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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 왕, 즉 사울과 다윗 그리고 압살롬으로 대표되는 세 부류의 인간형에 대한 고찰이 주로 이루어지는데, 기존의 획일적인 편견에 의해 판단되어지는 성과 악으로서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보다 인간적이고 역사적인 배경 하에서 다이나믹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를 통해 세 인물의 심리적 갈등과 가치관의 변화,신앙의 중심의 변화 등을 보다 섬세하게 맛볼 수 있다. 선행되는 세 인간형의 고찰을 통해, 독자는 나의 실체를 비추는 거울과 만나게 된다.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 첫 번째 유형의 인간과 직면할 수 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세워졌으나‘다윗에 대한 질투와 끊임 없는 권력욕, 그로 인해 심지어 살인까지도 불사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하여 스스로 어두움을 선택하는 인간형으로 대표되는 사울이 바로 첫 번째 인물이다. 두 번째로는, 자신을 향하여 창을 던지는 사울을 피해 심지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도망하기까지 하며 자기 자신이 또 다른 사울 2세가 되기를 거부하였던 인물, 오로지 하나님이 일하시기를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 있기를 소망했던 다윗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다윗을 공격하고 비판하며 자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군대를 조직하고 마침내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를 침범하고 파괴시키려는 반란의 음모자 압살롬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이 가운데 어느 누구의 얼굴을 가지고 있을까? 사울에 대해 비판하던 내 자신이 비판자이자 반란자였던 압살롬은 아닐까? 사울과 압살롬은 같은 이름이었다. 처음으로 혼란의 시기를 평정하고 나라를 세웠던 위대한 사울이지만, 그 능력이 하나님께로서 왔음을 잊고 권력 지키기에만 혈안이 되자 그는 한낱 미치광이 늙은 왕에 불과하게 된다. 또한 아무리 현란한 말솜씨와 비판적인 눈으로 문제를 캐내는 통찰력을 가졌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에 대한 반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교만했던 압살롬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다윗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아뢰었으며, 오직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자신이 다 부숴지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크리스챤이 되기를 원한다면, 응답받는 신앙인이 되길 원한다면, 이 책에서 순종하는 다윗을 만나기 바란다. 내 소원만을 아뢰는 일방 통행의 큰 목소리가 아니라, 하나님 뜻 안에 있기를 우선 소망하는 눈물의 소유자가 되길 소망하며 이 책을 권한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하나님을 방해하지 않을 것입니다....그 분이 그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막을 만한 장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 되시옵소서!" |
|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깊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 다고 원망하고 불평했던 내 모습을 돌이켜 보게 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만을 원했고, 존경받기 만을 원했지 그런 사람이 되어보려고 노력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초라해진다. 다윗, 그는 공인된 왕이었지만 무력으로 자기생각으로 왕위를 차지하지 않는다. 묵묵히 기다린다. 하나님의 때까지. 그의 삶이 고되고, 힘들고, 지치고, 낙망되고, 손가락질 당하고, 도망자가 되고, 억울해도 복수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는 그 사람도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 진정한 권위는 하늘에서 오는 것임을 알았다. 다윗의 인생은 비참하고 뒤틀린 삶이었지만, 그는 후대에 가장 존경받는 왕이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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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20대까지는 다윗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가장 싫었던 이유는 부하의 아내를 뺏었다는 것. 그냥 바람을 핀 것도 아니고 자기를 위해 충성하는 부하의 아내를 빼앗고, 거기에 그 죄를 은폐하기 위해 그 부하를 전쟁터에서 죽이기까지 한다. 또 하나 마음에 안 들었던 건 자기 손에는 결코 피를 묻히지 않는다. 그가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동안 그의 수하들이 모든 일을 알아서 하는데 그게 마치 눈치껏 하길 바라는 약은 행동으로 보여서 호감이 가지 않았다. 도대체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왜 사랑하셨을까? 이런 비겁하고 치졸한 인간을. 그게 늘 의문이었다.
반대로 사울과 압살롬을 볼 때는 왠지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람이 한 번 실수할 수도 있지, 사무엘이 늦게 온 게 잘못이지 그거 못 기다리고 제사드린 게 그렇게 죽일 죄인가? 한 번쯤 용서해주실 수는 없었을까? 왜 다윗에게는 그리도 너그러웠던 하나님이 사울에게는 그렇게 냉정하셨을까 뭐 그런 생각. 마찬가지로... 압살롬은 다윗에게 원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압살롬의 누이인 다말을 이복형제인 암논이 욕보였을 때 다윗은 능동적으로 그 일을 해결하지 않았다. 내가 압살롬이라고 해도 분통이 터질 것 같다. 따라서 압살롬이 아버지에게 원망을 품고 반역을 한 행동을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은 압살롬의 편은 안 들어주신 걸까, 뭐 그런 생각.
