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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 나왔다. 경제에 관해 이렇게 쉽게 도표와 함께 설명하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다. 하루 만에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모르고 있었지만
상관관계가 있는 내용들에 대한 풀이식 해설이 좋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접근하기에 좋은 책이다. 칭찬을 해드렸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 책에서 던지는 화두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일자리의 붕괴와
청년세대. 두 화두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저자의 논리처럼 청년세대가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면 일자리가 늘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세돌 9단의
천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알파고는 이제 컴퓨터가 두뇌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일까지 갈아치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에서 시작한 제조업은 일본으로, 한국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옮아갔다. 이젠 중국도 그 일자리를 소프트웨어와 로봇에게 빼앗기고 있다. 21세기
IT 기술은 제조업에서 노동력이 어떻게 사라질 수 있고 일인당 생산력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한다면 바보다. 무언가를 외어야 하는 직업은 사라진다. 모든 반복적인 업무 역시 사라질
것이다. 사람이어야만 가능한 일들 위주로 직업은 남게 될 것이다. 죄를
지을 수 없는 로봇이 사악한 목사를 대체할 수 없다. 사람이 로봇을 정치지도자로 뽑을 수 도 없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아직 로봇이 따라오기에는 힘든 일이 그나마 얼마간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청년세대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우선, 공급자로서 청년은 로봇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가치를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소설, 영화, 소프트웨어, 스포츠, 복지, 의료 등 소위 지식재산권이 아직 사람에게 주어지는 분야에 공급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교육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면에서 아직도
외우고 외운 것을 골라내는 교육은 미래를 제대로 준비시키기 어렵다.) 소비자로서의 청년은 노년을 포함한 모든 세대와 함께 인류의 생산물(로봇이
만들어내는 생산물도 포함하여)을 소비하는 주체가 될 것이다. 경제의
양대 주체는 생산과 소비다. 과거에는 사람의 노동력에 의존해서 생산이 이루어졌기에 노동이 중요했으나, 이제 우리는 노동이 필요 없는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사람은 소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진정으로 소비가 미덕인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돈을 벌어야 하는 직업은 없어져가고 있다. 직업이 없어도 소비를 여전히
수행할 수 있는 원리가 필요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아직 안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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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니즘의 실패, 낙수효과의 실패 2015년에 출간된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에서 지적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2년이 지난 후인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그간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으니 저자의 지적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저자의 주장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대한민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빠르게 성장하여 세계 10위권의 국가가 되었는데 국민들(청년들)의 삶은 날로 빈곤하고 불행해져 가고 있다.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은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는데 정작 근로자들이 그 혜택을 실감하지 못한다는것은 결국 '전체 파이의 크기가 커져야 1인당 돌아가는 몫도 커진다'는 소위 낙수효과가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업은 점점 부유해지는데, 근로자와 국민은 점점 더 살기 힘들어졌다. '자살률 OECD 1위, 헬조선, 공시족 25만명'이 보여주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절망적이다. 취업만 하면 가족이 걱정 없이 잘 먹고 잘 살았던 세상, 퇴직금으로 자영업을 차리면 여생을 꾸리는게 아주 어렵지는 않았던 세상에서,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지 못하면, 결혼도 출산도 집을 가지는 것도 포기해야 하는 3포 또는 5포세대는 언제든 빈곤층으로 굴러 떨어질 수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누구든지 살아남아야만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각자도생의 시대, 그렇다면 저자는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쉽지 않은 문제이기에 기업의 자율이나 개인의 선택에 맡기기에는 역부족이므로, 국가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년에게는 도전이 가능하도록 정책적 투자, 지원 등을 하고, 노년층에는 연금과 같은 빈곤을 피할 수 있는 복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덧붙여 정책으로만 끌어가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 성장보다는 함께 잘 살기를 고민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은 너무나도 타당하다. 너무나 맞는 말이라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을 고려해보면 과하게 이상적이고 낙관적인 의견인 것 같기도 하다. 저자 역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1인으로서 미래가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가 되길 바라는 바람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한다. 나 역시 내 딸이 살아갈 사회는 절망보다는 희망이, 무기력 보다는 도전정신이 넘치는 사회이길 간절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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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아버지와 나는 의견 충돌이 잦았다. '요즘 애들(나)은 도전적이지 못한가.'라고 질책하셨고, 나는 항상 '그 도전의 결과가 우리 지금의 모습입니까.'라고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었다. 지금은 그 대못만 남았고, 이제는 '내 자식이 생긴다면?'이라는 질문을 넘겨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 세대는 도전의 시대였다. 공무원은 시켜줘도 하지 않았다는 세대, 직장을 다니며 누구 밑에서 일하느니 작은 가게라도 운영하여 가족을 부양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세대였다. 가끔 택시를 타서 들었던 푸념 섞인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는 그랬다. 