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치]에서 출간한 회색표지의 칼럼집 [광대의 경제학]을 기억하는지. 연이어 출간된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 [경제학을 위한 변명] [시지프의 언어] 등. 이른바 '신문쪼가리'의 낱글들을 모아 출간한 이 책들은 90년대 좌파 글쓰기의 전범이었다. 10매 안팎의 원고지에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지를 보여줬던 그 칼럼들의 임자는 '경제평론가' 정운영이란 사람이었는데, 대학 1-2학년 당시 나는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참담을 넘어 공포스런 심정이 되곤 했다. 경제학은 물론이고 文史哲과 사회과학을 거뜬하게 거느리던 그의 필력은 분명 한 시대 지식인의 최고수준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당시 그의 중량감에 입장을 달리하며 예각을 세울 수 있던 논객은 복거일이 유일했고, 두 거인이 자유주의를 놓고 벌인 90년대 초의 필담은 해방 이후 한국 논쟁사의 빛나는 한 풍경을 이룬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그는 경기대 교수 겸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이 책을 냈다. 휘황한 사진들이 페이지를 덥썩덥썩 치고 들어온 몇장을 넘기면서 대번 느끼는 것은 문장과 문장 사이가 예전과 달리 턱없이 성기다는 것이다. 처음 몇챕터를 넘길 때만해도 그 이유를 선뜻 알기 어려웠다. 즉 그가 방송으로 외도하고 여기저기 얼굴을 비치면서 사색을 게을리한 탓인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위한 연륜의 여백을 구사한 것인지, 그간 레닌 동상이 털썩 쓰러져버린 때문인지를 쉽게 꼬집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분명 느껴지는 것은 아쉽게도 그의 나태(!)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이 책만큼은 그의 불성실과 밑천고갈이 고스란하다. 중국에 대한 참신한 팩트들도 줍기 어렵다. 대륙의 현장을 답사하며 마오(毛)와 덩(鄧)의 대립-종합을 해부해보겠다는 야심찬 기획은 대개 가볍고 표피적인 관찰대담으로 추락하고 있으며, 아무리 기행문이라지만 마오가 어떻게 덩의 폭주를 견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저자 나름의 통찰이나 구체를 냄새맡기 어렵다. 때문에 책 전체에서 중국 자본주의의 치부를 '버릇처럼 잊지 않고' 짚어내는 부분이나 '사회주의는 이제 중국에서 어떻게 되느냐'는 식의 물음이 거듭될 때는 딴지 이상의 무게를 느낄 수 없다. 차라리 "중국은 거인이므로 앞으로 나갈 때 한 다리로 걸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두 발로 걸어서 공평과 효율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칭화(淸華)대학 후안강(胡鞍鋼))"와 같은 아예 큼지막한 맹탕 진술이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다만 자본주의가 아닌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중국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논의가 우리나라에 거의 전무하다는 점만은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이 점, 이 책이 우리 사회의 부산스런 중국 바람속에 범람하는 [新黃禍論]들과 제대로 각을 달리하는 부분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이며, 인민과 시장의 인정 속에 중앙당의 존재감이 여전한 마오의 중국이 이 책에서는 여러번 환기되고 있다. 오히려 중국 자본주의를 균형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환기는 자주 필요하다. 당연하지만, 발품 한 번 책 한 권으로 5천년 역사의 12억 대국이 싸잡힐 리 만무하다. 저자는 에필로그에 이렇게 썼다. "...시장과 이윤은 부르되, 자본과 자본주의는 막는다는 발상 자체가 무모한 도박이기 때문입니다. 레닌도, 티토도, 아옌데도, 마오쩌둥도, 고르바초프도 모두 이 내기에서 졌습니다. 행여 중국이 이긴다면 실로 인류 초유의 성공사례가 될 것입니다. 학문적인 관심에서도 저는 중국의 승리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행문만으로 따지자면 이 책은 왠만함을 넘어선다. 다만 정운영 선생의 글이기에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
| 세계 인구의 약 5분의 1인 13억의 인구를 가진 나라 중국. 세계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언어 중국어. 하지만 중국어가 공용어가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서양, 즉 '강대국' 이 세계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강소국' 또는 '약소국' 들이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성찰의 보고이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그들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일어서자는 것이다. 