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주인 없는 대한민국
"주인 없는 대한민국" 내용보기
함경북도는 어디에 붙어있을까 독도는 그리고 그 상황은 어떨까   대통령이 제주도를 다른나라에 넘겨준다면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청와대는 어느 도시에 있을까 그럼 간도는 어디에 붙어 있고 어떻게 생겼을까   지도의 어디쯤에 존재할까 간도가 우리땅이라고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될까   청와대 국민청원에 억울한 사연이나 독도문제가 올라오면 벌떼같이 달려들어
"주인 없는 대한민국" 내용보기

함경북도는 어디에 붙어있을까 독도는 그리고 그 상황은 어떨까

 

대통령이 제주도를 다른나라에 넘겨준다면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청와대는 어느 도시에 있을까 그럼 간도는 어디에 붙어 있고 어떻게 생겼을까

 

지도의 어디쯤에 존재할까 간도가 우리땅이라고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될까

 

청와대 국민청원에 억울한 사연이나 독도문제가 올라오면 벌떼같이 달려들어도

 

간도문제가 올라오면 '너나 잘하세요'다.

 

우리는 주인의식이 없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다.

 

언제 뉴스에 조선족학교에서 한글교육을 못시키게한다는 보도를 보고 그런가보다한다.

 

일제시대 국어교육을 금지시킨거에 대해선 자자손손 분개한다.

 

만약 일본에 있는 한국학교에서 한국어 가르치지 말라고 일본정부에서

 

지시를했다면 바로 일어날것이다. 또 아베총리가 대통령수행단을 두들겨팼다면

 

전국민이 당장 달려갈 것이다.

 

중국에서 두들겨팬다 조용하다 한국어 못가르치게한다 조용하다.

 

중국은 한국의 부모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조선의 건국세력이 만든

 

소중화사상에 쩔어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 한반도를 집어삼키려

 

한발한발 다가서도지도 모르는 우린 점점 익어가는 냄비속

 

개구리들이다.

 

미군이 철수하면 한국은 공산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이 된다.

 

이미 북한은 중국의 젖병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능력을 상실했다.

 

1962년 간도를 둘러싼 북한과 중국사이의 비밀협상인 조중변계조약이 있었다.

 

조종변계조약은 유엔의 등록은 물론 공식적인 발표도 하지 않았다.

 

1962년 한반도 38선 이북의 북한정권은 맹방관계인 중국과 간도문제를

 

협상하여 중국영토로 인정했다.

 

1962년 조중변계조약은 1909년 간도협약을 북한이 그대로 따른것으로

 

조중변계조약은 비밀리에체결되어 한국이 조약체결 상황을 알지 못했으므로

 

조중간의 국경협정이 전적으로 합법적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 발단은 1905년 일본이 대륙정책의 현안이었던 조선합병과 만주에 대한

 

권익사업의 차질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철도부설권과 석탄채굴권을

 

확보하는 교환조건으로 간도를 중국영토로 인정하고 말았다.

 

1905년 선후장정은 양국정부로부터 조약권을 위임받은 정식조약이

 

아니었으므로 법적효력을 갖지못하는 임시조약에 불과했다.

 

간도가 한국땅이라는 근거는 17세기부터 이곳은 봉금지역이었고 게다가

 

조선인들이 중국인들보다 먼저 간도지역을 실효적으로 점유하였으므로

 

영토취득 요건에 부합하며 현행국제법의 중간선개념으로 본다해도 토문강

 

이남까지의 지역은 조선영토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1712년 정계비가 되고 토문강을 경계한다고 해석된다.

 

백두산정계비에는 [대청]비로서 [동이토문],[서위압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대청]국이 세운비라는 의미이다.

 

백두산정계비의 기록대로 [동이토문,서위압록]으로 국경선을 정한다면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송화강-흑룡강-태평양 동안을 잇는선이

 

한중양국의 국경선이된다.

 

현재 중국영토의 60%는 남의 나라땅으로 티벳,내몽골,간도,신장위구르,영화회족등

 

강압적인 식민통치를 이어가고 있다.

 

유고사태,,팔레스타인문제,르완다등 여러곳에서 분쟁이 일어난다.

 

이유는 하나다 민족주의 중국에선 지금 민족주의가 한참이다.

 

정부에서도 부채질하고 있다.

 

지금의 중국이 강압지배하고 있는 식민지는 중국것이라는 하나의 중국을 위하여다.