그리고 그들의 자식이 어른이 되었고,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비슷해진 능력 및 자격과 더 불평등해진 결과'라는 상충되는 상황을 정당화하려는 배제와 차별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p. 114 "불평등"의 시대다. 누구보다 동질감이 깊고, 스펙이 높고, 노력하는 세대지만, 누구보다 사람구실하기 어려운 시대. 자발적 노예가(안정적이거나 고소득이거나) 되기 위해 각자도생하는 무한 경쟁의 세대가 지금 우리의 세대다. 분명 우리 부모님이 바랐던 우리의 삶은 이런 모습이었을까? 안타까운 마음에서, 혹은 더 노력하라는 뜻에서 나의 아버지는 질타를 하셨을 것이다. '공무원(안정)'에만 목메지 말라고 더 노력하라고. 노량진으로부터 읽어야 할 것은 젊은 세대의 비겁이 아닙니다. 경제적 안전, 일의 보람, 그리고 진입 과정의 공정성을 포괄하는 새로운 세대의 일자리 패러다임입니다. 청년들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자리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흐름을 읽지 못한다면 기업 경영도, 일자리 정책도 헛다리 만 짚을 뿐입니다. p. 262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젊은 세대가 비겁하거나 안정만을 추구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라고. 아버지의 '나라'와 우리의 '나라'는 너무나도 달라졌다고, 그렇기에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고. 2010년 이후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액면 세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중략)... 그래서 '액면 세대'란 소득을 모을 수는 있지만 그 소득을 재테크로 불려 의미 있는 자산으로 만들기는 어려워진 세대라는 뜻입니다. 돈을 모은다면 모은 그대로, 집을 산다면 산 값 그대로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물려받지 않고서는 재산을 형성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셈입니다. p. 327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을 위해서는 정부 정책과 사회 시스템도 바뀌어야 하지만 시민의 의식도 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환경 변화가 결과적으로 지배적 관행을 바꾸면 사회가 변화하는 것입니다. p. 324 전반부는 아버지의 나라를 분석하고, 중반부는 아들의 나라를 진단한다. 그리고 종반부는 손자의 나라에 대한 바람을 적었다. 그도 자신의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나라가 있을 것이고, 그 바람직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이 책을 통해 이끌어 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혼자만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이고, 저자의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일은 빚을 지는 일이다. 대차대조표에 빗대 말하자면 내가 쓴 글은 자기자본계정 대신 부채계정에 쌓인다. 글을 남기면 지적 자산이 커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부채를 늘리면서 쌓은 자산일 뿐이다. 글이 늘어날수록 현실에 지는 빚, 현실을 짊어지고 실천하는 이들에 대한 빚이 커지고 만다. p. 7 그렇기에 남들과 소통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을 '빚을 진다'고 표현했다. 자신만의 힘으로 해낼 것, 해낸 것이 없음을 알기에, 함께 변화하고 고민하고 연대해야하기에. 1%가 바뀐다고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나머지 99%가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미래세대에 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 '각자도생'의 '무한경쟁'의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 결국 다음 세대에게 어떤 사회를 물려줄 것이냐에 관한 이야기로 모아집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만큼의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다면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 기준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p. 423 선택의 기로에서서 1%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99%의 각성을 촉구하는 그의 외침. 우리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그리고 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 오늘 우리가 선택하는 것에 달려있다. ----------------------------------------------------------------------------- 환경의 변화로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면 폐기하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약속을 써넣어야 합니다. p. 66 로버트 스키델스키(영 워릭대 명예교수, 영 상원의원, 경제사가,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의 저자) 제가 "한국 경제가 얼마나 더 성장해야 충분할까요?" 라고 묻자 그는 "무엇을 위한 충분함입니까?"라고 되묻더군요. "한국은 1960년대 이후 1인당 소득이 수십, 수백 배 늘어난 나라입니다. 경제 규모로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불안과 불공정에 시달립니다. 게다가 최고의 자살률과 최악의 청년 실업과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이 계속 이어지고 소득이 더 늘어나고 그 과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분배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요? 아니면 성장과 소득 중심으로 짜인 우리 삶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시기일까요?"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p. 243 "올바른 질문은 성장함으로써 그 공동체가 갖고 있는 필요가 해결되는가에 있습니다. 성장만으로는 불평등 같은 여러 사회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판명이 났습니다. 다른 처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정말로 답하려면 먼저 그 공동체가 원하는 필요가 어떤 것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공동체가 함께 정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맞춰 그런 삶을 창출할 수 있는 경제를 떠올려야 하고, 그런 경제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경제는 원래 영원히 성장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멈추게 되어 있습니다."p. 244 소득은 수단입니다. 좋은 삶이 목적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 우리가 가져야 할 소득에 대한 올바른 관점입니다. p. 246 새로운 현상을 목격할 때 먼저 가져야 할 태도는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가'를 질문하는 것입니다. 진지한 질문 뒤에야 해답이 나옵니다. 만일 그 새로운 현상이 '문제'라면 그 질문으로부터 해결 방법을 찾는 과정이 시작될 것입니다. 만일 그게 새롭고 긍정적인 방향이라면 그 질문으로부터 확산 방법을 찾는 과정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p. 252 물론 생산 과정에서도 여전히 인간에게 남아 있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우선 로봇과 신기술 그리고 그들이 일하는 과정 자체를 기획하는 일, 창조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 사이에 공감을 이루는 일, 즉 돌보는 일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일이 있습니다. p. 289 로봇이 당장 대체할 수 없는 일은 세 가지 입니다. 