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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올바름은 있는가 정치적인 주장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올바른 주장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 이런 대립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올바름을 둘러싸고 어떤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사람들이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결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또 하나 큰 문제는 올바른 답, 즉 정답이 탁상에서 정해진다는 생각을 밀고 나간다면,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의 원래 의미가 희박해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 초인적인 인간이 보편적으로 올바른 규칙을 도출하고, 그것을 적용하기만 하면 올바른 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식으로요. 이와 같이 정치에 올바름이라는 것을 과도하게 도입하려고 하면, 정치의 중요한 조건인 사람들의 복수성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 올바름을 이해한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사람들을 이끌어 가면 됩니다. 올바른 정치를 수행하는 권력자들에게 반대하는 사람은 잘못된 것이므로 실력행사로 배제해버리면 그만입니다. 정치에서 올바름만을 추구하다 보면, 대화를 방해하고 본래의 정치 그 자체를 끝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유나 평등처럼 그 나름대로 올바른 원리들이 해석을 둘러싸고 무한히 계속되는 대화의 주제가 된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75-76쪽
대화하고 의논하다와 결정하다 대화하고 의논하는 것, 즉 토론은 민주정치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의논해서 결정하는 것은 대화하고 의논하다와 결정하다 라는 두 개의 다른 요소로 성립되는데, 이 두 요소가 일종의 긴장 관계에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민주정치가 소중하다는 데 우리 모두가 합의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미 자신들에게 편리한 제도를 가지고 있는 쪽은 당연히 그것이 쟁점이 되지 않게 합니다. 이에 반해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느끼는 쪽은 우선 거기에 쟁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해야 합니다. 두 가지 태도는 모두 각자의 입장에 따라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 올바르다거나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정치에서는 상황을 바꾸려고 하는 쪽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현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쪽은 수구파나 저항 세력으로 불리며 악역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무엇이든지 금방 결정해서 현상을 바꾸는 것이 옳다는 주장에 일반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은 바꾼다고 해서 이권이나 기득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 그렇다면 현상을 지키려고 하는 쪽이 도덕적으로 잘못되었고, 바꾸려고 하는 쪽이 옳바르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 64-66쪽
스기타 아쓰시, 일본인 저자의 글입니다. 그러니 한국 상황과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 글입니다. 또는 서부 유럽, 미국, 일본처럼 우리보다 일찍 민주정치를 접하고 생활에 적용해온 이들이 느끼는 정치에 대한 올바른 담론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필요에 의해 그리고 제 상황에 따라 지지하거나 반대하거나 하는 정치적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이상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000당이나 000당을 모태에서부터 지지하거나 정치인들이 항상 옳은 일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1980년대 후반 이후로 이렇게 가열차게 니편내편이 갈라진 상황은 간만에 겪어보는 것 같습니다. 이리저리 찾다보니 1968년의 프랑스 상황이 비슷하게 보이고 많은 국민들이 좌파적 성향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좌파는 개개인의 평등을 앞세우고 기득권의 최소화를 주장한다는 면에서 말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평등을 실제로 구현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 편의 기득권을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라고 봅니다. 대학시절, 개인적인 입장이자 판단이지만 "나는 지도부니까 너희와는 다르잖아 그러니까 앞선에서 투쟁하는 너희는 잡혀들어가더라도 나는 투쟁지휘를 계속해야 하니까 피하겠어." 라는 운동권 지도부의 얘기를 듣고는 "000"이라고 욕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 000당과 정부 要職에서 일하는 것을 보면서 분통이 터지는 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쪽이 싫습니다. 동문이니 뭐니 그런 것보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호불호를 선택할 수 있는 것 역시 자유라고 생각하거든요. 우엣든 옳은 소신과 가치관 그리고 행동 약력을 가진 사람이 정치를 하기를 바라고 그것이 아니면 다른 올바른 정치가를 볼 수 있는 상황을 기대하고 그렇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저를 보고 싶습니다. 정치가 뉴스가 아니라 삶이라는 것을 심하게 느끼는 요즘은 더욱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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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 그대로 옮겨봅니다. 우리는 정치라는 것을 늘 호흡하고 살면서도 침만 뱉어댔을 뿐이다. 그 내부 구조가 어 떠한지, 어떠해야 하는지는 무관심했다. 스기타 아쓰시 교수는 결정, 대표, 토론, 권력, 자유, 사회, 한계, 거리라는 8개의 키워드로 정치라는 것의 의미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 진다. 마치 요가를 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이 책의 가이드에 따라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그동안 쓰지 않았던 근육들을 하나하나 소환해 긴장시키고 이완하다 보면 잠가고 있던 몸 안의 정치근육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중략- 지금 필요한 건 우리를 열광시키는 메시아가 아니라 스스로 정치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시민 한 사 람 한 사람의 자각이다. 저자가 제안하듯 손으로 더듬어 찾는 방식을 통해 정치라는 것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보야야 할 때다. 권석천(정의를 부탁해, 저자)
결정과 권력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18쪽 이러한 예들을 보면 누가 결정할지를 정하는 문제가 정 치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 습니다. 게다가 그에 관해서는 일반적인 규칙이란 게 없습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점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고 제 도가 이렇게 되어 있다거나 지금껏 이렇게 해왔으니까 하는 생각으로 끝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 참으로 뼈아픈 이야기이지만 실제 발생하고 있으니 참 많이 답답하지요. 그런데 국회의원을 선택하는 것은 다른 대 안을 버리는 결정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 선이 아닌 차선을 택하는 한 정치가 도움이 될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누가 나서더라도 정치는 잘 돌아가지 않 을 상황이라는 것 또한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 생각됩니다.
