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디는 인도가 낳은 세계적인 성자, 크리슈나무르티·라즈니쉬·마하리쉬와 같은 영적 지도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네루나 진나·호치민·김일성(?)과 같은 혁명가, 정치가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는 경건한 종교적인 사상배경을 가졌지만 조국의 독립이라는 구체적·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했고, 정치에 참여하기는 하였어도 정치인에게 의례 따르기 마련인 부패와 기만·권모술수에서 자유로운 아마추어였다. 그의 소박한 철학을 따라가다 보면 대단한 사상가나 철학자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해 보이고, 처칠과 같은 절세의 문장가도 아니면서, 천둥같은 연설로 청중을 사로잡는 웅변가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빈약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평생에 걸쳐 - 그의 자서전 제목(나의 진리실험 이야기) 처럼 -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바를 끊임없이 추구해 온 실천가였다. 어줍쟎게 '행동하는 양심' 따위의 수식어로는 그의 위대한 진면목을 표현하기 불가능한 바,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란 존칭이 딱 맞아 떨어지는 위인이다. "Rediscovering Gandhi : 간디의 재발견" 이란 참신한 원제목을 갖고 있는 이 책은 인도 출신의 저자에 의하여 저술된 모범적인 평전이다. 간디에 관한 책이라면 그의 자서전을 비롯하여, 동시대인(로맹 롤랑 등)의 평전에서부터 최근 인도 정부에서 발간한 90권(!)짜리 간디 전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저작이 있지만, 이 책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그의 일생과 사상을 인도 독립이라는 큰 역사적 틀 속에 완벽하게 짜넣어 결코 지루하지 않게, 그리고 빠짐없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잡지·팜플렛·서간·인터뷰 내용등 수많은 1차 사료를 섭렵해 간 저자의 노고도 돋보이지만, '후진국' 인도에 그만한 자료가 축적되어 있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했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비폭력저항(사티아그라하)'에 대하여 다소 분명한 개념을 파악하게 되었고(간디의 사상적 성숙에 따라 이 개념은 진화를 거듭한다), 인도의 독립이 -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고 - 얼마나 힘겹게 쟁취되었는가 역사적 과정을 천착하면서, 우리나라의 무질서했던 해방 전후 상황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생각거리였다. 물론 모든 인간적인 약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간디를 신격화시키지도 않았다. 간디 숭배자라면 껄끄럽게 여길 만한 부분들도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한 개인적인 약점을, 인도의 통일과 독립이라는 대의에 헌신함으로써 극복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그를 준성인(準聖人)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논지이다. 서두의 실린 함석헌님의 '간디의 길'에서, 앞으로 세계는 세계평화라는 대의를 위하여 '별수 없이 간디가 열어놓은 길을 택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혀 놓았듯이, 간디의 진정한 가치는, 그가 미래 인류의 공존을 위하여 '진리'에 가까운 하나의 길을 제시해 놓았다는 사실이다. 아마 간디가 없었더라도 인도는 적당한 시기에 독립을 쟁취했을 터이지만, 인류가 공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수백년 뒤에도 존속하게 된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20세기에 간디라는 성인이 있었음을 크게 감사하게 될 것이다. 책에 대하여 조금 아쉬운 부분을 몇가지만 지적해 본다. 간디가 남아프리카에서 22년간의 인도 이민자 권익수호를 위한 활동을 일단락짓고 인도로 귀국하였을 때, 돌아오자마자 이미 상당한 위치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인정받았는데, 그 과정의 서술이 조금 매끄럽지 못한 것 같다. 즉, 모한다스 간디는 어떤 계기를 통하여 결정적으로 '마하트마 간디'가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말미에 간디 암살의 모의과정과 재판절차를 실어 놓았는데, 그렇게까지 자세할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이다. 대신 간디 사후에 진행된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의 독립문제, 카슈미르 분쟁지역의 해결방향, 카스트제도의 진행실태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더라면, 일반 독자들에게 간디가 그토록 사랑한 조국 인도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그 외, 권두에 실린 간디 부모의 모습부터 간디의 장례식까지 담은 수십장의 사진과 권말 부록으로 수록된 인도와 인두교의 특수용어 해설은 유용한 자료이다. 800 쪽이 넘는 두께와 담긴 내용에 비하여 판형(B5)이 작은 느낌이 드는데, 개정판이 나온다면 조금 키우는 것이 좋겠다. |
