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종필 증언록 】 김종필 / 와이즈베리
JP. 이 분은 대한민국의 현대사 중심을 걸어왔다. 5.16을 앞둔 1941년 5월 14일(일요일)부터 증언이 시작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다섯. “석 달 전 군 수뇌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하극상(下剋上) 사건’으로 강제 예편되면서 벗어뒀던 카키색 군복이다. 중령 계급장은 달려 있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나는 이 군복을 입고 먼 길을 나설 것이다.”
1961년 4월 7일 서울 명동 회합에 참석한 5. 16 주체는 박정희 소장과 김종필 예비역 중령을 포함해 총 29명이었다. 초기부터 가담한 멤버들이다. 29명의 평균 연령은 35세. 젊은 장교들이었다. 5.16 성공 뒤 이들 29명의 행보는 엇갈린다. 일부는 권력의 핵심에 섰다. 김종필, 김재춘, 김형욱 3명의 중앙정보부장이 나왔다.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은 김종필을 비롯해 15명이다. 거사에 참여했지만 ‘반혁명’으로 몰린 이들도 있다.
5.16 거사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였을까?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장면 총리가 지목된다. 그 한 해전 4.19 혁명은 새 시대를 열었다. 민주당은 총선에 압승했다. 8월 12일 민주당 장면 내각이 출범했다. 내각제 헌법의 국무총리는 권력 실세다. 대통령(윤보선)은 국가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위치였다. 정권 출범 뒤 민주당 내부의 분열, 사회 불안이 이어지면서 장면 정권의 운신 폭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9개월 뒤 장면은 군부의 기습을 당했다. 장면은 메모에 이렇게 기록했다. “1961년 5월 16일 쿠데타 발발, 박정희 소장 지휘하 군사 쿠데타 발생.”
일본 식민제국주의 치하의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JP의 증언을 들어보면, ‘조선인 위안부’문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슈지만 한일 회담에서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1951년부터 1965년까지 벌인 14년간의 회담에서 위안부는 단 한 번도 의제가 된 적이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위안부로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안고 구사일생으로 고국에 돌아온 그들의 나이는 아직 30대에서 40대 초반의 나이었다. 겨우 고국에 돌아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물론 지극히 일부였을 것이다. 그들의 과거사와 상처를 꺼내는 것이 이중, 삼중의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었기 때문에 침묵을 지켰다는 증언은 납득하기 힘들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좌절시킨 것은 미국 책임이다. 우리가 핵무기를 갖게 되면 북한을 치고 들어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었다. 이 때문에 1970년대 한국의 핵무기 개발은 중단됐지만 북한은 아무 제한도 받지 않고 2010년대에 상당한 수준의 핵무기를 과시하고 있다. 미국은 정작 막았어야 할 북한 핵무기는 못 막고 엉뚱하게 우리의 손발만 묶은 셈이다. “미국이 그토록 집요하게 우리의 핵무기를 막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한국을 손바닥 안에 놓고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다. 미국은 한국이 핵무기를 만들어 자기들 손바닥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JP의 증언은 노무현까지 이어진다. “나는 국가 지도자가 갖춰야 할 최고의 가치는 요지부동의 국가관과 위기관리의 결단력이라고 본다.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 중엔 인간미도 있다. 인간미는 정치인의 매력적인 품성이다. 2002년 대선 무대에 등장해 대통령이 된 노무현의 성정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 있었다.”
2014년 10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14개월간 중앙일보의 ‘김종필증언록팀’은 JP의 현대사 기억을 채취했다. “이제 떠날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과 아름다운 이별을 고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 나는 내 증언록을 누가 어떻게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없다. 그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다만 읽는 이들이 김종필이라는 자가 헛되이 움직이지는 않았구나, 그것만 이해해준다면 고맙겠다.” 지난 역사를 보는 것은 현재를 이해하는 길이다. 현재를 이해하는 것은 또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운다. JP라는 풍운아가 살아온 과정은 곧 한국의 현대사가 걸어 온 길이기도 하다.
![]() |
|
아무리 탁월한 족적을 남기고 특출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도 사람 자체를 놓고 "역사"라 일컫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그 사람이 현재 생존해 있는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 인물에 대해 찬반과 호오가 치열하게 엇갈리는 실정이라면 어떤 중립적인 규정을 시도한다는 것부터가 지난한 작업입니다. 이런 사정들을 모르지 않지만, 왠지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 그리고 근엄한 평자까지 겸하는 중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에 대해서는 "그가 곧 역사였다"라는 비유적 평언을, 좀 다른 의미에서 허용해도 될 것 같습니다. |
|
김종필증언록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신체적·정신적으로 결격사유가 없는 남성이라면 누구나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의무라는 것이 안겨주는 막중한 부담감에 대부분의 남성들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지만, 이러한 의무를 완수하고 나면 경험할 수 있는 성취감은 말로 이룰 수 없는 것 같다. 더욱이 일반적인 병영과 비교하자면 더 높은 강도의 훈련을 받는 병영을 제대한다면, 그러한 감정은 더 크기 않을까 생각한다. 필자는 경기도에 위치한 특공연대에서 2년간 군 생활을 했다. 요즘엔 특공연대에 입대하기 위해선 자원자를 뽑는다고 하지만, 필자가 군생활을 할 당시에는 훈련소에서 착출을 통해 부족한 인원을 보충하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나약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인해 그곳에서 원만한 임무수행을 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정말 지옥과도 같았다. 현재 편성되어 있는 모든 부대는 저마다의 임무와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내가 복무했던 부대의 임무는 적지종심에서 포병의 화력유도를 주업무로 하는 부대였다. 우리나라 육군 주요 화력이 포병에 집중되어있기에, 스스로도 본인이 복무하고 있는 부대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은 '특공대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특전사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다고? 정말 힘들겠다.'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기 일수였다. 그렇다. 특공대는 특전사와 부여된 임무가 엄연히 다른 부대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공대가 맡고 있는 역할도 특전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특공대는 대외적으로 인지도가 많이 낮은 편이었으며, 높은 훈련강도를 버텨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특전사나 해병 수색대에 비해 그 노고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는 마치 음지에서 양지에 더 많은 빛을 비추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김종필이란 석 자는 대한민국 역사에 수많은 흔적을 남겼다. 사람들은 JP, 운정(雲庭), 유명한 정치인, 제3공화국을 만든 인물, 5·16쿠테타(혁명)의 설계자, 중앙정보부(국정원) 창립자,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시대의 주축, 2번의 국무총리를 지낸 인물, 공화당과 자민련의 총재, 내각제 주의자, 평생 한 여자를 사랑한 순애보적 로맨티스트 등 다양한 수식어로 그를 칭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 「김종필증언록」이란 증언록으로 대중의 앞에 다시 한 번 모습을 비췄다. 