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 두목이었다. 한때 그는 세계에서 6번째로 부자였고, 한때 그의 개인 경호원만 2천명에 달했다. 이 정도라면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이 된다. 마약 조직이 문제가 되는 건 단지 마약이 몸에 좋지 않고, 그래서 불법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마약밀매에 따르는 엄청난 이권이 조직폭력배의 세력을 키우고, 그것이 사회 전체에 스며들어 테러와 폭력이 일상화되고 사회 구성원들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는데 있다. 이 작품은 그 폭력과 광기의 시대에 직접적인 아무 연관도 없는 피해자인, 일상이 불안이 되어 버린 한 남자가 트라우마를 끌어 안고 젊은 날의 그 폭력의 기억을 환기하면서 시작된다. 운이 좋아 젊은 나이에 교수로 임용된 얌마라는 좋은 학점은 침대에서 먼저 결정하는 나름 대로의 자신의 질서 속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간다. 당구장은 그의 일상을 결정하는 한 공간인데, 여기서 20년간 수감되었다가 나온지 얼마 안되는 라베르데를 만난다. 그리고 소설은 네 가지 이야기가 함께 엮여져 있다. 얌마라가 기억하는 라베르데와 그의 충격적 죽음, 그의 죽음에 동반되어 자신이 겪은 총격 피해와 그로 인한 트라우마 속에서 가정이 해체되어 가는 과정, 라베르데의 죽음 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찾기 위해 그의 딸 마야를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과정, 그리고 마야를 통해 듣는 마야의 엄마 일레인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대학 때 평화봉사단으로 콜롬비아에 와서 라베르데를 만난 일레인의 이야기다. 일레인의 시점으로 라베르데가 설명되고, 또한 미국인의 시점으로 콜롬비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태생이 콜롬비아인인 화자 얌마라의 시점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을 풍부하게 담아낸다. 아이러닉하게도 평화봉사단으로 콜롬비아에 와서 일레인이 하던 일은 마을에 하수도를 놓고, 학교를 세우고, 하는 여러가지 일들도 있지만, 마을의 소득을 향상시키기 위해 코카인 재배 기술을 알려주는 것인 듯하다. 한 시대가 지나고 또다른 시대가 오면 지나간 시대에 합법적이었던 일은 불법이 되고, 지나간 시대에 선의로 시작된 일이 또다른 시대에 악의와 탐욕의 핵이 된다. 파일러트였던 할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공중 비행쇼에 갔다가 비행기가 추락하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고, 그 아들은 비행기 폭파로 인한 화상을 얼굴에 심고 마음에 박힌채로 살아가지만, 손자는 다시 비행기 조정석에 앉는다. 그리고 이 몰락한 귀족은 평화봉사단 실습중인 일레인의 하숙집이 된다. 도발적인 라베르데의 매력에 빠진 일레인은 라베르데와 결혼 후, 남편 라베르데가 갑작스레 수출이 중단된 마약 밀매 운송책이 된 사실을 알게 된다. 궁궐 같은 집을 지어놓고, 이쁜 딸을 낳아 놓고, 이번 한 번만 하면 20대에 평생을 먹고 살 부자가 될거라며 떠난 라베르데는 준비된 계략에 빠진 것처럼 이륙과 동시에 체포되고, 도망치다 발사한 총이 경찰에 맞아 20년형을 받게 된다. 그렇게 하여 일레인은 혼자서 딸을 키우게 되었고, 아버지는 죽은 줄로 알고 크게 된다. "특별한 시대였어요. 그렇잖아요? 폭탄이 누구에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대. 와야 할 사람이 오지 않으면 다들 걱정을 하고, 자신이 잘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어디에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가 있는지 알아야 하고, 공중전화가 없으면 전화를 빌려 쓸 수 있는 집을 알아내서 그 집 문을 두드려야만 하고. 우리는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이 죽을 가능성에 매달리고,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 가족들 사이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그들을 안심시키는 일에 매 달리면서 살아야 했죠. 