이 책은 2막으로 구성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1막은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이고, 2막은 다윗과 압살롬의 이야기이다. 등장 인물도 얼마 되지 않고 매우 짧은 분량의 이야기이지만, 책 속의 등장 인물들이 걸어 나와 마치 내 앞에 펼쳐진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이 짧은 연극을 다 보고 나면 위에서 내가 언급했던 의문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 아, 하나님께서 이래서 다윗을 사랑하셨구나. 아, 이것이 다윗의 믿음이구나. 하나님께서 진정 보시고자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들을 깨닫게 된다.
왜 사울과 압살롬은 안 되고 다윗만 됐는가? 왜 하나님은 사울과 압살롬이 아닌 다윗을 사랑하셨는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서 보신 것은 무엇인가?
매 챕터는 항상 시편의 말씀으로 시작되는데, 그 시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책의 내용을 읽다 보면 위의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저절로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삶을 살 때 무엇이 선택의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시게 보시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방법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신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을 알게 되면 많은 오해와 억측 속에 가려졌던 진정한 다윗의 모습을 대면할 수 있다. 그리고 시편에 등장하는 무수한 그의 신앙 고백들이 비로소 와닿는다. 아, 이러한 신앙 고백들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러한 체험 속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이구나. 다윗이 드렸던 그 찬양들이 마음을 울린다.
삶 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진리를 드러내고 싶을 때마다, 정의를 구현한다는 명목 하에 사울이나 압살롬과 같이 되고자 하는 유혹을 많이 느낀다. 내가 뭔가를 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한다. 하나님, 나는 정당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때를 기다리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자기의 욕심대로 하고자 하는, 자기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그 무수한 유혹들을 참아낸 것이 바로 다윗의 믿음이다. 그것이 바로 사울이나 압살롬과 다윗을 구별 짓는 가장 커다란 이유이며, 그것이 바로 다윗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든 유일한 이유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 하나님이 일하시기를 기다리는 것, 그 인내야말로 가장 큰 믿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너무나 싱겁도록 단순한 메시지이지만, 사실 너무나 중요한 메시지이다. 살면 살수록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이다. 자기 의를 드러내고 자기를 정당화하려는 유혹은 얼마나 달콤한지.
두고두고 보면서 자기 자신을 점검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다윗같이 순종하고 인내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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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그러니까 1996년에 접했던 세왕이야기는 책 표지마저 아주 오래된 디지인이였지만, 그 책 표지의 삽화는 이책을 모두 이야기 하는 것이였다. 사울의 손에 들여진 창과 하프를 감싸고 있는 다윗 그것이 이 책을 대변하는 것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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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왕이야기는 성경속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자신 내면의 사울과 다윗, 압살롬 그사이에서 매 선택과 판단의 순간마다
갈등하고 힘들어 하는 내 자신을 보게 해주는 책 인것 같습니다~
단순히 성경에서 사울과 다윗을 보았을때...
사울은 단순히 나와 상관없는 미친 왕이었고 다윗은 선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왕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두 사람이 별개의 사람이 아닌 그저 우리의 마음의
한 부분을 보여주기도 하며, 다윗 역시 위대한 왕이면서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입니다. 나는 그분의 능력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구합니다... 라는 다윗의 말은 정말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어떤 일에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명목으로 "하나님 시험에서 누구를 이기게 해주세요" "하나님 이런저런 능력을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지는 않는지...
하지만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압살롬에게 망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이라고... 다윗이 위대한 왕 일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구절이었고...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그분의 능력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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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믿는 다고 자신을 일컫는 사람들도 상처받는 요즘에
반 강제로 받아서 읽게된 이책은, 읽는 내내 나를 지루하게 하였다.
순수했던(!) 대학시절의 믿음생활도 스쳐가고 그분 앞에서 무릎끊고 기도했던
시절도 생각났지만.... 그런 것이 이책을 읽고 있는 나를 행복하게는 만들지 않았다.
결국, 세상사람들의 눈으로는 바보 일수 밖에 없는 이미 알려진 다윗의 믿음과 교훈은
실마리를 아는 미스테리 영화를 보는 무료함처럼 이 책을 통해 가는 생각의 여정은
지루하기만 하였다.
책을 덮고..다시 책 표지를 보니.. "깨어진 마음으로의 순례" 라는 글이
책 표지에 보인다.
