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이상 날개를 달고 싶다는 꿈을 꾸지 않습니다. 날고 싶은 꿈이야 어린아이일 적부터 꾸었고 지금도 그런 욕망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날개를 단다 하더라도 자유로운 새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날개를 꿈꾸지 않습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사람으로 살아가야지 다른 어떤 존재를 바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사람다워야 하며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사람 이상의 능력을 원해서도 안 되며 신이라도 된 양 영원한 존재를 바라서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꿈을 경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먹으면 몸이 크게 부풀고, 절대 지치지 않는 강한 자가 된다는 '생명의 사과'는 필요 없습니다. 사람을 동물로 만들고 동물을 사람으로 만드는 '마법의 자두' 역시 필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작가에게서도 그런 생각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구구마츠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악의 화신이야. 도대체 믿을 수가 없어! 그들은 다른 사람을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부려 먹든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부림을 당하는 족속일 뿐이야. 이 세상에서는 누가 누구보다 더 강한지가 중요한 관건이지.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야!" "참 안됐구나, 구구마츠." 몰도반이 말했다. "넌 네가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네 손아귀에 넣어야 한다고 믿고 있어. 그렇지만 너는 너 스스로 만들어 놓은 공포와 증오와 외로움의 새장 속에 갇혀 있어. 네가 스스로를 믿으면 다른 사람들도 너를 믿을 거야. 누군가 너의 믿음을 저버렸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사람들을 모두 증오해서는 안 되는 거야. 내 말을 이해하겠어, 구구마츠?" (182 - 183쪽 발췌) 나쁜 마법사 구구마츠와 겨루게 된 몰도반이 구구마츠를 설득하는 장면입니다. 스스로를 믿고 존중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몰도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할 때는, 마법사 구구마츠의 욕망처럼, 그리고 구구마츠가 개미와 쥐며느리를 괴물로 만든 것처럼, 흉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깊은 생각이 담겨 있는 이야기가 전혀 무겁지 않습니다. 깊은 생각은 마지막 부분에 슬쩍 비췄을 뿐 긴박한 모험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다른 새들처럼 날 수는 있었지만 나는 속도가 형편없이 느렸기 때문에 사람이 되고 싶은 까마귀 알퐁스, 새가 되어 날아다니고 싶은 마법사 몰도반이 서로의 꿈을 이룬 다음에 벌이는 모험 이야기인 셈입니다. 이들의 모험은 꿈을 달성하자마자 시련으로 다가오는데 그것들을 하나하나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까마귀 사람으로 변한 알퐁스가 보르톨리 서커스에 붙잡혔을 때는 속이 바작바작 타들어갈 만큼 긴박감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