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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5편은 광해군에서 인조까지 다루고 있다 아마도 광해군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극과 극이 아닐까 어릴때만해도 광해군을 폭군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 연산군과 광해군을 거의 동급으로 봤었던것같은데 요즘은 그렇지않은것같다 아마도 광해군에 대해 다른시각을 가지게 되서가 아닐까 싶은데 영화 광해의 영향도 있어보인다 사실 광해군이 적장자가 아니었다는것과 광해군의 아버지인 선조가 광해군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는점 우여곡절때문에 세자로 책봉된후에도 영창대군의 등장때문에 입지가 좁아지기도 했던 쉽지않은 광해군이 국왕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않아보인다 그리고 인조반정의 명분이 되었던 폐모살제 무엇보다도 큰 후금과 명사이의 실리외교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결국 반정이 일어나고 광해군은 축출되고 인조가 왕위에 오르게된다 놀라운것은 광해군의 아들은 죽었지만 광해군은 왕위에 물러나고서도 꽤 오래 살아있었다는점이다 어찌보면 멘탈이 강한건지 그후 왕위에 올랐던 인조 사실 왕이 될수없었던 사람인데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셈이다 인조는 임진왜란이후 아직 전쟁이 채 아물기도 전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국난을 맞이한 왕이기도 하고 전례없이 삼전도에서 청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다 정말 지긋지긋하기도 한게 임진왜란 역시 붕당정치가 심화되서 문제가 심각해졌었는데 더 나아지기는 커녕 더 심해졌다는것이다 광해군때 집권당이었던 북인이 반정으로 축출되고 반정을 주도했던 서인이 주도권을 잡고 남인이 거드는 형세가 되었을때 서인은 명에 대한 의리를 강조했으나 의리도 좋지만 명은 이미 국운이 쇠하고 있고 후금은 엄청나게 강하게 새로이 일어나는 나라인데 대체 뭘믿고 후금을 업신여기고 명에 대한 의리만 강조한건지 기병을 앞세운 후금에게 조선의 군사는 당해낼수가 없었을뿐이고 ;;;; 전쟁할 능력은 안되면서 주전론을 외치는 신하들을 보면참 임진왜란 호란을 모두 겪어야했던 백성들만이 죽을 맛이었을것이다 인조에 대한 평가가 박한것도 괜한것은 아닌듯 조선은 이미 기울어가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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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리뷰 이 책은 광해군 세대부터 인조세대까지의 과정을 서술한 책으로 kbs 역사저널 그날의 프로그램의 대화를 기반으로 집필한 책이다. 인조 세력이 반정의 명분으로 내세운 광해군의 죄목은 무엇일까? 바로 숭청배명과 폐모살제라고 한다. 외교와 내치의 실정을 지목하며 숭청배명으로 규정된 광해군의 대외 정책에서 중요한 사건은 1619년 싸얼후전투라고 한다. 후금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중국 동북지역에서 빠르게 성장해 훗날 청나라라는 큰 대국으로 변신하게 된다. 이를 잘 예상했던 명은 더 늦기 전에 제압해야겠다고 판단하고 후금의 수도 혁도아랍을 치기로 결정했다 이 전투에 명과 후금의 운명이 다시 말해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의 미래가 달려있었다. 그럴만도 한 것이 그 당시 조선에게 명나라는 임진왜란때 우리 조선을 도와줬던 하늘과 같은 천군의 존재였기때문에 명나라의 명령을 거스르기란 쉽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그 당시 사대부들은 명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태도로 임했고 당시 최종 결정권자였던 광해군은 망설였다. 냉엄한 국제 질서와 당시의 세력 판도를 정확히 캐치 했던 사람은 광해군뿐이었지만 여론의 못이겨 결국 파병은 끝내 이루어졌다. 그 대신 상황을 봐 피해가 커지기 전에 항복하라는 광해군의 지시를 받는 당시 도원수 강홍립은 패색이 짙어지자 즉각 본대를 이끌고 투항했다. 이런 광해군의 외교정책은 사대 의리와 재조지은을 저버린 배덕이라고 생각할 뿐이 었기에 훗날 반정의 빌미를 제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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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몰랐다는 사학과 학생이 있더라. 어차피 패자의 역사는 그닥 관심있게 보는 편이 아니니까. 그래도 역사저널 그날은 다양한 패널들이 참가하고 있고, 각자가 호기심이 생기는 점을 조사해 본 후 이야기를 하는지라 이런 특이한 이야기들이 떡밥 투척되듯이 던져지는 편이다. 고생해서 성공한 인간들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그건 아랫사람이었던 자신의 날을 생각 못하고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이 자신을 공격한다 생각한다는 점이다. 결국 자기를 부둥부둥하는 사람까지 잔인하게 내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아싸되는데 본인은 그걸 못 느낌 ㅇㅇ.. 내가 보는 광해군은 그런 존재다. 그런 점에서 인조의 기분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하는데 책에서도 나오듯이 그 분도 정치를 너무 말아드셔서... 그냥 적당히 말아드셨으면 광해군이 그렇게 유명해지지도 않았으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인조도 어느 정도 인간성이 있는 사람으로 세간에 평가되었을 테고. 