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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불신사회?
한국은 법과 사회지도층을 신뢰하지 않는다. 20여 년 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서울 지역 성인 49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399명과 415명이 각각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에 공감했다. 대상자의 80% 이상이 같은 범죄라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 더 큰 처벌을 받는다고, 언론의 자유와 어쩌면 이렇게 놀랍도록 닮았을까 싶다.
19세기 중반에 프랑스 작가 오노레드 드 발자크가 당대에 유행했던 생리학이라는 장르의 글쓰기로 기자를 풍자하고 비판한 <기자 생리학>(페이퍼로드, 2021)에서 언론의 자유는 오직 약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만 자유롭다. 즉, 맘대로 때리기가 가능한 대상은 약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이 관련된 모든 것은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밟고, 때리고 부수고 하는 짓이 완전히 자유롭다는 것이니,
강준만 선생은 여러 통계자료를 인용하여 한국 사회의 신뢰도(개인 간이든, 사회조직이든)가 불신사회라고, 공과 사의 이중구조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 불신영역이 된 공공영역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정치는 불신을 넘어 저주의 대상으로,
한국 사회에서 법과 윤리가 존중받지 못한 이유는 각자 개인적 네트워크(이른바, 백(뒷배)과 연고, 학연, 지연, 혈연 등)를 동원할 힘에 의한 정치적 해결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대중매체의 법과 윤리의 개정판으로 미디어법, 윤리의 사회학이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표현의 자유, 그 이론과 실제를 1, 2장에서 다루고, 명예훼손(3장), 프라이버시(4장), 정보 접근과 공개(5장), 취재원 보호(6장), 공정재판과 언론 보도(7장), 취재, 보도윤리(8장), 언론사와 언론인의 윤리(9장), 미디어법?정책논쟁(10장), 광고 규제(11장), 음란(12장), 저작권(13장), 13장에 걸친 주제들 하나같이 중요하다.
주로 미국의 언론 관계 이론을 소개하는 데 아무래도 자유에 관한 법이론은 그만큼 다툼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표현의 자유
왜 표현의 자유가 필요한가(토머스 에머슨의 이론), 표현의 자유는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 헌법에 규정돼 있다. 우리 헌법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조항들은 제10조, 제17조 또는 18조, 제21조, 제22조, 제37조 등이다. 에머슨은 표현의 자유가 필요한 이유를 4가지로 제시했다. 첫째, 개인의 자이 실현 또는 가지 완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 둘째, 지식발전과 진리발견을 위한 필수과정, 셋째·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결정행위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넷째, 안정과 변화의 균형을 위해서다. 이 4가지 중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것은 두 번째 이유, 지식발전과 진리발견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인 때문이다.
거꾸로 가는 표현의 자유- 집시법
헌법 21조는 한국인에겐 사치인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윤석열 정부에서 물대포가 사라진 경찰에 시위진압훈련을 다시 하는 지금, 되짚어 봐야 할 대목이다. 2014년 3월 27일 헌법재판소는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야간 시위를 금지한 집시법을 한정 위헌이라 선언했는데, 벌써 9년째, 아무런 조치가 없다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 갑자기 야간시위금지를 해야 한다고. 뭔 소리인가,
한국은 시위 공화국이란 표현이 있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말이다. 집시법 논쟁은 바로 그런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문제의 핵심은 합리적인 의사 표시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시되는 현실이다. 시위는 심정에 호소한다. 이성에 호소해도 별 소용이 없기에 심정에 호소할 수밖에…. 시위 민주주의는 한국의 숙명이 아니다. 심정 폭발이 있을 때 한해서 움직이는 권력 집단의 오래된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울어야 젖 준다는 말이 바로 이런 때 쓰는 말이다. 울고 보채고 칭얼거리지 않으면 나 몰라라 하는.
기자단은 사이비 권력자인가
취재, 보도윤리, 기자실은 죽치고 앉아 기사를 밀약하고 기사의 흐름을 왜곡하는 곳인가, 기자단 제도를 보자. 기자단은 폐쇄성, 배타성, 독점성, 유착성 등으로 인해 늘 비판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기자들의 향응 접대, 촌지 수수, 엠바고 등이 모두 기자단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출입처라는 것이 기자들에게 사이비 권력자라는 달콤한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교육이나 농어촌, 영세민 등의 현장 사정은 전통적 언론의 취재 대상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것은 PD들이다. 이들에게는 출입처가 없다. 출입처가 없으니 친한 고위관리 하나 있을 리 없다. 오마이뉴스 기자가 인천국제공항 개항에 즈음하여 기자실에 들어가려다 저지당했다. 노무현 정부는 청와대기자실 개방하여, 사실상 기자단을 폐쇄했지만, 이도 얼마 가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기자실 전면 복원.
눈여겨볼 대목은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기자의 오랜 출입은 해당 부처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이에 따르는 역효과 권언유착이 생기게 마련이니,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어서, 적절한 순환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권력과 언론은 불가근불가원이다. 정보를 공개하고, 언론을 포섭하려는 노력보다는 솔직히 정보를 제공하고 국민의 알 권리와 대항 관계에 있는 국익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
할 말이 너무많다. 어느 주제를 보더라도 말이다. 한국 사회가 불신사회에서 벗어나려면 미디어법과 윤리교육을 강화하고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