우리는 각자 집안에서 지냈죠. 기억해요? 공공 장소는 피했어요.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집, 친분이 깊지 않은 사람의 집" 313 이 부분을 읽고 거울처럼 우리 사회의 단면을 떠올렸다. 늦은 한밤 여성이 혼자서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귀가하는 것은 아직 위험하다. 우리는 귀가길을 조심하라 이르고, 서로에게 전화를 걸어 잘 도착했음을 확인한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위험에 노출된 것은 아니지만 특정 성을 노리는 잠재적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현재의 성적 혐오와 분열.. 조심하지 않아도 안전한 사회로 가는 길은 요원해 보이기만 하다. "7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 중 몇이나, 마야나 나같은 사람 중 몇이나, 평화롭거나 보호받거나 적어도 불안정하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는지, 그들 가운데 몇이나 자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가 - 전쟁을 선포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공식적인 전쟁이라는 것이 있다면 적어도 그런 전쟁이라도 선포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공포와 총소리와 폭탄 소리에 파묻히는 사이에 그 도시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두려움에 젖어 어른이 되었는지 - 내 도시에서 몇 사람이 어찌 되었든 자신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느끼면서 도시를 떠났는지, 그리고 몇 사람이 자신들이 구원받을 때 화염에 휩싸인 도시에서 도피 했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뭔가를 배반하고 있다고 느끼고, 난파선의 쥐떼처럼 변하고 있다고 느꼈는지 알고 싶다. '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어느 교만한 도시가 /어느 날 밤 내내 불타는 모습을 보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얘기 해야겠노라/ 나는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서 그 도시가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았노라/ 어느 말발굽 아래로 장미꽃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아우렐리오 아우투로의 시다. 1929 년에 이 시를 발표했다. 그는 잘 나중에 자신의 꿈의 도시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방법이 없었고, 마치 쇳물이 자신에게 할당된 금영 속에 들어가서 쇠가 금형에 맞춰지듯 보고타가 어떻게 그 시구안에 들어가서 시구에 맞춰지게 되는지 알지 못했다. 도시는 불타는 밀림 속에서 넓적다리 처럼 타고 있었다 그리고 둥근 지붕이 무너지고 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넓은 거울 위로 무너지는 것처럼 사랑하는 목소리들 위로. 순수한 광휘가 질러대는 만 개의 날카로운 비명소리" 347 ~348 |
|
콜롬비아 보고타. 얌마라는 괜찮은 집안에서 나고 자라 이십대 중반에 벌써 모교 법학과에서 강의중이다. 말쑥한 외모와 안정된 직장. 다가오는 유혹을 거절하지도 않고, 취미들로 소일하며 시간을 보낸다. 당구장에서 만난 라베르데라는 남성은 얌마라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온다. 적당히 선을 긋지만 어느 순간 그이의 집을 방문하는 등 어울린다. 한동안 만나지 못한 라베르데는 얌마라에게 카세트를 들을 곳을 알려달라 부탁한다. 함께 간 문화센터, 카세트를 들으며 펑펑 우는 라베르데를 짐짓 외면하던 얌마라. 사라진 남자를 찾아 발을 내딛었을 때, 총소리가 들린다. 리카르도가 쓰러진다. 얌마라도 쓰러진다. 얌마라는 회복 중이다. 의사는 말한다. 기능장애는 전부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공포는 보고타 사람들의 주요 질병이니 특별한 상황이 아닙니다. 결국 지나갈 겁니다. 얌마라는 거기엔 관심이 없다. 그저 자고 싶다. 