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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이게 좋은건지 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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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번스타인에 길들여져 있다보니(제가 사실 번스타인이 아닌 말러는 너무 거부감이 듭니다. 번스타인은 자신이 말러의 환생이라고 주장했다던데 그래서 그런가??)사실 다들 이 음반을 극찬하길래 구입했는데 저는 잘 모르겠네요...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오히려 곡을 횡설수설하게 만드는것도 같고 4악장은 너무 뻥튀기는것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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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번스타인에 길들여져 있다보니(제가 사실 번스타인이 아닌 말러는 너무 거부감이 듭니다. 번스타인은 자신이 말러의 환생이라고 주장했다던데 그래서 그런가??)사실 다들 이 음반을 극찬하길래 구입했는데 저는 잘 모르겠네요...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오히려 곡을 횡설수설하게 만드는것도 같고 4악장은 너무 뻥튀기는것같군요.
i*****7 2004.08.10.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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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살아나는 기적같은 명연
"<거인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살아나는 기적같은 명연" 내용보기
이 [교향곡 1번(거인)]은 말러가 28세 일 때 쓰여졌다. 몇 차례의 개정을 통해 제목 [거인]을 달고 세상에 등장한 이 교향곡 1번은 실로 젊은 말러의 뜨거운 피가 느껴지는 명곡이다. 말러는 초연 이후에 이렇게 말했다. "내 교향곡은 엄청난 열광과 지독한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개들이 짖으면 우리는 길을 제대로 찾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내가 승리자지." 그리고 더 젊은
"<거인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살아나는 기적같은 명연" 내용보기
이 [교향곡 1번(거인)]은 말러가 28세 일 때 쓰여졌다. 몇 차례의 개정을 통해 제목 [거인]을 달고 세상에 등장한 이 교향곡 1번은 실로 젊은 말러의 뜨거운 피가 느껴지는 명곡이다. 말러는 초연 이후에 이렇게 말했다. "내 교향곡은 엄청난 열광과 지독한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개들이 짖으면 우리는 길을 제대로 찾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내가 승리자지." 그리고 더 젊은 부르노 발터는 초연 이후 이렇게 말했다. "이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의 용기에 감탄했다. 이 대단한 작품을 쓴 사람이 누군지 정말 알고싶다." 그렇다. 누가 뭐라도 말러는 이제 승리자이고 발터가 예측한대로 그 용기있는 말러는 이제 교향곡사의 큰 획을 그은 대가이다. 이 교향곡 1번은 말러의 그 이후 교향곡들에 비하면 '말러의 스타일'이 덜 농후하다. 그런 점에서 도약하는 말러, 그리고 제목 [거인]을 가장 완벽히 표현한 지휘는 바로 이 '아바도-베를린필'이다. 물론 텐슈테트, 번스타인의 지휘는 명연이다. 번스타인의 말러는 번스타인식의 천재성이 강하게 녹아나는 명연이고, 텐슈테트의 말러는 텐슈테트의 암투병을 이겨내는 힘겨운 삶을 통해 그 끈끈한 열기가 나는 명연이다. 그런데, 문제는 제목을 보라. [거인]이다. 번스타인이 지휘한 거인도 거인이고, 텐슈테트가 지휘한 거인도 거인이다. 그러나 결국 그 거인은 자기 자신, 즉 번스타인과 텐슈테트를 묘사하는데 그치고 있다. 눈을 감고 이 '아바도-베를린 필'을 가만히 들어보면 라이브 공연이라는 생동감, 카라얀의 다음 베턴주자로써의 긴장감... 이런 기분이 들 것 같은 데 듣다 보면 달라진다. 아니 지휘자가 아바도이건 베를린 필이건 "다 잊어버린다." 오직 그 자리는 [거인]의 형상만이 남는다. (판타지에 등장하는 '고램'같은 괴물을 생각해도 좋다.) 거인이 천천히 일어나서 몇 번 몸을 풀더니 그 큰 체구로 약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춤을 추듯 유유히 몸을 움직이다 장송풍에 잠시 몸을 추스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비로소 그 커다란 형체를 돌연 들어내더니 쿵, 쿵 이렇게 한 발짝 씩 걷는 듯한 이미지와 또 그 거대한 근육들이 움직이는 형상들과 함께 내게로 다가오는 듯한 피날래를 맞이하며 장대한 교향곡의 종지부를 찍는다. 