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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의 책장을 덮으며...
"죄와 벌의 책장을 덮으며..." 내용보기
나는 죄와 벌을 읽었다. 나는 예전 모 방송국에서 하던 법정 드라마 을 보며 언젠가 한 번 꼭 도스또예프스끼의 죄와 벌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계속 쭉 해왔었다. 그리고 이제야 손에 잡게된 죄와 벌... 나는 우선 책의 자그마한 사이즈에 놀랐다. 분량이 조금만 더 굵었어도 책이 위태로웠겠다는 우스꽝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드디어 역사적으로 나는 죄와 벌의
"죄와 벌의 책장을 덮으며..." 내용보기
나는 죄와 벌을 읽었다. 나는 예전 모 방송국에서 하던 법정 드라마 <죄와 벌>을 보며 언젠가 한 번 꼭 도스또예프스끼의 죄와 벌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계속 쭉 해왔었다. 그리고 이제야 손에 잡게된 죄와 벌... 나는 우선 책의 자그마한 사이즈에 놀랐다. 분량이 조금만 더 굵었어도 책이 위태로웠겠다는 우스꽝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드디어 역사적으로 나는 죄와 벌의 첫 장을 넘기게 되었고, 한 장 한 장 거듭 넘겨가며 읽게 되었다... 도대체 나에게 죄와 벌 읽기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에게 어떠한 점을 시사하는가? 나는 이 리뷰를 쓰기전에 많은 고민을 했었다. 책의 뒷면의 작품해설과 인터넷을 검색해가며 아주 뛰어나고 어려운 리뷰를 쓸 것인가? 그리하여 남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할 것인가? 그러나 나는 결국 다른 길을 택했다. 나에게 죄와 벌 읽기란 한마디로 말해서 내 독서인생의 한 전환점이자, 내 사상과 나의 모든 것의 하나의 획이었다. 그 자체였다. 8500원짜리 작은 양장책의 안에는 놀라운 세계가 담겨있었다.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는(아마도 맞을 것이다...) 살인을 한다. 나는 책을 읽으며 놀랐다. 살인을 해서가 아니다. 갑자기 주인공은 살해를 한다. 후에 전부터 생각해 왔던 일이라고 고백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갑작스럽게 살인을 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살인을 생각지 않았었다. 그것도 힘없는 노파에 대한 항변... 무엇이 라스꼴리니꼬프로 하여금 도끼를 들게 했는가? 나는 자문해 보았다. 이 책이 무슨 책인지... 사실 나는 이 책에 대해 많은 기대를 했었다. 각종 문학서 차트에 죄와 벌이 상위권에 없으면 씩씩대며 화를 내기도 했었다.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살인을 하고 분명 자신의 살인에 대해 정당화 시킨다. 그러나 라스꼴리니꼬프는 매번 방황한다! 그것은 그의 정당화와는 달리 그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부터 괴로워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일어나는 잡다한 일들... 나는 감히 도스또예프스끼의 죄와 벌의 중간 부분을 '잡다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감히 내가 말이다. 중요한 것은 라스꼴리니꼬프와 존재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라스꼴리니꼬프가 겪는 약1~2주일의 일이라고 한다. 주인공은 대광장에 무릎꿇고 사죄하라는 말도 듣는다. 그리고 자신을 의심하는 형사로 부터 범인은 라스꼴리니꼬프 당신이라는 말도 듣는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나폴레옹이 되기 위해, 아니 나폴레옹을 뛰어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백한다. 영웅이 되기 위해? 세상을 뛰어 넘기 위해? 결국 라스꼴리니꼬프는 어려운, 어렵사리 자수를 하게 되고,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다고 도스또예프스끼는 감히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도스또예프스끼는 라스꼴리니꼬프의 변모가 새로운 이야기의 주제가 될 수 있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라고 말한다. 나는 과연 죄와 벌을 읽고 무엇을 느꼈는가? 그리고 왜 이렇게 미친소리를 해대는가? 난 죄와 벌을 읽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도 감히 나보다 더 뛰어난 일을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신(도스또예프스끼)의 사상을 알게 되었고,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써 나는 구름가득한 내 인생의 한 발자국 앞을 볼 수 있는 최대의 특권을 부여받게 되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살인을 하기 이전에도 '고뇌하는 기계'였고 나 역시 그런 것 같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죄와 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읽은 후, 오히려 생각이 복잡해 진 것도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위대함을 알아가고 싶다는 것! 간단히 말해 이것을 느꼈다. 그리고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은 과연 생각하는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심각히 생각해 보았다. 