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든 일곱인 어머님을 뵈러 갈 때마다 노년의 삶이 길어지는 게 축복이 아님을 깨닫는다. 1주일에 세 번 도우미가 와서 청소를 돕고 밑반찬을 만들어주고 있지만 혼자서 모든 일을 원활히 수행할 수 없어 탄식할 때가 늘어난다. 넷째 아들이 20분 거리에 살고 있어 어머니 집을 자주 왕래하고 있지만 경제적 여력이 없는 어머니는 아들이 애써 번 돈을 자신 때문에 축 내는 것을 죄스럽게 여기며 일찍 죽어야 하는데 숨이 왜 이리 질긴지 모르겠다는 푸념을 늘어놓기 일쑤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아들은 어머님을 봉양하는 일은 인륜지도의 근본으로 여기며 지내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질병의 고통은 커질 것이고 큰돈은 더 많이 들 것이라 걱정이 앞선다.
NHK 스페셜 제작팀이 펴낸 ‘노후파산-장수의 악몽’에 따르면 일본 홀몸노인 수가 600만 명에 달하고, 그 중 절반은 빈곤 상태에 처해 있다 종국에는 노후 파산에 이르고 말 것을 예상하고 이를 대비하는 노후 설계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외동아들을 먼저 보낸 부부는 서로 상실의 아픔을 위무하며 견뎠으나 남편이 세상을 뜬 뒤 의지할 대상을 잃은 아내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였고 질병의 고통 속에서 힘든 노후를 보내고 있지만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국민연금 생활자라도 예금 등의 자산이 없으면 생활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질병으로 큰돈이 들어갈 수 있으니 예금 통장을 쉽게 헐 수 없는 상황에서 고령자 노인의 생활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후생 연금 없이 국민연금인 65만 원으로 광열비와 보험료 등을 지출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없어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며 식비를 줄이는 노인은 한 달을 살아내는 일이 힘에 부쳤다. 병이 악화되면 목돈이 들어가니 의료비를 절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금해 둔 돈을 지출하다 보면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 노후파산에 몰리고 만다. ‘정든 내 집에서 죽고 싶다.’ 수중에 남은 예금이 유일한 버팀목인 가와니시 씨는 집을 매각하여 생활보호를 받기보다는 주택연금 제도를 통해 사후 집을 처분하는 편을 택하겠다며 예금이 바닥날 때까지 오래 살고 싶지 않다며 장수가 악몽인 시대를 말하고 있었다.
고령자가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면 노후파산은 엄습하여 그동안 지내 온 삶의 질서를 파괴하고 만다. 함께 했던 이들과 떨어져 고립된 채 노년을 보내는 여든의 노인은 까마귀 같은 새들이 유일한 친구라니 언론에서 보도하는 무연고 고독 사라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가난한 농민인 기타미 씨는 자급자족을 위해 밭에 채소를 기르고 주변에 나는 채소를 이용하지만 이 역시 무한으로 이용할 수 없는 일이라 안심하며 지낼 수는 없다. 죽고 싶어도 논이 있으니까 죽을 수 없다는 노인의 땅에 대한 애착은 가난한 농민의 애환으로 비춰져 처연함이 더한다.
햇수를 거듭할수록 고령자들의 기억력은 퇴화하여 이들이 치매에 걸리는 경우도 흔하니 정신이 있을 때, 성년후견인 제도에 따른 절차를 밟아 돌연한 사태를 준비하는 일은 과제처럼 여겨진다. 길어진 노년의 삶에 가족에게 돌봄의 책임을 다하라고 할 수 없는 일인 점을 감안하여 창설한 돌봄 서비스 제도를 적절히 이용할 때 가족들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다. 길어진 노년을 재앙으로 치부하며 세금 부담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기보다는 노후 파산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적절히 강구하여 노후파산의 재생산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 역시 고령화 문제에 따른 ‘노후 파산’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길어진 노년을 안정적으로 지내기 위한 방안을 찾는 일에 주력하여 사회 문제로 파생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당시엔 노후라는 말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한번 선택한 직장은
본인이 그만두지 않는 한 대체로 정년까지 일할 수 있었고, 은퇴를 한 후에는 몇 년 정도 살다 보면
환갑을 맞이하고 그 후에는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 몇 년을 더 산다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식들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그다지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었다. (그 때가 좋았는데.. 쩝~) 나 역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고 자식들 역시 그렇게 살아가리라는
생각에 추호의 의심도 들지 않았었다. 설사 자식들과 같이 살지 않는다 해도 몇 년 정도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으리란 생각에 노후란 머리 속에서 사라진 단어였던 것 같다.
그러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들기 시작했고, 해마다 늘어가는 기대수명은 '내가 나이를 먹으면 뭐하고 살지'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먼 훗날의 일이었을 뿐 당장의 생활을 하는데 전혀 실감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설령 그 당시에 노후라는 것을 생각했다 할지라도 커가는 아이들 뒷바라지도 바쁜 형편에, 일반 회사원들이 따로 대비를 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바로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아마
내가 그만큼 나이를 더 먹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은퇴를 하고 나더라도 어쩌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많은 번민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뭘 하고 살아야 할까? 혹은 뭘 먹고 살아야 할까?
