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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최근 메스머에 관해서는 두 번이나 책을 통해 접했다. 리디아 강과 네이트 페더슨의 《돌팔이 의학의 역사》, 톰 필립스의 《진실의 흑역사》.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메스머, 혹은 메스머리즘에 관해 이 두 권의 책은 매우 부정적이다. 《돌팔이 의학의 역사》에서는 돌팔이 의사였고, 《진실의 흑역사》에서는 거짓말쟁이였다.
그러나 로버트 단턴의 《혁명 전야의 최면술사》에서는 그의 의미가 달리 전해진다. 물론 메스머의 치료 기술은 사기에 가까운 것으로 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하지만 그가 활약한 시기에 그의 기술과 생각(나아가 철학)이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데 대해 분명 분석해야 해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그는 단순한 사기꾼, 돌팔이 의사만은 아니었다: “메스머주의가 오늘날에 터무니없어 보인다고 해서 역사가들이 이를 외면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메스머주의야말로 1780년대 글을 아는 프랑스인들의 관심에 완벽히 부합했기 때문이다.” (33쪽)
메스머주의가 가장 맹위를 떨친 것은 18세기 후반 프랑스혁명 전이었다. 오늘날 프랑스혁명의 원동력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프랑스 철학자들의 계몽주의를 떠올리고, 가장 결정적인 저서로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이 문맹인 프랑스 대중들, 나아가 글을 아는 이들이라도 그 따분한 책을 널리 읽었을 리가 만무하다. 심지어 로베스피에르 같은 이도 “1789년 이전에 《사회계약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혁명을 예견하지 못했던 프랑스인들은 정치 이론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메스머주의와 그 밖의 비정치적인 다른 유행들을 화제로 삼았다. ... 무엇 때문에 <사회계약론>같이 어렵고 당찮아 보이는 추상적인 관념들과 씨름하며 괴로워하겠는가?”, 75쪽) 프랑스인들은 연애소설에 열광했고, 메스머의 치료 기술이나 열기구 같은 눈에 보이는, 새로운 과학에서 앙시엥레짐의 부조리한 구조를 타파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메스머는 독일의 의사였다. 그는 이른바 ‘동물 자기론’을 주장했고, 자석 없이도 자성을 띤 유체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인정받지 못한 그의 치료법은 1778년 파리에 도착한 이후 프랑스인들의 열광적 반응을 얻어냈다. 물론 과학아카데미와 같은 과학자들과 의사들은 그의 치료법에 부정적이었으며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등법원에 의해 제지당했지만). 즉, 그는 기존 권위에 의해 박해받는 인물이 된 것이다. 그러한 상황과 함께 혁신적으로 여겨지는 과학으로 인정한 이들에 의해 이른바 메스머주의로까지 이어진다. 마라, 카라, 브리소 등과 같은 나중에 프랑스혁명의 기수가 된 이들이 바로 메스머주의자였다: “메스머주의는 지나가는 유행 이상의 어떤 것을 표상했다. ... 메스머주의는 동시대인들의 태도의 핵심을 파고들어 과학과 종교가 만나는 모호하고 사변적인 영역에서 권위가 필요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101쪽)
그렇게 그것이 과학적으로 성립하는지, 하지 않는지와 관련 없이 메스머주의는 프랑스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로버트 단턴의 주장이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혁명 이후에도 사그라들었던 메스머주의가 19세기 중반 다시 부활하기도 했다. 심지어 발자크나 위고와 같은 대문호도 메스머주의를 옹호하고 그에 기반한 작품을 썼다고 로버트 단턴은 단언한다: “동물 자기론은 메스머가 1778년 파리에서 그 존재를 선언한 이후 여러 차례 부활을 경험했다. 그리고 《인간 희극》과 《레미제라블》로 파고든 순간 메스머주의는 쓸모없게 된 계몽사상에서 멀어졌다.” (221쪽)
우리는 현대의 관점에서 과거를 평가한다. 메스머의 동물 자기론이 터무니 없이 비과학적이라는 알기에 그 이론에 열광했던 18세기, 19세기 프랑스인들을 이해할 수 없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의 그 시점에서 그 현상을 바라보지 않으면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여기선 프랑스혁명의 진짜 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시각이다. 혁명 전 급진적인 관념들이 어떻게 유포되었는지에 대해 알기 위해선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후대 사람들이 허구를 읽는 지점에서 18세기 프랑스인들은 사실을 읽었다.”(38쪽)
