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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라는 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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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나는 지금까지 오감 중에 미각을 가장 소홀히 여겼고 음식 역시 생존을 위한 섭취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었다. 맞벌이인 부모님 아래서 외로이 자라 집밥의 기억이 별로 없는 탓인 지도 모른다. 황석영 작가는 과거 홀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느라 부엌에서 멀어지자 가게에서 사온 간단한 인스턴트 음식들로 끼니를 때웠다고 하던데 나도 그랬다. 솔직히 잘 차린 밥상은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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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나는 지금까지 오감 중에 미각을 가장 소홀히 여겼고 음식 역시 생존을 위한 섭취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었다. 맞벌이인 부모님 아래서 외로이 자라 집밥의 기억이 별로 없는 탓인 지도 모른다. 황석영 작가는 과거 홀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느라 부엌에서 멀어지자 가게에서 사온 간단한 인스턴트 음식들로 끼니를 때웠다고 하던데 나도 그랬다. 솔직히 잘 차린 밥상은 내게 식욕 보다 텅 빈 집에서 홀로 마지못해 끼니를 때워야 했던 시간의 외로움을 먼저 상기시켰다. 상 위의 풍경이 풍성하면 할수록 생선가시만큼이나 앙상했던 내 과거가 더 두드러져 보였던 것이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음식에 별다른 가치를 두지 않으려 했다. 내게 밥도둑은 없었다. 밥도둑이 즐거운 식사를 달리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면 더욱 나와는 먼 존재였다. 내게 수저를 들게 만드는 진정한 신호는 식욕 보다는 허기였고 그것을 채우는 일도 정해진 시간에 태엽을 감아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왜 '황석영의 밥도둑'을 읽게 된 것일까? 실은 나도 잘 모른다. 단지 황석영 작가의 책이라기에 손에 들었고 처음 '철모에 삶아 먹은 닭 두 마리'를 읽을 때는 분명 그들만큼 곤궁했을 농부들의 닭과 돼지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서리해가는 추억 속 인물들에게 화부터 났었다. 게다가 이 책은 나를 당혹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본디 내가 음식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지만 이 책엔 생경한 음식들이 참 많이도 나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 페이지로 넘기는 것을 그만둘 수 없었다. 작가가 어찌나 하나의 음식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담과 그 음식의 정보 그리고 만드는 방법을 흥미로우면서도 절묘하게 엮어내는지 이야기가 가진 중독성이 상당했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를 타칭 '조선의 3대 구라'라고 하더니만 헛소문이 아니었다. 잘 몰랐던 황석영 작가의 개인사를 알게 된 것도 좋았으나 특히 낯선 음식을 알아간다는 즐거움이 컸다. 나는 홍어에게 생식기가 있다는 것도, 그것으로 가격 차이가 심히 나는 암수를 구별한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러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 어느 순간 다 읽어버렸다. 뚜렷한 동기는 없었으나 읽는 재미가 완독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마냥 재밌었다고 할 수만은 없다. 페이지가 거듭될수록 어느새 마음 속에 자리잡은 질투의 감정이 차츰 커져갔던 것이다. 그에겐 참으로 많은 음식에 대한 추억이 있었지만 내겐 없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음식은 매듭이라는 사실이다. 음식은 그저 끼니의 수단만은 아니었다. 같이 먹는 사람, 함께 한 시간도 묶어 분별 가능한 하나의 마디로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삶은 어떻게 보면 모래강과도 같아서 단단히 묶어두지 않으면 사람도, 시간도 흘러가다 어느 순간 모래 아래로 가라앉아 망각되고 만다. 하지만 음식은 그걸 통조림처럼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 적어도 황석영 작가의 개인적인 시공간에선 그랬다. 음식이 단단한 매듭이 되어 마치 책에 꽂아둔 책갈피처럼 작가가 누군가, 어떤 시간을 떠올릴 때마다 쉽게 찾아내선 그 추억을 오롯이 재현시켜 주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매듭이 음식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무엇이 되었더라도 내 기억의 창고는 빈약했다. 빈 독의 바닥을 구르는 쌀 몇 톨. 씁쓸했다. 절로 서문의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아주 아프게.


그러나 배고픔은 어떤 먹을거리로든지 달랠 수가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음식의 맛에 대한 그리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맛있었던 음식도 함께하는 이가 없으면 그 맛을 느낄 수가 없으며 넘쳐나는 풍성한 먹을거리도 고독한 식사의 허기를 달래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즈음 음식 프로가 부쩍 성행하는 것을 보며 음식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공동체성의 뿌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p.10~11)


 나는 홀로 먹는 것에 익숙했고 일부러 고수했다. 외로움을 되새기고 싶지 않아 지레 음식의 매듭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니 추억의 잔고가 별로 없는 것도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다. 나를 지키려고 들인 습관이었지만 나를 더 빈곤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이제 깨닫는다. 진정한 풍요는 내 성의 견고함이 아니라 타인과의 결부에서 온다는 것을. 내게도 황석영 작가의 다음과 같은 말처럼 타인이란 존재가 있어아만했던 것이다.


 내게는 어쨌든 내 존재를 비춰주고 확인시켜줄 타인이라는 거울이 필요했던 셈이다.(p.48)


 어쩌면 깨닫는 것이 너무 늦어버렸는 지도 모르겠다. 황석영 작가가 넌지시 알려주는 바에 따르면 음식의 매듭은 그것이 유일무이할 때 더욱 단단해진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타관 객지에서 그런 강렬한 토속 음식은 알지 못하게 시달렸던 다른 종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달래주는 것이 되기도 한다.(p.197)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오직 한 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유성이 함께 한 사람과 시간을 한층 더 굳건하게 묶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들이 작가가 다시 가 본 해남 땅에서 보았던 것처럼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읍내를 둘러보니 온통 순댓국, 삼겹살, 해물탕 같은 간판이 즐비했다. 어디나 어슷비슷한 식당이 전국화되고 있는 것이다.(p.207)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처럼 음식도, 맛도 양산화, 평준화 되고 있는 것이다. 단조로운 일상이 우리의 신경을 무디게 만들듯,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고유성을 상실한 닮은꼴의 음식들은 경험의 선명도를 떨어뜨린다. 결국 그렇지 않았다면 강렬했을 추억도 흐릿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처럼 함께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는 것은 다만 먹는 순간을 즐겼다는 것 뿐이다. 시간의 소비만 있지 추억의 예금은 없는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는 이렇게 과거의 나와 다르지 않은 아이들, 현재의 나와 판박이인 어른들이 많다고 밝힌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정체도 모를 미국식 페스트푸드로 점심을 때우고, 어른들도 야외에만 나가면 그저 고기를 떡 벌이지게 지글지글 구워서 독주에다 실컷 마시고 쿵쾅거리는 가라오케 기계를 틀어놓고 법석댄다. (p.107)


 현실은 점점 타인과 더불어 오래 공유할 추억을 만들기 힘든 상황으로 가고 있다. 더구나 지금의 인간 관계란 헤어질 때 버릇처럼 말하는 '언제 한 번 밥먹자'라는 말의 공허한 울림과도 같이 형식적이면서 파편화되어 버린지 오래다. 나는 정말로 뒤늦게 깨달았는 지도 모른다. 지금의 현실이 내가 뭔가 하기엔 너무나 버겁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이런 내 모습이 과거의 나와 너무 비슷하다는 것을. 그 때의 나는 외로움을 무척이나 많이 느꼈지만 그 상황에 나를 수동적으로 길들이려했을 뿐,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하여 현재의 후회와 자책을 가졌으면서도 나는 어느새 또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퍼뜩 정신을 차린다. 그래. 상황 탓은 그만두자. 그렇게 하여 본들 황석영 작가에 대한 부러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외부에서 나를 의탁할 곳을 찾고 그런 곳이 없다며 포기하기 보다는 차라리 내가 먼저 그런 거점이 되자. 추억을 동냥하기 보다는 내가 먼저 나눠주기로 하자. 그것도 어디서도 대체가 불가능한 고유한 경험을. 이렇게 마음 먹는다. 앞에서 인용한 것에 바로 이어지는 말 그대로다.