 

그 시작은 어디일까?

 

1989년 4월 15일 후야오총서기의 사망으로 시작된 민주화운동은 계엄군의

 

천안문광장 진압으로 한달여만에 끝났다.

 

'관다오' - 정부관료와 기업가 or 상인등이 유착하여 전매차익을 나누어 먹는다는 말로

 

여기엔 태자당이라는 고위 당정간부의 자제들도 끼어있었다.

 

국제적으로는 소련,폴란드,헝가리에서 진행된 민주적인 정치개혁과 국내적으로는

 

부패에 대한 국민의 불만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1989년 5월 13일부터 학생지도자의 주도로 천안문광장에서 1,000명의 학생이

 

단식에 돌입하였고 이것이 끝내 유혈진압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1989년 11월 동독의 베를린장벽의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공산당이 붕괴하는데

 

폴란드는 10년,헝가리는 10개월,동독은 10주,체코는 10일 루마니아는 10시간이

 

걸렸을뿐이다.

 

공산주의로 뭉쳐서 개방해야되는데 이것이 민주화운동인 천안문사태로 난관에

 

처한 공산당은 국민의 단결을 위한 접착제로 민족주의를 도입하여

 

국민의 단결을 유도한 것이 지금의 중화민족주의로 연결된 것이고 하나의

 

중국을 외치는 근본원인이 된 것이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단체는 조직의 합법화를 요구하는데 그렇게되면 중국에도

 

'반대파'가 만들어지고 공산당을 반대할 기초가 놓이게된다.

 

등소평은 사회주의의 본질은 생산력 해방이고,생산력 발전이며 착취를

 

소멸하고 양극화를 해소하며,최종적으로 공동으로 부유함에 도달하는거라하였다.

 

경제가 장기간 동안 곤경에 빠지면 정치는 안정될 수 없고 사회도 안정될 수 없다.

 

민주화운동초기에는 교내학습모임에서 100만명이 참여하는 시민운동으로

 

확장하였으나 학생지도부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무엇보다 운동의 주도세력인 학생과 지식인이 엘리트주의 혹은 전통적인

 

사대부의식이 매우강했다.

 

그래서 이들은 노동자와 자영업자등 다른 사회계층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려는

 

노력도 부족했다.

 

그 결과 정부는 별 어려움 없이 학생과 지식인을 고립시키는데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무력집압할 수 있었고 생각보다 빨리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또한 중국내에서는 소련이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에서 발견되는 시민사회가

 

부족했다.

 

노동조합등 군중단체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노동자는 공산당의 강한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

 

농민도 마찬가지였다.

 

공산당은 농민의 지지와 참여를 통해 혁명에 성공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는데,

 

노동자의 노동조합과 같은 농민대중조직은 없었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농민이 민주화운동에 집단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나 방법은 많지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1989년의 민주화 운동은 대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나설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운동의 주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운동은 오로지 학생만의 운동이었다.

 

그런데 학생이 민주화 운동을 성공적으로 주도할 수는 없다.

 

한국등 제3의 민주화물결을 경험한 국가들은 학생이 운동의 촉발과 추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전체상황을 파악하여 활동계획을 수립하고,집권세력과

 

민주제도의 도입을 둘러싼 협상을 벌이는등의 역할은 정치조직과 사회단체의

 

몫인데 중국에는 바로 이것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국정부는 국제적으로는 소련및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국내적으로는 천안문사건의 영향으로 설득력이 매우 약화된 사회주의 이념을

 

대신하여 국민통합을 외부인자로 돌리기 위해 민족주의가 공산당의 통이념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중변계조약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밀공개로하고

 

있어 조약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조중변계조약'은 비밀조약으로서

 

양국간에는 인정되나 국제법상으로는 자격이 미흡하고 국제법상으로는

 

효력을 갖지 못하므로 통일 한국이 그대로 계승할 수 없는 조약이다.

 

북한도 중국에 조중변계조약을 체결한 것은 '간도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미해결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던 것이다.

 

남한에선 어땠을까 박정희정부는 남북이 통일된 이후 간도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하여

 

간도문제를 조사하는등 통일한국에 대비하고 있었으나 김영산대통령이 모두 폐기했고

 

반기문 외교부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간도가 우리땅임을 주장하는 입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했지만 노무현정부는 중국정부에 대해 역사인식에

 

있어서는 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동의를해 한국의 간도문제를

 

더욱 불리하게 만들었다.