대안은? 지금의 공부는 대안을 찾고 제시하고 실천하는 공부 가 되어야겠습니다. 조상이나 앞서서 살아가는 사람의 의무 는 후대가 잘 살 수 있게 길을 터주는 역할이니까요.
19쪽 프랑스혁명 이래 주권은 국민이라는 단위와 결부되어 국 민주권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국민이라는 단위는 상 당히 자의적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누구는 국민에 속하고, 누구는 속하지 않는다는 것에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그 조상이 우연히 어느 시점, 어느 장소에 있었다는 것 이외에 다른 의미를 찾아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략- 그것은 절대적인 결정 단위를 정 하고 싶은 욕망에서 출발했습니다. 감히 이야기한다면, 무엇 이든 상관없이 안정적인 단위를 정해서 거기에 권력을 안겨 주고 싶다는 것이 우리의 근대 국가 시스템입니다.
>>> 참 황당하기는 하지만 현재 시스템을 보면 그렇게 보입니다. "나도 못믿겠고 너도 못믿겠으니 그래도 최악은 아닌 사람을 뽑아 권력을 주고 우리를 잘 살게 할 방법을 찾게하자."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단들이 나고 있는 것을 보고있고 또 몇 년이 지 나면 이 문제를 또 겪고 그렇게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타이밍에 목차를 보실까요 1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가 2 왜,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3 정치에 올바름은 있는가 4 어디에서 오는가 5 권력을 없애면 좋을까 6 국가도 시장도 아닌 그 무엇 7 정치가 전면화해도 좋을까 8 정치와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하나 같이 그럴듯하고 평소에 생각했어야할 질문들이었습니다. 그중에 87쪽입니다. 4장의 내용이 있고요.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싫어하는 것을 무리하게 하도록 강 요하는 비대칭적인 관계로서의 권력은 총을 보여주면서 돈 을 빼앗는 권총 강도의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권력이란 무엇 인가를 논할 때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권력 자원 을 상정하는데, 여기서 거론되는 자원의 전형은 무엇보다 폭 력 그리고 돈입니다. 폭력을 슬쩍 비치거나 실제로 행사해서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하게 만들거나 돈으로 유혹해 사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90쪽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는 비밀경찰을 그물망처럼 깔아놓고 권 력에 반항하는 사람을 엄격하게 처벌하는 체제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폭력 장치가 차고 넘칠 만큼 있었기 때문에 그 체제를 무너뜨릴 수 없을 거라는 의견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체제도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자 간단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권력이 유지되는 것은 사람들이 그 권력의 존재에 동의하 고 있기 때문에, 즉 정통성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폭력에만 의존하는 지배는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 지배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권력, 영토인가 생존인가 ...... 사회권의 전형이 생 존권인데 국가권력이 국민을 그 냥 내버려두지 않고 생활을 보장해주는 것을 권리라고 생각 합니다.