일본
NHK가 노인들의 숨겨져 있던 비참한 현실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방송한 것에다, 미처 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보완하여 책으로
엮은 [노후파산]은, 우리들의
노후가 어떠할지를 보여주는 바로 우리들의 미래 이야기였다. 병이나 부상 등은 나이를 먹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부양가족이 없고 홀로 살고 있다면 의료비는 무거운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연금만으로 빠듯하게 생활을 꾸려가는 상태를 NHK는 '노후파산'이라고
정의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연금제도가 잘되어 있는 나라이다. 그럼에도
연금만으로 생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후파산의 위기에 몰려있다. 그리고 이런 노후파산의 무서움은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데 있다. 단번에 노후파산에 처해지는 것이 아니라, 생활고에
빠져 집을 팔거나 예금을 조금씩 헐어서 쓴 끝에 최종적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더불어 더욱 심각한 것은
경기불황으로 젊은이들의 취직이 힘들어지고, 세대의 수입이 지속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노후파산이 승계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정년까지 일을 하면 노후를 보장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온 노인들의 실상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책은 보여주고 있다. 설마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다가 막상 현실이 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충격을 받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비단 일본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더불어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이면서 고령화 비율이 높은 나라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미통계국 발표에 의하면 2015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비율은 일본이 26.6%로 1위이고, 한국은 13%로 25위이지만, 2050년이
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세계평균 노인인구비중은 16.7%이지만
한국은 35.9%로 일본의 40.1%에 이어 2위가 된다. 노인인구 비중만 높은 것이 아니다. 2050년이 아니라 현재의 노인들의 삶도 팍팍하기만 하다. 올 1,2월 법원에서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 중 60대 이상의 비율이 24.8%를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49.6%에 이르며, 노인 10만명당 자살자수는
64.2명으로 OECD 최고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온 일본 노인들의 경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삶을 살면서
'빨리 죽고 싶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그것이 진행중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우리 미래의 삶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말 그대로 오래 산다는 것이 악몽인 시대가 된 것이다.
나 역시 몇 년 전부터 노후를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별다른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멍하니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부터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학교 마칠 때까지의 학비와 생활비뿐이며, 그 이후는 알아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겠다고 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그대로 따라줘 걱정은 덜었지만 내가 살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어찌 보면 귀촌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도 노후의 삶을 생각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선거 때만 되면 복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난무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것들을 과연 시행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쉽게 '그렇다'라는 대답이 나오지를 않는다. 이제는 노령층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에도, 선거 철만 되면 말장난을 하고 있는 그들이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들은 이 책을 읽는다 해도 자신들의 일이 아니기에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겠지만 말이다. |
|
회사 사무실에는 한두 달 간격으로 할머니 한 분이 "조금만 도와 달라"면서 다짜고짜 손을 내밀며 방문했다. 처음 한두 번 정도는 늙은 나이에 모친도 생각나고 측은지심이 발동했었다. 문제는 몇 달이 지나고 일 년이 가다 보니 거의 정기적으로 오는 거 같았다. 몇 년이 흐른 후 그렇게 계속 오는 걸 보고 답답해서 물었다.
"할머니, 어쩌시다가 이렇게 계속 다니면서 도와 달라 하십니까? 형편이 정히 어려우면 동사무소 복지과도 있고 여러 기관이라든가 각종 복지 서비스를 하는 단체도 있는데 이렇게 다니지 마시고 그런 여러 기관에 도움받으셔야죠. 어떤 형편이길래 이렇게 나이 많은데 기력도 없고 힘들게 다니세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어찌어찌 살다 보니 이렇게까지 왔네. 그동안 살았던 이야기는 소설책 몇 권으로 다 말도 못 혀. 그런 곳 찾아갈 입장도 못되고..."라고 말꼬리를 흐리고 만다.
구체적인 형편을 극구 밝히지 않으니 어떤 도리 없이 지폐 몇 장으로 점심이라도 드시라고 하고는 말았다. 뭔가 밝히기를 극구 거절하는 통에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다음부터 이렇게 다니시면 일부러 다니는 거라 생각하고 사무실 못 다니도록 경비실에서 막을 겁니다. 정말 어려우면 전화번호라도 갈켜 드릴 까요?"라고 하니 그런 다음부터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형편이 어지간했구나' 싶었고 혹시나 그 나이에 자존심 굽히며 형편을 읍소할 만큼 기력이 쇠약한듯 보이긴 했으나 딱히 거절하니 다른 방도가 없었다. 문제는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는 노인네가 많고 장차 더 많아질 것이란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또 어떤 할머니 한 분은 사무실 패지를 얻으러 정기적으로 찾아오는데 이것도 사무실에서 나오는 박스와 종이는 모아서 주곤 한다. 이렇게 일상적으로도 버거운 살림을 어렵게 살고 있는 모습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시대이다. 오래전에는 우리네 할머니들은 사정이 곤궁하게 다니지는 않았다. 사회가 노인네들에게 점점 야박해지는 현상이 심해진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 1위라고 오명을 쓰고 있다고 한다. 괜히 1위가 아니다. 그야말로 살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퍽퍽한 것인지 살 만큼 살았던 늙은이가 가만 있어도 서서히 죽어가는 시간일진데, 이제는 오래 살 수도 없는 삶의 시간에 자살로 더 단축시키려 한다. 이것은 통계로 잡히는 객관적인 수치이다. 경제적인 환경, 열악한 주거환경, 관계의 단절에 대한 환경, 무관심과 방치된 환경, 공동체가 무너진 도시의 고독한 환경 등등에 처해 있는 노인네들이 너무나도 많다. 젊었을 때 자신의 노후에 대한 대비는 아무래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 여건이었을 테고 대책 없음에 무방비에 노출되었던 자신의 삶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고 달리 설명할 방법은 없다. 특히 다가오는 중장년 층의 노후 대비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금 무대비로 노출된 당면한 노인들의 문제를 보고서도 대비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도 같은 이치이다.
