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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고통스런 순간을 내가 겪어야 하는 것일까? 이 물음을 내 스스로에게 던진 건 바로 군대에 있을 때였다. 하루하루가 너무도 고통스러웠고,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며 매일 나 스스로 내 목을 졸랐다. 순간순간 눈을 감으면 그 앞에 죽음이 어서 오라며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왜 사는 지도 몰랐고,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의문 또 의문이 들었다. 책상 앞에서 책 읽고 글 쓰며 이야기하는 것 밖에 모르고 자란 나는 군대에서 쓸모없는 인간에 불과했다. 나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과거를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놈들에게 조롱당하고 짓밟힐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앞에서 전우라는 것들이 계급을 빌미로 주먹과 발길질로 다른 전우를 괴롭히고 욕을 지껄이며 그를 모욕할 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빅토르 프랭클처럼 수용소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는 아니었지만 양심이라는 거, 내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것은 나에게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매일 사형선고를 받고 그 사형선고를 내가 내린다고 생각할 때 나는 무슨 수를 쓰더라고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 순간을 모면하는 제일 쉬운 선택은 범죄자가 되는 것이었다. 탈영을 하거나 아니면 자살을 하거나 이 두 가지가 제일 쉬운 선택이었다.
범죄자가 되려는 나를 잡아준 것은 어머니의 편지였다. 얼굴 보고 싶다며,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쓸모없는 나의 안부를 묻던 어머니의 편지. 나는 거기에서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래서 살아야 하는구나. 무슨 일을 당하더라고 살아남아서 그들을 만나야한다. 이 생각으로 버티고 버텼다.
빅토르 프랭클처럼 몸에 있는 털이 모조리 깎여 나가 알몸이 된 것도 아니었고 손가락의 방향에 따라 나의 생사가 결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그전까지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나와는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과 2년 남짓을 살아야만 했던 것 뿐 이었다. 빅토르 프랭클의 말처럼 분명 사디스트가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그 당시 나는 이 사실을 몰랐던 것뿐이었고 비록 악인이 있지만 선인도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내가 알지 못했던 것 뿐 이었다.
빅토르 프랭클은 삶이라는 것은 의미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유일무이한 것, 그게 바로 나 자신이라며 내가 경험한 것들은 그대로 세상에 흔적을 남기다고 말한다. 나 스스로 나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나를 뭉갤 수 있지만 혹시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본다면 나라는 존재는 벌써 작지만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
빅토르 프랭클의 말처럼 유일무이한 것에게 주어지는 문제와 답도 언제나 유일무이할 수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 가져야 하는 행동이 다르듯 구원 혹은 깨달음이라는 것도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세상 수많은 사람 중에 나라는 존재가 하나이듯 나에 알맞은 구원과 깨달음도 단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삶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 자신 때문에 행복했는지 말이다. 중요한 건 그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나 자신이 오랫동안 살아야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나는 찾을 수 있었다.
요즘 살아간다는 게 아무리 힘들다고 하지만 아직은 살만한 곳이다. 이 책에서 삶의 의미를 배우고 또 배운다. [인상깊은구절]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인간은, 인간은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고 결단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가스실을 고안했지만, 동시에 가스실 안에서도 의연히 기도할 줄 아는 존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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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 체험과 간추린 로고테라피"란 부제에서도 볼 수있듯 이책은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저자 빅토르 프랑클이 실제로 악몽보다 더 무서운 나치수용소에서 보낸 3년간의 체험을 글로 쓴 것이고 인간이기를 포기해야하는 수용소 생활이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지를 보며 로고테라피라는 독특한 이론을 창안하게 된 배경이 된 이야기다.
배고픔과 죽음에 대한 불안의 극단에서 요행을 바라며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면 할 수록 그 삶의 무게는 더해가고 점점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며 미래에 대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질때 오늘을 견디는 힘이 생김을 깨닫게되고 글은 마치 다른 사람의 생활을 묘사하듯 절제된 간결한 담대함으로 이어진다.
