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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삶에 용서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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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실학자중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다산 정약용일 것이다. 그는 관직에 나아가서는 정조의 신뢰를 누구보다도 많이 받았고, 또 정조사후에는 생애의 대부분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많은 저작들을 남겼다. 그의 저작들이나 혹은 사료들을 통해 그의 일생을 평가하는 책들이 많이 소개되면서 우리는 그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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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실학자중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다산 정약용일 것이다. 그는 관직에 나아가서는 정조의 신뢰를 누구보다도 많이 받았고, 또 정조사후에는 생애의 대부분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많은 저작들을 남겼다. 그의 저작들이나 혹은 사료들을 통해 그의 일생을 평가하는 책들이 많이 소개되면서 우리는 그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그러면 정약용 본인은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정조의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시기하는 자들에 의해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 대가가 20년의 유배생활이었던 것에 대한 회한은 혹 없었을까?

 

이 책은 정약용이 쓴 자찬묘지명을 해설한 책이다. 저자는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16권에 수록되어 있는 자찬묘지명을 저본으로 삼아, 그것을 번역하고 또 내용을 보완하여 정약용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자찬묘지명이란 스스로 쓴 자신의 묘지명이다. 생의 고해를 거친 다음 스스로에게 건네는 생의 마지막 고백, 즉 자서전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묘지명은 친인척이나 지인들이 써주는 것이 관례였지만 옛날 전통시대의 선비들 중 일부는 스스로의 묘지명을 쓰며 죽음을 직시했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삶을 다스렸다. 정약용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환갑에 이르러서야 유배지에서 돌아온 그에게 묘지명을 써줄 사람도 없었지만, 그 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픈 마음이 더 컷을 것이다. "내가 떠나면 무덤에 누가 비석 하나 세워줄런가. 없다. 나를 기억해줄 이 하나 없다. 나에 대한 연민의 온기가 사라지기 전에 내 모든 것을 간략하게나마 기록한다."는 구절이 묘지명을 써줄 이가 없음을 나타낸다면, "내 나이 예순이다. 나의 인생, 한 갑자 60년은 모두 죄에 대한 뉘우침으로 지낸 세월이었다. 이제 지난날을 거두려고 한다. 거두어 정리하고 생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는 구절은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스스로에게 보내는 고해(告解)가 아닐까 싶다.

 

사실 자신의 묘지명을 쓴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 인간은 자신에 대해 냉철하게 바라보지를 못하고, 또한 자신에 대한 글을 쓸 때면 항상 그것을 읽는 사람, 즉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서전이란 것을 읽어보면 자신의 과()보다는 공()위주로 서술하게 되고, 어쩔 수없이 과()를 서술할지라도 그럴듯한 이유를 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약용의 자찬묘지명 역시 그런 면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기거했던 다산초당에서의 생활보다는 정조와의 교류를 중점적으로 묘사한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유학자로써 자신의 이상을 펼치고, 그로 인해 군주의 신뢰를 받는 것이 당시 선비들이 추구했던 것이었기에 그랬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지나간 과거의 영화를 곱씹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다산에게 있어서는 그때의 생각이 그 이후의 모진 삶을 버티게 한 힘이었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짐작해 볼 뿐이다.

 

