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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의 2번 교향곡 부활은, 전염병으로 읽은 자신의 어린딸을 위한 작품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4악장에서 죽은자들이 세상으로 돌아 오는 모습등, 죽음과 부활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거대한 스케일과, 당시로는 신선한 시도였던 성악과 교향곡의 만남으로 활기차게 그려 내고 있다. 2년전 아마츄어 지휘자이자 말러 부활 교향곡 전문가인 캐플란의 초연(KBS 교향악단과 함께)도 보았고, 말러의 제자 브루노 발터(Bruno Walter)의 직설적 해석이 담긴 연주를 삶의 일부를 함께 한 그가 가장 말러의 본 뜻을 잘 전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들어 보았고, 아바도(Claudio Abbado)의 젊은 시절 열정으로 연주된 부활도 들어 보았지만, 번스타인과 뉴욕필의 이 음반에 담긴 연주는 1악장부터 5악장까지, 죽음과 부활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가장 잘 어울리게 이 명곡을 다이나믹하게 이끌어 간다. 놀라울 정도이다. 왜 다른 지휘자는 이 곡을 이렇게 연주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지경이다(물론 작년에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이반 피셔가 번스타인의 업적에 근접하는 또 하나의 장엄한 말러 2번을 녹음하였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간단한 연주로는 말러의 진짜 2번 교향곡이 될 수 없다는 듯이 혼이 담긴 연주, 그리고 전율을 느낄 정도로 성악진을 리드하여 마치 교향악단의 하나의 악기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 버리는 번스타인의 말러 2번, 번스타인 스스로 세번에 걸친 녹음 과정을 통해 한단계 한단계 성숙해 지고 있는 듯 하다(이 음반이 그의 세번째 부활 교향곡 녹음으로 1987년에 녹음되었다). 마치 듣는 이 자신 주위의 모든 풍광이 부질 없어 보일 정도로 연주에 몰입하게 하는 번스타인의 말러는 단연 이 교향곡 2번 연주에서 가장 화려한 꽃을 피웠다 할수 있을 것이다. 말러 2번을 듣고자 한다면, 이 음반을 들어 보시라. Gramophone Awards 2007 에서 Editor's Choice Award 부분을 수상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이반 피셔의 최근 녹음이, 그나마 이 음반과 견줄 수 있을 것이다. 말러가 2번 교향곡을 작곡할때 부다페스트 오페라를 이끌고 있었다는 놀라운 우연도 이반 피셔의 말러 2번에 더욱 혼이 깃들게 한 듯 하다. 각설하고, 작고한 대가 번스타인의 말러 2번이 이렇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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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의 뉴욕필과의 부활 교향곡 신녹음은 완전한 번스타인의 주관적 부활이라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마지막 'Auferstehn, ja auferstehn wirst du!'에 촛점이 맞게 조준하고 1악장부터 번스타인의 인위적 템포로 진행한다. 1악장은 참으로 느리고 호흡이 길다. 원래 1악장이 장송행진곡으로 작곡된 곡이니만큼 주빈 메타의 연주에서 처럼 거침없이 질주해 나가는 연주에서는 그런 비극적 요소를 잘 느낄 수 없는 반면에 번스타인의 이 연주에서는 지나치게 느껴진다. 과유불급. 2,3악장에서는 여느 연주자들과 비슷한 연주를 하다가 4악장에서는 다시 느려진다. 원광의 반주는 숨이 끊어질 듯 하다. 크리스타 루드비히의 안정된 가창을 아슬아슬하게 받쳐주고 있다. 5악장 시작의 팡파르는 거대한 울림을 발휘하지만 단원들간의 호흡이 조금 맞지 않은 감이 있다. 하지만 모든 역량을 5악장에 집중한 만큼 마지막의 부활 합창에서는 전기가 통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쓰다보니 이 연주의 단점을 너무 부각한 것 같으나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번스타인이라는 거장이 밑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뉴욕 필 단원들이 충실히 따른 만큼 매우 감동적인 그림이 되었다. 이 연주는 부활 교향곡을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짜릿함을 선사하기에 어느 연주보다 좋은 연주다. 다만 그 사람이 참고 끝까지 들을 수 있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지만...번스타인의 신녹음에는 Erte의 독특한 디자인이 실려있는데 이런 그림들 하나만이라도 다른 음반들과 디자인 면에서 앞서가는 느낌을 준다. 이 곡에서 처럼 번스타인이 다시 부활하여 우리들의 레코드장을 더 풍성하게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번스타인이 없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