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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평론가가 괜찮은 책이라며 소개한 세 권의 책이 있다.권은 박혜란씨의 '나이듦에 대하여'고,또 하나는 오한숙희의'아줌마 밥 먹고 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바로 이 책,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거야'다.
그 평론가는 조심스럽게 미래를 주도하고 이끌어 갈 글의 종류가 바로 일인칭적 글쓰기라며 이 세 권의 책이 이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된 거다.
화려한 자주 빛 색의 책색깔은 강렬했고,너무 튀었다. 의도적인지 아닌지 확실히 감이 오지 않았지만, 나중에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대강의 뜻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겉 장을 넘겨 저자의 이력을 보니까 더 나의 관심을 잡아놓는 부분이 있었다. 그는 신학자였다. 그것도 에코페미니스트 신학자. 여성 해방 신학자로 어느 정도 알려진 독특한 외모에 발칙한 사상을 가진 학자였던 것.
이 책은 자신의 영적인 순례기로써, 자신의 신비한 경험과 느낌을 적은 하나의 에세이와 같은 글이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있어 내려갔다. 그만큼 몰입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느껴서일까.
몰입하게 만드는 신비한 책 같다. 그게 아니면 이 책이 히말라야의 산마을에서 춧불을 켜놓고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글을 쓰고, 손이 아파서 도저히 못 쓸 때까지 신들린 듯 매일 쓴 글이여서일까? 1년동안 A4용지 8백 페이지 가량을 쓰고 그는 히말라야를 내려 와 뉴욕으로 돌아 온다. 1년 간의 무리한 글쓰기 작업으로 양쪽 눈의 시력이 많이 떨어진 아픔과 함께.
이 책은 여성신학자로서 신학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저자의 책이여서 복음적 신학자에겐 껄그럽고 매스꺼운 책으로 받아들려질거다. 나 또한 저자의 생각과 사고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한가지 중요한 핵심은 잡아야 하지 않냐는 물음엔 저자 자신의 말로 대답해 주고 싶다.
"내게는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다름'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다름이 인정되는 곳.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생하고 축하하는 곳, 그런 공간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름을 인정하는 뉴욕으로 갔고 그 곳에 있는 유니언 신학대학의 교수로 살고있다. 게이와 레즈비언의 공간, 나체주의자의 놀이터. 온갖 특이한 사람들이 동화되진 않은 채 서로 다름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그 곳. 그 곳에서 그는 다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은 아쉽다. 개인적으로 맘이 아프다. 그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지만, 방향이 잘못되고 첫 단추가 잘못된 것이라고. 다름을 인정해야 하지만, 자신의 신비한 체험과 자신만의 해석으로 비뜰어진 심연을 가진 거라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도 때론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이 백퍼센트 진리는 아닌 거라고.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삶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읽어 보면 새로운 느낌이 들게 만드는 그런 책. [인상깊은구절] "내게는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다름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다름이 인정되는 것 인정되는 것만이 아니라 공생하고 축하하는 곳,그런 공간이 그리웠던 것이다." |
| 저자는 신학자로서 신을 "설명"하기보다 "표현"하기 위해 이글을 썼다고 한다.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신 까닭도 친숙한 외모와 보다 쉬운 말로 인간들을 이끄시기위해 오셨다는데 우리는 진정 신을 알기에 너무 평범한 사람들인 것 같다. 쉽게 읽히지만 읽는 내내 아주 많은 질문들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그녀의 삶을 보면 여성과 남성을 떠나 진정 극대화된 다원주의 사회에서만 존재한다고 볼 수있는 인간의 전형을 보는 듯해 너무도 유쾌했다. 수많은 애벌레들 사이를 날고 있는 아름다운 나비는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 아닐까? 인간적이다. 너무나 아름답고 소박한 인간이다.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치열하게 "신학"의 진리를 탐하는 자!! 고호는 그랬다. 삶은 비어있는 캔버스와 같다고. 보통은 비어있는 여백 앞에서 뒷걸음쳐 물러나고 싶지만 결국은 확신과 열정과 의지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우리들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고. 오직 확신과 열정, 용기를 가진 자만이 삶의 여백을 채우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결국 예술가의 창조에 맞먹는 열정이 필요한 일이다. 또한 자신의 확신을 가지고 밀고 나가는 자만이 걸작품을 만들듯 삶을 아름답게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삶 자체가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아주 희망적인 메세지다. 이 책을 읽을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암튼 자전적 소설로서 그녀의 살아온 얘기는 아주 흥미롭고 유쾌하다. 한편 그녀의 신학강의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그녀 역시 인간일 수 밖에 없다는 점. 새로운 신학을 정의하고 표현하지만 또한 결국 지구안에 갇혀있는 현실적인 대안에 불과하다. 또한 그녀는 여신을 통해 지구를 구하자고 하지만 그녀의 여신=자아 =Human 아닐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녀야말로 GOD Matrix를 자유자재로 들고 나는 네오일 것이고 나야 말로 Matrix에 프로그램된 사고의 노예일 것이다. 뭐 그런들 어떠리...이런 멋진 인간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지구로선 축복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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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어 보면...좀 충격이라면 충격이고...이상하다면 이상할 것이다.