이 책 노후 파산은 현재 일본이 노인세대가 겪고 있는 현실을 취재한 사례를 기사화 시키고 엮은 책이니 만큼 우리들의 노후에 대한 지혜를 찾는데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현실은 일본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노후의 파산은 더욱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는다는 불길한 생각이다. 이게 일본보다 더 나쁜 현실이라는 점이다. 이제 6.25이후 50년대 6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 부머 세대가 본격 은퇴가 닥쳤다. 그런데 베이비부머 세대가 저마다의 노후의 대책은 과연 가지고 있는 걸까라고 생각해보면 앞으로 감수해야 할 일들이 일본의 초고령 사회에 비추어 더 좋아질 가능성은 없다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런 책을 통해서 우리들의 노후를 대비하고 이를 반면 교사로 삼아 마지막 삶이 곤란한 환경에 처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또한 이에 대한 앞으로의 대책과 지혜를 모으고, 스스로가 준비하지 못하면 노후가 얼마나 고단하고 삶 자체가 피폐해질 것인지, 방지해야 할 당면 과제로 남게 된다는 점이다. 실로 무섭게 진행되는 노령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현실적 당면한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노후의 경제적인 파산이 단순히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를 훨씬 뛰어넘어서 있다. 초고령 사회는 아직 우리 사회가 겪어 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현상을 노골적이고도 치명적으로 들어 내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망가져가고 급기야 자신의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파괴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인지, 대체 어디서부터 원인과 진단의 문제를 짚어야 할 것인지 난감하기만 했다. 공동체 사회가 무너진 도시의 삶이라는 것이 철저히 고립화시키고 개별화시켜 버리다. 이런 개별적 독단의 문제는 당장에 자신이 아프고 병들어 육신을 움직이지 못할 경우에는 아무런 케어를 받을 수 없을 때 비극은 참극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당장의 은퇴자의 삶도 문제이고 특히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며 빨리 죽기만을 바라는 삶은 존엄한 삶이 아니다. 살아 있는 형벌,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일본은 이런저런 사회보장제도가 일정 부분 준비되어 있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나온 몇몇의 사례에서는 참극 수준으로 나오는데, 과연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의 대비는 일본에 비해 터무니없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장차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 세대의 초고령 사회에서 발생하는 현상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저출산과 맞물려 초고령 사회는 그 비극적 궤적이 평행선을 이루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사람은 각자가 존엄하게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는 존엄은 커녕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가는 문제에 개개인은 그저 막막할 따름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노후 파산이라길래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로 국한된 파산이란 것으로 선입견으로 받아들였으나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노후 인생 파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경제적인 파산이 인생 자체를 파탄으로 전염시켜 버리는 결과에 대해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당면할, 앞으로의 초고령 사회는 정말로 사회 근간을 흔들 만큼 심각하다는 것이다. 지금 지진 때문에 난리인데 초고령 사회는 삶의 지진으로 난리가 날 거 같다는 거다.
이런 인생 파탄까지 내몰릴 정도로 절박한 노후 문제가 닥치게 될 것이라고는 차마 상상도 하지 못 했다고 한결같이 진술하고 있다. 은퇴를 얼마 남지 않는 지금 현재도 나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도 비슷했다는 뜻이다. 앞으로 경제적인 상황으로 가족이 해체되고 공동체가 분해로 이어지고, 독단적으로 단절되어 개별적인 세포화되어 가면 각자도생만이 남을 것이고, 언제까지 내 몸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누군가로부터 케어 받을 수 없게 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대로 꼬꾸라져 고독사로 마무리될 것을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늙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게 고통 속에서 병이 심각한들, 혼자서는 전혀 움직이지 못해 병원 한번 갈 수도 없이 통증에 시달리며 빨리 죽지도 않는 상태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참극이다. 나 자신이 그러지 말라는 보장도 없고, 우스께 소리로 나는 절대로 벽에 똥칠할 때까지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더라도 이 또한 자신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 때나 생각할 수 있지, 막상 자신의 생명조차 어쩌지 못하여 똥 쌀 때는 어떡하겠다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생각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자신의 장례비용 때문에 예금에 손을 대지 않겠다는 일본의 자존심 강한 노인네는 그렇게 강고한 성격이 더욱 고통스러워지는 대부분이라면 말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사례는 거의가 노인 혼자만 남았을 때가 문제가 된다. 평생 결혼을 하지 못하고 지냈거나, 혹은 부부 중에 아내이든 남편이든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남았을 경우는 노후 파산이란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늙어감에 따라 언젠가는 반드시 홀로 남는다. 부부가 한날한시에 세상 하지 하지 않는 이상, 아내가 일찍 떠나든지, 남편이 일찍 떠나든지 결국 홀로 남게 되었을 때 서로가 의지가 될 수 없어 케어가 없고 부부간에 서로 받는 연금이 반 토막으로 줄어들 때, 남은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삶을 유지시키고 원만하게 자신의 생을 무리 없이 마감할 수 있을 것인가. 이건 나도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문제였다.
겪어 보지 못한, 그저 개념적인 문제가 실체적으로 부각되는 점을 이 책은 정확하게 직시하게 해주고 있다는 거다. 아직은 젊어 힘 있고 다리에 기력이 남아 있을 때는 이것은 전혀 생각의 범주에 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보면, 이걸 미리 겪어 볼 수도 없으니 절박하게 마땅히 미리 대비해 둔다는 생각도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의 현실임은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자식들과 함께 살거나 혹은 지근거리에 살면서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자신의 영역을 확보했고 자신의 입지가 굳건했다. 자식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늙을 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비슷한 보호받으면서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홀로 남는다. 가장 결정적이 차이가 가족이란 테두리의 존속 유무 차이이다. 이제는 원하든 원치 않든 홀로 남을 가능성이 많은 환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몸을 움직여 밥 한 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마주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 24시간 간병 지속적으로 간병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면 그대로 감내하든가 그동안의 예금을 헐어야 하고 또 언제까지 그렇게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 장담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나온 일반적인 사례들을 특징들은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특별히 무슨 재산적인 부를 모으지는 못했으나 평범하게 직장을 열심히 잘 다녔고 젊은 시절부터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큰 부를 일군 것은 아니더라도 그 나름의 삶을 충실히 살았던 사람들이 늙어서 파산이란 지경에 이르게 되는 자본주의적인 모순을 목도하는 기분이었다. 공동체가 없이 개별적인 삶은 오로지 늙어서는 오로지 자신이 자신에게 밖에 기댈 때가 없게 된다. 지역사회의 공공적 서비스로는 모든 것을 다 도맡아 해결하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고 일일이 세심한 케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젊어서는 홀로 산다 해도 특별히 문제가 없지만 늙고 병들어 운신하기 어려워질 때는 결국 혼자가 아닌 공동체가 매일 찾아야 하는데, 이런 공동체가 사라지고 나면 도시에서 버티기도 불가능하다.
