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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런 소설로 어떤 시대의 그림을 그려보고 싶기도 하다. 하나의 역사가 어렵게 다가오는 듯해 부담스러울 때 이런 방식의 앎도 괜찮을 듯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알게 되는 것들, 생생한 목소리로 들리는 기분에 섬뜩해진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카릴 필립스의 『강을 건너며』라는 흑인 디아스포라 250년의 역사를 몇 명의 인물, 어떤 시간, 서로 다른 자리의 시선으로 보여주려 애썼다. 아프리카에서 바다 건너 대륙으로 갔던 흑인들이 차별과 학대로 살았던 시간을 여러 인생으로 그리며 말한다. 한때 자신의 주인이었던 에드워드에게 편지를 보내는 내시와 내시에게 자유를 주었다고 여기며 그를 찾아가는 에드워드의 이야기. 눈앞에서 가족이 팔려가는 걸 보고 자기 역시 매매된 인생으로 살다가 어렵게 자유를 얻은 듯했으나 결국 그 길에서 죽음을 만났을지도 모를 마사. 노예 수송선을 이끄는 해밀턴의 항해 일지로 알게 되는 인간의 이중성. 백인 여성 조이스의 삶과 차별 없는 사랑을 겪은 그 시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삶을 비춘다.
“절박한 어리석음이었다. 흉년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팔아넘겼다.”(11페이지)는 아버지의 고백으로 서로 다른 네 편의 이야기는 시작한다. 아이들을 팔아넘긴 아버지의 고통이 그대로 들리는 듯하다. 후회한들 그 아이들의 삶은 이미 노예로 묶였으니... 그에 앞서, 사람을 사고파는 일이 인간사에 존재한다는 게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세계사에 그대로 있었던 일, 우리 역사에도 비슷한 고통으로 존재하는 일.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일이기에 이렇게 강조하려나 보다. 같은 마음으로 그들의 시간을 지켜보라고.
주인의 배려로 교육도 받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돌아간 내시는 주인에게 편지를 쓰지만, 주인은 답장이 없다. 내시는 답장 없는 편지를 계속 쓴다. 주인 에드워드는 내시를 찾아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 과정이 내시의 편지와 에드워드의 관점에서 써지는데, 제법 마음 좋은 주인 행세를 했던 그의 모습이 내시의 행적을 좇으면서 점점 가면을 벗는다. 남는과 아이의 불행을 눈앞에서 지켜보던 마사 역시 노예로 산다. 우여곡절 끝에 자유를 찾아가는데, 서부로 향하는 흑인 개척자들을 따라가지만, 그녀의 인생이 밝지만은 않다. 자유를 향해 가는 길에 그녀가 다다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어지는, 노예 수송선의 선장인 해밀턴의 항해일지는 사람이 사람으로 살지 못하는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물건'을 대하는 선장의 건조한 말투는 고향의 아내에게 보내는 애절한 편지와 대조적이다. 눈앞에서 같이 숨 쉬고 있는 인간을 보는 시선이 고작 사고파는 물건일 뿐이라는 게 절망적이다. 마지막 이야기인 조이스의 삶과 사랑은 앞선 이야기들을 들려준 이유가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으로 온 미국 흑인 병사와 사랑에 빠진 그녀의 모습은 인종 차별, 성차별에 짓밟혔던 인생을 그리는데, 그녀가 선택한 삶의 방향과 사랑의 대상이 이 모든 차별의 종식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랜 시간 그렇게 차별이 난무한 불평등을 갖고 온 인생에게 작은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그릇된 인간의 판단과 이기심이 저지른 일들, 더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을 경고하듯 지적한다.
대륙과 대륙의 이동으로 건너는 강,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는 강. 이 소설에서 강을 건넌다는 의미는 중의적으로 쓰였다. 강을 건너 아프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내시, 강을 건너 내시를 찾아가면서 자신의 모습을 다시 본 에드워드, 노예 수송선이 수없이 오갔을 강, 삶의 끝을 향해가는 가련한 마사가 건널 다리. 대륙의 이동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을 트레비스. 흑인 디아스포라의 삶을 다양한 궤적으로 들려주면서, 그들의 인생에 울게 한다. 아픈 기억을 가진 매개가 희망과 사랑을 싣는 길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린다. 잃어버린, 흩어진 가족들과 삶, 그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내일을 그리는 존재로 만든다. 버림받은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랑받는 이로 존재하기를 바랄 수 있게. 마지막, 조이스를 찾아온 청년의 등장에 마음을 실어본다. 그들이 행복해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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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F (New Face of Fiction) 라는 시공사의 문학 시리즈의 이름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소설에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소설이었다. 한 권의 책, 한 편의 장편소설에, 인물과 형식이 다른 네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으면서도 조화롭지 못하거나 생뚱맞지 않았다. 문체 또한, 아름다웠다. 그리고, 여러 개의 악장이 모여 하나의 교향곡이 이루어지듯, 이야기는 작가가 말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통해 강하고 아름다운 한 편의 장편소설로 탄생되어 있었다.
절박한 어리석음이었다. 흉년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팔아넘겼다. (11쪽)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네 편의 이야기는 미국 대륙 곳곳으로 흩어진 흑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서문'과 공통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강 건너, 미국 남부 혹은 또 다른 어떤 곳으로 도피하고 떠나야만 했던 그들의 흔적을 추적한다. 작가는 그들의 삶을 그저 '보이는 대로' 추적하고 잔잔한 문체로 전해주며, 그 속에 품은 '경고'나 '물음'을 찾아내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먼저,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1부는 자신이 교육하고 지원하여 아프리카로 선교를 보낸 노예 '내시'를 찾아 나서는 주인 '에드워드'의 이야기다. 미국에서 얻은 기독교 신앙을 새롭게 창조된 땅에 뿌리내리려 했던 모순된 자신감을, 그로 인해 아프리카인이자 선교사였던 '내시'가 받은 상처와 병폐를 지적한다. 2부와 3부에 숨은 이야기는 가장 끔찍하다. 흑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2부는 강 건너 지옥으로 떠나지 않기 위해 개척자로 향하다가 죽어갔던 마사의 이야기를 아주 생생한 증언으로 다룬다. 그리고 3부는 노예를 수송하고 '무역'했던 선박의 항해일지로, 아주 건조하게 당시의 (잔혹한) 일상을 전한다. 가장 분량이 많았던 4부는 언뜻 '흑인 디아스포라'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소외된 한 여성과 그가 사랑했던 흑인 병사와의 이야기를 통해 '흑인 디아스포라'에서 더욱 대상을 확대한 '버림받은 자'들에 대한 메시지로 목소리를 높인다.
버림받고, 뿔뿔이 흩어지고, 상처받고, 차별받고, 소외되었던 모든 사람에 대해 연민의 시선을 던지고 있는 소설 『강을 건너며』. 작가가 남겨놓은 어떤 '여지'와 관련해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나의 내시. 나의 마사. 나의 트레비스. 그들의 부서진 삶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또 다른 '내시', '마사', '트레비스'의 삶의 기록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105쪽,
118쪽,
183쪽,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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