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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전략연구소 제13호에 실린 [화령국왕 이성계]에 대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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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전략연구소 제13호에 실린 <화령국왕 이성계>에 대한 서평입니다. 화령국왕 이성계, 박치정 저, 도서출판 삼화 발행, 2015. 3. 25 발행, 388쪽. 박치정 교수의 ‘화령국왕 이성계’는 대륙전략연구소 총서 제2호로 출간된 책이다. 박치정교수는 정치학을 전공하고 건국대학에서 정치학을 30여년 강의하였다. 뿐만 아니라 리더십 강의로는 이미 명성을 떨친 바 있다.그러한 그가
"대륙전략연구소 제13호에 실린 [화령국왕 이성계]에 대한 서평" 내용보기

대륙전략연구소 제13호에 실린 <화령국왕 이성계>에 대한 서평입니다.

화령국왕 이성계, 박치정 저, 도서출판 삼화 발행, 2015. 3. 25 발행, 388쪽.


박치정 교수의 ‘화령국왕 이성계’는 대륙전략연구소 총서 제2호로 출간된 책이다. 박치정교수는 정치학을 전공하고 건국대학에서 정치학을 30여년 강의하였다. 뿐만 아니라 리더십 강의로는 이미 명성을 떨친 바 있다.
그러한 그가 일견 보기에는 역사책인 이 책을 저술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는 이성계에 대한 그동안의 잘 못된 인식을 고치려고 한 것이다. 보통 알려지고 있기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 왕조를 쿠데타적으로 무너트리고 요동정벌을 부르짖은 최영을 제거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 결과 그 동안 고려와 조선의 교체 때문에 마치 요동을 우리의 영토로 삼을 수 있는 기회를 이성계 때문에 놓쳤다는 시각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무력을 가진 이성계가 권력욕 때문에 민족의 이익을 외면한 채, 자기의 개인적인 욕심을 채운 사람으로 인식하게 하여 우리 역사에서 이성계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이성계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게 되었다.
그러나 박 교수는 당시 국제 정세, 즉 신흥 명 왕조와 물러가는 원 왕조 그리고 고려라는 세 세력이 부딪히는 지역인 만주·요동지역에서 이성계가 어떻게 우리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국제정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는지를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그 동안 당시의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단순히 최영의 요동정벌은 마치 가능하였던 것으로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으로 이해하면서 최영을 영웅시하였던 시각에 대한 비판이며, 그동안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던 이성계의 활동을 제대로 밝히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다음으로 그동안 우리들의 역사 인식에는 우리민족을 단일민족으로 생각하고, 순혈주의적 역사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을 과감히 비판하고 여진과 거란족과 우리는 끊임없이 교섭하고 연계하면서 협조하고 뒤섞여 살았던 것을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민족을 단일민족이라고 고집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독립운동식의 역사인식이지 역사 사실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라고 고집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정황과 사실이 있음에도 이를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독립운동식의 민족사관이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일민족이라는 시각은 조선시대를 지배하였던 이데올로기였던 주자학의 순혈주의, 혈통주의 그리고 화이준별(華夷峻別)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것인데, 이것이 아직도 불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일제 강점기간 주자학적 화이준별 사상은 일제와 우리를 구별 짓는 논리로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독립운동을 위하여 단일민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것을 아직까지 그대로 온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일 혈통주의적 사고는 우리로 하여금 항상 이웃하고 있는 거란·여진과 철저하게 구별하고, 그들과의 교류를 거부하게 하였다. 이러한 이민족과의 철저한 구별은 거란족과 여진족의 역사를 통째로 우리 역사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와 거란·여진과 합동으로 이룩한 역사는 스스로 우리의 역사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중국과의 역사전쟁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는 고구려·발해의 역사에서 중국에서는 비록 거란족과 여진족이라고 하여도 한(漢)문화를 수용하여 한화(漢化)된 대한족(大漢族) 속에 포함한다는 논리에 비한다면 우리 논리는 아주 많은 취약성을 드러내게 되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논리를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단일민족임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 논리의 개발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고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에 대응하기 위하여서는 단일민족론, 순혈통주의적 사고를 고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한 점에서 박 교수는 이성계에 대한 조명을 통하여, 여진족이며 동시에 한족(韓族)인 이성계를 모델로 연구한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순혈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임에도 이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믿는 기존의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문제가 된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따라서 박 교수는 이 책을 통하여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민족 혹은 국가를 상정하면서 조선 왕조는 이성계가 여진세력을 일정한 정도로 규합한 다음에 그 힘을 가지고 한족(韓族) 중심의 고려와 합작하였다고 하였다. 즉 여진과 고려의 통합이며, 조금 더 진전해서 말한다면 조선 왕조의 탄생은 이성계 세력의 중심지인 화령지역이 한족(韓族) 중심의 고려를 병합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시각과 논리는 그것이 사료와 논리적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국수주의에 경도된 한국 사회에는 큰 충격을 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가 아니고서는 여말선초를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동안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이성계 세력의 근거지인 화령지역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였던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교수는 다시 화령지역에 대한 연구의 지평을 연 것이다.