내 눈에는 온통 쓰레기같은 인간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죄와 벌을 보며, 나!!!를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도스또예프스끼에게 감사드린다... 이 글이 내가 갑자기 취소해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전산상의 오류로 인해 예스24측에 전달이 안되어 남겨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이상적 생각' 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당연히 잘못된 생각이다. 이 세상에 처음부터 규제된 것이라고는 없으니 말이다. 나보다 좀 더 먼저 태어난 것일 뿐. 어쨎든 죄와 벌은 나에게 많은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게 해 준 책이고, 이제야 비로소 '문학'이란 것에 눈뜨게 해준 작품중의 작품이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는 어쩌면 나의 입장에서 삶을 먼저 살아준 것은 아닐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죄와 벌이 내게 준 것을 어쩌면 나는 평생 갚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못 갚을 것 같다. 결국나는 죄와 벌에서 사랑, 희망, 용기, 용서, 평화 등 모든 것을 배운셈이다. 무언가 멋있는 말을 쓰고 싶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 글을 보내놓고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여기까지 쓰기로 하겠다. 이 세상에 대한 정의를 평화로운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전제하에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한 번쯤 던져보고 싶어졌다. 오해를 없애기 위해 어디까지나 자전적인 성격을 띄기도 한 질문이란 것을 밝혀두고 싶다... "엄마의 품이 따뜻해 버릇없이 행동한 아이는, 종아리를 맞은 후 훌륭해 질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이제 한 발자국을 넘어선 또 한 발자국을 위해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집어들 생각이다.
h*******e 2004.04.27.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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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적사회주의에의 갈망과 그 성과...
"공상적사회주의에의 갈망과 그 성과..." 내용보기
'지하로부터의 수기'가 1965년에 발표된 이후 1년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대표적인 장편 '죄와 벌'은 '서구의 합리주의와 혁명사상을 단죄함과 동시에 소외된 인간성의 회복을 호소하는 휴머니즘을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던 세계문학사의 '보배'로 일컬어진다. 소설의 가장 핵심이 되는 사건은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이'만도 못한 고리대금업자노파 알료나이바노브나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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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가 1965년에 발표된 이후 1년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대표적인 장편 '죄와 벌'은 '서구의 합리주의와 혁명사상을 단죄함과 동시에 소외된 인간성의 회복을 호소하는 휴머니즘을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던 세계문학사의 '보배'로 일컬어진다. 소설의 가장 핵심이 되는 사건은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이'만도 못한 고리대금업자노파 알료나이바노브나를 정의와 사회주의이념에 입각하여 도끼로 살해한 일이다.(노파의 여동생 리자베타는 우연히 살인현장을 목격한 댓가로 역시 라스콜리니코프의 도끼에 희생된다.) 한 인간의 확신에 찬 결단력에 의해 저질러진 이 사건을 둘러싸고 소설은 고도의 심리전으로 돌입하게 된다. 마치 고급 추리소설을 읽어나가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잘 정돈된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이 소설이 '휴머니즘을 그려냈다'는 평을 받을만한 근거를 굳이 찾으라 하면 라스콜리니코프의 심리상태속에 담겨진 '인간적인' 사색과 고민들에 관한 절묘한 스케치, 그리고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을법한 '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인 죄'를 말미에는 소냐라는 여자와의 감동적인'사랑'으로 반전시키면서 제2의 삶의도약을 꿈꾸는 살인자의 '희망'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이 '사건'을 둘러싼 주변인물들과의 갈등, 관계속에서 이야기되고 있는것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들이 늘 그래왔듯이)역시 당시 사회의 일그러진 현실에 대한 분석과 그에서 야기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불가피한 갈등, 형이상학적인 인물의 자기소멸, 가난의 극한에 직면한 서민들의 서글픔... 