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춤 ! 우리의 문화, 특히 한국에 전해진 기독교 문화에 있어서 춤이란 타락 그 자체입니다. 춤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기쁨과 슬픔에 관한 기본적인 반응입니다. 기쁨을 춤으로 표현하고 슬프면 그 슬픔을 또한 춤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시인의 내면세계를 시로 표현하는 것처럼 음악인의 내면 세계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화가의 내면 세계를 화폭에 담아내는 것처럼 춤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의 내면적 표현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반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춤이란 다듬어지지 않은 내면적 자아의 원석을 외부로 표출해 내는 방편인 것입니다. 인간이 절대자를 만나게 되면 춤을 추게 됩니다. 굳이 춤이라고 표현할 순 없지만 자신도 모르게 육체는 흐느적거리며 흔들리게 됩니다. 이 글을 쓰는 제 자신도 주님의 임재를 경험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뻣뻣한 육체를 움직여 덩실덩실 춤을 추었던 황홀한 경험이 있습니다.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덩실덩실 자신의 체통을 무시한 채 춤을 추었습니다. 요즘 말하면 소위 막춤일 것입니다. 어떤 형태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을 만큼의 황홀경 그 자체의 춤이었습니다. 완벽한 자아가 있는 자아 초월의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삭개오의 잔치 광경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위해 마련된 잔치... 그냥 음식만 먹고 예수님은 설교만 하셨겠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잔치였습니다. 설교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내적 자아를 춤과 요란스런 몸놀림으로 한 바탕 시작의 종을 울렸습니다. 베드로는 어부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어부 춤을 요한과 더불어 추었습니다. 예를 들면 강원도에는 멸치 털이 춤이 있는데 저는 그것을 보고 며칠 간을 웃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베드로도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뒤를 이어 삭개오가 벌떡 일어나 자신의 등에 작은 쿠션을 하나 집어넣어서 코믹한 꼽추 춤을 주었을 것입니다. 지나가는 거지들도 그 날은 삭개오의 집에서 벌어지는 춤판에 참석하였습니다. 밤이 맞도록 잔치는 계속되었습니다. 잔치가 무르익어 갈 무렵 삭개오는 춤을 멈추고 자신의 내적 변화에 대하여 공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삭개오는 개인 비서관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모든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내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겠습니다. 내가 만약 백성들의 세금을 과다하게 부과하였다면 그것에 4배를 보상해 주겠습니다." 주변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 졌습니다. 삭개오는 다시 강한 어조로 이야기합니다. " 비서관 너는 이 일을 지금 이후로 즉시 시행하라 !" 그동안의 삭개오를 향한 오해와 모함들이 벗어지는 순간에 주변은 박수와 풍악과 다시 춤판이 벌어졌습니다. 주님은 소란스런 춤판을 잔잔케 하신 후 삭개오를 향하여 손을 내밀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삭개오 ! 넌 이제 죄인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다" 예수님의 선포가 끝이 나자 팡파르가 울리고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피어놓은 모닥불 주변에 몰려들어 원을 그리며 서로 어깨에 손을 얹고 빙글빙글 돌기도하고 뛰기도 하고 그렇게 축제의 밤이 깊어갔습니다.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몸이 부드러워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경험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교권적인 사람이 되면 거만한 사람이 되면 몸이 굳어집니다. 찬송부를 때 손뼉 치며 부르자는 것도 사실상 힘이 듭니다. 복음성가를 율동에 맞추어 부르면 그것이 불 경건한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헨리 나우웬="" henri="" nouwen=""> 그는 카톨릭 신부로서 이미 작고하신 분입니다. 몸이 굳어진 사람들에겐 목사가 신부의 글을 소개하는 자체가 불경건일 것입니다. 헨리나우웬은 제게 있어서 너무나 소중한 스승이십니다. 이 글을 읽는 지체들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약점은 복받기 위한 신앙생활에 관함입니다. 그러기에 감기만 걸려도 몸이 굳어지고 아들이 대학에 떨어지기만 하여도 저주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성숙한 신앙입니다. 쉬운 말로 하면 어린아이 신앙이 아니라 어른신앙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크고 작은 고난을 쉴새 없이 당하게 됩니다. 성숙한 신앙은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관념 중에 하나는 고난은 저주다 라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고난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피하지 않고 통과하는 법을 배우면 고난을 다르게 맞이할 수 있다. 고난을 통해 배우려는 마음이 생긴다. 하나님이 더 큰 목표를 위해 고난을 사용하실 수 있다는 차원까지 이르는 것이다. 고난은 사력을 다해 피해야 할 불청객이나 저주가 아니라 더 깊은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길이 된다" 참으로 공감하는 말입니다. 헨리 신부는 이 책을 통하여 인생을 통찰하는 다섯 가지의 지혜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1. 작은 자아에서 더 넓은 은혜로 2. 움켜쥠에서 내려놓음으로 3. 운명론에서 희망으로 4. 감정의 조정에서 순전한 사랑으로 5. 두려운 죽음에서 환희의 삶으로 이 작은 책을 통하여 지체들의 고난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마을 청지기="" 박심원="" 목사="">예수마을>헨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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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고난 그리고 상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자신이나 사랑하는 주위의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제거하려 노력하며,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 동안에 이것들은 항상 우리의 곁에 있을 것이며, 고통의 완전한 제거를 위한 기도는 우리의 영적인 무력감을 더해갈 뿐이다. 오늘도 우리는 뜻하지 않은 ‘불행’을 경험한다.