뭔가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잘 잡히지 않는 요점.... 잘 파악이 안되는 껄적지근함이다. 이 책, 그냥 폭팔적으로 열광할 분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스도교 신학에 여성주의를 훌륭히 접합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 지, 만, 한국인으로서 이 책의 바닥에 깔려있는 여성주의에 대해 마냥 동의할 수 없는 면이 있다. 여성주의 즉 페미니즘이란 학문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서구 페미니즘에서 제일 처음 설명하는 남녀차별/가부장제의 기원이란 언어이다. 인도 유럽어족에서는 명사의 남성형과 여성형이 다르며 명사의 대표는 대개 남성형이다. 아마 인도 유럽어족에 속한 모든 국가의 여성들은 말을 하는 것을 배우는 순간부터 머릿 속에 본능으로 각인되어 있을터이니 서구 페미니즘의 설명에 당연히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어는 어떠한가? 명사의 남성형과 여성형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남/녀, 암/수라는 외래어(한자)를 붙여야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도 유럽어족 같은 명사의 대표형이란 개념도 없으며 명사의 체계가 전혀 다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결혼 후에도 여자의 성씨가 바뀌지 않는 문화를 지녔고 언어는 매우 중립적이다.
저자의 논리는? 그냥 뻐꾸기 마냥 백인 서구 여성주의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 혹은 핍박받는? 아시아 여성의 얼굴을 가지고 말하고 있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왜 저자가 갑자기 미국에서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되었나?
저 얼굴, 미국에서는 남자가 줄줄 따르는, 여신 강림에 가까운 그런 얼굴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저 얼굴, 백인의 기준에서는 안젤리나 졸리급의 굉장한 미모이다.) 대개 촌스런? 얼굴을 한 백인 여성주의자를 고려하면 저자가 석좌교수가 된 건 당연하다.
한국에서 못난이 취급을 받다가 미국에서 여신 취급을 받는, 문화적 충격 속 어디에선가 길을 잃어버린 듯하다.
