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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깎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꼬옥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짓찧어진 맨드라미 즙을 나막신 코에 문질렀다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와도 이 춤을 멈출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 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을 발명하셨으니 - 송찬호, 「분홍 나막신」 사랑하는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왔습니다. 얼마나 좋을까요? 다른 사람도 아닌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선물입니다. 한데 신발이 발에 맞지 않는 모양이네요.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버려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님이 준 신을 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럼 기념으로 간직해야 할까요? 이것도 안 되나 봅니다. 하긴 님은 나막신을 신으라고 준 것이지 보관하라고 준 것은 아닐 겁니다. 방법은 이제 하나밖에 없습니다. 님에게 신이 작다고 얘기하면 됩니다. 그런데 선물을 받은 사람은 그러질 않네요. “나는 아이 좋아라”라는 시구에 신을 받은 연인의 마음이 잘 드러납니다. 그(녀)는 어떻게든 신발을 신으려고 합니다. 나막신을 구겨 신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크기를 늘릴 수도 없습니다. 화자는 발톱을 깎습니다. 발톱을 자른다고 신을 신을 수가 있을까요? 화자는 다시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꼭 맞추었습니다.
발에 신발을 맞추어야 하는데, 화자는 신발에 발을 맞춥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프로쿠스테스가 생각납니다. 프로쿠스테스는 사람을 만나면 쇠침대에 눕혔다고 하지요. 침대보다 작으면 사람을 늘이고, 침대보다 크면 사람을 잘랐다고 합니다. 침대에 사람을 맞춘 겁니다. 프로쿠스테스는 다른 사람을 자기 기준에 맞추었다면, 이 시에 나오는 화자는 자기를 님이 만든 기준에 맞추고 있네요.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으며 화자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뼈를 깎는 아픔을 느끼기나 했을까요? 화자는 자기 몸보다 님이 준 나막신이 더 좋았나 봅니다. 어떻게든 나막신을 신고 님 앞에서 춤을 추고 싶었나 봅니다. 님을 사랑하는 화자야 이럴 수 있지만, 님은 왜 이런 화자를 그냥 내버려 둔 걸까요? 님은 화자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요? 아니면 화자의 이런 자학(自虐)을 님은 사랑으로 받아들인 것일까요
화자는 맨드라미를 짓찧어 즙을 냅니다. 그 즙을 나막신 코에 문지르네요. 춤을 잘 추기 위해서입니다. 나막신에 피가 배어나옵니다. 그래도 화자는 거침없이 춤을 춥니다. 도대체 화자는 왜 자기 사랑을 이런 엽기로 표현하는 걸까요? “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을 발명하셨으니”라고 시인은 쓰고 있습니다. ‘발명’이라는 시어가 눈에 띄네요. 발명(發明)은 전에 없던 것을 새로 생각해내거나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님께서 발명한 사랑은 전에 없던 사랑이라는 말이 되는 거지요. 님은 왜 전에 없던 사랑을 화자에게 강요하고 있을까요? 화자는 또 왜 전에 없던 사랑으로 님에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걸까요? 님은 자기가 발명한 사랑으로 이전과는 다른 세계를 만듭니다. 그리고는 화자에게 나막신을 보냅니다. 나막신은 그러니까 화자가 님이 만든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과 같습니다. 님이 발명한 세계이므로 입장권이 없는 사람은 이 세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화자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그(녀)는 나막신을 신고 님이 만든 세계로 기꺼이 들어갑니다.
님이 만든 세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춤을 추는 무도장이 있습니다. 한번 춤을 추기 시작한 사람은 결코 춤을 멈출 수 없습니다. 한번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에서 헤어 나오기 힘든 경우와 같은 걸까요? 화자는 색안경을 쓰고 님이 발명한 사랑을 봅니다. 화자가 쓴 색안경 또한 님이 만든 사랑으로 채색되어 있겠지요. 춤을 추는 화자를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님밖에 없습니다. 화자는 지금 님이 만든 가상공간에서 춤을 추는 인형일 뿐입니다.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와도 나막신을 벗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막신은 분홍색이네요. 분홍 나막신을 신고 춤을 추는 연인을 상상해 보세요. 무엇이 떠오르나요? 저는 분홍 나막신만 떠오르네요. 춤을 추는 연인은 사라지고 분홍 나막신만이 허공을 떠돌고 있습니다. 님이 발명한 사랑을 시인은 그럼 분홍 나막신이라는 대상으로 표현한 건가요?