나우웬은 고통에 대해 우리와 다른 접근은 한다. 그는 고통을 삶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춤추기를 소망한다. 아픔은 우리의 ‘작은 자아에서 더 넓은 은혜로’ 나아가게 만들고, 자신의 온갖 ‘움켜쥠에서 내려놓음으로’, 비관적인 ‘운명론에서 희망으로’, ‘감정의 조종에서 순전한 사랑으로’ 나아가게 만들며 그리고 결국 ‘두려운 죽음에서 환희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이 책을 제대로 만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저자의 잔잔한 필체도 그러하거니와 아픔과 고통의 경험이 없이 미묘한 마음의 흐름을 따라가고 수긍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일년 전 처음 책을 대했을 때, 지적인 동의만으로 이 책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손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혹독한 한 해를 보낸 어느 날 다시 손에 들려진 이 책은 나의 영혼과 마음을 온전히 몰두하게 만들었으며, 삶의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믿음이라 생각했던 우리의 많은 삶의 부분이 사실은 불신에서 연유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 새로운 출발의 시작이다.
아픔을 제거대상이 아닌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기독교적 역설이며,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생명의 삶이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전과는 다른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우리 삶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우리는 모른다.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확실히 예측할 수 없다. 미지의 빈 공간을 자신이 이루고 싶은 소원으로 구체적으로 채우려는 공상 속의 모든 시도는 우리의 소망이 강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믿음이 약하다는 증거다. 믿음은 우리에게 뛰어내리라 한다. 맡기라 한다. 어딘가에서 어떻게든 그분이 우리를 붙잡아 집으로 데려가실 것을 믿으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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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깊은 곳에서 춤 추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해 준 책입니다. 마음을 감동시키는 적절한 비유과 깊이 있는 문장들이 내 심령 깊숙한 곳까지 전율을 느끼게 했습니다. 인생을 통찰하는 다섯 가지 지혜 - 1) 작은 자아에서 더 넓은 은혜로 2) 움켜쥠에서 내려 놓음으로 3) 운명론에서 희망으로 4) 감정의 조종에서 순전한 사랑으로 5) 두려운 죽음에서 환희의 삶으로 - 는 하나님을 내 안에 받아들일 때, 그 분께서 우리의 삶을 안무하실 것이다. 치유의 춤을 통해 상한 영혼이 다시금 춤을 추게 되고,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춤추게 하는 치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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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추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을 크리스찬 센터에서 처음 보고 책을 한번 훑어 봤는데 나에게 정말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을 이용해 책을 샀는데 역시나 나에게 꼭 맞는 책이었다. 지금 난 힘든 시기에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은 그 것을 받아들이고 여기서 배우라고 말하고 있다. 난 그랬다. 힘든 시기는 잊어버리자고. 그런데 이 책에서는 힘든 시기를 다시 떠올리고 거기서 무언가를 배우라고 말하고 있다. 이 내용이 어찌나 내 마음속에 울려 퍼지던지.. 또한 고난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함께 춤추기를 권하고 있다. 작가의 독특한 표현 방식이 다시 한번 날 놀라게 했다. 또 한 구절, 운명론에서 희망으로....이 책을 통해 난 운명론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내 현실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려고 했고 내 삶 자체도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내게 운명론보다도 희망을 가지라고 권면해주고 있다. 내가 정말 받고 싶은 선물을 받았을 때의 기쁨. 이 책은 내 돈으로 샀지만 좋은 선물을 받은 기쁨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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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통찰하는 다섯가지 지혜'.. 이 책의 부제이다.
이 책을 우리의 삶에 대한 각자의 자세에 대해 깊게 고찰하게 해 준다. 살면서 우리가 겪는 여거 상실과 불행들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자세. 그로 인해 악순환되는 우리 삶의 피폐함.. 상처 등에 대하여.. 부르더운 문체이지만 날카로운 지적이 계속된다.
5개의 단원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 자신의 어려움과 불행을 직시하고 그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는 삶.
- 자신의 능력, 지위, 부 등에 기대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것들을 하나님에 귀 기울이며 마음을 여는 자세..
- 여러가지 사회 통념, 주변에서 들려오는 운명론을 떠나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갈구하며 사는 모습
- 기대하고 실망하는 인간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로서의 인간 관계
- 죽음을 직면하며 현재를 소중하게 사는 태도
크리스찬이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봤을만한 주제들이지만, 책 속으로 빠져들면 들수록,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던...수많은 점들을 발견하고 놀라움과 기대감에 젖게 된다.