뭐 결국은 그리스도교 신학이라며 펠라기우스 사상에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 서구 미학을 쉬운 말로 풀어서 이야기한다는 느낌이었고...내용 상으로도 그 정도이다. 다만 남녀가 반전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그것도 후하게 평해서 그렇다. 그래서 별 2개 이다. |
| 기가 쎈 책을 읽어 봤는가? 난 책을 읽으면서 글쓴이의 기가 이토록 크게 느껴지는 책은 첨 읽었다,,, 현경,,, 너무나 빨리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책을 다 읽어도 이 여자를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이대 신학과 졸업,,, 이대 대학원 졸업,,, 유니온 신학교 졸업,,, 이대 교수,,, 지금은 유니온 신학교 종신 교수,,, 이정도의 프로필이면 우리는 와~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이겠구나 하는 머리속의 어떤 그림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아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학교의 종신교수 이면서 달라이 라마등이 위원으로 있는 종교간세계평화위워회 최연소, 아시아 여성 최초의 의원이며 불교의 가름침을 받아들이고 동안거를 하며 히말라야에서 남묘호랭교와 교류하며 지구상에 있는 온갖 여신을 숭배하며 스스로 여신임을 은연중에 들어내기도 하는 사람이다,,, 모든 신을 받아들이는 그런,,, 기독교, 특히나 한국의 엄청 보수적인 혹은 가부장적인 기독교와 대학 시절 그렇게 열망하던 운동권 청년들의 변함과 실생활과의 모순을 온몸으로 거부하며 그녀는 모든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녀는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 이혼했다,,,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좀 미안하지만,,,) 그녀는 한국 남자와는 애당초 격이 다른 사람인듯 하다,,, 우주인과의 사랑을 꿈꾸는 그녀에게 한국 남자와의 사랑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생경하다,,, 그녀는 이혼 후 이런 생각을 했단다,,, 그와 18살에 만나 10여년과 섹스 올림픽이 열리면 금메달 받을 정도의 사랑을 했고 5년간의 결혼 생활을 했지만 결국 헤어 졌을 때 하느님의 (이책에서 현경은 언제나 하나님이 아닌 하느님으로 표현 했다,,,) 영원한 사랑 만을 배웠기에 그와 절대로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말자고 맹세 했는데 부처님이 가르치신 제행무상 (모든것은 변한다)을 그때 이해 했다면 그런 맹세는 안했을텐데 하는 생각을,,, 그녀는 낳아주신 어머니 (생모) 키워주신 어머니 그리고 그녀의 영원한 스승인 어머니 이렇게 세분이 계신다,,, 그래서 부모성을 같이 쓰면 오강장정현경이 되기에 그냥 현경으로 하기로 했다고 한다,,, 멋지다,,, 아주 오랬만에 날 떨리게 하는 그런 책을 읽었다,,,행복하다,,, www.punk66.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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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배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선배도 아마 나와 마찬가지로 이 여자의 자전적인 얘기보다는 여성으로서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라는 메시지 쪽에 더 무게를 싣고 보았을 것이다.
이 책을 한 여성의 자전적 스토리로 본다면, 이미 여러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신파조에 설득력이나 호소력도 떨어지고, 그녀의 지나친 감성에 짜증까지 날 수도 있다. 그냥 좀 떨어지는 3류 소설 읽는 기분 같은 거. 그러나 이 책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나름대로 의미있고 재미도 있다. 무슨 근거 로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사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21세기는 아름다움의 세기가 될 것이며, 여성성이 모든 폭력을 포용하고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그래서 여자들이 힘을 내고 씩씩하고 당당하게 살아야한다는 메시지 말이다.
나는 사실 그녀가 썼다는 신학 논문들을 보고 싶다. 이 책을 보면 별 볼 일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가 인간적 매력이 있고 없음을 떠나 제 3세계 유색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나라와 다른 나라에서 성차별과 다름에 대한 차별을 딛고 일어서려는 그녀의 노력은 높이 살 만하고, 그녀의 노력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 [인상깊은구절] 종교는, 특히 기독교는 가난하고 억눌린 자와 함께 할 때 그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서양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권력과 결탁하면서부터 진정한 힘을 서서히 잃어버렸듯이 우리 기록교도 지구화 과정에서 밀려온 '돈을 숭배하는 종교'와 결탁했을 때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예수가 말했듯 "하나님과 맘돈(재물의 신)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어느 목사님의 말처럼 부티가 나면 영티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돈교'에 빠져 타락하지 않은 많은 기독교회들이 군데군데 시퍼렇게 살아 있다. 비록 그들이 소수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들의 존재에 감사한다. 그리고 그들이 있기에 기독교회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다. |
