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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의 고전 -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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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끼전>에 드러나는 무염치,                        이진경 지음 『파격의 고전』에서 -   한 곳에 당도하니 금닭소리가 들리거늘 , 눈을 들어 바라보니, 백옥 현판(널판자, 널빤지)에 황금대자로 '남해 수궁 수정문'이라 뚜렷이 새겼거늘, 토끼가 보고 좋아라 한다.     "참말로 좋다, 좋아! 깊기는 깊다마는,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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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끼전에 드러나는 무염치,

                       이진경 지음 파격의 고전에서 -

 

  한 곳에 당도하니 금닭소리가 들리거늘

 

, 눈을 들어 바라보니, 백옥 현판(널판자, 널빤지)에 황금대자로 '남해 수궁 수정문'이라 뚜렷이 새겼거늘, 토끼가 보고 좋아라 한다.

 

   "참말로 좋다, 좋아! 깊기는 깊다마는, 들어와 보니 과연 별유천지로구나. 이러한 좋은 경치에 풍월 한 수 못해서야 훈련대장 하겠느냐?"

 

   산중유객이 도수궁하니, 사해풍광이 입안중이라.

     "좋다. 좋아. , 어서 들어가서 하관말직이라도 참석이나 좀 시켜주오." "글랑 그러하오." 땅을 동고롬하게 그려주며, "여기 가만히 앉어 계시다가, '토끼 잡어들여라." 허는 청령이 내리거든 부디 놀래지 마시오." 토끼 깜작 놀래, "아니, , , , 어떻게 허는 말이오?" ". , , 진세간 사람 사는 속세 같으면 '훈련대장 입시 들래라' 허는 그 분부이니, 부디 놀래지 마시오. 내 들어가 남여 가마 가져오리다." "그렇다니 시키는 대로 허오리다마는 법인즉 더럽소. 내가 훈련대장을 하면, , 이놈의 법은 내가 꼭 뜯어고칠라요." ", 그는 처분대로 허오." 별주부 영덕전 너른 뜰에 공손히 복지하야, "진세에 출세허였던 별주부 현신이오!" 용왕이 반겨하사, "수로 만리를 무사히 왕래했으며, 토끼는 어찌 되었는고?" "토끼는 산 채로 잡아 문밖에 대령하였나이다." "오냐, , 토끼 바삐 잡아들여라!"

 

   좌우 나졸에 별군직과 수많은 도루묵, 금군 모조리 숭어, 순영수 영을 듣고, 청사 홍사 오랏줄을 허리 아래 비스듬히 차고, 와르르르르르 내달으며 토끼를 에워쌀 제, 진시왕 만리장성 쌓듯, 산양 싸움에 마초 싸듯 첩첩이 둘러싸고, 토끼 들입다 잡는 거동 영문 군사 도적 잡듯, 토끼 두 귀를 꽉 잡고, "이놈 네가 토끼냐?" 토끼 기가 맥혀 벌렁벌렁 떨며, "아이고, 내 토끼 아니오!" "그러엄, 이놈 무엇이냐?" ", 개요!" "개 같으면은 더욱 좋다. 삼복달음에 너를 잡아 약개장도 좋거니와, 네 간을 내야 오계탕 달여 먹고, 내 껍질 벗겨내야 개잘량 무어서 깔거드면, 어혈 내종 혈담에는 만병회춘의 명약이라. 이 강아지를 몰아가자!" "아이고, 내가 개도 아니고 송아지요!" "소 같으면 더욱 좋다. 도탄(塗炭)에 나를 잡아 두피, 살찐 다리, (소 밥통의 고기), 횟간, 처녑, 콩팥 후박없이(공평하게) 노놔 먹고, 네 뱃속에 든 우황은 값 중한 약이 되고, 네 뿔 빼어서 활도 매고, 네 가죽 벗겨내야 신도 짓고, 북도 매고, 똥 오줌은 거름하니 버릴 것이 없느니라. 이 송아지를 몰아가자!" "아이고, 내가 소도 아니고 망아지요!" "말 같으면은 더욱 좋다. 선간목후간족이라, 요단항장천리마로다. 연인(燕人)은 오백금으로 죽은 뼈도 사갔으니, 너를 산 채 몰아다 대왕전에 바쳤으면 천금상을 아니주랴? 이 망아지를 몰아가자! 들거라, !" 토끼 하릴없이 대랑대랑 매어달려, "어따, 이놈아, 별주부야!" "왜 야?" "지금 내 탄 게 무엇이냐?" ", 그게 우리 수궁 가마다." "아이고, 이 제기붙을 놈의 가마를 두 번만 타거드면 옹두리뼈도 안 남겄다." 영덕전 너른 뜰에 동댕이쳐, "토끼 잡아들였소!"