 장아찌는 장독대가 사라지면서 백화점의 반찬가게로 옮겨갔고, 서로 담 너머로 장을 빌리거나 찬을 나누고 들밥을 함께 먹던 문화는 식구끼리의 외식문화로 바뀌었지만, 실천하기에 따라서는 회복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p. 107)


 동의한다. 실천이 중요하다. 나는 그것을 무엇보다 요리를 통해 해보려 생각한다. 이렇게 작정하게 된 것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책을 통해 음식이야말로 고유성의 발현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된 까닭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의 나 때문이다. 집밥의 경험이 거의 없었던 나. 내가 한 집밥을 누군가 먹고 즐거워한다면 그 때의 나에게도 위로가 될 것 같아서이다. 물론 내가 만든 음식으로 누군가를 즐겁게 만든다는 것이 지금의 내겐 턱없는 욕심이긴 하다만. 그래도 발걸음을 떼고 끝까지 걸어가 보고 싶다. 언젠가 내가 만든 음식 때문에 누군가 추억을 밥도둑처럼 즐거이 맛볼 수 있도록.



     

l****1 2016.03.28. 신고 공감 17 댓글 14
리뷰 총점 종이책
『황석영의 밥도둑』진정한 밥도둑은 누군가와 나눠먹는 맛
"『황석영의 밥도둑』진정한 밥도둑은 누군가와 나눠먹는 맛" 내용보기
이상하게 오래전에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나이탓일까.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 그때는 그 음식이 지겨워 먹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에서야 생각나는 건 왜일까. 엄마의 음식을 먹지 못하기 때문일까. 우울하고 슬플때 엄마가 해준 음식을 간절하게 먹고 싶을때가 있다. 그 전에는 왜 그런 느낌을 갖지 못했을까. 엄마의 음식이 생각나는 날이면, 그 음식을 기억하
"『황석영의 밥도둑』진정한 밥도둑은 누군가와 나눠먹는 맛" 내용보기

  이상하게 오래전에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나이탓일까.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 그때는 그 음식이 지겨워 먹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에서야 생각나는 건 왜일까. 엄마의 음식을 먹지 못하기 때문일까. 우울하고 슬플때 엄마가 해준 음식을 간절하게 먹고 싶을때가 있다. 그 전에는 왜 그런 느낌을 갖지 못했을까. 엄마의 음식이 생각나는 날이면, 그 음식을 기억하며 만들어본다.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먹을게 많아 제대로 된 참맛을 느끼지 못하는 수도 있다. 병원에 계신 엄마에게 가며 엄마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만들거나 사서 가는 발걸음은 늘 무겁다. 그 음식들을 우리집에서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때문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김치를 잘 담그셨다. 어디 김치 뿐일까. 엄마가 해준 아귀찜, 홍어찜, 명절 음식인 두부와 무를 썰어 쇠고기로 국물을 낸 탕국(우리는 탕수국이라고 불렀다), 평소에 해주시던 물이 잘박하게 들어있이 시원한 맛이 일품인 콩나물. 오래전엔 너무 짜서 먹지 않았던 간장 게장과 빨갛게 고추가루로 맛을 낸 꽃게장. 생각해보니 엄마의 음식이 많았구나. 다른 건 대충할 줄 아는데 간장 게장은 아직까지도 엄마의 맛을 내지 못하겠다. 엄마만의 비법이 있었을까. 또한 딸기를 뭉근하게 끓여낸 딸기 고추장까지. 병원에 계신 엄마에게 몇 번이나 물었으나 딸기 고추장은 아직까지 시도해보지 못했다.

 

  엄마의 음식을 기억하는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간직한 추억의 음식이 있을 것이다. 기억속의 음식을 기억하는 일은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과도 같다. 그때 먹었던 음식,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들. 함께 했던 시간들이 이렇게 애틋하게 기억되리라고는 그때는 생각못했었지. 이렇게까지 간절하리라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음식의 맛에 대한 그리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고 황석영 작가는 말했다. 그렇다. 나도 이 책을 읽는데 오래전에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다정한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 시간들은 그리움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 생소한 음식과 함께 황석영의 그리움의 시간들을 함께 했다.

 

 

 

장아찌를 떠올리면 밥 한 덩이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가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고는 굶주림 속에서 살아나온 사내의 등덜미에 흐트러진 하얀 비듬 생각이 나고, 그가 남긴 딸자식의 눈빛이 생각난다. (79페이지)

 

  작가는 장아찌의 맛을 떠올리며 추억의 시간을 말했다. 깻잎이며, 취, 머윗잎, 겨울에 김장하고 남은 작은 무, 마늘, 양파 등에 간장 졸인 물을 부어 만든 장아찌는 어쩌면 엄마의 맛이다. 엄마의 맛을 따라가고자 나이가 들면서 만든 음식들이다. 작가의 말처럼, 짭짤한 장아찌를 먹고 났을 때의 개운함과 입맛이 돋우어진 느낌들. 아직도 냉장고에 켜켜이 쌓여진 장아찌에 밥 한 그룻이 생각날 정도 였다.

 

  북한 출신인 어머니가 돌아가시기전 들고 싶었다던 노티라는 음식과 먹을 것 부족하던 피난 시절에 어머니가 해주셨던 장떡의 추억들은 지나간 우리의 고통의 시간을 갖게 했다. 이 때는 모든 것이 부족할 때였구나. 먹는 것보다 더 힘들었을 죽느냐 사느냐의 고통의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때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나는 건 그 시간들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벗을 떠나보낸 뒤 그와 함께 즐기던 음식들의 맛을 잃었고, 마지막 여행길에 그가 먹고 싶었다던 아욱된장국이 올라올 때면 어쩐지 수저가 무겁다고 말했던 마지막 문장에 그만 코끝이 시큰해지고 말았다.

 

  하필이면 이 책을 읽을 때 배가 고픈 상태였다. 평소라면 독서하며 보냈을 저녁 시간에 이 책 속의 추억의 음식으로 인해 배에서는 꼬르륵소리가 요동을 쳤다. 결국 다 읽지 못하고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럼에도 추억의 음식을 먹지 않아서 일까, 작가의 말처럼 개량화된 음식을 먹어서 일까, 속이 헛헛했다.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들이 못내 그리웠다. 막 지은 고슬고슬한 밥에 장아찌 얹어 먹고 싶은 건 비단 나 뿐일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6.03.25. 신고 공감 11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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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가라. 숟가락에 추억 한 움큼, 젓가락에 눈물 한 방울
"애들은 가라. 숟가락에 추억 한 움큼, 젓가락에 눈물 한 방울" 내용보기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5학년 때 학교의 이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 살던 집을 떠올리면 저녁 무렵 자주 나던 냄새가 함께 떠오른다. 한 대문을 쓰는 2층 주택의 1층에 살았는데 밖에서 놀다가 저녁 때쯤 현관에 들어서면 약간 구린 된장국 냄새와 양배추를 삶은 비릿한 냄새, 짭쪼름하고 퍽퍽한 고등어구이 냄새가 함께 훅 끼쳤다. 넉넉지
"애들은 가라. 숟가락에 추억 한 움큼, 젓가락에 눈물 한 방울" 내용보기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5학년 때 학교의 이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 살던 집을 떠올리면 저녁 무렵 자주 나던 냄새가 함께 떠오른다. 한 대문을 쓰는 2층 주택의 1층에 살았는데 밖에서 놀다가 저녁 때쯤 현관에 들어서면 약간 구린 된장국 냄새와 양배추를 삶은 비릿한 냄새, 짭쪼름하고 퍽퍽한 고등어구이 냄새가 함께 훅 끼쳤다. 넉넉지 않은 집이니 고기반찬은 자주 보기 힘들었지만 반찬들이 매일 똑같지는 않았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그때를 떠올리면 늘 그 냄새가 함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어머니는 가게를 하시느라 아침 일찍 나가서 밤 늦게서야 들어왔고, 아버지는 늘 야근, 나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으니 식구들이 모두 둘러앉아 밥을 먹은 기억은 중학교 때 이후로 점점 잦아든다. 하지만 기억이 반드시 횟수와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에 대해 글쓴이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음식 이야기는 흥청망청 잘나가던 시절보다는 어려운 날에 더욱 깊어지고 정다워진다. 외로울 때, 힘들 때, 아플 때, 슬플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정든 가족들과 함께 나누었던 음식을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또한 어디선가 그들과 함께 나누었던 음식을 찾아 헤매며 그 맛을 재확인하려 한다.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다가 요리를 해볼 수도 있지만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은 이제 사라지고 없거나 자신의 입맛이 변했을 수도 있다."