이 책의 제일 마지막에 있는 에필로그에서, '호모 에렉투스의 후예' 라는 파트를 끼워 넣은 것은 다소 참신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가 같은 일직선 상에 있음을 논리정연하게 서술한 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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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곳에서 중국의 경제 발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텔레비전의 특집으로도 많이 봐왔다. 하지만 대개 성장한 중국의 모습을 비추기에만 급급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좀더 멀리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을 시작한 역사와 함께 오늘의 중국을 봐야 좀 더 제대로 된 중국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점이 바로 이러한 것 때문이다. 난 중국의 개방 정책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진행된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인민의 배고픔을 해결하고자 시작된 경제 개발 정책은 덩샤오핑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이 최근에는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책에선 중국의 경제 발전과정을 정치상황과 함께 잘 설명하고 있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인만큼 경제와 정치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이다. 이와 더불어 컬러 사진 역시 책의 설명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책이 지금의 상황을 전해 주는 책인 만큼 현실감있는 컬러 사진을 택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동안의 중국의 경제 발전 과정을 간단 명료하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써 놓아 일반인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중국 경제의 또 다른 면(부작용)에 대해선 그리 비중있게 다루고 있지 않지만, 그에 대해선 다른 책들이 이미 말하고 있다. 중국의 초고속 경제 성장이 어떻게 하여 이루어졌는지 알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따르게 마련이다. 鄧생가 부근의 질퍽한 농에서 맨발로 벼를 훑고 있는 가족을 만났다 스스로 60대라는 파삭 늙어 보이는 주름 투성이 얼굴의 촌로는 근심이 무엇이냐는 우리 질문에 하늘의 별보다도 많다면서 피식 웃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고 다시 채근하자 “자연 재해가 가장 무섭다”고 옆길로 빠지는 것이었다. 당국에 불만이 없어서가 아니라 외국 기자에게 털어놓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함께 벼를 베던 10대 후반의 손녀는 부끄러움때문인지 우리를 피했다. 그러나 동행한 안내자가 “네가 잘 대답해야 우리 농촌이 잘 산다고 외국 신문에 난다”고 이르자 갑자기-억지로-활짝 웃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취재 여행 중에 가장 잔인한 사진이었다. 할아버지든 손녀든 그들 가족한테 개혁 개방 정책은 멀고, 흙과 노동의 고통은 가까이 있었다. |
| 역시 정운영 선생님이다. 책이 얇아서 금방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정운영 선생님의 깊은 학식과 놀라운 통찰력을 이해하려니 하나하나 곱씹으며 읽으려니 시간이 꽤 걸렸다. 중국 전문가도 아니신데 어쩜 그렇게 많은 것들을 알고 계시고 많은 것들을 전달하실 수 있는 건지.. 다른 책들과 관점이 좀 다르다. 작가 말대로 돈을 버는 데 도움이 되는 것두 아니구 그렇다고 기행문 형식도 아니다. 중국 현대 정치와 경제 발전, 그리고 그 안에 보이는 모순과 전망 등에 대해 사회 경제학자 특유의 관점으로 기술하고 있다. 물론 그 안에는 중국에 대한 선망도 있지만 중국인, 즉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긴 결코 경박하지 않은 찬사가 묻어나는 선망이다. 또한 불균등한 중국 경제성장에 대한 우려 역시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서 묻어나는 것이다. 사진 하나하나 역시 중국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 맘에 남는 사진은, "네가 잘해야 외국 사람들한테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겠냐"는 말에 찍기 싫은 사진 억지로 웃어가며 찍은 맨발의 농부 사진... 중국에 관한 각종 억측과 전망이 난부하는 가운데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본 책이라서 기쁘다. |
