갖 범죄가 범람하고 모두가 개인적·집단적 이기주의에 빠져, 부익부 빈익빈으로 빈부 간의 격차가 더욱 심화되어 가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걱정하셨던 글로, 약자를 사랑하시고, 어려운 사회적 문제를 회피하시기 보다 대화를 통해 사회 갈등을 중재하셨던 시대의 큰 어른이자 정신적 지도자이셨던 추기경님을 오늘을 살아가는 지금, 그리워하게 한다.

 

 

있는 그래도 인간으로서, 제가 잘났으면 뭐 그리 잘났고, 크면 얼마나 크며,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 , 김수환 추기경 2, P. 519

 

2007 5,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퇴임하시고, 서울동성고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미술전시회를 준비중이던 후배들의 부탁으로 자화상이란 그림을 그려놓고,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남기신 말씀이다.

w*****0 2016.02.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