 

민족주의라는 접착제를 이용해 국민의 단결을 이끌려는 중국정부를

 

상대로 간도문제를 해결해야하는 과제를 남한정부는 안고 있다.

 

간도협약은 침략국가였던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체결된 조약이었으므로 무효인

 

것이다.

 

방법은 하나 흡수될 경우 흡수된 국가의 조약은 종료되며 흡수한 국가의

 

조약만이 흡수된 국가의 영역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참고서적

 

톈안먼사건

대쥬신을 찾아서1,2

동아시아영토분쟁의 패러다임

국운풍수

욕망하는 지도 

 

 

88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21.01.1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개인풍수
"개인풍수" 내용보기
제목 :  조선왕조는 명나라의 괴뢰정부였다.고려 우왕은 요동(랴오닝성)의 영유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성계를 요동으로 보낸다.이성계장군은 왕이 될 욕심에 군대를 돌려 고려왕조를 멸망시킨뒤 왕위에 오른다.(욕망하는 지도)여기까지는 역모세력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쳐들어오는 명나라 군대를 막을 방법은 없다.♡♡싸우러 나가자니 고려 잔존세력이 들고 일어날 것이고 그냥 있
"개인풍수" 내용보기
제목 :  조선왕조는 명나라의 괴뢰정부였다.


고려 우왕은 요동(랴오닝성)의 영유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성계를 요동으로 보낸다.

이성계장군은 왕이 될 욕심에 군대를 돌려 고려왕조를 멸망시킨뒤 왕위에 오른다.(욕망하는 지도)

여기까지는 역모세력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쳐들어오는 명나라 군대를 막을 방법은 없다.♡♡




싸우러 나가자니 고려 잔존세력이 들고 일어날 것이고 그냥 있자니 먹힐것이고

결론은 명나라가 흡족해할 선물을 주어야한다.

왕과왕비의 책봉권과 세자와 세자빈의 책봉권도 넘겨주고 요동의 영유권도 포기하고

공녀부활,환관상납,조공시작. 국호도 명나라에서 하사한 이름을 사용한다.

동국여지승람에서 동국도 중국의 동쪽에 붙어있는 중국의 식민지란 뜻이다.(전통생태와 풍수지리)☆☆





소인이 뭉치면 군자도 쓰러뜨릴 수 있다고 고려 왕씨들을 모두 수장시키고 이성계장군의

손발이 되어 이 모든 일을 처리한게 정도전인데 그는 대한민국에서 

위인의 반열에 올라있다.♡♡





한확의 누이는 영락제가 죽었을때 순장까지 당하고 공녀는 세종과 세조때에도

계속 보냈고 연산군때도 갔다.

고려복원 세력에 대한 학살도 세조때까지 있었다고한다.

중국으로부터 독립했다는 의미의 독립문도 1895년 중국은 은혜를 뜻하는 영은문이

헐린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일본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인데

어떤 사람들은 초등학교 여학생들에게 3.1운동때 옷을 입혀놓고 독립만세를 부르는

퍼포먼스를 시키고 있다.-☆☆




이제 중국은 백두산정계비로 요동이 한국땅이란 것을 스스로 인정했고 박정희대통령은

때가되면 찾으려고 자료를 모았고 김영삼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모든 자료를 폐기처분했고

노무현대통령은 간도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했고(동아시아 영토분쟁의 패러다임)

아우슈비츠등에서 6백만명이 학살된거와 같이 시진핑주석의 주도하에 2백만명의

위구르인들이 수용소에서 생활하고(위구르 디스토피아)♡♡





티베트와 신장을 강제병합해 식민지로 삼은 모택동을 대한민국 사람들은 본받아야한다고

이영희교수는 말하고 있고(自有人)

입바른 논객 유시민씨는 이성계가 역성혁명을했다고 추앙하고 있고(어떻게 살 것인가)

시진핑주석은 한국땅은 중국땅이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중국의 조용한 침공)☆☆





칭기즈칸,을지문덕은 중국인 몽고와 고구려도 중국역사라 교과서에서 (동북공정 고구려사)

