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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영혼의 아름다움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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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느낌을 주는 김동율과 이적의 ‘그땐 그랬었지’는 ‘어렸기에, 뭘 몰랐기에’ 로 표현되는 어설펐던 시절을 잘 표현하고 있다. 참 어렸던 시절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부르지만 그때는 국민학교였다. 아이들의 얼굴은 마른버짐으로 인해 피부는 하얗게 일어났고 흘러내린 누런 콧물을 닦기 위하여 연신 훔친 옷소매는 항상 더럽혀져 있었다. 바보 영구의 트레이드마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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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느낌을 주는 김동율과 이적의 ‘그땐 그랬었지’는 ‘어렸기에, 뭘 몰랐기에’ 로 표현되는 어설펐던 시절을 잘 표현하고 있다. 참 어렸던 시절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부르지만 그때는 국민학교였다. 아이들의 얼굴은 마른버짐으로 인해 피부는 하얗게 일어났고 흘러내린 누런 콧물을 닦기 위하여 연신 훔친 옷소매는 항상 더럽혀져 있었다. 바보 영구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땜통 머리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라고 할만하다. 비록 가난에 찌들었지만 아이들의 얼굴 표정은 맑았고 누런 이빨 사이로 보이는 미소도 그리 흉하지 않았다. 이때는 초등학교도 멀리 있었기에 청량리에서 종암동까지 걸어 다녔다.(완전 할배라고 오해하는 것 아녀^^) 두 살 터울인 여동생과 함께 집을 나설 때 엄마는 항상 “입이 심심하다”며 많은 날 땅콩과 오징어를 간식으로 주셨다. 여동생과 함께 그 먼 거리를 걸어 다녔지만 힘든 줄 몰랐다. 왜냐하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 정도의 거리는 산보하는 것처럼 걸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가? 만화에 빠지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언제나 만화방에 들렸다. 지금도 웃음이 나는 것은 나는 만화를 봐도 괜찮지만 동생은 교육적으로 안 좋다는 기특한 생각 때문에 여동생은 언제나 만화방 밖에서 하염없이 오빠를 기다렸다. 얘도 참 바보지, 화를 내며 자신도 보게 해 달라고 큰소리를 치던지 아니면 먼저 집으로 가던지 할 수 도 있었지만 여동생은 언제나 오빠를 기다렸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난 신이 나서 만화의 줄거리를 이야기 해 주었고 동생도 웃으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천국의 아이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우리나라의 60년대의 모습이라고 할까?

처음 접하는 이란 영화이기에 호기심도 있었고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3개 부문(그랑프리, 관객상, 기독교협회상)을 석권했고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을 얻었다는 사전 지식이 있었기에 인터넷에서 이 영화의 감독인 마지드 마지디(Majid Majidi)를 검색했더니 1990년대 이란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3세대 대표 감독이라고 나온다. 메인 영화제는 아니지만 해외 영화제에서 잇달라 수상의 영광을 누리기에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 그 이름을 각인시켰다고 한다.

 

 

영화는 가난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친근한 장면부터 시작이 된다.
기름때로 가득한 할아버지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옆구리가 터진 분홍색 구두를 수선한다. 이윽고 신발은 마법사의 손길을 거친 것처럼 새롭게 탄생을 한다. 초등학생인 알리는 여동생 자라의 구두를 받아들고 야채가계로 향한다. 엄마의 심부름을 하기 위하여 자라의 구두를 문 앞에 있는 틈에 놓고 감자를 구입하고 있는데 쓰레기를 수거하던 아저씨에 의해서 자라의 신발은 검은 봉지 속에 있었기에 실려 가고 만다. 여동생에게 하나밖에 없는 구두를 오빠가 잃어버린 것이다. 고개를 푹 숙인 알리가 자라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자 자라의 큰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학교에 신고 갈 신발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알리의 부모는 딸에게 신발 한 켤레를 사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알리는 "울지 마. 오빠가 찾아줄게. 그때까지 오빠 운동화를 함께 신자……."며 동생을 안심시킨다.

