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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턴 쉰의 묵상 스케치] 죽은 교인의 살아 있는 선물, 생명의 초대장
이 책이 지금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집필되고 있긴 해도, 내가 죽고 나면 그분이 다른 이들을 생명의 성시간으로 이끄실 것이다. 그때가 바로 당신이 이 책을 마주하고 있는 ‘오늘’ 이 순간이다. - 풀턴 쉰(p.267)
고대했던 2주간의 여행이 요양이 되어버리고도 쉽게 몸을 추스를 수 없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외향적인 천성과 약 기운 때문에 붕 떠 있는 사람처럼 시종 히히헤헤거리며 힘들어 했다. 여행 중 4일은 휴대폰과 컴퓨터를 꺼놓았는데, 그때 혼자 정말 많은 자기 성찰을 하였다. 그 중에 종교가 있었다. 나는 가톨릭 교도. 믿음이 깊어지지 않는 모태신앙자이고, 수도회 트라우마가 있는 종교환자이다. 왜 개종을 하지 않느냐 남들이 의아할 정도로 나는 오랫동안 내 종교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래서 냉담(성당 출입을 끊음)과 회심을 반복하였지만 끝내 단교하지 않았다. 작년 가을, 완전한 순명을 다짐하며 영적 성인식에 해당하는 견진성사를 받았다. 올해만 두 번 갔던 잠수여행의 주목적도 트라우마 극복 때문이었고, 근 1년 동안 영성적으로 천지개벽할 만큼 새로 태어남을 반복하며 회개 중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시험에 빠뜨리면서 신앙투쟁 중이고, 다행히 아직까진 계속 성공적이다.
가톨릭은 ‘보편적’인가. 무엇이, 어떻게, 왜. 교회가 믿는 창조주이자 유일신인, ‘있는 나’라는 뜻의 ‘야훼’ 하느님. 중국은 이를 ‘천주’라고 번역하였고, 우리도 그대로 받아들여 가톨릭을 천주교라 명명하고 있다. 가톨릭(catholic)은 ‘보편적인’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katholikos’에서 유래하였다. 비가톨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굉장히 오만하고 자신감에 찬 종교명처럼 느낄 수 있다. 이 종교명은, 107년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가 107년에 쓴 선교 편지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면 어디에나 ‘가톨릭 교회(ecclesia catholica)’가 있는 것처럼, 주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신앙인 공동체가 있게 될 것이다”라고 쓴 것에서 기원한다. (가톨릭) 교회의 사명과 권한은 보편적. 곧 온 세상, 모든 사람, 모든 시대에 유효한 교회를 지향한다. 그렇기에 교회와 신자는 끊임없이 자문하고 애써야 한다. 우리가 사회에 어떻게 보편적으로 어울리며 기여할 것인가.
기독교는 근면을 긍정한다. 하느님이 각자에게 주신 능력을 치열하게 쓰고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신앙적으로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개신교는 좀 더 개인 지향적인 것에 반해 가톨릭은 좀 더 사회 지향적이다. 직접적인 전도보다 모범적인 생활을 통한 감화적 전도를 선호한다. 출세와 성공 자체보다 그 능력을 통한 자신의 도구적 가치, 세상에 어떻게 쓰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하여 신앙이 깊어질수록 자기를 버려나간다. 나는 신앙과 삶의 일치를 지향한다. 지킬 수 있을 만큼만 믿는다. 구약성경 탈출기에서 모세는 두 번에 걸쳐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 (십)계명을 받고 계약을 맺는다. 여행 중에 참여했던 한 성당 프로그램에서 매일 자신이 지킬 수 있는 ‘나만의 계명’을 하느님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이웃와의 관계 측면에서 정하는 활동을 하였다. 반드시 지킬 수 있는 것을 많이 꼽기 자신이 없어 각 한 개씩만 정했는데,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내가 정한 계명은 ‘매일 하느님과 대화하라: 매일 1가지 이상 기도하라.’였다.