그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회고록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회고록을 쓰라는 주변의 권유와 설득이 많이 었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 역시 인간인지라 여느 인물 전기나 회고록처럼 자화자찬, 자기 미화와 정당화의 늪에 빠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역사는 역사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해석을 입히는 것은 호사가나 역사가의 몫이지 목격자나 술회자의 영역은 아니다. 나는 역사를 재단하는 현자나 영웅인 척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굽이치는 현대상의 물결 속에서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사실'만을 증언하고 싶었고, 그래서 '증언록'이란 이름으로 이 책을 내놓게 된 것이다. (10쪽) 하지만, 김종필의 증언록이 과연 객관적인 사실만으로 당시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 그는 그의 증언록에서 5·16쿠테타를 5·16혁명이라 칭하며, 그의 행동은 당시의 불안정했던 국내 정세를 안정화시키고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불가피하게 자행되어야 할 '혁명'이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의 '혁명'을 진행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자들은 혁명적 정치세력이라고 일컬으며 숙청 혹은 수감이 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는 역사를 증언하겠다고 주장하였지만, 그의 증언 역시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이 가미된 자기 미화의 언변이었을 뿐이다.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한 명의 인간에 불과했다. 그 역시 역사라는 격동의 힘을 거스를 수 없는 한 낯 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중간 중간에 일반적인 회고록이라면 언급하지 않을, 혹은 미화시켜 이야기할 것을 스스럼없이 고백하는 것으로 보아, 해당 도서가 역사를 한 쪽 방면에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착각을 들게 만들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와 같은 언급 역시 역사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치적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 방어기제로서 사용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도와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끈 산업주역이라고 칭할 수 있지만, '경제적 안정이 국민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는 '무조건 옳다'라고 쉽게 답하긴 어렵다. 또한, 역사에 대한 평가는 평가의 당사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역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기에 하는 것이 옳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에 대해서 '우리나라에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은 파렴치한 인물이다'라고 함부로 칭할 수 없으며,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끈 산업역군이다'라고도 칭할 수 없는 것이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용기를 내 「김종필증언록」을 집필하였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많은 책이었다. 특히, 대한민국의 보수언론 중 하나였던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기에, 개인적으로는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보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직은 젊은 20대이기에, 기존의 보수세력보다는 보다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기에, 「김종필증언록」은 쉽게 읽을 수 없던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를 통해 환란의 시절이었던 한국 근현대사를 한 개인의 시각으로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어서, 일반적인 역사교과서에 비해 좋았다고 생각한다. |
|
이 책의 증언에는 나의 국가관, 역사관, 사생관이 다 녹아 있다. 박정희 대통령을 지도자로 모시고 일으킨 5?16혁명은 새 역사의 분화噴火였다. 조국근대화의 비전이 결코 헛되지 않은 오늘, 온 국민의 피와 땀이 모여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하면 된다'는 지도자의 결기와 4천만 국민의 세찬 각오가 어우러졌던 그 어제가 이런 오늘을 만든 것이다. 어제 없는 오늘은 없다. 뿌리 없는 열매는 결코 없다. 역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꺾이거나 휘어져도 정의를 향해 연면히 나아간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실이다. 불의가 잠시 승昇하는 듯해도 종국의 승리는 정의의 편에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나의 증언록이 이와 같은 역사의 진리를 증명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기를 소망한다. - '저자 서문'중에서
5.16혁명과 현대사의 물결을 증언하다
역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꺾이거나 휘어져도 정의를 향해 연면히 나아간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실이다. 불의가 잠시 승昇하는 듯해도 종국의 승리는 정의의 편에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운정 김종필은 "나의 증언록이 이와 같은 역사의 진리를 증명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책에서 밝힌다.
5천 년 가난을 벗어나 '남에게 신세지지 않는 나라 한번 만들어보자'고 궐기한 군사혁명은 마침내 '무항산 무항심'의 명언이 지향하는 바 민주복지 국가 건설로 이어졌다. 오늘의 우리가 누리는 민주와 복지는 경제 건설이라는 '항산恒産'이 있었기에 민주주의라는 '항심恒心'을 일구어낸 것이다.
역사는 역사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해석을 입히는 것은 호사가나 역사가의 몫이다. 운정雲庭은 그저 굽이치는 현대사의 물결 속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사실'만을 증언하고 싶었고, 그래서 이 책에다 '증언록'이란 이름을 부여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자서전' 내지는 '고백론'이란 타이틀을 붙이지만 굳이 이렇게 명명한데는 있었던 사실만을 얘기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2014년 10월부터 시작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는 1년 동안 매주말 서울 청구동 운정의 집에서 진행되었다. 2015년 3월 3일부터 연재된 중앙일보의 '소이부답笑而不答' 기사는 12월까지 114회로 이어지면서 많은 독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연재물을 가감없이 그대로 묶어서 책으로 출간했다.
처음 본 박정희
돌이켜보면 특별할 것도, 강렬한 점도 없는 짧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아흔에 이르러 회상해 보니 그 장면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나, 우리 둘이 처음 만난 장면 말이다. 육사를 8기로 졸업한 1949년 6월, 나는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장교로서 첫발을 디뎠다. 동기생 일곱이 정보국 전투정보과에 배치됐다. 발령식 때 정보국장이던 백선엽白善燁 대령이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가 신고 드릴 분이 한 분 더 있다. 작전실로 가서 인사 드려라" 바로 옆 '작전정보실'이란 팻말이 붙은 작은 방으로 가서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 전투정보과에 배속된 신임 소위들입니다. 신고를 받으십시오." 작전정보실장이란 타이틀을 가진 사내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검은 옷 탓이었을까. 참 키가 조그맣고 얼굴이 새카만 첫인상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계면쩍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나 박정희요. 근데 난 그런 신고 받을 사람이 못 돼. 거기들 앉게" 악수를 나누고 잠시 의자에 앉았다. 박 실장은 "내가 사고를 당해서 군복을 벗었다"고 간단히 본인을 소개했다. 이어 "육사를 우수하게 졸업한 장교들이라고 들었다. 환영한다"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군복을 벗고 정보국의 문관으로 일하던 그분과의 첫 만남이었다.