 

 

 

이렇게 가난한 아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의 특징은 주인공 어린이들이 무척 잘 생겼다는 것이다. 아마 관객들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많은 동정심을 느끼며 혀를 찰 것이다. 그리고 눈물도 흐를 것이다. 아이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것은 눈이다. 쌍꺼풀이진 큰 눈은 자신들이 얼마나 선한지 보여준다. 또 하나 가난하지만 그들의 피부는 내가 어렸을 때의 모습과는 달리 매우 깨끗하다. 그들의 환경은 매우 가난하고 불결하지만 주인공들은 옷만 좀 남루할 뿐이지 얼굴만 본다면 어느 귀공자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잘 생겼다. 인도의 가난한 아이들이 주인공인 ‘스탠리의 도시락’에서도 쌍꺼풀진 아이의 큰 눈동자가 영화를 이끌어 간다고 할 정로로 매력이 있다. 가난한 현실에 맞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관객들은 시비를 걸진 않는다. 영화가 주는 감동이 워낙 크기에 그 당시의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 귀족풍의 얼굴이라 할지라도 당연히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믿고 싶다. 

 

오빠의 운동화를 같이 신게 된 오누이는 오전반인 자라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오면 알리는 그 운동화를 신고 학교까지 달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번번이 지각을 하다가 어느 날 교장 선생님(?)에게 걸린다. 자신의 사정을 말할 수 없기에 알리는 변변히 거짓말도 못하고 땀만 흘리는데 반복된 지각으로 인해 교장선생님의 진노를 사 퇴학당할 위기에 놓인다. 영화 속의 현실은 슬프지만 아이들은 이 현실 속에서 순수하고 아름답게 커간다. 이 영화의 감동이 여기에 있다.  어느덧 우리의 아이들은 가난 없이 자랐다. 수돗물을 받기 위하여 한나절을 온가족이 양동이 하나 가지고 줄을 서던 시절, 공동변소를 이용하기 위하여 한 손으로는 신문지를 들고 또 한손으로는 똥코를 쥐고 달리던 가난을 알지 못한다. 비록 가난했지만 아이들은 편을 가르지 않았고 힘없는 아이를 못 살게 굴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이키나 노스페이스를 입지 않았어도 불행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똑같이 가난했기에 그 누구도 부를 가지고 자신을 뽐낼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은 돈으로 키운다. 일 년에 수천만 원이 드는 국제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가진 자들은 법을 어겨서까지 그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편법을 사용하고 없는 자들은 한편으로 분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들을 부러워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나도 돈만 있다면 우리 아이를 그 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인데…….” 대부분의 부모가 가지고 있는 소망이다. 과거에 비해 풍요로워진 물질은 우리의 정신을 좀 먹고 말았다. 아이들의 동심은 사라지고 웃자란 아이들은 어른과 똑같은 문화를 누리기 시작했다. 과학자가 되는 꿈보다는 연예인이 되는 꿈에 더욱 익숙해진 아이들. 외모는 그 아이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되었고 그 무기를 얻기 위하여 우리의 아이들은 오늘도 치장에 익숙하다. 가볍고 육체적이고 즉물적인 삶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정신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러나 가끔 영화는 이런 삶의 모순을 잔잔히 보여준다. 

 

 

 

천국의 아이들이 가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순수한 영혼의 아름다음을 만나기 때문이다.
때로는 티격태격하지만 서로를 향한 알리와 자라의 모습 속에 베어나는 진한 사랑에 가슴이 촉촉이 젖는다.  어느 날 어린이 전국 마라톤 대회가 자신의 마을에서 있다는 것을 선생님이 알려주신다. 참가할 학생은 신청하라는 말에 알리는 지원한다. 그 이유는 3등의 상품이 운동화이기 때문이다, 3등만 할 수 있다면 동생은 새 운동화를 신고 좋아할 것이다. “그래! 동생 자라를 위해 뛰겠어.” 오빠 알리의 기특한 생각이다. 
여기에 감독의 메시지가 있다. 우리는 누구나 1등을 목표로 달리고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 그러나 그것이 욕망이다. 욕망을 이룬 사람은 찬사의 대상이지만 반대의 부류는 낙오자로 몰리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그러기에 생존경쟁은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감독 마지드 마지디는 악착같이 일등을 하려고 애쓰는 삶보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만큼만 원하고 누리는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가치를 꿈꾸며 살아가는 삶,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등도 기꺼이 양보하며 조금 느리게 천천히 걷는 삶의 고귀함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드디어 마라톤 대회날 알리는 3등을 목표로 달린다.
다른 아이의 욕망 때문에 넘어지는 위기도 있지만 알리의 눈에는 3등 상품으로 받은 운동화를 보며 즐거워할 자라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한다. 이윽고 결승점을 4명의 아이가 동시에 들어선다. 1등인지 3등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알리는 반문한다.