분홍 나막신은 님이 화자에게 준 선물입니다. 선물은 상대를 환대하는 마음에서 주는 물건이 아닌가요? 환대는 아낌없이 주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나 보시와 같은 의미를 지닌 말이죠. 그런데 선물은 받은 화자는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는 엄청난 고통 속으로 자신을 내몹니다. 화자는 왜 이러는 걸까요? 이래야 정말로 님을 향한 사랑이 제대로 표현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나막신을 선물한 님과 신발에 제 발을 맞춘 화자는 사실 둘이면서 하나입니다. 고통을 주는 사람과 고통을 받는 사람이 하나라고요? 님은 자기가 발명한 사랑으로 화자를 억압합니다. 그(녀)는 프로쿠스테스처럼 침대에 사람을 맞추려고 합니다. 화자는 어떨까요? 화자는 나막신에 집착합니다. 나막신을 님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님이 준 선물에 자신을 맞춤으로써 화자는 자신이 얼마나 님을 사랑하는지 보여주려고 합니다. 참으로 참혹하고 끔찍한 사랑입니다.
이 시를 읽고 이내 동화 「신데렐라」를 생각했습니다. 이 동화에서 신데렐라를 괴롭힌 언니들은 유리구두에 자기 발을 맞추기 위해 칼로 발뒤꿈치를 깎고, 복숭아뼈를 깎습니다. 왕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지요. 물론 이 신발은 신데렐라 발에만 맞습니다. 신데렐라 얼굴을 모르는 왕자는 유리구두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려고 합니다. 유리구두가 기준이 된 셈이지요. 제 발을 깎고도 왕비가 되지 못한 언니들은 신데렐라가 결혼식을 올리는 연회장에서 불에 달궈진 쇠신발을 신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춥니다. 끔찍하다고요? 신데렐라는 착한 사람이고, 언니들은 나쁜 사람이라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라고요? 예,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이 말하는 ‘발명된 사랑’이 바뀌는 건 아닙니다. 언제나 사랑은 님이 발명합니다. 님과 같이 있으려면 화자는 끊임없이 춤을 추어야 하지요. 죽어야만 끝낼 수 있는 춤에 님이 발명한 사랑의 진실이 있습니다. 제 발에 꼭 맞는 유리구두를 신은 신데렐라라고 다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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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시인의 이전 시집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을 통해서 송찬호 시인을 처음 접했는데 처음에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은 단순히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산 시집이었다. 읽었던 시집이 마음에 들어서 송찬호 시인의 신작 시집이 나왔을 때도 망설이지 않고 구매했다. 제목과 같은 시인 '분홍 나막신'은 지하철역 스크린도어에도 적혀 있다.
나는 천둥을 흙 속에 심어놓고 그게 무럭무럭 자라 담장의 장미처럼 붉게 타오르기를 바랐으나 천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로만 훌쩍 커 하늘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그때부터 나는 헐거운 사모(思慕)의 거미줄을 쳐놓고 거미 애비가 되어 아침 이슬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언젠가 다시 창문과 지붕을 흔들며 천둥으로 울면서 돌아온다면 가시를 신부 삼아 내 그대의 여윈 목에 맑은 이슬 꿰어 걸어주리라 - 장미, 13p 우리가 장미를 기다리는 동안 이 세계에 장미는 먼저 가시를 보내주었다 우리가 오래 장미를 기다리는 동안 이 세계는 조금 더 밝아지거나 어두워지기도 했다 포탄 구덩이에서도 사막의 아들들은 태어나고 - 장미, 40p 그는 일생을 노래의 풍차를 돌리는 바람의 건달로 살았네 그는 때때로 이렇게 말했네 풍차가 돌면 노래가 되고 풍차가 멈추면 괴물이 되는 거라고
그는 젊어서도 사랑과 혁명의 노래로 풍차를 돌리지는 못했네 풍차의 엉덩이나 허리를 만지고 가는 바람의 건달로나 살면서
바람 부는 언덕에서 덜컹거리는 노래의 풍차는 쉼없이 돌았네 그는 지치고 망가져가는 풍차에게 이렇게도 말했네 멈추지 말게 여기서 멈추면 삶은 곧 괴물이 되는 거라네
그러나 생은 때로 휴식이 있어 아름다운 것 돌지 않는 풍차 그의 노래도 끝났네 바람은 벌써 그의 심장을 꺼내 가고 그의 지갑에는 이제 피 한 방울 남아 있지 않네 - 돌지 않는 풍차, 46~47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