| 무차별적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 그럴듯한 평화와 정의의 명분으로 오늘도 세계는 전쟁의 두려움에 젖어든다. 한켠에서는 이 부도덕한 전쟁을 너무나 당연한 자신들의 권리라며 동참을 요구하고 또 한편에서는 그에 대한 무한의 보복을 다짐한다. 영국 경찰의 몽둥이에 맞아 머리가 깨지면서도 결코 한번도 손을 들어 제지하지 않았던 비폭력과 불복종의 성인 간디. 그가 성인의 옷을 벗고 한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돌아왔다. 1948년 힌두교도인 나투람 고드세가 쏜 세발의 총탄이 한 사람의 가슴을 향해 발사됐다. 세발의 총탄을 고스란히 맞은 그 사람은 '헤람(오 신이시여)'라고 짧게 읊조린 뒤 숨을 거뒀다. 비폭력과 불족종을 신념으로 삼고 제국주의의 통치에 저항했던 그 사람. 간디의 생애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간디의 삶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너무나 강렬하다. 폭력에 대한 응징으로 폭력의 사용이 정당화되는 시대. 국가와 인종, 종교와 문화는 서로에 대한 몰이해에서 오는 반목과 대립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는 시대에 그의 비폭력과 불복종, 종교에 대한 화합의 메시지는 시간을 거슬러 많은 것을 반성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870매가 넘는 두터운 분량의 이 평전은 간디의 일생을 다룬 여타의 평전들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대부분의 전기가 한 인물의 위대함과 업적에만 방점을 찍어 부각시켰던대 반해 이 책은 오히려 그 반대로 간디에게 씌워진 신성성의 두루마기를 벗겨내고 신앙과 양심에 따라 바른길을 가려 고뇌하고 갈등했던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수줍던 소년 모한다스가 변호사의 꿈을 안고 영국으로 건너가 백인들의 문화를 향유하고 마침내 고대하던 변호사가 되기까지는 일반적인 간디의 평전들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민족의 문제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이 책은 단순히 간디라는 한 인물의 역사를 조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도의 근대사를 치밀하게 복원하며 그 안에서의 간디를 살펴 들어간다. 각종 자료를 통해 간디가 남긴 말들을 복원해낸 것은 물론 스스로에 대한 시험으로 외손녀에게 잠자리를 같이 하자고 제의했던 일이 추문이 되어 상처받았던 일화까지 끄집어 내어 완벽한 인간으로서의 간디가 아닌 항상 고뇌하고 갈등하던 인간으로서의 간디를 그려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간디 암살범 나투람 고드세와 그의 재판과정에 대한 상세한 소개다. 실제 1948년 11월 8일 법정에서 5시간동안 이어졌던 그의 최후 진술을 전재해 친이슬람 유화정책에 불만을 품었던 힌두 원리주의자의 눈에 비친 간디의 또 다른 정체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선뜻 읽어 내려가기에 부담스러운 분량이지만 종교적 신념에서 세상의 모든 폭력과 억압에 반대하며 자유로운 정신과 화합을 원했던 한 인간의 일생을 읽는다는 일은 시대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 것과 동시에 개인적인 흥미와 돌아봄의 흔치 않은 기회를 맛보게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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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혼, 마하트마 간디. 왜 위대한가? 비폭력으로 일관하여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려 했던 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간디에 대한 정의일 것이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평가했듯 그의 외모는 보잘 것 없는 바싹마른 노인에 불과 했다. 하지만 그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인격과 신뢰의 빛은 모든 사람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흔히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높은 위치에서 명령하고, 복종을 기대하지만 간디는 항상 먼저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저 소금행진이 그러했고, 단호한 카스트 제도하에서의 불가촉천민에 대한 사랑은 코끝이 찡해올 만큼 실천적이고 진실했다.
