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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한창 사춘기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던 90년대에 '데미안'은 우리 전체의 '페르소나'였다. 소설책 한 줄 읽지 않는 아이라도 '알과 아프락싸스'를 모르는 아이는 거의 없었을 정도니까. 그 때부터 나에게, 헤르만 헤세는 '위로하는 작가'이다. 달콤한 환상과 로맨스가 아니라, 치열한 사유와 완전함에 대한 선망이 지금 내가 묶여 있는 삶의 비루함을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인식하게 해 주는. 『싯다르타. 한 인도의 시』는 약 1년 반 동안 거의 창작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우울증에 빠졌었던 헤세가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후 1922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헤세는 1919년부터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지만, 주인공 싯다르타가 끊임없이 고뇌하고 투쟁하는 금욕주의자로서 나타나는 부분까지 쓰고 난 다음, 스스로의 체험 없이 이를 계속 집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느껴 1년 반의 자기 체험기간을 거친 후에야, 이어지는 싯다르타의 세속 생활을 다시 쓰기 시작해 1922년에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이 <싯다르타>는 실화 아닌가, 싶을 정도로 주인공의 깊은 고뇌와 번민, 깨달음이 - 그것이, 한낱 중생인 나에겐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의 본질'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전해온다. 어린 시절부터 '명료하게 사고하는 정신의 광채'에 둘러싸여 있던 브라만의 장자 싯다르타는 지혜와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갖춘,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지만 진리에 대한 갈증으로 인해 일말의 기쁨도 느끼지 못한다. 그는 인간의 근원, 아트만을 찾기 위해 친구 고빈다와 함께 떠나 탁발승이 되어 금욕 생활을 한다. 그의 눈에 세상의 모든 것들은 거짓이고 무가치하다. 고통이 바로 삶이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죽이고 '가장 궁극적인 그것-위대한 비밀'을 깨닫기만을 목표로 수행하지만, 번번이 '자신의 자아가 되고야 마는 윤회의 고통'을 절감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는 붓다를 만나지만, 어떠한 가르침이더라도 진정한 깨달음의 길을 줄 수 없으며, 모든 이들은 각자가 깨달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친구 고빈다를 두고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배울 수 없었던,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은 '자아'라는 것을 깨닫고 '완전한 자신'이 되어 살기로 결심한다. 무의미했던 모든 사물들 안에 깃든 의미와 본질을 보기 시작하면서 그는 어린애처럼 즐거운 놀이하듯 세속의 삶을 즐긴다. 아름다운 창녀 카말라와 부자 상인 카와스와미를 통해 애욕과 물욕을 배우고 즐기지만, 중년에 이른 어느 날,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끼고 홀연히 떠난다. 그는 소름끼치는 공허감 속에 죽으려 하지만, 그 순간 잠들어 있던 그의 정신은 깨어나고 자신이 살아야 했던 모든 것이 '새로운 싯타르타'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기쁨에 넘친다. 그리고, 강가에서 나룻배를 젓는 늙은 뱃사공으로 살아가며 또 끊어낼 수 없는 정과, 상실의 고통을 겪으며 완성되어간다. 아니, 이미 처음부터 완전했던 세상의 일부가 되어 평화로워진다. "이 세계는 매 순간 완전해. 모든 죄업은 이미 그 안에 자비를 품고 있어... 모든 게 선하고, 모든 게 완전하고, 모든 게 브라만이지,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존재하는 것들이 모두 선량해 보여."(p.204) 여전히 번뇌하는 옛친구 고빈다를 만나 전하는 그의 깨달음은 쉽고도 오묘하다. 그가 말했듯, 배울 수는 없는 것이다. 스스로 깨닫지 않는 한 이 '완전함'을 우리는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지는 알지 않았는가? 평생을 괴로워하며 번뇌했던, 세 번의 죽음을 겪어냈던 싯다르타 덕에, 그 싯다르타를 이해하기 위해 똑같은 괴로움에 몸을 던졌던 헤세 덕에, 나는 그들을 따라 마음을 여행할 수 있었다. 스스로가 강이 되고, 하나의 세상이 되어준 아름다운 시인의 마음이여...... 