그를 둘러싼 소음들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일상적인 소리, 어떤 특정한 소리들은 불안과 공포를 의미했다. 이유 없이 울음이 터졌다. 자신이 병들어 있다는 생각, 이어지는 수치심은 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점점 내면으로 침잠하는 얌마라의 사회생활, 가정생활은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다. 떨쳐낼 수 없는 PTSD를 안겨준 사건―그는 라베르데가 살해된 사건, 라베르데라는 남성에 대한―조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전화를 받는다. 라베르데의 딸, 마야다. 평화봉사단 활동을 위해 보고타에 온 일레인 프리츠는 하숙집 아들인 리카르도 라베르데와 사랑에 빠진다. 리카르도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비행기 조종사가 된다. 비행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눈을 반짝이던 청년은 이제 마약을 운반하기 시작한다. 몰락한 집안과 아내와 아기를 부양하기 위해서다. 탕. 탕. 리카르도가 왜 집에 오지 않는지 알려주러 온 남자는 권총을 꺼내 하늘을 쏘았다. 두 발이었다. 일레인과 어린 마야는 살아남았다. 남편은 오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는 십 이년간 숨죽여 살았다. 출소한 남편을 만나기 위해 일레인은 비행기를 탄다. 그러나 보고타로 향하던 비행기는 착륙하지 못했다. 라베르데가 듣던 카세트는 추락한 비행기 블랙박스에 녹음된 기록이었다. 간헐적인 비명소리 또는 비명소리와 유사한 소리가 들린다. 내가 포착할 수 없는 소음도 들리는데, 그게 무슨 소음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사람 소리가 아닌 소음 또는 바로 그 사람이 내는 소음, 소멸되는 생명들의 소음이지만 깨지는 물질의 소음이기도 하다. 높은 곳에서 물건들이 떨어질 때 나는 소음, 중단되었기 때문에 영원한 소음, 결코 끝나지 않을 소음, 그날 오후부터 내 머리에 계속해서 울리고 있으며 사라지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는 소음, 내 기억에 항상 남아 있는 소음, 횃대에 걸린 수건처럼 내 기억에 걸려 있는 소음이다. 그 소음은 965편의 조종실에서 들리는 마지막 소음이다. 소음이 들리고, 그러고는 녹음이 중단된다. (110쪽 ~111쪽) 중단되었기 때문에 영원하고, 결코 끝나지 않을 소음. 얌마라가 겪는 PTSD, 아니 보고타의 얌마라 세대에게 눌러 붙은 그 진득한 공포의 잔재는 마야가 건네 준 편지 한 줄로도 형상화할 수 있는 것이었다. 보고타가 그렇게 될 거라고 내게 알려준 사람은 없었어요. (184쪽) 콜롬비아의 마약 카르텔, 그 왕국이 심은 공포의 정치. 특별한 시대라 불리는 시기. 미래를 위해 마리화나를 재배하던, 많은 사람들이 순진하던 시기. 폭탄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라 와야 할 사람이 오지 않으면 걱정을 하는, 마치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듯 두려워해야 했던 시기. 자신이 안전하다고 알리기 위해 공중전화의 위치를 확인하고, 어느 집에서 전화를 빌려 쓸 수 있는지 알아야 하고, 공공장소엔 나가질 않던 그 시기. “우리 그 때 유행하던 그 노래 있잖아.”가 아니라 “라라 보니야가 살해당했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라고 묻는 시기. 얌마라와 마야 세대는 그 무차별적인 폭력에 노출된 채 살아왔다. 얌마라는 소망한다. 자신의 오염된 세계가 딸 레티시아에게 닿지 않기를, 그리고 자신의 가정을 보호할 수 있기를 말이다……. 개인은 시대와 환경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일견 평범해 보이던 일상이 실은 공포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를 구성하는 현재가 실은 외면하고픈 과거를 껴안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두려움으로 가득 찬 삶은 어떤 의미일까.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의 공포는 특별하지 않다고 진단받는 것은? 공포와 고통을 떨쳐내지 못해 조롱당하는 것은? 우리는 과연 시대와 환경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존재일까? 나는 이 소설에서 우리 사회를 본다. 