미국, 박정희를 의심하다
'황태성 사건' 하면 1961년 KBS TV방송국 개국이 떠오른다. 1961년 여름, 나는 오재경吳在璟 공보부 장관을 만나 TV 방송국 설립 계획을 논의했다. 서로 뜻이 통했고 오 장관도 그런 구상을 갖고 있었다. 정부 예비비에서 1억 환을 마련해 TV 방송국을 연내에 짓기로 했다. 개국 예정일을 두 달 남짓 남겨놓은 10월 남산 기슭에 TV 방송국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 즈음 내가 일본 도쿄에 가서 마주친 장면이 있다.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니 집집마다 TV 안테나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모습이 사뭇 부러웠고 또 속상했다. 우리나라도 집에 TV가 한 대씩 있는, 그런 나라로 만들어야겠다고 내심 다짐했다. 방송 스튜디오 건물은 착공됐지만 방송용 기자재를 사올 돈이 부족했다.
한국 경제 발전의 주역, 정주영과 이병철
산림녹화가 국정의 주요 목표였던 시절이다. 하도 강경하게 반대하기에 머리를 짜냈다. 나는 이 회장에게 "정부 땅의 두 배쯤 되는 땅을 사서 주고 용인 땅과 교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그는 바로 "그거 좋습니다"며 반겼다. 산림청은 대토代土를 받고 삼성에 땅을 내줬다. 그 자리에 지금은 '에버랜드'로 이름이 바뀐 용인 자연농원이 들어섰다. 테마파크의 원조가 이렇게 탄생됐다.
육영수 여사의 서거
이튿날 아침, 청와대에서 호출이 와서 가니까 박 대통령이 "차지철이를 시키기로 했어"라며 말을 바꿨다. 뜻밖이었다. 내가 본 차지철은 그런 책임 있는 일을 맡길 인물이 못 됐다. 나는 "그래요? 차지철을요?"라고만 대꾸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차지철을 추천했나. 내 머릿속엔 그 생각 뿐이었다. 세상에 알려지기로는 박 대통령의 사위인 한병기 전 대사가 차지철을 후임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추천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였다. 생전에 육 여사는 "차지철 의원 같은 고지식한 사람을 데리고 일해 보시라"고 대통령에게 권유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효자로 알려졌고, 술, 담배를 하지 않는 차지철을 착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마도 육 여사는 차지철을 박 대통령 곁에 두면 대통령 주변의 스캔들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나와 얘기를 나눈 그날 밤 육 여사가 없는 방에서 혼자 주무시다 밤새 생각이 달라졌다. 차 실장 임명은 육 여사가 남긴 유작遺作인 셈이다.
권력의 빈틈과 혼돈의 시절
1979년 11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이 치러지고 유신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 18년 구질서는 헝클어졌으며 새 질서는 형성되지 않았다. 누가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끌어갈지 예측할 수 없었다. 절대권력이 사라진 거대한 공백 속에서 미래는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은 최규하 총리가 맡았고, 비상계엄이 실시돼 계엄사령관직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수행하고 있었다. 집권당인 민주공화당 총재 자리는 비어 있었다. 군과 정부, 정치를 관통하는 중심은 없었다. 그때 나는 몸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당시 5선 국회의원이었지만 공화당에서 별 역할이 없는 총재 상임고문에 불과했다. 주요 당직자 중에서 나를 믿고 따라와 줄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과 혁명을 같이한 혈맹으로서 새로 닥칠 시대에서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뒤를 이을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문제가 나라의 현안이었다. 당내 상당수 의견은 내가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신 대통령을 할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때 정치의 배후에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던 군부도 나를 경계했다. 나는 박 대통령이 돌아가신 것으로 유신은 막을 내렸다고 판단했다. 새 시대에서 페어플레이를 하고 싶었다. 처삼촌인 박 대통령의 비참한 죽음을 보고 그 자리에 대한 의욕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1997년 대선, 최후의 3김 격돌
1997년 10월 27일 밤 8시 30분. 김대중 총재가 한광옥 부총재를 데리고 청구동 우리 집을 비밀리에 찾아왔다. 나는 마당으로 마중 나가 그를 기다렸다. 김 총재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나를 포옹했다. 감정이 상당히 북받치는 모습이었다. DJ가 이런 방식으로 친밀함을 표시하기는 그날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인사를 한 뒤 갑자기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김 총재님,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간절히 부탁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DJ를 소파에 앉도록 권하며 "그러잖아도 도와 드리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총재님(DJ)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수모와 박해를 당한 사람 아닙니까. 내가 그 원寃과 한恨을 다 풀어 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1973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박 대통령이 시키지도 않은 '김대중 납치사건'을 저지른 일을 떠올렸다. 그 일은 이후락이 대통령의 신임을 다시 얻기 위해 낸 '자기가 죽을 꾀'였다. 내가 김대중에게 직접 고통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점에서 나 외에 박 대통령을 대신해 그의 가슴에 맺힌 원寃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겪은 전쟁과 사랑
중공군을 생포한 뒤 한 달쯤 지났을까. 세밑 금성천의 칼바람에 살이 에이는 듯했다. 연대장인 허영순 대령으로부터 사무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전화를 건네주는데 육본 작전교육국 차장인 박정희 대령이었다. 박 대령은 출장차 인근 7사단장에게 왔다가 나를 찾은 것이다. 대령은 놀라운 사실을 전해주었다.
"여기 오는 길에 춘천 시장통에서 우연히 애를 업고
있는 옥이를 만났어. 자네가 중공군과 싸우고 있는데 죽을 거라는 소문이 나서 '같이 죽으러 왔다'면서 남편을 찾아왔다고 해. 빨리
가봐"
돌 지난 딸 예리는 추운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기어 다녔다. 연락병에게 부대에서 모포 대여섯 장을 가져오게 했다. 부대를 출퇴근하면서 일주일을 함께 지낸 뒤 아내를 대구로 내려 보냈다. 그때 40만~50만 군인 중에서 남편이 죽을지 모른다고 얼굴이 시커멓게 돼 가지고 그 고생을 하며 최전방까지 찾아온 여자가 또 있을까. 아내 박영옥은 그런 여자였다.