그의 이상, 즉 사티아그라하의 너무나도 고결한 진리에 많은 사람들이 몰이해와 비판으로 이상주의자 내지는 소심한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진리의 길은 대중의 일시적 선동이 아닌 근본적인, 인간혁명이라고도 해야할 진정한 스와라지와 아힘사에서 영구적인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려 했던 것이다. 그것은 인도 민족, 아니 전세계 나라와 사람들에게 실천으로서 행동으로서 그 가능성을 보여 주기 위한 투쟁이었고, 그의 신념에 대한 타협 없는 진정한 용기였다. 한 방울의 물이 모여 대해가 되듯 한사람, 한사람의 사티아그라하에 대한 자각과 실천만이 결국 영구한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결코 편협한 민족주의자도 아니었고 선동가도 아니었다. 오직 세계시민이었을 뿐이다. 민족과 종교와 인종을 가리지 않고 인간으로서 생명으로서 사람들을 사랑했기에 마하트마가 된 것이다. 자신을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자비의 미소를 보내는 그는 흡사 불교 경전에 나오는 불경보살 - 누구나 최고의 인격으로 빛날 수 있는 불성(부처의 성질)이 있기에 자신을 아무리 때리고 욕하고 멸시하더라도 결코 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존경해 나간 사람 - 의 재탄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 (실제로 간디는 불교경전의 정수인 법화경의 가르침을 듣고 '남무묘법연화경'이라고 써서 붙여 두기도 했다고 한다) 또 간디는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대중으로부터 떨어지지 말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라. 일하라, 이바지하라, 봉사하라. 대중의 벗이 되라, 동료가 되라, 일원이 되라고.
비록 그의 평생의 신념인 사티아그라하의 최종 종착역인 세계평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그 위대한 혼은 꺼지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타오르고 있다. "내 정신이 세계의 광명일 수 있다면 나는 무덤 속에서도 계속 말하겠다"라고 유언한 것처럼... [인상깊은구절] 사티아그라히는 두려움에 작별을 고합니다. 따라서 적을 신뢰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설사 적이 스무 번 거짓을 말하더라도 사티아그라히는 스물한 번 그를 신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암묵적 신뢰가 이 신조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
| 원제가 『간디의 재발견』(Rediscovering Gandhi)인 이 책은 다른 위인전과는 달리 간디의 어린 시절부터 과장하지 않고 그리고 있다. 간디가 활동하던 시대의 인도의 사정은 일제 치하의 우리와 비슷하다. 또한 전반부의 런던 유학 생활에 대한 서술은 한 젊은이가 자기 나라를 떠나 선진국의 문물을 체험하고 그것에 매료되며 가난하고 슬픈 나라를 떠나고 싶어하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있어 어학연수나 유학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떠나는 많은 젊은이들을 연상시킨다. 간디를 스쳐 지나가는, 혹은 짧지만 깊은 교감을 나누는 당대의 명사들의 이름을 발견하는 것도 흥미롭다. 톨스토이, 타고르, 네루 등등...특히 젊은 간디가 말년의 똘스또이와 주고 받은 서신과 간디 암살범 고드세의 진술문 등 흥미있는 기록들은 이 책의 최장점이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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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게시 차다의 <마하트마 간디>를 읽었다. 문득 생각난 사람이 있었다. 김선일씨이다. 그가 살려다라고 외치는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프가니스탄에 우리나라 사람 19명이 인질로 잡혀 있다. 2명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버렸다. <마하트마 간디>를 읽으면서 왜 이들이 생각났을까? 우리는 간디를 그저 '비폭력주의자'로 칭송을 하고 있지만 그가 비폭력주의자의 삶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그가 간 비폭력의 삶을 왜 우리들의 삶에는 적용하지 못하지는 관심을 잘 두지 않는다. 간디는 누구인가? 함석헌은 이렇게 말했다. "간디의 길이란 어떤 길인가? 그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스스로 부른 대로 그것은 사티아그라하다. 진리파지(眞理把持)이다. 참을 지킴이다. 또 세상이 보통 일컫는 대로 비폭력운동이다. 사나운 힘을 쓰지 않음이다. 혹 무저항주의란 말을 쓰는 수도 있으나 그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이름이다. 간디는 옳지 않은 것에 대해 저항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는 죽어도 저항해 싸우자는 주의다. 다만 폭력, 곧 사나운 힘을 쓰지 말자는 주의다." (본문 35쪽 인용). 함석헌 선생의 말대로 그는 불의 항거했다. 항거의 방법, 총과 칼, 인간의 생명을 해하는 도구가 아니라 정의와 진리 그 자체로 저항했다. 간디가 무저항이 아니라 비폭력저항주의라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불의에 항거했고, 불의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것은 간디의 삶의 가벼이 볼 수 없는 이유이다. 요게시 차다의 <마하트마 간디>를 통하여 본 간디라는 한 인간의 삶의 결론 '지독한 신념'으로 살아온 여정이었다. 우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으로 그를 단정하는 것은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우리는 너무 '비폭력'이라는 말을 쓴다. 자신이 갈 수 없는 길이면 쉽게 말하면 안 된다. 간디의 삶의 여정을 존경한다는 말 한마디 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사적 이익의 도구로 사용한다. 간디는 인도의 힌두 계급의 카스트 중 제3의 계급이라 할 수 있는 바이샤 출신이다. 