역사에 '만약'이라는 말은 없다고 하지만 말이다. 역사저널 그날에서 본 것으로 추론해보면 입은 과묵한데 비밀을 잘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도를 넘어서 남의 사려깊은 말까지 묵살해드시는 벽창호이셨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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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당 아는 사람은 아ㅈ...(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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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허균허난설헌기념관이 강릉에 있지요. 혹시나 관광가실 분 있다면 이쪽도 꼭 들러보시길. 구석에 있지만 의외로 잘 만들어서 생각보다 오래 둘러보다 갈 수 있다. 생가터도 굉장히 이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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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외모와는 달리 머리 좋고 사교관계에 능숙하고 남자 잘 다루는 악녀가 좋은 것 같다 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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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을 쫓아낸 인조에 대한 평가가 어떨까? 광해군을 따르는 이들을 동인 중에 북인이라고 학자들은 분류한다. 임진왜란 당시 분조를 구성하여 위태한 국정을 바로 잡아가는데 큰 공을 세운 이가 광해군이다. 무력한 관군을 대신하여 곳곳에서 의병들이 일어나 조선에게 승전보를 알려왔다. 경상도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의병들이 '북인'들이었다. (정인홍, 곽재우) 그래서 임진왜란이라는 큰 위기 속에서 조선은 회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병자호란에서는 의병들의 활약이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들은 여러 가지 근거로 상황을 설명한다. 첫째, 임진왜란 후 선조는 의병장들을 역모 혐의를 씌워 유배를 보내거나 처형을 한다. 결국 의병들이 나라를 위해 일어날 환경을 완전히 꺽어 버린다. 둘째, 광해군이 서인을 대표하는 인조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난다. 북인의 입장에서는 억울했다. 병자호란 중에 남한산성에 갖힌 인조를 위해 그 어느 누구도 의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북인들은 임진왜란 이후 철저히 학습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행동들이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를 경우 역모로 둔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선 중기까지 훈구세력에 의해 국정이 운영되었다. 사림은 철저히 배격당하고 숙청당해 왔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다수의 사림 세력이 국정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벼슬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벼슬을 바라는 사림들은 넘쳤다. 그 결과 사림 사이에서 파가 나뉘게 되었다. 동인과 서인, 동인에서는 북인과 남인, 북인에서는 소북파와 대북파. 서인은 후에 소론과 노론으로 갈린다. 각자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집단적 행동을 했지만 분쟁의 시작은 '밥그릇'싸움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인조 치리 당시 명은 쇠퇴하고 청은 강성해지는 동아시아 흐름을 뒷전으로 미룬 체 서인들은 사대주의 사상에 빠져 국가의 위기를 고스란히 맞이하게 된다. 인조의 무능력한 리더십 뿐만 아니라 참모들의 자기 이기주의적인 공직태도 결과로 백성들만 피해를 받게 된다. 조선을 마비 시키기 위해 청나라는 치밀하게 공격 계획을 세운다. 강화도로 피난갈 것을 예상하여 퇴로를 막고 명과 조선에서 잡은 포로들을 사용하여 수군의 역할을 대신하게 한다. 마침내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갈 곳을 찾지 못했고 강화도에 간 세자일행들은 포로로 잡힌다. 광해군과 인조. 역사에는 가정이 없겠지만 광해군이 계속해서 조선의 국왕으로 치리했다면 긴박한 동아시아 외교에서 조선이 어떻게 자리할 수 있었을까 궁금증을 남게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금의 정세가 인조가 살았던 그 시대와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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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폭군 하면 떠오르는 왕은 광해군과 연산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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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은 광해와 인조까지의 그날이다. 최근 들어 다시 평가되고 있는 광해, 물론 영화 광해 왕이된 남자로 인해 그러한 부분이 없지 않아 많이 반영된 듯 하다.