JP는 역사다
김종필의 삶은 현대사다. 한국 현대사는 격동과 파란이다. 그는 그 시대를 증언했다. 그가 연출한 시대다. 그가 몸담았던 시절이다. 성취와 고뇌, 좌절과 영광의 이야기다. 그는 군사혁명으로 세상에 등장해 5.16 혁명 공약을 만들었는데, '반공을 국시국시의 제1의義로 삼는다'에 숨은 사연을 밝혔다. 박정희 대통령이 소령 시절 좌익으로 몰려 구속, 예편당한 불행한 때가 있었으므로 주한미군은 그런 박정희를 의심했기 때문에 이를 잠재울 목적으로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거다.
혁명은 야망의 분출이다. 1961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겨우 100달러 수준이었으니 구습舊習을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던 그런 혁명은 애국심의 발로였다. 미국 CIA가 박정희를 견제할 목적으로 김형욱을 활용해 <김형욱 회고록>을 출간, 온갖 비난으로 박정희를 헐뜯었지만, 조작된 내용이 너무 많다고 그는 증언한다.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는 법정에서마치 자신이 민주화 투사인 양 행세햇지만, 그는 차지철과의 충성 경쟁에서 패한 후 발작을 일으켜 총을 쏜 살인범일 뿐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영원한 이인자였다. 권력은 냉혹하다. 이는 나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거되지 않은 이인자였으니 그만큼 박정희도 순수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두 번의 국무총리, 9선 국회의원, 집권당의 당대표 등 노욕의 정치인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는 당당하게 "내 무덤을 파헤치라고 하고 싶어"라고 했다. 한국 정치사에 앞으로 이런 인물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싶다. 격동기의 한국정치사가 궁금하다면 이 책의 일독을 추천한다.
|
|
대한민국은 일제시대의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바탕으로 수립된 정부로 근현대사에 군부시절과 민주시대를 두루 살았던 산지식인으로써 김종필 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현대사까지 읽어볼 수 있는 정말로 뜻깊은 도서가 출간이 되어서 너무나 반가웠답니다. 이 도서 <김종필 증언록>은 무엇보다도 군부시절에 총리까지 하면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분이라 많은 회고까지 담겨져 있어서 정말로 최근 100년간의 대한민국이란 어떤 나라였고, 어떤 정치의 흐름을 탔으며, 어떻게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성장하고 발전해왔는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우고 배울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책이라 느꼈습니다.
"4.19혁명 직후 나는 군 수뇌부의 부정, 부패, 부능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3성 이상 장군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정군운동을 주동했다." 김종필 님이 장교로 군생활을 보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인맥으로 군부시절의 총리까지 되기까지 결정적인 신분이었고, 많은 정치적인 활동을 통해서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저 똑똑하고 정치에 관심만 많았다면 군부시절을 통해 정치를 할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이분이야 말로 근 50년간의 대한민국 정치의 흐름을 바로 코앞에서 겪었던 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이 군에 직접 있으면서 경험을 하다보니 얼마나 고인물들이 썪었는지 겪고, 그 강직함 하나로 군대의 부패를 청산할 것을 요구까지 하다니 정말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바로 전진하는 돌직구 스타일이라고 보였습니다.
"적군에 밀려 내려온 국군 장병들은 몽유병 환자와 같은 모습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자신이 군인 신분이었던 터라 6.25 전쟁 당시의 상황을 정말로 세세히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전쟁 초기의 군사적 대응이 정말로 형편없었다는 사실과 여러 전쟁 영웅 인물들의 이야기들까지 마지막 전선 남은 사태까지 정말로 힘들었던 여건들을 너무나 세세히 설명하고 있어서 다시는 이런 끔찍한 참변이 일어나서는 안되겠다고 느꼈습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이 전체적으로 물들다보면 정말로 흠잡을데 많아지고, 단단한 성벽도 금이가다보면 결국에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새겨듣게됩니다.
"다만 남은 생애 중에 우리가 졌던 역사의 짐을 다음 세대에게는 넘기지 않도록 저의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1부의 끝으로 김종필 님은 얼마 남지 않은 생애 마져 대한민국을 걱정하면서 그간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면서 안좋았던 기억들이 다음 세대들에게 되물림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씀에 정말로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합니다. 노년에 아직도 대한민국의 앞날을 걱정하시는 모습 속에서 젊은 우리 세대들이 이러한 모습에 감동을 받고 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저 또한 우리자녀들을 생각한다면 이 대한민국 뿐만이 아니라 이 지구가 정말로 아름답게 되길 간절히 원할 뿐입니다.
"은인은 잊혀도 은혜는 남는다는 말이 있다. 박정희는 잊혀도 그가 남긴 민족중흥과 조국근대화, 자주 국방과 '하면 된다'는 정신은 영원할 것이다." 왜 어른들이 박정희 군사정권 시대를 그리워 하는지 요즘 세대들은 모른다고들 합니다. 저 또한 그러한 젊은 세대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 당시의 어려웠던 경제적인 면으로써 6.25 전쟁이후에 아무것도 없던 우리에게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남겨주고 경제 발전의 초석을 만들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 중에 한명인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뒷 배경을 제외한다면 현 시점에서의 놀라운 경제성장의 기초를 만들었던 점을 착안한다면 정말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전 김종필 총재님의 증언을 통해 귀담아 보고 마음 속에 생각해볼 수록 대단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답니다.