세상의 널부러진 문제들을 무관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나마 그것들을
알아내고 비판하고 미워하는 내 모습을 보며 가졌던 위안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그것은 대단한 세상보기가 아니라 아주 보잘것 없는 은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용기와 믿음..
믿음생활이 얼마나 용기있는 희생을 요구하는지는 이 책을 보며 다시 알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다만 소박한 나의 깨어짐이 있다면
주어지는 작은 순간속에서라도 분명 다윗의 그것보다는 훨씬 적은 희생을
요구할 그러한 순간속에서 최선을 , 그분의 말씀과 뜻에 따라 살아갈 뿐이다.
세 왕의 이야기가 결국 반복되어지는 우리의 모습이고
조직에서 가정에서 우리가 문뜩문뜩 가지게 되는 잘못된 권위에 대한
욕심과 그것을 지키려는 무모한 시도들에 대해 ,,, 깨어짐을 주는
그러한 책이다.
생각보다 생각을 많이 주고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책으로
주위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인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어느 왕국이든 문제는 있게 마련이지요" "언제든지요, 더군다나 그런 문제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아주 보잘것 없는 은사에 불과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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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세 왕 이야기-깨어진 마음으로의 순례 Tale of Three Kings, 1980 지음 : 진 에드워즈 옮김 : 허령 펴냄 : 예수전도단 작성 : 2015.10.16.
“여기서의 깨어짐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즉흥 감상-
예상보다 길어진 추석연휴. 하지만 작업실 열쇠(?)를 가지고 본가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이유인즉 제가 자취 중이라 들고 온 책은 다 읽었고, 평소에 수집해둔 책들이 전부 본가의 작업실에 봉인되어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렇게 독서에 굶주린 저의 시야에 포착된 책이 한 권 있었다는 것으로,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작품은 [추천의 글]과 이번 책이 어떻게 쓰여 졌는지에 대해 인사를 건네는 [저자 서문]은 살짝, ‘두 운명’에게 임무를 부여하여 지상으로 내려 보내시는 하나님과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두 천사의 대화로 시작의 장을 엽니다. 그리고는 골리앗을 무찔렀던 양치기 소년 ‘다윗’의 성장과 그 시대의 미친 왕인 ‘사울’의 이야기를 담은 [1막 사울과 다윗 이야기], 그리고 노년의 지도자 ‘다윗’과 그의 자리를 탐내는 아들 ‘압살롬’의 이야기를 담은 [2막 다윗과 압살롬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는데…….
네? 종교, 특히 기독교와 관련된 이야기는 일단 패스라구요? 으흠. 그렇군요. 괜찮습니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입장이 있는 법이니까요. 그렇다고 저까지 미워하시면 안 됩니다. 독서를 못하면 심심해 정신을 못 차리는 습관 때문에 만나본 책이니 말입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책에서 말하는 ‘깨어짐’에 대해 다소 혼란을 경험하였지만, 먼저 만났던 코믹 ‘골리앗 Goliath, 2012’과도 함께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는데요. 종교 쪽으로 공부하시는 분들은 이번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집니다.
최근 들어 작품보다 다른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데, 이번에는 집중을 부탁하신다구요? 으흠. 하긴 주변지식을 깔아드리는 것도 아니고, 일기마냥 주저리가 많이 늘었었군요. 아무튼, 이 작품은 ‘다윗’이라는 사이에 두고 세대 간의 갈등을 통해 ‘운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미친 왕의 통치 아래에서 살고 있던 ‘젊은 다윗’과 미친 왕의 나이가 되어 자신의 자리를 탐내는 인물을 마주하는 ‘늙은 다윗’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는데요. 비록 다윗의 행동이 답답하게 보였을지는 몰라도, 당시의 시대만큼은 평화를, 네? 성경을 읽어보면 다윗 왕 또한 그리 착한 사람이 아님을 알게된다구요? 오호. 그렇군요.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기회가 되면 성경도 한번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글쎄요. 감상문을 쓰는 지금까지도 ‘깨어짐’이 무엇인지 확실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문영역(?)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인데요. 처음에는 broken을 말하는 ‘깨어지다’를 말하는 줄 알았는데, 책을 계속 읽으면서는 ‘사물의 본질이나 이치 따위를 생각하거나 궁리하여 알게 되다. 감각 따위를 느끼거나 알게 되다.’를 말하는 ‘깨닫다’ 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이 둘을 하나로 묶어 ‘기존의 관념을 깨뜨린 행위를 통해 새로운 통찰력을 얻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전문가 분들께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봅니다.