다음은 은퇴 후 노년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결론을 몇 가지 내보기로 하자. 1. 은퇴한 남자들은 집안에서 자신의 공간이 없다는 사실을 은퇴하고 바로 느끼는 부분이라고, 은퇴하면서 정당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모 정당 지역 당원 한 분의 설명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과 연관 지어서 읽어보니 그래서 더더욱 실체적으로 와 닿는다. 직장, 사회 등으로 나돌아 다니다가 은퇴 후에는 갈 곳이 사라진다는 현실이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갈 곳이 마땅한 곳이 사라지고 없다. 물론 돈이 많아서 어디 빈 사무실이라도 얻어서 출퇴근하듯이 일이 있으면 모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갑자기 오리무중의 발길이 되어 버린다고 한다. 이에 반해 여자는 부엌이라는 자신의 공간이 있고 안방을 차지하게 되고 자식들도 각자의 자기 방의 공간이 있는데 은퇴한 남자의 공간은 집안 어디에도 없이 걷 돌게 된다고 한다. 마냥 거실에서 머무를 때 자신의 고유 공간의 점유성 부재가 가져다주는 무력감은 은퇴자가 만나게 되면 젖은 낙엽처럼 소외된다고 했다. 집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읽어 버리지 않는 독점적인 공간. 즉 서재라도 좋고 좁은 창고라도 좋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고독을 누리지 못한다면 집안에서조차 부유되듯 떠돌아다니는 꼴을 면치 못한다고 조언한다. 이 책에서도 일본이 상황은 다소 나아 보이나 자신의 공간 부재는 자신의 정체성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2. 다음은 경제력인 부분이다. 이때까지 일부 선배들을 보면 자식에게 올인해서 사업 자금 대주고 주택 얻어주고 하다가 빈 개털이 되었을 때의 상황을 간간이 지켜보게 되면 멀쩡하던 은퇴자가 일순간 빈곤 가정으로 급진 추락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자신의 노후에 최후까지 보루로 삼아야 할 생활비조차 탕진당할 때 그 이후는 대체 어떻게 할 것인지 정말 답이 없는 경우를 보게 된다. 또, 주택연금이나 일반 국민연금, 사보험 연금 등의 노후 보장 포트폴리오를 수립하고 꾸준하게 적립시켜 온 사람이라면 한 달에 생기는 수입이 일정 수준이 되어야만 생활이 가능하다는 부분이다. 가진 거 다 털려도 매달 자신의 삶에 안정을 추구할 수 있는 힘은 일하지 않고도 보장되는 수익원이 있어야 한다. 자식들에게 한 달 얼마씩 용돈 받는 것으로는 체면도 서지 안을뿐더러 언제까지 부담을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자신의 앞가림은 필수이다. 고정적인 연금 수익이 없을 때 노인들의 활동 영역은 급속도로 줄어들고 인간관계의 심각한 단절과 소외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어디 가더라도 커피 한잔 교통비와 점심값조차 없이 나돌아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시다시피 현재의 사회적 시스템은 자본주의적인 체제에 절대적일 만큼 확고하다. 그런데 자신의 운신할 자본적인 여력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개인적, 사회적인 문제를 양산한다는 점이다. 늙어서 돈이 없으면 서럽다. 누군가에게 빌붙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부조를 받아야 하고 누군가로부터 보살핌을 구걸해야 하고 누군가로부터 협조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자식들이라고 요즘 그렇게 넉넉한 삶을 물려주지 못 했던가 자신과 비슷한 가난한 처지의 삶을 산다면 분명히 보조가 있을 수 없다. 비록 큰 재산을 이루지 못 했다 할지라도 반드시 이런 자본적인 대비는 해결 해냈어야 하고 대비해 두어야 할 일이다. 남은 인생을 굴욕적이지 않고 자립적이고 자신의 의지와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삶.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기반과 능력이 없으면 굴욕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늘상 나를 도울 사람을 찾아서 헤매야 하고 지인으로 부터도 아쉬운 소리 해야 하는 모욕적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 뻔하다. 젊은 시절의 대비하지 못 해서 그 순간만 올인한다고 해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살다 갈 수는 없다. 그래서 노인 자살률이 치솟고 억지로 생을 마감하려 한다. 시작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자신의 마지막이 비굴해진다는 게 참 불행한 일중 하나일 것이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더라도 적절히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보험 및 민간에 가입한 치료 보험, 중대한 질병에 대한 고액 보험, 그리고 연금 등 경제적이 포트폴리오가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앞으로 자식에게 기대할 수 있기가 어렵다. 자식이 없어도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역량 강화가 반드시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한다.