현재 매일 1 페이지씩 성경을 필사하고 묵상을 하다가 짧은 자유기도를 짓는다. 그 얘기를 하면 놀라는 신자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온갖 단체 생활과 피정, 묵주기도 등을 하지 않는다. 성경 완독에 도전했고, 14개월째 스터디를 하고 있는지라 겸사겸사 하는 것. 그러나 언젠가 이 방식의 기도는 끝날 것이다. 그래서 계명을 지으면서 아직 먼 미래긴 하지만 성경 완필 수에 기도 방식에 대해 잠시 고민하였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예뻐하는 동생 자매가 갑자기 내게 책 선물을 주고 싶더라며, 그래서 가톨릭출판사 직영매장까진 갔는데 뭘 살지를 몰라서 기도하다가 샀다면서 <풀턴 쉰의 묵상 스케치>를 건넸다. 소름이 끼쳤다. 내 계명 실천과 딱 연결되는 책이었으니 말이다. 내 사연을 듣고 자매도 놀랐다. 찾기 전에 원하는 것을 마련하고 끊임없이 계시하는 하느님께, 함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성시간의 목적은 그리스도와의 깊은 개인적인 만남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느님은 우릴 끊임없이 초대하고 계신다. 당신에게 다가오도록, 당신과 대화를 나누도록,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걸 청하도록, 그리고 당신과 친분을 나누는 축복을 경험하도록 초청하신다. - 풀턴 쉰(p.263)
내가 글을 짓는 사람이다 보니 ‘에미상을 받은 최초의 대주교’란 표지 문구부터 혹했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이었고(1979년) 2012년 가경자에 오른 분이다. 1940년대부터 30여 년 동안 라디오와 TV에서 활동한 방송인이었고, 1951년 주교 서품을 받고 1969년 대주교까지 올랐다. 벨기에에서 철학 박사를 이탈리아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이기도 한다. <풀턴 쉰의 묵상 스케치>는 ‘Mornings with Fulton Sheen’이란 제목으로 1997년 출간된 책인데, 올봄 부산교구 송현 신부님이 번역해 가톨릭출판사에서 한국어판이 나왔다. 풀턴 쉰 주교는 사제 서품 받기 한 해 전부터 성시간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60년 이상 계속 실천하였다고 한다. 풀턴 쉰 주교는 기도와 묵상, 명상과 묵상은 다르다고 보면서 (하느님과의) 대화-경청-영적 교감으로 이루어지는 3단계 묵상법을 주창하였다. 이 책을 차근차근 읽고 묵상일기를 써가다보면 혹시 있을 잘못된 묵상을 발견해 교정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렜다.
풀턴 쉰 대주교는 그리스도교의 묵상이 정신의 세 가지 능력, 곧 기억과 사고, 그리고 의지를 사용한다고 말합니다. 기억을 통해 그분의 선하심과 우리가 받은 은총을 기억합니다. 사고를 통해 그분의 삶, 진실, 사랑 등을 생각해 냅니다. 의지로 우린 다른 무엇보다도 그분을 사랑하려고 애씁니다. - p.271 베벌리 코니 하인리히는 풀턴 쉰 주교의 묵상관을 간략히 전하며, 그의 저서를 발췌해 엮어 120번 매일 짧은 독서와 묵상이 가능한 묵상집을 만들었다. 풀턴 쉰 주교는 신앙적 시간과 날을 이야기하지만 자신이 언제 묵상을 했다고는 언급하지 않는다. 원서는 아침묵상집으로 묵상의 요한복음을 함께 공부하는 자매가 그런 말을 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우리가 하느님께 말을 거는 것은 기도이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성경(말씀)이라고. 그래서 성경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성경과 기도는 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이다. 나는 그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성경-기도-묵상이 맞물리는 시간을 지난 1년 간 보내면서 이미 그 신비를 한껏 느끼는 중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문제는 이걸 매일 하니 은총이 개인역량을 넘어서, 어느 순간부터 고해 성찰이 막힐 정도로 과한 평안함과 빠른 내적 정리를 가져준다는 것이다. 언제 이 책으로 묵상을 하게 될까. 책에선 10단계의 순서로 성시간, 성체조배, 개인기도 시간 중에 이 책을 활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어쨌든 나는 현재 나만의 방식으로 성시간을 보내고 있고, 아직 그 여정이 한참 남았으니 먼 미래에나 이 책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거나, 먼저 필요한 형제자매에게 전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서평을 마무리하며 불현 듯 생각 하나가 스쳤다. 공교롭게도 지은이도 엮은이도 죽은 이였다. 책을 선물 받은 것은 10월 30일이었고 11월을 시작하며 서평을 쓰다가 개인 사정으로 마무리가 미뤄졌다. 그 동안 자비의 희년 폐막미사가 13일로 잡혔다는 소식을 접했고, 몸이 안 좋아 쉼이 길어지면서 이번 주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전대사 순례길에 올랐다. 안그래도 11월은 위령성월인데 내 온몸으로 죽은 이들을 기도하며 돌보는 일주일을 갖게 된 것이다. 내가 몰랐을 뿐 나는 이미 <풀턴 쉰의 묵상 스케치>는 한참 쓰고 있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