"Wenn Leben überhaupt einen Sinn hat, dann muss auch Leiden einen Sinn haben." (Viktor Frankl)
"무릇 삶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고통에도 의미가 없을 수 없다. 운명과 죽음이 삶의 일부분이듯 고통도 반드시 거쳐야 할 삶의 한 과정이다. 고통과 죽음은 인간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성숙시킨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것은, 물론 우리에게는 절실한 고민이었다.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 모든 고통을 참고 견딘 것이 무의미해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나를 짓눌른 고민은, 우리를 둘러싼 그 고통과 죽음 자체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겪은 고통과 죽음 자체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수용소에서 살아남는 것도 헛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요행히 빠져나오느냐 못 나오느냐에 의미의 존폐가 걸려있는 그런 삶, 우연히 베풀어지는 은총에 기대는 그런 삶은 살만한 값어치가 없다는 것이. 나의 변하지 않는 생각이었다."
이처럼 그는 삶에 목적이라는 것이 있다면 고통과 죽음에도 틀림없이 목적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목적이 무엇이라고 남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목적은 스스로의 힘으로 발견해야 하는 것이며, 사람은 그 목적이 요구하는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삶의 목적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리 굴욕스러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이겨내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체험에서 정제된 이런 생각은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이론을 만들어 냈는데 대부분의 심리치료의 형태가 과거의 회상이나 내면의 성찰에 있는데 반해 이것은 미래에 있다. 한마디로 미래에 대한 비젼을 보게하고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will to meaning 의 중요성을 어필한다.
우리의 삶가운데 햇살만 가득하다면 간사한 인간들은 쉬 삶의 권태와 회의를 느낄 지도 모른다. 또한 고통에 단련되지 않고 그것의 또다른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쉬 좌절하고 낙담하게되고 심지어는 죽음을 선택하게도 된다.
그런 우리 현대인의 삶의 방식과 태도에 빅토르 프랑클은 경종을 울린다.
"실존적 공허"
왜? 라는 질문과 미래에 대한 목적없는 현재의 쳇바퀴식 열심은 결국 실존적 공허를 낳기에 충분하다. 때로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일때 이 책속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희망없는 내일 속에서, 소리없이 가스실에서 죽어가고, 동료의 시신을 뒤적이는 일상속에서도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꺾지 않았고 Trozdem Ja zum Leben sagen. 이라고 말하는 사람...
무엇이??? 라는 물음을 갖고 이 책을 읽어본다면 Trozdem(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의미와 예측불허의 삶에 더이상 불안해하거나 마음졸여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게 되리라. [인상깊은구절] 요행히 빠져나오느냐 못 나오느냐에 의미의 존폐가 걸려있는 그런 삶, 우연히 베풀어지는 은총에 기대는 그런 삶은 살만한 값어치가 없다는 것이. 나의 변하지 않는 생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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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은 많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고난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 동물은 고난이나 어려움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고난이나 고통속에서 각자에게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고난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고난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이 바로 고난을 통해 삶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가이다.
저자는 2차 세계 대전 중에 강제 수용소에서 3년간 수감하게 된다.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그는 이 수용소에서 인간이 고난이나 고통을 당할 때에 보이는 반응을 분석하고 논문으로 발표하게 된다. 이 발표 내용이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나약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발견하게 되었다. 고귀한 존재로 태어났음에도 한 인간의 잘못된 생각으로 수 많은 사람이 죽게 되고 아픔을 격을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중간쯤에 인간의 선택의 나약함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살겠다고 여러 선택을 하게 되지만 번번히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것을 본다. 한치앞도 볼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이 있는 그대로 나타나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 선택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태도의 선택이다. 이건 실로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의 행복은 상대적인 것에 있다고 말한다. 강제 수용소에 있다 하더라도 어느 것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지금 행복하느냐 불행하느냐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자신의 고유 권한이지 그 어떤 권력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갈 목적과 이유를 찾게 되고 그것이 분명하다면 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는 확률은 더 커진수 있다고 한다.