그렇지만 정약용의 자찬묘지명에 나타난 다산의 고해는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유배지에서 흘려 보낸 삶이 억울하고 헛된 삶이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의 삶에 용서를 구하며 다독인다. 그래야 남아 있는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있어서이다. 누구나가 후회 없는 삶을 꿈꾸며 현실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우리 역시 지나온 삶들을 돌아보면 온통 후회투성이다. 그러나 그런 후회를 인정하지 못하기에 앞날 역시 또 다른 후회의 삶을 사는 건지도 모른다. 지나온 삶이 나의 역사였음을 인정하고, 지나온 삶에게 스스로 용서를 구하고 다독일 수 있다면, 남은 생에 최선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자찬묘지명을 쓴다면 과연 뭐라고 쓸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마땅히 쓸 말이 없다. 나야말로 내가 살아온 삶에 용서를 구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k*****1 2016.03.14. 신고 공감 7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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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정약용의 고해
"[역사] 정약용의 고해" 내용보기
'스스로에게 전하는 생의 마지막 고백'이라는 부제가 붙은 정약용의 고해는 정약용 스스로 자신의 묘비명을 쓴 '자찬묘지명'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학창시절 처음 세계사를 공부하기 시작할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유명 미술품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에서도 계속 언급되는 '다빈치'는 내겐 우리의 '철수'쯤으로 여겨졌다. 참으로 수많은 다빈치가 있구나 했는데, 모두 동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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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전하는 생의 마지막 고백'이라는 부제가 붙은 정약용의 고해는 정약용 스스로 자신의 묘비명을 쓴 '자찬묘지명'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학창시절 처음 세계사를 공부하기 시작할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유명 미술품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에서도 계속 언급되는 '다빈치'는 내겐 우리의 '철수'쯤으로 여겨졌다. 참으로 수많은 다빈치가 있구나 했는데, 모두 동일 인물이란 사실에 얼마나 놀랐던지...

 

조선시대 세종대왕께서는 한글도 창제하시고, 농사직설도 내셨으며, 정간보도 만드셨다고 하니 그 위대함이 더하게 느껴진다.그런데, 우리 조선시대의 인물인 정약용 또한 유학자로서의 삶, 과학자로서의 삶, 민생을 위한 삶, 건축가로서의 삶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으니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인생의 많은 부분을 유배생활로 보내고, 천주교 박해에 대상이 된 집안의 가족들이 많아 그가 그렇게 많은 위업을 달성한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모든 삶을 우리가 보기는 어렵지만, 그가 스스로 쓴 자신의 묘지명으로 우린 조금이나마 그에대한 일생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서전이자 유언이자 자신에게 쓴 고백이자 용서라고 표현된 이 책은 각 부의 시작에 정약용의 그림, 글도 곁들여져서 박물관의 해설사에게서 듣는 느낌이었다.

 

평소 막연하게 대단한 인물이지만 정조의 사랑을 너무 지나치게 받아 타인에게선 존경보다는 질시를 받은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약용의 삶과 그의 생각이 얼마나 그 당시로서는 얼마나 깨이고 앞서갔는지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마지막 4부에서의 유학자로서의 정약용 스스로를 고백하는 내용은 유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 하는 내게 요점정리와도 같은 장이었다.

 

천재의 일기를 훔쳐본 느낌.

j*****7 2016.03.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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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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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초상, 무속적 색채가 짙은 초의선사가 그린 초상, 단아한 인상의 장우성 화백 표준 영정, 신지식인과 같은 모습의 김호석 화백 새 영정이다.  다산 자신이 외가의 피를 진하게 받았다고 밝혔다. 그의 외조부는 우리에게 귀기 서린 초상으로 알려진 윤두서이다.  실제로 그는 20년 가까운 유배생활을 이겨내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정도의 강골이었다.  어쩌면 정약용은 상상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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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초상, 무속적 색채가 짙은 초의선사가 그린 초상, 단아한 인상의 장우성 화백 표준 영정, 신지식인과 같은 모습의 김호석 화백 새 영정이다.

 

다산 자신이 외가의 피를 진하게 받았다고 밝혔다. 그의 외조부는 우리에게 귀기 서린 초상으로 알려진 윤두서이다.

 

실제로 그는 20년 가까운 유배생활을 이겨내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정도의 강골이었다.

 

 어쩌면 정약용은 상상과는 다르게 선이 굵은 인상이었을지도 모른다.

f*****a 2016.07.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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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고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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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호 저의 『정약용의 고해』를 읽고‘다산 정양용’ 하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 조선조의 유명한 실학자이다. 그 누구보다도 활동이 많았던 앞서 나갔던 학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책자에는 그 학자를 안내하고 소개하는 정도이다. 이 책처럼 자신이 직접 저자가 되어서 고백하는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아주 특별한 기획으로서 우선 저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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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호 저의 정약용의 고해를 읽고

다산 정양용하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 조선조의 유명한 실학자이다.