 

밥도둑이란게 이 맥락에서 보면 끝내주게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그 음식을 먹었을 때의 기억, 함께 먹었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일컫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난히 굴곡진 삶을 살아왔던 저자가 군대 생활을 할 때, 첫사랑을 떠올리면서, 어릴 적을 추억하면서, 산천을 떠돌 때 그리고 정겨운 벗들과 나누던 그 일들의 곁에 함께 했던 음식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음식에 얽힌 옛 일들을 수없이 떠올렸다. 주로 주머니에서 먼지만 날리던 시절 친구들과 보잘것없는 먹거리를 나누던 시절들의 기억이다. 대학 동기 녀석과 주머니 탈탈 털어 모든 팔천원으로 치킨 반마리 맥주 한 병을 빨아먹듯이 아껴먹다가 옆 테이블에 남기고 간 닭으로 포식했던 이야기, 편의점에서 데운 냉동만두와 사리곰탕 컵라면으로 소주를 부시던 반지하방에서의 추억, 이별의 상처를 달래주던 깡소주와 새우깡,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해지시기 전 화개장터에 같이 놀러가서 먹었던 산채비빔밥의 맛, 외할머니가 삶아주시던 마늘백숙, 엄마가 무쳐주시던 꼬막무침의 맛.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먹거리들의 유래와 맛에 대한 묘사를 여기에 옮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래, 나도 그떄!' 하고 생각나는 음식이 있거나 그 음식을 먹던 장면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추억에 잠길 수 있다면 그걸로 밥도둑의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렇게 더운 여름날 말고 추운 겨울 뜨끈한 김 모락모락나는 음식들이 제맛이 나는 계절에 읽으면 더 훈훈하고 따뜻할 추억반찬.

s*************k 2017.07.18. 신고 공감 8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밥을 나눔은 관계의 질을 향상하는 소중한 자리이다.
"밥을 나눔은 관계의 질을 향상하는 소중한 자리이다." 내용보기
아침을 챙겨 먹지 못한 채 허둥대며 등교한 아이들은 4교시 종이 채 울리기도 전에 급식소로 달려 나간다. 3학년부터 밥을 먹는 게 통념처럼 자리한 지 오래지만 급식소까지라도 빨리 달려가 줄을 서야 직성이 풀리는지 달음질을 하다 고꾸라지는 일도 있어 안전하게 걸으라고 하지만 한 끼를 해결하려는 절박한 마음은 달리기로 시작된다. 오늘의 식단 차림표를 챙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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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을 챙겨 먹지 못한 채 허둥대며 등교한 아이들은 4교시 종이 채 울리기도 전에 급식소로 달려 나간다. 3학년부터 밥을 먹는 게 통념처럼 자리한 지 오래지만 급식소까지라도 빨리 달려가 줄을 서야 직성이 풀리는지 달음질을 하다 고꾸라지는 일도 있어 안전하게 걸으라고 하지만 한 끼를 해결하려는 절박한 마음은 달리기로 시작된다. 오늘의 식단 차림표를 챙기며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함께 둘러앉아 도란거리며 음식을 나누는 자리는 정겨운 광경이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친구의 말에 웃어젖히던 아이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머쓱해한다.

   먹기 위해 사는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말하지만 음식을 섭취하며 생활을 유지하는 일 못지않게 지인과 만나 한 끼를 함께 나누는 소통의 자리는 인간관계를 두텁게 하는 자리이다. 홀로 지내는 노인들의 괴로움 중 하나가 혼자 눈을 뜨고 끼니를 마련하여 텔레비전 을 보면서 밥을 먹는 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나이 들어도 누군가와 함께 밥을 나눌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흔이 넘은 엄마는 지금도 딸이 좋아하는 들깨 탕을 쑤어 맛보게 하는 일로 농한기를 보낼 정도로 한사람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음식이라는 생각에 미치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은 딱히 떠오르지 않으니 그동안 엄마를 생각지 않고 지낸 시간이 회한으로 차오른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큰 축을 형성하는 음식은 지난한 세월 속 추억을 환기하는 매개로 현재를 살아갈 무형의 힘을 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생생한 현장 기록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숨죽여 보면서 촉발된 관심은 한 개인의 역사까지 확장되어 옥중 생활과 유형의 땅인 제주도에서의 삶, 베트남 전쟁 참전, 행자 생활 등에서 맛보고 익힌 음식으로 이어졌다. 군대에 입영하면서 거세당한 자유는 정해진 대로 훈련하며 끼니를 해결하는 생활에 젖게 했지만 가족의 면회 때마다 맛보는 별미는 주림의 시간을 채우는 일로 맞바꿀 수 있었지만 과식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니 안타까움은 더했다. 규율을 중시하는 사회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옥중 생활에서의 별미인 김치 부침개는 수인(囚人)의 마음에 그리움을 심어준 사랑이었다.

   나이 들수록 연정을 나누었던 이들에 대한 그리움은 쇠약해진 몸과 마모된 삶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삶의 활기를 줄 때가 있다.

  너만 먹어!”

   라며 누룽지를 건네 준 여아에서부터 호박시루떡을 건네 준 소녀, 양념 없이 진한 소금물을 부어 만든 장아찌 맛을 알려준 그녀 등은 노년의 삶을 위무한다. 암 투병 중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먹고 싶다던 녹두 빈대떡 모양의 노티는 밥을 적게 먹어도 포만감을 주었던 장떡으로 결핍의 시간을 버티게 한 음식이었다. 지방마다 음식 조리법과 맛이 다른 이유는 기후와 풍토를 포함한 자연 조건에 따랐기 때문이다. 추운 지방에서는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그릇에 담아 비벼 먹을 때 뜨거운 국물을 부어 먹었던 것처럼 망명자로 나라 밖에서 생활하며 맛본 갖가지 수프는 가족과 떨어져 지냈던 시절에 비견할 만한 음식에 대한 향수를 더한다.

   특별한 날 가정에서 음식을 나누기보다는 외식으로 번거로움을 피하자는 의식이 확산되어 함께 할 이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던 때의 풍경은 기억 속에 가물가물해진다. 제철에 맛볼 수 있는 그 지역의 토박이 음식을 준비하며 밥을 같이 먹던 시간은 추억을 되새기며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영혼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숙원이었던 자퇴와 가출을 병행하였던 10대의 정점에 저자는 범어사에 머물며 여러 가지 푸성귀로 싸 먹던 쌈밥들의 다양한 맛을 떠올리며 여러 경험이 잣는 쌉쌀함과 싱그러움이 공존하는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고봉밥을 먹어치우는 밥도둑 짱둥어탕과 떡갈비, 쌀밥 반찬의 진수인 지역의 젓갈 등이 즐비한 남도 음식은 팔순이 넘은 외숙모가 정성스레 차려준 밥상을 떠올리게 한다.

   각박해진 세상살이에 소통할 시간이 줄어들어서인지 음식 만들기에서부터 음식을 맛보는 방송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먹는 즐거움과 음식을 함께 나누는 시간의 의미를 조명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방송을 타게 되면 음식점은 때 아닌 특수를 누리기도 하지만 점점 평준화되어 가는 음식 맛에 씁쓸한 반응을 보이는 고객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결핍으로 이어지던 시대 썩어가는 생물을 응용하여 만든 음식으로 이웃들과 나누어 먹던 감자떡의 추억은 고향 친구들이 생각날 때면 떠오르는 명물로 자리한다. 작가로 살기를 바랐던 저자가 보낸 시간 속 세월은 부침(浮沈)의 인생에 걸맞은 경험이 변주한 음식의 나눔으로 <<밥도둑>>은 지난 추억의 장터로 사람 사는 냄새를 더한다.

n*****9 2016.03.28. 신고 공감 7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씹을수록 맛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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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시간이다. 꼬르륵, 위장이 자신의 빈 공간을 채워줄 것을 요구하는 소리를 잠재우고자 독한 커피 한 잔을 들이 붓는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버티면 욕구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평일 저녁에는 특별한 먹거리가 없다. 하루 종일 무얼 하셨을지 그려지지 않는 부모님과 같은 상에 둘러 앉아 어쩌면 의무감을 느끼면서 식사를 한다. 요즘 우리 집 식탁에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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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시간이다. 꼬르륵, 위장이 자신의 빈 공간을 채워줄 것을 요구하는 소리를 잠재우고자 독한 커피 한 잔을 들이 붓는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버티면 욕구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평일 저녁에는 특별한 먹거리가 없다. 하루 종일 무얼 하셨을지 그려지지 않는 부모님과 같은 상에 둘러 앉아 어쩌면 의무감을 느끼면서 식사를 한다. 요즘 우리 집 식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텃밭이다. 서툰 손놀림은 다섯 해의 농사 경험에도 불구하고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허나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작물의 모습에 나의 부모는 제대로 빠져드신 듯해 보인다. 오늘은 무엇을 몇 개 수확했다는 내용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조촐한 밥상과 더불어 음식에 깃든 이야기에도 풍성함이 더해지길. 입 안에 넣으면 음식물은 사라지지만 보고 듣고 겪는 일들은 끊임없이 회자되기 마련 아닌가!

