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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 양산하는 막장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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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에 돈도 한 푼 가지지 못한 이가 갑자기 재벌과 사랑에 빠지고, 열심히 집안일을 하나 인정받지 못하던 전업주부가 갑자기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으로 변신한다. 이미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린 이가 뜬금없이 새로운 사랑에 눈을 뜨기도 하는데 그 과정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거 같은 일이, 그것도 연달아 드라마 속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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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에 돈도 한 푼 가지지 못한 이가 갑자기 재벌과 사랑에 빠지고, 열심히 집안일을 하나 인정받지 못하던 전업주부가 갑자기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으로 변신한다. 이미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린 이가 뜬금없이 새로운 사랑에 눈을 뜨기도 하는데 그 과정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거 같은 일이, 그것도 연달아 드라마 속 세상에서는 벌어진다. 이럴 순 없다며 모두가 분노를 표하면서도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텔레비전을 찾는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이는 사실이다.

소설이 그러하듯 드라마 역시 사회의 반영이다. 소설이 지나친 상상력에만 의존하는 경우 사람들은 개연성이 떨어진다며 외면한다. 그런데 드라마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한 시선을 보인다. 글씨에 기대고 자신의 상상력으로 부족한 부분은 채워 넣어야 하는 소설과 달리 구체적이다 못해 화려하기까지 한 영상의 뒷받침을 기대할 수 있는 드라마에서는 한계 모를 상상력을 맛볼 수 있다. 시공을 초월하는 것은 기본이다. 멀쩡하던 주인공이 뜬금없이 다치거나 죽기도 하고, 때론 원수와도 사랑에 빠진다. 터무니없다며 코웃음을 치는 일이 최근 들어 잦아졌는데, 저자는 이 또한 시류의 반영이라고 보았다. 우리 사회가 드라마를 그와 같은 방향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개별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 기억에 의하면 산부인과에서 뒤바뀐 아이가 너무도 다른 가족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스토리가 각광 받던 시절이 있었고, 그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갔을 땐 주인공들이 죄다 불치병에 걸려 죽던 시절과도 만날 수 있다. 대중이 요구하는 무언가가 있어 그 틀을 따랐을 때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독립된 개개인의 집합인 대중이 일련의 흐름을 창조해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이는 마치 선거에 임한 개개인이 던진 표가 특정 정치인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것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드라마 속 여성상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실제 사회에서도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굉장히 큰 폭의 변화를 보였음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가부장성이 보다 짙었던 시절엔 전옥(全玉)과 같은 인물이 큰 인기를 얻었다.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고, 심지어 죄책감까지 토로하는 여주인공은 모두가 “잘 살아보자”를 외치기 시작하면서 굳건한 맏며느리로 진화한다. ‘숫자조차 세지 못하는 바보 남편에게 글을 가르치고 집안에 숨어있는 독립운동가를 지혜롭게 보호하며, 급기야는 모함을 받아 가문에서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쟁통에 식당을 경영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판잣집에까지 내몰린 집안을 다시 일으키는 데에 성공’하는 모습은 한국판 소머즈 정도에 비유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외에도 드라마 속 여성들은 순수함을 강조한 나머지 소위 백치미까지 선보이고, 성공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커리어 우먼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저자는 비교적 최근에 크게 부각된 윤은혜라는 인물을 주목했다. 그녀가 연기한 배역들은 이전의 캐릭터와는 여러 모로 다르다. ‘궁’, ‘포도밭 그 사나이’ 등의 드라마에서 그녀는 크게 꿈꾸는 바도 없고 지닌 능력 역시 별로 없는 모습을 보인다. 오랜 시간동안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대학 졸업 후에도 취업을 위해 안간힘을 쓰나 이루는 것은 별로 없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모습을 복사한 듯하다. 새로운 유형의 배우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이는 게 죄가 아니겠으나 드라마속 인물에 마냥 열광하기에 앞서 그 모습이 우리 자신임을 떠올린다면 어딘지 모르게 씁쓸할 따름이다. 결국 우린 드라마를 통해 제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으로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겨우겨우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회피를 택한 상황에서 구사할 수 있는 어쩌면 가장 현명한 방안일 수도 있다.

하나의 유행을 창조한 것은 분명 우리 자신이었다. 허나 철저히 자본의 논리를 따르는 드라마는 창조된 유행을 철저히 따르며 동시에 그 유행의 고착화도 시도한다. 선망하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배역을 닮고자 애쓰는 와중에 우리는 인위적으로 창조된 무기력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다.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착각과 함께. 그렇게 우리 자신은 길들여져 왔다. 하긴, 상상력이 파고들 여지가 그다지 없어 보이는 사극마저도 시대로부터 자유롭지 않거늘 개개인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막장 세상이 막장 드라마를 만들고, 막장 드라마는 막장 개개인을 만든다.

 

이달의 사락 q*****2 2014.10.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