3. 자신만의 취미와 배움을 추구하는 삶이다. 젊을 때 한창 바쁘게 일할 때는 미친 듯이 정신 차리지도 못할 만큼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은 상대적 시간의 급속 방전 소비를 하게 된다. 그러나 마땅한 일이 없이 은퇴를 하고 나면 남아도는 게 시간이다. 즉 그렇게 빨리 가던 시간도 흐름이 갑자기 멈춘 듯 시간이 지겨워진다.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어디 경제력이 빵빵해서 주야장천 여행 가겠다는 욕심은 욕심으로 끝난다. 게다가 기력도 젊을 때 돌아다니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도 딸리고 피곤하고 지친다. 어떻게 매일매일 그렇게 온통 여행 가고 여기 가고 저기 갈 수가 없다. 시간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문득 발견하게 될 때는 이미 늦다. 은퇴하고 나면 그동안 읽지 못 했던 책이라도 왕창 읽을 수 있겠다 싶지만 막상 젊을 때 독서의 탄탄한 근육이 발달되지 못 했다면 갑자기 책을 들고 펼친다고 하루아침에 없던 독서력이 생길 리도 만무하다. 당최 뭘 읽어 봤어야 이력이라도 붇고 재미라도 생기는 법이다. 어디 영화에 취미를 갑자기 가진다 한들, 이 또한 역시 영상에 대한 미학적인 추구나 발견이 없이는 하루 이틀의 시간 소모는 가능하나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즐김은 도저히 어렵다. 음악도 듣는 사람이나 좋아서 듣지 평생 클래식 한곡 들어 보지 못하고 클래식의 진수가 뭔지 음악의 역사도 전혀 모르고 갑자기 음악이 귀에 속속 들어와 마음의 현줄을 울리기도 어렵다. 젋을 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것인지 소위 할 수 있는 소재 거리를 만들어 두지 못한다면 시간으로부터 낙오되기 십상이다. 자신의 내면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이 또한 윤택한 삶은 없다. 남아도는 시간에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의 낭비의 시간을 어떻게 요리할 셈인가. 아무거나 만들다고 뚝딱 맛날 수는 없는 것이 시간의 요리가 아니었던가. 공원에서 하루 종일 멍하게 하늘이 뚫어져라 바라봐도, 흐르는 구름에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심리적 배경을 가지고서는 무료함으로 스스로가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따라서 젊을 때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정적인 취미와 전문적인 스킬은 반드시 가져야 한다. 이것을 가지지 못한 아둔함으로 앞으로 남은 노년의 시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는다. 지겹고 심드렁한 일상의 무력감과 무기력, 무료함은 삶을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뭐라도 만들어 가져야 한다. 독서 영화 음악같은 심미성에 눈을 떠야 한다. 특히 예술적인 취미야말로 자신의 고상함에 날개를 달아주고 이와 비슷한 동질감 가지는 분들과 고고한 교류는 또 새롭게 관계를 만들어 가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나는 심심하다는 소리를 제일 듣기 싫어한다. 책 한 권으로 며칠을 때울 수 있고 책을 읽고 다시 며칠의 글을 쓰다 보면 심심할 틈이 없다. 이것은 늙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자신의 내적인 힘으로 연결된다는 거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영상 미학 시대에 이미지의 발견과 이미지의 확장성으로 모든 것이 새롭게 만날 수 있는 현대의 감각적인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늙어서도 얼마든지 좋은 취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고 이와 함께 관련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토론과 만남을 이어갈 수 있다. 결국 자기의 소외는 자기가 만들어간다는 것. 인생이 고독할지언정 소외당해서 외롭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은퇴하고 죽을 때까지 남은 시간은 어쩌면 제2의 인생을 개척하는 길인데 은퇴시점에서 발길을 돌려야 할 곳이 없다는 것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는 이유이다.
4. 집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가져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집안의 고유한 자기 공간과 더불어 집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당원 동지 분의 언질 중 하나가 남자가 요리를 배우라고 조언했다. 평생을 자신을 위해 음식을 대령했던 아내에게 은퇴 후에는 근사한 요리라도 선물하라고 했다. 참 공감되는 이야기이다. 평생을 펴주는 밥상만 받기만 했을 텐데 은퇴 후에 자신이 그 상 위에 근사한 요리를 디스플레이 한다면 이 또한 감동이 아니겠는가. 어디를 가더라도 요리 잘하게 되면 반드시 환영을 받는다. 얻어먹기만 하고 자신이 해줄 수없다면 역시나 뒷방으로 내몰린다. 대체할 줄 아는 게 뭔가 없다는 것도 인생 참 잘못하는 거 아닐까 한다. 어느 집 가장은 은퇴 후에 요리 학원을 등록해서 자격증에까지 도전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어디론가 일거리를 스스로가 만들어 낸다. 그럼으로써 몰랐던 새로운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언제까지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에만 의존할 것인가. 꼰대질 하는 남자치고 요리 좀 한다 싶은 사람이 없는 이유가 차려주는 밥상에 아주 익숙해 있고 늙은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에다 온갖 타박성 맛 타령하는 것은 상당히 저질이다. 그렇게 맛을 안다면 직접 해보고 직접 차려주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늙어서 꼰대질 만큼 볼썽사나운 것도 없고 꼴불견의 자신은 발견하질 못한다. 요리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모르는 탓이다. 여자는 요리에 감동하는 존재인 것은 분명한 것 정도는 그 나이 먹도록 모른다면 진짜 재미없는 영감탱이가 될 뿐이다. 늙어서 황혼 이혼 당하는 노인네들 보면 어떤지 대충 감이 돋는 이유. 뻔하잖는가. 은퇴하기 전에는 그나마 돈이라도 주면 모를까 은퇴하고 나서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요리로 뭔가 하나 베풀어 본 적이 없는 쫌생 스타일을 계속 같이 살기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라니까.
5. 아름다운 노년은 건강을 담보로 잡는다. 젊어 이룩한 화려함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늙어서 병상에 침대 위에서 골골거리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다. 자신도 물론 포함해서 누군가에게 간호를 강요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이 또한 참 못할 짓이다. 젊어서 몸을 함부로 굴리고 술과 담배로 늘상 찌들려 있다 보면 건강하지 못한 채로 병상에서 오래 시들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정갈함과 간결함, 단순한 삶의 정적인 힘과 외적으로 운동으로 다부져야 할 것은 노년이면 더더욱 필요로 한다. 누군들 잘 죽는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게 살다 잠자는 길로 호상을 누리는 행복도 다 건강이 마련해 준비가 되었길래 가능한 것이겠다. 아파서 병들고 하루 생활도 근근이 이어가는데 덜컥 아프기라도 해서 병원 보험으로 어림없을 중병이라면 집안 거들 내기 딱 알맞다는 이야기다. 물려주지는 못할 망정 무일푼의 가난을 물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나 또한 요즘 무지하게 반성 중이고 반성 곱절 중이다. 자학적인 성격으로 과잉의 술로 매일 보낸 적이 많았다. 하루 이틀에 걸친 발병의 현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십 년 이상을 술과 담배로 몸이 많이 망가졌다. 회복되는 것도 자각하고 나서도 어려울 수도 있다. 더이상 악화되지 않을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나 혼자라면 홀로 골골거리다 가도 그만인데 책임질 사람이 있다는 무게감은 건강을 유지시켜야 할 의무로 남았다. 열심히 운동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더 늙기 전에 시작해야 할 일이다.
