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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암울했다. 힘 없는 나라에서 태어난 죗값은 기대 이상으로 컸다. 젊은이들은 목숨 바쳐 군국주의를 찬양해야 했다. 이유가 없어도 차별은 당연히 견디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어린이와 여성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옳음을 일제강점기 역사를 공부할 때마다 뼈저리게 느낀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해결된다. 일본 정부는 어떠한 사죄도 않고 이른바 버티기 전략을 구사중이다. 고령의 어르신들에겐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몇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에는 평생을 짊어지고 산 어르신들의 상처가 가득 담겨 있었다. 가난하면 가장 먼저 버림 받곤 하는 여성들의 서러운 삶을 모아놓은 책이라는 사실에 같은 여성으로 이끌렸다. 대강 짐작은 가능했다. 하지만 짐작만으로는 부족했다. 개개인의 삶 하나하나가 아름답고도 가치 있기에 그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후회치 아니 할 선택이었다. 나 또한 여성이었기에 더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이야 아이를 안 낳는다고 아우성이다. 아이 없이 사는 딩크 족을 비롯하여 아이를 낳아도 하나뿐인 경우가 많다 보니 교육을 안 시키는 건 상상조차 힘들다. 학벌이 사회의 한 축을 지탱하는 우리 사회를 고려한다면 더더욱. 하지만 가난했던 시절엔 이야기가 달랐다. 열댓 명의 자녀를 거느린 부모들도 제법 됐다. 그들은 심혈을 기울여 고른, 대부분은 장남이었다, 아이에게만 교육을 쏟아부었다. 나머지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상으로 쓰임을 받았다. 여아의 경우에는 출가외인이라는 말이 통용되던 시절이었기에 더더욱 교육에 박했다. 그나마 글이라도 읽을 줄 알면 운이 좋은 경우였고, 아주 기본적인 교육조차도 받지 못한 채 집 안에 머물다가 결혼을 해 출가외인이 되곤 했다. 우리집 식구가 아닐 존재에게 굳이 투자란 걸 할 이유가 없다고 어른들은 여겼다. 그리하여 평생을 글을 읽지 못하는 서러운 삶을 감내해야만 했던 이들이 꽤 되었다. 어이 원망이 없었겠는가!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더라도 운명이 달라졌으리라 말하는 그들이었다. 남자 형제보다 더 똑똑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뒤늦게 글자를 배웠는데 고령의 나이가 아무래도 부담이었다. 배우는 족족 잊어버리는 자신을 한탄하면서도 공부를 포기치 아니 하는 모습 앞에서 난 숙연해졌다. 너무나도 당연한 교육이 저들에겐 얼마나 절실했을지, 상상하는 것마저도 미안했다.
서러움은 무학으로부터만 비롯된 게 아니었다. 몇몇은 삶을 지탱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마땅한 일거리가 없었기에 했던 선택이었다. 차별은 상상 이상이었다. 부지런해도 도무지 모이지 않는 돈, 벗어날 수 없는 가난. 저절로 억척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여됐을 때 조선인들 또한 그 영향을 받았다. 거듭 기형아를 낳았고 이유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기도 했다. 할줄 아는 게 일본말 뿐이어서, 또는 생활기반이 일본이다 보니 한국으로 오지 못한 채 일본에 살고 있는 이들의 경우 최근 일본을 덮친 다양한 문제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다.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을 때 현재를 살면서 그들은 과거를 떠올렸다. 불행은 반복되는 것이라 누가 말했던가.
모든 일본인이 나쁘지야 않겠지만 이런 책을 일본인이 썼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의아했다. 많고 많은 인물들 중 식민지 전쟁 시대를 겪은 조선인 할머니들을 찾아나선 일본인이라니. 한일 양국의 미묘한 관계를 고려하니 더더욱 이 책이 가치있게 느껴진다. 여성이 역사의 주인인 적이 그다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책의 소중함은 더욱 커진다.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여성의 목소리, 여성들의 이야기가 이 책엔 살아 있다. 그녀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그녀들은 언제나 우리 사회의 일원이었다. 힘줘 부각시키지 않으면 없는 것마냥 여겨지곤 했던 여성, 이 책에선 그녀들이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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