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호가들은 신세계 교향곡의 연주를 체코 맛이 나는 지휘자 것을 최고로 친다. 특히 스메타나 혹은 드보르작은‥.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바츨라프 노이만이고, 라파엘 쿠벨릭도 그 항렬에 든다. 카라얀은 빠방한 음질에 노도같은 박력으로 일단 끼어든다. 들어보지 못했지만 조지 셀과 도흐나니도 언급된다고 하는데‥. 번스타인은 자아도취가 심한 인물이었다. 약점이자 장점인 이러한 기질은 바로 그의 정신적 갈등이나 고뇌, 그리고 쾌락이 작품의 해석에 반영되기 쉽다는 이야기이고 이 점에선 푸르트뱅글러와 비슷할 것이다. 게다가 그는 분열증이었다. (* 그의 장기인 말러 역시 분열증인 것은 우연이었을까 ?) 착실한 가장과 남편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동성애자였고, 작곡가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지휘자였으며, 헐리웃 음악부터 팝스타급까지 뛰어다녔지만 동시에 고전음악의 세계에서 고고하게 노닐었다. 레니 댄스라고 하여 연주의 클라이막스에서 멋지게 점프(!)까지 하는 경박한 지휘 스타일이 논란이었지만, 서적집필로서 음악이란 무엇인가 명쾌하게 밝히면서 청소년 음악회 교육까지 나서기도 했다. 바흐가 음악에 평생 봉헌하였고, 이런 바흐를 비웃으며 바그너는 권력지향적인 면모를 보였다면‥ 번스타인은 자신의 정체성이 하나로 규정되길 두려워하면서 모든 면에서 다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을까 ? 그의 말러 연주가 대부분 완벽에 가깝다는 것, 그리고 베토벤/브람스/슈만/시벨리우스 등의 연주가 '고전적인 미'를 조금 살리는 듯 하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어떤 기운 같은 게 약동하면서 결국 곡의 구조를 파괴해버리고 만다는 것‥. 그의 해석을 낭만주의적이라고 평론가들은 이야기하지만‥. 글쎄, 과연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 나쁘게 말하면 자아도취이지만, 작품에 대해서 진지하게 몰입하면서 그 스스로의 솔직한 내면을 드러낸다는 것을‥. 번스타인의 신세계 교향곡 연주는 초심자에게는 권하기 어렵다. 오늘 듣고 나서 여태껏 느끼지 못한 색다른 감동, 그리고 무언가 약동하는 에너지에 또다른 신세계에 도달한 기분이었다. 그의 연주는 그렇게 광포하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곡이 이렇게 '막'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 2악장 LARGO만 보더라도 카라얀의 경우는 12분 27초인데 번스타인은 18분 22초에 달한다. 그렇다고 특정 부위에서 막 템포를 늦추거나 어색한 루바토를 남용하지 않았다. 단, 분명한 것은 여태껏 듣지 못한 "다른 세상"의 신세계 교향곡을 들었단 얘기다. 그러고보면 이 번스타인 반은 '국적' 면에서도 다르다. 자주 얘기되는 타 지휘자들은 대부분 '유럽'에 뿌리를 박고 있다. 카라얀, 노이만, 솔티, 쿠벨릭‥. 현재는 타계한 이 거장들은 물론 전세계를 누볐지만 그 해석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유럽이었다. 그러나 번스타인은 미국에서 태어나 거꾸로 유럽으로 '침공'한 인물이다. 살아 생전 드보르작과 말러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간 것과 정반대다. 글쎄, 그렇다면 "신세계", 즉 그 교향곡의 도착지인 '미국'에서 연주했으니 관점부터 다른 걸까 ? 번스타인은 과연 무얼 의도한 것일까 ? 혹평과 호평이 엇갈리는 그의 말년 교향곡 녹음은 좋든싫든 무언가 새로운 계시를 지향하는데 번스타인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 |