"나는 평소 5공 비리 척결과 전두환의 사과, 부정재산 환수를 요구했지만 사법차리만은 반대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의 부정들을 지켜보면서 재산 환수에 찬성을 하고 주장을 폈지만, 사법처리만큼은 전직대통령의 예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을 해봅니다. 그리 못해 전 노무현 대통령을 잃어버린 경험을 비추어볼 때 정말로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그의 이러한 많은 생각을 통해서 이러한 주장을 했을 때 많은 이들은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의아해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본다면 꽤 설득력이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전직대통령의 예우는 정말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란 국민을 대표하는 한 나라의 수장인데 예우는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말에 공감이 갔답니다. 정말로 정신없이 많은 변화를 겪었던 대한민국의 경제, 정치, 문화 모든 분야를 겪었던 김종필 님의 살아있는 생생한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왜 그렇게 주장을 폈는지에 대해 요목조목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많은 궁금증이 있었던 부분들에 있어서 솔직하게 설명해주어서 많은 것을 잘 알게 되었답니다. 산증인의 말씀을 통해 손수 겪었던 경험담들이라 그런지 너무나도 생생하게 받아들여져 마치 내가 그 시절에 있었던 느낌이 들정도였답니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구 시대의 사건들을 통해 현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 어떤 것들이 필요하고 어떤 것들이 없어져야 다음 세대들을 위한 준비를 잘 해주어 보다 눈부신 발전을 이룰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만들었던 귀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
|
김종필 증언록 - 소이부답 , 그의 웃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다
누군가 이태백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깊은 산속에서 사냐고..
그러자 이태백은 아무런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속세를 벗어나 자연과 동화되어 사는 즐거움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이부답(笑而不答)이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무언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입은 온화하게 웃고 있지만 눈은 매섭고 날카롭다. 입가에 서운함이 서려있는 듯 하면서도 서운함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김종필 전 총리의 웃음은 소이부답이다. 그러나 김종필 전 총리의 소이부답은 조금 다르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보다는 말하기 어려운 처지를 말한다.
아니다. 수다스러운 질문에 그저 말을 아끼고, 웃음으로 대답하는 자세, 웃음으로 상대방의 긴장을 풀게 함과 동시에 상대방을 날까롭게 꿰뚫어 보는 자세,
어쩌면 김종필 전 총리의 지금까지의 정치적 지위를 이끌게 한 것은 그런 소이부답의 웃음일까.
김종필 증언록 이 책은 그런 김종필 전 총리의 소이부답의 정치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치 인생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김종필 개인의 일화 보다는 1961년 5.16을 시작으로 2004년 정계 은퇴까지 43년간의 정치 인생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객관적 사실에 대한 증언을 표방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 책은 자신의 정치 인생에 대한 정치적 회고록일 것이다. 그래서 일까, 딱딱할 것이라 생각했던 김종필 증언록은 정치에 문외한 나였지만 의외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였다.
증언록을 표방하는 만큼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는 적은 편이지만, 중간 중간 등장하는 김종필 전 총리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 그의 가족과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관심이 없었던 김종필 전 총리를 친근한 인물로 다가오게 했다.
또한,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은 그림만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진을 보다 느낀점은 그는 사진 속의 주인공이 아니였다는 점이다. 늘 누군가의 옆에서, 누군가의 뒷에서 이야기하거나 조용히 지켜본다. 누구나 알고 있는 2인자의 정치이다. 한때, 김종필 전 총리를 대통령 한 번 못해본 실패한 인물이라 생각했다. 3김 시대를 호령하면서도 유일하게 대통령을 해보지 못한 인물, 대통령을 만들며 한국 근현대사를 이끌었으나, 영원히 2인자에 머물렀던 인물 그러나 그의 정치적 행보는 실패 보다는 영리함이라 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 권력이 지나지체 커지는 것을 경계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견제가 시작되자, 김종필 전 총리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견제가 끝나자 다시 정계에 복귀한다. 자민련 총재 자격으로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DJP 연합을 결성하여 김대중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다. 대통령을 되지 못하였으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실질적인 권력을 반씩 나눠가진다. 비록 1인자가 되지 못했으나, 한국 근현대사의 오랜 시간동안 강력한 2인자로 군림했던 것은 그 자체로도 대단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김종필 전 총리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1인자에게 절대 밉보엿도, 1인자가 절대 서운하게 대하더라도 서운한 표현을 하지 말 것" 뱃심과 지략을 가졌던 그는 어쩌면 그의 인생에 있어서 1인자로 기억될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다양한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김종필 증언록은 작년 중앙일보에 연재하였던 이야기를 2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왔는지 들려주고 싶은, 아니 들려줘야 하는 아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소장하여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도 김종필 전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안위를 위해 한 몸 바쳐 일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점은 조금 씁쓸하다. 어쩌면, 정치는 나와 같은 일개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권력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힘이라 할 것이고, 정치인들은 그 힘을 갖기 위해 서로 손을 잡고, 서로 총을 겨누는 존재는 아닐련지,
어제 일도 제대로 기억도 안나는 나인데, 40여년 전의 이야기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김종필 전 총리를 보며, 블로그 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지만,, 사사로운 이야기라 할 지더라도, 꾸준히 기록을 해야 겠다는 작은 다짐을 해본다.
|
|
조선에 정도전이 있었다면 대한민국에는 김종필이 있었다.
김종필이 35세 되던 1961. 5. 16일 대한민국의 역사는 다시 씌여졌다.
바로 그해 내가 태었났고 새로 태어난 대한민국의 시간과 함께 살아왔다.
내가 기억하는 김종필은 대한민국 국무총리였다는 것이다.
증언록을 읽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지나쳤지만 나는 왜 그를 '국무총리'로 기억할까.
근엄한 얼굴에 충청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얹어서 느릿하게 말하던 모습이 겹쳐진다.
![]()
그에겐 JP라는 이니셜과 정치9단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작은 나라인지 지도를 보면 알 수있다.
그런 대한민국의 정치색은 참 아롱이 다롱이같았다. 대구,경북이 어떻고 광주,전남이 어떻고 충청도는 또 어떻고...
난 지금도 TV뉴스에서 정치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린다. 한창 총선을 앞두고 시끄러운 정국을 보면 정치판은 JP의 말처럼 허업이라 여겨진다. 진정한 동지도 없고 영원한 권력도 없고 언제든 이합집산이 가능한 집단이라 여긴다.
그리고 선거철만 되면 고개를 조아리고 한표를 부탁하던 그들이 국회에 나가면 그렇게 찌질한 인간들이 될 수가 없어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헛짓들을 일쌈는 그들이 괘씸하기만 하다. 정말 투표가 하기 싫을 지경이다.
하지만 이제는 노회한 정치가의 증언을 듣자니 대한민국 정치의 역사가 숙연하게 다가온다.