내일 계속 이어서 리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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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에 관한 모든 상식과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이제는 누가 해도 정치가 잘 돌아가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일본의 행동하는 정치학자 스키타 아쓰시의 새로운 시대를 위한 정치학 정의 요가하듯 천,천,히 정치공부해보자 내 삶을 바꾸는 정치 공부를 해 보자 사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정치를 남의 일인냥 정치인만이 하는것으로 생각해 정치는 근처도 안 갔었는데 요즘 정치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하지만 막장 정치를 알려니 알 길이 없다 정치에 대한 너무 무지해 정치를 몰라 정치인들에게 일반 서민은 당하는 것 같다 나라꼴이 이렇게 흘러 가는것은 정치인들이 똑바로 행동하지 않았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 아닌가 정치인들도 정치를 몰라서 잘 못하고 있는데 우리 일반 서민들이 어떻게 정치를 알까 하는 생각으로 등한시 한 결과 나라를 바닥을 치고 나라를 힘들어 하고 도대체 누가 잘못인가 하는 생각에 결론은 정치에 아무 관심을 보이진 않은 우리 서민들 잘못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책을 읽어보려 한다 결정 방식은 정해져 있다 대표에게 맡기면 된다 정답은 알고 있다 나자신에게는 권력이 없다 자유란 방임이다 국가 따위 필요없다 정치를 방해하지 말라 적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 이를 통해 정치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를 밝혀보고자 한다 고대 그리스 이래 정치 제도를 구별하는 정체론이라는 것이 있다 한사람이 결정하는 군주정치, 소수자가 결정하는 귀족정치, 그리고 다수자가 결정하는 민주정치라는 구별 결정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군주가 혼자서 결정하는것이 가장 손 쉽고 빠르며 결정방식에 관한 싸움도 일어나지 않는데 군주가 결정해버리면 그걸로 끝 기업에서 실제로 일하고 있는 종업원의 대부분은 경영과 관련된 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데 기업은 기본적으로 피라미드형 조직이고 위의 결정을 아래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것 우리가 바라는 정치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권력이 어떻게 존재하기를 바라는가 사람들은 이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려 하지 않고 우리 아닌 누군가가 나쁘니까 그들을 제거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의견에 쉽게 기울어진다 문제를 자기 내부에서 찾는 것은 불쾌한 일이기 때문 자기 아닌 누군가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다수에게는 기분상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될지 모른다 정치=권력=폭력 이 작아질수록 사람이 자유로워 진다는 생각이 나온다 이런 생각은 반복적으로 논의 되어온 정치와 문학이라는 주제에도 나타나고 있다 정치의 세계는 비뚤어진 동기가 넘쳐나고 사람을 어딘가로 몰아가거나 큰일을 당하게 해서 자유를 빼앗고 인생을 뒤틀리게 한다 이런 정치 세계에 반해 문학은 인간본래의 세계에 다가가는 것이다 이런 대립 항을 만들어 정치 이외의 곳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방식은 정치와 문화,정치와 예술 이라는 대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권력과 자유를 대립적으로 보는 발상은 헌법학에도 있다 헌법학에서는 권리 ,자유와 권력을 대립적으로 생각하는 게 일반적 권력은 사람들의 권리나 자유를 방해하거나 침해하기 때문에 권리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헌법의 역할이라는 생각 헌법에 대한 이런 생각을 입헌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헌법에 의해 지켜지는 자유= 권리, 정치=권력을 대립적으로 생각하는 관점 정치를 지저분한 것으로 간주하여 까닭 없이 싫어하거나 정치가 없는 세계로 도망치려 하는 태도는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할 것이다 사실상 정치는 모든 것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고 모든 곳에 침투하고 있다 우리가 정치로부터 도망쳤다고 해도 정치는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우리는 어쨌든 정치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무엇인가를 바꾸려고 한다면 손으로 더듬어 찾는 작업이 될 수 밖에 없다 단기간에 간단히 무엇인가를 바꿀 수도 없다 쌓아올린 재목에서 한토막을 빼는 일 같은 것으로 잘못빼면 전체가 무너져 버리니 어떤 부분을 바꾸려고 하면 전혀 상관없는 곳이 이상해지기도 한다 정치는 인간 사회와 관련된 복잡한 작업이라는 사실에 우선은 두려움을 가져야한다 정치에 거리를 두지 않는 사람은 정치의 과제를 단순화해서 파악하고 조금만 궁리하거나 새로운 제도 또는 헌법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뺄셈이 아니라 곱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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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쪽 공화주의란 원래 고대 로마를 이상으로 한 다는 뜻이므로 고대 로마의 어떤 부분에 주목하는가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합니다. 구대 로마는 제도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잘 운영되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 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합의된 유력한 생각은 덕이 있는 자립한 시민이 공동체나 공통의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전제하고 있는 자립한 시민상이라는 것도 과거에나 가능했던 경제적인 자립을 조건으로 하여 현 대인이 처한 환경을 무시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21쪽 시민사회는 보통 정치 = 권력의 영역인 국가와도, 또한 경 제의 영역인 시장과도 구별되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거기에 서는 국가도 시장도 모두 강제적인 측면이 있는 것, 따라서 자유를 손상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122쪽 이와 같이 시민사회론은 본래 국가와 시장 양쪽을 대신하 는 제3의 영역을 소중히 여깁니다. 현대사회에서 국가가 비 대화되거나 시장이 폭주하는 것에 대해 시민사회라는 제3 의 영역을 끄집어내는 것에는 큰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민사회론이 국가와 시장에 대한 두 방향의 정면 작전, 즉 양쪽에 대해 균등한 싸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노동력의 매매, 즉 노 동계약을 할때 보잘것없는 일개 노동자가 거대 기업과 대 등한 입장에서 계약한다는 것은 너무나 만들어낸 이야기 같 은 일입니다.