우리를 흔들어 놓은 사건들을 본다. 경중이 너무 무거워 외면하고팠던 진실을 본다. 내 일이 아니라며 결국 고개돌렸던 일들을 본다. 사소한 일들로 치부되었던 일들을 상기한다. 모든 것은 삶이었다. 결국 삶이었다. 떨쳐낼 수 없었던 내가 살아가는, 나를 구성하는 삶이 펼쳐진 배경이었다. 동시에 나는, 우리가 현재 순간에 대한 최악의 심판관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사실 현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은 기억인데, 내가 방금 전에 쓴 이 문장도 이제는 기억이 되고, 독자 여러분이 방금 전에 읽은 이 단어도 기억이 되기 때문이다. (27쪽) |
|
인간이 가장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언제일까. 무기력함을 느낄 때 동반되는 감정이 답답함이라고 가정했을 때 답답함을 유발하는 인자는 내 힘과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사건 또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가령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경험하는 무력감 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느끼는 막막함 같은 감정들 말이다.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의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문학동네)』은 무척 읽고 싶었던 소설이다. 그런데 나는 책을 읽는 도중 덮었다 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무력감과 막막함이 지배적인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 막막해서 외로운 안토니오를 대면하기가 힘들었고 두려움의 근원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해서 고독한 그가 안쓰럽기도 했다. 사십여 페이지를 읽은 후에야 주인공 이름을 알려주는 소설, 아니 등장인물 중 특별한 한 사람을 주인공이라고 지칭할 수 없는 소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 이미 언급하였지만 - 무력감과 막막함이 지배한다. 마약과 폭력, 광기와 야만이 지배했던 시절의 콜롬비아가 시대적 배경이기에 그러하다. 소설 속에서 그 시절을 살아낸 인물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질서와 갈등에 휘말려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아니, 정작 스스로는 무질서와 갈등에 휘말려서 추락 중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이보다 더 비극적일 순 없다. ‘안토니오’는 ‘리카르도 라베르데’와 거리를 거닐다가 총상을 입는다. 리카르도는 그 사건으로 세상을 떠나고 안토니오는 살아나지만 육체적으로는 다리가 불편해졌고 정신적으로는 회복할 수 없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아내 아우라와 딸 레티시아를 사랑하지만 가정에서도 그의 삶은 안정적이지 못하다. 주위에서 안토니오의 다리는 정상적인 속도로 회복하는 중이라고 얘기하고, 보고타는 불안과 공포가 사라진 도시라고 말하지만 그는 여전히 총상을 입던 그 시간, 그 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던 중 사고가 일어난 현장 주변에 얼씬도 않던 안토니오가 2년 반 만에 자신이 쓰러졌던 거리와 리카르도의 집을 방문한다. 자신의 사고가 리카르도 탓이라고 생각한 안토니오는 리카르도와 그의 아내 ‘엘레나 프리츠’의 삶을 되짚어나가기 위해 두 사람의 딸 ‘마야 프리츠’를 만나서 두려움을 회복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소리는 듣지 못하고 결국 혼자가 된다. 리뷰를 쓰며 생각해보니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이 그토록 불안하고 불편했던 이유는 우리도 경험했던 혼란스러웠던 때 젊은 청춘들 그리고 평범한 소시민이 이유 없이 쓰러져갔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걸까? 거북하고 괴로웠던 책 읽기는 끝났고 소설 제목을 ‘추락하는 것들은 소리가 없다’로 바꾸면 어떨까하는 생각과 경계해야 할 대상은 두려움을 느꼈지만 이유가 없는 두려움(p.49)이라는 것만 남았다.
