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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왜하는가 스즈키 코지/양억관 일토/2016.2.19. sanbaram 요즘 유치원부터 영어열풍이 불어 비싼 원비를 내면서까지 좋은 유치원에 못보내 아우성이다. 어떻게 보면 자식에 대한 열정이 가상하기도 하지만 한편 생각하면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렸을 때 외국어를 배우면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배운다는 것은 둘 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정체성을 잃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제나라 말에 대해 확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외국어 습들을 한다면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면서 시너지 효과가 있겠지만 보통은 죽도 밥도 아닌 경우가 많다. 무조건 원어민과 수업을 한다고 하여 그 아이들이 원어민과 같은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망상에 가깝다고 생각이 된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외국어 공부보다는 국어와 우리나라 말의 근간을 이루는 한자를 가르치고, 체육을 중심으로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을 많이 접하도록 하는 게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스즈키 코지는 대학을 졸업하고 정규 직장을 갖지 않은 채 가정교사와 학원 강사로 생활을 꾸려나갔고, 결혼해서 자녀를 얻자 그 자녀의 교육을 홀로 도맡았다. ‘문단 최강의 육아 아빠’라는 별명을 가진 저자는 1990년 <낙원>으로 데뷔하여 일본판타지소설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그 후 <링>, <나선>, <루프>가 800만부 이상 팔리면서 호러 열풍을 일으켰다. 이 작품들은 세계 20개국에 번역되어 있다. <공부는 왜하는가>의 글은 그의 경력 때문인지 더욱 체험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다. “공부는 잔돈이나 벌어들이는 테크닉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공부는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의 능력을 기르고, 세계를 덮고 있는 많은 양의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세계에 공통적인 잣대(논리)로 판단하여 가치 있는 토론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내세우고, 더욱 나은 해답을 찾아낼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p.167)” 한 사람의 미래에 유용한 능력이란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 세 가지이다. 수학이나 외국어, 역사, 자연계 과목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각기 다른 관점과 각도에서 접근하는 방법을 배워 이 세 가지 힘을 기르는 것이 공부의 본질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대부분의 일은 이 능력으로 해결된다. ‘공부는 왜 하는가?’ 라는 질문에 인류의 진보에 공헌하기 위해서라고 저자는 답한다. “공부를 통해 익힌 지식은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피와 살이 된다. 미래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 지식이 쌓여야 아이는 새로운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힘을 갖게 된다. 그것이 바로 배우는 힘이다. 이 경우에도 공부의 목적은 지식 자체가 아니라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을 기르는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p.19)” 부모는 자식의 성적을 올려 입시에 성공하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부는 왜하는가’를 아이에게 가르칠 수 없는 게 아닐까. 만일 자녀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부모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자신 있게 대답해야 한다.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학력과 교양이 높아질수록 어떤 선택을 내릴 때 공동체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판단할 수 있다. 어학에 필요한 것은 단문의 확실한 암기다. 중학교에서 배우는 정도의 쉬운 영문을 반복해서 말하고 쓰기만 해도 영어의 기본적인 구조를 몸으로 익힐 수 있다. “정말로 몸에 익혀야 할 것은 기본 구문이다. 현재형, 과거형이 반사적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을 때 완료형이나 가정법으로 나아가면 된다. 고등하교 1학년까지 중학교 수준의 기본을 온전히 익혀두면 두려울 것이 없다. 그 나머지는 필요에 따라 형용사나 부사를 붙이거나 관계대명사로 문장을 길게 만들어보기만 해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면 일상적인 대화는 충분히 가능하다.(p.89)” 교사나 부모가 경쟁을 조장하면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나만 공부 잘하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은 밀어내면 된다’라는 사고방식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면 자신만 숨어서 남몰래 공부하면 그만이고, 시험에 나올 만한 것이 있어도 남에게 가르쳐주려고 하지 않는 옹졸한 인간이 되고 만다. 서로가 서로에게 요긴한 정보를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아이들끼리의 관계도 날이 선다. 그보다는 “아이들끼리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어내면 교육적으로 많은 장점이 나타날 것이다. 영어를 잘하는 아이는 다른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그 대신에 과학이나 수학을 잘하는 아이에게 배우면 된다. 어떤 아이는 역사의 재미를 이야기해주고 다른 아이는 국어의 재미를 말한다.(p.104)” 그리고 교사는 늘 학생이 머릿속으로 어떤 이미지를 그리는지 상상하고 그 이미지가 더 구체적이고 선명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대단한 능력이 필요한 직업이다. “아이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을 때 부모가 논리적으로 대답해줄 수 있다면, 공부는 무의미에서 벗어난다. 그때 아이는 스스로 공부의 동기를 만들어낼 것이다.(p.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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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잔돈이나 벌어들이는 테크닉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공부는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의 능력을 기르고, 세계를 덮고 있는 많은 양의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세계에 공통적인 잣대(논리)로 판단하여 가치 있는 토론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내세우고, 더욱 나은 해답을 찾아낼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공부는 왜 하는가........ 그 대답은 저절로 나온다. 인류의 진보에 공헌하기 위해서다. p.167 개인적인 의견을 하나 덧붙이자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외국어 공부보다는 국어와 우리나라 말에서 치명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가진 한자를 가르치고, 체육을 중심으로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을 많이 접하도록 하는 게 참으로 중요하다고 믿는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p.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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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어린 시절, 공부 ]
1. 세상이 알록달록 궁금증 투성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공부란 세상을 이해하는 수단이었고, 선물을 열어 보았을 때와 같은 기쁨이 있었다.