다 듣고 나면 진정 <거인의 움직임> 하나 만이 남는다. 지휘자 아바도도, 베를린 필도, 심지어 작곡가 말러도 머리 속에는 남지 않는다. 마지막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끝을 맺을 때 '라이브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비로소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이는 실로 기적같은 체험이며 말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 즈음 느껴 볼만한 체험이 아닐까 한다.
YES마니아 : 로얄 j********y 2003.11.2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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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스타인을 무너뜨린 개선작 - 아바도와 베를린 필의 행복했던 시절
"번스타인을 무너뜨린 개선작 - 아바도와 베를린 필의 행복했던 시절" 내용보기
얼치기 말러 전도사 시절에 선배에게 말러 1번을 소개해드렸다. 말러에겐 시큰둥한 그 선배‥ 바로 위 음반을 처음으로 소개해드렸는데 별 반응이 없을 줄 알았다. 오후에 받은 전화에서 흥분한 그 선배 - "아바도, 정말 죽여준다." 그 후 그는 아바도의 열렬한 팬이 되어버렸다. 이후에 비교감상한다고 '텐슈테트'와 '번스타인' 것을 소개해드렸는데 이 둘은 철저히 외면당하였다. 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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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치기 말러 전도사 시절에 선배에게 말러 1번을 소개해드렸다. 말러에겐 시큰둥한 그 선배‥ 바로 위 음반을 처음으로 소개해드렸는데 별 반응이 없을 줄 알았다. 오후에 받은 전화에서 흥분한 그 선배 - "아바도, 정말 죽여준다." 그 후 그는 아바도의 열렬한 팬이 되어버렸다. 이후에 비교감상한다고 '텐슈테트'와 '번스타인' 것을 소개해드렸는데 이 둘은 철저히 외면당하였다. 둘다 너무 연주가 자의적이고 질질 끈다나 ? 현재 아바도는 베를린 필과 관계가 끊어졌다. 좋게 사임했다고는 하지만 그 배경은 ? 사이먼 래틀을 베를린 필이 받아들인 것은 기실 '카라얀의 잔영', 그 부활을 노렸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겠다. 아무튼 카라얀이 사망한 뒤에 그 후계자가 되었던 성실한 아바도가 내놓은 회심작이 이 말러 1번 (with Berilin Phil)이다. 예전에 예술의 전당에서 이를 'LD'로도 감상했었는데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거인 카라얀의 뒤를 이어도 좋은가 아닌가하는 통과의례시험에 대한 과제작이군, 합격 !" 사실 이 음반은 거의 모든 비평가들이 '최고'라고 무리없이 인정하는 명실상부한 명반이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아바도는 정력넘치게 지휘하고, 베를린 필은 역시 거의 완벽하게 연주하고 있다. 정연하고 구김살 없는 '젊은' 연주는 번스타인이나 발터가 드려내리웠던 퇴폐성이나 절망 같은 것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특히 마지막 4 악장에서 달아오르는 황금빛 불꽃의 뜨거운 연소는 감상자의 정신을 '앗아가' 버린다. 광기가 어리거나 자아도취에 빠졌거나 한 것도 아닌 '아폴론적'인 이성적 연주인데도 어떻게 ? 번스타인은 적어도 이 1번에서 아바도에게 패배했음을 인정해야 하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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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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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말러 1번과 5번을 자주 듣고 있는데,   1번은 솔티와 아바도의 것을 번갈아 듣고 있고,   5번은 솔티와 바비롤리 것을 번갈아 듣고 있다.   솔티의 1번은 느낌이 생각보다 약해서 다소 실망감을 주었으나,   아바도의 1번은 들으면 들을수록 구미가 땡겨지는 음반이다.   번스타인류의 신파조는 느껴지지 않지만,   굉장히 다이나믹하면서 명징하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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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말러 1번과 5번을 자주 듣고 있는데,