 

최근 채널을 돌릴 때마다 만나게 되는 유형의 프로그램 중 하나가 음식 프로그램이다. 전국의 맛집을 패널들이 찾아 나서고, 스튜디오에서 직접 음식을 하는 일도 다반사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앞치마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이 분위기, 좋다. 유명인이 출연해서 혹은 평소 먹고팠던 음식의 레시피를 공유할 수 있어서의 이유도 있겠고, 아마 앞으로도 음식 프로그램의 인기는 식지 않을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기본 중의 기본이기에.

 

책도 마찬가지다. 직접적으로 요리법을 가르치는 총천연색의 책도 물론 매력이 넘치나 오로지 글자만 빼곡하게 들어찬 책도 그 내용이 음식인 경우엔 자꾸만 손이 간다. 인간의 상상력이 꼭 이런 데 사용하라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음식을 그려보고 급기야 입안 가득 침이 고이기까지 한다. 여기에 이야기가 깃든다면 그 음식에 대적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게 된다. 이른바 '천하무적'의 출현이다.

 

책의 제목으로 쓰인 단어 '밥도둑'. 밥을 부르는 음식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간장게장의 게딱지 생각도 나고, 짭쪼름한 바다 향 감도는 젓갈류도 괜찮은 선택 같다. 저자는 원초적인 맛에 집중하기보다는 경험을 떠올렸다. 그때 그 음식은 그렇게 한 인간이 써 내려간 삶의 일부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굴곡 가득한 한국 현대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저자의 매순간에도 음식은 존재했다. 유배지라는 단어가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데 거리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런 이들조차도 오랜 굶주림 끝에 뜯은 닭고기의 향긋함이나 뻑뻑함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손이 가는 건빵의 맛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하지 싶다. 사랑에는 어떠한 장벽도 없다손 치더라도 이왕이면 젊었을 때 하는 게 예뻐 보이는, 그런 사랑의 가운데에도 음식이 놓였다. "수남아, 너만 먹어!" 당시의 감정이 사랑이었는지 확신이 서진 않으나 궁한 시절 부끄러워하면서도 받아먹은 누룽지의 바삭바삭한 맛만큼은 사랑에 가까워보였다. 뉘신지 알 길 없으나 '그녀'로 불리는 이가 내놓았다던 몇 가지의 장아찌. 지금 먹어도 그 때 그 맛이 느껴질지가 문득 궁금하기도 했다.

 

확실히 이야기는 음식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려서일 수도 있고, 그에 따른 경험 부족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 아니, 너무나 무난에 가까운 삶을 살아온 나에게 저자의 이야기는 뜬구름마냥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체 장떡이, 노티가 무어란 말인가. 상상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이름들 앞에서 나는 애꿎게도 손톱을 물어뜯기 바빴다. 그런 나를 위로했던 건 저자가 붙인 소제목 '잃어버린 그 맛'의 '잃어버린'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어느 누가 기꺼이 언 감자를 먹겠는가. 편의점만 방문해도 구입 가능한, 넘쳐나는 도시락은 결코 그 시절 허리춤에 매달았던 벤또의 재현일 수가 없다.

 

투박한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독일의 음식을 섭렵한 저자의 뒤를 좇다 보니 10년도 더 전 스페인에서 마셨던 에스프레소, 베네치아에서 날 환호케 만들었던 카푸치노 따위가 떠올랐다. 하지만 의도적이었던 건지 저자의 정착지는 토박이 음식이었고, 이제는 고인이 된 이름이 제법 여럿 음식에 곁들여져 나왔다. 하필이면 세상을 떠난 이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먹던 음식이 뚝배기 감자탕과 부대찌개라니. 너무나도 보편적인 이 음식들, 접할 때마다 우울해져서 어쩌지 싶었다. 하지만 그에겐 술이 있었다. 이생과의 이별도 쿨하게 이별주 한 잔을 나누며 하는 인물들이 저자의 지인이었음을 난 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먹지 않는 시간은 시간이 아니다'

 

우물우물, 특별한 먹거리를 입안에 밀어 넣지 아니 한 순간엔 공기라도 뻐끔이며 시간을 보내는 게 인간이다. 이제껏 나는 시간 아닌 시간을 양산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먹어 왔던가. 내게 기쁨이 되고, 때론 슬픔과 우울함이 원천이 되어준 음식들을 되새김질 해본다. 급식이 보편화된 요즘 아이들은 실로 낯설 도시락. 책상 돌려 머리를 맞대고 도시락을 나누던 그 아해들의 기억에도 내가 살아 있을 지가 궁금타.

 

 

이달의 사락 q*****2 2016.06.1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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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냄새,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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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제대로 챙겨 먹고 다니지 못하며 일할 때,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먹고 살자고 일하는데 왜 일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냐. 에효."   그렇다. 먹는다는 것은 삶을 이어가는 것, 생명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래서 맛과 냄새로 기억하는 원초적인 음식의 추억은 강렬하다.     요 근래 유치원 다니기 이전의 어린 나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씩 엄마에게 듣게 되지만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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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을 제대로 챙겨 먹고 다니지 못하며 일할 때,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먹고 살자고 일하는데 왜 일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냐. 에효." 

  그렇다. 먹는다는 것은 삶을 이어가는 것, 생명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래서 맛과 냄새로 기억하는 원초적인 음식의 추억은 강렬하다. 

  

  요 근래 유치원 다니기 이전의 어린 나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씩 엄마에게 듣게 되지만 내겐 그 기억이 정말 완벽하게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엄마가 음식을 하던 풍경과 그 음식의 맛과 냄새 그리고 함께 나누어 먹었던 그 순간의 사람들과 풍경은 잊혀지지 않는다. 뒤안에 솥을 걸고 도너츠를 튀겨주셨던 때의 기름과 설탕 냄새. 참 따뜻했던 봄날 예쁘게 지져주셨던 진달래 화전의 고운 색깔. 명절에 도란도란 모여 만두와 송편을 빚을 때 손에 전해졌던 반죽의 촉감. 아플 때면 유달리 생각나는 엄마표 된장찌개의 구수한 향과 담백한 맛. 

  그래서 "먹기 위해 살지 말고 살기 위해 먹으라."고 외치셨던 학창시절 선생님의 말씀에 완전히 동의는 못하겠다. 먹는 즐거움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행복, 그 추억들을 어찌 포기하라고. 음식을 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보람과 흥겨움 그리고 함께 밥 먹으며 사람 사이에 나누는 정을 나는 오래도록 누리고 싶다. 가족을 밥을 함께 먹는 [식구]라 부르기도 한 것은 그만큼 함께 밥 먹으며 드는 정이 무섭다는 것 아닐까.


  황석영 작가는 이 책 [밥도둑]에서 음식을 이야기한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음식에 얽힌 경험 내지는 추억을 서술하는 것이다. 그는 군대에서, 감옥에서, 또는 외국과 이북에서 경험한 음식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그에 얽힌 사람들과의 인연을 이야기꾼답게 맛깔나고 구성지게 담아낸다. 음식을 하는 과정, 식감과 향, 맛을 떠올리며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음식을 함께 먹는 기분이 들어서 씩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이 책에는 수십가지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아무래도 서양요리보다 소박한 고향음식 이야기가 더 공감가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유머는 군대시절이나 감옥 시절의 이야기에 많다면, 따뜻함 담당은 전국의 향토음식과 고향 음식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할 것 같다. (젊은 시절 여성들과의 만남은 양념?)

 

  그가 전해주는 음식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에겐 음식 그 자체보다 그 순간의 추억, 그리고 함께한 사람이 더 소중하고 애틋했던 것이 아닐까? 달고나, 아폴로, 쫀디기 같은 불량식품과 고등어조림 순두부찌개의 맛과 향은 나를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던 그 때, 대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던 그 때로 순식간에 데려다놓아서 옆에 있던 사람들을 그리워하게 하는 것처럼. 