"3등이 아닌가요?"
그러나 아쉽게도 그가 일등이다. 조금도 기쁘지 않은 알리는 표정은 시무룩하다. 그에게 1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돌아온 알리 앞에 자라가 예쁜 미소를 지으며 맞이하지만 알리의 발에 신겨진 낡은 운동화를 보며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다. 영화는 슬프다. 알리는 빈속을 수돗물로 허기를 메꾼다. 마라톤을 하느라 더 낡아버린 운동화를 벗자 알리의 물집 잡힌 발이 보인다. 그 발을 마당의 작은 연못에 담그자 금붕어들이 달려와 입맞춤을 하면서 유영을 즐긴다. 아마도 금붕어들이 알리를 격려하는 것 같다.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았고 이룬 것도 없는 것처럼 영화는 슬프게 끝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푸근한 것은 힘든 현실 속에서 조금 더 변하지 않은 알리와 자라의 미소를 보기 때문이다. 그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한 아이들은 행복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알리와 자라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우리는 미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병들어 있다는 증거다. 나의 증세를 알았다면 이 영화는 가치가 있다. 욕망의 포로가 되는 삶이 아니라 영혼이 안식하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배운다.




YES마니아 : 로얄 j*****r 2012.09.28. 신고 공감 8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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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라,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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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 소년 알리는 여동생 자라의 구두를 수선하고 가져오다가 그만 잃어버립니다. 집세가 몇 달씩 밀렸고 어머니는 몸이 아픈 집안 형편을 아는 이 조숙한 아이들은 부모에게 신발 사달라고 조르지도 못합니다. 그저 둘이 번갈아 알리의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갈 뿐이지요. 하지만 이런 생활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 도중 마라톤 대회 3등 상품으로 운동화를 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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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 소년 알리는 여동생 자라의 구두를 수선하고 가져오다가 그만 잃어버립니다. 집세가 몇 달씩 밀렸고 어머니는 몸이 아픈 집안 형편을 아는 이 조숙한 아이들은 부모에게 신발 사달라고 조르지도 못합니다. 그저 둘이 번갈아 알리의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갈 뿐이지요. 하지만 이런 생활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 도중 마라톤 대회 3등 상품으로 운동화를 준다는 걸 알고 알리는 경기에 참가하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우울하고 슬픈 영화는 아니었어요. 다만 그 좋은 어린 시절을 한껏 누리지 못하고 빨리 어른이 되어버리는 아이들의 운명이 슬프더군요. 이제 겨우 아홉 살짜리 애한테 내가 네 나이 때는 돈을 벌었는데 아픈 엄마도 안 도와드리고 놀러다니냐고 호통치는 아버지. 대를 이어 물려지는 가난의 악순환이란. 모두가 가난하다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자라는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의 예쁜 신발과 비교되는 오빠의 낡은 운동화가 부끄러워 움찔움찔 숨기고, 주말에 아르바이트 삼아 정원사 일을 하러 알리가 아빠와 함께 간 부촌에는 근사한 저택들이 줄줄이 서 있고(앞에서 본 아버지는 무서웠지만 이 부분을 보니 불쌍하더군요. 아홉 살짜리 아들보다도 주변머리가 없어서 어쩐담...), 마라톤 대회에는 아이들의 모습을 찍으러 캠코더 들고온 부모님들이 잔뜩 나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베풀 줄 알고, 설탕 조각 하나도 남의 것은 건드리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도 멋집니다. 다만 마지막에 알리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나서, 아이의 바지 뒤가 얼핏 보였는데 'Lee'라는 상표가 떡하니 박혀 있더군요. 돈이야 있다가도 없을 수 있는 거지만, 신발 하나 사기 쩔쩔매는 집안에서 미제 청바지라니, 어째 옥의 티라는 기분이 안 들 수가 없던데요.
d******t 2003.01.07. 신고 공감 2 댓글 0
가난이 아름다울 수 있다니. 아마도 영상의 힘, 즉 감독의 섬세한 시선 처리의 결과일 것이다. 연못 속 금붕어들이 알리의 발에 난 상처와 수고를 잠시나마 위무해줄 것이다. 알리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릴 때, 그리고 마라톤 결승선을 향할 때 내 몸도 같이 비틀렸다. 그 맑음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천사 같으면서도 동시에 일찍 철들어버림이 안타까웠다.    아버지가 돈벌이가 수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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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이 아름다울 수 있다니. 아마도 영상의 힘, 즉 감독의 섬세한 시선 처리의 결과일 것이다. 연못 속 금붕어들이 알리의 발에 난 상처와 수고를 잠시나마 위무해줄 것이다. 알리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릴 때, 그리고 마라톤 결승선을 향할 때 내 몸도 같이 비틀렸다. 그 맑음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천사 같으면서도 동시에 일찍 철들어버림이 안타까웠다.