| 이 음반은 자아도취적인 번스타인 말기 지휘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다. 시작은 미약하나 마지막은 창대하도록, 느린 부분은 더 느리고 빠른 부분은 더 빠르게, 클라이막스는 자기만의 도취에 빠지도록(즉 청자는 공감하기 껄그럽게).... 번스타인은 이런 식의 지휘로 미국을 대표하는 지휘자로써, 유럽으로 진출해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카라얀과의 라이벌 관계까지 조성하며 결국은 80년대 지휘계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드보르작 [교향곡 9번(신세계로부터)]는 89년 카라얀이 서거한 해, 명실공히 당대 최고의 지휘자의 위치에 오르게 된 노년의 번스타인이 지휘한 '자기만의 신세계'가 되었다. 일단 전체를 조감하되, 절대 작곡가가 의도한 전체의 조감이 아니다. 번스타인 자기 주관에 가득찬 전체의 조감이다. 번스타인 지휘의 교향곡의 형식은 언제나 일정하다. 1악장은 순수하게 도입, 시작의 의미외에는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간결하고 다소 얌전한 1악장이 대부분이다. (이 스타일을 고집하다 졸연으로 평가받은 대표적인 지휘는 [베토벤 5번(빈필/DG)]이다.) 1악장의 클라이막스를 이끌되 절대 청자가 온 정신이 팔리도록 하지 않는다. 진정한 클라이막스는 4악장에 있으니까. 2악장(Largo)은 느림의 미학을 가르쳐 주기 위함인지 1.5배 가량 시간을 인위적으로 늘였다. 그리고 꽤나 자연스럽게 2악장의 느린 서정미를 이끌어 내려고 한다. 그러나 결국은 자기도취에 빠지고 만다. 필자는 아무리 들어도 번스타인의 지휘의 2악장을 공감할 수 없다. 드보르작이 2악장을 10여분에 연주하도록 작곡한 이유는 그 시간내에서도 충분한 서정미를 담아 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번스타인은 물론 2악장을 자기 방식대로 유려하게 이끌어 냈을지라도 실제로 공감해 줄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이 스타일을 고집해서 특이해진 대표적인 지휘는 [차이코프스키 6번(뉴욕 필/DG)이다.) 3악장은 '빠를 때는 확실하게 빠르게 하겠다'라는 번스타인의 고집에 결국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기게 되었다. 4악장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주는 3악장 주제부가 다른 지휘보다 워낙 빠른지라 들을 때는 다소 신선 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다른 지휘자의 지휘를 들을 때 '3악장이 느리다'고 인식이 드는 곤란함이 발생한다. 전체적으로 여기까지 번스타인이 인위적으로 힘을 줄이고, 길게 늘이고, 빠른 템포로 진행하는 등은 전부다 마지막 4악장을 위함이다. 4악장은 일단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라이브 공연인데도 (1악장의 한 번 위험하게 끊었던 부분을 제외하고는) 번스타인의 의도대로 4악장까지 잘 이끌었고, 이스라엘 필의 관악주자들도 4악장에서 어김없이 실력을 드러내며 환희의 도가니로 이끈다. 간결하고 날카롭게 정곡을 찌르는 번스타인식의 클라이막스는 공감은 어려울 지라도 "정말 천재 지휘자다!"라는 말이 튀어나오게끔 한다. 이렇게 번스타인의 의도대로 '번스타인만의 신세계'는 완성되었다. [슬라브 무곡]은 유명한 1번/3번/8번을 담고 있는데, 지휘가 끝날 때마다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들려 라이브의 실감이 더해진다. 슬라브 무곡은 번스타인의 개성이 충분히 드러나면서도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호연이다. 들으면서 나도 같이 관람하는 관객이 되는 듯 하고, 지휘가 끝날 때면 박수를 치고 싶을 만큼 생동감있는 지휘이다. 같이 수록해준 그라모폰사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4점을 주고도, 음반 추천을 하면서도 껄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음반이다. 사실 필자도 가장 안 듣고 또 팔고 싶은 음반 중 하나니까.(가끔 [슬라브 무곡]만 듣는 경우가 많다.) 듣고 나면 "그래, 당신 번스타인 잘났어. 그러나 당신의 지휘를 공감하고 싶지도 않고, 당신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군." 이 말이 절로 떠오르게 된다. 그렇다. 누가 번스타인의 말년 지휘를 편히 받아 드릴 수 있을까? 나르시시즘 환자 천재 번스타인을 이해해 줄 사람은 번스타인 자신 뿐인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