  고향을 잃고 가족을 잃고 벗을 잃고 사랑이 떠나가도, 우리는 먹고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음식에 웃음과 눈물을 함께 쓱쓱 비벼 먹고 툭 털며 일어나기도 한다. 함께 먹는다는 것의 소중함. 음식의 맛과 향이 불러오는 추억의 아름다움을 새삼 생각해본다. 

a***s 2016.04.05.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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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따뜻한 집밥을 먹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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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방과 후에 집에 돌아왔을 때, 항상 집이 비어 있던 게 불만이었다. 찌개만 데우고 밥솥에서 반만 퍼서 먹으면 되는, 엄마가 미리 식탁에 차려 놓은 밥을 동생과 챙겨 먹는 것도 항상 귀찮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친구들도 대부분 부모들이 맞벌이를 해서 비슷한 처지였기에, 빈 집이 당연한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빵을 좋아하게 된 것이 바로 그 즈음이었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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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방과 후에 집에 돌아왔을 때, 항상 집이 비어 있던 게 불만이었다. 찌개만 데우고 밥솥에서 반만 퍼서 먹으면 되는, 엄마가 미리 식탁에 차려 놓은 밥을 동생과 챙겨 먹는 것도 항상 귀찮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친구들도 대부분 부모들이 맞벌이를 해서 비슷한 처지였기에, 빈 집이 당연한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빵을 좋아하게 된 것이 바로 그 즈음이었을 거다. 어느 날, 아파트 입구에 있던 조그만 빵집에서 솔솔 풍겨오는 빵 굽는 냄새에 이끌려 가지고 있던 용돈을 털어 빵을 하나 사왔다. 그날 이후, 거의 습관처럼 그 빵집에 들르게 되었는데 엄마가 비운 빈 자리를 허전하지 않게 든든히 지켜주는 건 언제나 빵이었다. 갓 구운 빵 하나만 들고 있으면, 밀린 숙제도, 마음에 들지 않는 성적표도, 친구와의 다툼도 다 잊어 버리고 행복해졌으니 말이다. 퍽퍽하지만 담백한 스콘은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고, 진한 초코 향의 브라우니는 우울했던 기분마저 사라지게 만들어주었고, 특유의 향에 매혹되었던 시나몬 롤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었고, 우유랑 함께 먹으면 너무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카스텔라는 친구랑 함께 먹으면 든든한 기분이었고, 살짝 얼렸다가 먹으면 마치 아이스크림 같은 베이비슈 역시 나의 단골 간식이 되어 주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빵을 즐겨 먹는다. 이제는 직접 계량을 하고 반죽을 해서 직접 빵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전국의 유명한 빵집들은 죄다 한번씩 가 보기도 하지만, 사실 가장 맛이 있었던 건 소박한 동네 빵집에서 평범하게 구웠던 당시의 빵들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특별한 시기를 상징하는 음식은 시간이라는 틀을 거쳐 추억으로 박제가 되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먹는 사람의 영혼마저 감싸주는 소울 푸드가 된다. 이 책은 2001년작노티를 꼭 한 점만 먹고 싶구나에 새로 두 편의 글이 추가된 개정판이다. 황석영 작가가 그 동안 걸어온 모든 길에서 음식이 사람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음식이 그의 수많은 희로애락을 어떻게 함께 해왔는지 알 수 있는 이 책은 마치 따뜻한 집밥을 먹는 것 같은 푸근함마저 안겨주는 에세이집이다. 게다가 그가 표현하는 음식 재료와 상세한 조리법들은 웬만한 요리책 못지 않은 풍부한 묘사로 작가의 미식 수준까지 감탄하게 되고 만다.

밥상에 함께 올라온 모시조개 넣고 된장 고추장에 끓인 '냉이토장국'은 옛날의 잊혀진 사진같이 정겨웠다. 겨울의 하얀 냉기 속에서 봄날의 풀꽃들을 찾아내는 기쁨 같은 것이다.

한겨울에까지 눈 속에 남아 있던 불미나리와 냉이무침의 싱그러운 맛은 겨울이 깊으면 봄이 멀지 않았다는 옛 시를 떠올리게 했다. 특히 불미나리 무침과 파래김치 같은 맛들은, 묵은 김장김치며 기름진 육것으로 포위된 듯한 한겨울에 봄을 재촉하는 방안 화초의 물기 어린 방향과도 같다.

사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밥상은 작은 우주와 같다. 아니, 밥 먹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이리 거창한 비유를 할까 싶을 수도 있지만, 음식만큼 일상에서 손쉽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또 있을까 잘 생각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끼니를 때우거나, 시간에 쫓겨 대충 배만 채우거나, 단지 먹는다는 행위 자체에만 목적을 두며 살고 있긴 하지만, 언젠가 인생을 되돌아보면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한 음식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황석영 작가가 펼쳐내는 음식 이야기는 작가의 전 생애를 거치며 바로 삶 그 자체를 그리고 있는 것처럼 무궁무진하다. 나라의 경제가 신통치 않았던 육십 년대에 보낸 군 시절의 음식들, 유년시절 전쟁 직후의 음식들과 미군부대의 퓨전 요리들, 구치소와 감옥에서 보낸 다섯 해 동안의 음식들이며 첫사랑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과 김일성 주석과 함께 먹었던 특별한 음식 등등 너무도 다양한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이 펼쳐진다.

출근길 지옥 철에서 시달리고, 회사에서 상사에게 한 소리 듣고,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기획안은 풀리지 않고, 연인은 속을 썩이고, 그렇게 종일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극대화가 된다. 그러고 퇴근해봐야 어두운 집에서 나를 반기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대충 차려서 배를 채우고 거실에 앉아 멍하니 티비를 보고 있노라면 다음날 다가올 출근에 대한 압박으로 답답해지고 말이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아닐까. 이상하게 내 입맛에 꼭 맞는, 맵지도, 그렇게 짜지도, 지나치게 달지도 않으면서 조미료 하나 안 들어가도 감칠맛이 돌고, 두 그릇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것만 같은 포만감을 주는 그럼 엄마 표 밥상 말이다. 우리는 바로 그 밥 힘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 책에 실린 여러 에피소드들을 읽는 내내 나는 따뜻한 집밥을 먹는 것 같은 따스한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음식의 위대함과 기쁨을 이렇게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경상도의 음식을 들라면 우선 짜고 맵고 투박하며 원색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다른 지방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들이 더러 있다.

부산에 갔을 적에 이른 아침에 아낙네들이 '재칫국 사이소!'를 외치며 창 밖을 지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재첩조개를 넣고 소금으로 간하여 끓여낸 국은 개운하고 속풀이에 좋았다. 요즈음 점심참에 먹기 좋지만, 우뭇가사리묵을 채 썰어서 콩가루와 갖은 양념을 하고 식초 섞은 냉국을 부어서 먹는 우무냉국도 속이 시원해진다.

결혼을 해서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게 되고 나니,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을 기회가 사실 거의 없게 된다. 그래서 가끔 친정에 가게 되면 침대에서 뒹굴 거리면서 부엌에서 엄마가 요리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이 그렇게 따뜻하고 기분 좋을 수가 없다. 코끝을 자극하는 매콤한 향, 치익 소리를 내는 밥솥에서 풍겨오는 고소한 밥 냄새, 혀끝에 맴도는 익숙한 감칠맛까지. 그 모든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부엌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나는 하루 동안 나를 스트레스 받게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은 내일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은 여유로움이 생긴다고 할까. 세상에 먹는 일만큼 중요한 게 또 뭐가 있겠냐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어떤 문제도 더 이상 껴안고 있겠다는 마음이 사라지게 되니 말이다. 그렇게 따뜻하고 푸근한 한끼 식사는 우리를 잠시나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주곤 한다.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문제 거리들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일이 또 오늘 같이 반복될 거라는 거라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지루한가. 거기다 오늘도, 내일도 늘 비슷한 반찬에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사가 된다면 식사 시간이 즐거울 수가 없을 것이다.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요리들이 내 시린 마음마저 만져준다면, 그저 그런 생각만으로도 한 끼 식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또는 누군가를 위해서 요리를 하게 된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 또한 바로 그것이다. 내가 해준 음식을 먹고 기분 좋아할 사람을 떠올리며 요리를 하는 순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만드는 요리에는 그만큼의 행복도 담겨져 있을 것이다. 요리는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 사이의 교감이기도 하니 말이다. 음식을 함께 나눠 먹고, 그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소소한 즐거움 때문에 나는 오늘도 음식을 만들고, 누군가와 함께 나눠 먹는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r*******n 2016.04.01.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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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유서가] 황석영의 밥도둑
"[교유서가] 황석영의 밥도둑" 내용보기
인생에서 여행을 다시 추억해보면 그 여행과 함께 했던 음식들이 같이 떠오른다. 그리고 누군가를 기억할때도 함께 먹었던 음식이 나란히 떠올를때가 많다. 음식은 그렇게 우리네 삶에 깊고 진하게 담기게 마련인것 같다.  그래서인지 황석영님의 음식을 모티브로 삼은 이야기에 더욱 끌렸다.   황석영이 누구인가! 한국 문단의 거장! 한국문학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노동과 생산의 문제,
"[교유서가] 황석영의 밥도둑" 내용보기

인생에서 여행을 다시 추억해보면 그 여행과 함께 했던 음식들이 같이 떠오른다.