|
|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뒤를 이을 떠오르는 신진작가,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이름도 뭔가 비슷)의 대표작이 국내 출간됐다. 이야기는 동물원을 탈출한 하마가 2009년에 사살되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마는 콜롬비아의 마약왕으로 불리며 한때는 전세계 코카인 시장의 80%를 점유하던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개인소유 동물원에 있던 세 마리 중 한놈으로, 뉴스를 통해 주인공은 20년 전인 1996년에 겪은 사건을 회상하게 된다. 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안토니오는 자주 들르던 당구장에서 아버지뻘되는 리카르도 라베르데를 알게 되는데, 비행기 조종사 출신이었으나 20년간 교도소에 있었다는 소문을 듣고 호기심을 갖는다. 어느 날 라베르데는 녹음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곳을 다급히 찾고, 근처 문화센터에서 카세트를 빌려 테이프를 듣고 나오는 길에 두 사람은 괴한에게 총격을 당한다. 라베르데는 현장에서 사망하고 안토니오도 총상을 입는다. 이후 실체없는 공포에 시달리며 아내와의 관계에도 어려움을 겪던 안토니오는 라베르데의 딸인 마야에게 연락을 받고, 그와 함께 라베르데와 그의 아내 엘레나의 흩어진 기억과 흔적의 조각을 맞추며 그들의 삶을 복기한다. 소설은 80-90년대 콜롬비아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되짚으며, 사회의 한 세대 구성원들에게 각인된 공포에 대해 이야기한다.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고통스러워하던 안토니오에게 의사는 "공포가 그 세대 사람들의 주요 질병"이라 말한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90년대는 마약 카르텔과 정부와의 전쟁, 조직간의 폭력, 그로 인해 무작위로 발생하던 폭탄테러, 곧 생존의 위협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마약밀매를 위해 납치, 살인도 서슴지 않고 정부기관, 언론사를 테러하며, 마약조직 소탕작전을 펼치려던 대통령 후보 셋을 암살하고,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170여명이 타고 있는 비행기를 폭파하는 등 경쟁 카르텔의 조직원, 정부관료,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400여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파렴치한 마약상이 버젓이 활동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콜롬비아인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던 신변안전에 대한 공포 외에도 소설 속 등장인물 각자를 옭아매던 고통도 있었다. 공군 비행쇼에서 추락사고를 목격하고 화상을 입은 사건을 계기로 비행기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라베르데의 아버지, 거리에서 총상을 입은 후 광장공포증과 폐소공포증에 동시에 시달리는 안토니오, 아빠를 따라 불을 켜고 자려는 어린딸 레티시아를 보고 아이에게 공포가 전염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아내 아우라, 엄마 엘레나가 탄 비행기가 추락할 당시 마지막 소음이 녹음된 블랙박스 테이프를 반복해 들으며 깊은 무력감을 느끼는 마야. 추락하는 비행기에서의 소음을 연상시키는 제목과 흡입력 있는 구성, 한 시대의 구성원들에게 각인된 공포의 보편적 특성과 개인의 삶에 깊게 침투한 두려움의 특수한 면 모두 잘 드러낸 작품이다. 더불어 과연 우리 시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공포는 무엇일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시간이 흘러 각자의 삶을 반추해볼 때, 우리가 사는 지금 2010년대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가. |
|
제3세계 문학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중남미 문학은 많이 접하지를 못했다.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모두 20세기 남미를 빛낸 문학의 거장이다.그런데 20세기 중남미는 마약을 둘러싼 불안한 정정(政情)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되면서 사회를 위협하는 광기는 남미의 대중들을 혼란의 도가니로 빠뜨리고 말았다.그래서인지 중남미 문학의 그림자들도 밝은 영역보다는 음산하고 어두운 사회의 뒷모습을 잘 투영하고 있다.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의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지난 세기 콜롬비아 사회에 만연한 불안한 정정에 대한 주인공의 기억을 되살려 가는 소리없는 아우성이고 증언이라고 생각한다.주인공의 내면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동물원에서 하마가 도망치는 장면을 추적하는 비극적 분위기를 보면서 잠시 잊혀진 기억을 끄집어 내게 했던 단초였다.법학 교수이며 주인공인 안토니오는 자신보다 갑절의 연상인 파일럿 리카르도 라베르데와 함께 했던 짧은 시간을 끄집어 낸다.만남과 관계는 짧았지만 결과는 가슴을 후려치는 트라우마 이상이었다.그것은 리카르도 라베르데가 괴한에게 살해 당하고 주인공은 총탄의 상흔의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상황이다.