 

  아버지가 돈벌이가 수월치 않고 어머니는 아픈 탓에 어린 알리와 자라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사 일을 돕는다. 한참 해맑게 나가 뛰어놀며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그들은 서로 동생을 살피며 부모님의 고단함이 가중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상영시간 구십 분을 운동화라는 소재 하나로 집중도 높게 이끌어갈 수 있다니 감독은 사람(의 심리)을 잘 아는 사람인 듯하다. 남의 눈에 버릴 물건이자 쓰레기로 보이는 신발을 잃고 그들은 낡은 운동화 한 켤레로 돌려막기에 나선다.

 

  신발은 옷만큼이나 문학과 영상물에서 소유자의 신분이나 정체성을 나타낸다. 밖으로 드러나는 표식인 운동화는 집이나 차, 가방, 손목시계처럼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대변하는 기호이다. 알리와 자라 남매가 더 애틋한 지점은 잃어버린 구두가 도착한 곳이 시각 장애인을 아버지로 둔 아이의 집이다. 일순 잃어버린 신발을 어떻게 되돌려 받을지 궁금했던 나는 그들이 시선을 주고받으며 조용히 물러설 때 얼굴이 화끈거려 혼났다.

 

  알리는 아버지가 남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든 막으려한다. 아버지가 부업으로 정원사 일에 도전할 때도 기꺼이 따라나서고 돈벌이에 실패할 때도 원망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아직 어리고 사회 물을 덜 먹어 가능한 낭만적인 무지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도 타인의 시선과 기준을 따르며 눈치를 보게 되어 있는데 알리는 예의 바르면서도 당당하다. 가난이 선사하는 불편함과 부자연스러움에 속박되지 않는다.

 

  비디오를 관람하며 아버지나 선생님한테 솔직히 터놓고 도움을 구했으면 어땠을지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알리가 스스로 해결하고자 고심하기에 시청자의 마음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그를 따라 연신 뛰게 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와의 첫 만남에서 뛰어가면 그것이 상대를 향한 심장박동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청자는 두 남매와 함께 있는 힘껏 헉헉거리며 달리게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두근대던 마음은 아버지의 자전거에 매달린 두 아이의 새신발로 안심하게 된다. 유리창 너머 직접 가질 수 없는 구두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엄마가 척추 이상으로 영영 일어서지 못하는 건 아닌지, 울어대는 갓난아기가 치료를 받지 못해 돌연 사망하지 않는지, 부자동네에서 망가진 자전거로 아버지가 불구가 되는 건 아닌지 여러 차례 마음을 졸였다. 그런 어둡고 절망적인 이야기로 치닫지 않아 안도했다. 단지 지금의 상황이 가난하다고 도미노처럼 삶이 쓰러질 거라고 손가락으로 밀어대지 않아 눈물겨웠다. 알리의 미래를 속단하지 않고 내버려두어 좋았다. 이로써 기존의 물질 중심의 가치를 휘저으며 그들만의 천국과 그 안의 아이들을 완성해낸다. 