그 누구보다도 활동이 많았던 앞서 나갔던 학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책자에는 그 학자를 안내하고 소개하는 정도이다.

이 책처럼 자신이 직접 저자가 되어서 고백하는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아주 특별한 기획으로서 우선 저자의 특별한 기획에 찬사를 보낸다.

이 책을 보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시간으로 정약용에 대해서 확실한 기억의 시간으로 각인되리라고 확신해본다.

저자는 정약용의 '자찬묘지명'을 지금 여기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 새로 풀어썼기 때문이다.

정약용이 스스로 쓴 자신의 묘지명을 바탕으로 그가 하고 싶었지만 끝내 삼켰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 결과이다.

표지에는 "나는 다산으로 불리고 싶지 않았다"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삽입된다.

단순하게 호기심을 자아내고자 한 게 아니라 그가 무덤에 남긴 고백이 실제로 그렇다.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해 그 많고 많은 지식을 다 갖고 있었던 천재였던 것으로 알고 있었던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생의 많은 부분을 귀양지에서 보내야만 했던 그렇게 운이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의 묘비명을 스스로 써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에게 매우 귀에 낯이 익은 이름이지만 이런 면에서는 아주 생소한 면이면서 애매모호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한 모습을 직접 자신의 모습을 직접 자신의 모습과 시대 상황을 스스로 털어놓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속으로 쏙쏙 다가오면서 들어오는 것은 왠 일 일까?

역시 사람의 마음은 다 똑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같은 마음이 되어 진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자신의 힘들고 헛된 삶을 고해성사하면 용서를 구하면서 위로하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가고자 한다는 멋진 마무리가 눈과 귀에 선하다.

역시 최고 멋지고 대단한 인물이다.’ 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다산 정약용 실학자에 대한 지식에서 실질적인 인물의 면모에 대해서 알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정약용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자신의 삶과 자신의 시대 모습을 그대로 들을 수 있어서 실질적인 역사 공부와 함께 내 자신이 당시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서 생활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시간에 박물관에 가서 정약용에 관련한 유물이나 그림 등을 다시 확인하거나 도서관에 가서 관련 책자 등을 살펴보면서 정약용 선생에 대한 모든 자료 등을 점검해보는 시간도 가져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였다.

어쨌든 좋은 책을 만나서 내 자신이 매우 행복한 시간과 함께 자신감을 갖는 시간이 되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되어 즐거웠다.

m***3 2016.03.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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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여유를 얻게 되었다! (여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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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자찬묘지용>을 해석한 책이 최근에 나왔다. 죽기 전 자신의 생애를 요약정리한 묘지글을 정약용 본인이 직접 남겼다. 저자는 책 제목을 천주교에서 드리는 기도이기도 한 고해성사에서 따온 듯 싶다. 정약용 가문은 천주교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다른 어떤 글보다도 진솔한 이유는 후손들에게 오랫동안 보고 기억할 묘지글이기 때문에 아마도 정약용은 심혈을 기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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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자찬묘지용>을 해석한 책이 최근에 나왔다. 죽기 전 자신의 생애를 요약정리한 묘지글을 정약용 본인이 직접 남겼다. 저자는 책 제목을 천주교에서 드리는 기도이기도 한 고해성사에서 따온 듯 싶다. 정약용 가문은 천주교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다른 어떤 글보다도 진솔한 이유는 후손들에게 오랫동안 보고 기억할 묘지글이기 때문에 아마도 정약용은 심혈을 기울여 글을 남겼을 것이다. 정약용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정약용의 유언집과도 같은 이 책을 한 번 쯤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정약용의 자부 이승훈은 조선 최초로 천주교 영세를 받은 사람이다. 이승훈은 2018 동계올림픽 개최 고장인 평창에서 태어났다. 평창군에서는 <메밀꽃필무렵>의 저자 이효석 뿐만 아니라 조선의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이승훈에게도 관심을 가져 고장을 알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정조 임금이 규장각에 근무하고 있는  정약용을 시험한 적이 있었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내일 있을 경연의 답안을 미리 알려 주고 그것만 공부해 가지고 오라고 하자, 정약용은 그럴 수 없다면 책 한 권 통째로 외워 경연에 참여하여 정조 임금의 시험을 가뿐히 넘긴 적이 있었다고 한다.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어 19년 만에 돌아 온 뒤 그의 고해는 이렇다. "어릴 적에는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20년 동안 세속의 길에 빠져 다시 선왕의 훌륭한 정치가 있는 줄을 알지 못 했는데, 이제야 여가를 얻게 되었다."