2. 그러다가 어느 순간, 공부는 나를 그리고 친구들을 줄세우는 수단이 되어 버렸고, 더이상 알게 됨에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다.
[ 아이에게 주고 싶은 해답을 제시하여 주는 책 ]
세상이 그저 신기해서 이것저것 배우는 내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아이가 생기면서, 다시 공부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다. 그때 우연처럼 혹은 필연처럼 만나게 된 스즈키 코지의 '공부는 왜 하는가'
저자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을 제시하여 주면서, 아이들에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공부 방법 역시 제시하여 준다.
우리 아이가 조금 더 크게 되면 그때는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 책을 보면서 좀 더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그때가 되면 어쩌면 우리 아이는 나와 다르게 공부에 대해 계속 즐거움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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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조카가, 동생이 "공부는 왜 하느냐"고 물을 때 우리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의 '공부는 왜 하는가'는 우리에게 '링'으로 더 알려진 스즈키 코지의 책이다. 우리는 공부의 의미를 찾기 보다는, 공부를 어디 써먹을지만 고민해왔다. 누구도 왜 공부하는지 알려주지 않았기에 부모 세대도, 그 아래의 자녀 세대도 '그냥 했다'. '왜'를 물어본 적이 없고, 물어도 답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에 관성적으로 이유는 모르지만 그냥 했던 것이다. 스즈키 코지는 한마디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공부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제대로 공부하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이 된다. (중략) "왜 공부를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부모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자신있게 대답해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학력과 교양이 높아질수록 어떤 선택을 내릴 때 공동체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판단할 수 있다' -41p- 아마도 누군가는 경쟁사회에서 공부는 당연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당연한 듯 느껴지는 이 내용에 대해 스즈키 코지는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교육 현장이나 가정에서 선생님이나 부모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그것은 '경쟁 사회'라는 말이다. '공부하라'라고 격려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 이유로 세상이 온통 경쟁이니까 그 경쟁에서 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이에게 정말 좋지 않다. 이 세상은 결코 경쟁 사회가 아니다.' 100p '생존경쟁'이라는 말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나왔다. 그러나 'struggle for existence'를 생존경쟁이라 번역한 것은 잘못이다. 'struggle'이란 단어는 '애쓰다, 노력하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생명이란 원래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라고 해야 한다. 일본의 이마니시 긴지 씨가 주장하는 진화론의 기본개념은 '공생'과 '나눠 살기'인데, 그것은 경쟁 자체를 부정하는 사상이다.' -103p- 여담이지만, '로버트 액설로드'의 '협력의 진화'를 본 사람이라면 위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협력의 진화에서는 협력이 강제없이도 자연적으로 창발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다. 호혜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이타주의가 자연적으로 진화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사회적으로 '경쟁'을 강요받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개체 단위에서, 더 작게는 세포 단위나 유전자 단위에서 서로 협력하는 존재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비열한 전략보다 협력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며(물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어떻게 보면 이게 더 자연스러운 상태라고도 본다.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 우리의 자녀 세대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을 때, 그들이 조금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과학적으로 판단할 때 우리의 미래는 더 밝아질 것이다. 그것이 '공동체를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판단'하려면 공부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본의일 것이다. 이책은 학습법을 다루는 책도 아니고, 자녀 양육에 도움을 주는 실용서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가치있는 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공부가 아닌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며, 살아가는 방식에 긍정적인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가 있건 없건,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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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왜 하는가? 라는 질문을 일본의 소설가 스즈키 코지가 이야기 해준다. 작가가 겪어온 삶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기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으며 작가로서 모든 현상을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치밀한 사고력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세계와 사회가 어떻게 되어가는가를 이해하고 현재의 모습을 밝히려고 애쓰는 소설가답게 공부는 왜 하는가라는 질문을 두고 지금 이 시대를 바라보게끔 한다.