가르치고 있는 나라의 대사관에 이재명대표는 찾아가서 잘봐달라고하고 있고

중국은 이런날에도 내몽고,신장,티벳의 독립투사들을 잡아다 신체검사후

신장,각막등을 적출해 외국에 팔아먹고 있다.(국가가장기를 약탈한다)♡♡




문무왕,금나라시조 아골타,누루하치와 같은 성씨인 경주김씨 김연아선수는

문재인대통령이 중국가서 두들겨 맞고와도 아무말이 없고(대쥬신을 찾아서 1,2)

최재천교수님은 터키인의 조상이고 수나라 당나라를 만든 돌궐족이 만든 종이를

중국거라 주장하고 있다.(종이로 사라지는 숲이야기,反중국역사)

정치와 관계없는 분들까지 이성계 괴뢰정부가 만든 중화사대모화사상에 뿌리깊이

세뇌되어 있으니 답답하다.-☆☆
겨울에 자미원88 








풍수에 대한 정의를 촌철살인 형식으로 여러형태로 풀이했다. 아주 좋았다.


일본의 풍수 특히 에도시대의 풍수를 자세히 설명했다 우리풍수와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역사학자 이이화씨 풍수가 고제희씨에 이어 쇠말뚝에 대한 오해 깔끔하게 정리해주신다.


일제가 행한건 도로나 철도로 인한 맥 끊기였지 쇠말뚝이 아니었다.


예로 낙산 청룡사 너머의 채석장 돌로 중앙청만든건 용의 맥을 끊는게 채석장입니다.


야마구치,요시다쇼인,아베신조의 공통점은 책 '헌혈 사랑을 만나다 페이지54'참조하시길


위화도는 회군이 아니라 역모지요 '욕망하는 지도'제리 브리턴 책214페이지 참조


'화령'과 '조선'가운데 '조선'이라는 이름이 아름답고 또 그 유래가 오래되었으니 그 이름을 사용하라


1388년 위화도에서 반란을 일으킨 세력을 찬양하다니 세상에 국호를 남의 나라에 그것도 전쟁을 할 뻔한


적의 수장에게 정해달라고 사정하는 나라가 인간의 역사에서 어디있습니까 자랑스럽나요


임진왜란 직전 일본을 정벌하러간 장군이 반란세력으로 돌변하여 조선왕조를 뒤엎고 풍신수길에게 사신


을 보내어 나라이름 지어달라고하면 기분이 어떨까요 김두규교수님 그렇게 안봤는데 완벽한 사대주의


시네요 이중환 욕할필요없겠네요


우린 교과서에서 고려시대 충아무개 왕들이 공녀보내 조혼의 풍숩이 생겼다고 배워왔습니다.


이건 공민왕떄 없앴고 명과 영토문제로 외교마찰이 일자 우왕이 군사를 일으켜 적국인 명나라를 정벌하려는 걸


명에 뗴주고(핀란드화) 반란을 일으켜 고려는 중국과 대등하다 요동은 원래 고려의 옛땅이란 생각을 갖고 있던 그 시대의


싱크탱크그룹 (83년 아웅산에서 순국한 국가엘리트 김재익,서석재등)을 모두 죽이고 (예를들자면 고려3은


두문불출,고척동,자연도) 500년동안 우리는 중국의 속국(식민지)이라고 지속적으로 세뇌시킵니다.


조선왕조이후 이성계는 다시 공녀제도를 부활시켜 조혼의 풍습이 생깁니다.


내옆에 있는 사람이 화가났을때 나에게보단 다른 사람에게 화난게 낫죠 자신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끊임없이 고려공녀를 들춥니다. 사정변떄도 앞에 모두 깡패가 등장합니다.


'조선시대 궁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페이지51' 김두규교수님 철저한 사대주의자시네요 그렇게 안봤는데


강화도조약 제1조에 일본은 조선은 독립국이 아니라고 명시합니다. 조선이 독립국이어야 먹을 수


있으니깐 즉,조선은 500년내내 외교권이 없는 중국의 지방정부였다는 뜻입니다. 그후 조선은 반강제지만


여러나라와 수교할 수 있게 됩니다.


드라마 대장금을 보세요 조선임금은 황제의 허락이 있어야 직무를 수행할 수 있고 세자는 외교부국장쯤


되는 명나라 사신의 허락이 있어야 세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게 그게 독립국입니까 군사정부시절의


도지사지


또 이성계일파는 우리는 소중화다 작은 중국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소중화사상을 배웁니다.


헌데 중국은 조선사신에게 앞에다 대놓고 너네는 오랑캐나라라고 말합니다.