123쪽 시장에도 권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시당 하기 십상인 것입니다. 시민사회의 중요성을 논할 때도 국가에 대한 비판은 강한 반면 시장에 대한 비판은 소홀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시민사회론은 시장주의와 연계하게 됩니다.
124쪽 하지만 그 후 경제의 글로벌하가 진행되는 가운데 각국의 재정이 어려워 지자 점차 유명무실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상입니다. 앞 서 이야기했듯이 복지만 그만두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자 립할 것이라는 전도된 논리가 이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지금까지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국가의 역할이 없으면 최저한의 생활 보 장조차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시민사회론이 국가가 지닌 생존권 보장의 의무를 면제해야 한다는 시장주의자의 주장 과 결과적으로 공명하는 건 아닌지 주의해야 합니다.
복지론에 대한 생각은 상황 판단을 잘 해야하네요. 국가가 세금을 이용해서 복지정책을 편다는 것은 약자를 보호하는 것임을 명심하 되 그 정책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자신은 어떤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지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견제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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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쪽 보통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우리와 같은 대표되는 자가 무언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럿을 민 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정디된 민의를 대표하는 자가 전합니다. 우리 대표되는 자에게는 이미 분명한 의견 이 있고 대표하는 자는 그것을 충실히 받아들이는 방식으 로 말입니다. 이것이 대표에 대한 첫 번째 견해입니다. 그러 나 우리의 경험에서 보더라도 어떤 집단이 이미 일정한 민 의를 공유하고 있는 상황은 쉽사리 상정할 수 없습니다. 어 디에서든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분명한 의견이 어디에도 없어 모든 것이 모호한 경우도 있습니다.
오히려 대표하는 자가 대표되는 자에게 이런 생각은 어떻습니까?라며 공작을 해서 윌의 민의가 형성되는 면 이 있지 않을까요? -중략- 이 견해에 따르면 대표되는 자에게 미리 명확한 의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어떤 민의를 대표가 전한다기보다는 오 히려 우선 누구를 대표로 할 것인가를 우리가 정하고, 그 대 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라고 하게 되는 경 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럴 때 대표는 일정한 재량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대표의 자유로운 판단에 위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주정 치를 우리 대표되는 자가 주인공인 정치라고 생각하고 있 습니다. 이것이 기본적인 출발점입니다. 그렇다면 대표는 우 리의 민의를 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전자의 사고방식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대표라는 존재에 대해 민의를 전하 기만하는 전달 기계 같은 것으로 파악한다면, 애초부터 인간 이 정치에 그다지 관여할 필요가 없어지게 됩니다. 매니페스토란 정다잉 선거 전에 유권자에게 내보이는 공약을 말하는데, 유권자는 어느 쪽의 매니페스토가 좋은지 를 음미한 수 선거에서 투표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여당이 되면 매니페스토를 실현하는 것이 정당의 사명이라고 간주 해왔습니다.
-중략-
대표란 민의를 완전히 보여줄 수는 없지 만 그래도 어느 정도 재현하려고 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어 느 정도 자유롭게 판단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재량껏 움직일 수는 없는 중간적인 성격을 띠는 존재입니다. 양 측면을 어 떻게 조화롭게 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개념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봅니다. 기본을 정리하고 그것에서 의견을 정립하면 깔끔하게 정돈이 되고 거기에서 곁가지에 대해 논의하면 정리하기 참 쉽지요. 우엣든 정치에 있어 대표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본 시간이었 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