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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란 글귀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최소한 세계보다 한 아이의 생명이 덜 중요하지는 않다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라크전 뉴스에서는 매일 오폭당한 아이들과 민간인들이 나왔습니다. 자국민들까지 화학무기로 살해한 독재자로부터 국민을 해방시키겠다,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해서 세계평화를 이룩하겠다, 독재정권으로부터 석유의 통제권을 박탈해서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도록 해 세계경제에 기여하겠다는 등 거창한 명분들을 내세운 전쟁이지만 갓 태어난 아기가 온 몸에 화상을 입고 울고 있는 모습이나 팔다리가 잘려나간 어린이들을 보면 과연 이 전쟁이 저들의 생명과 신체를 훼손하면서까지 수행해야 할 만큼 가치가 있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 목숨이 급하니 남을 돌볼 겨를이 없는 것이 현실인 것 같기도 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빙하를 반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소설 속 인물의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우울합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 욘 욘슨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습니다. 미국의 참전 이유가 완전히 숭고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2차 대전은 미국이 수행한 전쟁 중 대단히 정당한 전쟁 축에 속한다고들 하는데, 욘슨은 2차 대전에서 돌아온 후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겪었던 폭격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전쟁은 이미 독일의 패색이 짙어져갈 때였는데, 굳이 군사시설도 없는 도시를 폭격할 필요는 무엇이었는지를 궁금해하지만 미군당국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습니다. 책은 별로 진도가 나가지 않고, 전쟁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참전했던 동료의 집에 가게 됩니다. 동료의 부인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전쟁을 부추기는 책을 만들 것이라는 생각에서 욘슨을 박대하는데, 욘슨은 자신의 책은 결코 전쟁을 미화하는 것이 아닐 것이고, '어린이의 십자군'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겠다고 엄숙히 선서합니다. 중세 시대에 거창하고 숭고한 명분을 걸고 어린이 십자군을 모집해서 노예로 팔아먹었던 사건에서 떠올린 제목입니다. 소설 속의 소설 구조로 2차 대전에 참전한 주인공 빌리 필그림이 등장합니다. 군목조수로 유럽에 파견되지만 군목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독일군에 패퇴해서 패잔병 신세가 되었다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힙니다. 전쟁의 와중에서 인간들의 목숨은 그야말로 쉽게 가는 것이고, 빌리의 전쟁은 적들을 용감히 무찌르는 영웅들의 활약장이 아닌 지치고 고통받는 인간들의 지루한 여정일 뿐입니다. 빌리는 포로로 잡혀서 호송되던 중 갑자기 시간에 매이지 않게 되고 다른 시간대를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는데, 어느 시간대에 언제 빠져들지는 알 수 없으니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간 그는 트럴파머도어 별의 외계인들에게 납치되어 동물원의 구경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죽음이란 단지 한 순간의 사건일 뿐이며 다른 시간대에서는 죽은 인간이 멀쩡히 살아있고, 모든 시간대는 동시에,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쨌든 시간을 오가는 와중에 빌리는 포로로 드레스덴으로 호송되어 어느 도살장에 수용됩니다. 며칠후 합계를 하면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 못지 않은 위력의 폭탄들이 드레스덴에 융단폭격으로 퍼부어지고 수만명의 민간인들이 폭격으로 가루가 됩니다. 드레스덴은 연합군에 접수되고 빌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커트 보네것 씨가 2차 대전에서 체험했던 1945년 2월 드레스덴 폭격을 다룬 것이라 sf 소설같은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지만 매우 사실적이기도 합니다. 참상을 직접 목격한 작가는 나치가 유태인 수백만을 학살했다는 것이 드레스덴 폭격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고, 폭격으로 부상으로 사고로 허망하고 무의미하게 죽어가는 인간들의 행복했던 한 때는 그래도 영원히 존재한다는 상상은 위로가 되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지루하고 잔혹한 전쟁과 시간이란 무거운 주제를 짧고 경쾌한 문장으로 다루면서, 때로는 우스꽝스런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서 웃지 않을 수 없는 유머도 나옵니다. '제5도살장'은 커트 보네것 씨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무척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은데, 'mother night'의 주인공 하워드 캠벨이 잠깐 나오기도 하고 'the sirens of Titan'에도 등장하는 트럴파머도어 등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연관되어 있는 부분들도 흥미롭습니다. [인상깊은구절] So a new technique was devised. Bodies weren't brought up any more. They were cremated by soldiers with flame-throwers right where they were. The soldiers stood outside the shelters, simply sent the fire 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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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 한 명을 무미건조하게 서술하는 듯 하지만 그 아래 흐르는 절절한 동정심.
책 전체를 관통하는, 조각조각 해체되어버린 빌리 필그림의 정신세계가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드레스덴 파괴의 구체적인 묘사를 하는 것보다 그 상처에 평생 얽매여 사는 빌리 필그림을 묘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었을지도.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오히려 웃을 수 밖에 없는 그런 기분. 작가가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 몰라서 20년동안 붙잡고 있었던 모습이 상상된다.
책을 읽고 나서 네 명이 댓거리를 했는데, 각자 기억하는 내용과 인상적인 부분이 달라서 흥미로웠다. 그 중 한 명은 드레스덴에 실제로 가본 적이 있는데, 아직도 재건이 충분하지 않고 포화에 그을린 자국 같은 것이 남아 있어서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고 하네..
---------------------------------------- 2010년 세밑 ‘전쟁을 두려워해서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대통령이란 작자의 말에 서평 내용을 추가하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네 명의 소녀들이 모여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며 꺄르르 웃는다. 처녀는 출근길 걸어가며 어제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와 계속 만날까 말까 고민한다. 아기는 처음으로 발걸음을 뗀다. 엄마는 아빠와 말다툼한다. 친구는 하루종일 인터넷쇼핑만 하고 나는 친구를 보며 혀를 끌끌 찬다. 부산 출신 대학생은 쌓이는 눈을 서울에서 난생 처음 보고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누군가는 원치 않는 임신을 지속할지 말지 고민하며 눈물을 흘린다. 유기견 출신 반려견은 새 주인과 신나게 뛰어다닌다. 처음으로 반지하방을 벗어난 가족이 예쁜 새 집에서 자는 첫날이다. .... 전쟁은 이 모든 것을 단번에 끝장내는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서 사람의 대갈통과 다리몽둥이가 너덜너덜한 절단면이 드러난 채로 굴러다닌다. 저 다리몽둥이는 심지어 내 것이다. 아이는 부모와 생이별한다. 소녀는 강간당한다. 눈물을 흘리며 반려견에게 독약을 먹여 안락사시킨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서 치명적인 배신을 당한다. 나 역시 나를 가장 믿는 사람을 비열하게 배신한다. 첫사랑의 추억이 서린 거리, 영화관, 놀이동산, 뒷산, 동물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 전쟁은 이 모든 것을 하나로 합친 것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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