6. 노년은 반드시 더 외로워진다. 고독할 수는 있어도 외로울 수는 없어야 한다. 외로움은 자신의 역량에서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다. 무엇인가 끊임없이 배우는 노년, 시도하는 사람들끼리의 관계를 새롭게 가져갈 때 일하는 것 이상으로 바쁘게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홀로 살며 넋 놓고 먼 산 바라본다고 누가 말 걸어 줄 사람이 없다.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노인들에게 관심이 없다. 오히려 더 소외된다. 새 대간의 몰이해는 세대 간의 분리적 현상을 일으키고 이 세대분리는 서로에게 갈등을 야기하고 급기야 외면을 낳게 된는 이유이다. 그러니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부와 새로운 유행에 둔감하지 않는 스타일을 끊임없이 내면으로 불어 넣어야 한다. 그런데 이거 평소에 준비되어 있지 않고 훈련되어 있지 않는다면 어느 날 갑자기 없던 이해력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관계란 서서히 다져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 먹은 것이 벼슬이 아님을 즉각 알아차려야 한다. 오히려 대화에는 나이가 걸림돌이 된다. 나이를 버려야 비로소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나이 든 사람의 꼰대 짓이 얼마나 질타의 대상이 되는지 눈치 없는 노인네는 되지 않아야 한다. 나이 먹고 냄새나고 소리만 버럭버럭 지를 줄만 알고 다른 게 아무 것도 없는 맹탕인 노인네는 반드시 외로워질 것이라고 내 장담한다. 외로운가? 자기 스스로 늙어 외로움을 만들지는 않았나 성찰 정도 못하면 그냥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이번 리뷰는 주제가 다소 무거웠으므로 길었다. 인터넷 시대에 짧게 쓰는 것이 오히려 미덕인 시대인데 글이 장문이 될수록 읽기 어려워지는 현상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 세대가 당면한 조만간 닥칠 장례의 삶에 대한 문제는 준비되지 않으면 삶의 윤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반드시 늙어가고 죽어간다. 젊을 때야 멋도 모르고 지랄 발랄 생떼 부리고 까불어도 다 늙어 간다. 기분 내키는 대로 대가리 몽디 구불리고 다녀도 어차피 다 늙는다. 시간 앞에 거슬릴 수 있는 놈 아무도 없다. 그러나 늙어서 얼마나 쿨하게 살고 있는가 찌질하게 살고 있는가는 젊은 날의 증명서와도 같다. 뿌린 대로 거두고 심은 대로 자라는 법이다. 인간이란 욕심이 한도 끝도 없어서 뿌리지도 않고 아주 근사한 삶의 결실을 얻고자 하지만 역시 늙어서 인생의 오묘한 선물은 젊을 때 제대로 자신의 인생이란 밭에 얼마나 잘 경작을 했는지 판가름 난다. 또 무슨 작물을 어떤 기술과 열정으로 심었는지 지혜롭게 관리가 되었는지에 따라서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늙어서 우줄 끈 하면 볼품없는 노인네는 인생의 비극의 끝이다. 슬프지 말자. 우울하지 말자. 늙어서 늙음을 웃을 수 있는 자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태어나 누려야 할 최종 마지막 권리이자 의무이다.
- 며칠 저녁마다 책 읽다가 졸다가 적었습니다. 맞춤법이나 띄어 쓰기 오류 난 곳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나무만 보지 말고 넓은 숲을 봐주시고 손가락만 보지 마시고 달을 보시길 바랍니다. |
|
막연하게 생각했던 나의 노후. 하지만 요즈음은 두렵다. 너무 많이 살까봐 두렵고, 삶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릴까 두렵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까봐 두렵다. 내가 논술을 공부하는 팀에는 두 명의 선생님이 있다. 워낙 오랫동안 알아 온 단짝인 그 선생님들은 가끔 장난처럼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자신이 늙어 판단이 흐려지면 옆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따끔하게 이야기 해달라고. 하지만, 그런 말 자체를 잊어버려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그런 노인이 될 것 같아 무섭다고. 나 역시 시어머님과 함께 살고 있기에 노후, 그리고 노인이란 주제에 자유로울 수 없다. 아직은 시어머님과 친정 부모님 모두 치매를 앓거나 거동이 불편하지는 않지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 다행히 시어머님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일을 하시기에 생활비를 보탤 필요는 없고, 천정 부모님도 아직은 상황이 나쁘지 않아 괜찮지만 어쩜 문제는 우리 세대가 아닐까
남편과 나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하는. 다른 집에 비해 양쪽 어른 모두에게 돈이 들어가는 건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우리 집이 아니 우리 부부가 노후를 잘 준비했는가? 이렇게 물어보면 많이 부족하다에 한 표를 던지겠다. 재테크를 잘했다면 좋았을까? 그것도 부족하고, 아직 아이들은 자라고 있고, 남편이 늦게 결혼해 아이들은 어리고... 노후에 관해서는 총체적 난국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암튼 내 노후가 장밋빛이 될지 흐린 날의 오후가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때문에 ‘노후 파산’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우울해졌다. 우리나라보다 상황이 나은 일본도 이럴진대, 우리는 어떡해야 하는 건지...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이 49.6%로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한다. 게다가 노인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많아 노후의 우울한 삶은 비참하다. 내년이면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14%가 넘는다고 하니.. 장수가 진정 축복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일본 소설 책 중에 노인 인구를 조절하는 내용이 있다. 노인이 너무 많이 늘면 젊은 사람들은 노인을 죽여야 하는 것이었는데 만약 그게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이 책의 말처럼 나의 노후는 안전할까? 답답하기만 하다. ‘노후=돈’으로 결론지어지는 현실도 답답하고, 실제 돈이 없으면 노후가 불안한 결론에 미치는 것도 답답하다. 그 누구도 그들의 노후가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상상이나 했을까? 문제는 이런 현실은 아는데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 아닐까?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그들의 외침이 오늘 더 아프게 다가온다.