 

정약용은 자신이 공부한 흔적을 고해로 남겼다. 유학을 익히는 사람으로 육경과 사서를 탐구한 점, 260여 권의 자신의 문집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런 견해를 하늘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저 훨훨 타고 있는 하나의 횃불로 육경과 사서의 주석들, 그리고 일표이서(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를 모조리 태워 버려도 좋다고 고해한다.

c*******9 2016.08.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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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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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과거로 돌아가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정약용이요!" 하고 했을 정도로 우리 역사 속 인물 중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코 정약용을 꼽는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학자이면서도 책속에서만 진리를 찾기보다 현실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펼쳤다. 탁월한 관료였으며, 임금의 눈과 귀가 된 암행어사,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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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과거로 돌아가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정약용이요!" 하고 했을 정도로 우리 역사 속 인물 중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코 정약용을 꼽는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학자이면서도 책속에서만 진리를 찾기보다 현실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펼쳤다. 탁월한 관료였으며, 임금의 눈과 귀가 된 암행어사, 한강에 다리를 놓고 수원성을 건축한 실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예술과 의학문야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저작을 남겼다. 조선의 르네상스 영 정조 시대영정조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뛰어난 인재였다.

'많은 이들이 나를 다산(茶山)으로 부르며 나쁘지 않은 학자로 평가해준다. 과분할 따름이다.'(22쪽)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속이 꽉 차고 훌륭한 사람은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다고 하는데. 장약용의 이 말만 보더라도 그가 어떤 됨됨이를 가진 인물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뛰어난 이들에게는 늘 시가와 질투가 따르는 법. 그는 유배생활의 상징이라고 불리울 만큼 많은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치욕의 삶을 정약용은 어떻게 견디었을까. 
놀랍게도 그는 '나는 죄인이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은 뇌우침으로 정철되었다'며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고 생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며 스스로에게 전하는 생의 마지막 고백'이라며 자신의 묘비명을 쓴다.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어떤 감정들이 스쳐 지나갈까. 아직은 생을 되돌아보기에는 이른 나이라고 생각하기에 한번도 지난 세월을 깊이있게 되돌아보지 않았는데....삶을 대하는 정약용의 자세가 새삼 감탄스럽다.

책은 총 4부에 걸쳐 정약용의 삶과 생각을 들려준다. 가족사부터 시작해 학자로서의 정약용을 포함해 그의 인간적인 면모들을 만나볼 수 있다. 무엇보다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모든 관직에서 탄핵되고 물러나 수 많은 저작 활동을 통해 자신의 학문을 책으로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찌 그 과정에 세상에 대한 회환이 담기지 않았겠는가.

책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4부 나 유학자 여유당'이다. 
내 사유의 흔적이라는 소개로 시작되는 4부는 정약용이 배우고 익힌 학문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는 서경을 이렇게 읽었다'라는 말로 시작해 논어, 맹자, 예기, 서경, 춘추, 대학 등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서술한다. 본디 학자란 지식에 자신의 견해를 더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하는 법. 정약용은 고전을 근간으로 당시의 시대상에 맞춘 해석을 통해, 단지 책속에만 국한된 지식이 아니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석을 들려준다. 특히 '역을 다시 해석하다'에서는 미래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 내용들이 아주 흥미롭고 생각해볼 내용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과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감에 점을 보러가는 데. 정약용은 점이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도를 다 해본 이후에 보는 것이 점이라 한다. 원하는 점괘를 듣기 위해 점집을 돌아다니는 것도 금한다. 취미로 보는 것은 더더욱 안된다. 평소 점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아주 좋은 해석이다. 무엇보다 실용주의를 중요시하는 실학자의 면모가 돋보이는 해석이다. 