김정은이 미사일폐기할떄 민심이 무서워 북한주민들에게 남조선 인민들이 북한정권을 차양하고 있다고


말도 안되는 선전을 하는것과 무어가 다를까요


'조선이라는 이름이 아름답고.....'이건 홍무제가 기원전 109년에 한나라가 요동지역을 점령했던 상황을 거슬ㄹㅓ 올라가 권근에게 


요동반도는 중국땅이라는 사실이 역사책에 실려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함입니다.


또 조선은 고대에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도 상기시킵니다.


반대로 히데요시에게 간 사신에게 삼한이 고대에 일본이 지배했다는걸 상기시키고자 '삼한이라는 이름이


아름다우니 국호를 삼한으로 하거라'하면 기분이 어떨까요.


페이지90신라호텔비보등,그림풍수,건물풍수,여러풍수사연들,격언들,왕릉에 얽힌이야기 ,대통령사연까지


노무현대통령사저 집을 뒤로 옮기면 퇴보한다는 풍수가 빠졌네요


이병철회장의 운,둔,근 좋았습니다.


페이지208 배수면가 JYP,YG,SM 좋습니다.


제2롯데월드바람을 뺴먹으셨네요


지도자의 운에 따라 그 나라 운명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


북한 지도자들은 제주혈통이었군요


서복은 중국의 동북공정술책입니다 지금 이어도를 자기땅이라고 주장하는건 들으셨을텐데..


서복은 전설일뿐입니다. 서복 이거 동북공정의 전략적 술책입니다.2008년베이징올림픽개막식떄 '기차영상'이거 티벳공정(중국의


거대한 기차) 패막식때 '일본해'중국이 우리에게 감정이 더 쌓여있을까요 일본과 더 쌓여있을까요


이거 이이제이,원외근공수법입니다. (가까운 오랑캐는 멸하고 먼오랑캐와는 화친한다.)


영화 '진용' 꼭 보세요 김운회교수님의 '대쥬신을 찾아서' 읽어보신후 진용 보시면 섬뜩하실겁니다.


베이징올림픽 진용 모두 장예모감독작품입니다.


탐라는 원라라 14개 말목장중 하나로 명이 탐냈던 땅이기도하고 몽골로 도망치던 원라라황족과 귀족 9백여명을 붙잡아 옥쇄를


빼앗고 태종에게 이들을 제주로 귀양보낼것을 명해 이로인해 제주도엔 지금도 희귀성이 많고 몽고석인상이 이들에 의해


들어와 돌하루방이 된 것입니다.


'대쥬신을 찾아서' 읽어보신후 한,중,일 관계에 대한 개념부터 파악하십시오


김씨를 자꾸 말씀하시는데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

'거란제국사연구'

'노컷,조선왕조실록' - 읽어보신후 인터넷에서1909년 민적법 살펴보십시오


1872년 일본 패번치현과 같이 서민들에게도 성씨를 나누어줍니다.


공자부모성씨검색해보세요 그럼 이분이 동이족이란걸 아실겁니다.


김씨의 쇠금자는 알타이산을 의미하며 흉노의 후예인 김일제의 후손인


 경주김시,김해김씨를 의미합니다 제대로좀아세요


신덕왕후 정릉 설명하실때 '세원지우' 경향일보사 용의눈자리 그래서 고사떄 돼지머리생략


이것도 빼셨네요


페이지336 단종이 죽고 의경세자가 죽고 소릉이 파헤쳐진게 순서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알고있는데


역사공부하다말면 아니한만 못합니다 김두규교수님


서복을 등장시키면 한반도를 거쳐 일본문화가 성립된 것이아니라 제주도를 거쳐 중국문화로 인해


일본문화가 성립이되었다는 논리가 성립이 됩니다.


스사하치만신사 인물화상경과 무령왕릉 매지권의 사람이름 찾아보세요 공통점이 있을겁니다.


또 일본국보제1호는 녹나무로 만들었는데 이건 벚나무와 함께 한국에서 건너간 수종입니다.

고려는 전쟁이나면 혼자힘으로 싸우고 갈라전처럼 진출도합니다. 중국과는 항상 대등한 관계였고요


몽골과도 끝까지 싸우다진거지 병자년처럼 오자마자 항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조선은 단한번도 혼자힘으로 싸운적이 없고 병자년에 영변에서 싸운적은 없습니다. 1619년 심하전투에서


충무공 김응하뿐입니다.