 

   토끼 잽혀 들어가 좌우를 살펴보니, 강한지장과 천택지군이며 무수한 어병지졸이 좌우로 옹위허였거늘, 저양이 촉번에 진퇴유곡이요, 용궁지하에필사당토라. 눈만 깜작깜작허고 앉았을 적에, 용왕이 분부하시되, "네 토끼 들어라

 

   토끼가 용왕과 용궁 대신들을 속여 목숨을 구하고 보니 복통이 터질 만큼 별주부가 괘심했다.

   그래서 용왕더러 "음허화동으로 난 병에 원기를 회복하기는 왕배탕이 제일 좋다 하오니 , 왕배는 곧 자라라. 오래 묵은 자라를 구하여 쓰면 기운이 자연 회복될 것이요, 그 다음에 소토(小兎)의 간을 쓰면 병세 며칠 안으로 나으리다." 하고 말했다.

 

   용왕은 즉시 "세상에 나갔던 별주부는 오래 묵은 자라니, 법에 의거하여 대령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자신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무시무시한 산중에 가서 갖은 협박과 감언이설로 토끼를 잡아 왔건만, 용왕은 토끼에게 속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라의 충성심을 칭찬했건만, 한 순간에 돌변하여, 제 병에 좋다는 말에 자라탕을 해 먹겠다고 얼른 자라를 잡아 대령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이런 용왕의 행동이 지배 질서인 충효와 절개를 지키는 사상이고 질서란 말인가?

 

   점입가경이라고, 거북은 용왕에게 만리타국에 가서 정성을 다한 별주부를 죽이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별주부 대신에 그의 아내로써 대신하여 자라탕을 만들자고 간언을 했다. 이에 용왕은 흔쾌히 '윤허하노라'라고 말한다. 왕의 건강과 목숨을 위해서라면 타국 산중 짐승이든 자국 용궁 신하든 가리지 않고 목숨을 뺏는다. 이게 삼강오륜이고, 통치 윤리란 말이가? 거북이나 용왕이나 스스로 얼굴에 똥칠을 한다.

   졸지에 아내를 죽이게 된 별주부는 황급하게 물러나서 토끼의 배를 갈라 간을 확인하자는 말을 거두고, 다시 토끼에게 잔치를 베풀며 목숨을 구해줄 것을 간청한다. 토끼란 놈이 더욱 기고만장해서 별주부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요구를 한다.

   "네 아내를 하룻밤 내 방에 들이라."

   이에 별주부는 아내에게 달려가서 의견을 물었다. 참 수궁 충신다운 태도다. 그 왕에 그 신하로다!

   별주부의 아내는 분연히 대답했다.

   "상공의 말씀이 타국에 가서 공을 이루고 돌아와 일국충신이 되어 대왕의 병환이 쾌차하시면 일품공후(一品公侯)를 봉하여 그 영화가 첩에게까지 돌아올까 바랐더니, 공명은커녕 집이 망하게 되니 충신불사이군은 상공이 행하옵고 열녀불경이부는 첩이 행하지 못하오니, 한 번 죽기는 예사롭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충신이 되었는데 내가 두 남자를 섬기는 여자가 되어서는 되겠느냐며, 자신은 죽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자기 때문에 아내가 죽게 된 것이 미안했던지 자라는 아내의 말이 옳지만 이런 일을 당하여 한갓 정렬만 지켜서 되겠느냐며 현실적으로 판단을 하라며 아내에게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냈다. 치사하고 염치없는 짓이다. 수오지심은 어디로 갔나? 의리(義理)는 이쑤시개 버리듯 가볍게 버려졌다. 별주부의 아내는 이런 남편의 권고를 받아들인다.

   "이 같은 아름다움으로 누추한 곳에 처박혀 있다가 나 같은 남자를 만나니 좋지 않느냐?"

하고 토끼가 말하니 별주부의 아내는

   "첩이 삼강의 죄인이 되오니 살아 무엇하오리까?"

   하나, 하룻밤 동침하고 나서는 별주부와의 백년해로 정렬맹세는 뜬구름이 되고 만다. 가관인 것은 별주부의 아내는 새로운 정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채 하룻밤에 끝나버린 게 아쉬워 토선생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훗날을 기다리겠노라 고백한다.

 

   더 익살스러운 것은 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이다. 별주부 아내는 떠나는 토끼에게 연서(戀書)까지 보내며 다시 오기를 기다렸지만, 다시 올 리 없는 토끼를 그리다 상사병에 걸려 죽는데, 수궁에서는 그 속을 모른 채 별주부를 생각하다 죽은 것으로 알고 '정렬'을 기려 열녀문을 내리며, 소상강으로 망명했던 자라는 이 소식을 듣고 통곡을 하고는 자결을 한다. 바람난 별주부 아내의 마음조차 알지 못한 채 상찬하는 것도, 자기가 아닌 토끼를 그리다가 죽은 것을 자기 때문에 죽은 것으로 오인하여 자결하는 것도, 모두 열녀가 될 것을 기대하는 삼강의 윤리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상대에 대한 배려는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조롱을 당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