크리스찬이 아니더라도, 이 책은 개인 삶의 내용을 바꿔주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정 탐탁치 않다면, '성경', '예수' 부분은 넘어가면라도 읽어보라. 우울함을 경험하고 있거나, 매우 바쁜 일상에 쫓기고 있다거나, 인간관계에서 갈등하고 있다거나, 앞날에 대한기대가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권한다. 왜냐하면 실재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암튼 개인적으로 지난 한 주간 많은 것들을 느끼고 얻게 해준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하지만 사랑받고 싶다는 가장 깊은 욕구를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우리는 고독속에서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끝없는 도전이다. 아침을 먹으러 가기 전만 해도 내 머릿속에는 지금 모습과 조금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족히 스무 명은 떠오른다. 이 사람은 몸매 관리 좀 하면 좋겠고, 그 사람은 지각 좀 그만 하면 좋겠고, 저 사람은 무뚝뚝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긍휼을 배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
| 헨리나우웬은 익히 알려진 영성신학자이다. 그가 하나님의 기쁨과 즐거움을 "춤"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다. 여러가지 있겠지만 대개 다섯가지를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데 그 다섯가지를 이렇게 푸시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다. 그 다섯가지는 작은자아에서 더 넓은 은혜의 자리에서 하나니은 당신과 춤추시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둘째는 움켜짐에서 내려놓음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스탬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 지금까지는 너무 움켜짐으로 지치고 힘든 영혼을 내려놓자 세째 운명에서 희망으로 우리의 방향을 바꾸자 운명론자도 될되라대라 를 들으면 마치 희망에 차있는 것 처럼들린다. 그러나 반작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네째로 감정의 조종에서 순수한 사랑으로 나는 감정을 잘 조종하는 능숙한 사람인가? 순수한 사랑을 전달하는 예수 사랑의 사람인가? 다섯째는 두려운 죽음에서 환희의 삶이 남아 있는가? 막연히 죽음을 두려워 하고 있는가? 자신을 점검하는 한 영성 신학자의 채크 리스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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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지만 나우웬의 글들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져다준다. 특히 그는 정신지체아들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지니고 있는 고통과 외로움의 문제와 공동체의 중요성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참된 사랑에 대해 깊이 다룬다.
이 책은 우리가 삶의 순간순간 다가오는 고통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해준다. 고통과 슬픔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이어서 가능하면 회피하고 빨리 그 순간에서 빠져나오고 싶어한다. 그러나 나우웬은 그것을 회피하지 말고 통과하면서, 이것을 인간인 우리가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긴밀하게 만나며 그분을 의지하라고 권한다.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전환점이 바로 '기도'이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그분께 드리며 삶을 다시 그분의 관점에서 보기 시작할 수 있다. 기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내게 이 책은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 기도하는 시간임을 인식시켜 주었다. 고통 중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가장 깊은 의미에서 감사한 삶을 고맙게 받아야 할 선물로 산다는 뜻이다. 진정한 감사는 좋은 것과 나쁜 것, 기쁜 일과 아픈 일, 거룩한 부분과 거룩하지 않은 부분을 가리지 않고 삶 전체를 끌어안는다. 우리가 삶 전체를 끌어안는 까닭은 모든 사건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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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책을 읽으면서 약할때 강함이고, 힘든것이 기쁨이 되고, 아픈것이 행복이 될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라는 생각이든다.
책 타이틀처럼 '아픈 세상에서 발견하는 희망':고난에서 춤으로의 초청'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우리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만이 아픔이 춤으로 변할수 있단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책이다.
특히 2번째 단락인 '움켜쥠에서 내려놓음으로'에서는 얼마나 많이 울고, 내자신이 잘못된 일을 알수 있어서 정말 감명깊었다.
우리가 움켜쥘수록 우리에게 남는것은 상처와, 욕심뿐이고, 주님앞에 내려놓으므로 모든것을 가질수 있다는 역설을 통해서 우리가 너무 자신읠 것을 가지려는 이기심과, 하나님을 단지 내 시아에서의 하나님으로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자민, 조금은 딱딱하고, 조금은 지루한 문체들이 이 책을 읽은 독자로 하여금 조금은 멀리 남의 이야기 처럼(실제는 자기의 모습이지만) 느껴진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인상깊은구절] 그날, 아버지와 함께 서커스에 갔다가 그네 타기 곡예사에게 마음을 빼앗긴 뒤로 나는 해마다 1주일 혹은 2주일씩 서커스단에 합류하여 돌아다녔다. 최근에 서커스단리더가 내게 말했다. "핸리, 만인이 내게 박수를 보냅니다. 내가 허공에 뛰어올라 거꾸로 공중제비 하는 것을 보며 다들 나를 영웅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영웅은 잡는 사람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팡릉 내밀고 믿는 것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