삶에 허덕이는 나는 아직 세상은 깨닫지 못하겠으나, 그 마음이 전해주는 선함과 자비는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을 넘어 이리로 흐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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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헤르만 헤세에 관한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작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헤르만 헤세의 삶을 살펴보니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싶었고, 이에 다시금 그의 작품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읽어본 것은 <데미안>이 유일했기에 이번 기회에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보물창고의 <클래식보물창고> 시리즈에서 <<싯다르타>>가 출간되어 주저없이 읽어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그로인한 그의 작품 세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해도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는 상당한 어려움을 느꼈다. 쉽게 표현하자면, 이 작품은 불교의 창시자이며 깨달음을 얻은 고타마 싯다르타와 이름이 같은 브라만의 아들인 주인공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담아낸 성장소설이다. 허나 그의 고뇌, 동양 사상, 종교 등이 어우러지면서 마치 철학 인문서적을 방불케하는 장엄함과 엄숙함으로 인해 무겁고 어렵게 느껴진 듯 하다. 하지만 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내면세계를 탐구해 자아를 실현하는 것을 평생 창작의 화두로 삼았던 작가(본문 218p)의 본연 그 자체이리라.
손짓이며 표정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품격을 지님으로써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안겨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싯다르트 자신은 가슴속에 일말의 기쁨도 느끼지 못했다. 싯다르타의 가슴속에는 불만감이 싹트기 시작했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친구인 고빈다의 사랑이 자신을 달래 주고, 만족시키고,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 제물을 바치는 것 등에 관한 종교적인 제식과 오로지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 가장 중요한 존재, 유일하게 중요한 존재인 신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다. 갈증과 고뇌를 갖는 그는 결국 탁발승들에게 가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친구 고빈다 역시 싯다르타와 함께했다. 싯다르타의 목표는 한 가지였다. 단 하나의 유일한 그 목표란 완전히 텅 비우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곧 갈증, 소망, 꿈, 기쁨 그리고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아가 텅 비어 버리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죽이고 더 이상 자아로 남지 않게 되어 완전히 텅 비어 버린 가슴속에서 평정을 발견하고, 자아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디어 버린 사유 속에서 경이로운 어떤 세계를 마주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목표였던 것이다.
싯다르타는 탁발승들과 함께 지내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자아를 벗어날 수 있는 수많은 길들을 가는 법을 배웠지만 결국에는 자아로 되돌아왔고, 시간 이란 것에서도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이에 싯다르타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깨달음의 경지에 점차 이르고 있는 중인지에 대해 또 고민하게 되었고, 이러한 깨달음의 최대 적은 바로 알고자 하는 것, 곧 배우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탁발승들과 함께 지낸면서 수행을 한 지 3년 정도 지났을 무렵, '고타마'라고 불리는 한 남자가 자신의 내면에서 이 세상의 고통을 완전히 극복하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숲 속에 있던 탁발승들에게도, 싯다르타에게도, 고빈다에게도 그에 관한 이야기가 들렸고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고타마를 찾아 그의 놀라운 설법을 듣게 된다. 