창조적인 일, 전통적으로 가족, 친구, 이웃이 하던 '돌봄'의 영역의 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경영'과 '정치' 영역의 일입니다. p. 307 개인들은 그 기간 동안 인내심 있게 버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낮은 성장률 아래서도 더욱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재조직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덜 쓰고 오래가는 삶을 기획하는 일, 소비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키우는 것에서 보람을 찾는 일, 새로운 환경에 맞게 '좋은 삶'을 다시 정의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필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개인들이 더 많아져야 불평등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들도 더 빠르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p. 3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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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쓰러져있던 대한민국을 일으킨 원동력 그 자체였던 "노오오오력"이, 이제는 비아냥과 자조 섞인 단어가 되어 "헬조선"을 상징한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고 저축하면 내 집 하나 정도는 번듯하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아버지 세대의 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물려받지 못할 자산이 없으면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기회의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 누가 아들 세대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계층 갈등은 왜 시작되었는가. 책이 나온지 1년 남짓이 되었지만 한국 사회의 계층 갈등은 더욱 심각해진 듯 하다. 그 사이 우리는 대통령의 탄핵 소추와 온갖 정치/경제권력의 추한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기득권 세력의 전복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결국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불평등은 날로 심화되고 뒤집을 수 없는 간격이라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책은 무척 쉬운 편이다. 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더라도, 평소에 시사나 경제를 잘 모르더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그러나 묵직하게 '팩트 체크'를 한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통계는 결국 우물안 개구리라는 말을 던지며 (잘 버는 사람들 주위엔 더 잘 버는 사람들이 많아 세상 모두가 잘 버는 것만 같고, 못 버는 사람들 주위엔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고....그래서 인터넷의 '카더라' 수입은 믿을 게 못된다는 현실) 대한민국의 실제 통계를 낱낱이 분석하며 왜 우리는 갈수록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를 조목조목 이야기한다. 현실은 보이는 것보다 냉혹하다. 결론적으로 부의 대물림이 심화되는 사회 현실은 아버지 세대가 만든 것이며 이것을 뒤집기는 앞으로도 쉽지는 않다는데 이른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하는 '그나마 해결책'은 1) 실질소득세의 상향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근로소득자들은 늘 반발하는 얘기긴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 연말정산 시 각종 공제 꼼수를 동원해보면 결국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실질 소득세율은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래서는 무슨 부의 재분배를 이룰 수 있을지.) 2) 기회 균등한 사회로의 전환 (쉽지는 않겠지만...) 두 가지를 곱는다. 모두 아버지 세대 때 낙수효과를 누린 이들이 외면했던 정책들이지만, 이제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졌기에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 더욱 필요한 정책들이기도 하다. 성장만을 중시했던 경제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이루는 경제. 그것이 헬조선을 벗어나는 길임과 동시에 '노력'이 다시 그 의미를 되찾는 과정이지 않을까.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아들 세대는 물론, 왜 우리 세대와 젊은 세대의 삶이 이렇게나 다를지 궁금한 아버지 세대도 꼭 한번 읽어봄직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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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
어찌본다면 부의 대물림을 함축하는 제목인것 같다.
부의 대물림?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가진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앞으로도 지속될만한
민감한 사항이기도 하다.
피케티의 이론처럼
부가 부를 낳는 이시대
특히나 대한민국에 시민으로서
이 문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한번 책을 읽으면서
이 사안에 대해 심도있게 생각할수 있는 시간을 준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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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통 김종배에서 세대통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원재 소장의 세대통의 내용을 가지고 보완 증보되어 이 책이 나왔습니다. 최근 한국 경제는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이 원인에 대해서 여러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가 무너지는 이유를 들라면 새로운 세대가 더이상 이전세대보다 잘 살수 없음을 들고 있습니다. 이번 주 김어준의 파파이스#94화에서 김갑수 평론가는 자기는 20세기에서 살다가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 발언은 단지 빛났던 청춘에 대한 향수나 예찬이 아닌 귀족들이나 계층이 없었던 시기에 대한 회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잘난 계층이 없던 시기는 빠르게 사라졌고 이미 우리는 계층이 존재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갑수 평론가의 발언은 이 책의 내용과 일맥 상통하고 있습니다. 세대간의 충돌과 반목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계층간의 문제가 근본 원인입니다. 그런데 이를 세대간의 반목으로 대체해서 싸우고 있는 것이지요. 이는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각자 고립되어 외롭게 살다 막장으로 몰릴 뿐입니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노력을 기울여 봤자 바람이 빠지는 구명보트에서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한국 경제가 어떤 모습으로 변모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귀를 기울여 들어 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를 인식하고 또다시 어떻게 사회를 바꿔가야 되는지.. 한번 읽어보시고 생각해보시기를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