| 일단 저자 정운영 교수는 대중에게 친숙하다. 토론프로그램도 진행했었고 책관련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책에 신뢰가 가는 첫번째 이유이다. 작금의 중국열기는 가히 거품이라고 할 정도로 과열되어있다. 이제 이 나라가 일본에게 등돌리고 중국에게 고개 숙이는 것인가 할 정도다. 중국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중국이 분명 발전하고 있으며 장차 아시아의 경제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속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왜 중국이 부상하는지 그것이 지속될 것인지, 우리는 그걸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떤식으로 국가의 틀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말이다. 보통 중국에 관해 알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들은 양이 방대하거나 내용이 난해한 경우가 꽤 있다. 이 책은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중국의 전반적인 현상황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아주 적격인 책이라 할 수 있다. 문체도 재미있을뿐더러 사진전문기자의 훌륭한 사진도 쉬운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을 일독한 후 좀 더 전문적인 내용으로 진입하면 중국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을 것이다. |
| 언제나처럼 정운영 교수의 저서에 붙여주는 스스로의 프리미엄에 많은 기대를 하게된다. 여러가지 국내외적인 경제문제와 관련된 글을 써온 그가 중국이라는 어찌보면 세부적인 국가에 국한하여 펴낸책이라 그러한 관심은 더했다. 혹 많은 중국관련 정치, 경제, 문화와 관련된 저서들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이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존재와 역사를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지금까지의 결론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짭은 기간동안 중국의 경제와 역사, 발전을 바라보는 분명한 시각은 결코 중심없는 논조가 아니기에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책임에 틀림없다. 인구, 자원 등 물량적인 지표만으로도중국은 장차 세계적인 강대국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중국을 떠오르는 강대국이니 전략적인 적이니하여 애초부터 우려에 가득찬 호들갑스런 논의에 묻혀 정작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내부에서 발전과 관련된 어떠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지 다소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명분이다. 과연 중국은 정치적 사회주의와 경제적 자본주의를 조화시키면서 거대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까? 발전을 위해 자본주의를 용인한다는 그들의 명분으로 과연 자본주의를 통한 체제의 완성을 이룩할 수 있을까! 정운영 교수는 사회주의 중국의 건국과 발전, 현재의 개혁과 문제점, 그리고 그와 관련된 고대사와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작은 해답을 구하고 있다. 50%에 이르는 극빈층, 지역적 발전의 불균형, 부정 부패와 제도개혁, 정치적 경직성 같은 중국의 과제가 중국이 이루고자하는 갈등적인 이념과 체제간에 불러일으키는 갈등의 문제를 세심하게 지적하고 있다. WTO 가입과 홍콩반환으로 자본주의를 수용하고자하는 중국의 바램에 가속이 붙었으나 한편으로 정치적, 제도적 경직과 규제에대한 배포있는 소신을 부러워하는 정운영 교수의 고백을 발견할 수도 있다. 중국이 자본주의를 통한 사회주의 완성에 성공한다면 이 역시 인류역사상 최초의 체제적 성과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억압이라는 상충하는 가치와 이념의 혼란이 초래할 위험 또한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중국의 과제임에 틀림없다. 중국이 자본주의에대한 갈망으로 혹 자신의 날개마져 잃어버린 이카루스의 꿈을 꾸는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지울수 없다. 자본주의와 세계화가 초래하는 수없이 많은 논쟁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자본주의를 통한 사회주의 발전이라는 역설적인 발전을 추구하고 있는 중국에대한 좌파 경제학자의 중심있는 논의와 관찰을 통해 많은 것들을 고민할 수 있을 것 같다. |
| 한겨레신문 창간후 '전망대'라는 칼럼을 통해 고등학교 때 처음 정운영이라는 사람의 글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현재는 경기대에서 가르치는고 연구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그는 강의안과 논문보다는 천성이 글쟁이다. 그의 글에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그 무언가가 있다. 본서는 중앙일보에 연재된 중국경제탐방기를 다시 퇴고해서 낸 책이다. 중국경제상황을 취재하는 탐방기로 쓰여졌지만, 중국근현대사와 문명비판.. 그리고 인터뷰 등 여러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르크스 경제학자가 사회주의의 시장경제화를 주창하는 중국을 둘러보면서 재벌언론(삼성중앙일보)에서 대준 돈을 써가며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사실 재벌이 쥐어주는 여비와 삼성의 정보망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취재였을거라는 예상은 된다. '말'誌나 '한겨레'가 아니라 중앙일보와 월간중앙에 실린 정교수의 글을 볼 때마다 '원고료를 더 많이 주니까 그렇겠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고 정교수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떤 언론매체를 통해서건 간에 그의 글은 살아있기 때에 그의 글을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다. |
