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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보르스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건져 올리는 비범한 삶의 지혜이다. 이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인 특유의 독창적인 관찰 방법과 오랜 철학적 사유의 소산이다. 그리고 오랜 숙고와 관찰을 통해 얻은 실존적 자각을 현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소박하고 진솔한 시어, 절제되고 압축된 표현을 통해 생생하게 풀어낸다. 쉽고 단순한 시어로 정곡을 찌르는 언어 감각, 풍자와 아이러니가 결합된 특유의 해학적인 유머는 이 시집에서도 여전하다. 이 땅 위에서의 삶은 꽤나 저렴해. 예를 들어 넌 꿈을 꾸는 데 한 푼도 지불하지 않지. 환상의 경우는 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대가를 치르고. 육신을 소유하는 건 육신의 노화로 갚아나가고 있어. 그것만으로는 아직도 부족한지 너는 표 값도 지불하지 않고, 행성의 회전목마를 탄 채 빙글빙글 돌고 있어. 그리고 회전목마와 더블어 은하계의 눈보라에 무임승차를 해.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기 지구에서는 그 무엇도 작은 흔들림조차 허용되지 않아. _ 「여기」 부분 서점에서는 프루스트의 작품에 더 이상 리모컨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는 더 이상 채널을 돌릴 수가 없다, 축구 경기나 볼보 자동차를 상품으로 받을 수 있는 퀴즈 게임을 보기 위해. 우리는 훨씬 오래 산다, 하지만 덜 명확한 상태로 그리고 더 짧은 문장들 속에서. _ 「책을 읽지 않음」 부분 또한 쉼보르스카는 예전부터 사물에 대한 획일적 인식과 인간 중심적인 편견을 거부하고, 만물과 현상에 대해 철저하게 다원주의적 상대론을 견지할 것을 촉구했다. 이 책 『충분하다』에서도 특유의 생태학적 상상력, 포괄적이고 화합적인 사고를 읽을 수 있다. |
| 작가님의 잔잔하지만 깊은 발걸음을 따라 걷듯이 읽어내려가게 되는 책. 어느 시에서는 잔잔한 숨을 쉬고 어느 시에서는 평범한 것들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시는 작가님의 생각에 놀람, 감탄. 이제라도 작가님의 글들을 접하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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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하다'.. 무엇이 충분하다는 것일까? 86세 고령의 시인은 자신의 시집이 완성되기도 전에 다음 시집의 제목을 '충분하다'로 정했다고 한다.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자신이 곧 세상을 떠나게 될 거라는 것을 알았을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집을 통해 충분히 했다는 것일까? 우리는 이미 충분히 잘 살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충분하다'는 '모자람 없이 넉넉하다'라는 사전의 풀이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지만, 우리가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데에는 이미 충분하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펴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집 『충분하다』는 그가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시집 『여기』와 사후에 출간된 『충분하다』를 묶은 책이다. '충분하다'라는 제목에 끌려 시집을 샀다. 책을 구입한 뒤 책날개를 보니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이라고 한다. 나는 시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신문에서 시인의 시를 한 편 보기 전까지는 그에 대해 들어 본 적도 그가 노벨상 수상 시인이라는 것도 몰랐다. 단순히 제목에 이끌려 그의 세계로 들어가게 됐다.
내게 '충분하다'라고 말해주는 쉼보르스카가 지은 한 편 한 편의 시가 무척 궁금했다. 부록으로 실려있는 미완성 육필 원고들은 시인을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내 곁으로 쉼보르스카의 온기를 불러온다. 책 표지는 흐릿한 하늘에 눈이 날리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책 표지를 보며 시인이 살았던 폴란드라는 나라는 살기가 어떨까, 기후는 어떨까, 궁금증이 일었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여기', 지구에 대해서도 말한다. 빠른 속도로 굴러가는 곳. 최고를 추구하며, 모든 것이 풍요롭지만 가난과 빈곤, 슬픔과 결핍이 함께 살아가는 이곳.
'여기' 중 일부 (12쪽)
어쩌면 다른 어느 곳과도 달리, 혹은 거의 대부분의 여느곳과는 달리 여기서는 네게 자신만의 토르소가 허용되었는지도 몰라, 필요한 부속품들을 장착한 채로, 네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 무리에 포함시킬 수 있게 말이야. 팔과 다리, 경탄을 금치 못하는 머리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서 무지(無知)는 과로로 뻗어버렸어, 끊임없이 뭔가를 계산하고, 비교하고, 측정하면서 결론과 근본적 원리를 추출해내느라.
시인은 시를 두고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대화가 어찌나 사랑스럽고 정겨운지 종이와 펜을 앞에 두고 시와 대화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려지기까지 한다. '커피 한 잔할래?'라는 시구가 내게 하는 말이라면.
'아이디어' 중 일부 (22쪽)
하지만 이 경우는 말이야, 반드시…… 이러이러한 점을 갖고 있어야 할 듯…… 그러자 내 귀에 대고 몇 마디를 속삭인다. 그래, 바로 그거, 네가 꼽은 그런 자질 말이야. 자, 그러니 이제 주제를 바꾸는 게 좋겠어. 커피 한 잔할래?