정약용은 살아있는 순간, 자신을 먼저 내세운 적이 없다. 관직에 나서면 나라를 위해 힘썼고, 관직에서 물러나있을 때는 학문을 위해 일생을 정진했다. 그히고 죽음을 인지한 순간, <자찬묘지켱>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요즘으로 치면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단순히 삶을 되돌아본다라는 의미. 그 이상이다. 정약용의 고해를 읽으며, 그가 왜 조선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지성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지. 그 면모를 알게 된다. 

다산 정약용을 좋아하면서도 그의 인간적인 면은 잘 알지 못했는 데 책을 통해 관료이자 학자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개인적인 면모들도 볼 수 있어 정약용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게 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삶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많은 것을 들려준다,  
살다보면 누구나 과거에 대한 후회와 회한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약용은 우리에게 말한다. 지난날은 지우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 자신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d****a 2016.03.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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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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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 중에서도 정약용은 몇 손가락에 안에 들 만한 인물이다. 그가 그렇게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실학자로서 현실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건축물들을 생각해냈고 수많은 저서를 통해 다양한 생각을 후대에 전했기 때문이다. ) -->  그런데 그는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생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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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 중에서도 정약용은 몇 손가락에 안에 들 만한 인물이다. 그가 그렇게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실학자로서 현실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건축물들을 생각해냈고 수많은 저서를 통해 다양한 생각을 후대에 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지만 인생의 후반기를 유배지에서 보냈기에 아마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으리라. 이 책에서 그런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데, 정약용의 자찬묘지명>, 즉 스스로 지은 묘지명을 풀어 설명한 것으로 정약용의 자서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4부에 걸쳐 정약용의 삶과 생각을 읽으면서 문득 나는 훗날 나의 삶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정약용과 비교할 정도의 인물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회한과 아쉬움이 넘쳐날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한 가지 있다. 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 정약용은 천주교인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유학자로서의 면모도 강하다. 아니 어쩌면 유학자로서의 면모가 더 강한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마지막 4부에서 자신이 읽은 유학 경전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세세하게 들려준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나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그의 이런 고백이었다.

 

나의 삶은 모두 그르침에 대한 뉘우침으로 지낸 세월이었다. 이제 지난날을 거두고자 한다. 거두어 정리하고 일생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p.238)

 

정약용과 같은 인물이 일생을 그르침에 대한 뉘우침으로 보냈다면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삶을 보내야 할까? 어떤 고해를 해야 할까? 아마 하루 종일 반성하고 용서를 빌며 살아도 부족할 것이다. 그런 내게 정약용은 이렇게 말한다. 지난날을 거두고 다시 시작하라고.

 

그래, 지나간 삶의 아픔을 끝없이 곱씹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고통과 후회를 딛고 다시 나아가는 것, 새롭게 시작하여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다산은 내게 그렇게 속삭인다.