인도라는 국가는 사상 속의 국가는 존재하였지만 정치, 행정체제로서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현실의 문제는 그가 영국 유학을 끝내고 남아프라카로 가기 전까지는 얼마나 자기를 노예화하고 있는지 잘 몰랐다. 남아프리카에서 경험된 인도와 인도인의 문제는 사람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인격 자체를 부정하는 것뿐이었다. 브리마 차리아, 사티아그라하는 그를 지독한 신념을 통하여 현실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향을 설정하게 되며 자신의 삶이었고, 자신이 된다. "우리는 폭력도, 유혈도, 사람들이 요즘 이해하고 있는 방식의 외교도 채택하지 않습니다. 순수하고 단순하게 진리와 비폭력만 채택했습니다. 무혈 혁명을 이루려는 이러한 시도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세계는 유혈로 인해 죽을 병이 들었습니다. 세계는 탈출구를 찾고 있습니다. 나는 탈출구를 열망하는 세상에 탈출구를 보여주는 것이 오랜 역사를 가진 인도의 특권일 것이라는 믿음에 자부심을 자기고 있습니다." (본문 538쪽 인용)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레바논에서 오늘도 많은 이들이 '정의'와 '평화'의 이름으로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의 입에서 정의와 평화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간디의 이 말이 그들에게는 어떤 뜻일까? 의미일까? 부시 미국대통령은 오늘도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철군하면 베트남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비폭력이나는 신념은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 될지라도 다른 이를 향한 사랑이었고, 원수라는 인간 본성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용납할 수 없게 한다. 인도로 돌아와서 그가 보여준 사타그라하 운동과 자치운동, 인도 독립을 향한 열정을 무엇으로 담을 수 없는 그릇으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원래 종교란 근원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기에 이슬람과 힌두종교의 하나를 위하여 싸웠지만 현실 사회가 추구하는 정치성이 결국 분열의 씨앗이 되게 하는 안타까움을 경험하게 된다. 비폭력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그도 결국은 '폭력'의 이름으로 죽었다. 중심에는 종교가 있었다. 종교만큼 평화를 외치는 것도 없지만 종교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음을 비폭력주의자 간디를 통하여 알 수 있다. 또 지구상에 벌어지는 모든 전쟁의 중심에는 '종교'가 있다. 인류의 비극이 종교에서 싹트고, 잉태되고, 만들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마하트마 간디가 간 길을 우리는 왜 가지 못할까? 그러니 그를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비폭력주의자'라고, 치열한 비폭력의 삶의 자신의 삶에 적용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간디를 입에 담는 것은 간디의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
| 간디는 도덕 책에서 배워서 간디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그동안 민족 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었던 인도의 운동가 라는 정도밖에 몰랐는데 그 도중에 책을 읽어 보면서 잘 알게 되었는데 정말 간디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자기는 낮은 계급도 아닌데 다른 사람을 위해서 비폭력 불복 종 운동을 전개 하는것을 보고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것 같다. 그의 마하트마 간디 라는 이름에서 부터 느껴 지는 것 같다.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 베스트! 간디는 한번쯤 꼬옥 읽어볼 만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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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간디자서전(간디 지음 함석헌 옮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책은 1920년대 말에 그 끝을 맺고 만다. 간디는 1948년까지 살았기에 1920년대 말 이후의 간디의 생을 알고 싶어서 이 책을 구입했다. 또한 자서전이 아닌 제3자가 쓴 내용도 알고 싶다.
간디는 톨스토이와 더불어 존경하는 사람이다. 특히 간디가 존경받는 이유를 나는 그 실천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오죽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행동하는 양심이란 말이 있을까.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이미 양심이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도 야고보서에서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2장 17절)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기독교에서는 파벌 때문인지 아니면 구약과의 관계 때문인지 이 복음서를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또 하나 간디가 존경스러운 점은 인도가 독립한 후에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질 수 있는 직위를 버리는 것은 정말 위대한 것이다. 간디를 읽다보면 자꾸 김구 선생이 생각난다. 간디 역시 힌두교도인데도 이슬람교도와의 화합을 외치면서 죽음을 넘나드는 단식을 했지만 위대한 그도 이런 종교적인 갈등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결국 힌두교도가 쏜 총에 맞고 만다. 김구 역시 남북한의 통일을 위해 일하다가 죽는 모습은 너무나 비슷한 것 같다.