그럼, 소설 ‘스트레인 The Strain, 2009’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인 ‘더 폴 The Fall, 2010’의 감상문으로 이어보며,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하는데요. 역사는 입장의 차이와 해석하기 나름일 것이며, 그렇기에 상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일단은 다양한 관점으로 두루두루 맛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고 적어보는군요. TEXT No. 2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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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과 다윗 이야기*****
아직도 내 안에 살아 꿈틀거리는 질투심으로 가득 찬 사울 왕 반역을 도모하는 압살롬 나를 깨뜨려 변화시키는 다윗
어릴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했던 양치기소년 다윗. 순결한 마음으로 한결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어느 목동의 막내 아들 다윗.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마음이 깨어진 깨끗한 그릇이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 하나님에 의해 기름부음 받았고 하나님의 영에 충만한 사람이었지만 그 마음속엔 이미 질투심이 생겨났다. 왕위에 눈이 멀게됨으로 유발된 이 질투심은 걷잡을 수 없었고 결국 그릇된 길로 가버렸다.
쫒고 쫒기는 관계가 되어버린 사울과 다윗. 대적하지않은 다윗. 몸을 피해버린 다윗, 숨어버린 다윗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이었기에...
다윗은 잠잠히 혼자서 힘든 시련을 겪었다. 속사람이 변했다. 성품이 변화되었다. 이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보복을 하지않았다. 왜냐면 다윗은 사울의 속사람이 아니었기에.. 고통이 분만하고 겸손이 태어나고.. 세상적 기준으로 볼땐 실패자이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땐 다윗은 깨어진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했다.
무리를 동요해 따르라고도 하지않았고, 권위에 대해, 순종에 대해 말하지도 않았다. 규칙을 만들어내지도 않았다.그러나, 보잘것 없고 불쌍한 무리들은 다윗을 따랐다.
다윗과 압살롬 이야기*****
충성스럽지만 야망을 가진 청년. 압살롬 백성들의 신망도 두터웠지만 자기만의 나라를 세우려는 다윗의 세째 아들 압살롬. 반역을 꾀하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어떠한 반역도 성공 못하며 축복 받을수도 없다.
다윗의 고뇌.. 저울추에 달린 왕국 모든것을 다 잃느냐, 아니면 사울이 되느냐? 다윗은 사울에게 절대 도전하지 않았다. 사울이 다스리는동안 결코 왕국을 분열시키려하지 않았다. 다윗의 선택.. 도피
젊었을때도 압살롬이 아니었고, 노년에 와서도 사울과 같이 될 수 없다고 고백하는 다윗. 늙은 이때에도 자신의 모습 그대로이고 싶은 다윗.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언제나 신실하게 하나님 한분만을 바라보았던 다윗의 모습에서. 권위와 존경은 노력하며 발버둥 치는것으로 채워지는것이 아님을 보았다.
왕이 되겠다고 집착하지도 않았고 왕국이 집착할만큼 귀한것도 아니다고 고백한 다윗. 왕위나 왕권은 하나님께로부터... 지도자의 위치를 갈망하는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갈망한 다윗.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이토록 애틋할수가!!!! 하나님께서 복을 안 주실수 없도록 만드는 다윗의 됨됨이가 너무 좋아보이고 닮고싶다.
다윗에게는 오래전 그때도 하나님과 먼저 관계하고 나서 자기위의 사람(사울)과 관계를 맺었고, 지금도 하나님과 관계하고 나서 자기밑의 사람(압살롬)과 관계를 맺었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됨을 선포했지만, 여전히 다윗은 동요대신 현 상황가운데 말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도록 충분히 자리를 내어드리겠다고 고백한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하나님이 되시도록......
진정한 왕 다윗은 돌아서서 조용히 왕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하나님은 학교를 하나 가지고 계십니다. 적은 수의 사람이 입학해 더 적은 수가 졸업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학교를 가진 이유는 하나님께는 깨어진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순종과 깨어짐을 배우는 이 학교에는 학생들이 적을까요? 이 학교에는 모든 사람들이 겪어야 할 많은 고통이 있기 때문이죠.
다윗은 한때 이 학교 학생이었고, 사울을 다윗을 깨뜨리기위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이었습니다.