p*****4 2016.03.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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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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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 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돌이켜 보면서 글을 쓴다면 어떤 말들을 남기고 가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삶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남기고 갈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해온 업적을 남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저는 어떨까 고민을 해 보았는데 아마도 가족 이야기를 많이 남기고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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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 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돌이켜 보면서 글을 쓴다면 어떤 말들을 남기고 가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삶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남기고 갈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해온 업적을 남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저는 어떨까 고민을 해 보았는데 아마도 가족 이야기를 많이 남기고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다산 정약용이 자신의 묘지에 남기고 싶은 글을 자신이 직접 쓰고 그 것을 저자가 해석하고 설명하는 글입니다. 일반적으로 묘지의 비석을 들여다보면 뒷면과 옆면에 쓰여 있는 글을 말하는 것 같은데요 이런 글을 자신이 썼다고 해서 자찬 묘지명이라고 명명하는 것 같습니다. 다신이 남긴 글에는 자신의 일생을 어떻게 표현하고 일생을 정리하였을까요? 제가 남기고 싶었던 글과 달리 다산 정약용은 자신의 가족과 그리고 자신의 화려했던 정조 시대의 활기찬 활동과 유배 시절에 자신이 공부했던 많은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관점에서 정리하고 후세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다산의 일생을 역사 혹은 인물을 통해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서 보면 반평생을 유배지에서 보내면서 자신의 학문을 갈고 닦은 사람으로 기억을 하게 되는데 이 자찬 묘지면 속에서는 그에 대한 회한도 조금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사대부의 자손으로 태어나서 당시의 명성은 관직을 통해서만 가질 수 있었던 사회구조상에서 다산은 그 관직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결국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천되고 물러나게 되면서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확실하게 된 것은 임금 즉 조선시대의 왕의 정책에 따라 그리고 그의 선택에 따라 삶이 변하게 되는 시대상도 같이 볼 수 있었습니다. 정조 시대의 그렇게 많은 활약상을 보인 다산이 정조의 죽음으로 인해 주요 관직에서 탄핵되고 물러나게 되면서 자신의 재능을 학문과 책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던 회한 같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 것은 아마도 인생을 살면서 부끄럼 없이 살아가고 싶었던 다산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의 비겁함을 인정하고 그 인생과 화해해야 한다는 것에서 그의 깊은 회한을 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찬묘지명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먼저 가족관계에 대한 자신의 위치, 족보를 중요시하던 조선 시대에서 빼 놓을 수 없었던 그런 시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곤 자신의 화려했던 관직 시절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암행어사로 활동하고 그리고 자신의 학문을 인정해 주었던 정조에 대한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고 할까요. 그리곤 학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논어, 맹자, 예기, 시경, 서경 등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설명이 있기는 하나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고 글의 맥락으로 보았을 때 다산이 생존하던 시절 선비들이 같은 책을 보면서 서로 다르게 해석한 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보이고 그 것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고전을 공부하는 자세를 생각해 봅니다. 다산이 받아들인 학문이 전통 성리학만이 아니라는 것을 바탕지식으로 하였을 때 포괄적 관점 즉 현실에 맞게 받아들여야 하는 학문의 개방성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고전을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근간은 두고 현실에 맞게 응용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지금도 변하지 않는 유교문화의 뿌리가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그 것이 맞을까 하는 것에 대한 다른 질문을 해 봅니다.

 

다산은 그렇게 자신의 생을 정리하고 남기고 떠났습니다. 자찬묘지명을 해석만 한 것이 아니라 저자는 여기에 설명을 붙이고 있어서 다산의 생각인지 저자의 생각인지 약간의 혼동이 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산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역사적 관점 보다는 다산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 하는 관점으로 바라보기에는 이 묘지명이 남긴 글이 더 다산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다산을 다시 바라보는 그런 시각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a********8 2016.03.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정약용의 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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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훌륭한 인물은 상당히 많지만, 그 중에서도 실학자 중에 한명만 말해야 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정약용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그렇기에 정약용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읽었고, 그 삶의 흥망성쇄를 보면서 기쁠때도 슬플때도 있었다.   나는 정약용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왕의 남자: 정조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정조의 죽음과 함께 속세의 정약용의 삶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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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훌륭한 인물은 상당히 많지만,

그 중에서도 실학자 중에 한명만 말해야 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정약용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그렇기에 정약용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읽었고,

그 삶의 흥망성쇄를 보면서 기쁠때도 슬플때도 있었다.

 

나는 정약용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왕의 남자: 정조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정조의 죽음과 함께 속세의 정약용의 삶도 끝났다.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 시대에 어떻게 거중기를 만들고 화성을 그리도 정교하게 지었을까?