 

1번은 솔티와 아바도의 것을 번갈아 듣고 있고,

 

5번은 솔티와 바비롤리 것을 번갈아 듣고 있다.

 

솔티의 1번은 느낌이 생각보다 약해서 다소 실망감을 주었으나,

 

아바도의 1번은 들으면 들을수록 구미가 땡겨지는 음반이다.

 

번스타인류의 신파조는 느껴지지 않지만,

 

굉장히 다이나믹하면서 명징하다는 느낌이 든다.

 

깔끔하다고 해야할까~~

 

역시 아바도라는 말을 절로 나오게 하는 음반이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라이센스 음반인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수입 음반에 비해 왠지 볼륨이 작은 것 같은 느낌과 음장감이 덜하다는 느낌이 든다. 정말로 차이가 있는지는 꼭 확인해보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수입음반을 사야할텐데... ㅋㅋㅋ

s******k 2008.11.2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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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타이탄 "그리고 아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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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말러교향곡 1번은  베를린필과의 연주에서 최고의 연주 ,기능적으로 완벽한 베를린필주자와 아바도의 견고한 구축력으로 최고의 말러 1번을 연주한다. 위 혹자는 자의적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모르는소리다. 아바도는 철저히 인템포로 연주한다. 말러가 의도한 악보대로... 이상한 루바토같은건 필요없다. 베를린필의 이연주 를 듣다 번스타인 덴슈테트 ? 덴슈테트는
"말러 "타이탄 "그리고 아바도" 내용보기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말러교향곡 1번은  베를린필과의 연주에서 최고의 연주 ,기능적으로 완벽한
 베를린필주자와 아바도의 견고한 구축력으로 최고의 말러 1번을 연주한다. 
위 혹자는 자의적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모르는소리다. 아바도는 철저히 인템포로 연주한다. 
말러가 의도한 악보대로... 이상한 루바토같은건 필요없다. 
베를린필의 이연주 를 듣다 번스타인 덴슈테트 ? 덴슈테트는 사실 엉터리다. 
다른연주는 도저히 들을수가 없다.
그리고 위의 어떤분 말러교향곡5번 언급하셨는데 말러교향곡 5번 아바도 시카고 심포니 연주 들어보라 
그어려운곡을 시카고 심포니와 완벽하게 연주한다. 
한치의 오차도없이 최고로세련되게....
 사실말러교향곡은 폴리포니적인 곡으로 각악기간의 유기적인연결 그리고 기능적으로 완벽하지않으면 금방 티가 난다.
 말러만큼은 아바도가 진리다.!!!!






y****1 2012.08.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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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한 사유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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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렌스 맬릭(Terrence Malick)이 그의 다섯 번째 작품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2011)로 2011년 64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를 수상하며 의기양양하였을 때, 비평가와 대중들 혹은 그를 지지하던 많은 영화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그를 향해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거의 넋을 잃은 채 곤욕스러운 표정으로 당혹스러워 하였다. 맬릭은 유럽영화제에서 인정받았을지는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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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렌스 맬릭(Terrence Malick)이 그의 다섯 번째 작품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2011)로 2011년 64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를 수상하며 의기양양하였을 때, 비평가와 대중들 혹은 그를 지지하던 많은 영화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그를 향해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거의 넋을 잃은 채 곤욕스러운 표정으로 당혹스러워 하였다. 맬릭은 유럽영화제에서 인정받았을지는 모르겠지만,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가 교향곡1번을 초연할 당시에 사회적 냉대(흥행실패)와 모멸에 가까운 평가(에두아르트 한슬리크(Eduard Han slick)는 “우리 가운데 어느 한쪽이 미쳤음에 틀림없지만, 그것은 내 쪽이 아니다”)와 동일하게 객관적으로 그는 비난받고 있었다.(유럽아트하우스의 과도한 장식이며 동시에 식물성의 광란狂亂) 영상의 음유시인이라고 불리며(영화감독으로서의 엔지니어라기보다는 일종의 비디오 아티스트처럼) 그의 철학적 명제이자 선언 ‘인간 이성의 자기반성 능력 되살리라’라는 테제를 토대로 후설이 도그마적 길잡이로서 헤겔계보의 철학자들 사이에서 쌓아올렸고 제시했던 개념인 ‘의식작용Noesis'과 ’의식대상Noema'을 형상화해버리는 리모델링 작업을 종종 선사하곤 한다. 