그러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사라졌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쉼보르스카의 시만을 갖고 그를 알아가는 일은 무척 흥미롭고 신이 나는 일이다. 앞으로 폴란드, 하면 쉼보르스카를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내가 폴란드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그곳이 서유럽이라는 것뿐이다. 무에 유를 더해가는 일이란, 내가 쉼보르스카를 알아가는 일과 비슷한 기분일까?
'나의 시에게' 전문 (90쪽)
가장 좋은 경우는 나의 시야, 네가 꼼꼼히 읽히고, 논평되고, 기억되는 것이란다.
그다음으로 좋은 경우는 그냥 읽히는 것이지.
세번째 가능성은 이제 막 완성되었는데 잠시 후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
네가 활용될 수 있는 네번째 가능성이 하나 더 남았으니 미처 쓰이지 않은 채 자취를 감추는 것, 흡족한 어조로 네 자신을 향해 뭐라고 웅얼대면서.
쉼보르스카의 시에는 네 가지의 일이 모두 일어났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을 거쳐 시인의 시는 우리에게 닿는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자신의 시도 애틋하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혹시 내가 시를 잘못 읽은 걸까...? 자신의 시를 존중하고 아끼는 듯한 그의 말과 태도가 내 마음을 웃음 짓게 한다. 우리의 인생 역시 '시'와 같은 가능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꼼꼼히 논평되고 기억될 테고, 누군가에게는 그냥 아는 사람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알고 지내면서도 잊힌 존재일 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직 눈에 띄지 않아 발견되지 않은 존재일 테고.
옮긴이의 해설이 책 뒤에 길~게 이어지지만 나는 그냥 나대로 읽는다. 내 마음에 차고 넘치는 대로 받아들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시인이 어떤 의도로 시를 썼는지 시인 자신 말고 어느 누가 정확히 알 수 있겠는가. 사실 독자들이 그의 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시인도 잘 모를 것이다. 독자가 각자에게 와닿는 대로 시를 바라봐 주길 바라지 않을까, 하는 게 내 바람이다. 부디, 내가 엉뚱 맞고 생뚱맞은 방향으로 시를 읽지는 않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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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성 목록이 기재된 목록. 시에 관한 시. 배우가 연기하는 배우에 관한 연극. 편지로 인해 집필된 편지. 단어를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 쓰이는 단어. 뇌를 연구하는 데 사용되는 뇌. 웃음과 마찬가지로 쉽게 전염되는 슬픔. 폐지 뭉치에서 주워 올린 종이들. 시선에 포착된 시선. 격변화에 의해 생성된 격들. 작은 개천들의 공헌으로 탄생된 거대한 강. 숲의 가장자리까지 무성하게 자란 숲. 기계를 만들기 위해 고안된 기계. 우리를 꿈에서 갑자기 깨어나게 만드는 꿈. 건강의 회복에 필요한 건강. 내리막 계단만큼 많은 숫자의, 오르막 계단. 안경을 찾는 데 사용되는 안경. 날숨과 들숨이 결합된 호흡. 가끔은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증오를 증오하는 감정을. 하지만 결국은 무지無知에 대한 무지無知 그리고 손을 씻는 데 동원된 손들. 친구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멈추지 못하고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두 권의 시집 《여기》와《충분하다》가 실려있고, 뒤쪽엔 시인의 육필원고가 실려있다. 명징한 시편들, 그녀의 글씨에서 느껴지는 본질에 대한 탐구와 수정의 흔적들이 읽는 내내 무척 흥분되게 했다. 특히 《충분하다》라는 제목을 미리 정해놓았다하니, 그녀의 삶이 끝까지 얼마나 충만하고 충분했을까, 짐작해보게 한다. 그녀의 글씨체, 흔적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 행운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 담담함과 감사하는 마음들... 따뜻하고 참신한 비유들이 언제 읽어도 마음 넉넉하게 채워준다. 쉼보르스카 할머니, 이상하게도 세상의 어떤 시인보다 가깝게 느껴져서, 매끄럽게 번역된 이 책이 내겐 그녀가 남긴 선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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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본질을 향한 ‘열린 시선’을 고수하며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에서 삶의 비범한 지혜를 캐내는 ‘시단(詩壇)의 모차르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199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한국에서도 시선집 『끝과 시작』으로 약 10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폴란드의 국민 작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유고 시집 『충분하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어판 『충분하다』는 쉼보르스카가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시집 『여기』와 사후에 출간된 『충분하다』 전체를 묶은 책이다. 2009년 『여기』를 출간한 뒤 86세 고령의 시인은 다음 시집 제목은 “충분하다”로 정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에게 시간을 허락지 않았고, 이 시집은 시인이 생을 마감한 뒤 유고 시집으로 세상에 나왔다. 어쩌면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충분하다”라는 미완성의 문장은 시인이 자신에게,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주고 싶었던 마지막 한마디였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