![]()
조선 태조 이성계도 처음에는 왕의 꿈은 없었다고 한다. 역사가 그를 선택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다고 생각했는데 대한민국이 박정희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조선의 진정한 주인은 정도전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듯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 뒤에는 김종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사실을 이 증언록을 통해 알았다.
모든 리더의 뒤에는 책사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책사를 두느냐에 따라 영웅도 되고 패자도 되는 것이라 믿는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박정희는 행운아였다.
누군가는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일갈하지만 JP의 주장대로 지금의 대한민국의 발전은 박정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여고시절 중간고사를 보고 있을 때 박정희의 유고소식을 들었다. 박정희가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JP의 증언대로 육영수 여사가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들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말도 많도 탈도 많은 중앙정보부를 JP가 만들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가 생각한 초심의 중앙정보부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그런 기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뒤이은 권력들은 사적인 욕심으로 기관을 이용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지켜보는 JP의 심정이 아득했을 것이다.
![]()
전에 구렁이 담넘어가는 듯 으뭉스럽게만 느꼈던 JP가 얼마나 지략이 많았던 책사였는지 새삼 다가온다.
고집스럽게 내각의원제를 주장하고 꿋꿋하게 박정희 대통령을 대한민국의 진정한 지도자임을 알리려는 그의 노력이 진정스럽다. 이제와서 그가 거짓을 말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편집후기에서 JP는 역사라고 한 말에 동감한다.
구순이 될 때까지 대한민국의 건립부터 발전되어온 모든 시간을 지켜본 어른으로서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속에 담긴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대한민국바라기'라고 말하고 싶다.
단 한순간도 조국의 미래와 영광을 생각지 아니한 적이 없었다....그의 말처럼 공도 있고 과도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가 읽었던 수많은 역사서, 영웅전 앞에서 언젠가 자신이 선택했던 수많은 길들이 결코 부끄럽지 않았노라고 증언한다.
한학에서부터 음악, 미술등 다재다능한 그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정치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아름다웠을지도 모른다.
얼마전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쓸쓸히 자택을 지키고 있을 노구의 정치인 JP의 모습이 안스럽다.
하지만 여전히 꿋꿋히 소신껏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어른으로서의 모습이 멋지다.
그의 말처럼 그가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평가는 언젠가 제대로 평가될 것이라고 믿는다.
건강하게 오래버티셔서 찌질한 정치인들에게 매를 들어주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
|
김종필 회고록 - 170926 김종필, 우리 현대사에서 단 한번도 대통령이었던 적이 없지만, 어느 권력자도 그보다 더 오래 권력을 누린 사람은 없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수십년간 권력의 가장 자리에 서 있던 인물이다. 그를 수식하는 말 중에 ‘영원한 2인자’라는 말이 가장 잘 들어 맞는다. 어떻게 그는 수 십년 간의 권력의 중심에 설 수 있었을까?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박정희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었을까? 박정희 정권에서 소위 2인자라 불리었던 김형욱, 이후락, 김성곤 등은 모두 뒤끝이 좋지 않았다. 박정희는 디바인드 앤드 컨트롤... 서로에게 서로를 견제하게 만드는 방법을 통해서 2인자를 키우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JP는 박정희 정권과 유신정권에서 꿎꿎이 2인자의 자리를 지켰으며, 이후 YS와 합당, DJP 연합을 통해서 2인자의 자리를 꾸준히 유지해 나간다. 그가 가진 비결은 무엇일까?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에는 늘 JP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커다란 역할을 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JP, 그는 과연 누구일까? 어떤 인물이기에 4.19 혁명 이후 5.16군사 쿠데타를 기획한 실무책임자이며, 박정희 정권에서 실세 2인자로 활동을 하였고, 10.26이후 전두환의 신군부 정권에서 가장 먼저 구속된 인물이며, 3당 야합을 이끈 주역이자, 김영삼을 민자당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 대통령이 될 수 있게 힘썼고, 이후 세계화라는 미명아래 김영삼에게 토사구팽 당한 뒤 절치부심을 통해서 자민련을 창당하고, DJP 연합을 만들어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기까지 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말에 따르면 이회창의 편을 들지 않아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는 기회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이 대통령 자리에 앉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지만, 단 한 번도 권력의 1인자에 서보지는 못했다. 인생의 대부분을 권력의 중심에서 보냈지만 최 가장자리에는 서보지 못했다. 그리고 ‘자의반 타의반’의 외유를 떠난 적도 많았다. 12.12 이후 전두환이 권력을 잡은 후에, 노태우가 그를 찾아온다. 그는 노태우에게 2인자의 자세에 대해서 알려준다. “절대 나서지 마라, 늘 겸손하라. 1인자 앞에서는 권력에 욕심이 없는 모습을 보여라. 그저 1인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모습만 보여라.” 舊시대 정치를 논할 때 흔히들 3金 정치라고 한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을 일컫는 말이다. 경상도의 김영삼, 전라도의 김대중, 충청도의 김종필... 이들 세 사람은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김종필은 YS, DJ와는 확연하게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 그의 정치철학 또한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누구와도 손을 잡고, 자신이 만들어낸 권력에 의해서 내쳐지고 마는 수레바퀴를 올라타고 있다고 할까? (JP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고, 오로지 국가와 민족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힘써 왔다고 한다.) 오래 살아남는 사람이 승자라면 3김 중에서는 김종필이 승자라고도 할 수가 있겠다. 권력도 가장 오랜 시간 잡았기에, 하지만 이제는 3김 시대는 저물었고, 국민과 함께하는 대중의 정치 시대다. 금강석 같던 지역구도도 이제 머지않아 무너질 것이다. * 김종필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김영삼은 오다 노부나가, 김대중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이미지다. 물론 자기의 가신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가진 김대중에게서도 오다 노부나가와 같은 모습을 볼 수가 있기는 하지만. 김영삼의 과감한 승부사적 기질은 오다 노부나가를 떠올리게 한다. 다양한 권모술수와 철두철미한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김종필에게서 히데요시를 느낄 수 있었다. 구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정치체계가 만들어지는 현 시점에서, 과거의 정치인에 대해 한번쯤은 떠올려 싶었다.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과 김대중에 대한 책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그들의 당선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과 그들의 功過를 주제로 하여 쓰여진 책이 많이 있다. 