개개인에게 좋지 않은 기억은 끄집어 내고 싶지 않다.잊으려 애를 쓰지만 결코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이 뇌 신경의 그물망에 있다.안토니오 역시 마약 운반자였던 라베르데와의 아픈 기억을 씻으려 애를 썼겠지만 쉽게 잊히지 못하고 그의 삶을 깊은 나락으로 빠뜨리고 말았던 것이다.안토니오는 리베르데의 딸 마야를 만나게 되고,그녀가 건넨 녹음테이프를 들으면서 리베르데의 부인 일레인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남편 리베르데를 만나러 비행기 속에서의 팽팽했던 긴장과 공포의 기내 분위기를 소음이라는 말로 콜롬비아 불안한 정정을 명료하게 대변하고 있다.
간헐적인 비명소리 또는 비명소리와 유사한 소리가 들린다.내가 포착할 수 없는 소음도 들리는데,그게 무슨 소음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사람 소리가 아닌 소음 또는 바로 그 사람이 내는 소음,소멸되는 생명들의 소음이지만 깨지는 물질의 소음이기도 하다.높은 곳에서 물건들이 떨어질 때 나는 소음,중단되었기 때문에 영원한 소음,결코 끝나지 않을 소음,그날 오후부터 내 머리에 계속해서 울리고 있으며 사라지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는 소음,내 기억에 항상 남아 있는 소음,횃대에 걸린 수건처럼 내 기억에 걸려 있는 소음이다. p110∼111
잊은 듯 기억에도 없는 듯한 것들이 어떠한 연유로 다시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개인의 삶과 역사는 심계 항진증과 같이 쉼없이 두근두근 거린다.20세기 마약과 관련하여 마약 카르텔을 형성하고 사회를 불안케 했던 콜롬비아는 주인공 안토니오에게 죽을 때까지 잊히지 어려운 외상후 스트레스를 안겨 주었다.또한 안토니에겐 사랑하는 아내 아우라와 딸 레티시아가 있고,리베르데의 딸 마야와의 만남과 대화를 이어가면서 리베르데의 아픈 삶의 이력을 인지하게 되었던 셈이다.마약 운반자이며 파일럿이었던 리베르데는 본연의 직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잘못된 길을 걸어 갔던 것이 결국 그의 집안을 몰락하게 만들었던 것이다.결국 이번 작품은 어느 사회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평범할 수도 있는 이야기이지만,한 개인이 불안한 사회 구조 안에서 겪어야 했던 몸서리치는 기억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과 관련하여 시종일관 '세월호 침몰'을 연상하면서 읽어 갔다.희생 당한 개인 및 남은 자들의 깊고 쓰라린 아픔의 기억이 다시 몽실몽실 피어 오르고 있었다.한국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겪지는 않았어도 아픔과 상처는 모두 안고 있다.반면 정권 유지를 위한 일부 철면피로 일관하는 세력들은 불안하고 광기 서린 소음을 만들어 낸 자들에 지나지 않는다.콜롬비아 마약 거래의 카르텔과 광기,폭력과 세월호 침몰의 아픈 기억은 공통점이라면 정권을 휘두르는 자들에 맞서 살아가는 민초들의 통절한 기억이 아우성으로 휘몰아치는 장면과 흡사하다. |
|
하지만 이 모든 질문은 아무 소용이 없다. 걷지 않은 길들에 관해 숙고하거나 추정하는 것보다 더 불행한 광증은 없고, 더 위험한 변덕은 없는 법이니까. (42)
읽는 내내 여러 소설들이 총알처럼 날아들었고, 한 단어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었을 법한 식상함이 찾아들라치면 결정적인 장면이 막아섰고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곧잘 과거를 덮고 미래를 생각할 것을 종용한다. 친밀한 사이이고 돈독한 관계라는 이유로 삼년이 다 되어 가는 일이니 그만 잊으라 한다. 그런데 그게 손쉽게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플 만큼 아팠고 고통 받았으니 과거와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갑자기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비에 젖지 않을 수 없고, 무너짐 가운데 위로 거슬러 오르기란 도리어 기운만 빠지고 우울함과 분노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제 그만이라는 종식은 내편에서 선언하는 것이지 바깥에서 안으로 스미는 말이 아니다. 밖으로 용암처럼 뿜어져 나와 서서히 휴화산이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소설을 읽으며 인간에 대해, 근원과 관계에 대해, 운명과 우연에 대해 파고들어야만 했다. 방향을 잃고 가라앉는 비행기처럼 이런 고민은 무언가 산뜻하게 매듭짓고 다시 시작할 개운함을 선사하지 않을뿐더러 한번 가슴속에 싹튼 공포와 두려움은 박멸되지 않는다. 순간의 모면과 고통 완화가 있을 뿐 상흔과 흉터를 남기고 불시에 화염이 되살아난다. 목표물을 향해 되돌아오는 부메랑 같다.