모든것들이 대단히 포괄적으로 전개된 연후에 (작가에 의해)다시 일정한 모종의 정리가 가해지고 소설은 가시적'결말'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라스콜리니코프의 그 '죄'는 반드시'벌'이 수반되어야 할 진정 '나쁜'행위였을까? 소설을 읽고나서 가장 많이 떠오를 물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해답은 묘연하다. 알 수가 없지만 도덕적인 잣대로는 분명 '죄악'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수많은 가난한 자들의 호주머니를 농락하는 고리대금업자노파의 욕심에 분개하여(그 노파하나가 희생됨으로써 아프리카의 수십만 기아를 먹여살릴 수 있을거라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논리는 상당히 설득적이고 타당했다!) 그러한 극단적인'심판'을 내린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입체감을 더해본다면 반드시 '죄'라고 단정할 수 있는것만도 아니지 않은가... 아무래도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회주의자였던 것 같다. 소설의 에필로그는 피비린내 났던 '죄'에 대한 (사회통념상)합당한 처벌로써 라스콜리니코프의 시베리아 유형생활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곳엔 (자신과 짧지만 운명적 친분이 있었던)마르멜라도프의 딸 '소냐'가 있었고, 드디어 우리의 '비극적'주인공은 자신의 이상실현의 성취와 함께 사랑까지도 쟁취할 수 있게된 선택받은 자로써의 미래를 보장받게 된다...
k*****7 2003.05.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26년 만에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날 수 있었다.
"26년 만에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날 수 있었다." 내용보기
사다놓고 감히 펼치지 못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가 그렇습니다. 범접하지 못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조정래와 박경리,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렇습니다. 일단 글이 길어 엄두가 안납니다. 사실은 그 큰 세계에서 길을 잃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00쪽 넘는 책은 일단 모셔두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단행본들이 펼쳐놓는 세계가 좁게 느껴진 때가 있습니다.
"26년 만에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날 수 있었다." 내용보기
사다놓고 감히 펼치지 못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가 그렇습니다. 범접하지 못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조정래와 박경리,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렇습니다. 일단 글이 길어 엄두가 안납니다. 사실은 그 큰 세계에서 길을 잃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00쪽 넘는 책은 일단 모셔두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단행본들이 펼쳐놓는 세계가 좁게 느껴진 때가 있습니다. 책 한 권을 다 돌아다닌 후에도 숨 하나 가쁘지 않고 다리에 힘이 그대로 남았습니다. 찬스다! 도스토예프스키에 도전하자. 카르페 디엠. 처음 적응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리니코프가 어머니 뿔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라스콜리니코바의 두 손을 잡고 말했다." 이 문장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대륙을 다 헤집고 다니는 듯 죄다 달변가에 속사포로 대사를 늘어놓는 주인공들의 뱃심에 기가 질렸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덩어리로 받아들여지자 속도는 무섭도록 빠르게 올랐습니다. 출퇴근 길 지하철 안에서 펼쳐 읽고 집안에서 읽다가 집중이 안되면 일부러 5호선 전철을 잡아타고 하릴 없이 빠져들었습니다. 한 번 책에 얼굴을 파묻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순식간에 100여 페이지가 지나갔습니다. 책을 덮었을 땐 롤러코스터를 하루 종일 타다가 땅에 내려선 것처럼 긴장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장편 소설의 재미는 압축적인 세계의 유기적인 연결에 있습니다. 불과 십여 명의 주인공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대립 구도를 만들고, 그 대립 구도들끼리 또 다시 대립과 갈등을 만들어내고... 작은 동네에서 이루어지는 짧은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이토록 세세하고 드넓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놀랍습니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를 비롯하여 누구 하나 버리거나 묻히지 않는 독특한 인물 설정, 그리고 다들 한 말발(?)하는 인물들 간의 빠르디빠른 대화, 라스콜리니코프의 몽환적인 심리, 거리의 풍경들이 마치 그곳에 다녀온 것 같은 세세한 느낌으로 남아있습니다. 26년 만에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g********d 2002.07.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