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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이 새로운 신화가 되어버린 시대
"계몽이 새로운 신화가 되어버린 시대" 내용보기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 의해 쓰여진 계몽의 변증법은 계몽이 어떻게 우리 시대에 또 다른 야만으로 빠질 수 있냐하는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신화의 시대는 인간이 아닌 신에 의해서 지배되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시기였다. 그러나 오디세이가 바줄로 몸을 묶고 그들에 대해 대항하면서 신화는 인간에 의해서 극복되게 되고 신은 인간에의해 죽게 된다. 결국 이성이 비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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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 의해 쓰여진 계몽의 변증법은 계몽이 어떻게 우리 시대에 또 다른 야만으로 빠질 수 있냐하는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신화의 시대는 인간이 아닌 신에 의해서 지배되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시기였다. 그러나 오디세이가 바줄로 몸을 묶고 그들에 대해 대항하면서 신화는 인간에 의해서 극복되게 되고 신은 인간에의해 죽게 된다. 결국 이성이 비합리적이고 비계량적인 신화의 시대를 극복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이성의 힘은 결국 현재에 이르러서 물질만능주의와 더불어 실증주의의 합리성이라는 허울 속에서 인간을 탈 인간화 시키고 있다. 인간적인 humanity는 사라지게 되고 모든 것은 돈과 권력이라는 사회적 산물에 의해서 측정되고 평가되게 된 것이다. 각박한 경쟁의 논리에 추동되는 현대인들에게 계몽의 변증법은 어떻게 하면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가하는 하나의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이성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리고 계몽이 또 다른 신화가 되어버린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계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계몽의 변증법은 계몽에 대한 이해의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s******7 2001.06.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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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고향마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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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서양인들에게 그리스는 자신들의 영혼의 고향이었다. 그래서 그내들의 문화나 사상이 한계에 부딧게되면 으례 내세웠던 슬로건이 "그리스로 돌아가자!"였던 것이다. 아폴론이 자신의 세력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던 니체시대에도 니체는 그리스로 돌아가자는 스로건을 내걸고 아폴론의 강한 빛만이 그리스의 힘이 아니라는 도전적인 견해를 정력적으로 피력했다. 파토스의 강조!
"돌아갈 고향마저 없어졌다." 내용보기
흔히 서양인들에게 그리스는 자신들의 영혼의 고향이었다. 그래서 그내들의 문화나 사상이 한계에 부딧게되면 으례 내세웠던 슬로건이 "그리스로 돌아가자!"였던 것이다. 아폴론이 자신의 세력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던 니체시대에도 니체는 그리스로 돌아가자는 스로건을 내걸고 아폴론의 강한 빛만이 그리스의 힘이 아니라는 도전적인 견해를 정력적으로 피력했다. 파토스의 강조! 디오니소스의 부활을 강력하게 외쳤던 니체는 주류철학의 기류에 밀려났고, 자신의 고향을 잃어버린 니체는 결국 狂人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디오니소스의 음성', 그 세미한 소리는 이제 우리의 영혼에서 떠날 수 없는 아름다운 공명이 되었다. 하지만 아도르노나 호르크하이머에게는 이와 반대로 시대가 미쳐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미치고 싶어도 미칠 수 없고, 오히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마 자신의 고향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다시 그리스로...... 그러나 그 그리스는 니체가 본 것처럼 아름다운 디오니소스의 세계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신화적 합리성이 승리를 구가하고 있던 또다른 계몽의 세계였던 것이다. 합리성의 전제적인 성격을 그들은 그리스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그들은 또 한번 미친세계의 어미를 그리스에게서 발견했던 것이다. 아마 그들은 또 한번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아도르노는 부정의 변증법을 통해 새 세계에 대한 희망을 나타내어야만 했고, 이후에 우리가 풀어야할 힘겨운 숙제만을 남겨둔 채 생을 마감해야했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이 숙제를 풀어나가다가 하버마스와 같은 긍정성의 학자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하버마스의 기획마저 미완으로 남음으로서 아도르노의 숙제는 여전히 우리의 영혼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근대의 숙제 계몽의 변증법!

[인상깊은구절]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인 상태에 들어서기 보다 새로운 종류의 야만상태로 빠졌는가!
t******3 2000.05.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