우리의 이 부자유스러움과 종속은 인간 탄생의 사슬에서 연유한다. 부모 없이 저절로 이 세상에 온 사람은 없다. 정도의 차이일 뿐 가족과 사회가 만든 성에 머무는 마법에 걸린 존재들이다. 누군가 부여한 숨결과 입김으로, 그들의 말을 먹고 자란다. 그렇다면 엄마가 만든 허구의 아버지를 부수고 진짜 아버지의 형상을 세워가는 마야의 행위는 예술창작과 유사하다. 임종 전 엄마로부터 걸러온 전화통화를 통해 마주한 아버지의 실체와 살아있음은 수명이 다 했다는 거짓말이 안겨주던 안온함을 일순간에 회수해간다.
이른 나이에 승승장구하던 주인공 안토니오는 소일거리로 찾은 당구장에서 만난 남자로 인해 몸뿐 아니라 삶이 추락한다. 이유도 모른 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총을 맞았으니 억울할 노릇이다. 대답 없는 물음만 해대던 그는 남자의 딸과 연락이 닿으면서 흩어져있던 직소 퍼즐을 맞춰간다. 더더욱 지독한 형벌은 그런 앎이 그의 삶을 인간답게 만들지도, 제자리를 찾도록 돕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저 겪어야 할 의무적인 과정이다.
어둠과 추위, 고독 속에서 안토니오는 다른 여자를 품는다. 그냥 여자가 아닌 이란성 쌍둥이처럼 같은 경험('동물원')과 시대를 겪은 사람과의 섞임을 통해 불분명한 과거를 거둬들인다. 하지만 자웅동체와 같은 합일은 일시적이며 그가 영구히 머물 집은 아니다. 비교적 안전하고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진짜 집이 필요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충분히 오래 산 사람은 모두 자신의 생애가, 자신의 결정이 조금 개입하거나 전혀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타 사안들에 의해, 타인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졌을 거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삶과 마주치게 될 그 기나긴 과정들은 지하의 수맥처럼, 판구조들의 신중한 이동처럼 늘 숨겨져 있고―때로는 삶이 필요로 하는 강한 추동력을 삶에 부여하기 위해, 때로는 우리의 가장 화려한 계획을 산산조각내버리기 위해―, 결국 지진이 일어나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우리가 배워온 ‘사고’, ‘우연’, 가끔은 ‘운명’이라는 단어 등을 사용한다.(289-290)
그의 사고 못지않게 아내 아우라와의 결혼도 우연적이다. 임신한 채 트렁크를 끌고 찾아온 어린 여자(이 부분에서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떠올렸다)를 그는 내칠 수 없다. 그가 가정생활에서 유일하게 애착을 갖는 상대가 딸인데 떠나버린 아내를 통해 어쩌면 그도 레어테스에게 '허구의 아버지'로 꾸며질지 모른다. 살아있으나 죽었다고 여겨야 살아질 사람. 이렇게 말하니 결말이 아우성이자 연쇄적인 무너짐으로 가득한 총체적 난국인 듯하다. 그는 아우라를 설득해 되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타나토스에 맞서는 에로스가 그에게 의미 있을까? 사랑이 소설을 이끄는 원동력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구원책이 되어주지 못한다. 비행사가 그토록 갱생시키고 보란듯이 세우고 싶어 했던 잃어버린 집을 주인공은 찾을 수 있을까? 그와 달리 가족을 안전하게 지키는 온전한 남자로 거듭날 수 있을지 미궁이다.