그리고 누군가를 기억할때도 함께 먹었던 음식이 나란히 떠올를때가 많다.
음식은 그렇게 우리네 삶에 깊고 진하게 담기게 마련인것 같다.  
그래서인지 황석영님의 음식을 모티브로 삼은 이야기에 더욱 끌렸다.

 

황석영이 누구인가! 한국 문단의 거장!

한국문학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노동과 생산의 문제, 부와 빈곤의 문제를 다룬 작가이고, 광주항쟁을 기록한 책을 출판하여 국외로 추방당한 작가이고, 방북사건으로 옥살이도 했다. 그렇게 시대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 안은 작가라 평가되고 있다.

 

황석영의 <밥도둑>

그의 이력과는 달리 정겹고 따뜻한 제목이다. 책속 내용도 그러하다.

온통 따뜻한 음식 얘기이다.

"나이가 들수록 맛있게 먹는 한끼 식사가 만들어 내는 행복감이야말로 삶의 원천이며, 진정한 밥도둑은 역시 약간의 모자람과 , 누군가와 함께 나눠먹는 맛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

이렇게 작가는 책의 서두를 시작한다.

누군가와 나눠먹은 맛중에서도 김주석과의 점심은 몇번을 곱씹고 읽게 만들었다.

김주석이라하면 북한의 김일성이 맞지..? 우리가 어릴적 무찌르자 공산당을 외치며 고무줄 놀이를 하게하고, 학교에서 보여주던 반공만화에서는 뿔달린 도깨비처럼 그려졌던 그 김일성과의 점심이라니..

공식적인 만찬자리에서 김주석은 언제나 활달하게 좌중에게 음식을 권하고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김주석과 함께한 깊은 인상을 받았던 어느 점심은 언 감자국수이다.

언 감자를 갈아서 녹말을 낸 다음에 끓는 물에다 국수를 뽑아서는 차디찬 콩물에 말아 먹는 것이란다.

언 감자국수를 먹게 된 유래를 김주석이 말해준다.

두만강 연안에서 항일 투쟁을 할 때 인민들이 저이 먹을 것도 없는데 산길에 표를 해두고 감자를 묻어 주었다. 꽁꽁 얼어붙어 있는데다 시꺼멓게 돌덩이 인거라. 언 감자는 구워도 못 먹고 삶아도 못먹는데 인민들이 준 것을 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그걸 우려서 국수 만드는 법을 생각해 내 먹었다고.

 

이 책은 사실은 1998년에 IMF 직후에 썼던 산문이다.

기존 글을 손보고 각각 2013년과 2014년에 세상을 뜬 화가 여운과 김용태에 얽힌 글 두 편을 추가됐다.

이들은 작가의 여행친구이고 술친구이다. "떠나간 친구가 남긴 맛" 이라는 소제목에 쓰여진 글이 참 쓸쓸하다. '그를 떠나보낸 후로 나는 그와 함께 즐기던 음식들의 맛을 잃었다.'는 작가의 글이 더욱 쓸쓸하다.

 

정말 많은 음식을 만났다.

철모에 삶아 먹은 닭 두마리, 교도소에서의 김치전, 첫사랑이 건낸 누릉지, 어머니가 그리워하던 노티, 평양에서의 호박짠지, 소학교 시절의 벤또, 추방당한 독일에서의 브뢰첸 빵. 절에서 먹은 엉겅퀴로 끊이 된장국, 제주도의 돋통시(똥돼지) 등등.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처럼 그는 음식을 절대 가리지 않는다.

노작가의 인생속 음식과 함께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음식으로 이어진 글을 따라 작가의 지난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지금 온통 먹을거리, 요리 프로그램으로 방송은 도배를 하고 있다.

사람들이 음식 얘기에 쏠리는 것은 현실적 박탈감 속에서 최소한의 일상적 소비 욕구를 달래는 손쉬운 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많이 힘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  밥도둑으로 기운을 차리기를 바래본다.

 

 

 

 

h******1 2016.04.3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황석영의 밥도둑] 응답하라, 옛 기억들...
"[황석영의 밥도둑] 응답하라, 옛 기억들..." 내용보기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열풍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초등생 조카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내겐 아니다. 시리즈 세 편 모두 보지 않았다. 왜 안 봤냐고 가족들이 물으면 “그냥...”, 지인들이 물으면 “아련한 추억에 잠기기 싫어서...” 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나중에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지면, 그때 막걸리 마시면서 몰아서 봐야지...” 그러니까 시리즈 세 편의
"[황석영의 밥도둑] 응답하라, 옛 기억들..." 내용보기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열풍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초등생 조카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내겐 아니다. 시리즈 세 편 모두 보지 않았다. 왜 안 봤냐고 가족들이 물으면 “그냥...”, 지인들이 물으면 “아련한 추억에 잠기기 싫어서...” 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나중에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지면, 그때 막걸리 마시면서 몰아서 봐야지...” 그러니까 시리즈 세 편의 시대적 배경 언저리를 경험한 나로서는 애틋한 추억을 떠올리다 씁쓸한 현실로 돌아와 소주로 마무리하는 게 마뜩찮은 거다. 그럴 바엔 일단 유예하고 후에 바라던 대로 잘 돼서 편한 마음으로 그 시절을 돌아보고 만끽하는 게 내 정신건강에 낫다는 판단이다. 내 성향이다. 감정을 자극하는 과거는 잘 돌아보지 않는 거... 집에 몇 권의 음식 에세이가 있다. 완독하기도, 훑어보기만 한 그 책들을 보면서 의도적으로 과거와 현실을 차단했다. 과거는 이런저런 기억 때문에, 현실은 그 음식들이 당장 먹고 싶어서. 그러니까 좀 무감하게 봤다는 얘기다.


작가는 아버지뻘 세대다. 그러니 내가 선생의 음식과 관련된 추억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음식들이 낯설고 먹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지는 않았다. 꼭 비슷한 경험을 해야 과거가 떠오르는 건 물론 아니다. 동기부여가 되고 감정이입을 해야 한다. 그것이 자연스럽든 아니든 말이다. 읽으면서 의도적으로 과거를 차단하진 않았다. 나쁜 기억보다 간만에 떠오르는 추억들이 먼저 많이 떠올라 어느새 흐름대로 빨리 읽어갔기 때문이다. 잠시 말하자면 이런 거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1장은 ‘유배지의 한 끼니’ 라는 소제목으로 군과 감옥이라는 환경에서의 추억을 소개하고 있다. 내 경우 감옥을 간 적은 없고 군에서의 추억이라면 쫄따구 때는 고참들과, 고참이 돼서는 후임들과 은밀히 들여온 소주를 창고 등에서 몰래 나눠 마신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걸릴 뻔할 경우도 있었는데 운 좋게 넘어간 걸 보면 지금도 다행스럽다. ‘진짜 사나이’란 예능을 보면서 ‘군대리아’라는 용어를 처음 알았는데 내가 복무할 당시에는 그냥 토요일 오전에 나오는 햄버거였다. 그리고 군에 다녀온 사람들은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빵 속에 넣는 고기패티에 관한 진실 말이다. 그러니까 아마 내가 일병 달 때쯤 고참들 왈, 오돌뼈처럼 씹히는 거 있지? 그거(고기패티) 닭대가리 갈아서 만든 거다. 알고 먹어라... 지금 들으면 실소를 하겠으나 당시에는 매우 가능성 있게 들렸다. 예나 지금이나 비위가 약한 나이기에 그 이후로는 군대에서 절대 고기패티를 먹지 않았다. 매주 나오는 그걸 보며 약간의 갈등을 하기는 했어도 말이다.