* 참고로 로버트 단턴은 독자들이 메스머에 대해 이미 기본적인 것은 알고 있을 것을 전제로 이 책을 전개하고 있다. 그래서 메스머와 메스머주의에 대해 좀 불친절하게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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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년 2월. 한 독일인 의사가 파리에 도착한다. 그의 이름은 프란츠 안톤 메스머. 그는 프랑스에서 단단히 한 몫 벌어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에겐 팔릴만한 것이 있었고 그것은 그만의 특별한 이론이었다. 그는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어떤 유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보지 못했으면서도 발견했다고 주장했는데 증거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뉴튼의 만유 인력을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진 대학자 뉴튼의 말에 따르면 별과 별 사이에도 인력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아무 것도 없는 진공 상태에서 어떻게 힘이 작용할 수 있겠느냐며 그것은 분명 내가 말하는 유체가 인력을 매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당시는 과학이 지식인 계층에게 호사가의 취미로 널리 유행하고 있어서 그런 식의 과학적인 논증은 쉽게 사람들의 납득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것만이 성공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먹혀들어갔던 것은 바로 다음에 있었다. 그는 그런 유체가 모든 생명체에게도 존재한다고 말했고 인간의 모든 생로병사마저 유체가 주관한다고 설파했다. 유체만 잘 관리하면 암도 치유가능하다고 하면서 실제 치료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그는 치료를 위해 방을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하는 일은 없었다. 환자가 그 방에 들어가서 만나는 것은 기이한 별자리들이 수놓인 벽을 배경으로 거울들이 반사하는 특이한 빛과 이상한 소음 그리고 부드러운 하모니카 연주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자신의 병이 치료되었다고 고백했다. 메스머는 그 방의 모든 것은 인간의 유체를 자극하고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 말했다. 완치의 고백이 이어지자 프랑스 전역에서 메스머의 인기가 폭발했다. 라파예트, 니콜라 베르가스, 장 루이 카라 그리고 자크 피에르 브리소등 그를 옹호하고 뒤따르는 지식인들도 늘어났다. 수없이 몰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메스머는 많은 환자들을 한꺼번에 치료하는 '위기의 방’을 만들었고, 아예 사람들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통 같은 것을 대량으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그래도 인기는 꺾일 줄 몰랐고 시중에는 어느새 가짜 통들이 속출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메스머의 치료 방법이 기존 의학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 보도했다. 그러니 프랑스의 의학계가 메스머를 곱게 볼 리 없었다. 메스머와 의학계 간에 유체의 실체와 치료의 진실을 두고 대대적인 공방이 벌어졌고 결국 우리도 잘 아는 화학자 라부아지에와 벤자민 프랭클린까지 가세한 위원회가 메스머의 주장을 검증했다. 결론은 ‘유체를 확인할 수 없다’로 났고 바로 기득권 지식인들의 대대적인 공세에 밀려 메스머는 프랑스 바깥으로 추방되었다. 이것이 정확히 프랑스 대혁명 11년 전에 일어난 메스머 유행의 전말이다. 로버트 단턴의 책, '혁명 전야의 최면술사'는 바로 이것을 담는다. 단순히 상황을 독자에게 알리는 것은 이 책의 목적이 아니다.
미국의 유명한 유럽사 학자인 로버트 단턴은 해바라기 같은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프랑스 대혁명 하나만 바라본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인다. 그에게 프랑스 대혁명은 하나의 기적과도 같다. 당시 프랑스 민중 대부분은 문맹이었다. 프랑스 혁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종종 루소와 같은 지식인들의 책들이 혁명으로 이끄는 선구자 격이 되어 민중이 들고 일어나는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말한다. 지식인들의 언어와 논리가 없었다면 굶주림으로 마구 들끓고 있었던 체제에 대한 민중의 분노도 혁명으로 쉽게 결집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프랑스 민중은 그 책들을 읽을 수 없었다. 거기다 당시의 민중은 오래도록 왕정에 익숙해져 있었다. 프랑스 혁명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민중은 왕의 손만 잡아도 자신의 병이 치유될 것이란 믿음이 널러 퍼져 있었다. 마르크 블로크의 ‘기적을 행하는 왕'은 당시 그런 믿음이 기층 민중에게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으며 오래도록 신앙처럼 뿌리내리고 있었는지 잘 보여 준다. 왕은 민중에게 태양왕 루이 14세가 천명한 것처럼 거의 신과 같은 존재였다. 무지와 빈곤에 찌들었던 프랑스 민중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빈곤층과 저학력 소유자들이 박근혜를 더 많이 지지하는 것과 똑같이 듯 전통적 권위에 맹목적으로 순응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은 신과 같은 왕을 단두대로 보내는 혁명을 일으킬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단턴에게 프랑스 혁명은 기적이었고 그 기적을 가능하게 만든 것을 단턴은 쫓았다. 그는 수많은 의문을 쫓는다. 