광해군은 성군입니다. 동일시할 분위기가 아니라서 두명을 만든겁니다. '광해군'읽어보십시오


외교는 이렇게하는 겁니다.


인조반정만 안일어났다면 정묘,병자,경술국치는 없었습니다.


페이지356 순조 - '점심시간엔 산사에 간다'읽어보십시오 순조는 전생에 스님이었다고합니다.


영락동산 그푸른숲 밀어버리고 공동묘지 만들다니 안타깝다.


권해드릴책  '한국어는 신라어 일본어는 백제어'


여기가봤는데 목장은 산건너편에 있고 여기 가축분뇨냄새 안납니다.








 제목 : 세계4대발명품



세계4대 발명품 기원을 보자.


화약은 중국에서 먼지와 오줌을 섞은게 최초의 기원이었다.


나침반은 중국이 정설이나 신라침반에서 유래했다는게 요즘 추세이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때


 


양국간 분쟁도 있었다.


 


중국사신이 신라의 '자'에서 지남철을 가져갔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아라비아를 통해 영국으로 갔다가 거기서 개량되어 다시 아라비아로 수출이 돼 오늘날의


 


나침반이 되었다.


 


인쇄술 우리 조상들은 탑을 만들때 층마다 부장품을 끼워 넣었다.


 


해방후 도굴꾼들이 고분을 뒤지다 석탑으로 눈을 돌렸다.



 예전부터 불교엔 층과층 사이에 유물을 넣어두는 관습이 있었다.




도굴꾼들이 층사이에 있는 유물을 찾기위해 불국사 석가탑을 밤에 기계로 들어올리다.


 


날이 밝자 달아나고 아침에 탑이 기우뚱한걸 수상하게 본 스님의 신고로 해체작업중 나온게


 


세계최초의 목판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고 부시대통령이 방한했을때 노무현대통령이 자랑한


 


유물이고 198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최초의 목판인쇄본이라고 인정까지받았다.


 


2006년 용산국립중앙박물관 북한유물전에서 북한금속활자 한개가 전시되었는데 세계최초금속


 


활자본인데 아직도 우리나라 석학들중엔 중국이 세계최초라고 떠들고 다니시는 분들이 있는데 중.고등


 


학교국사교과서에 다 있는 내용인데 한심하다.


 


종이의 기원을 보자 내가 한국 사람이기에 한국입장에서 쓴다.


 


중국의 종이기술은 후한의 환관인 채륜으로 알려졌으나 그는 궁정에 종이를 소개한 사람일 뿐이고


 


그당시보다 170년 앞서 제작된 둔황(돌궐)에서 발견된 아마로 만든 종이가 발견되었고 거기에는 지금도


 


사용되는 한자가 적혀있다.



인도유럽어인 토카라어가 투르크스탄 (옛돌궐지역, 현중국신장-위구르자치주) 불교동굴 수도원의 벽뒤쪽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중국 투르키스탄(돌궐.신장-위구르자치주)은 현존하는  인도,유렵어의 동쪽 끝부분이다.


 


간쑤-신장사막내에 있는 실크로드를 따라 펼쳐진 옛 돌궐족의 오아시스 도시인 둔황을 중국이 처음 지배


 


하게 된 건 BC206년 기원전 2세기말경이었다.


 


종이의 발명지가 중국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기원전 3세기 셀룰로오스 섬유로 종이를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인도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종이 제작방법이 전승되었는데 영국이 인도를 식민통치하면서


 


이 전통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 독립의 분수령이 된 1938년 하리푸라 의회에서 종이 제작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명맥이 끊긴 제지술의 불씨를 살리는데 기여했다.


 


이 기술은 아마 네팔로부터 전해졌을 것이다. 네팔에서는 서향나무 껍질로 만든 매우 섬세한


 


수제품인 로트카종이라 지금도 제작되고 있다.


 


나무줄기로 종이를 만드는건 최근의 일로 그 역사는 150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후로 모든 것이 변했다 산업혁명은 수공업 수준이던제지술을 어엿한 산업으로 변모시켰다.


 


종이가 서양에 전파된 계기는 731년 제5차 탈레스전쟁때 고선지가 항복한 아바스조의 칼리프를


 


잔인하게 학살해 그 지역 왕국들의 분노를 사 패배했고 그 때 제지기술을 지닌 중국인들이 생포되어


 


사마르칸트(우즈베키스탄)로 끌려갔다.