| 광대의 경제학 이후 두 번째로 저자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때도 신문에 실었던 평론을 모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책 내용은 만족스러웠습니다. 특히 목숨 걸고 사진 찍기가 취미라고 하는 중앙일보 사진부 조용철 차장의 사진은 책 내용을 더욱 돋보이게 했습니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이후 중국에 대한 관심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칫솔 하나만 팔아도 10억 개가 넘을 것이라는 차이나 드림을 꿈꾸며 철저한 준비없이 중국으로 갔다가 빈털털이가 되어 돌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방송 보도를 보면서 중국의 실상이 궁금해졌습니다. 이런 궁금증을 아주 객관적으로 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저자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골랐습니다. 저자는 중국을 냉소적이면서도 부러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미구에 그는 소득이 비례하지 않고, 자본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죽을 둥 살 둥 달려봐야 더는 소용이 없다고 느낄 때 그의 좌절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여기 중국 경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13) 이런 구절을 봤을 때 시장이 발달하면 결국 중국도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의 해악으로 주춤할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그러면서도 인민이 공산당에 계속해서 가입하려 한다든가 관리의 부패에도 불구하고 중국 핵심 지도부는 청렴 결백하다는 점을 부러워합니다. 시장과 사회주의를 양립하는 중국식 사회주의가 성공해서 또 다른 역사를 창조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렇듯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정치 경제로 늘 삐걱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4개의 사회가 공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구의 50퍼센트를 차지하는 농업 사회, 22퍼센트의 공업 사회, 23퍼센트의 전통적 서비스 업종의 사회, 그리고 5퍼센트의 지식 사회로 구성됩니다. 중국의 인당 국내총생산은 850달러에 불과하나 상위 5퍼센트(6500만 정도)의 소득은 1만 달러를 너끈히 넘으리라고 합니다. 선전을 비롯한 경제 특구(주하이, 산터우, 샤먼 등), 자유시 상하이 등은 중국 경제 발전의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충칭을 포함한 서부 내륙의 9개 성은 중국 면적의 96퍼센트와 인구의 23퍼센트를 차지하지만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주민 소득이 동부의 10퍼센트에도 못 미친다고 합니다. 서구식의 빈부 격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식 사회주의를 위협하는 위협은 고용 문제 직결되는 인구 문제와, 빈부 격차, 부패입니다. 중국의 힘을 상징하는 인구는 결국 장래의 고용 문제로 직결될 것이고, 현재 빈부 격차는 상당히 심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돈 맛을 알아버린 중국 관리들의 부패는 심각하다고 합니다. 다행히 고위 층으로 갈수록 도덕성은 깨끗하다고 합니다. 원스톱 향락 제공으로 잘 알려진 위안화그룹 사건의 현장을 보존하여 부패의 심각성을 일깨우려고 하는 등 부패 타도의 의지 또한 확고하다고 합니다. 툭하면 무슨 게이트가 터지는 우리 정부가 한번쯤 고려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초고속의 성장을 유지하고, 빈부 격차를 문제에 잘 대처하여 인민이 상대적 빈곤감을 느낄 겨를을 주지 않는다면 사회주의 초급은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효율을 추구하는 시장 경제와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주의 병행 문제입니다. 중국이 우리를 바라보는 눈길에 대한 저자의 의견은 두고 두고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작은 나라가 그럭저럭 버티니 기특한 것은 사실이지만 크게 배울 것은 없다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얻어내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의 성공 사례보다는 오히려 실패 사례인 듯했다. 서양의 기술이든 제도든 한국이 실험해서 실패한 것은 피하려는 ‘반면 교사’의 재료로 우리를 이용한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관리나 재계 인사를 초대해서도 어떻게 성공했느냐는 질문보다는 어째서 실패했냐는 질문이 집중적으로 쏟아진다고 한다.’(162) 조선시대 우리 외교사를 장식하던 조공 체제가 떠올랐습니다. 외교사를 가르치던 교수님은 조공 체제 속에서도 우리의 독립적 외교 특성을 강조하셨지만 그 종속성과 한계성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이 지금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중국이 이렇게 초고속으로 성장한다면 동아시아의 패권은 중국에게도 가지 않을까요. |