법학 교수의 미지근한 사랑과 결혼, 이별과 달리 비행사 부부는 격정적이고 돌파력 있는 낭만성을 응축한다. 비행사의 사랑이 낭만적이고 추진력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가 가정을 운영하는 방식까지 찬성할 순 없을 듯하다. 가족에게 안락함을 주겠다는 그의 야망과 열의가 불의와 타협하게 했으니 그는 시야가 좁고 미숙한 사내였던 게 분명하다. 돈과 집을 안겨주는 대신 아버지와 남편의 자리를 비웠고 결과적으로 결혼생활의 운과 행복을 미리 당겨 탕진해버린 도박사 꼴이 되었다. 하지만 눈앞에 돈의 물줄기가 떡하니 보이는데 돌아설 젊은 아버지가 몇이나 될까.
소설은 출신과 피부색을 초월한 비행사 부부의 사랑을 낭만적 비극으로 첨예화한다. 삼사년의 신혼의 단꿈으로 이십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선고는 감옥에 투옥된 사람만큼이나 잔인한 시간이다. 그녀는 남편의 부정 행각을 알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직감한 순간도 있었지만 캐물을 수 없었다. 샅샅이 알려들지 않은 것도 죄라면 죄일까. 외국인 자원봉사자와의 사랑과 결혼의 끝은 시대적 부패와 성공 열망의 거미줄에 걸려 사망하고 만다. 한 인간이 사랑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사기를 쳐야했던 시대상에 우리는 얼마나 같이 통탄하며 공명할 수 있을까.
이제 그 녹음은 라베르데가 그날 오후 부드러운 가죽소파에 앉아서 들은 것을 내가 들었다는 단순한 사실로 인해 예전에는 결여되어 있던 밀도를 지니게 되었다. 그 경험은 우리의 고통에 대한 재고 정리가 아니라 타자의 고통에 대해 우리가 배운 연민일 것이다. (112)
부패할대로 부패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알 수 없는 콜럼버스의 과거를 소설을 통해 살필 수 있었다. 소설의 진행과정에서 계속 퍼부어대던 비로 그의 죄는 사하여질 수 있을까. 깨끗이 정화된 도화지에 새 역사가 쓰일 수 있을까. 정말 역설적인 게 일레인이 보고타를 개선시키고자 타지에서 날아들었다면 그녀를 만나 리베르고는 부정행위를 일삼는다. 사실 그가 사업계획을 세우게 된 데에는 아내의 주변인(마이크; 그링고)이 개입되어있고 적지 않은 수의 자원봉사자가 불법 마약 사업에 연루되었다. 좋은 의미에서 시작된 일이 뒤틀려 악의 소굴로 변질된 것이다. 동전의 양면 같은 인간사와 인간이 저지르는 어긋난 실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가는 추락하는 소음 가운데 비로소 생성되는 새로운 출발과 기운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비록 비행기는 낙상하지만 인간의 삶은 위로 위로 위로 비상해 안전 궤도를 찾을 수 있다는 파랑새의 노래를 들려주려 했을까. 암울하고 어두운 역사지만 그래도 밝혀야 투명한 사회 건설이 가능하다고 믿고 재건을 위한 해체 작업을 시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흔이 되어 회고하는 지난날은 그가 살아남았다는 증거이자 그 자체로 삶의 혜안을 좀더 얻었다는 증언일 것이다.
어둠 속에서는 사물이 더 크거나 예사롭지 않게 보이고, 병이 더 파괴적으로, 불행의 출현이 더 가깝게, 미움이 더 강하게, 고독이 더 깊게 느껴지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 생각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 할지라도, 나는 방의 어둠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329-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