그동안 싯다르타의 그림자였던 고빈다는 그의 설법을 들은 후 스스로 붓다의 사문이 되기를 청했으나 그동안 해탈의 길을 가고자 했던 싯다르타는 오히려 떠나는 것을 택했다. 싯다르타는 고타마의 설법을 통해 모든 스승님들과 모든 가르침을 떠나 오로지 혼자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또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떠나고자 한 것이다. 비록 친구를 빼앗겼지만 어떤 가르침도 자신을 더 이상 유혹하지 못하리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는 많은 것을 알게 한 가르침과 스승님들이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자문을 통해 자신이 자아에 대한 의미와 본질을 배우고 싶어했음을 깨닫는다. 아트만을, 삶과 생명을, 신적인 것을, 궁극적인 그것을 발견하려고 했지만, 정작 자신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앞으로는 그 어떤 가르침도 배우지 않고 자신 스스로에게서 배우고, 자신의 제자가 됨으로써 자신을 알아보기로 한다. 그렇게 그는 한껏 자유로워진 눈으로 세상에 머물렀고, 창녀 카밀라와 상인 카마스와미를 통해 사랑의 쾌락과 돈에 빠져들어야 했고, 장사꾼이, 주사위 노름꾼이, 술주정뱅이가, 탐욕가가 되었다. 그는 한없이 타락하고, 한없이 길을 잃고 헤매면서 모든 지식에서 벗어나 결국 죽음을 찾게 되었으나 그것은 자비를 체험하기 위해서, 다시금 옴을 듣기 위해서, 다시금 제대로 푹 자고 제대로 깨어날 수 있기 위해서였음을 깨닫고 새로운 싯다르타가 잠에서 깨어났음을 느끼며 기뻐한다. 그리고 이후 깨달음의 길을 선택한 고빈다와 새로운 싯다르타가 만나게 되는데, 오랜 깨달음의 길을 걸었던 고빈다는 오히려 싯다르타의 미소에서 자신이 평생 동안 사랑했던 모든 것을, 자신의 삶에서 가치 있고 신성하게 여겼던 모든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난 내가 직접 깨달은 바를 말하는 거야.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지혜는 그렇게 할 수 없어. 우리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고, 그것에 따라 살아갈 수도 있고, 마음속으로 지혜에 대해 고심하고 정진할 수도 있고, 지혜로 기적을 행할 수도 있어. 하지만 지혜에 대해서는 말할 수도 없고,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도 없지. 그러한 사실을 난 이미 젊은 시절에 이따금씩 알아챘어. 그래서 스승님들을 떠난 거야. 고빈다, 나는 어떤 하나의 사상을 발견했어. (중략) 나는 쾌락과 물질에 대한 욕심과 허영심이 필요했어. 치욕스럽기 짝이 없는 절망감도 필요했고. 그건 모두 내가 반항하고 거스르는 것을 포기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이 세상을 내가 소망하고 상상했던 세상과 더 이상 비교하지 않고, 내가 머릿속에 이리저리 그려 보았던 완전한 어떤 상태와 비교하지 않고 이 세상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세상을 사랑하고, 이 세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지. 아, 고빈다, 이런 생각들이 내가 문뜩문뜩 깨달은 것 중 몇 가지야." (본문 205~205p)
"아, 고빈다, 자네는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가르침을 비웃을 거야. 그건 바로 사랑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점이야. 이 세상을 훤히 꿰뚫어 보고, 이 세상을 설명하고, 이 세상을 경멸하는 것은 위대한 사상가의 몫이겠지.내가 유일하게 중시하는 것은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경멸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 자신과 모든 존재들을 사랑과 경탄의 마음으로 그리고 존경의 마음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뿐이야." (본문 208,209p)
<<싯다르타>>는 한 청년의 자아에 대한 끝없는 갈증과 고뇌를 통한 인생의 여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헤르만 헤세의 철학적 사유가 오롯이 담긴 책이다. 싯다르타의 고뇌와 갈등, 자아의 실현 등에 관한 이야기들 중 많은 부분에 대해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법, 우리가 세상과 융화되는 법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도 그 결론이 사랑에 이르렀던 것처럼 한 청년의 오랜 끝없는 고뇌의 결론은 사랑이었다. 그 어떤 깨달음이나 설법도 번뇌와 갈구를 채워줄 수는 없다. 그것은 자아실현을 통해서만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 어렵고 힘들게 읽어나갔던 책이었으나 그만큼의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책이기에 많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