하지만 JP에 대한 이야기는 곁다리 양념으로만 접했을 뿐,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중앙일보에 그가 회고록을 연재하였고, 그 회고록이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하필 중앙일보였을까? 이 책의 추천사를 보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중앙일보의 홍석현이 회고록의 추천사를 썼다. JP와 자신의 아버지(홍진기)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집 안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5.16 직후 군사 재판에서 3.15부정선거 책임자와 4.19발포 책임자 등에 대한 대대적인 처벌이 있었다. 이승만 정권에서 승승장구하던 홍진기는 4.19 의거 당시 경찰을 총 지휘하는 내무부 장관이었다.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해서 세부적인 사항까지는 알 수는 없지만, 어찌되었든 홍석현이 김종필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한다.) 김종필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3자의 눈이 아니라,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90평생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그가 살아온 인생의 호불호를 떠나서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매우 궁금했다.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 중에, 감방에 같이 있던 노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신입이 들어오면 그를 붙잡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해준다고 한다. 매번 뻔한 이야기이지만 각색이 되기도 하고, 내용이 덧붙여지기도 한다고 한다. 노인이 그러한 일들을 모두 겪었는지는 그 노인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그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서 전해질 때에는 진실이 된다고 한다. 사실과 진실,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이야기였다. JP의 회고록 속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이 신영복 선생님이 감방에서 만난 그 노인의 이야기와 스케일이 비교조차 되지 않게 어마어마하게 크겠지만, 어찌되었든 그가 하는 이야기들은 사실이라기보다는 그가 믿고 있는 진실이다. 그 글을 읽고 있는 이들에게도...) 책은 5.16 군사 쿠데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작을 한다. 저자는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표현한다. 본문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다. “혁명” 문민정부가 수립되고 이후부터는 군사 쿠데타로 명명되었기에, 혁명이라기보다는 쿠데타라 칭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5.16의 발단과 결말에는 모두 김종필이 있었다. 그가 모든 것을 기획하였고 실천하는 데에도 가장 큰 역할을 했으며 마무리 단계까지도 그의 손에 맡겨졌다. 그 이후 민주공화당을 만들어서 박정희를 대통령을 만든다. 책 속에 나와 있는 그의 업적(?)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ㅇ 5.16 혁명 공약 작성 -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는다. (박정희의 좌익 혐의를 지우기 위함) ㅇ 중앙정보부 창설, -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국정원 슬로건을 만듦 ㅇ 황태성 간첩사건 - 박정희의 형 박상희(김종필의 장인)의 친구이자 박정희의 어릴적 멘토인 황태성이 북에서 김일성의 밀명을 띄고 남한으로 내려온다. 밀사 자격이라 주장하는 황태성을 억지 재판으로 사형에 처한다. ㅇ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을 불법으로 납치, 재판 및 제거 ㅇ 5.16 이후 미8군 멜로이 사령관과 담판 - 쿠데타 승인 ㅇ 민주공화당의 이름은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름에서 따왔음(심벌은 소) ㅇ KBS 방송국 설립에 간첩들에게 압수한 공작금을 보탰음(약 20만달러) ㅇ 워커힐 호텔의 이름은 6.25 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 월턴 워커의 이름에서 따왔음.(전쟁 중에 운전병의 실수로 사망) ** 산업화를 먼저 해서 민주화의 토대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 JP의 정치 철학임 - 맹자 무항산 무항심(일정한 재산이나 생업이 있어야 마음도 편하고 자유로운 생활도 한다)을 평소 좌우명으로 알고 살았다고 한다. ㅇ 이병철이 한국경제인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를 만들도록 주선함. ㅇ 용인 자연농원도 이병철이 JP에게 부탁해서 산림청 땅을 대토 하여서 건설함. ㅇ 71년전중윤 회장이 라면을 들여오고 싶다고 5만달러를 빌려달라고 해서 농림부에서 어장에서 잡은 생선을 일본에 수출해서 번 달러임. 그 달러를 전중윤 회장에서 빌려줘서 삼양라면을 만들었음. ㅇ 63년 독일 파독광부에도 관련, 함보른 탄광에 직접 들어가서 현장을 보고 박정희에게 광부가 파독 될 수 있도록 건의함 ㅇ 파라과이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대통령이 JP를 초청해서 훈장을 달아줌. 중남미로 이민을 갈 수 있는 계기 마련. ㅇ 제주도에 대규모 감귤 농장을 최초로 만듦 ㅇ 서산에 우리나라 최초로 기업형 농장을 만듦 * 이외에도 수많은 것들의 최초인 사람이다. JP가 이런 것 까지 만든 사람인가? 할정도로 많은 업적(?)을 쌓은 인물이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크 장군과도 인연이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언젠가 베트남의 호치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JP와 프랑코 장군 두 사람 다, 공산주의는 싫어하지만 호치민은 존경할만한 지도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JP가 존경하는 인물은 나폴레옹과 처칠이다. 어릴 적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공주 중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일야일독이라 할 만큼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책을 다 읽지 않으면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을 정도라 한다. 전두환 신군부에 의하여 서빙고에 감금 되었을 때, 그는 스스로를 세인트 헬레나 섬에 갇혀 있던 나폴레옹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프랑스 대혁명 그리고 혼란, 혼란을 잠재운 나폴레옹의 영웅적 카리스마. 이를 배우고 또 닮고 싶었던 JP다. 자서전을 다 읽고 난 뒤에, 다른 분의 일생이 생각났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아간 사람인 ‘리영희’선생의 인생 이야기를 대화체로 다룬 ‘대화’라는 책이 떠올랐다. 어찌보면 김종필과 리영희 두 사람 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두 사람 다 장교로 복무) 그리고 5.16 군사쿠데타와 유신정권 그리고 전두환의 12.12, 민주화 정권 수립 등의 현대사의 급박한 사건들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한 사람은 중대한 사건들의 핵심 인물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사건을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대의 눈 역할이었다. 같은 시대 상황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간 두 사람의 인생을 떠올리며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회고록의 내용 중에 평소 내가 좋아하던 구절과 일맥이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음미해보려 한다. (김종필) 조지오엘 ‘과거를 지배하는 사람이 현재를 지배한다. 그런데 현재를 지배하는 사람이 과거를 지배한다.’ - 현재를 사는 우리는 과거를 직시함으로써만 미래를 투시할 수 있습니다. (신영복) 나는 비 내리는 백마강을 오르내리며 당신이 가지고 오라던 상상력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남아 있는 유적들을 조립하여 과거를 복원하는 상상력이 아니라 그 과거의 모습으로부터 현재를 직시하고 다시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향하여 우리의 시야를 열어가는 상상력임을 깨닫게 됩니다.