혁명으로 향하는 움직임을 선도했던 지식인들의 사상들은 과연 어떤 식으로 민중에게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압도적인 문맹 상황으로 볼 때, 책이 그 역할을 할 수 없었다면 분명 다른 경로가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민중 스스로 혁명의 주체로 성장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는 오래도록 거기에 천착하면서 마치 CSI와도 같이 끈질기게 그 흔적과 징후를 추적했다. 그는 정말로 태양만 바라보며 꽃봉오리를 돌리는 해바라기 같았다. 이번에 나온‘혁명 전야의 최면술사'를 읽고나니 더욱 그렇게 여기게 되었다. 이 책은 68년에 나온 로버트 단턴의 첫 책인데, 여기서 부터 메스머주의와 프랑스 혁명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마치 해부하듯이 상세하게 분석하여 어떻게 혁명 사상이 민중에게 광범위하게 유포될 수 있었는지 그것을 밝히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턴은 일단 지금의 상식으론 얼른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메스머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로 우리의 시각을 교정할 것을 권한다. ‘메스머주의가 오늘날에 터무니없이 보인다고 해서 역사가들이 이를 외면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메스머주의야말로 1780년대 글을 아는 프랑스인들의 관심에 완벽히 부합했기 때문이다.(p. 33) 단턴은 당시 프랑스에서 과학이 왜 인기가 있었는지를 밝혀 프랑스가 혁명까지 가는 여정에 있어 메스머주의가 했던 역할을 드러낸다. 그 때 과학은 열기구나 비행기등 민중들에게 신기한 눈요기 거리들을 맣이 제공했다. 그런 실험이 있다는 소식이 신문에 보도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구경했다. 그들에게 그 광경은 경이였고 오로지 신을 중심으로 돌았던 세계에 인간의 위대함이 거대한 지진을 일으키는, 한 마디로 자신의 세계관이 전복되는 체험이었다. 다수의 농민들은 하늘 높이 올랐다가 내려온 열기구에서 나오는 사람에게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당신은 인간입니까? 신입니까?(p. 49) 이제 왕은 신이 아니었다. 과학자가 신이 되었다. 왕족이나 귀족들조차 그들이 보여주는 실험을 지상에서 한 명의 구경꾼이 되어 쳐다보았다. 과학은 엄격하게 나뉘었던 신분 제도에 평등을 가져왔다. 퐁텐이라는 이름의 한 평민 출신 젊은이는 1784년 1월 19일 리옹을 막 출발한 몽골피식 열기구에 뛰어들었고 왕자, 백작, 기사 그리고 그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다른 유명인사 승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지상에서는 내가 당신들을 우러러보았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대등하다.”프랑스의 젊음을 일깨운 행동이었다.(p. 227) 이것은 그만큼 민중 자신을 사회의 주체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과학은 신의 섭리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저절로 이뤄지는 질서를 보게 했으며 질병도 악마의 시험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기도로 해결하기 보다는 그 원인을 스스로 곰곰이 따져보게 만들었다. 즉 모든 현상을 대하는데 있어서 주체로 행동하게끔 자극한 것이다. 단턴은 이런 식으로 루소의 책보다 구경거리로써의 과학이 민중을 더 계몽했다고 본다. 메스머주의는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메스머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과학은 민중에게 유리되어 있었다. 그것은 복잡한 계산이었고 어려운 수식으로 구성된 논리라 민중이 접근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민중에게 허락된 것은 구경으로 참여하는 것 뿐이었다. 그랬던 간격을 바로 메스머주의가 좁혔다. 이론에 어느 정도 비합리적인 면과 신비한 면이 있었던 덕분에 정통 과학이 요구하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의 짐을 덜 수 있었고 자연히 민중의 언어로 보다 손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로버트 단턴은 메스머주의가 정확히 과학이 사이비 과학과 신비주의로 변해가는 스펙트럼의 중간 부근에 자리잡고 있다(p. 68)고 말한다. 그렇기에 메스머주의는 과학이 열어놓은 민중을 주체로 만드는 길을 더욱 가속화 시킬 수 있었다. 실제로 이런 메스머주의의 힘을 일찍 알아본 자들이 있었다. 바로 당시 프랑스에 있었던 급진주의자들이었다. 지금 이 체제로는 더 이상 안되니 앙시앙레짐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급진주의자들에게 메스머주의는 참으로 매력적인 물건이었다. 과학이 지닌 민중을 주체로 자각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민중이 가장 손쉽게 받아들이는 과학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메스머주의를 통해 자신들의 급진 사상을 민중에게 전파시키려 하였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나중에 메스머주의는 푸리에와 생시몽등 초기 사회주의 운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로버트 단턴은 이런 식으로 주류 역사에서 그저 한 순간의 해프닝으로만 간주했던 메스머주의와 프랑스 혁명 사이의 연결 고리를 촘촘히 발굴해 낸다. 그리고 소개되는 수많은 사료와 인용이 단턴의 견해를 꽤나 설득력있게 만든다. 프랑스 학자 르네 지라르는 모델론을 말한 바 있다. 