그랬으니 선생의 훈련 나가 서리해오는 이야기며 월남전 파병 당시의 이야기가 매우 생소하면서도 신기한 느낌이다. 이건 요즘 군대에 배식되는 음식들을 뉴스로 전해 들으며 느끼는 것과도 일치한다. 요즘 군대 좋아졌네, 저런 게 나오고... 국민의 4대 의무 중 한 자리를 차지하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보다야 덜 중요하겠지만 자유가 제한되고 복종이 강요되는 곳들에서도 당사자들에게는 먹는 게 제일 중요하고 기억에 남으니, 게다가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그러하니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고 평생 떠들어댈 추억이다.


2장은 ‘흘러간 사랑’이다. 누구 하나 로맨스 소설 한 권 분량의 이야기가 없을까. 하다못해 남에게는 불륜, 나에게는 사랑이란 말까지 있는데 말이다. 선생의 표현대로,

[p 48. 프로이트 선생의 말씀을 들지 않더라도 성욕과 식욕은 어릴 적부터 잠재되어 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지배한다. ‘남녀가 함께 밥을 먹으면 정든다’는 우리네 속담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

에 동의한다. 얼마 안 되는 내 교제경험만 봐도 그렇다. 뭐 하나 자랑할 것 없는 나인데, 지인들은 날 보고 깔끔 떨며 먹는다는 내 모습이 괜찮아보였다는 그 언젠가의 누군가와 사귄 적이 있다. 희한하게도 당시 내가 그 누군가에게 마음이 간 건 그녀가 열심히 먹어서였다. 나중에 안 거지만 많이 못 먹는 스타일인데(여자의 내숭이 절대 아니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주어진 밥 한 공기를 그래도 티 안 내고 열심히 먹는 모습이 좋아보였던 거다.

이 장에서 선생은 과거 잠시 인연이 있었던 누군가를 다시 만난 기억을 꺼낸다.


[p 72. 나중에야 그녀가 나를 놓아보내려고 전화번호를 주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나갔다. 나는 그녀를 다시 우연히 어느 거리 모퉁이에서 만난다. 두 사람 다 별로 말이 없다. “잘 사슈?”라고 나는 부러 능청스럽게 말해버린다. 그러나 작은 한옥이며 마당가의 일년초 화단이며 걸레질을 방금 해낸 마루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감이란 게 있지 않나. 이 사람은 언제고 한 번쯤 다시 만날 것 같은 거 말이다. 나에게 그녀가 그렇다. 그럼 난 이렇게 말하게 될까? “지금도 열심히 잘 먹니?...”


3장 ‘잃어버린 그 맛’. 어릴 때는 천하제일의 악당으로 교육받았던 김일성과 식사를, 아니 보기라도 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실 작가에 대해 잘 몰랐기에, 읽은 작품도 몇 안 되기에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이다. 그리고 ‘벤또’.


[p 131. 우리 기억 속에 ‘도시락’은 우리말 가꾸기로 나중에 바뀐 말일 뿐, 그 맛과 함께 남아 있는 말은 일본말인 ‘벤또’이다. 근대를 일제의 식민지로 치러낸 우리의 점심문화는 벤또로 시작했던 것이다. 즉 직장이며 학교며 근대적 의미에서의 일터란 모두 일제가 가져온 것들이었다.]


옆 나라 일본이 도시락 천국이라는 뉴스는 알려진지 오래고 한국의 도시락도 참 많이 발전해 근래 열풍이다. 먹어본 바, 개인적으로 맛은 그냥 괜찮네 정도의 느낌이지만 가격대비, 과거대비를 생각하면 이런 다양성이 다행스럽다. 술집이나 고깃집 등에서 추억의 옛날도시락이라며 양은도시락에 볶은 김치와 계란후라이를 넣어서 파는 걸 흔들어 먹어봤는데, 딱 이런 거다. 군대에서 먹었던 전투식량의 맛을 사회에서 먹는다고 그 느낌이 온전히 나지는 않는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어쨌든 양은도시락을 다 커서 술집에서 먹을 때 난 좀 씁쓸했다. 내가 그걸 가지고 다녔을 때는 양은도시락의 끝물이라고 해야 하나, 가지고 다닌 기간도 얼마 안 됐지만 난 거의 매번 뚜껑을 열어 뭐가 담겨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김치만 있으면 안 되는데, 분홍 소시지지라도 있기를 바라며 열었다가 계란후라이조차 없을 때의 실망감과 친구들에 대한 눈치, 게다가 일부러 흔든 게 아니라 가방의 흔들림으로 저절로 비빔밥이 된 걸 보았을 때의 창피함 때문이다. 좋아하는 반찬만 들어있을 때와 볶지도 않은 김치만 달랑 있었을 때의 모습이 공존하는 기억. 시간이 흘러 여러 기억들이 섞여 그래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


4장 ‘나그네살이’는 망명시절, 유럽 곳곳에서의 선생의 추억들로, 낯선 음식들보다 더 낯설게 느껴지는 건 선생의 다양한 경험들이다.


[p 137. 내가 처음 나라 밖으로 나가본 것은 팔십오년 오월 무렵이다. 그때 광주항쟁을 기록한 책을 지하 출판하고는 도망 다니다가 한 달 만에 잡혀서, 관세법 위반자들을 가두는 외국인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궁여지책으로 짜낸 생각이 당분간 추방이라는 형식의 외유 권유였다.]


독일과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의 일화를 얘기하는데, 본문에도 소개되는, 이제는 널리 알려진 외국인의 산낙지 에피소드를 나 또한 경험한 적이 있다. 일본 지인들을 접대하는 자리였는데 한국의 산낙지를 익히 알고 있었고 먹어볼 준비를 하고 온 것이다. 동석했던 다섯 명의 일본 지인들 모두 맛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맜있다고는 하지만 적극적인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이다. 국적을 떠나 사람 입맛이 다른 건 당연하니까. 나 또한 산낙지를 먹긴 하지만 일부러 찾지 않을 뿐인데, 그때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번데기를 내놓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접대든 내가 만든 음식이든 누군가에게 주고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건 경험을 공유하자는 적극적인 행동 같다. 상대의 리액션이 궁금하고 잘 먹는 모습을 보는 것. 그래서 약간의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는 것. 음식의 공유와 먹는 행위의 동참은 그래서 일상적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그 지인들은 번데기를 먹어봤을까? 아직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갑자기 궁금해진다. 사실 번데기가 뭔지 알고부터는 나도 잘 먹지 않는데 말이다.


마지막 5장, ‘밥도둑, 토박이 음식’. 곳곳의 토박이 음식을 먹었던 일화들을 소개하는 장이다.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지금이야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제주 돋통시(똥돼지)’에 관한 부분인데, 지금도 세상물정 잘 모르고 귀가 얇은 난 서울의 제주 돼지고깃집을 처음 들어갔다가 다 먹고 나오면서 들었던 선배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왜 똥돼지라고 부르는지 알아? 똥 먹여서 그래... 처음엔 안 믿었고 믿고 싶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알아보니 그렇더란 말이다. 정말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이는 것까지야 그네들 소관이겠지만 그걸 도축해서 판다는 건 정말 심하지 않나! 이걸 선생은 이렇게 표현한다.


[p 244. 자연보호 좋아하는 이들 말로는 변소를 돼지 식당으로 삼는 제주도의 전통식 돼지치기야말로 자연의 순환 법칙에 따른 지혜로운 사육 방법이라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듯한 말이다. 사람 거시기 먹고 싼 돼지 거름은 밭으로 가고 푸성귀는 그걸 먹고 자라나 사람이 다시 먹게 된다. 그럴듯하기는 해도 어쩐지 먹는 얘기 하다가 싸는 얘기하려니 께름칙하다. 지금은 현대식 돈사로 모두 바뀌었지만 제주의 돼지는 전통적인 사육 방법 때문에 옛날 이름 그래도 돋통시라는 정답지만 치열한 이름을 달고 있다.]


옛날 내가 처음 먹었던 돋통시가 재래식이었는지 현대식 돈사로 사육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알고 싶지도 않지만 아!... 처음 진짜라는 걸 알았을 때는 참 많이 그랬다. 근데 위 내용 다음에 ‘새끼회’ 얘기가 이어진다.


[이것은 새끼를 밴 돼지를 잡아 태 속에서 그야말로 태어나기 직전의 돼지 새끼를 꺼내어 깨끗이 손질한 다음 칼로 다져서 갖은 양념을 한 날것이다. 대접에 담아 내온 것을 보면 거의 물회처럼 보이기도 하고 죽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처음 먹는 사람은 이런 물기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의문을 가져서는 절대로 먹을 수가 없다. 실은 애기보를 함께 다진 것이라 양수가 고기와 함께 섞인 것이다.]