|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에 유니언신학대학 종신교수인 정현경의 ‘결국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거야 1,2권을 읽게 되어 나의 생활과 인생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그녀는 어떻게 보면 완전 자유인에다가, 유니언 신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구파이다. 거기에 3개의 석사학위를 자랑한다. 기독교에다가 불교까지 모든 종교를 두루 섭렵하면서 명상을 한다. 그녀가 말하는 ‘여신’의 현신은 정말일까라는 의문을 던져준다. 나는 이 책을 2권을 먼저 읽은 다음에 1권을 읽었는데 나도 모르게 책 속의 활자에 빨려들게 된다. 가부장적인 남성 세계에 과감하게 나서는 페미니스트 ‘현경’ 나는 그녀가 부럽다. 강연을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니고 유니언신학대학에서 3년 근무하고 1년의 안식년을 맞이하여 히말라야 호수 위에 있는 깊은 산속에서 은둔하며 글도 쓰고 명상도 한다. 티벳의 산꼭대기 마을도 방문한다. 그런 모든 그녀의 고행같은 체험들이 나는 부럽게만 느껴진다. 기회가 닿는다면 그녀가 근무하는 학교를 방문하고 싶다. 내가 좀더 공부하여 영어 강의를 들을 수 있다면 ‘현경’의 강의를 한번만이라도 들어보고 싶다. 아마 유창한 영어로 학생들을 매료시킬것이고, ‘아시아 최초의 여성종신 교수’ 그 타이틀만으로도 빛난다. 그녀는.....그녀가 자랑하고 주위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유니언신학대학의 사택, 순한국식으로 꾸며놓은 그녀의 방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한번 쯤 나에게 주어졌으면 좋겠다. 그녀가 아무리 ‘공방수’를 운운해도 혼자 사는 것이 편할 것이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 뉴욕이, 아니 이 지구상이 백인들의 인종 차별주의와 식민주의, 제국주의, 남성우월주의에 오염돼 있는데 능력있는 여자가 무엇 때문에 남성지배주의적인 ‘결혼생활’을 계속할 것인가. 신학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가 그녀에게만 그녀를 이끌어 주는 영적인 ‘여신’의 존재가 있다니....... 나에게도 나를 인생의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여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 그녀처럼 나에게도 현신하는 여신의 존재가 있어 외롭고 슬플때, 방황할 때 나 자신을 이끌어 준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 내지 않을까 생각된다. 현재 종교간 세계평화위원회의 최연소 위원으로서, 인도의 불가촉천민마을, 케냐의 무당집, 필리핀의 창녀촌, 인도네시아의 난민촌등 오대양 육대주를 돌아다니며 종교강연과 평화운동, 여성과 환경운동을 펼치고 있는 그녀의 앞으로의 많은 활동들이 자못 기대된다. 그녀는 책 제목처럼 결국 여성의 구원을 위해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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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에 책을 담아둔 지는 한 달도 넘었다. 4만원이 넘어야 책을 주문할 수 있으니(배송료가 싫어서--;) 좀더 기다려야 했겠다. 병원에 들렀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들른 서점에서 책을 찾았다. 머리말만 읽고 가야지. 1권은 형광분홍색표지이고 2권은 형광연두색표지이다. 생경스러운 표지색을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인 것 같다. 나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책은 읽고 싶은데 여기서 사면 비싸다. 그래서 1권만 샀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서 줄어드는 책장이 아쉬워서 읽은 문장을 다시 읽었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을 넘기는 햇살이 따스해서 책을 읽지 않아도 눈물이 날 판이었다. 그냥 앉아서 우는 것보다는 책장을 넘기며 우는 편이 남보기에는 좋았을 것이다. 아끼며 읽었는데도 다 읽어버렸다. 1권을 그냥 사는 바람에 4만원이 넘으려면 좀더 남았는데 주문버튼을 눌렀다. 아마 늦어도 화요일에는 2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영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표현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감할 수 있다. 공명할 수 있다.
"네 안엔 그 누구에 의해서도 부서지지 않은 빛나는 아름다움이 있어. 네가 그 빛나는 아름다움을 네 안에서 꺼낼 수 있다면 그 빛나는 아름다움이 너를 구원할 거야.
그러나 네가 만약 그 빛나는 아름다움을 네 안에서 꺼내지 못한다면 그 태어나지 못한 빛나는 아름다움이 너를 파괴시키고 말겠지. 그 빛나는 아름다움 밖에는 아무것도 너를 도와줄 수 없어."
"Thank you!
Thank you for being you.
Thank you for healing me.
And
Thank you for loving me..."