 


이것이 제지술이 서양으로 전파된 기원이다.


 


최초의 문자는 기원전 5,000년 이라크지역 수메르 점토문자로 시작해 이 설형문자는 서남아시아


 


여러지역으로 퍼져나가 알파벳의 기원이 되었다.


 

학창시절 아라비아숫자라고 배웠다 이건 인도숫자를 아라비아사람들이 십자군원정이후 유럽으로 전파한게 그 동기고


지금도 진실을 아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아라비아숫자라고 알고 있다.


근대 동양문화의 중심은 중국이었고 서양사람들이 제일많이 찾은 곳도 중국이다.


여기서 흔히 사용하는게 세계4대 발명품이기에 서양에서 그렇게 가르쳤고 그것이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로 퍼져나갔다.


인도문자는 그래도 강대국이기에 진실을 알고자하는 몇몇 사람들이 알고는 있지만


나침반같은 경우에는 역사기록으로만 남아있어 진실을 전할 방법이없다.


또 인쇄술의 경우 (한국사상식 바로잡기,한국문화재수난사)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직지심경 금속활자같은 증거물이 있고


유네스코에서 인정까지 받았지만 워낙에 널리퍼져있는 잘못된 상식이라 인쇄술의 기원인 우리나라에서도


잘못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유물반환때도 직지심경은 뺐다는 이야기가 있지않은가 우리문화재를 소중히 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자신의 정신을 똑바로 갖는것도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아닐까

 

 



제목:역모의 수괴 권율


학교에서 배운다. 소중화주의 한국은 작은 중국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여진,조선,일본을 오랑캐라 말하며 한국은 여진,일본을 오랑캐라 부른다.

 

권율장군은 충신이고 영웅이다. 소설을 한 번 써보자.

 

권율장군이 어디 권씨인지는 모르겠지만 철원권씨라고 가정해본다.

 

도요토미는 임진왜란전 조선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어 시비를 건다.

 

연산군때까지 일본에 공녀를 바쳤던 조선은 중종때 자주개혁을 선언하며 이를 단절시키나

 

 다시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은 이를 요구한다.

 

10만양병설은 후대에 꾸며낸 허구이나 만일 실미도처럼 잘 훈련된 군대를 권율에게

 

맡기고 총지휘권을 주어 정벌하라 명했는데 낙동강쯤가다 지금은 농번기라 안되고

 

비가 많이와 화살이 느슨해지니 안되고 북쪽에 있는 나라가 남쪽에 있는 나라를 치는건

 

예의가 아니다라며 다시 회군해 개혁을 하고 있는 조선왕조를 쓰러뜨리고 일본에

 

사신을 보내 국명을 권율의 고향인 철원으로 하오리까 가야라 하오리까 여쭌다.

 

  이에 고무된 도요토미는 가야란 이름이 아름다우니 (일본고대사서중 하나에 가야는

 

임라일본부 즉 일본의 식민지였다란 허구적이야기가 있다) 국명을 가야라하거라.

 

그후 가야의 태조 권율은 자신의 역모를 감추기 위해 소왜국주의사상을 내세워

 

조선은 작은 일본이라 칭하며 일본은 아버지의 나라라하여 큰나라에 빌붙여사는


사상인 사대주의로 일관한다 동국여지승람의 동국도 중국의 동쪽에 붙어있는


중국의 속국이란 뜻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칠 수는 없다. 그럼 권율(이성계)이 낙동강(위화도)에서 쿠데타를

 

일으킨게 정당화된다.

 

그리고 다시 공녀제도를 만들어 매번 공녀를 뽑아 왜국에 상납하고 그 반작용으로

 

조혼제도가 가야시절 내내 자리를 잡는다.

 

이게 오랫동안 정착되어 1909년 민적법에 의해 성씨가 없는 노비나 백정,망나니,재주꾼들은

 

기왕이면 왕족의 성씨를 갖자며 철원권씨나 김해김씨를 가져가고 이들의 후손중

 

 성공한 사람들은 진짜족보를 사서 종친회에 나온다.

 

한술 더떠 어떤 이들은 진짜임을 강조하고자 권씨가 아니라 궐씨라고 고쳐부르기도 한다.