다윗의 신앙이 아무리 신실하고 좋다해도 신앙은 대물림되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압살롬을 통해. 오로지 신앙은 나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란것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선 나 자신만이 신앙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느꼈네요. 자신의 왕권에 정면 승부수를 던진 압살롬을 보면서 다윗이 느끼는 감정은 아마 안타까움이 아니었을까요? 하나님 앞에 먼저 신실한 사람이 되면 자연히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줄것인데. 왜 기다리지 못하고 사리사욕에 눈이 멀었을까? 하는 다윗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TIp. 다윗*** 유다지파 사람인 이새의 막내아들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남. 왕으로 기름부음 받고 훗날 이스라엘의 2대 왕위에 오르게되지만, 그의 인생은 너무도 파란만장했다. 지도력과 온유함을 겸비했으며, 겸손하고 순복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호를 얻음. 사울*** 이스라엘 최초의 왕. 유력한 가정 출신으로 잘 생기고 훤칠한 용모를 갖춤. 40년간 이스라엘 왕으로 통치하지만, 결국 불순종과 교만으로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다. 압살롬*** 빼어난 용모를 지닌 다윗의 세째아들. 사람을 다루는 능력 탁월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의 환심을 샀으며, 민심을 모아 훗날 아버지 다윗의 왕권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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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동안 7명의 사람과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행 초반에는 화기 애애한 분위기만 있었으나, 2주가 지나고, 3주가 지나고.... 한달 반이 지나니 매일 보는 똑같은 사람들과 매일 한 방을 쓰는 그 사실조차도 싫증이 나고 짜증이 났다. 이유도 없이 관계가 틀어지고 관계가 어렵구나, 느꼈을 때 즈음,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이 책은 스토리 텔링 형식에 가까워서 쉬운 듯 하면서도 이해를 요하는 면이 있었다.
관계가 어려웠을 떄 이 책을 접해서 그런지 '세 왕 이야기'에 적어놓은 나의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정말 함께하기 어려운 지체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지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지체는 나에게 사울과 같은 존재이다. 그렇다고 내가 다윗이라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또 다른 다윗을 훈련시키는 사울이기도 하다. 사울과 다윗, 그리고 압살롬. 이들은 모두 내 안에 살면서, 나를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 만들어주는 훈련도구일 뿐. 훈련 도구에 지는 수련생은 있을 수 없다. 힘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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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왕은 사울왕, 다윗왕 그리고 압살롬을 말한다. 사울과 다윗의 관계,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 표면적으로는 두 사람의 관계이지만 이면적으로 본다면 세 사람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던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이러한 사울의 반응에 다윗은 나중에 압살롬처럼 얼마든지 반역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다윗도 죄인인 인간이기에 압살롬과 같은 내적 자아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철저히 그런 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깨어진 그릇이 되었다. 이후에 그가 왕이 되었을 때,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하게 된다. 다윗은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얼마든지 압살롬을 제압할 수 있었지만 그것 또한 하나님의 영역에 두고 그저 잠잠히 깨어진 마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이번엔 그의 마음 속에 사울과 같은 내적 자아가 있을 수 있다. 얼마든지 압살롬을 위협하고 그를 굴복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서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인생의 왕좌에 앉으신 주님 발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대로 온전히 맡긴다. 다윗은 바보같다. 다윗은 너무 무기력해보인다. 감정도 없는 사람같다. 그러나 시편을 읽어보면 그렇지 않음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는 하나님께 그의 심령 속에 있는 모든 악한 것과 더러운 것을 다 토해내고 결국엔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심지가 견고한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다윗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은 그의 권위를 인정해주었고, 그에게 철저하게 순종했다. 그리고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다윗을 위해 헌신했다. 그런데 다윗은 한번도 권위를 내세우거나 순종을 요구하지 않았다. 사울의 관계 속에서, 압살롬과의 관계 속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깨어짐과 자기부인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온전한 순종이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나에게도 깨어짐과 순종의 신성한 학교에 입학허가증을 주셨음을 알 수 있다. 십 수년 전에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그 때 당시 성경에 대한 지식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다윗하면 목동이고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골리앗을 쓰러뜨린 믿음의 소년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삶의 굽이 굽이 고난과 아픔과 시련이 있었음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고난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갖게 되었다.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정죄하기보다는 먼저 나 자신을 더욱 깨뜨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인도하심을 깨닫게 되었다. 과감하게 깨어지자. 자원하여 깨어지자. 반석이 나를 덥치는 것이 아니라 반석에다 나를 온전히 부수자. 그래서 사람들은 몰라주고 오해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깨어진 그릇되기 위하여 나를 더욱 더 낮추고 그 분의 뜻을 따라가자. 내 속에도 사울이 있다. 압살롬이 있다. 그러나 철저하게 깨어지고 부숴질 때 그 사울과 압살롬은 내 심령 속에서 죽어지리라 대신 하나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의 마음이 내 심령을 가득 채우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