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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은 지금까지 내가 알고 알고 있었던 선비 중에서 가장 강력한 포스가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고 마는 기개는 물론이고, 말뿐이 아닌 실천력까지 겸비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가 재야의 거목으로 존재감을 발휘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남명은 과거 급제를 위한 공부를 내팽개치고, 세상에 쓰임이 있는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했다. 스승도 없이 독학하면서 공부하는 과정을 보면 치열하다 못해 경건한 느낌에 감동마저 일었다. 느슨하고 나태하게 살았던 내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상상해 보라. 닭이 울면 일어나 세수하고, 의관을 정제하고 먼저 조상의 사당에 참배하는 남명의 모습을! 자신이 스승으로 삼았던 공자 등 네 성현의 초상에 참배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남명의 모습을! 자신이 차고 다니던 칼에다가 안에서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에서 결단하는 것은 의다(君子, 敬以直內,義以方外)라는 명을 새기고 다녔던 그의 모습을! 그렇게 학문에 정진하면서 그는 평생 경(敬)과 의(義)를 가슴에 새겼고, 백면 서생이 아닌 실천궁행을 강조하는 학문을 지향하게 된다. 이 점이 다른 사림들과 차별성을 갖는 점이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켰던 곽재우, 정인홍 등이 바로 그의 제자였다는 점을 보더라도, 남명학파들은 학문과 실천을 괴리시키지 않았음을 증명해주었다. 위기 시에는 기꺼이 위험을 피하지 않고 목숨 걸고 앞장서는 의사( 義士)가 됐던 것이다. 그의 강단은 문정왕후와 그 일가가 서슬 퍼렇게 권세를 누리던 시기에 올린 상소에서 다시 한번 유감없이 발휘됐다. 몇 차례의 사화를 겪고난 뒤라 사림들이 몸을 낮추고 있던 시절이었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권력의 몸통이었던 문정왕후를 일개 과부로, 명종을 돌아가신 임금의 고아로 지칭했던 상소, 그 유명한 을묘사직소를 통해 그는 국정의 혼란스러움에 대해 가차없이 직언했고,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뒤에도 그는 백성의 어려움을 전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는데 그 때마다 거침이 없었다. 이렇게 강단을 보이고 벼슬 제의를 물리치는 사이 어느덧 그는 재야의 거목이 돼갔다. 남명 조식을 읽는 동안 내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적어도 백면서생이 아니었다. '칼을 찬 선비'라는 수식어가 괜한 말이 아니었다. 선비들에게서 보이는 문약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입으로는 도덕을 외치면서도 막상 자신들에게 문제가 닥치면 얼굴에 철판 까는 지식인, 정치인의 모습을 신물나게 봐왔고, 말과 행동이 분리되는 지식인들, 하지만 남명은 말만 앞세우거나 권력을 탐하거나 권력 앞에 몸을 사리는 비겁한 선비는 아니었다.
'죽고 사는 것은 평범한 이치니라'하면서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에서는 마음이 찡해왔다. 물론 '남명 조식'에는 그에 대한 비판이 거의 없어서, 내가 너무 장점만 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왜 이렇게 훌륭한 선비에 대한 조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의문이 들었다. 남명은 글을 많이 남기지 않았고, 그의 제자들 또한 광해군의 축출과 함께 몰락했다. 율곡의 제자가 중심이 된 서인들이 인조반정에 성공함으로써 남명 학파는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고, 그의 존재가 다시 부각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점이 그에 대한 평가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던 원인이 됐던 것이다. 남명 학파가 중간에 맥이 끊긴 것은 조선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물론 정인홍 같은 인물을 보자면 강경파적인 면도 없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실천궁행과 실용적인 학문을 강조하는 학파가 존재했다면, 조선의 성리학은 좀더 다양해지고, 정책이나 국방에 대해서도 조금이라도 더 실용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가정도 해보게 된다. 그만큼 안타까웠다는 말이다. 조선 선비 중 남명 조식만큼 내 피를 끓게 하고 가슴을 뛰게 한 인물이 없었다. 경상대학교에 남명 연구소가 있다는 것도 반가웠고,지금이라도 조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은 정말 다행스러웠다. 이황이나 이이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었던 그의 행적과 삶에 대해 심도있는 평가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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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스쳐 지나가면서 언뜻 보게 된 EBS 특강을 통해 남명 선생을 처음 알게 되었다. 책이 얇고 내용이 좋다는 주위의 추천을 받아 별 생각없이 산 책이다. 그러나 별로 두껍지도 않은 이 책을 통해 뜻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게 되었다. 글자를 판독하며 읽는 수준인 첫번째 독서를 마치고 책을 책꽂이 에 바로 꽂을 수는 없었다. 과장되지 않은 그렇다고해서 지루하지도 않은 허권수 교수의 글은 남명 선생의 일생과 사상을 담담하게 간략히 풀어내고 있다. 지금은 다시 책상 앞에 바른 자세로 앉아 가슴에 세길 부분에는 줄을 그어가면 간단한 메모도 곁들이는 2차 독서를 하고 있다. 역사시간에 배웠는지조차 기억나지도 않는 남명 선생을 이제서야 만나게 된 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다. 이제라도 남명 선생의 배움의 자세에 관한 글을 읽었으니 나도 또한 선생과 같은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노력해야겠다. 남명 선생에 관해 알고자 하는 분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두껍지 않아 책을 읽는데 부담도 없고, 본문에 인용된 선생의 글들은 너무나도 나태한 정신을 깨우는 성성한 가르침으로 가슴에 크게 와 닿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남명 선생에 관련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면 다른 책을 구입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yes24에 들렀으니 나도 오늘 남명 선생과 관련된 다른 책 한권을 구입해야겠다. [인상깊은구절] "공부하는 것은 강물을 거슬러 배를 저어 올라가는 것과 같다. 한 치를 놓아두면 한 길이나 미끄러져 내려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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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 수입된 성리학은 조선 중기에 이르러 완전히 우리 조선의 성리학으로 편입되었다. 그 중심에는 퇴계이황선생님과 율곡 이이선생님이 계시다. 이 두분의 거유 속에 잘 드러나지 않은 분이 계신데 그분이 바로 남명조식 선생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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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의 조금 얇은 느낌이 드는 책이지만 남명 조식 선생을 전혀 모르는 분들이 읽는다면 도움이 될것입니다. 지루하지 않고 그렇다고 과장되지도 않은 허권수님의 담백하고 깔끔한 글은 남명 선생의 일생을 담담하게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책의 본문에 인용되는 남명 선생이 글들은 책의 두께와는 상관없는 큰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감동은 반드시 책두께와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후회없는 인생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시는 분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은 책을 통해 국사 시간에도 배운 적이 없는것 같은(이것은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기억입니다. 사실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 남명 선생을 만나게 된것은 큰 행운입니다. 남명 선생의 멋진 글귀들을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고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남명 선생에 대해 조금 더 깊에 알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읽으신 후 다른 책을 구입하시는 하십시오. 저도 남명 선생님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기 위해 다른 책을 구입하려고 합니다.--- 덧붙이는 말----정치하시는 많은 윗(?)분들이 꼭! 꼭! 꼭! 읽으셔야 할 책입니다. [인상깊은구절] 붉은 마음으로 이 세상을 되살리고파, 누가 밝은 해로 이 몸을 비춰 줄 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