 

몽고는 세계를 휘두른 국가다 원도 몽고족이 세웠고 러시아인도 한꺼풀 벗겨내면 속은

 

몽고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인도 무굴왕조,타타르까지 전세계를 휩쓸었다 황인종을 몽골리안이라 부르는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고려도 세계속에 그것도 몽고 바로 옆에 있다 모든 나라가 복속해야했듯 고려도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되고 앞에 충성충자를 왕에게 붙였으며 공녀를 바쳐야했다 


이건 고려만의 일이 아니라 세계적인 일이었다. 

 

명은 원을 물리치고 중원만 통일한다 그리고 고려가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건다.

 

물론 여기엔 공녀도 포함된다. 고려 공녀는 공민왕이 등극함과 동시에 없앤제도다.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까지 영토를 넓힌 고려는 전군의 총지휘권을 이성계에게 

 

맡기고 명을 치라 명한다.

 

고려는 문무를 겸비한 국가로 무인기질이 강했고 여러 전란을 거듭하면서 실전경험이

 

 풍부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전권을 갖게된 이성계장군은 위화도에서 우기가 오길 기다리다 지금은 비가 많이와

 

화살이 느슨해져 안되고 농번기라 안되고 작은 나라가 큰나라를 치는건 예의가 아니라며

 

 창끝이 겨눈 방향을 반대로 돌린후 고려를 무너뜨리고 고려에 싸움을 건 적국의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 새로 생긴 왕조의 국명을 이성계의 고향인 화양이라고 하오리까

 

 조선이라고 하오리까 묻고 명태조 주원장은 조선이라는 이름이 아름다우니 (고대 조선은

 

중국이 지배했다고 중국은 아직까지 우기고 있다) 조선이라고 하거라라고 명한다.

 

이 때 고려의 대신 이인임이 이성계의 선조라고 자기네 사서에 기록해 후손들이 조선에

 

대한 외교적 히든카드로 써먹도록 조치하고 이를 임진왜란 직전 오키나와 상인들에게

 

 전운이 감돈다는 정보를 입수한 명의 관리들이 이 히든카드를 써먹는다.

 

홍역관과 병부상서 석성의 이야기는 얼굴마담일뿐이다.

 

공녀를 보자 이성계는 즉위하자마자 공녀제도를 다시 부활시킨다.

 

그리고 조혼의 풍숩이 조선내내 이어지지만 지금의 교과서엔 조선의 공녀이야기나

 

조선시대 조혼이야기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온통 고려공녀 충성충자 고려임금 이야기뿐이다.

 

 우리 조상들도 항상 그랬으니까 조선이 중국을 사대주의로 떠받들고 사대로 일관하는건

 

 당연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래야 자기들의 죄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민왕이 개척한 갈라전(동북3성과 함경도일대)도 윤관의 동북9성도 흥남부두일대로 


왜곡되어있거나 함경도로 국한되고 교과서엔 온통 세종대왕의 4군6진이야기뿐이다.

 

태종 이방원은 고려군관 출신이고 세종의 대마도 정벌도 사실은 태종의 작품이다.

 

다시 말해 고려의 무인기풍이 세종때까지는 남아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군권은 모두 임금에게 집중시키는 체제를 만들고 공맹사상만을 강조하는

 

문치시스템에만 역점을두어 결국엔 임진왜란과 36년국치를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

 

몽골제국시절 세계가 몽고에 머리를 조아리며 공녀를 바쳤지만 명나라시절 세계에서

 

명에 머리를 조아리며 공녀를 바친건 조선뿐이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진짜 전주이씨임을 자랑하기 위해 자신은 이씨가 아니고

 

리씨라고 주민등록증에 달고다닌다.

 

악인열전을 보자 히틀러가 있다 600만명의 유대인을 독가스로 살해한 인물 독가스를

 

누가 나치에게 팔았는가 유대인재벌 로스차일드가문 그 후손들중 일부와 관계자들은

 

 AP,UPI,로이터,워싱턴포스트,헐리우드 ,뉴욕타임스,뉴욕포스트등등 모두 그들 것이다.

 

위인전을 보자 이성계.나폴레온 모두 역모의 수괴인데 그 잔당들이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너무 작아도 안보이지만 너무 커도 안보인다.

 

나폴레옹은 남의 나라 사람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역모의 수괴인 이성계 이제 그만

 

이완용 같은 반열인 악인열전에 올릴때도 되지 않았을까

 

 

 

 

 

 

 

 

 

 

 

 

 

 

 

'욕망하는 지도'

 읽어보십시오8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18.11.11. 신고 공감 1 댓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