| 그리스 신화에 이어 내 독서의 또다른 테마로 삼아 보려 했던 중국. 그러나 <현대 중국을="" 찾아서="">라는 대작에 가로막혀 중국 책 진도는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다. 어쩌면 중국이란, 그만큼 거대하고 쉬운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의 돌파구로 찾은 책이 바로 <정운영의 중국경제산책="">이다. 급변하는 중국의 현재 모습을 담고 있다는 것이 좋았고, 무엇보다 정운영이 썼다는 점이 좋았다. 정운영이 썼다는 점은 2가지 측면에서 가려질 수가 없다. 첫째, 읽기 편하면서도 무게감을 놓지 않는 문체라는 점, 그리고 이 놀라운 '세계화'의 시대에도 사회주의의 시각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칼라 도판이 가끔씩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어차피 여행책에서 사진은 오히려 상상력을 반감시키는 역할을 하기 십상이다. 더구나 지은이가 정운영일 때는 더욱 그렇다. 태어나기를 글쟁이로 태어났고, 살아오기를 글쟁이로 살아온 사람이다. 사진이라는 건, 영상이라는 건 애초에 고려하지도 않고 쓰는 글이기에, 오히려 독서의 방해요소가 되기 쉽다. 한가지 의문을 품으며 책을 덮었다. 과연 중국에서 공산당 독재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모든 개발독재국가가 겪은 민주화의 과정을 중국은 언제까지 회피할 수 있을까, 돈의 유입으로 심화되는 사회적 갈등을 중국은 언제까지 억누를 수 있을까, 그 사회적 갈등이 표면화됐을 때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적어도 아직까지는 중국은 그저 돈 맛을 알아가기에 바쁜 듯 하다. 그러나 그 달콤함의 끝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는, 중국인들도, 나도 좀더 지켜볼 일이다.정운영의>현대> |
| "세기말의 질주" 이후 오랜만에 정운영씨의 책을 읽었다. 그의 수업을 한번 들었다는 인연 말구도 그의 여러 글들을 접했다는 것과 티비에서 100분 토론을 진행하면서, 책 소개 프로그램을 맡아서 보여준 그의 모습에 대해서 나는 대체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다. 경제학자라고는 하나, 경제에 국한되지 않고도 맑시스트로서 사회 전방면에 그의 목소리를 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데,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서 정 위원은 중앙일보의 잦은 삽질에도 조용하고, 진보정당의 얘기나 시국 현안들에 대해 다소 무덤덤한 듯 하여 아쉽다. 방송인으로, 언론인으로, 학자로서, 교수로서도 어느쪽으로도 어느 정도는 성공한 이라서일까 마는. 암튼 "중국경제산책"은 올컬러에 좋은 종이로 만든, 다소 얇은 느낌을 주며, 생각의 나무라는 출판사마크가 찍혀있는 그런 책이다. 정운영씨는 중앙일보 기자와 함께 약 한 달 가량 중국을 "산책"했다. 산책이라기엔 좀 길지만 그건 중국이 워낙 광대하기 때문인 듯 하다. 그리고 그 기행의 얘기를 신문 지면을 통해 실었었고, 그걸 다시 책으로 엮었다. 중앙일보에 실렸을 때는 제목만 보고 넘어가는 식으로 무시했던 글들을 이제 책으로 사서 읽다니 겸연쩍기도 하다. 현대의 중국을 이뤄낸 인물로 정운영씨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꼽는다. 전자는 이상주의자, 후자는 현실주의자로 대비되고, 그리고 덩의 공이 오늘의 중국(의 고도한 경제성장)을 일구어내는데 더 큰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되고 있고, 실제로도 그걸 정운영씨는 현지에서 확인하지만, 그래도 마오에 대한(많은 사람들과 비슷할) 미련을 못 버리는 것이 그의 산책 화두 중 하나다. 그것은 그가 생각하는 사회주의(즉 마오)와 중국적 특색을 띤 사회주의(즉 덩)로 대비되기도 한다. 공산당이 자본가가 되는 것을 권장하던 덩의 사후에는 이제 자본가로 성공한 이들이 공산당에 입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지금 중국에서는 진행 중이란다. "마르크스가 이를 보았다면 막바로 졸도했을 것"이라는 정운영씨의 표현에는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회의가 담겨있다. 중국의 모습은 더이상 사회주의가 아닌데도 그들은 자본주의라는 레테르는 한사코 거부하고 있으니, 이는 마오라는 건국의 영웅에 대한 중국인들의 마지막 경의의 표현일까, 아니면 자본주의의 대부 미국에 대한 노파심에서일까. 그러나 중국식 사회주의의 저력은 그 엘리트 지도자들, 부패한 관료도 널려있지만, 그런 썩은 물을 딛고서도 지금의 중국을 이끌어가는 고위직 관료들에게서 정운영씨는 중국의 저력을 본다. 그러면서 왜 우린 저런 지도자가 없나 하는 조금은 한심스러워보이는(...) 개탄을 하기도 한다. 나폴레옹은 중국을 잠자는 용에 비유했고, 그를 계속 잠들게 하라고 했다고 한다. 정운영씨는 이 말을 뒤집어 역설한다. 중국이 깨어나면 세계의 1/5이 굶주리지 않게 되고, 자기 일을 갖게 되고... 그러니 중국을 깨어나게 하라. 이미 중국은 한참 전에 일어나서 달려가고 있다. 재미있다. 화사한 정운영씨의 문체 또한 수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