쉽게 말하자면 혁명 같은 거대한 이념으로 기층 민중을 움직이기 위해선 그들이 쉽게 이해하고 모방할 수 있는 중간 모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단턴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르네 지라르의 모델론이 떠오르게 된다. 프랑스 대혁명은 바로 그런 중간 모델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메스머주의가 바로 그런 중간 모델이었다. 여기서 자신들의 사상이 문맹이 많은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일찍 깨닫고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이유로 편견없이 메스머주의를 받아들인 프랑스 급진주의자들에게 주목하게 된다. 그들은 대의를 위해 엘리트로서의 자존심은 던져 버리고 어떻게든 민중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민중이 처한 상황과 그들에게 놓인 현실적 한계를 먼저 헤아리고 그걸 그대로 인정한 다음 그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자신들의 대의를 설득하려 한 것이다. 이런 급진주의자들의 모습을 보다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다들 유행가의 후렴구처럼 국민, 국민 하지만 정작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대의를 몰라준다고 오히려 국민을 타박한다. 설득하려는 최소의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만이 진리이며 국민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오해라고 공박할 뿐이다.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제발 ‘혁명 전야의 최면술사’를 읽어서라도 자신의 대의를 실현하려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꼭 좀 깨닫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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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과 최면술이라는 기묘한 조합이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인류최고의 혁명에 최면술이라는 이질감을 주는 단어가 끼어들 자리가 있을까? 최면술로 표현된 이 책의 주제인 "매스머주의"는 어딘지 모르게 우리에게 익숙하다. 동양의 기치료와 유사해 보이기도하 어떤 종교단체에서는 아직도 활용한다고 하는 대체의학의 프랑스판이다.
21세기를 기준으로 하면 그리고 지금의 과학과 의학을 "참"이라고 본다면 매스머주의는 말도 안되는 허황된 사이비 주장이지만 매스머주의가 나온 시대가 중요하다. 바로 프랑스 혁명 직전의 십 년동안이 매스머주의가 전성기였다. 1789년 직전 프랑스는 앙시애레짐이라 불리는 사회적 모순이 폭발직전이었고 계속되는 자연재해에 기근은 일상이었다. 혁명은 준비가 되었고 불씨만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 때 프랑스사람들에게 퍼져있던 정신은 사회계약론같은 고차원적인 이론이 아니라 매스머주의였다.
자연재해와 기근 그리고 계급적 모순이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민중은 매스머주의에 의지했고 권력층은 이를 경계했다. 기득권층에 견제를 받자 오히려 급진주의자들을 모이게 만들었고 혁명의 불쏘시개가 되었다. 비록 매스머주의는 흐지부지 사라졌지만 말이다. 혁명이 이루어지는데에는 이념이니 테제니 하는 고차원적인 이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무언가다. 비록 그것이 사이비일지라도. * 이 책 초반부에 나오는 유럽의 과학 열풍과 매스머주의 소개부분에서는 실실 웃으면서 "별 미친놈들이 다 있네"라는 말이 입에서 흘러 나온다. 중반부에서 좀 지루할 만큼 다양한 프랑스인들의 소개와 활동이 나오면서 이야기는 다르게 전개된다. "뜸금없이 사이비의학이 혁명을 일으키네?!" * 중국정권이 파룬궁을 끝까지 잔혹하게 진압하는데에는 자신들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민중이 의지하고 모일곳을 만들면 안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익숙치 않은 프랑스 18세기 인물들이 쏟아져 나와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는데 읽기 쉽지 않다. * 우리는 어디에 의지하지? 바로 만병통치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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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대 프랑스 혁명 직전의 파리의 분위기 및 시민들의 관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메스머주의라는 최면술적인 치료방법에 대한 주장이 유행하면서 기존의 의학 및 과학계로 부터 공격당하고 순교자 취급을 받는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며 프랑스 혁명에 대한 지적 힘의 원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혁명 발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근거와 시대적 배경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보여주고 있어 신선하고 특이하단 느낌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