요리천국으로 유명한 중국 광동성 광주에 이런 말이 있다. 네 발 달린 건 책상 빼고 다 먹는다... 난 요리에 무지하고 별 관심 없으며 그냥 한 끼 때우는, 어쩌다 맛있는 거 먹으러가는 정도라 그런지 몰라도 참 다양한(?) 식재료를 보면 신기할 때가 많다. 그리고 돋통시까지는 넘어간다고 해도 새끼회는... 아... 무엇보다 이걸 어떻게 음식으로 할 생각을 했을까...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개고기를 오래 전에 딱 두 번 먹어본 적이 있다. 한 번은 같이 점심 먹으러 가는 사람들 틈에서 분위기상 못 먹겠다고 할 수가 없어 밥을 말아 대충 먹고 나왔고, 그 얼마 후 다시 또 갈 때 남자라면 이 정도(?)는 빼지 않고 먹을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란 바보 같은 생각에 먹었으나 역시 먹는 내내 머릿속에서 개가 어른거려 대충 밥 말아 먹고 나왔다. 후로 비위가 약해 다시는 먹지 않았는데, 솔직히... 맛은 꽤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찾는구나 싶었다.


[p 246. 독일 망명 시절에 윤이상 선생도 가끔씩은 추억 속에서 ‘개장’을 떠올렸는데, 일본에 갔더니 어느 교포가 몰래 하는 보신탕집이 있다며 초대를 하더란다. 너무도 신이 나서 허리띠 끌러두고 입맛을 다시며 호텔을 나서려다가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혹시라도 누군가 기자가 알고 신문에라도 쓰고 그것이 독일 사회에 알려지면 저명한 작곡가인 그의 삶과 예술은 그날로 끝장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옛날 군복무 할 때 촌으로 대민봉사 나가서는 어르신들이 개 한 마리를 토치로 잡는 걸 옆에서 본 적이 있다. 어린 나이에 당시엔 그저 신기했는데... 그러니까 식재료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건 꽤 많이 줄어들 거다. 그렇다고 그런 과정들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몰라도 된다는 건 아니고, 또 막 먹는다는 것도 좀 그렇고...


마지막 초판서문의 말미에 이런 글이 있다.

[p 267. 무엇보다도 음식은 사람끼리의 관계이며, 시간에 얹힌 기억들의 촉매이다. 지난 시대에 명절이나 아니면 특별한 날에 먹던 음식들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흥청망청 모두 허드레 음식이 되었고, 미국이나 일본을 중심으로 한 간편식이나 개화요리가 양요리의 대종이 되어 뒤섞여 있다.

나는 이 글에서 무엇보다도 내 시대의 추억들을 되씹으면서 인생살이와 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볼 작정이다.]


당시에 먹었던 음식이 맛있거나 없었던 이유는 그때의 상황과 함께한 사람들이 음식과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다시 그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절대 그때의 좋았던 맛 근처도 느낄 수가 없을 거다. 도움이 된다면 함께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 정도가 아닐까. 근데 이 정도의 도움이라도 할 수 있는 걸 감사히 생각해야 한다. 사람목숨은 유한하니까. 그래서 5장 말미에 선생도 이렇게 써놓으신 걸게다.


[p 264. 그를 떠나보낸 후로 나는 그와 함께 즐기던 음식들의 맛을 잃었다. 밥상에 바지락을 넣은 아욱된장국이 올라올 때면 어쩐지 수저가 무겁다. 좀 잘해줄걸.]


아무리 비싼 식재료의 음식이라도 함께할 누군가가 없다면 순간의 맛있는 미각만이 남을 뿐이다. 우리의 기억은 미각 외에도 옆 사람의 기척, 대화, 살냄새, 장소와 분위기 등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하나의 추억으로 만들어진다. 음식은 단순히 먹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과의 추억을 공유하는데 그 목적성을 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추억을 만드는데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 더 중요한 건 나중에 후회할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고 말이다.


내가 아직 ‘응답’시리즈를 안 본 이유는 한숨 나는 현실로 돌아와 씁쓸하게 소주 마시기가 싫어서다. 근데 이런 생각도 든다. 당시를 함께 했던 친구들과 어울려 나도 대화에 참여한다면 그렇게까지 씁쓸하지는 않지 않을까. 오히려 그 씁쓸한 현실이 조금은 옅어지고 즐거운 현실의 추억으로 쌓이게 되지 않을까. 내 기억을 꺼내며 보니 즐거웠던 기억보다 나에게는 특이했던 경험들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음식과 먹는 행위에 대한 추억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지금 감정에 소소한 추억이라도 만들고 싶어 괜히 마음이 급해진다. 잘 대해주지 못하는데도 친구라고 응답해주는 내 친구들과 옛 기억들. 응답해줘서 고맙다...

f******5 2016.04.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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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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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산문은 일상의 이야기들을 담아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나는 산문글을 좋아한다. 역시 우리도 사람이기에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는 나만의 이야기를 기억나게 해주고 생각나게 해준다. 우리가 이런 산문들을 자주 보아야 하는 이유는 나와 타인에게 연결된 인생의 이야기가 우주의 한 부분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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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산문은 일상의 이야기들을 담아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나는 산문글을 좋아한다. 역시 우리도 사람이기에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는 나만의 이야기를 기억나게 해주고 생각나게 해준다.

 

우리가 이런 산문들을 자주 보아야 하는 이유는 나와 타인에게 연결된 인생의 이야기가 우주의 한 부분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읽지 않고 경험하지 않는 다면 어찌 좋은 글을 쓸수가 있을 것이며, 사람의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책을 아무리 읽어도 온통 성공스토리와 스펙에 관한 책만 읽는다면 그 사람의 인성도 하나의 작은 곁가지속에서 아웅다웅 헤매고 있을 확률이 높다.

 

우리가 살던 일상도 글로 적으면 많건만 다른 사람의 일상의 이야기들은 얼마나 많을까, 이 책은 거장 황석영 작가가 97년 외환위기 이후 힘들었던 삶을 위로하고자 어느 신문에 연재한 것을 개정하여 출판한 것이다. 내용은 밥과 음식에 관한 것이다.

 

누가 음식의 정보를 제공해주느냐에 따라 그 음식의 질과 전통, 향기, 손맛, 느낌 모든 것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음식이라는 게 누구의 입맛을 맞춘다는 게 그리 쉬운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밥이 최고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듣는다. 음식점에 가더라도 옛날 맛과 향이 나는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렇게 황석영 작가의 지나온 인생의 흔적들을 되짚으며 음식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글들을 만난다는 건 쉽지가 않다. 사실 도시속에서는 여유라는 것을 찾기란 매우 힘들다. 찾았다 한들 안정된 직장이나 스트레스를 덜 받는 일이 아니고서는 도시 사람들은 불안한 나날들을 이어나간다. 치열한 경쟁속에서 먹고 살기위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구조속에서 도시인들은 하나 둘, 지쳐가고 도시를 떠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본인이 경험했던 군과 감옥에서의 맛들과 사랑이야기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밥도둑 길을 따라가다보면 읽는이의 지나온 음식과 관련된 추억들과 맛들이 생각나게 될 것이다. 결국 식사를 하는 사람의 마음과 함께 앉아 같이 먹는 행복감이 더욱 중요하다. 그 안에서 우리는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사랑하게 되고, 정이 쌓이며, 더욱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지금 젊은 세대들은 이 책에 소개된 음식들과 거리가 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의 시대를 접하며 아련했던 그 당시 함께 식사했던 시간들은 시간을 넘어 지금 앞으로도 영원히 공감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모습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세대를 초월한다. 밥도둑은 나이를 불문하고 인간이 먹으며 살아가는 한 어느 시대에건 내 모습이 당신의 모습이고 당신의 모습이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 책은 초판에 한하여 한 권 판매가 됐을 시 밥 한 그릇이 결식아동들에게 전해진다고 하니 의미 있는 책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어머님이 가난하여 힘들게 사셨지만 그래도 젊은 날 음식에 관한 일들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식사를 하면서 어머님께 여쭈어보았는데 굉장히 신나하시면서 당신의 지난날 밥도둑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음식과 맛에 공감은 할 수 없을지라도 각자가 살아온 지난날들의 사연들을 음식과 함께 듣는 다는 건 매우 의미있는 시간들이다.

 

나는 그래서 산문을 좋아한다. 그 사람의 실화를 바탕으로 타인의 이야기가 엉켜 이웃의 마음으로 연결되어 생명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부모님께 선물한다면 아마 기뻐하시지 않을까,

l*****c 2016.04.2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