이 책은 공부하는 행위 하나를 어떻게 인지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인생과 그 개인이 속한 사회가 바뀔 수 있으며, 그 사회는 또 개인에게 영향을 주며 변화와 균형을 이뤄나가는지 그리고 세계가 바뀌어 왔는지 거시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챕터마다 주제를 묻고 작가가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말하려는 논점을 파악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공부를 왜 하는가를 한마디로 답한다면 공부는 이해력과 표현력, 그 사이를 이어주는 상상력, 이 세 가지의 힘을 기르는 훈련이다. 지식의 습득을 학력 향상이나 입시에 성공하는 수단으로만 여기면 공부를 아무리해도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시간을 소비하는 스트레스에 지나지 않는다. 공부를 통한 이해력·상상력·표현력은 삶의 방식과 직결된다. 미디어가 내보내는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읽고 깊게 해석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미디어 리터러시(literacy)라고 한다. 넘치는 정보를 세계를 의심해보고 사회 환경과 정보를 스스로 검증하고 선택하면서 자신의 관점이나 사고를 바탕으로 정보에 접하는 자세가 오늘날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능력이다. 따라서 무엇을 위해 공부하냐고 묻는다면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을 높이고 리터러시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다. 리터러시 능력이 높아지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줄어들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치 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 훌륭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변별하는 확실한 안목을 가지게 되므로 사회 전체의 수준이 높아진다.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이라는 사고 회로를 통해 나온 자신의 의견으로 명석하게, 논리적으로, 분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관건이다. 정서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다양한 문제에 대해 개개인이 스스로 생각해 자신만의 결론을 내려야 하고 분위기나 정서에 휩쓸리지 않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뇌사문제, 유전자 복제기술 등의 문제를 통해 합리적이고 명확하게 생각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사회적 규칙을 정할 때는 정서를 개입시키지 말고 논리적으로 결론을 이끌어 내야한다. 논리가 아닌 정서가 지배하게 되면 세상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세계란 절대적인 구조를 가지고 거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질서와 무질서, 결정과 열평형, 구조와 혼돈, 양방향의 세계가 적절하게 섞여서 존재한다. 생명은 균형을 유지하면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시대란 늘 변하는 것이기에 어느 시대가 좋았다가 명료하게 말할 수 없다. 푼돈이나 벌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공헌하고 인류의 진보에 큰 힘이 될 수 있기에 그런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아이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미래는 괜찮다. 더 나은 미래를 열기 위해 노력하라고 작가는 격려한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읽기에는 약간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앞으로 질문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를 가진 부모가 읽으면 아주 좋을책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을 읽은 부모님은 자녀가 공부는 왜 해야 하냐고 물어봐주면 기다렸다는 듯이 이 책의 내용을 풀어내면 된다. 아마 부모님의 논리적이고 치밀하며 세계시민적인 사고에 깊이 감동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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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추천해서 찾아봤지만 품절상태여서 일본 출장중에 중고책으로 구해서 읽었었는데 다시 출간되었네요~~ 워낙 이런류의 책들이 서점가에 차고 넘치지만 거의 방법적인 기술적인 책들이 많은데 스즈키 코지(지금까지의 그의 작품 이미지와는 너무 다르지만)는 공부에 대한 자신의 고민과 근원적인 이유를 논하고 있다. 일본서는 공부의 의미, 이미지도 다르듯, 단순히 익히는 것이 아닌, 강해지기 위해(?) 지속적으로 열심히 해야하는 행위 라는 느낌이다. 그래서 앞으로 미래에 더욱 필요한 개념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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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는 필요없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에 한 가지 의문은 학교에서 배운 공부가 필요없다고 하는데 정작 학교 공부를 잘 한 사람이 사회지도층이 된다. 한국에서 가장 공부 잘 한다는 사람이 들어가는 서울대 출신이 사회 곳곳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학교 공부가 필요없다는 말이 이상하다. 논점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정확하다. 