조선의 솔로몬: 목민을 함에 있어 그 누가 이보다 백성을 사랑하며 지혜롭게 다스릴 수 있었을까?

 

겸손하면서도 절도있고, 왕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다른 이를 배려하는 마음.

본인이 당한 처지에 화도났겠지만, 답답하리만큼 겸손하게 처신을 했던,

그러한 정약용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에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라는 책을 읽었다.

읽은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 책에서는 정약용에 관한 시시콜콜한 것까지 얘기해 주고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정약용의 고해는 저자가 밝혔듯이,

자찬묘지명이라는 정약용의 책을 근간으로 하여 글을 썼다.

 

정약용이 정약용에게 전하는 독백.

 

총 4부으로 구성되어 있고,

1부부터 3부까지는 정약용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친숙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사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보다는 적지만,

저자는 저자의 방식으로 맛깔스럽게 풀어가고 있다.

 

이 책이 다른 책과 좀 다르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제4부이다.

정약용은 수많은 서적을 읽었고,

그 중 육경사서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했다.

그 부분이 제4부에 기술되어 있다.

육경사서에 대한 정약용의 생각은 어떠했는지,

사실 다른 책에서도 구별되게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대부분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는

제4부 나 유학자 여유당으로 구별하여,

정약용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부분에 좀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책 하나로 정약용을 알기에는 부족하지만,

정약용을 조금이라도 알게 해주는데에는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좋은 책을 집필한 신창호님께 감사를 드린다.

 

w****o 2016.02.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서평] 정약용의 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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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라는 영화가 있었다.  정조의 남자가 있다면 누굴까? 나는 정약용이라고 생각한다. 방대한 서적를 쓰고 수원화성 거중기를 개발하고 업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 업적은 바로 정조의 지지에서 나왔으면 물론이다. 그런 정약용의 유적지는 남양주에 있다. 남양주에 갔을때 자찬 묘비명이 굉장히 특이 하다고 느꼈다. 묘지명은 보통 후손이나 후학이 써주기 때문이다.   묘지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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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라는 영화가 있었다.  정조의 남자가 있다면 누굴까? 나는 정약용이라고 생각한다. 방대한 서적를 쓰고 수원화성 거중기를 개발하고 업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 업적은 바로 정조의 지지에서 나왔으면 물론이다. 그런 정약용의 유적지는 남양주에 있다. 남양주에 갔을때 자찬 묘비명이 굉장히 특이 하다고 느꼈다. 묘지명은 보통 후손이나 후학이 써주기 때문이다.

 

 묘지명은 잘못된 한자가 있다고 하긴하는데 묘지명 세부 내용은 재밌게 읽었다. 개인의 히스토리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집안은 외증조부 윤두서로 해남윤씨 고산 윤선도의 손자가 된다. 부인은 풍산홍씨

아들로는 학연. 학유이다. 무덤의 장소 방향까지 다 유언으로 남기다니 대단한 분이다.

 

 평생에 걸쳐 익히고 몸에 새기고자 한 것을 밝히려고 한다. 육경과 사서를 가져와 깊이 잠기어 탐구하였다.육경은 유학의 핵심이자 기본인 시경 서경 예기 악기 춘추를 가리킨다. 사서는 대학.논어 맹자. 중용이다.


다산이 아니라는 책의 제목은 도발적이었다. 다산 정약용으로 입에 익어 있는데 말이다. 대신 여유당을 강조하고 있다. 여유당(與猶堂)은 사유의 흔적이라고 한다. 정약용 사유의 흔적은 읽은 책을 통해서 쓴 책으로 알 수 있다. 사서와 육경을 읽고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인 일표 이서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반전은 당대에는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책에 있는 이 대목이  나는 제일 와닿았다. 조선사회는 유교식 상례와 제례가 엄격한 사회라는 말이다. 정약용은 그러한 시대에 천주교를 접하고 앞서나갔다. 단지 책을 많이 쓰고 목민관이 아니라 직관과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알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  고해가 아니었다. 

 

o*****5 2016.03.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