|
|
지금 현재로선 노후의 삶이 어떠할 지 도무지 그려지지 않는다. 돈에 쪼들려서 죽지도 못하고 겨우겨우 살아갈 수 있을 지, 돌보아 줄 사람 하나 변변하게 있을 지, 대체 몇 살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 등 이런 것은 모두 부정적인 생각이다. 우리들은 행복하게 살고 싶고 나이들어서도 그렇게 살고 싶은 그 생각은 변함 없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70대, 80대의 생활, 심지어 90세, 100세의 삶이 어떠리라는 예상은 전혀 할 수가 없다. 아직도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당겨 걱정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불확실성.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이 시대의 생활에서 앞에 놓여있는 가까운 삶에 급급한 나머지 먼 훗 날로 여겨지는 노후의 삶을 예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어쩌면 가장 행복해야만 하고 가장 편안해야 할 시기를 대비하기는 커녕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어느 날 갑자기 문득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일본 NHK 에서 노령자들을 대상으로 살펴 본 그들의 비참한 삶을 통해서 미리 보게 되는 노후의 모습은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가장 놀랍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 온 사람들의 노후였다. 우리들의 대부분은 특별한 것 없이 그저 성실하게 일하는 현재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서 결국은 수 십 년 후의 우리 모습이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연금을 받으면서도 조금씩 궁지에 몰리다가 결국은 바닥에 까지 떨어지는 생활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가장 큰 역할이 바로 건강 상태이다. 병원에 다니면서 혹은 입원하면서 생활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국가의 보조를 받아야 할 상황이면서도 장례비로 남겨 둔 은행 예금 때문에 국가의 도움도 얻지 못한다. 이것 말고도 국가가 돌보아 주는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때로는 집이 있어서, 가지고 있는 예금이 바닥 나면 불안해 지므로 꼭 쥐고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노인들, 국가에 신세지고 싶지 않다, 가난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등등 의존하는 돈과 의지할 만한 사람이 부재하는 현실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에 국가 돌봄 서비스와 생활 보호 시스템의 조정을 재고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게다가 연금으로만 생활하는 사람이 늘어남으로써 생기는 국가적인 부담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여럿 눈에 띈다. 이것은 일본 사회를 통해서 본 노후 생활이라고 넘겨 갈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다가 올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해 보자는 깊은 의도도 함께 읽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누구나 늙는 삶을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다져 보는 계기로 이 책을 살펴보면 좋겠다.
|
|
사람들은 대화도중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는 꼭 일본을 따라 간단 말이야" 우리보다 두배가 넘는 인구를 갖고 있고, 경제력이 다섯배나 큰 일본을 우리는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수출 품목도 일본을 따라가다가, 일본을 추월하는 품목들이 나타나는가 하면, 심지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유사한 경제 현상이 일어나 우리를 당혹케 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현상도 예외는 아니어서, 고독사라든가, 묻지마 범죄도 일본에서 이미 십수년전에 일어났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노후파산'은 일본 NHK가 다큐멘터리로 방영했던 것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읽는 내내 등골이 오싹했던 것은 '노후문제'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10년후 우리 사회를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50대 60대보다 20대 30대 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의 노후는 어떨것인가... 지금부터 노후를 차근차근 대비해야 한다고 이책은 주장하고 있다. |
|
누구나 노후를 준비한다. 그러나 누구나 행복한 노후를 맞이하진 못한다. 이제는 노후도 하나의 재테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 예전에는 노년의 삶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자식들이 바로 원만한 노후 생활의 든든한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 또한 그러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시대가 급변했다. 노후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달라졌다. 노후란 오롯이 나이 들어가는 나의 문제일 뿐 자식도 그 누구의 문제도 아니게 되었다.
서른 중반을 넘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후를 염두에 두고 연금, 보험, 저축 등을 하며 온갖 계획들을 세우게 된다. 그런 일련의 계획들을 세워 나가는 중에도 여전히 의문이 든다. 과연 내가 노후 준비를 잘 하고 있는 걸까. 이것으로 나의 노후는 안전한 걸까. 아직은 젊고 일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게 바로 미래다. 그렇기 때문에 속속 일어나는 노후에 대한 불안은 점점 더 가중된다.
아니나 다를까 이러한 불안은 이미 현실화되어 문제시되고 있는 듯하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을 집중 취재하여 보도되어 화제가 되었다.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의 주제는 바로 '노후 파산'이다. 그야말로 노후에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는 노인들의 충격적인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한다. 방송 직후 전 일본 열도는 마치 진도 9.5에 해당하는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온 국민을 뒤흔들었다.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곧 노후 파산에 닥치게 될지도 모를 잠정적 세대인 중장년층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그 다큐멘터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노인들의 삶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노후 파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 해결방안도 모색해본다.
현재 일본의 노후 파산으로 이어지는 노인 문제는 결코 강 건너 불 보듯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까운 미래 대한민국에서도 반드시 불거진 뜨거운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다. 곧이어 닥치게 될 나와 당신의 문제이다. 20대 초반부터 50대 중 후반까지 열심히 일해온 우리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 책에 실린 노인들의 삶이 결코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 이유는 그들 또한 젊은 시절 우리와 똑같이 하루하루를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왔고 노후를 준비했던 이들이다. 그들 또한 자신의 노후가 파산에 직면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 했다. 자신의 노후는 결코 그럴 일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이유다. 노후 파산의 무서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도 노후 파산에 처할 수 있다.