학교 공부를 잘 했다는 것이지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 배운 공부를 뼈때로 관련 학문을 더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학교 공부는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대다수 사람에게 학교 공부가 필요하냐는 자녀의 질문에 대답은 궁색하다. 학교 공부를 잘 했다는 뜻은 머리가 똑똑하다는 것도 있지만 인내를 잘했다는 의미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참고 앉아서 공부했기에 고득점이 가능했다. 거기에 고득점을 맞아 들어간 대학출신이라면 인내와 똑똑함이 검증되니 대기업도 어느 정도 필터링은 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 외에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것이 어떤 검증이나 판단에 효과적인 필터링은 되지 않는다. 자신의 인내하고 공부하지 못한 아이가 실패한 것도 아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봐야 결정이 된다. 좋은 학교를 나오면 사회지도층 인사가 될 가능성이 좀 더 높을 뿐이다. <공부는 왜 하는가>에서 학교 공부를 잘 할 필요성이 있다고 알려준다.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교과서를 읽으며 이해력을 높히고 이에 따라 상상한다. 그 후에 스스로 이해하고 상상한 걸 표현한다. 이런 방법은 학교 다닐 때 배워야 한다. 책에서 언급한 학교 공부 잘한다는 의미는 고득점이 아니다.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을 향상시키는데 발판을 마련해주는 역할이다. 여기에 추가로 리터리시 능력까지 갖춘다면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자존감을 갖고 자립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단순히 학교 공부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해당된다. 사물을 이해하고 사회가 어떻게 진행될지 상상하고 이를 근거로 남에게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종합적인 능력이 리터리시로 발휘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평소에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이다. 내가 이런 것들을 잘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다. 불행히도(?) 난 학생시절에는 이런 것을 위한 준비나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했으면 어땠을까. <공부는 왜 하는가>저자는 재미있게도 공포영화 <링> 저자다. 소설로 읽어본 적은 없고 영화로만 본 <링>이다. 그 이후 시리즈로 영화가 나왔는데 이마저도 저자인 스즈키 코지가 소설 원작으로 만든 영화였다. 어딘지 그런 소설을 만든 저자가 쓴 책이 공부에 대한 것이라고 하니 다소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에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책도 얇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니 무엇이라 그러는지 궁금했다. 서양과 동양을 비교한다. 서양이 동양에 비해 과학이 발달했다. 근본적으로 수렵민족과 농경민족에 따른 환경과 철학까지 언급한다. 서양은 철학에서 과학까지 발달하며 세계의 구조를 탐구했지만 동양은 위정자의 마음을 가르치는 학문이 발달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서양을 높게 쳐주고 동양을 낮게 본다. 현재 사회를 볼 때 그렇지만 이건 좀 의아했다. 서양인의 관점에서 본 오리엔탈리즘에 가깝게 느껴졌다. 서양학자들도 운에 가까웠다고 말하는 실정인데 말이다. 다양한 운이 결부되어 서양이 동양을 앞섰다. 과거에는 동양이 더 잘 살았다. 거꾸로 못 살아서 필요성에 의해 서양이 움직인 결과로 지금처럼 동양을 앞섰다. 서양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건 맞지만 이걸 너무 과하게 이야기하는 듯 해서 그 부분은 별로였다. 이런 부분이 역설적으로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알려준다. 저자 자신이 주장을 펼쳤는데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저자가 공부를 더 많이 하지 않았거나 내가 더 배워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공부는 이렇게 어제 알고 있던 것이 오늘되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오늘 알고 있는 것도 내일이면 달라질 수 있다. 지구는 평평하다가 지금은 틀린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공부를 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은 없다. 어떻게 살것인가는 차라리 공부와 연결된다. 공부를 해도 먹고 살 수 있고 공부를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 공부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은 똑같이 먹고 사는 것에 차이가 생긴다. 책은 이해력, 상상력, 표현력을 갖고 리터리시 능력을 기른다는 점을 알려준 것은 참 좋았다. 그 외에는 책에서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그래도 이것만 깨닫고 알게 되어 좋다. 늘 주장하듯이 책에서 딱 5~10%만 얻을 것이 있으면 족하다. 책에서 100%를 원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고 무리다. 책을 읽는 이유만 충족되면 된다. 나에게 공부는 독서고 읽기고 쓰기고 생각하기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책 전반만 읽어도 되긴 함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목적을 달성하면 됨. 함께 읽을 책 http://blog.naver.com/ljb1202/220435807858 에디톨로지 - 편집 http://blog.naver.com/ljb1202/220323685590 내가 공부하는 이유 - 그저 독서 http://blog.naver.com/ljb1202/220118580306 생각의 시대 - 로고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