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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믄장아기’에 관한 이야기는 옛이야기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제주도의 무속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른바 ‘삼공본풀이’라고 하는 제주도 무속신화의 주인공이 가믄장아기이고, 그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여 신으로 좌정한 존재이다. 무속신화에서 ‘본풀이’는 무당이 자신이 모시는 신의 내력을 설명하는 서사시로서, 그 줄거리도 방대하며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들로 인해서 그 내용이 매우 풍부하게 구성되어 있다. 아마 이러한 무속신화는 옛이야기로 변용되면서, 후대의 설화와 소설 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가믄장아기가 마를 캐는 도령과 결혼해서 금을 발견하는 내용은 백제의 ‘서동설화’와 유사하고, 맹인이 된 부모님을 위한 잔치를 베풀어 만나는 장면은 ‘심청전’의 모습을 연상시키게 한다. 무엇이 선행되었는가를 따지는 것은 확실히 규명할 수 없지만, 실제 우리의 옛이야기와 소설의 교섭은 지속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에서 가난한 부모가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면서 세 딸이 태어나고, 하는 일마다 잘 되어 그로부터 부자가 되면서 문제의 발단은 시작된다. 부자가 된 부모들은 딸들에게 ‘누구의 덕인가’하고 묻는다. 첫째와 둘째는 모두 ‘부모의 덕’이라고 대답하지만, 셋째인 가믄장아기는 ‘내 덕에 산다’고 답을 한다.
우리의 옛말에 ‘제 먹을 것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듯이, 어쩌면 가믄장아기의 답은 비록 부모에 의해 태어났어도 제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에 실망한 부모들은 가믄장아기를 내쫓고, 언니들도 부모들에 동조해 집으로 돌아올 수 없도록 만든다. 결국 언니들은 지네와 같은 벌레로 변하고, 부모들은 다시 가난해지게 된다. 이는 부모와 자식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도록 만든다. 자식들이 부모의 장식품이 아니기에, 자식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집을 떠나 비로소 독립한 가믄장아기는 길에서 할머니를 만나 그 집으로 들어가고, 할머니의 세 아들과 대면을 하게 된다. 아들들의 행동을 지켜본 가믄장아기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 할머니의 셋째와 결혼을 하고, 남편이 마를 캐는 곳에 가서 황금을 캐어 큰 부자가 된다. 일면 일확첨금을 꿈꾸는 것처럼 보이는 화소이지만, 황금은 그 결과일 뿐 오히려 셋째 아들의 성실함으로 인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내용이다. 다시 부자가 된 가믄장아기는 부모들이 거지가 되어 떠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잔치를 벌여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부모들이 온 사실을 확인하고, 매번 부모들 앞에서 음식이 떨어지게 만들어 그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엿본다.
이 대목에서도 거지가 된 부모들에게 곧바로 음식 대접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으나, 만약 처음에 음식을 먹고 만났다면, 부모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깊이 고민할 기회를 갖게 되었을까? 그것이 일방적인 효를 강조하는 ‘심청전’과 다른 화소라 할 것이다. 사흘이 되는 날 비로소 음식을 대접하고, 가믄장아기는 부모들에게 자신이 딸이라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해피엔딩이 이 책의 결말이다. 그러나 원작인 ‘삼공본풀이’에서는 가믄장아기의 주체적인 ‘선택’의 문제와 자식들이 ‘부모로부터 독립’을 통하여 비로소 하나의 존재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고 있다고 하겠다. 때문에 가믄장아기가 무속신화의 주인공이 되어 신으로 좌정하여, 운명을 개척하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