나는 가끔 내 주위에 이런 코드를 가진 친구가 있었으면 내가 좀 벼랑에서 덜 허우적거리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한다.수치와 모델과 분석과 육체적 노동이 하루를 빈틈없이 채워야 하는데 아직도 이 일들은 맞지 않는 옷처럼 헐렁거린다. 사막을 혼자 걷는 꿈을 꾼다. 뚜렷하지 않은 비전과 혼자 걷는 외로움에 휘청거린다. 하지만 나는 누구나 그렇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은 외로워서 글을 쓰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고 사랑을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외로움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것이 나를 나로 있게 하는데. [인상깊은구절] Thank you! Thank you for being you. Thank you for healing me. And Thank you for loving 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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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리포트였는지, 제3지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날밤, 우연히 마주한 TV 속의 그녀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솔직히 처음엔, 예쁘지도 않은 여자가 이상한 화장을 했다... 정도의 느낌이였지만, 그 프로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은 아주 멋졌다. 결코 예쁘지 않은 얼굴이지만 그만의 독특한 화장법을 고수했고, 결코 적지않은 나이임에도 스무살 전후의 여자애들한테나 어울릴만한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추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과 파티를 벌이며, 그녀는 행복해보였다. 그녀는 모든 종교가 하나라는 믿음과 평화라는 메시지를 전세계에 뿌리고 다니는 내가 닮고 싶은 여성이였다. 그래서 그녀의 책이 나왔단 소식을 접하기가 무섭게 YES24를 통해서 덜컥 주문을 해버렸다.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거야'는 몇달만에 내 지갑을 연 일반도서였다. 책표지도 맘에 들고 텍스트 사이에 간간히 들어간 색입은 문장들도 재미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뿐이다. 난 지금 그 다음 권을 신청할 생각이 없다. 그녀는 열린 마음을 가장하고 있지만 게이는 무조건 멋있다는 식의 또 다른 울타리를 치면서 살고 있었다. 이 책은 그녀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고, 다른 이들은 눈물을 훔치며 봤다지만 내겐 그녀의 절망이나 원망마저도 자기자랑으로 들린다. 그녀는 또 자기자랑을 꼭 다른 이의 입을 빌려서 한다. 누가 나보고 예쁘다고 했다더라, 어느 학생이 내 강의가 통쾌하다고 그랬다... "현경은 아름답다"는 인용구는 얼마나 많은지 짜증이 날 정도였다. 또 하나,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로비를 펼쳤다고 한 바로 그 페이지 말미에는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이란 생각으로 강의를 했다고 써있다. 이렇듯 일관성 없는 글이 책 전체에 흐르고 있다.
그녀의 행적은 누가 봐도 훌륭하다. 하지만 글로서의 그녀는 내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어떤 사람의 진실됨은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난 그녀의 사상 자체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훌륭한 행동에 비해 그녀의 글솜씨가 따라주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2권을 읽으면 내 이런 생각이 달라질런지... [인상깊은구절] 사람들은 물었다. 왜 조국을 버리고(?) 중년의 나이에 미국의 맨허튼으로 살러 왔는지. 요즘은 출세하고 돈 벌려면 미국의 전문 직장인과 2세들까지도 한국으로, 아시아로 역이민을 가는데 왜 그런 바보 같은 결정을 했는지 의아해했다. 그러면 나는 장난처럼 대답했다. "맨허튼에는 예쁜 여자가 많다고 해서요." |
| 이 책은 자서전적인 갖는 특유의 과장과 자기도취가 없는 정직한 고백서이다. 아마 저자는 2권의 시작에서부터 쓴 책인데 출판사에서 좀 더 흥미로울 수 있는 2부를 처음 첫 번의 책으로 만든 것 같다. 여기에 비전으로 여러 면으로 나오는 여신-- guided imagery 에 나노는 Guide 보다도 더 강렬한, 자기를 나아 준 어머니라도 표현하지만 어떤 종교의 어떤 신 (神)보다 더욱 큰 역할을 하는 대단한 존재이다. 그 여신에 대한 헌신 때문에 결국은 너무도 사랑하는 목사인 남편을 떠나며 다른 차원의 영성 (spirituality)을 찾아 그 길을 택한다. 여기서 저자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모든 면에 열심을 다하는 그가 존경스럽다. 왜 그가 이단이라 불리며 신비주의 불교 신학자인가 알 수 있다. 그는 소위 말하는 New Age spiritualist 이다. 이 책은 마음 문을 열고 2권으로부터 1권으로 읽어 가면 sensation 은 덜 하지만 이해가 더 가는 책이다. 여신 (女神) 에 대한 학문적 고찰을 뒤에 붙여 주었으면 더 좋았으리라. 신들린 여자의 다른 신 (神) 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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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물교환을 보다 편리하게 하기 위해 조개 사용한 것이 최초의 화폐였다. 보다 편하고, 보다 효율적이고,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인간들은 그러한 욕망을 따라 문명과 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만큼의 내공을 쌓아 발현되고 있는 자본주의는, 과연 더 나은 삶을 주었는가? Yes라고 대답하기엔 돈에 짓밟혀버리고 대가치러진 그 생명들이 눈에 밟힌다! 역설이다.