이건 저자의 경험이기도 하다. 저자도 수용소에 들어오기 전에 쓰고자 했던 논문이 아직 남아 있기에 밖에 나가서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기에 힘들었던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는 어떠한가? 물론 강제 수용소의 생활을 겪어보지 못했기에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의 태도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다가오는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을 통해 생각하게 만든 것은 "고난이 없다면 성장할 수 없다. 인간은 아무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닌 수 많은 갈등 속에서 성장하게 되어 있다." 이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나의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인상깊은구절] 2,3주가 지난 후에 수옹소에 끝까지 남아 있었던 우리 몇 안되는 수감자들은 '운명'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 인간들을 농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이 내리는 모든 결정이라는 게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생과 사는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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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보편적인 의미를 찾기보다는 개인적인 의미를 찾아야한다. 개인마다 그 삶의 의미가 다르며 순간 순간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마다 다르고 순간마다 다른 의미있는 살믕 통해 얻어지는 것은 "성장"이라는 것에 귀결된다.
"성장"이라는 것을 위해 난 삶이 내게 원하는 것과 나의 내면이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면 조화롭게 살고 싶다.
이 순간 삶은 내게 무엇을 바라는가? 다시말해서 난 삶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면에서 말하는 것을 귀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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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한권의 무게는 결코 여늬 책 한권의 그것에 그치지 않는다. 모름지기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의식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일독을 해야만 할 책이다. 하긴 저자의 삶과 죽음, 일생의 무게와 성찰,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 책의 내용이 어찌 가벼운 책 한권의 그 중량에 비견될 것인가?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독자인 나를 불편한 방향에서 압도할만큼 무지막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다. 마치 아름다운 석양아래 흐르는 강물을 조망하듯이 안락하게 눈길을 주어 저자의 안내를 따라보면 어느새 마감의 시간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 여운은 그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어떻게 사람사는 세상에, 같은 사람간에 이런 극한 상황들이 연출되는 것인가? 그리고 저자는 어떠한 이유로 살아남아 우리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다행과 감사의 마음을 저자에게 전할 수 있음은 최소한의 보답이 될까?
유태인 정신의학자인 저자는 나찌에 의해 저질러진 강제 수용소의 그 참혹한 경험을 아름다운 경지로까지 승화시켜 이렇게 독자들의 삶에 보탬이 될 작품을 완성한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성찰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정신의학계에 저명한 '로고테라피'라고 하는 독창적인 기법을 탄생시키지도 않았는가?
누구라도,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붙어있는 자신의 목숨에서 '그 의미'만 찾아낼 수 있다면 그 삶이 꺾일 수 없다는 것, 최소한 죽음을 선택할 자유라도 가질 수 있다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때때로 나약해지고 되돌아서는 내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세상의 한파를 헤쳐나가며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는 보통사람들, 삶의 의미를 잃고 좌절의 고통속에 신음하는 불행한 이웃, 전도양양한 미래를 꿈꾸고 준비하는 청소년들. 인간의 심리에 관심을 지닌 사람들까지......이런 사람들 누구나 한 번 저자인 빅토르 프랑클 박사를 친구로 삼아보면 어떨까? 아마 양 어깨의 한쪽 짐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한 가지 교훈과 한 가지 물음이 생생하게 뇌리에 남는다. 왜 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 왜 당신은 자살을 하지 않습니까?? [인상깊은구절] -강제수용소가 다른 건 다 강탈할 수 있어도 인간이 가진 마지막 자유, 즉 어떤 주어진 상황하에서 또 다른 태도를 가질 수 있는 자유만큼은 건드릴 수 없다 -인간의 정신적 자유는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결코 빼앗을 수 없는 것이며,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엮어나갈 수 있는 기회는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무릇 삶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고통에도 의미가 없을 수 없다 |
