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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나는 도올의 예술론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자가 많고, ck시스템으로 중국사람들을 말하고 있어서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만 이해하려고 해도 너무 너무 주제의 폭이 방대하여 버겁다. 해석이 직역과 의역 풀이 함께 있어 이 석화도론이라는 책을 얼마나 깊이 천착하는지 알 수 있다. 도올은 참으로 성실한 철학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의역은 참으로 아름다운 의역이다. 이렇게 어려운 책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컨템퍼러리한 언어로 해석해주는 철학자는 그 성실성에서 얼마나 어려운 노고를 수행했는지 우리 역사는 평가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이 사람은 그 자신의 스칼라쉽을 그것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거져 주려고 안달이 난 자선 사업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도의 스칼라쉽이면 거의 십중 팔구는 신비화하거나 권위적이기가 너무나 쉬운데 그는 전혀 그러할 생각이 없는 것 처럼 보인다. 물론 자기 주체적이고 자기 영역을 확실히 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요즘 나오는 도올의 책들을 일반 독자들을 위한 배려가 더욱 두드러지지만 사람들이 잘 사서 보지 않는 것 같다. 베스트 셀러들은 쉽고, 가벼운 책들이다. 도올의 언어는 그에 비해 너무 무겁다. 독자들은 언제나 가볍고 평이한 것을 좋아 할 수 밖에 없다. 도올 책 중에 이 책이 가장 까다롭고 읽기가 너무 불편한 책이 었다. 한자 공부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게 했고, 중국어를 몰라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지 챆을 끝까지 읽어도 알 수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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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옛날에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법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 "한번그음"에서 생겨나게 되었는데 "한번그음"이라고 하는 것은 뭇존재의 뿌리요, 온모습의 근본이다. 한번그음의 법은 오로지 도(근원,뿌리)를 체득한 주체 즉 나로 부터만 생겨나는 것.
그림(畵)이라는 예술은 法의 세계인데 여기 스타오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것은 有法이 아니라 無法이었다
스타오는 스님이었다. 자신을 [소승의 객]이라 하여 눈이 멀어 진리를 못보는 소승이라고 자신을 격하시켰다.
스타오는 불교와 도교를 이원화하지 않고 하나로 융합시킨다. 스타오는 당대의 천재적인 화가였다 스타오는 말한다 화가가 능히 그 한번 그음으로써 그리고자하는 대상의 전체를 포용하면서 그 좁은 캔버스에 그것을 압축하여 구현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화가의 의식의 의도성이 명료해 질 것이며, 따라서 그 붓질도 투철해질 것이다.
백남준이 말했던가.. 예술은 사기라고 예술을 사기라고 규정할 수 있는 자에게 있어서는 예술은 사기 이전의 것이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이 無法이 되는 거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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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과 달라이 라마의 만남]중에서 [석도화론]을 도올의 최고의 책이라고 꼽는 장면이 나와서 벼르다벼르다 기어이 샀다. 도올이 한의학과에 학생신분으로 다니던 중 방학을 이용해서 썼다는 점이 우선 이채롭다. 이전에 나온 책들과 달리 의학공부를 통해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자신의 발전의 시발점으로 삼아서 그런지 manic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거나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부분이 대폭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은 백남준이 한국에 비디오아트를 위해서 내한한 당시 한 말로 한동안 사람들을 자극시켰던 말로 석도화론의 첫문장이기도 하고, 책속에 제2책에 해당되는 백남준과의 대화에서도 주된 화두이기도 하다. 완성의 완성을 위한 파괴인가 혹은 완성의 파괴를 위한 파괴인가? 늘 포스트모더니즘에 따라붙는 화두로 백남준과 도올은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로 일축하고 있다.
석도화론에 이르러서는 팀작업에 의해서 급조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빠듯한 시간때문에 일 수도 있지만, 인터넷과 마찬가지로 급조된 것은 무수한 인터넷바다에 쓰레기 정보하나를 보태는 것이요, 출판물에 있어서는 재고 하나만을 더 늘일 뿐이다. 그러나 급조된 것속에 옥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맥락에서 본다는 완성을 위한 완성으로의 파괴. 혹은 시간이 없음으로 해서 작가의 진면목이나 혹은 작가의 가식없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꾸미지 않은 글 속에 묻어나는 작가의 적나라한 모습이란 작가로 하여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을 독자에게 보임으로서 진솔해 질 수 있고, 독자는 그런 작가로 하여금 과대포장되지 않은 작가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석도화론을 본다면, 도올의 예전책들처럼 대화체와 글 중간 중간 작가가 난데없이 끼어드는 점에선 비슷하지만 더 빈번히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다.
도올의 무한한 호기심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필독할 만한 책이다.(늘 느끼는 거지만, 영어와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도올의 능력에 대해서 깊이 고개를 숙여 존경하지만, 그의 한글 구사력이나 띄어쓰기에는 심히 가슴이 아프다. 속어, 비어를 쓰는 건 이해가 되나, 격음화와 경음화를 넘나들며, 초등학교 문법에도 나옴직한 띄어쓰기가 틀릴 때는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짚어주기 위한 출판사의 배려인지 혹은 출판사의 출판과정상의 오류인지 분간이 안간다. 도올정도라면 우리나라의 식자층에 속할터인데, 심한 격음화와 경음화, 띄어쓰기의 오류가 그의 글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도 있을텐데...안타깝다. 이 책 역시 그런면에서는 엉망이다. 한글이 가끔 황당하게 찍혀있어서 한자의 획과 영어의 철자가 제대로 박혀있나 일부러 찾아 볼 때도 있다.) [인상깊은구절] "모든 사람은 다 예술가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참여예술과 행위예술적 보편성의 측면을 단적으로 표출하는 말이다. 보이스의 이말을 들을 때, 주자학의 도덕적 엄격주의에 반기를 들고 명대사회 개인주위와 시민정신을 표방하고 나온 양명학의 전도사들이 내걸었던 모토, 공자에서 유래한, "길거리에 가득 찬 것이 다 성인이다"라는 구절을 연상한다. 플룩수스는 서구라파의 현대에서 재현된 양명학이라고 말한다면 이러한 나의 표현에는 아전인수격 어폐가 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