역사저널 그날은 그동안 교과서에서만 보고 배웠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도 해석 가능 하게 해주는 책인 듯 하다.
각 분야의 다른 시선에서 그날을 해석하고 역사적 사실을 설명해 준다. 그러나 그날의 매력은 아마 자기 자신만의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인 것 같다.
각 패널들이 말해주는 부분도 역시 같다. 자기 자신만의 해석을 이야기 하고 토론하지 서로 주장을 가지고 싸우지는 않고 해석도 확 하지 않는,,,
그날 시리즈는 계속해서 읽어도 읽어도 좋은 역사를 즐겁게 다가갈 수 있게 한 책 중의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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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톡이 아니었다면 역사저널 그날 출판소식을 모를 뻔 했다. 광고를 뻔질나게 하는 책이 아니다보니 출판 소식을 알기가 쉽지 않다. 아이와 함께 꼭 챙겨보는 역사저널 그날. 요즘은 고려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책은 아직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다. 5권은 광해군에서 인조까지의 시대를 다루고 있다. 광해군은 연산군과 동급으로 망나니 왕으로 취급되다가 최근 영화 <광해> 덕분에 재평가를 받고 있는 왕이다. 광해군은 즉위 초기와 말기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분명히 나눠서 평가를 해야 할 인물로 생각된다. 어쨌든 광해군은 인조 반정에 의해 왕권을 잃었지만 제주까지 쫓겨 가 천수를 누렸다. 인조반정의 명분은 내치와 외교의 실정이다. 우리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실리외교를 펼치려던 광해군이 내려오면서 운을 다해가던 나라 명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게 되고, 그 이후의 외환을 자초했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5권에서는 8번의 그날로 돌아가본다. 첫 번째가 앞에서도 말한, 광해군이 왕이 되지 못한 사연들을 알아본다. 영화 <광해>는 말 그대로 허구. 하지만 그가 시도했던 많은 것들까지 잊혀질 수는 없을 것 같다. 두 번째는 우리가 익히 드라마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허준에 관한 것. 허준이 동의보감을 완성하고 의학적인 기틀을 마련한 위대한 인물인 것은 사실임에 틀림없지만, 드라마의 대부분은 허구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유복하게 자라 특채 형식으로 조정에 들어간 허준은 어떻게 보면 많은 드라마 애청자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줄 수도 있겠다. 예진아씨 역시 허구의 인물이며 실세들과 어울렸던 금수저였다니 말이다. 우리가 선조에 대해서는 안 좋은 기억이 많지만, 동의보감에 관하서만큼은 선조의 공이 상당히 크다고 한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겪으면서도 의서 편찬에 많은 공을 들였고,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세 번째는 허균에 관한 그날. 의혹에 싸인 허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음모론이 나올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치적 허균은 분명 미숙하고 불완전한 인물이지만, 성리학 외에 유교, 불교, 천주교까지 받아들인 허균의 사상적 개방성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신병주 교수의 인물평이다. 네 번째는 인조, 반정을 일으킨 그날에 대해 알아본다. 너무나 쉽게 반정이 성공해 당사자까지 어이없어했다는 인조반정 그날. 왕권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는 그날의 이야기들이었다. 다섯 번째는 이괄의 난에 대해 알아본다. 인조반정 당일 임시 대장에 추대될 만큼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이괄. 하지만 공신책정에서 한 번 서운했고, 인조가 평안도로 보낸 것에 또 한 번 상심하게 된다. 인조는 믿을만한 인물을 변방으로 보내 국경을 튼튼하게 하고자 했던 것이라 떠나는 날 배웅을 나갈 정도로 그를 신임했지만, 그는 자신이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났다고 믿는다. 게다가 역적의 음모를 꾸미지도 않았는데 계속 상소가 올랐고 하나뿐인 아들을 한양으로 보내야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자신은 역적이 아니라고 아무리 항변해도 믿어주지 않자 결국 난을 일으켜버린 이괄. 