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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나오면 뭐해? 백수인데”
입학할 때만 해도 성공가도를 달릴 줄로만 알았던 청년들이 졸업할 무렵이면 고개를 숙인다. 눈높이를 한없이 낮추어도 취업이 요원한 탓이다. 미래를 그릴 수 없는 비정규직마저도 감지덕지.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 불안정해졌는지 알 길 없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학교마다 취업률이 높다는 걸 강조하려 안간힘을 쓴다. 아예 ‘취업 사관학교’ 따위를 홍보 문구로 사용하는 학교도 있다. 대기업이 선호한다는 특정 단대, 과의 경우 입시 점수가 높기도 하다. 대학이 취업을 위한 준비 기관 마냥 전락하고야 만 것이다. 대학에, 그것도 이왕이면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시도는 성공을 향한 욕망과 맞닿아 있을 때가 잦다. 처음부터 ‘학문의 상아탑’과는 거리가 멀었던 곳을 두고 역할이 변질됐다며 비난하는 건 옳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스스로가 대학에 그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한 측면도 없진 않다. 대학은 특정과 정원을 늘리거나 수업을 개설하는 등의 움직임을 통해 사람들의 욕구에 부응한 것이다. 수요도 없는데 공급을 늘리는 법은 없다. 대학 또한 사회에 속한 이상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법칙을 따르기 마련이다.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라 불리는 현상이 대두된 것 또한 대학이 사회의 요구에 반응한 결과인 것이다.
서양에서 몇 백 년에 걸쳐 확립된 바를 불과 몇 십 년 만에 일구려 드니 우리로선 벅찬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당연히 많은 과정을 건너뛰고 결과만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른 부작용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서양에선 대학의 역할을 두고 수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대학의 효율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대학 교육이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과 자격증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일삼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인 시선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하는 움직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대학의 상업화를 우려한 이들도 많았다. 순수한 의미의 학문이 사라진 사회를 어찌 받아들여야 좋을지, 난 아직 판단을 하지 못하겠다.
난 대학 생활을 하면서 교양과목이라 하는 것을 별로 많이 듣지 않았다. 두 학과를 오가며 복수전공을 한 탓에 전공과목 듣기도 벅찼다. 자연스레 교양과목을 이수할 여력이 없었다. 한 편으로는 특정 과목이 학점이 잘 나온다는 뭇사람들의 이야기를 좇기에도 벅찼던 것 같다. 대학은 학문을 위한 공간이기에 앞서 경쟁이 기본 질서로 자리잡은 곳이었다. 나를 둘러싼 숱한 질서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어야 했으나 그리 하지 못했다. 오히려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을까란 우려감에 침묵을 지키기에 바빴다. 나와 유사한 선택을 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하고 싶은지 한 차례도 진지하게 묻지 않은 이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와 함께 대학은 더 이상 희망을 써 내려가는 곳일 수 없게 돼 버렸다. 이를 “대학의 배신”이라고 저자는 불렀다. 경쟁으로부터의 생존을 갈구하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쥐어주지 아니 하는 대학, 오로지 공허함만을 선사하는 대학. 눈 여겨 보지 않아온 교양과목 수강이 텅 빈 마음에 단비처럼 작용한다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자유, 활력, 협력, 자극/혁신. 앞으로 교양교육은 이와 같은 기조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보다는 나의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들어주느냐의 잣대에 따라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의 성패는 여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아직 이에 대한 합의조차도 쉽지가 않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