예수는 인류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외쳤다. 헌데 세월이 흐르며 예수의 실체보다 이름만으로 남아가며, 그 이름은 지배와 폭력의 수단으로 사용되어가고 있다. 차라리 그 이름을 걸고 전쟁을 일으키는 소위 '부시'식 폭력은 단순한 오용이다. 오히려 스스로도 진眞과 선善이라고 믿고 있는자들의 폭력적 배타성은 그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인해 가려내기도 어려울 뿐더러 너무나 빈번하게 만연하고 있다. 이것도 역설이다.
그래서, 저자의 이 책이 주는 방향성이 참 에너지가 된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와 근본주의적 기독교의 물살에서 저자는 힘있게 그 물살을 거슬러 오른다! 제3세계 아시아 여성으로서, 위와 같은 제도 하에서 느끼되 인지할 수 없었던, 그래서 진단할 수 없었던 그 속박의 지점들은 집어내고,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해 보여준다.
그 대안과 실천이라는 것이 저자의 '튐'만큼이나 활성화된 에너지인지라, 쉽게 동화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지만 그 방향성 만큼은 필수적이고 의미있다고 본다! 물론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기독교인이라 저자의 과격한 크로스오버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지만, 타 종교에 대한 존중의 측면에서 필요한 방항성이라 여겨진다. 표면에만 머무는 예의상의 존중이 아니라, 진심어린 존중말이다. 타 종교가 거짓을 점철된 건 아니잖은가! (개인의 치부를 위한 사이비 제외)
저자는 19세기가 진眞의 시대, 20세기가 선善의 시대라면, 21세기는 미美의 시대가 될 거라고 말한다. 그 아름다움이 현시대의 문제들에 대한 대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5천년 가부장적 지배 이데올로기가 만든 지구의 병, 마음의 병, 사회의 병에 대한 치유자로서 살림이스트(Salimest)를 선언하며, 그녀는 결국엔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대한민국에서 쭉 살아온 미혼 여성 크리스찬으로서, 결혼에 대한 조금 남은 강박 찌꺼기로부터 자유를 얻었고, 남들과 다른 내 모습에 대한 인정하기를 통해 치유를 얻었고, 내 관념속 타 종교화의 화해를 통해 크리스찬으로서의 비전을 재확인하고,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내가 사랑하는 예술에 대한 당위성까지 얻게 되었다.
참 얻은/얻을 게 많은 책이었던 듯 싶다.
p.15 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그 무엇에 의해서도 식민화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니 '발칙한 년'이 되었고, 그 발칙한 년까지 사랑하는 우주의 큰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다.
p.154-5 현존하는 학문적 형식으로는 하느님이 지금 이 세상을 향해 말학 싶어하는 내용을 전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실존적 문제에 닿게 된 것이지. 이제 신학이 철학과 사회학의 양식을 빌려 신을 설명하던 시기는 지나가는 것 같아. 예술이 그들보다 더욱 깊고, 명확하게 신을 표현하는 장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거야.
p.197 중독의 시작은 거 큰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너무도 견딜 수 없이 아픈 삶의 고통으로부터의 도피이다. 아파서, 괴로워서, 외로워서 인간은 중독자가 되는 것 같다. 잠시라도 그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잊고 '인간답게()' 생존하기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