 

  신발은 외부활동을 하고 멀리 이동하는 신체 확장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내밀하고 비밀스런 분신이기도 하다. 대체로 남과 나누어 쓰지 않는다. 지금까지 간 주행거리를 나타내는 계기판이며 계층의 높낮이를 연출하는 매개도 된다. 무엇보다 부모가 자식의 성장과 새로운 시작, 꿈을 응원하며 기꺼이 사주는 물건이다. 그래서 주인 잃은 아이의 신을 볼 때면 울컥하는 것이다.

 

 

  자기 때문에 잃어버린 신발을 되찾아주고 또 자신도 더 이상 지각하는 사태가 없도록 달리기의 3등을 노리는 알리의 모습이 순수하고 예뻤다. 세상의 편견과 차별에 아직 날카롭게 반응하거나 분노하지 않는 순하고 때묻지 않음을 접하고 나니, 세상의 더러움의 농도는 아이들의 맑음과 웃음으로 인해 씻기는 것 같아 다시금 미래 시간인 아이들에게 생각이 미친다. 세대 갈등의 문제나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 침체성은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감정과 안위만을 고집하고 주장할 때 첨예화된다. 아이들에게 좀더 많은 희망과 가능성, 발언권을 내주는 시대가 열리길 기도하는 요즘이다.

s********d 2017.04.16.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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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속에도 밝고 순순한 아이들...
"가난속에도 밝고 순순한 아이들..." 내용보기
이란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의 대부분은 할리웃 영화이고 간혹 프랑스 영화같은 유럽 영화들이 들어오곤 한다.이란 영화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만든 감독의 것이 거의 전부이다.. 이란 영화의 차세대 주자로 인정받고 있는 감독이 만든 영화 천국의 아이들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계보를 이을만한 영화이다. 도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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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의 대부분은 할리웃 영화이고 간혹 프랑스 영화같은 유럽 영화들이 들어오곤 한다.이란 영화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만든 감독의 것이 거의 전부이다.. 이란 영화의 차세대 주자로 인정받고 있는 감독이 만든 영화 천국의 아이들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계보를 이을만한 영화이다. 도시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무능력하면서 허세가 강한 아버지, 몸이 약한 어머니...그 속에서 자라는 순수하고 맑은 알리와 자라 남매.. 동생의 구두를 수선하고 오다가 잃어버린 아이는 돈이 없는 부모에게 걱정을 끼칠까봐 오전 오후로 나누어 동생과 신발을 교대로 신고 다니게 된다. 때로는 신발을 바꿔신을 동생이 학교에서 늦게와 지각을 해 교장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하고 도랑에 신발을 빠뜨리기도 하지만 두 남매는 역경(?)을 잘 헤쳐나간다... 잃어버린 신발을 신고 있는 소녀를 발견하고 그 뒤를 따라가지만 역시 가난한,게다가 아버지가 맹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신발을 되찾기를 포기하는 자라... 나중에 그 소녀가 새신발을 신고 원래 자기의 것이었던 헌신발을 버렸다는 것을 알고 화를 내는 자라.. 3등 상품이 운동화라는 것을 알고 마라톤에 출전하지만 결국 1등으로 들어와 츄리닝과 캠프참가를 선물로 받게되자 울상이 되어버린 알리... 밑창이 다 뚫어진 운동화를 벗고 터지고 물집잡힌 발을 연못안에 넣을때 발 사이로 몰려드는 빨간 금붕어와 나른한 휴식을 즐기는 듯한 알리의 표정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기교와 박진감, 스릴이 넘치는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에겐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영화일지 모르지만 담백하고 소박한 이 영화를 통해 아이들의 순수함을 느껴보는것도 좋을 것이다.
a******4 2004.05.1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