한양을 버리고 왕이 도망을 가야할 정도로 그 난의 규모는 거셌지만 방심한 틈을 타 관군에게 패배함으로써 결말을 맞이하고 만다. 그 이후에도 인조는 계속 불안한 왕권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특히 인조 정권이 불안하다보니 군사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훗날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 한 장군은 “습진(진법 연습)을 해보지 못한 것이 정말 안타깝다”고 했을 정도라고. 여섯 번째 그날은 정묘호란의 그날이다. 모문룡 때문에 촉발한 정묘호란. 명을 앞세워 농간을 펼치던 사기꾼 모문룡 때문에 입장이 난처해진 조선이 겪는 치욕적인 사건이었지만 조선의 뒤처리는 안타깝기만 하다. 후금의 아우가 된 조선. 하지만 후금을 속이기 위해 조선은 가짜 인질을 보내기에 이른다.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그날은 병자호란에 대해 다룬다. 남한산성으로 간 이유부터 남한산성을 지키고 있던 승려들의 이야기, 삼배구고두례의 치욕적 항복, 강화도 함락 등에 대해 다룬다. 이 이야기는 TV 방송에서도 패널들이 분통을 터트리며 격론을 주고받았던 내용이라 기억에 많이 남았다. 군주를 잘 못 만난 백성들의 비참함이 극에 달했던 때였다. 조선 전기에 비해 후기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었던터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지만 마냥 즐거워할 수는 없는 내용들이었다. 외교정책을 잘 못 써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리는 행동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역사에서 오늘을 보는 그날의 교훈, <역사저널 그날 5: 광해군에서 인조까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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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 교양프로그램을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게 봤다. 1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읽어오고 있는데 티비랑은 또다른 느낌이다. 티비에서 놓쳤던 부분을 언제고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어려웠던 부분은 책에서 다시 쉽게 쓰여져 있다. 사진같은 자료도 상세히 첨부되어 있어서 마치 그곳에 가 있는 듯한 느낌도 들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렇게 공부하면 참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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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인 임진왜란 편이 마의 구간이었다면, 5권부터는 조선의 쇠락의 초입이라고 볼 수 있었다. 역사를 알기 때문에 임진왜란 이후의 시리즈는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한 번 시작한 일은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 주저 끝에 5권을 읽기 시작했다. 5권의 초반에 다룬 내용은 광해군 치세 후반의 이야기였다. 성리학이 기반이 되는 조선에서 폐모살제는 반정을 제공할 빌미로 충분했다. 거기다 국제 정세를 읽은 광해군과는 다르게 명에 충성하는 것에만 혈안이 된 사대부들은 임금을 끌어내리고자 했다. 이렇게 초반에는 광해군 말기의 상황에 대한 언급을 하고 지나갔고, 훗날 인조가 되는 능양군이 추대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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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5권을 이북으로 구입하였다.역사저널 그날 5권에서는 광해군에서 인조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임진왜란 때 갖은 고생을 다하고 왕조를 수습하려했던 광해군은 인조의 쿠데타에 의해서 왕좌에서 물러난다. 이 후 인조 시기 조선은 두 차례의 호란을 겪는다. 5권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가장 힘든 시기를 다룬다.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조선이 인조반정으로 약화되고 이후 외세에 의해 두번의 호란을 겪는 시기이다. 다른 역사책이 평면적 기술방식으로 역사를 다룬다면, 역사저널 그날 시리즈는 다양한 관점에서 조선사를 다뤄저서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