간디가 그토록 종교간의 화해를 외쳤지만 힌두교와 이슬람교는 기본적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이라는 나라로 나누어지고 말았다. 그런 두 나라가 최근 카슈미르를 두고 전쟁의 위기로 가고 있는 것이다. 원래 한 나라였지만 나누어지고서는 원수처럼 지낸다. 부부간이라는 것이 헤어지면 남보다 못하다는 말을 여기에다 비유할 수 있을지. 제대로 된 믿음이 없는 종교는 이렇게 전쟁을 부르고, 죽음을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종교만이 제대로된 종교라는 것이다. 정말 이런 종교들은 하느님이 한 분이시고 그 하느님에 다가가는 길이 여러 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인류의 재앙이 없어지고 종교의 원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이 인도에서 직접 통치권을 행사한 것이 1857년 폭동 뒤의 일이라고 하며 그 후 인도는 둘로 나뉘었다고 한다. 델리의 부왕(副王)이 통치하는 영국령 인도와 550개의 토후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도의 독립이 1947년이니 거의 90년이나 영국의 지배를 직접 통치를 받은 것이다. 정말 긴 기간이다.
간디는 그의 생을 통해서 인도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종교간의 화합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만 결국 종교 때문에 자신의 삶도 마감하게 된다. 그의 생애에서 여러 번의 죽음을 넘나드는 단식이 있었다. 그리고 진리를 믿은 그가 위대하지만, 적게 소유하려는 그의 정신도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사람들이 많지만 간디처럼 가난한 사람들과 산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 자신의 말대로 가난한 사람의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간 것이다. 톨스토이도 말년에 이런 일을 했지만 간디는 젊어서부터 그런 일을 했으니 정말 대단하다. 말 그대로 실천의 화신이라고 하고 싶으며, 그렇게 하는 것을 배우고 싶다. 878쪽이나 되는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아후라 마즈다, 브라마, 만군의 주(각각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기독교의 신-옮긴이)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들이 크리슈나나 그리스도로 성육신한 모습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환생, 부활, 우주의 삶에 신이 개입한다는 관념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여러 베다, 성경, 복음, 삼장(三藏, 불교 성전-옮긴이), 코란 등의 무오류성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
| 자신의 원칙을 세워 타협하지 않는 태도로 '비폭력 비협조 운동'을 이끌었던 간디는 성과를 이뤘던 장면들로만 본다면 마치 우리와 다른 존재인듯 성자라고 일컬어지는 모습에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책을 통해 그 인생 전체로 본다면 순간 순간 모순적이고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우리와 같은 인간인것이다.그렇다고 간디의 행적들을 깎아내릴 의도는 없다 오히려 나와같은 인간임에도 자신의 믿는것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믿음에의 완벽을 위해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종교를 가진 이들이라면 간디같은 신앙을 가져야하지 않을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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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트마 간디.....
그는 단순히 인도 독립운동가가 아니었다.
그는 인도 통일을 위한 민족주의자였으며, 폭력을 싫어한 평화주의자였으며, 채식자의자 였으며, 결정적으로 전 지구인의 위대한 스승이었다.
실패했지만,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를 하나로 통합하는 하나의 인도인만의 국가를 만들려는 민족주의자였다. 힌두교도들이던, 이슬람교도들이던 상관없이 그는 모든 인도인을 사랑했다.
그는 정의롭지 못한 행동에 협조하지 않는, 폭력적인 행동에 똑같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비폭력, 비협조를 주장하는 평화주으자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바람직한 행동에 저항을 하지 않는 무저항이 아니다. 저항은 하되, 비폭력적이며 비협조적으로 저항을 하자는 것이다.
이런 그의 모습은 인도인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인류에게 감동을 주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인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형제의 손에 의해 죽는 것은 나에게 슬픈 일일 수가 없습니다. 내가 칭찬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려면 적의 총알을 맞고도 쓰려져서도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아야 하고 그 일을 한 사람에게 악의를 품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범죄자를 사랑으로 설득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