‘의식작용’이 객관 세계의 감각자료에 의미를 부여해 구성하는 것이 ‘의식대상’이며 의식작용과 의식대상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둘 사이를 묶어주는 의식의 원초적 태도가 지향성Intentionalitȁt이다. 이때 지향성은 인간의 의식 안에서 시간 체험을 통해 구성된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기대하는 인간은 어떤 상태를 지향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이 지향성 위에서 사태(현상)가 의미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후설의 현상학의 방법론이며 멜릭의 이미지의 캔버스이며 말러의 악보의 사유이다. 


영화적인 것은 결국 감각과 물성(物性)이다. 물성을 통해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다. 음악적인 것은 감각을 되살리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통해 느낀 바를 예전에 감흥에 대해 무심하였던 신체였다면 드디어 인간 오성의 감각출구를 열어준다. 여기 그 과정을 생생하게 중계하는 메신저가 있다. 물론 말러교향곡1번은 전인미답의 경지에 까지 도달한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빈필 연주의 1979년 녹음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있다. 그 어마어마하고 빠른 연주를 듣고 있다 보면 교향곡을 듣고 있는 내내 말러의 궁극의 목적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이로는 리카도르 샤이 지휘 로얄 코랄 소사이어티 연주 1997년 녹음이 있다. 명쾌함과 모호함이 혼재되며 결국에는 정반합의 논증으로 귀결하며 말러의 장점으로 승화한다. 그러나 나는 클라우디아 아비도 지휘, 베를린 필 연주 1989년 녹음을 선택했다. 그의 연주야말로 이성의 자기반성능력을 되살려 앎과 삶의 주체인 인간 이성의 본디 모습을 되찾고자 하는바 이기 때문이다.


n*****m 2012.03.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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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도의 죄명-관객들 전기고문한 죄
"아바도의 죄명-관객들 전기고문한 죄" 내용보기
이것이 실황연주라는 점에서 일단 당시 베를린 필의 연주력의 수준을 가늠하면서 그저 놀랄 수 밖에 없고, 이런 연주를 직접 현장에서 들었던 관객들은 아바도와 베를린 필이 주는 전기고문으로 마지막에 홀에서 나올 때 초주검이 되어 있었지 않았을까싶다. 이런 훌륭한 연주에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1악장 마지막 개파 부분에서 힘을 모아 모아 터트리지 말고 바로 터트렸으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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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실황연주라는 점에서 일단 당시 베를린 필의 연주력의 수준을 가늠하면서 그저 놀랄 수 밖에 없고, 이런 연주를 직접 현장에서 들었던 관객들은 아바도와 베를린 필이 주는 전기고문으로 마지막에 홀에서 나올 때 초주검이 되어 있었지 않았을까싶다. 이런 훌륭한 연주에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1악장 마지막 개파 부분에서 힘을 모아 모아 터트리지 말고 바로 터트렸으면 하는 점 뿐이다. 지금 너무나 초쵀해진 아바도의 모습이 너무나 안스럽다.
h*****n 2007.12.22. 신고 공감 0 댓글 0