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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식품처럼
학생이 찾아와 말했다. 선생님, 응모한 제 작품이 본심까지 올라가 신선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 작품이 신선해지나요? 죄를 지은 양 한 마리처럼 깨끗해지고 싶은 양 한 마리처럼 학생이 말했다. 않아는 대답했다. 않아도 그걸 알면 좋겠다마는 않아가 뭘 알겠냐마는 않아가 보기에 네가 제일 신선하다! 무엇보다도 남다르게 생긴 너의 용모, 너의 열등감, 너의 분노, 너의 욕망, 네가 제일 신선하다. 그러니 너는 이제부터 너를 쓰면 되겠다. 잘 쓰려는 힘을 빼고 너를 쓰면 되겠다. 그러자 학생이 또 물었다. 어떻게 ‘나’를 쓰지요? 않아는 또 대책도 없이 대답했다. 너에게서 너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지 아는 것, 그게 바로 시다. 너에게서 네가 떠나면 떠날수록 오히려 네가 잘 보이고 발견하기도 쉽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시인이란 이름을 얻는다. 자신에게서 자신을 벗어나고서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이 시인이다.
인용한 글뿐만 아니라 책에 수록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화자는 ‘않아’이다. ‘좋아’도 아니고 ‘맞아’도 아닌 ‘않아’가 작품 전체를 이끌고 있다. 부정의 의미가 담긴 ‘않아’는 소리나는 대로 옮기면 ‘아나’가 되고 나는 그것이 자꾸 ‘아, 나!’로 읽힌다. 감탄사와 쉼표와 느낌표로 무장한 적극적인 ‘나’로 읽힌다. 그러기에 작품들은 죄다 시인의 선언처럼 다가온다. “너에게서 너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지 아는 것, 그게 바로 시”이고, “너에게서 네가 떠나면 떠날수록 오히려 네가 잘 보이고 발견하기도” 쉬울 뿐더러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시인이란 이름을 얻는다”는 글, 그리고 “자신에게서 자신을 벗어나고서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이 시인”이라는 글은 시인이 시로 쓴 시론으로 보인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글은 않아를 찾아와 말하는 학생의 말처럼 조심스럽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이것을 시라고 하면 시가 화냅니다. 이것을 산문이라고 하면 산문이 화냅니다. 시는 이것보다 높이 올라가고, 산문은 이 글들보다 낮게 퍼집니다. 이것은 마이너스 시, 마이너스 산문입니다. 이것을 미시미산未詩未散이라고 부를 순 없을까, 시산문Poprose이라고 부를 순 없을까, 시에 미안하고 산문에 미안하니까. 이것들을 읊조리는 산문이라고, 중얼거리는 시라고 부를 순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389쪽)
않아가 쓰는 곳은 애록(AEROK)이다. 최인훈 소설가가 명명한 이름, 애록은 ‘KOREA’를 거꾸로 썼을 때의 이름이다. “여기에서 살다가 여기에서 죽을 거””(「애록에서」)라고 쓴 애록은 “이 고독한 별 한 귀퉁이에 붙은, 조그마한 뼈대 같은 산맥들을 품은 나라”이다. ‘KOREA’의 거꾸로인 그 나라에서 부정의 의미가 담긴 ‘않아’는 여성의 눈으로 살아간다. “자신에게서 자신을 벗어나고서 자신을 발견한 사람”,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며 쓴다. “긴 시간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전위 시인」) 하며 시를 썼다. “네모 안에 있으면 동그라미를, 동그라니 안에 있으면 네모를 떠올”(「동그라미」)리고, “인간적이고, 정상인이고, 현대인이고, 애옥인이라는 층위에서 뛰어내려보려고”(「언젠가 이 의인화를 버릴 거야」) 안간힘을 썼다. 젊은 시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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