책에서 소개된 노후 파산에 직면한 노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노후 파산에 대한 대비책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의 일본보다 연금 수령액이 조금 많다고 할 수 있으나 결코 안정적인 수령액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연금 수령 자체만으로는 안정된 노후를 누릴 수 없음이 현재 일본의 노인들이 겪는 문제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가령 연금 120만 원을 매달 수령하는 한 노인의 경우 한 달 지출 내역은 이렇다. 집세 35만 원, 생활비 55만 원, 의료비 15만 원, 공공요금 10만 원, 세금 및 보험료 5만 원으로 총 120만 원이 지출되고 잔액은 그야말로 0원이다. 이 노인의 경우 의료비를 충당하기 위해 하루 종일 식사를 거르며 물을 마실 때도 있다. 저축해놓은 예금이 있지 않고서는 연금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형편이다. 또한, 몸이 불편한 관계로 제대로 움직일 수 없기에 소일거리를 찾을 수도 없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1위라고 한다. 달라 말하면 노후 파산의 문제는 일본보다 한국이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현실적으로 노인들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하다. NHK 다큐멘터리 제작팀에서 인터뷰한 노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빨리 죽고 싶을 뿐이다." 지금의 우리처럼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이들이 현재 겪고 있는 노후 파산의 문제는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삶의 권리와도 멀지 않아 보인다.
사회적으로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사회보장제도의 이념이다. 그러나 그 이념에 부합되도록 실현되고 있는지는 사실 의문이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연금제도, 생활보호 대상 제도, 돌보미 서비스 등 노후를 위해 마련된 정책 또는 제도들이 유명무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현재 일본의 사례에 견주어 얼마만큼 정책적으로 확립되어 있을까.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 노후 파산과 같은 문제에 직면에 있으며 그 대책 마련이 시급할 것으로 여겨진다. 날이 갈수록 고령화는 점점 그 속도를 빨리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대책은 미흡하기만 하다. 노후 파산의 문제는 결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될 사안이 아니며 범국민적으로 지속적인 정책 수립과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이 책이 그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는데 일말의 도움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
|
장수의 악몽, 노후파산의 끔찍한 이야기
그중 가장 섬뜩한 용어가 [노후파산]이 아닐까? 노후파산이란 의식주 모든 면에서 자립능력을 상실한 노인의 비참한 삶을 뜻한다.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에 대한 복지와 사회문제는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노후 정책은 앞으로 우리가 더 주목하고 중요시여겨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연금제도가 도입되면서 우리는 막연하게 우리의 노후가 연금이라는 것으로 부족하지 않게 살것이라는 안일한 희망을 가졌었던것 같다.
그런데 막상 뚜겅을 열어보니 우리가 기대한 것과는 많이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노후파산은 열심히 살지 않은 몇 몇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평범한 삶을 산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었고, 독거노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번듯한 가족도 있었고, 연금에 가입되지 않은 자들이 아닌 착실하게 연금을 부었던 사람들이었고, 직장이 없는 실업자들이 아니고 직장을 열심히 다녔던 사람들이었다.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부제는 '장수의 악몽'이다. 100세 시대가 되면 인간의 삶이 윤택해지고 행복해질줄만 알았던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책이 바로 [노후파산]이다.
이 책은 NHK 스페셜 [치매 환자 800만 명 시대,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후속편으로 제작이 되었다. 2014년 9월 28일 [노인표류 사회-노후파산의 현실]을 바탕으로 방송 시간상 소개하지 못한 고령자의 현실까지 포함해 새롭게 쓴 로포르타주라고 한다.
노후파산은 현실이다. 이 책은 그 현실에 대해 낱낱히 파헤치고 있어 읽는 내내 너무 불편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1장부터 5장까지 왜 노후파산이 되는지, 이 시대 노후의 현실을 파악하고, 도시와는 또 다른 모습의 지방의 노후파산의 모습 등을 자세하게 들려주고 있다.
어느 누구도 '이런 노후가 찾아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고백을 할 것이다.
연금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을 정도이고, 한평생 필사적으로 일해왔지만 보답받지 못하는 노후를 맞이한 비참한 인생들은 너무나 많았다.
이러한 일들이 이웃나라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상당히 암울했다. 한때는 최고의 강대국까지 갔었던 일본이 이런 비참한 모습을 보이리라곤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있다. 외면하고 싶지만 직시해야 하는 현실을 똑바로 알고 일본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 외로운 고령자들을 다시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후문제, 아니 나의 노후는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며 나자신도 자유롭지 못함을 느끼기에 그 현장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 들게 된다. 그리고 이 질문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당신의 노후는 안전합니까?" |
|
장수의 악몽 노후파산
NHK스페셜 제작팀 지음
-다산북스-
![]()
이 책은 일본의 상황을 인터뷰하면서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사실적으로 풀어놓은 책입니다.
![]() ![]()
총 5장의 차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읽어본 느낌은 5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결론은 하나라는 느낌이 납니다.
![]()
책에 들어가기 앞선 페이지입니다.
처음에 볼때는 별로 느끼지 못한 페이지인데 다 읽고나니
이 페이지의 사람의 그림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노후파산이라는 말은 원래 사전에 있는 말은 아니랍니다. 워낙
고령자들에게 파산이 많이 일어나다보니 이런 말을 일본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해요.
책의 사실들은 모두 일본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우리나라의 현실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고령자가 되어 수입이 없어지고 가지고 있는 예금과 국민연금으로만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 허나 별 수단없이 적은 연금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
가족도 사회도 나라도 구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것이 맞는 말같아요.
돈이 없어서 먹지도 못하고 병원도 못가고 결국 사회에서 고입되는 고령인구들.
언제 죽나,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 장수가 악몽이 되어가는 노인들입니다.
우리나라도 파지를 줍는 노인인구가 많고 국민연금이 일본보다 적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노인들을 인터뷰한다면 훨씬 더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범한 직장인들도 결국 파산이 되어 노후파산이라는 사실에 직면하고
40-50대는 노후파산 예비군이 되어 결국 노후파산이라는 현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령자는 늘어나고 일하는 젊은 세대는 줄어드는 우리나라도
결국 직면하게 될 노후파산.
나라고 그렇게 되지 않으란 법이 없다는 사실에 슬퍼집니다.
*해당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