|
|
김종필 증언록 - JP가 말하는 대한민국 현대사 김종필이라는 인물이 책을 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내용이 뉴스에 나올정도였고, 도서 출판과 관련된 기념회에서 많은 정치인들이 참석했다는 내용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안그래도 총선을 앞둔 시점에 한 인물이 책을 냈고 그것을 기념한다는 이유만으로 여야의 많은 혹은 유력한 정치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이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 겨울에 우리나라 대통령을 지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김종필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김종필이라는 이름과 함께 나오는 몇몇의 중요한 이름중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습니다. 김종필이라는 사람 본인은 대통령을 하지 않았지만, 혹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부터 시작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사책에나 나오는 인물들과 관계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많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을 읽어 나가는데는 쉽지 않은 결심도 필요했지만, 어쨌든 뒤를 보지 않고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서문 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썼던 이른바 '회고록'을 쓰지 않고, '증언록'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이 나온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전에 나왔던 다른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회고록'이라는 것을 읽어본 적이 있다면, 저자의 의도에 동감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16과 박정희 라는 주제로 시작하는 1권에서부터 그동안 역사책이나 뉴스와 같은 매체에서 단순하게, 혹은 단편적으로 그려왔던 5.16에 대한 관련자의 시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5.16에 대한 명칭에서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것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고, 아직도 서로의 의견을 인정하지 못하는 복잡한 상황으로 알고 있지만, 이 책의 제목처럼, 5.16이라는 상황에 대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람의 시각으로 부터, 과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어떻게 흘러갔는지에 대한 '증언'을 들어본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는 동안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은 기시감이 들어서 살짝 이상했었습니다. 알아보니, 이 책은 이미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 1년 동안 연재 되었던 기사를 정리한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 땐가 중앙일보에 실렸던 특정 부분의 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 올랐습니다. 신문을 통해 봤던 경우라도 저 같은 경우 처럼 전체를 다 읽어 본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책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는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중간 중간 읽다보면 '정말' 역사책에 나오는 이야기들, 인물들, 사건들이 곳곳에서 튀어 나옵니다. 어느 순간 한 사람이 과연 이렇게나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김종필이라는 인물이 겪은 일이고 또한 그의 생각과 기억을 '증언'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일단 어떤 내용인지 읽어 보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개별 사건에 대한 어떤 평가나 의도를 고민하기 보다는 일단 그의 증언 내용에 집중했는데요. 제 스스로가 어떤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좀 더 많은 공부와 학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별 사건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나 여러 의견들을 다음에 보게되더라도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 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확인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거의 천 쪽에 이르는 책을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주행했다는 점에서 작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
질문>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 재배 계급 내부의 단순한 권력이동으로 이루어지며, 체제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과는 구별된다. 대부분 군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후에는 언론을 통제한다거나 반대파를 숙청하고 계엄령을 선포하기도 한다. 이것은 은밀하게 계획되며 기습적으로 감행된다. 답> 쿠데타 그런데 김종필은 이 질문에 대해서 "혁명"이라고 답했다. 명확한 오답이다. 이것은 혁명이 아니다. 피지배계급이 주체로 체제 변혁을 꾀하는 것, 즉 민중의 동의와 지지와 참여가 있어야 혁명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에서 1961년 5월 16일에 발생한 사건은 군사쿠데타가 답이다. 김종필이 계획하고(김종필 증언록에 따르면 5.16 군사쿠데타는 자신이 계획하고 박정희와 군사세력이 동조했다) 성사시킨 5.16에 대해 시종일관 '혁명'이라고 칭하는 <김종필 증언록>은 사실에서 많이 벗어난다. 즉, 이것은 김종필의 '증언'일 뿐이다. 1961년 5월 16일에 대한민국의 정치사에 등장해서 2004년 정계를 은퇴하기까지 43년 동안 자신이 겪은 대한민국 정치를 다룬 <김종필 증언록>은 일단 재미있게 읽힌다. 삼국지처럼, 혹은 정치 드라마처럼 흥미롭다. 그가 사생의 결단을 했다는 그 절박함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바는 없지만 6.25 전쟁을 치른지 10년도 안되는 상황, 어지럽던 나라에서 혼란스러운 풍조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하는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는 그 몇 달을 마치 영화처럼 그렸다. 하지만 곳곳에서 김종필이 역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드러난다. 절박했다고 하지만 이유가 부족하고 4.19는 벌어진 일이 되어버린다.
당시 소장이던 박정희는 김종필의 증언에서 박 장군이 되기도 하고, 혁명공약 제1조의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고'라는 문장은 박정희의 빨갱이 혐의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은 아주 사소할 수도 있는 것이 시대의 흐름을 업고 더욱 커져서 온 국민을 옥죄는 사상이 되기도 함을 엿볼 수 있다. 비례대표를 만들었던 이유가 당시 쿠데타의 주요 세력이었던 이북 출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는 증언은 솔직하고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현안에 김종필이 관여하지 않은 부분이 없어 보일 정도로 그는 현대 정치사의 곳곳에 등장해 흐름을 바꿔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가진 책임이 더욱 크다는 생각이 든다. 자화자찬과 5.16의 미화로 증언록의 대부분을 채우기는 했지만, 거꾸로 우리의 의식이 이런 정치가와 정부를 용인했다는 반성도 하게 된다.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프랑스의 정치가 토크빌(Alexis de Toqueville:1805~1859)의 말이 딱 맞는 말이다 싶다. 랑케가 말한 '원래 그러했던 그대로'라는 실증주의 역사철학의 진술에 매여 역사적 서술은 모두 사실에 근거한 것처럼 잘못 알고 있는데, 여러 사실들 중에서 선택하는 것도 그 사실을 해석하는 것도 모두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