박 교수는 연길에서 두만강일대와 함흥으로 연결되는 지역의 교통로 경제적 상황을 설명함으로써 그 지역이 충분히 고려를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세력이 형성될 수 있는 지역적 여건을 논증하였다. 그러한 점에서 박 교수의 이 책은 여말선초의 국제 정세와 그에 따른 각 세력 간의 긴장된 교섭관계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셋째로 그동안 조선 왕조의 건국은 무식한 이성계가 무력으로 이룩한 것이고, 이성계는 당시 국제 정세에 마치 어두운 단순한 무부(武夫)였다는 인식을 바꾸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성계가 무식한 무부였다는 주장은 사실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하나의 정치세력이 탄생하는 데는 개인의 능력과 그리고 무력이 있어야 하고 그 위에 정치력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기존의 논리는 무식한 무부인 이성계가 어떻게 고려와 원 그리고 명, 세 세력의 이해가 상충되는 곳에서 그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박 교수의 논리대로 이 세 세력이 상충하는 이 지역에 기반을 둔 이성계는 이 지역과 주변지역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지식을 통하여 이 세력을 가지고 다른 세력과 절충하고 타협하며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결론을 끌어내는 높은 정치력과 외교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러한 결론은 여말선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박 교수가 오랜 동안 정치학을 연구하면서 쌓인 정치학적, 외교학적 시각이 역사에 투영되어서야 비로소 가능하였던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 동안에는 정치학과 외교학에 대한 기반지식을 갖지 못한 역사학자들의 시각을 한 차원 더 끌어 올려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박 교수는 이 책을 통하여 이성계야 말로 진정한 삼국통일의 주역이었음을 밝힌다. 언필칭 신라의 삼국통일이란 엄격하게 말하면 고구려 부분의 거의 대부분은 우리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못하였고, 고구려 지역에는 발해가 있었으므로 삼국통일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결론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를 남북국시기로 말하는 학자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 후 고려가 건국할 즈음에 발해가 멸망하면서 거의 대부분은 고려로 귀속하지 않는다. 그러한 점에서 고려의 건국도 신라의 계승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 시대까지도 신라와 백제의 통일이이라는 것이 대체로 한반도의 대동강 원산선에서 머물러 있었던 것의 연장이라고 보아야야 한다.
그런데 박 교수는 고려 말에 이성계가 연변과 함경도지역을 아우르는 독자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에 주목하였고, 이것이 화령국으로 엄연히 고려와는 별개의 세력으로 존재해 있었다. 고려는 정치적으로 이를 이용하고자 이성계에게 관직을 주었지만 이 관직이란 협동할 수 있는 세력으로 인정한 것이고 따라서 고려 조정에 복속한 것이 아닌 독립적 두 세력의 윈윈의 조치였다.
그 후에 고려 왕조가 스스로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들어가자 이성계는 화령의 군사력을 이용하여 고려를 접수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화령국이 동맹국 고려를 접수하여 이를 통합한 왕조가 조선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덕택에 신라이후 고려까지의 영역을 넘어서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우리의 영역으로 돌아 올수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는 마치 만주족의 청 왕조가 중원지역을 점령하고 통치하게 됨으로 만주와 중원이 하나의 정치권으로 확장된 효과를 가져 온 것과 흡사한 것이다. 박 교수는 신라·고려 시대의 영역과 조선 시대의 영역을 비교하면 신라·고려 시대의 영역보다 50%이상 확장된 것이 조선의 영역이고, 이것은 이성계가 여진족을 아우르는 화령국을 만들어 그것으로 고려를 접수함으로 가능하였다고 한다.
이 논리는 마치 현재의 중국이 만주족을 대중화민족의 하나로 인정하고 여진·거란족이 활동하였던 무대를 자기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려고 동북공정을 벌이고 있는 것과 유사한 논법이다. 박 교수는 이성계를 통하여 여진족과 우리 한족(韓族)을 통합한 조선족을 탄생시킨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진·거란족을 우리와 철저하게 구분하고 우리민족 가운데서 분리하는 역사인식을 가져서 스스로 우리 삶의 영역을 축소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현실을 박 교수의 이 책을 통하여 극복하려고 하였고, 동시에 이 논리를 통하여 우리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하여 대응 논리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박 교수는 이러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하여 우선 기존의 한국사학자들이 다루지 아니하였던 ≪원사≫·≪신원사≫·≪명사≫·≪명실록≫ 등 중국 측의 자료를 이용하여 입체적으로 증명하려고 하였다. 그 외에 그동안 역사 연구에서 많이 인용되지 아니하였던 당사자의 기록이라고 할 ≪용비어천가≫를 이용함으로써 사료의 범위를 확장하였다. 탄탄한 증거사료를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사료의 이용은 과거에 우리 측 자료인 ≪조선왕조실록≫에만 의지하려고 하였던 역사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며, 한국사 연구의 새로운 방향과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른 바 한국사와 동양사의 학제간의 통합연구를 수행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첫 번째로는 기존의 한국사의 이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면서 한국사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 논리를 개발하였다는 점에서 그 공헌이 크다 할 것이다. 이는 정치학적 시각을 가진 박 교수가 한국사를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며, 동시에 한국사 연구가 이른 바 한국사학자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실례를 보여 준 것이라고 하겠다. 동시에 중국 대륙에 대한 이해를 한층 깊이 있게 할 수 있도록 안내하였다고 할 것이다. <권중달>

d*****a 2015.09.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