|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를 얻고 나올 때, 보리밭을 돌아가자는 저자에게 동료 수인이 분노하며 외쳤던 소리다. 인간이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가? 사실 이 대화는 저자가 기술한 수용소 생활의 끔찍함에 비교한다면, 단지 체험기의 끝에 나오는 보잘것없는 대화이다. 그러나, 기적과도 같은 삶을 움켜지고 수용소를 나오며 한 수인의 말이 왜이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일까? 이 아픔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결국 특별한 공통된 사람들에 의해 구성된 집단이 아닌, 그저 ’인류’ 전체라고 규정지어야 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류의 내면엔 엄청난 학살 후에도 끝나지 않은 위와 같은 파괴본능이 잠자고 있다. 그러기에 무수한 싸움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 책에서 또한 그러한 점들을 강조하고 있다. 인류는 우리가 영원히 살아가야할 공간이다. 또한 우리의 후손들 역시 살아가야한다. 점점 삭막해지는 이시대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이책이 이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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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쉰들러리스트라는 영화에서 독일군 수용소의 모습을 보며 저게 사실일까 할 정도로 믿기지 않았는데 이 책의 저자는 실제로 그 수용소와 같은 생활을 견디며 삶의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수용소의 모습을 회상하였다는 소개로만 예상했을 때는 회상의 내용들을 위주로 슬픈 내용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덤덤하게 쓰고 있었다. 어쩌면 실제 괴로움을 당한 사람들은 그 괴로움에 슬퍼하기보다는 견뎌내는데 힘을 쓰다보니 오히려 덤덤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저자는 수용소에서 정말로 많은 생각을 했을 거 같다. 옆의 동료가 죽어가는 모습, 정신적 공황상태가 오는 것을 보며 살아남고 버텨내는 사람들의 생각과 정신상태는 어떤 것인지 극한의 상황에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고민이 죽음에 직면한 고민보다 심각할 수 있을까.. 이 책을 보며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다. 결국 저자는 그러한 관찰과 사색을 통해 로고테라피라는 심리학 분야를 창시했다고 한다.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모색을 통해 노이로제와 같은 불안 등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야할 이유를 찾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시련에 대해서도 일생에 그러한 시련을 맞이할 기회는 단 한번밖에 없다고 얘기하며 그 시련 속에서 세상이 나에게 던지는 의미를 파악하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 의미를 알 수 있다면 시련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이로제는 과잉의도, 즉 꼭 해야한다, 해내야한다 와 같은 강한 의욕으로 오히려 일이 안되고 그에 따라 불안함과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인데 이는 '역설의도'를 통해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불안해하는 생각을 오히려 더욱 부추겨 아무렇지 않은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것이다. 그게 아주 재미있는 생각이고 공감가는 부분이다. 예를 든 사례가 땀을 많이 흘려 고민인 청년에게 오히려 열 주전자는 흘려보라는 얘기를 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 일어나기 전에는 큰 고민이지만 실제 발생하면 별거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저절로 치료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동안 살아오며 걱정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그다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과 상통하는 방법인 듯 하다. 삶의 의미를 아직 찾지 못한 듯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배운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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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의사가 수용소에서 체험한 내용을 자신의 생각과 곁들여 소개하였다. 2부에서는 그 후 의사가 주창한 로코테라피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로고테라피. 로고는 그리스어로 의미라고 한다. 오늘날 이 사회에서 나는 어떠한 의미로 존재하는가? 나는 항상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그것을 한 뒤에는 또다른 무엇인가를 찾곤 하였다. 그리고 목표를 찾지 못했을때는 깊은 허무함을 느끼곤 했다. 책에서 잠깐 언급한 무성함과 통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알아야 될 것은 (이 저자의 말에 의하면) 내 삶의 의미이다.) 삶의 의미. 무척이나 형이상학적이고 심오해 보인다. 그러나 삶의 의미는 개인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가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보호하고 지지하는 존재. 그것도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겠지. 그 의미는 너무나도 개인적이고 유일한 것이라 어떤 상황에 맞는 정답은 하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힘들고 버겁다. 생물학적, 사회학적, 심리적 이유로 우리는 고정된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한 모든 제약에도 불구하고 이상적 행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다.
운명의 질문에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성인처럼 행동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불안하고 무언가를 갈구하는 이 불안이 정신적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응당 그러한 존재이기 때문이란 사실이다.
나는 어떤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인가? 내 평생의 고민거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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